왜가리의 노래
- 古木-
머릿글
겨울, 무심천 -
이곳에 오는 텃새인 왜가리는 일생동안 짝을 바꾸지 않으며,
암, 수 번갈아 알을 품고 서로 도와가며 새끼를 기른다고 합니다.
이 글은 2년여 동안의 장기 중환자 간병기입니다.
워낙 글재주가 모자라 매끄럽고 재미있게 쓰지 못해 읽기에 지루하겠지만, 장기
중환자를 돌보시는 가족들에게 혹여 조그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부끄럼을 무릅쓰고 올립니다.
1.절규(絶叫)
“당신이 미웠어.”라고 한 마디라도 해야 내 곁을 떠날 수 있어.
그러지 않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할 거야.
30여 년 그렇게도 희생적이었던 당신,
난 당신에게 무거운 짐과 마음에 상처만 안겨 주었잖아.
더군다나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이 당신의 믿음을 저버렸는데,
그 많은 빚을 내가 어떻게 하라고 빨리 떠날 것처럼 그렇게 서두르지?
아무리 내가 밉더라도 그렇게 떠나는 것은 절대 안돼.
이제 겨우 철이 들어, 그동안의 잘못에 대한 뉘우침으로,
좀더 많이 당신만을 사랑하려 하는데...
여보, 정신 차리고 기운내서 수술이 잘 되도록 의사선생님을 도와드려.
깨어나서 “정말 미워.” 이 한 마디만이라도 해줘. 제발.
생명이 위험한 수술을 하러 들어간 아내를 향해 애타게 울부짖어 본 말들입니다.
내 아내는 7년 전 일혈성 중풍이 와서 왼쪽 반신이 마비되었다.
신경외과 치료가 끝나고 용하다는 한의원과 침구사를 전국으로 찾아다니며
치료를 했다. 심지어 중풍의 재발을 막는다며 등에 금침까지 심어 놓았다.
그러나 어떠한 처방도 중풍으로 인한 마비를 치료할 수는 없었다.
오로지 꾸준한 재활운동만이 신체의 불편함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었다.
그래서 아내는 불편한 몸으로 약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운동장까지 걸어가서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였다. 부자유스런 거동을 보이기 싫어해서 저녁때만.
중풍은 예방도 안 되고 치료도 안 되는 정말로 고약한 병이다.
중풍은 서양의학용어로는 뇌졸중이라 부르며 두 가지로 분류한다.
둘 다 결과는 같으나 과정은 정 반대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하나는 맞아 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굶어 죽는 것이다.
즉, 하나는 뇌혈관이 부풀어 오르다 풍선처럼 터져서 흘러나온 피에 뇌세포가
눌려 죽는 일혈성 중풍 또는 뇌일혈이며, 다른 하나는 혈관에 핏덩어리가 막히
거나 혈관이 수축하여 뇌세포가 산소와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해 죽는 허혈성
중풍 또는 뇌경색이다.
허혈성 중풍은 빠른 시간 내에 혈액공급이 재개되면 뇌세포도 깨어날 수 있으나,
일혈성 중풍은 새어나온 피를 얼마나 빨리 제거하는가에 따라 뇌세포의 피해
정도가 결정되므로 뇌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뇌수술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고명하신 의사선생님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겠지만.
아이들은 직장 때문에 모두 서울에 살고, 나는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어머니께서는 부천에 사는 여동생 집과 우리 집을 오가며 살림을 도와주신다.
나는 직장 때문에 매일 7시 반이면 나갔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곤 한다.
그동안 아내는 가벼운 집안일을 하고 책을 읽거나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또 자기 몸 관리를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지낸다.
그렇게, 몸은 조금 불편하였지만 여느 사람들이 사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날은, 어머니께서 동생 집에 가 계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발길이 끌려 일찍
집에 들어갔다. 여섯 시경이다.
평소와 달리 아파트 현관문이 잠겨 있어 아마 외출 하였나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방안에서 아내의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 나 다녀왔어.”하며 방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내가 방안에 쓰러져 있는 게 아닌 가?
읽던 책은 식탁위에 펼쳐져 있고, 미처 소화가 덜 된 (아마도 혼자서 먹은 점심
이리라) 음식물들을 토해 놓고 쓰러져 정신을 잃은 상태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아 뇌졸중이 재발 되었구나’ 짐작했다.
급히 119에 긴급 구조 요청을 하고, 토한 음식물과 오줌으로 범벅이 된 옷을
벗겨 새 옷으로 갈아 입혀 보려 했지만, 완전히 의식을 잃은 아내는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해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 나에게는 아마도 몇 시간쯤 지난 것처럼 느껴졌고 그동안
에도 한차례 더 독촉 전화를 한 것으로 생각 되지만 -
119구급대가 도착하였고 급히 환자를 수습하여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다.
중풍에 대한 상식이 지금 만큼만 있었다면 사혈(열 손가락 끝을 바늘로 따서
피를 내는) 응급처치라도 하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이는 아주 좋은 응급처치로 결과의 경중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의사 선생님에게 쓰러져 있는 정황으로 보아서 아마도 오후 한시 경 쯤 뇌출혈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 된다고 상황을 설명해 주고 응급처치를 요청했다.
머리를 단층 촬영한 결과 상당량의 뇌출혈이 있으며, 그 출혈 부위가 매우
위험한 부위라서 급히 뇌수술을 하여야 한다고 한다.
더욱이 담당의사의 설명으로는 수술과정에서도 매우 위험하지만, 수술이 잘
되어도 의식불명과 전신마비가 된다는 것이다.
눈앞이 아득해진다.
뇌수술.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무리 발달한 현대의학이라지만 뇌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수준인데, 뇌수술이라니?
나는 의사에게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우겼다. 식물인간처럼 지내느니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채 그렇게 떠나는 것이 아내에게도 더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나 담당의사는 아무 치료도 하지 않고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며,
정 수술을 거부하려면 환자를 데리고 나가라고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나 혼자서, 누구와 상의할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내를 위하는 것일까?
어느 교회 건물 꼭대기에 쓰여 있던 글귀가 생각났다.
- 살아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
그렇다. 일단 살려내고 보자. 살아 있으면 혹시 좋은 길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또 아이들이 살아있는 제 어미의 얼굴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판단하여 수술에 들어갔다.
