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작가 장문식(55)씨의 동화세계는 마음의 빛이 반짝이고 있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다 이룰 수 없는 반짝이는 아름다운 문학세계, 생명이 싱싱하게 넘쳐나고 반짝이는 꿈을 지니고 있다.
그는 고요한 사람이다. 있는데도 없는 것 같고, 없다 싶으면 어느 틈엔가 얼굴을 내미는 그런 사람이다. 그의 얼굴을 대하면 온통 ‘해맑은 겸허’ 그것으로 채워져 있다. 걸핏하면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불려서 불쑥 불쑥 내밀기를 좋아하는 세상이지만 그는 언제나 뒤편에 서 있다.
동화가 흔히 잔재주를 부리며 ‘예술성 운운‘의 찬사를 거둬들이려는 기도가 적잖이 나타나는 풍토 속에서도 장문식은 장죽을 길게 물고 앉아 자세를 흐트리지 않는 옛 할아버지처럼 고집스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그의 인간됨 만큼이나 술수가 적은 그의 동화세계는 그만큼 더 큰 기대와 신뢰를 낳게 한다.
“나는 정이 많고 굳센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나면 나는 살아가는 기쁨을 맛보곤 했다. 날마다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들 중에서 내 마음에 머물러 있는 것은 두텁고 따뜻하고 그리고 산처럼 듬직한 것들 뿐이었다. 내가 글쓰는 길에 접어들면서 부터는 줄곧 그런 사람들과 그런 이야기들을 만나려고 쉼없이 방황하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가 약자의 편에서 그들 입장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미미한 존재도 폭력적 힘에 짓밟히지 않기를 바라고, 설령 짓밟히게 되더라도 꿋꿋이 본연의 생명력을 펼쳐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는 곧 현실 질서 속에서의 진실과 정의에 대한 열망이며, 그 바탕에는 현세에 대한 강한 긍정과 사랑의 마음이 있다. 작중인물들이 가지는 흡인력은 이러한 작가정신의 강렬함에서 발생한다.
인물과 배경, 사건은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전체 플롯의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장문식은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를 통해, 한국인의 생활과 풍속, 전통, 가치관, 심성 등을 자연스러운 이야기 구조 속에 탁월하게 녹여내는 성과를 보여준다. 20세기 중반 이후의 한국인의 삶, 특히 한국어린이의 생활과 내면풍경을 그만큼 사실적이고 총체적으로, 또는 진솔하게 그려낸 작가를 찾기란 싑지 않다. 작가적 문제의식과 문학적 감수성, 장인적 기량을 두루 갖춘 후에 이룰 수 있는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어린이들에게도 현대사에 대한 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첫 창작집 ‘신기료 할아버지’는 세계에 대한 환상보다는 긍정적이고 성장 지향적인 자아가 생생하게 살아 있어 그의 작품은 에너지를 갖는다. 그의 작품 주인공들은 대부분 어려운 처지이지만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들로써 세계에 대항해 고통을 겪고 절망할 망정 결코 내적으로 굴복하지 않는다. 또한 나르시시즘적 자기 연민에도 빠지지 않으며, 쉽게 타협하거나 부화뇌동하지 않는 중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물들의 성격에서 장문식의 작품이 힘이 발생한다.
판타지가 아동문학의 특징적 속성임을 고려할 때, 동식물 주인공이 별로 없고 등장인물의 외양에 관계없이 전 작품이 현실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작가의 성향을 보여준다. 의인화 수법을 통해 왜곡된 현실 질서를 보다 명료하게 구성해서 보여줄 뿐, 현실질서를 뛰어넘는 개방적인 상상력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만큼 작가의 관심사는 발을 딛고 사는 실제적 현실세계에 집중되어 있으며, 리얼리즘 작가적 자질이 뚜렷함을 말해준다.
20여년 전에 발표한 동화 '숨쉬는 포탄'은 독자에게 도시화와 물질주의 현대 문명의 병폐를 고발하고, 바람직한 삶의 태도를 깨닫게 한 작품이다. 6․25 때 포탄 하나가 떨어져 땅 속에 묻히게 되었다. 30년이란 세월이 흘러 그 곳은 새 도시의 버스 정류장이 되었다. 새 도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땅 속에서 그것을 잘 알고 있던 포탄은 꼭 한번 호통을 치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 곳에 빌딩을 지으려고 땅을 파는데 포탄이 포크레인 삽날에 찍힌 것이다. 이 때 포탄은 호통을 치듯 터졌다. 불의를 징벌한 것이다.
‘형제’에서는 이만이가 일만이를 경원하는 일상적 도식은 바로 우리들이 포함된 현대인들의 낯두꺼운 치부가 아닐까? 이만이로 하여금 그동안 각질처럼 견고하게 굳어있던 편견의 눈을 뜨게 하고, 참다운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함으로써 따뜻한 인간성의 실체와 만나게 한다.
