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평온한 저녁을 맞이한 밤이었습니다. 저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좋아해서 BBC earth라는 채널을 자주 봅니다. 그날 저녁도 비비시 어스를 보는데 친구들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뉴스 한번 보라고요. 잠들려고 준비하다 깜짝 놀라 뉴스를 봤습니다. 비상계엄령 선포? 설마설마했던 소설같은 이야기가 지금 제 눈앞에서 황당하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인 초등학교 5학년, 신문과 뉴스에서 들었던 계엄령이라는 말이 지금 현재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온갖 걱정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러다 정말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닌지. 대통령의 입에서 일거에 척결과 같은 단어를 듣는 순간, 그의 말속에 숨어 있는 무서운 증오와 배척의 살기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포고령에서 금지와 연행, 처단과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올 때, 군인들이 지금 전면에 등장하는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마도 그날 밤에 잠들지 않았던 모든 사람들은 비슷한 마음이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저 역시도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걱정과 우려 속에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에 그렇게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국가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정치공동체를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요?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회교리를 좀 살펴보고 싶습니다. 마침 사회교리 주간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양심 때문에 합법적인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 권위는 ‘악을 저지르는 자에게 하느님의 진노를 집행하는’(로마 13,4) 권위일 때만 정당합니다. 사실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사회의 개개인이 있어야만 하고 오랜 전통과 문화가 자락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국가의 권위보다 항상 우선되는 것은 개인의 존엄성과 문화입니다. 개인의 존엄성을 해치는 정치는 절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권위는 인간의 자유를 철저하게 존중하시는 하느님의 통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정치공동체는 구성원 각자의 온전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공동선 달성을 위해 협력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동선은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함으로써 드러납니다. 인간은 항상 국가보다 우선합니다.
권위는 도덕률에 따라야 합니다. 권위가 지니는 모든 존엄은 사회 역사적 기준이 아니라 도덕 질서 안에서 행사됨으로써 비롯됩니다. 그래서 국가 권위는 사람에게 본질적인 가치들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증진해야 합니다. 이 가치들은 개인 것도 아니고 다수의 것도 아니며 국가가 만들어 내거나 변경하거나 파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인정하고 존중하고 증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국가의 권위는 이렇게 인간 본성에 토대를 두고 있고 하느님께서 예정하신 질서에 속하는 것이기에 공동선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고유한 목적을 저버리고 스스로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권력의 명령이 도덕 질서의 요구나 인간의 기본권 또는 복음의 가르침에 위배될 때, 양심에 비추어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사악한 행위에 협력하도록 요청받을 때, 거부해야 합니다. 그러한 거부는 도덕적인 의무인 동시에 인간의 기본권이기도 합니다. 원칙 없는 민주주의는 역사가 증명하듯이 쉽게 공공연하거나 위장된 전체주의로 변하기 쉽습니다.
모든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안정을 빨리 되찾도록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하느님은 사람을 만드셨다면서 왜 양심 이라는 신체 장기? 조직을 빼먹으셨어요? "
직무유기 아니예요? 하고 아들이 묻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강 작가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그것" 이라 했지요.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게 참 힘든 요즘입니다. 더 많이 기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