평소 그렇게도 겁 많던 사람이 쓰러지고 나서 내가 돌아올 시간은 멀었는데,
그 오랜 시간동안 혼자서 얼마나 무서워했을까?
빨리 돌아오지 않는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지금 수술실안에서는 내가 곁에 없어서 얼마나 불안해할까?
수술실에 아내를 들여보내고 우선 아이들에게 가능한대로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연락하였다.
그런 뒤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수술실 밖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내 평생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수술도중에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쩌나 마음 졸이면서.
‘부처님, 하느님, 천지신명님, 제발 제 아내를 돌려주세요. 저의 잘못은 별도로
벌주시고 아내만은 돌려주세요.’
2.재회(再會)
“수술 잘 끝났습니다.” 간호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리를 온통 감은 붕대, 머리에 꽂은 빨대 같은 튜브 - 그곳으로부터 피가 흘러
나오는 - , 입에 물은 산소 호흡기, 눈은 꼭 감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살아서> 침대에 실려 중환자실로 가는 아내 모습을 본 순간
“하느님, 고맙습니다.” 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잠시 후 “보호자 분 면회 하세요” 하는 소리에 중환자실로 들어가 아내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다시는 영영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걱정 속에서 몇 시간을 보낸 터라, 아무 표정도,
말도 할 수 없고 눈도 감고 있었지만, 아내와의 다시 만남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래, 당신은 그렇게 누워만 있어도 돼. 이제부턴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줄게”
그 병원 중환자실은 하루 세 차례 면회시간이 허용된다.
한 시간의 면회시간 동안 부지런히 온 몸을 닦아주고 튜브로 음식물(중환자식)을
넣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친척들이 아내를 만나 볼 수 있게 시간도 주어야 하고.
중환자실 출입복은 환자 당 한 벌인데 면회할 사람은 많고 짧은 시간동안 많은
사람이 환자를 만나 보려고 하니 다른 환자의 면회복을 슬쩍하다가 시비가 일기 일쑤다.
면회복은 단순한 가운과 고무신이 전부이다. 소독을 잘 하였다고는 하지만 면회
대기실에 북적대는 많은 사람들 신발과 함께 뒹구는 중환자실용 고무신,
한 차례의 면회에도 이 사람 저 사람이 갈아입는 출입복 등을 보아 그리 청결할
것 같지 않다. 처음 면회 시 잘 모르고 구두를 신은 채 들어갔다가 간호사에게
크게 혼쭐나며 쫓겨나기도 했지만.
절대안정을 취해야 하는 중환들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북적이는 것을 막고
통제가 수월하도록 특별한 옷을 입은 자에 한해 출입 시키는 게 더 큰 목적이리라.
간호사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는 욕창이 생기기 쉬우니 욕창방지를 위해 의료기
상점에 가서 물 매트를 준비해 오라고 한다. 그것이 어떻게 좋은지는 모르나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겠다 싶어 물 매트를 준비해 침대 위에 깔아 주었다.
아마도 침대 보다는 훨씬 푹신해 등이 덜 배기겠구나 하고 생각하였을 뿐이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아내는 토양체질이라서 물의 기운이 체질에 무척
좋은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중환자이면서도 욕창이 생기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지금껏 아내를 보는 사람마다 장기간 움직이지 못하는
중환자가 피부가 아주 곱고 예쁘다고 칭찬들을 많이 한다.
아내를 나이보다 십년은 젊게 본다.
좁고 아주 불편한 중환자 보호자대기실에서 기다리다 면회시간이 되면 잠시 동안
보살펴 주고 또 대기실에서 24시간 지루하게 기다리는 시간들이 10 여일 계속 되었다.
그동안 아내는 또 한 번의 수술을 하였다.
호흡을 관장하는 신경조직도 출혈피해를 입어 호흡 곤란이 있다고 하여 이번에는
목의 기도를 뚫어 그쪽으로 숨을 쉬게 하는 수술이다.
얼핏 목을 따는 끔직한 수술 같아 조금 망설였지만 다행히 그리 어려운 수술은
아니었다. 입에 산소 호흡기를 물리는 과정에서 앞니 두개가 빠지는 사고도
있었고, 그 많은 중환자의 액세서리들 - 머리의 피 빼는 튜브, 산소호흡기, 코에
뀐 음식물 튜브, 소변 줄 - 중 입에 물리는 호흡기를 없애니 훨씬 나아 보이기도 한다.
아내를 면회할 때면 대부분 깊이 잠든 상태였으나 간혹 눈을 떠서 물끄러미 쳐다
보는 때도 있어 혹시 의식을 찾을 수 있지 않을 까 하고 기대해 본다.
담당의사의 말은 뇌졸중이나 사고 등으로 머리에 출혈이 있는 환자는 뇌수의
교환이 원활치 못하여 뇌의 물을 인위적으로 빼 주는 작업을 하여야 하고,
그래도 자율조절이 안되는 경우에는 뇌의 물을 다른 곳으로 흐르도록 해주는
영구적인 시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다행히 아내는 물 처리만은 원활하게 하고 있어 그 시술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10 여일 뒤 담당의사가 크게 선심을 쓴다. 중환자실중에서 보호자가 24시간
간병을 하는 별실로 아내를 옮겨 준다고 한다. 이제 뇌의 출혈도 어느 정도 제거
되었고 환자상태가 많이 안정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보호자가 직접 환자를
관리하라는 것이다.
듣던 중 제일 반가운 말이다. 아내를 보기위해 지루하게 기다려야 하기도 하지만
면회를 가보면 내가 지루하게 기다리는 그 긴 시간동안 간호사들이 과연 내
아내에게 얼마나 신경을 쓰며 보살펴 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다.
별실에는 이미 다른 환자가 다섯이나 있다. 그들은 모두 6개월이 지났고 어떤
이는 2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 보호자들은 오랫동안 간병을 해 왔기에 환자를
보살피는 것이 상당한 수준이었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기 시작 한다.
