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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행복
수요일이면 종종걸음으로 모여드는 선생님들은 부자입니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이야기 주머니 풀어놓으시고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시선이 머문 곳마다 관계를 맺을 줄 알고 화평을 이루며 사는 법을 알고 계신 선생님들은 복된 어르신들입니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사는 지혜로운 분들입니다.
한 해 동안 선생님들과 함께 하면서 많이 행복 했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글을 쓰시고 안정된 마음 갖기를 힘써 왔던 선생님들에게 큰 박수 보내드립니다.
2014년 12월 17일
한 상남
어머니할머니
겨우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손녀가 나에게 붙여준 호칭이다
엄마가 전화를 받을 때
"어머니할머니야?"
묻는다는 지유
"어머니할머니 어디 계세요?
할머니 유치원 왔습니다"
문 열고 들어서는 손녀는
우리 부부의 살점이다
산책
현관문 나서면
기지개 켜는 다리
바람 숨결 반기는 피부
단숨에 선, 색, 모양 읽어주는 눈
상큼함 들이키는 코
참 고맙다
물소리 새소리 놓치지 않는 귀
가락 뽑아 올리는 성대
새로움 당기는 손
울퉁불퉁 돌길도 마다않는 발바닥
정말 귀하다
걸음 옮길 때마다
녹슨 기억창고 열고 더듬이 곧추세우는
머리에게는
경의를
우주 속에 성큼 들어가
한 점 그림으로 남는 시간
회원 시
김영주
민경관
박미현
박언경
손재원
이재권
임동복
조정자
조선혜
정봉순
하월하
홍성혜
김영주
부활
꽃무리
행복
흘러야 해
젊은 이웃
이별
꿈
통증
기적
늙는다는 건
나는
부활
결혼생활로 접어 둔 날개
퇴화되어 없어져 버렸다
날개를 달고 싶다
다시 날개를 펴고 싶다
4월
햇볕이 따뜻하다
가벼운 차림으로 꽃이 피었을 공원에 간다
어라,
꽃이 피다 만 듯 벌써 시드네
바람은 또 왜 이리 찬거지
몸을 추스르며 깃을 여민다
어라,
게다가 미세먼지에 황사까지
잔인한 4월
꽃무리
흐드러지게 핀 꽃들
바람결에 흔들리더니
자태를 뽐내며 반짝인다
빨간빛 정열
보랏빛 슬픔
노란빛 수줍음
하얀 빛 순결함
여인이 간직한 사랑이야기
행복
아름다움을 볼 줄 알고
느낄 줄 알고
그 아름다움에 추해
미소 지을 수 있다면
흘러야 해
의술이 발달했다
저 세상에 가고 싶어도 못간다
불효가 될까봐
자식들은 살려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린다
몸은 만진창이
녹슬다 못해 삭아가고 있는데
발걸음도 못 떼고
먹고 싸는 일마저도 하루하루 힘겨워
육신 벗어버리고 날고 싶은데
의술이 발달했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사람은 못 낳게 하고
생긴 아이도 낙태한다
자아실현 위해
경제적인 여유를 잃지 않기 위해
남을 위한, 내 핏줄을 위한 희생마저도
감수하지 않기 위해
와야 할 사람들을 못 오게 하고 있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잖아
흘러야 해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와야 한다고
젊은 이웃
아파트 거실 창 앞에
옥탑 방 보인다
가끔은 청년들이 담배도 피우고
이불을 털어 말리기도 하고
비오는 날 낯선 아가씨 비를 맞으며
수영장 청소하듯
반바지에 소매 없는 티셔츠 입고
머리 풀어헤친 채
수영장 청소하듯
대걸레로 박박 민다
젊음이 부럽다
이쁘지도 않고 날씬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이별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수고한 육신
비단이불을 덮어주고
육신에 갇혔던 영혼
훨훨 날아다닐거야
육신은 이승에서
잘했던 못했던 수고했는데
때론 안 좋은 생각도 했지만
자꾸만 좋은 생각으로 바꾸려고 노력했으니
다 살아서 간다
이제 미련없이 간다
꿈
우리는 꿈꾸었다
사랑이 넘치는 꿈을
그 사랑이 넘쳐 이웃에게까지도 전해지기를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미움과 갈등이 차곡차곡 쌓이더니
어느 날 넘쳐흘렀다
그리고
나도 해치고 이웃도 해치고
범죄소식 뉴스를 타고
그 뉴스는 또다시
미움과 갈등을 더 크게 부풀렸다
비난과 욕설이 난무하는 세상
그래도
사랑을 회복하는 것 늦지 않았겠지?
그래서
다시 꿈을 꾼다
사랑이 넘쳐흘러
나도 이웃도 물들 수 있기를
통증
걷는다
허리에 뼈가 서로 부딪힌다
무릎도 뻐근하고
발목은 시큰하다
재생되지 않는 인체조직의 손실
어쩌면
내 삶의 손실을 관절이 대변하나?