‘도둑마을‘의 ’약수산의 멧새부부‘는 눈 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해 쉽게 안면을 바꾸는 인간세태를, ’위대한 다리‘는 자신을 객관화 시켜 볼 줄 모르고 자만하는 어리석음을, ’하늘나무‘에서는 참 보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잔꾀를 부리다 진짜 보물을 잃어버리는 천박한 시정을 풍자한다. ’돈 항아리‘ ’회오리바람‘ ’아귀의 슬픔‘ ’소꿉마을’ 등의 작품도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인간적 가치를 상실하는 세태에 대한 경고와 메시지가 들어있다.
그의 작품은 90년대 이후 상징적 은유적 기법의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동시대 현실에 대한 관심은 ‘라테스톤은 알고 있다’ ‘할머니의 보물’ ‘뭉툭이’ ‘멍순이’ 등의 역사적 소재와 ‘나래산’ ‘늙은 당산나무’ ‘은여우 사냥’ 등 환경을 소재로 한 작품, 그리고 ‘하느님의 박수소리’ ‘열쇠 아저씨’ 등 현대인의 이기적인 생활을 다룬 작품 등 다양하다.
그의 다섯번째 작품집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국내 최초로 5.18 당시의 시간과 공간을 소재로 한 동화 ‘멍순이’를 펴냈기 때문이다. 왠지 무겁고 비장한 분위기로 각인돼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문학에서도 포용하기가 쉽지 않을 5.18을 어린이 동화에 과감히 녹여 넣었다는 점에서 매우 이채롭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학생들과 군인들이 밀고 밀리며 대치하고 있는 전남대 정문 앞의 유혈극, 군인들이 학생들을 곤봉으로 두둘겨 패 피를 흘리며 쓰러지면 질질 끌어다 군용트럭에 싣는다. 이를 본 아이들은 꼼짝달싹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만 있을 때 멍순이가 군인들에게 덤벼들어 큰 소리로 꾸짖으며 폭행을 말리려 한다. 하지만 멍순이도 망망이 세례에 쓰러져 군용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이후 18년이 지나 어른이 될 나이에도 멍순이는 마을에 영영 나타나지 않는다. 현재까지 5.18묘역에도 멍순이는 없다고 작품을 끝맺는다. 작가는 여기서 멍순이를 통해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실종자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뭉툭이와 옹이’는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수몰지가 되는 옛 삶터에서 찾아낸 팽나무 뿌리다. 6.25 전쟁때 포탄에 맞아 부러졌는데, 그 파편이 박힌 자리의 상처가 얼마나 오래 가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고장난 시계’는 산자락 오두막에 혼자사는 할머니 얘기다. 처녀때 결혼 날짜까지 받아놓고 식을 올리지 못하고 정신대로 끌려간 한 할머니를 통해 정신대의 한을 어린 세대들이 깨우치게 해준다.
그는 동화란 어린이들에게는 살아있는 동심을 옹호해 아름다운 꿈을 꿈꾸게 하고, 어른들에게는 잃어버린 동심을 회복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문학이라고 말한다. 사실동화일 경우는 물론 어린이의 현실이 중심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단순하고 유치한 일상생활이 아니라, 어린이와 어른이 다같이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인간의 삶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이어야 한다. 우의나 풍자의 수법으로 창작하는 동화도 역시 단순한 의인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안목이나 방향을 암시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동심이란 무엇인가? 그는 쉽게 인간성이라고 말한다. 즉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마음과 행동이다. 지금 우리 인간은 산업화 기계화 정보화로 이어지는 사회변화에 따라 자기도 몰래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다. 자기 이득을 채우기 위해 남을 해치고, 자기 영예를 위해 남을 짓밟고, 자기 행복을 위해 남을 불행하게 하기 일쑤다. 이런 인간 세상에 필요한 것은 인간성이다. 남의 고통에도 아픔을 느끼며, 남의 슬픔에도 눈물을 흘릴줄 알며, 남의 어려움에 선뜻 손 내밀 수 있는 마음이 되살아나야 한다. 이런 마음은 인간이 원래 타고난 것이었는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잃어가고 있다. 인간성 회복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곧 자신을 위한 것이요, 아니 우리 모두의 상생을 위한 것이다.