그 병실 최고참은 황씨아저씨로 불리는 사람이다. 40대이며 산업현장에서 추락
하여 머리와 목뼈를 다쳤다는데 2년이 훨씬 넘었고, 아직도 목 윗부분은 완전
정상이지만 목 아랫부분은 완전 마비다.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지만 TV 프로만은 줄줄 외우고 있어 채널 선택권은 거의
황씨아저씨 소관이다. 그러면서 의술이 더 발전하면 자기도 고칠 수 있다고
철저히 믿고 지낸다.
이 사람은 다른 중환자들이 자기보다 훨씬 심각한 것에 자위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두 번째 고참은 귀여운 두 딸을 둔 30초반의 주부다.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에
치어 머리를 크게 다쳤다는데 그동안 수차례 생사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젊은 남편이 하던 일을 접고 1년 넘게 부인의 간병에만 전념하고 있다한다.
그 젊은 남편이 무척 존경스러워진다.
남편의 정성이 하늘에 통해서인지 그 부인은 어느 정도의 섭식(음식물을 씹어
삼키는 것)이 가능하고, 목줄(기도를 뚫어, 호흡하고 그곳으로 가래를 제거
하도록 시술한 기구)을 한손으로 막고 어눌하나마 몇 마디 단어를 말하기도 한다.
세 번째 고참은 60대 할머니로 역시 교통사고 환자다. 머리를 크게 다쳐
두개골을 벗겨낸 머리는 대뇌가 반 밖에 남지 않아 보기 흉하게 꺼져 있다.
의식도 전혀 없고 그저 눈만 떴다 감았다 하며 콧줄(중환자식을 넣어주기 위해
코에 꼽은 튜브)로 영양을 공급 받는다.
두 아들과 며느리가 번갈아 간병을 하는데 참으로 보기 좋은 형제요, 동서들이다.
네 번째 환자는 70대 할아버진데 역시 교통사고 환자다. 옆머리를 다쳐 야구공
크기만큼 옆머리가 꺼져 있다. 이분은 과거의 기억은 멀쩡하나 최근의 기억
창고가 망가졌나 보다.
늘 간병하는 아들과 며느리도 잘 몰라보는 경우가 종종 있고, 바로 옆 침대에
있는 아내를 자기 막내아들이라고 애타게 부르며 껴안으려고 해 놀란 적도 몇 번 있다.
이들 모두 뇌수술을 받았으나 뇌수 처리가 잘 안되어 그 처리를 위한 영구시술을
받아 그 흔적이 불거져 나온 핏줄처럼 보인다.
제일 먼저 배운 것은 병원 용어다. 석션- 환자가 스스로 처리 하지 못하는
가래를 제거해 주는 작업이다. 쉽게 우리말로 ‘가래 빼주기’하면 알아듣기 좋을
텐데 꼭 석션 이라고 어려운 말을 쓴다. 하기는 의사들이 진료 차트에 적는 글은
일부러 담당 간호사외의 일반인이 알아보지 못하게 쓴다고들 하지만.
아내의 차트에 적힌 기호들 중 의식상태를 나타내는 기호도 있다. 간호사가 일정
시간마다 환자를 살펴보고 ‘deep’라고 적거나 또는 그냥 새까만 동그라미 두개를
그리고 간다. 손전등에 반응 하는 눈동자를 보아 판단하는 방법으로 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어느 날 아내가 가늘게 눈을 뜨고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반가워서 나를 알아보겠느냐고 물었더니 눈을 꼭 감는 게 아닌가?
너무도 놀라웠다. 다시 확인해 봐야지. 또 물어 보았다. 정말 내가 누군지 알겠어?
다시 눈을 한참 감아 보인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아내가 의식을 찾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아내와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도 열망했던 아내와의 재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3.시련(試鍊)
아내를 보살피는 일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숨소리를 살펴 기도에 가래가 생겼다고
판단되면 석션 기구를 이용해 빨아내는 일이다.
건강한 사람은 일상적인 활동과 말하는 것 등으로 기도의 가래를 자연스럽게
배출하나 중환자는 본인 스스로는 가래를 소화하지 못한다. 이 일은 환자의 호흡을
편하게 해 주는 일이므로 24시간 내내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밤에도
환자침대에 같이 붙어 있는 보호자 침대(차라리 의자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지만)에
쪼그리고 누워서도 귀는 항시 열어두고 쉬어야 한다. 다음은 환자에게 공급한
물과 음식물의 양, 대소변의 양을 정기적으로 기록하는 일이다. 또한 의사표현을
못하는 환자이기에 항상 얼굴 표정을 살펴 불편한 데가 없는지도 신경 써야한다.
오전 10시에는 병실의 모든 환자가 휠체어를 타고 외출을 한다. 병원 내 물리
치료실에 치료(운동)하러 간다. 그러면 우리만 덩그러니 병실에 남아
‘ 최소한 휠체어라도 탈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생각해 본다.
병실을 옮긴지 며칠 지나자 아내의 상태도 많이 안정 되었다.
이제는 조금 마음의 여유도 생겨 낮 시간동안 친지에게 아내를 맡기고 잠깐씩
나가 고객들을 만나기도 한다. 어찌하던 병원비는 벌어야 하니까.
소변 줄에 달려 있는 소변 통을 비운 뒤 그 양을 적어 놓고 외출하였다.
두어 시간 뒤에 돌아와 보니 아내 침대에 간호사들이 둘러서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아내의 안색은 파랗게 질려있고 무척 괴로운 표정이다. 간호사들도 영문을 모른다고
한다.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소변 통을 보니 비어 있다.
차트에도 아까 적어 놓은 것 외에 다른 기록이 없다. 소변 줄이 막힌 것이다.
간호사가 내 지시에 따라 소변 줄을 바꾸어 꼽자 1리터가 넘는 소변이 나왔다.
그러고 나자 아내는 안색이 다시 돌아오고 편안해진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항시 옆에서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없는 일
들이다. 중환자의 간병은 항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 병실에서 10여일 지나자 원무과에서 또 병실을 옮기란다. 의료보험에서 허용
하는 중환자실 이용기한이 지났으니 일반병실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병실은 환자 수도 많고 또 병실에 드나드는 사람도 많아 안정이 중요한
중환자에게는 적합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한다.
병실을 옮기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내의 표정이 안 좋아 보인다.
기운이 없어 보이고 숨소리도 고르지 않다.
처음에는 병실을 옮겨서 그런가보다 하였으나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간호사에게
혈당 검사를 부탁했다. 머리 출혈이 많았던 사람들에게는 혈당이 급격히 나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어서다.
검사결과 혈당치는 500을 넘어서 ‘HIGH’로만 나타났다. 혈당치가 200이
넘으면 당뇨환자로 분류하고 300이 넘으면 중환자로 본다는데, 500이 넘다니.
급히 내과과장이 와서는 아내를 다시 중환자실로 이송한다. 중환자실로 들어간
지 3시간 뒤 면회시간이 되어 아내에게 가 보니 목에서는 가래가 심하게 끓고
있고 상태는 이송 전보다 더 나빠 보인다. 석션을 하려니 침대 머리맡에 있는
기구가 고장 나서 말을 듣지 않는다. 간호사를 불러 기구가 고장이라고 하니
저쪽 멀리 있는 기구로부터 급히 튜브를 연결한다. 그렇다면 인슐린 한번 주사
하고는 그 3시간 동안 환자를 방치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아내인데 이렇게 소홀히 하다니.
어이가 없고 너무도 화가 나서 담당과장을 불렀다. 머리 수술을 한 환자는 혈당
점검을 당연히 하여야 하는 데 왜 한 달 동안 한번도 혈당 검사를 하지 않았는가?
위급한 중환자라서 급히 중환자실로 옮겼다면서 왜 3시간동안이나 환자를
방치하였는가?
담당과장이 정중히 사과한다. 위급한 환자는 많고 일손은 달려 본의 아니게
소홀하였으니 이해하여 달라고 한다. 당장 아내를 일반 병실로 다시 데려 왔다.
당신들을 못 믿으니 내가 직접 보살피겠다고 하고는.
낮 동안에는 내가 나가서 일을 볼 수 있도록 어머니가 아내를 간병하셨다.
그러나 연로하신 몸으로 중환자를 돌보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더욱이 아내가 쓰러져 오랫동안 혼자 있었기에 상황이 더 안 좋아 진 것으로
아시는 어머니께서는 당신이 집을 떠나 있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자책을 많이
하신다. 어머니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지시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여동생에게 어머니를 모셔가서 한동안 요양을 하시게 하였다.
며칠 뒤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여러 가지 종합검사결과 어머니는
대장암 말기이며, 이미 여러 곳으로 전이 되어 아무런 손을 써 볼 수도 없고,
앞으로 3개월을 못 넘기실 거라 한다.
하늘이 원망스럽다. 6.25때 남편과 아들 하나를 여의고 오직 남은 두 남매만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내하신 어머니께 왜 이런 참기 힘든 고통을 내리시는가?
그 숱한 고난의 세월이 가고, 이제 겨우, 어머니 손으로 건강하게 잘 키운
다섯 손주가 좋은 짝들을 만나 오순도순 재미있게 사는 걸 보시는,
행복한 나날들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데.
어머니는 부천의 병원에 입원하시고 여동생이 간병을 맡았다.
시간을 내어 어머니를 뵈러 그 병원을 찾는다. 어머니는 많이 밝아지신 얼굴로
며느리 걱정만 하신다. 당신의 병세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모르신다.
어머니 걱정을 덜어 드리려고 일부러 희망적인 말씀만 드리고 돌아서 나온다.
병원 앞 커다란 공원을 가로 질러 버스터미널로 걸어가는 동안 내내 어머니는
병실 창문에 매달려 안쓰러운 아들의 뒷모습을 내려다보며 손을 내 저으신다.
어서 가 보라고.
마음속으로는 우시나 보다.
눈물을 감추려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잿빛 겨울하늘이 너무도 무겁고 우울하다.
4.효녀(孝女)
어느덧 병실 창밖의 가로수가 낙엽을 다 털어 버리고 앙상한 가지만 벌리고 서 있다.
아내 바로 옆 침대에는 30대의 전직 교사가 역시 중풍으로 고생하고 있다.
낮에는 간병사 아주머니가 돌보고 저녁이면 교편생활을 하는 부인이 와서 간병
한다. 밤새 간병하고 아침에 출근 하는 부인을 보면서 그들의 애틋한 사랑에
가슴이 아려온다. 아직 아이도 없다는데.
의료보험 제도상 장기 입원환자는 병원의 입원료가 삭감되기 때문에 한 달
이상을 계속하여 입원할 수가 없단다. 그래서 한 달이 되기 전에 일단 퇴원
하였다가 며칠 뒤 다시 입원을 반복하는, 그런 아주 불편한 방법으로 3년이
넘도록 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이 환자는 전신이 마비되고 의식도
불안정하여 이송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승강기가 없는 아파트 5층이 집이라서
오르내릴 때마다 여간 고생이 심한 것이 아닌 가 본데.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가 어디서부터인가 많이 잘 못되었다고 생각된다.
혹시 아내도 저런 형편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제는 아내의 혈당도 수습되어 정상치로 회복 되었고 조금씩이나마 사람들을
알아보아 아는 얼굴이면 웃음도 보여주곤 한다.
다른 사람의 말도 조금은 알아듣는 것도 같다.
큰딸이 직장을 겨우 그만 두고 내려와 아내 간병에 합류했다.
우선 내 식사 문제도 해결 되었고 또 밤 간병을 교대로 할 수 있어 훨씬 힘을
덜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낮 시간동안 마음 놓고 내 일을 볼 수 있고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상의할 상대가 생겼으니 무척이나 든든하다. 전신이 축 늘어지는
60킬로가 넘는 아내 몸을 닦아 주자면 남자인 나도 힘든데, 딸아이는 처음에는
서툴러 힘들게 하더니 차차 요령이 생겨 이제는 나보다도 더 능숙하다.
제 엄마에 대한 정성이 힘든 일도 쉽게 할 수 있게 하나보다.
병실안 모든 사람에게 상냥하게 대해 칭찬이 자자하니 내 마음도 뿌듯하다.
이제는 큰딸이 있어서, 또 토요일이면 아들과 작은딸이 어미를 찾아오기에,
나는 일요일이면 내 어머니를 뵈러 간다.
어머니의 증세는 겉보기보다 훨씬 심각하다. 대장은 종양덩어리로 이미 그
기능을 잃었고, 십이지장의 종양덩어리와 대장의 종양덩어리가 맞붙어 섭취한
음식물이 소장을 거치지 않고 대장으로 흐르기 때문에 거의 영양섭취를 못한다.