대부분의 동화들은 인생의 황금기라 말할 수 있는 유년시절에 대한 퇴행적 환상과 해피엔드에 대한 일반적 기대 등에 기대어, 손쉬운 화해의 결말이 도식적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작가들은 누구나 나름대로 영원을 지향하기 마련이고, 작가로서 현상 너머 보편성에 관심을 가짐은 당연한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마모되고 마는 덧없는 것을 쫒기보다 변함 없는 진리와 진실을 응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은 결과가 아닌 삶의 과정과 체험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며, 분명히 있지만 미처 사건이 되지 못하고 말해지지 않은 느낌들을 미세한 언어의 그물로 건져 올려 잡아내는 일이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지금 여기 이순간’을 잡아내는 능력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결 넉넉해진 장문식의 의식과 다양한 관심사가 믿음직스럽다. 어린이를 닮은 정직한 시선과 참된 질서를 소망하는 타고난 아동문학인으로서 작가적 기량이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동화는 어린이가 주 독자이니까 무지, 미성숙, 무비판, 미분화 상태라고 보면 안된다. 작가가 이렇게 오해하고 있을 때 독선과 독자에 대한 기만이 나타난다. 이것은 대개 사실성의 결여로 나타난다. 이것이 또한 저급한 동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치졸이다. 그는 사실성이 결여된 작품을 보면 분노를 느낄 정도로 흥분한다. “독자가 어린이들이라고 우롱하는 것 같아 참기가 어렵다. 생활동화이건 환상동화이건 다 마찬가지다. 누워 침 뱉기이지만 우리나라 아동문학가라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동화라고 써서 발표하는 사람도 있다. 역량 미달이다. 그런 역량으로 어떻게 남을 위한 동화를 쓴다고 무모하게 덤비는지 모르겠다.”며 그는 적어도 독자를 기만하지는 않으려고 늘 되짚어 생각해 본다고 강조한다.
그는 잘못 쓴 동화도 세상을 오염시키는 심각한 공해라고 의미있는 말 한마디를 던진다.
시화전등 참여 문학적 재질 인정받아
'전남수필'창립회원 활동…세종아동문학상등 수상
장문식씨는 1948년 전남 화순군 화순읍에서 출생해 초중고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광주교육대학을 다니면서 시와 소설을 습작하기 시작했고 문학의 밤과 시화전 등에 참여하면서 문학적 재질을 인정 받았다. 70년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첫 부임지인 보성군 산골학교인 명봉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동화창작을 시작했으며 78년 전남대 교육대학원 국어과를 마쳤다. 현재 그는 광주북성중학교 국어과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후 73년 ‘교육자료’지에 수필을 천료 받고, 수필가인 송규호, 김수봉, 김구봉, 김해석씨 등과 함께 ‘전남수필’ 창립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76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형제’가 당선되었고, 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신기료 할아버지’가 당선돼 아동문단에 정식 얼굴을 내밀었다. 82년 전양웅, 김재창, 김옥애, 황일현, 김목씨 등과 함께 동화문학동인 ‘흙담’을 결성 활동했다. 83년 ‘도둑마을’로 전남아동문학가상, 83년 장편 ‘출렁이는 물그림자’로 제13회 한국아동문학상, 91년 ‘누나와 징검다리’로 제24회 세종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제까지 발간한 동화집은 ‘신기료 할아버지’ ‘도둑마을’ ‘누나와 징검다리’ ‘얼룩귀뚜라미의 여행’ ‘돈 항아리’ ‘멍텅구리 편지’, 장편 소년소설로 ‘가슴마다 뜨는 별’ ‘출렁이는 물그림자’ ‘땅에 내린 별’ ‘고물택시와 호랑이’가 있고, 위인전기로 ‘광개토왕’ ‘허준’이 있으며, 일본과 중국에서 번역된 작품으로 ‘도둑마을’ ‘떠나버린 숲’ ‘왕소네 선조’ ‘누나와 징검다리’가 있다.
얼마전 그의 동화가 표절(거의 복사)당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다. 1981년에 출간한 ‘신기료 할아버지’란 동화집 속에 '커지는 배'라는 단편 동화가 들어 있는데 서울에 사는 모 여류 동화작가가 그 작품을 제목만 바꾸어 거의 그대로 복사해 자기 이름으로 아동문학지에 발표도 하고 단행본으로 출간까지 한 일이 있었다. 그는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 심의조정을 의뢰했다.
여기서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 말을 들었다. 하나는 표절자가 이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원로 아동문학가로부터 자기 작품이라고 하여 넘겨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저지르는 자들이 우리나라 아동문학가(더구나 원로)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에 구역질이 났다고 한다. 표절자도 물론 역량 미달이지만 자기 작품이라고 넘겨준 원로 아동문학가는 또한 어떤가? 좋은 말로 해서 역량 미달이지 이건 범죄자다. 결국 표절자는 그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고, 시판 중인 책은 회수 폐기 처분됐지만 이런 상황이 우리 아동문학 문단 일면에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조정 변호사도 유사 작품을 놓고 표절 시비를 판결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복사하다시피 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헛웃음을 쳤다고 한다.
글 ; 이재창 문화부장
사진 ; 김기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