따라서 입으로 드시는 것 보다는 주사영양제로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는 상태이다.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겠지만 안색은 오히려 편해 보이신다.
오랜 기간 그 많은 고통들을 혼자 감내해 오신 때문인지,
주위사람에게 걱정을 주지 않기 위해서인지,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신다.
이런 어머니 곁에서 단 하룻밤도 잘 수 없는 내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다.
어머니는 얼마나 바라실 텐데.
그렇게 시간은 흘러 아내와 함께 한 병원생활이 벌써 3개월이나 되었고 어느덧
창밖에는 눈발이 비친다.
매일 아침 과장 회진시간이면 모든 환자가 긴장한다. 과장이 매우 아프게 환자들을
꼬집어 비틀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자극을 주어 그 반응을 살피기 위함이고
신경의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던가.
그렇다면 한방 침을 시술하면 어떠냐고 물어 보았다. 그것도 좋다고 한다.
그것이 도움이 된다면 서둘러 침을 맞게 해야지 하고 병원을 옮겼다.
한방 시술을 겸하는 병원이다. 그 병원에 입원하여 침을 맞기 시작했다.
아울러 물리치료사가 병실에 와서 관절을 풀어주는 치료도 받기 시작했다.
물리치료사는 가능하다면 치료기구가 많이 있는 치료실에 내려와 다른 기구들을
이용하는 치료도 함께 받는 게 좋겠다고 한다.
다행히도 주변 친구들이 휠체어를 선물해 주었다.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는
환자를 위한 특수 휠체어라서 무척이나 비싼 것인데도.
어렵게 어렵게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 보았다.
그날은 성탄 전야인데 눈이 많이 오는 날이었다. 아내는 전에도 눈 오는 것을
무척 좋아 했었기에 휠체어를 밀고 병원 밖에 나가 눈을 맞게 해 주었더니 무척
이나 좋아한다. 밤바람이 차서 오랜 시간 있지는 못했지만 아내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에 나도 흐뭇해진다.
물리치료실에는 물 안마 침대가 있다. 아내가 제일 좋아 하는 기구이다.
휠체어에서 침대로, 침대에서 휠체어로 아내를 들어 옮기려면 무척 힘들지만
아내가 좋아 하는 것이기에 마다않고 한다. 아마도 등이 가렵거나 아파도 아무
말 못하다가 물 안마가 시원하니까 좋아 하나보다.
어느 환자의 말이 자기가 말을 못 할 때 가장 괴로웠든 것은 휠체어에 오래
앉아 있으면 꼬리뼈가 너무 아팠지만 그 표현을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참았다고 한다.
당장 휠체어에 바람방석을 깔아 주었다. 말은 못하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내가 들어간 병실에는 장기간 입원하고 있는 환자가 몇 있다.
아내 바로 옆 침대의 30대 주부는 첫 아이를 낳고 심장에 문제가 생겨 수술
받다가 잘못되어 뇌가 마비된 환자다. 아주 예쁘고 귀엽게 생겼는데 남자만
보면 운다. 남편 생각이 나서 그러는 거라고 한다. 하지만 아내가 입원해 있는
몇 달 동안 그녀 남편이 온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친정어머니가 밤낮으로 간병을 하고 있다.
아내 건너편 침대에는 90대 할머니가 계시는데 아들 4형제 중 둘째 아들 내외만
매일 저녁 30분 정도씩 들려 볼 뿐(간병이 아니고 문병 오는 거라 생각되지만),
24시간 간병사가 돌보고 있다. 몇 달 전 교통사고로 골반 뼈에 금이 갔다지만
겉으로 보아 다 나은 것 같은데도 퇴원을 안 한다.
알고 보니 자녀들이 서로 모시기 싫어 퇴원을 겁내고 있고,
할머니 또한 병원에 있는 것이 더 편해서 그런 것 같다.
먼저 병원의 중환자 가족들과 이들과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느껴진다.
그 후에도 많은 자녀를 둔 노인 환자들이
오히려 자녀들에게 외면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하루는 딸아이가 엄마의 중환자식이 잘못된 것 같다고 한다. 병원에 오면서,
전에 혈당 때문에 문제가 있었으니 당분이 없는 중환자식으로 해 달라고
특별히 부탁하였는데, 일반 중환자식이 나온다고 한다.
담당의사에게 물어 보았더니 아무 상관이 없다는 대꾸를 한다. 혈당이 높았던
환자에게 일반 중환자식을 먹여도 되느냐고 따졌더니, 그러면 내일부터 당분
없는 중환자식으로 바꿔 주겠단다.
이런 무책임한 의사가 있는가? 우리나라 의사들은 자기 권위만 세우려고 하지
환자나 가족의 걱정은 나 몰라라 한다는 말이 맞는다고 생각된다.
아내가 이제는 사람을 많이 알아보고 말도 조금씩 알아듣는다. 석션을 하려면
손바닥으로 가슴의 폐 쪽을 세게 쳐 준다. 과거에 중환자 생활을 해 본 친구가
면회 와서는 그것이 하도 괴로웠기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그 간호사부터 패
주려고 했다는 말을 하자 아내가 소리는 내지 못하지만 입을 크게 벌리고 웃어댄다.
아내도 동감한다는 뜻이리라.
아내의 의식이 이만큼이라도 회복된 것은 전적으로 딸아이 덕분이다. 하루 종일
엄마에게 이야기 한다. 과거의 기억을 시험해 보려고 옛날 일들도 자꾸만 물어본다.
딸아이가 점점 힘들어하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하루 종일 엄마를 혼자
보살피고, 저녁에는 집에 와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꾸려나가랴,
매일 매일이 힘든 생활이다.
더욱이 나와 교대로 하루걸러 병원에서 자고, 내 아침이나 저녁을 차려 놓고는
다시 병원에 와서 교대하고. 그 힘든 일과 속에서도 끊임없이 제 엄마의 의식을
일깨우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남들처럼 간병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낮 동안만 하는 일인데도
간병인아줌마가 와서 하루 이틀 해 보고는 도저히 힘들어 못하겠다고 그만 둔다.
세 번째 간병인에서야 몸은 좀 가냘 퍼 보이지만 노련한 간병사를 만날 수 있었다.
아내를 다루는 솜씨와 정성이 만족스럽다. 병원에서 퇴원하게 되면 집에 따라
와서 도와달라고 미리 앞날도 부탁했다.
어느덧 설날이 다가왔다.
아내에게 집에 가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눈을 꼭 감아 보인다.
그래, 우리민족은 섣달그믐은 자기 집에서 보내는 게 예로부터의 관습이지
생각하여 병원으로부터 특별외출 허가를 받았다.
집에 온 아내는 그렇게 좋아 할 수가 없다.
하긴 몇 달 만에 찾아온 집인가?
처음 입원하여 의사로부터 상태를 들었을 때에는 영영 집에 오지 못하고 병원
생활만 하다가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는데.
이틀 밤을 자고 다시 병원엘 갔다. 이제는 별 탈 없이 집에서 지낼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서서히 병원생활을 정리하고 퇴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의 한의사 침은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해서 이제는 한의사도 신뢰를 잃은 터이다.
그러던 중 콧줄 사건이 터졌다.
아내의 액세서리들(콧줄, 목줄, 소변줄)은 2주마다 교체한다.
그런데 어제 교체한 콧줄 안에 이상한 부유물이 뜬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재활용품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재활용품이라니...
그러면 아내에게서 빼낸 콧줄을 다시 아내에게 사용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당황하여
의사를 불러온다. 의사 말이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위해 빼낸 콧줄을 소독하여
다시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것이 아내가 사용했던 것이니 안심하라고 한다.
아내에게서 빼낸 것이라고 푯말을 붙이는 것도 아닌데 억지를 부리는 거다.
그 물건이 그리 비싼 것도 아닌데 얼마나 아끼려고 억지를 부리면서 까지 재활용하는가?
의사와 병원에 대한 믿음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이 병원의 다른 의료품도 모두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되어 다음날 바로 퇴원하였다.
5.서광(曙光)
어머니의 건강도 어느 정도 회복되어서 그 병원에서 일시 퇴원하시어 집에 들르셨다.
어머니는 당신의 병환보다도 며느리의 안쓰러움에 더 목메어 하신다.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들 끼리, 어머니께서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아내가 알아들었었는지, 어머니가 오시자마자 고부간에
소리는 내지 못하면서 얼마나 눈물을 쏟는지, 함께 있던 가족 모두 눈물을
훔치느라 한동안 숙연하였다.
아직은 어머니를 같이 모시고 있을 수 없어 며칠 뒤 다시 입원하러 올라 가셨다.
아내는 별다른 몸의 이상은 없으나, 그 액세서리들은 일정기간마다 교체하여야
하므로 부득이 매주 병원에 가야한다.
이 액세서리들을 줄이기 위해 다시 다른 병원에 입원하였다.
그 병원만이 콧줄을 뱃줄(배에다 위로 직접 튜브를 꽂아 그리로 음식물을
공급하는 반영구적인 시술)로 바꾸는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입원하여 몇 가지 검사를 거친 다음 일주일 뒤 뱃줄 시술을 마쳤다.
코에 늘어져 있던 튜브를 빼내고 나니 아내의 모습이 한결 나아 보인다.
집에서 요양하기 위해서는 아내의 건강상태를 두루 점검할 필요가 있어 각과의
검진을 받아 보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또 새로운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비뇨기과에서 담당의사가 소변 줄을 끼운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묻기에,
반년이 넘었다고 하였더니, 깜짝 놀라면서 소변 줄은 몇 주간 정도는 어쩔 수
없어도 그렇게 장기간 하고 있으면 배뇨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당연하리라. 방광도 소변을 담고 있는 기능이 필요 없어 줄어들 것이고,
소변을 참는 괄약근도 그 기능을 못하니 많이 퇴보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도대체 그런 기초적인 것도 고려하지 않다니...
종합병원에서는 각 담당과장 간 치료 협조가 전혀 안되는 것 같다.
바로 그것도 빼냈다.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소변 통 마저 떼어 내고 나니
조금씩 사람 꼴을 찾아가는 것 같다.
이제 목줄만 빼내면 된다. 그러면 퇴원하고 나서 병원을 자주 들락거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의사와 상담하니 펄쩍 뛴다. 아내는 호흡을 관장하는 신경
계통이 큰 피해를 입어 만일 목줄을 막으면 호흡곤란으로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위험하다는데 어쩌겠는가?
달포 뒤 그 병원에서도 퇴원하여 이제는 집에서만 요양하기로 결정했다.
병원 앞 목련꽃은 거의 지고 무심천변에는 벚꽃이 흐드러진 날, 퇴원하면서
아내가 좋아하던 벚꽃을 보여 주려 무심천변을 한바퀴 돈다.
아내는 좋아하기 보다는 화사한 봄날의 햇빛이 부담스러운지 눈을 가늘게 뜨고,
북적이는 차와 사람들이 낯 설은 것처럼 피곤한 표정을 짓는다.
약품냄새가 배어 있는 병원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자연의 바람과 햇살,
시끄럽고 어지러운 차와 사람들은 당연히 많은 거부감을 줄 것이다.
퇴원하고 며칠 지났을 때 평소 친분이 있는 분이 수경침 이라는 침이 있는데
맞아 볼 것을 권유한다.
수경침 이라는 이름이 낯설었지만 그 상황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기에
무료로 시술해 준다는 곳을 찾아갔다. 침에 대한 대강의 설명을 들은 뒤, 아내의
체질을 판별하고 손가락에 침을 맞았다.
매일 침을 맞으러 오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가 한번 움직이려면
여간 번거롭고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어려운 형편을 설명하고 집에서
시술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 보았다. 몇 가지 주의사항과 함께 선생님께서 침
놓는 곳이 표시된 그림을 주면서 그대로 침을 놓으면 된다고 한다.
덧붙여 수경침 교육이 며칠 뒤에 시작되니 관심이 있으면 배우라고 하신다.
어떠한 침인가 궁금하던 차에 배우기로 했다.
배운 대로 매일 아내에게 침을 놓으면서 강의를 듣는다.
강의가 진행될수록 흥미가 솟는다.
침을 맞으면서 아내의 상태가 조금씩 좋아 지는 것 같다.
엄마의 기능들을 되살리려는 딸의 꾸준한 노력과, 소리는 내지 못하지만 말을
해 보려고 딸아이를 따라 입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전에 마비되었던 왼팔을
조금씩 움직여 보이기도 하는, 아내의 노력 등이 어우러진 결과이리라.
한 달 반에 걸친 교육을 마친 후, 좀더 배우기 위해서 봉사반에 들어갔다.
다른 봉사자들은 거의 일주일에 하루씩만 나와 봉사를 하지만,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욕심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가서 환자들과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공부를 한다.
이제는 집안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게 되었으니 어머니를 모셔 와야겠다.
어머니 병환은 병원에서 더 이상의 처치가 필요 없고 한달에 한번 정도씩 영양
상태를 검사하여 영양제를 주사하여 드리면 될 뿐 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수경침의 효능을 믿게 되었고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께도 침을
놓아드리는 게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수경침을 맞고 점차 좋아지는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이 우연히 침을 맞으러 왔다가 아파트 내에 소문을 내었다.
매일 저녁이면 그분 집에 아픈 사람들이 모여 나에게 침을 놓아 달라고 성화다.
그러나 싫지 않다.
다른 분들의 아픔을 덜어 줄 수 있는데, 내가 조금 피곤하면 어떠랴.
몸이 좋아진 할머니들이 가끔씩 집에 조그만 마음을 담아 오신다.
어느 날 집에 온 아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딸아이가
‘아빠는 우리 동네 허준’이라고 대답한다.
정말 그 분처럼 병마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동네에 사는 한 아주머니는 선천적으로 냄새를 맡지 못한단다.
그 아주머니는 가끔씩 자기 집에는 성한 냄비가 없다며 농담을 한다.
(요리하다 냄비가 타도 타는 내를 맡지 못해)
침을 맞기 시작한지 두어 달 뒤부터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다만 역한 냄새를 잘
맡게는 되었지만 그것이 무슨 냄새인지 구분을 못하는 정도라고 한다.
수경침을 더 깊이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 같은 병실에 있던 장기 환자 보호자들에게도 수경침을 소개하였다.
어머니께 침을 놓기 시작한지 두어 달 되어서이다. 어머니는 통증 때문에 거의
누워 계시고 화장실 정도만 드나드실 뿐, 눈이 침침하다고 TV도 안 보시는데,
그날은 바느질을 하고 계신다. 깜짝 놀라 바늘 짬이 잘 보이느냐고 물으니 잘
보여서 실도 꿰었다고 하신다. 켜져 있는 TV 의 자막을 가리키자 줄줄 읽으신다.
아! 수경침이 어머니 병환에 이렇게 좋은가?
그 뒤로 집안의 가벼운 일은 많이 도와주신다. 딸아이는 할머니를 위해 일부러
가벼운 일을 자꾸 할머니께 맡긴다. 가벼운 운동이 할머니께 더 좋을 테니까.
아내의 목줄을 빼내기 위한 시도를 한다. 매일 한 두 시간씩 목줄을 막고 코를
통해 숨을 쉬도록 하는 훈련이다. 점차 코를 통해 숨쉬는 시간을 늘려갔다.
하루 종일 코로만 숨쉬는 것도 점차 가능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 아무 문제없이
코로만 숨을 쉬는 것이 가능해지자 의사에게 목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의사는 반대하지만 내 고집대로 목줄마저도 빼 냈다.
이제 아내는 그 볼 꼴 사나웠던 모든 액세서리들을 다 떼어내고 홀가분한 몸이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검진 겸 약을 타러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을 찾는다.
담당의사는 아내의 좋아지는 상태에 의아해 하면서도 전과 똑 같은 약을 처방한다.
그 처방 중에는 뇌를 마비시키는 약도 들어 있다. 뇌졸중을 겪은 환자는 간질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하여 그를 예방하기 위한 처방이란다.
그 약의 효능을 알아보니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는 최대량이 하루 여섯 알인데
아내에게는 그 최대량을 처방하고 있었다.
그 약을 점차 줄여 보기로 했다. 물론 의사는 반대할 테니까 알리지 않았다.
약을 조금씩 줄여 보았는데도 아내에게는 별 이상이 없다. 하루 한 알씩 만 먹고도
아무 이상이 없게 된 두 달 뒤, 의사에게 그간의 과정을 설명하니 의사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 약은 완전히 빼기로 합의 했다.
그 약을 많이 먹여서 아내의 뇌기능 회복에 방해가 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어머니와 아내의 병세가 좋아지는 것은 모두 수경침이 보여주는 효과이리라.
놀라운 진전이다. 더군다나 양, 한방 모두 포기한 중풍환자가 아닌가?
꾸준한 정성으로 아내에게 시술하면 앞으로도 더욱 좋아 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언젠가는,
정말로 믿어지지 않게,
아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겠지.
지난 30여 년간 내게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그 한 마디. “당신 미워.”하며...
6.귀천(歸天)
어머니는 병원에 계시는 동안 천주교신자인 동생의 선교로 대세를 받으셨다.
동생이 나에게도 어서 세례를 받아 어머니가 성체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성화를 한다.
날씨가 좋아 아내에게 바깥바람을 쏘여 주려고 휠체어에 태워 산책하다가
가까이 있는 성당에 들렸다.
신부님이 반가워하며 아내의 휠체어를 직접 밀고 성당 안에 들어가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 너무도 고맙고, 몸과 마음이 무척 괴로웠던 시간들을 겪으면서
어디엔가 기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터라 신부님에게 바로 교리공부를
하겠다고 신청했다.
내가 항상 밝은 얼굴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며,
내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나는 농담으로 답한다.
‘나처럼 15층 꼭대기에서 살아. 그러면 올려다 볼 건 없고 모든 것을 내려다
보기만 하니 내가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 되지 않아?’
병원생활 중 아내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많이 보았고, 우리 주변에서 나 보다
더 고생하는 사람, 더 고민 많은 사람, 더 외로운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그래도 이만큼 견딜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면 모든
것이 행복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모든 것이 내 생각 나름이다. -
그렇게 어머니와 아내에게 침을 놓으며, 동네 사람들에게 또 성당 봉사회에서
침을 놓으며, 내 일터로 또 내 주위 사람들과도 어울리며 돌다보니 세월도 같이
따라 돌아 어느덧 다시 봄이 되었다.
아내는 처음 예상하였던 것 보다 많은 발전을 보여 준다.
이제는 사람들을 거의 알아보고 남들이 하는 말도 거의 알아듣는 것 같다.
아이들이 와서 저희들끼리 우스개 소리를 하면 알아듣고 따라 웃는다.
흐느끼듯이 소리 내어 웃는다.
등을 약간 기대어 책상다리를 하여 앉혀 놓으면 제법 중심을 잡고 견디며 고개를
좌우로 돌리거나 끄덕일 줄도 안다. 무엇을 물어 볼 때 눈으로만 좋다 싫다를
나타내었으나 이제는 고갯짓으로도 나타낸다.
팔 다리의 신경도 많이 살아나는지 침을 놓을 때면 아프다고 팔이 도망가고,
발바닥을 긁어주면 간지러워하며 무릎을 굽혀 피하려고 한다.
피부는 윤기가 돌고 굳어진 관절도 없다. 다만 아직도 가끔씩 근육이 경직되고,
섭식(음식을 씹어 삼키는 일)기능과 말하는 기능이 잘 안되는 게 흠이다.
아마 그쪽의 신경조직이 많은 피해를 입었나 보다.
또 한 가지는 기억과 판단력이다. 과거의 기억창고는 그런대로 남아 있으나
이를 꺼내오거나 집어넣는데 약간의 장애가 있는 것 같다. 딸아이가 구구단을
부르면 소리는 못 내지만 입 모양으로 답을 맞힌다. 내 옛날 사진들도 잘 알아본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들을 기억창고로 저장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조금 전에 한 일도 기억을 못하는 것 같다.
이러한 것들은 멀쩡하던 뇌세포가 뇌수술 과정에 피해를 입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하튼 생명이 극히 위태롭지 않은 이상 뇌수술은 피해야 할 것이다.
가끔 병원에 갈 때 담당의사에게 인사하라고 하면 고개를 약간 까딱한다.
교수는 자지러지게 놀라면서도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하려 애쓴다.
그의 판단으로는 아내의 상태는 식물인간이어야 하니까.
중환자에게 처방하는 병원 영양식은 무척이나 비싸다. 퇴원 뒤에도 계속 그
중환자식을 먹였으나 어느 날 자세히 알아보니 일반 시중에서 파는 베지밀과
똑 같은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격은 5분의 1이면 되고.
그로부터 아내에게는 베지밀 200 CC에 생식 반포, 각종 곡식가루로 된 선식
150 CC를 섞어 매 끼니 때마다 400 CC씩 하루 세 끼를 준다.
병원에 가 영양상태를 점검하여 보면 부족한 영양소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온다.
아내는 아직 대,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아니 말로 표현을 못한다. 그래서 항상
기저귀를 침대에 깔아 주고 가끔씩 살펴보아 기저귀를 갈아 주면된다. 하루 2~3장이면 된다.
전신이 마비된 환자들은 얼굴을 누가 만지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킨십( 서로 살을 맞대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무엇이 얼굴에 닿으면 무의식적으로 얼굴의 모든 근육이 긴장하고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따라서 입으로 무얼 먹게 하려면 먼저 이 거부반응부터 없애야 한다.
가장 먼 곳인 손부터 꼭꼭 주물러 주기 시작하여, 그다음 팔로, 어깨로, 목으로,
얼굴로, 가장 거부반응이 심한 곳인 인중(윗입술 가운데인 코 밑)을 가볍게 자극
하여 주면서 긴장을 풀어주는 훈련을 반복한다.
언젠가는 입으로 먹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아내의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는데 반해 어머니는 이제 너무 기력이 쇠 하신 것 같다.
석 달을 못 넘기실 거라 했는데 한 해 하고도 반이 더 지났다.
가까운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의사선생님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지만
아무래도 더 이상 버티기는 버거우신가 보다.
아버지 어머니가 나란히 서서 찍은, 60년이 훨씬 넘은 사진을 모셔 놓고 밤마다
아버지께 기도한다.
‘어머니가 편안히 아버지 곁으로 가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하고.
마지막 사흘을 같이 밤새우고 나니 어머니께서 더 오래 견디실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급히 동생과 아이들에게 빨리 오라고 연락했다.
어머니 자손들이 모두 모이자 기다리셨다는 듯이 조용히 하늘나라로 떠나신다.
아버지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셨나 보다.
어머니 장례식장에 뜻밖의 손님이 오셨다. 사실 그동안 나는 마음의 갈등을
이기지 못해 교리공부를 포기하고 있었는데 신부님이 오신 것이다.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 주시러.
어머니가 떠나신 후 외톨이가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허전하고,
다시 어디엔가 기대고 싶던 차라 신부님의 부르심에 따라 교리공부를 마치기로 한다.
이제는 나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나라로 따라갈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세례를 받는 날 나를 적극적으로 하느님께 인도한 한 자매님이 귀띔해 준다.
하느님께서는 첫 번째 소원은 꼭 들어 주시니 소원을 빌어 보라고.
아내의 기적을 빌까? 아니다. 아내의 기적은 내 정성으로 이루어 내야 한다.
그것이 아내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니까.
세례성사 내내 어머니 영혼이 하늘나라에서나마 평안하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간구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먼저 간 동생, 이렇게 세 식구가 하늘나라
에서 평안하게 지내리라 믿고 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맺는 글
앞을 못 보는 사람이 길을 가다 발을 잘 못 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떨어지다 간신히 나뭇가지 하나를 잡고 매달려서는 ‘사람 살리라’고 소리 지른다.
낭떠러지 위를 가던 스님이 보고 ‘그 손을 놓으시오’ 한다.
바로 발밑이 평지이니까.
그러나 앞을 못 보는 우리는 손을 놓으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줄 알고
죽어라 잡고 놓지 못합니다.
아주 힘들고 괴로울 때는 그 것들을 잡고만 있지 말고 놓아 털어버리는,
마음을 텅 비우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은 남의 삶을 부러워하고 탐내면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가운데서 자연스레 느끼는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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