그러지 말라고
너무 내어 주기만 하지 말라고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나’의 ‘너’는
자꾸 더 달라고만 할거라고
이젠
시간도 사랑도 체력도 물질도 지키라고
‘너’만 위하지 말고
‘나’도 위해 주라고
기적
이건 기적이야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용서 했잖아
눈이 마주치면 미소 짓고
안녕을 빌어 주잖아
고의는 아니었다고
그들도 그럴 줄 몰랐을 거라고
그렇게 이해했잖아
이건 기적이야
똑같이 갚아주지 않고
더 보태서 해꼬지 하지 않고
눈이 마주치면 미소 짓고
안녕을 빌어주잖아
늙는다는 건
나이가 드니
힘든 걸 견뎌내는 힘 약해져
시설도 더 좋아야하고
난방도 온도를 올려야하고
더운물도 더 쓴다
약값이 늘고
진료비도 치료비도 많아진다
딱딱 들어맞지 않는 일들로
예민해져 짜증나고
걸핏하면
이웃들에게도 더 서운하다
깊이 잠 들지 못해
아침이면
밤새 뻣뻣해진 근육과 관절
일으키는 일 버겁다
젊은 너네 아니?
늙는다는 건
주름이 늘고
목에서 쉰 소리가 나고
걸음이 느려지는
겉으로 보이는 불편함만이
아니라는 걸 알아 줄 수 있겠니?
나는
오늘도 뭔가를 적고 싶다
주제도 마련되어 있지 않고
꼭 하고 싶은 말 딱히 떠오르지 않아도
뭔가를 적고 싶다
세탁기가 돌아가고
스포츠 중계는 들려오는데
손을 움직여
하얀 종이에
사각사각 연필 소리 내고 싶다
민병관
새벽
나
인생
새벽
볼 수 없는 부모님 그립거든
새벽 지하철을 타라
신발 바지 웃옷이 똑같고
자식 향한 눈초리 비슷한
많은 어머니들 졸고 계신다
배낭과 모자 걸음걸이 똑같고
헤어질 때 어정쩡한 인사말 비슷한
아버지들도 끄덕 끄덕 졸고 있는
새벽 지하철
고향이 보인다
나
고통을 이겨낸 얼굴
고통을 기다림으로 바꾼 얼굴
슬픔을 뭉개버린 미소
슬픔을 느끼지 않으려는 온화
나를 이겨낸 보드라운 나
나를 무너뜨린 후 나타나는 나
오늘도
세상 속에 나를 데워내고 있다
인생
젊다거나 늙음이라는 걸 서로 모른 채
옛날 젊은이와 미래의 노인 매일 만난다
대화의 내용은
이렇게 살았지
이렇게 살 거야
미래의 노인 새 길을 찾고
옛 젊은이 지나친 길 되밟는다
맘속에서 오고 가는 길
현실의 길 된다.
찾고 걷고 뛰고 쉬는 시간
박미현
님과 달
오늘 이 시간
시낭송
부화
규방전시장
야외수업
수 놓는 밤
텃밭놀이터 1, 2
님과 달
박미현
음력 7월 15일
하늘 문 열리는 칠월 백중 날
조상님과 대화를 이룰 수 있다하여
천도제 올리는 날
2014년 수퍼달 떠올라 창문 두드리길래
달빛 타고 날아가
고향 동산에 계신 님에게
안부 전한다
아들 딸 다 잘 있고, 귀여운 손자 손녀 이젠 넷 입니다
손자, 손녀 재롱 나만 혼자 보아 미안합니다
할머니 노릇 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님의 생일
분주했던 잔치
해운대 광안리 나들이 추억
지금은 달 저편에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바쁘게 하루가 열린다.
지난 세월 과거로 가버리고
내일은 미래로 미뤄두고
내 인생 칠십 줄 종심의 나이
오늘 이 귀한 하루를 산다
만나는 모든 이가 내일이면 과거이니
바로 이 시간 감사하며 산다.
삶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
힘들어도 기쁘게 오늘을 산다
주위에서 만나는 반가운 분들
행복하고 배려하는 마음 담은
오늘 이 시간
부지런히 선업 쌓고
성실히 주어짐 감사하며
오늘을 산다
시낭송
성당에 다니는 분
절에 다니는 분
교회에 나가는 분
다함께 모여 시속에 빠져들며
시인들이 쓴 글 낭송합니다
시 잘 쓰는 이 닮고 싶고
예쁘고 고마운 마음 표현도 하고 싶고
곱고 장하신 마음 담아
빛깔 나고 맛나는
나의 시
쓰고 읽고 싶습니다.
낙산 홍연암 기도
낙산사 해수관음도량
바닷가 돌 위에 세워진 홍연암
관음화신 홍연새 앉은 자리
해수관음 도량이라
도반들이 가부좌 틀고
관음정근 들어간다.
욕심 내려놓지 못하고
이곳까지 온 것 어찌 알고
처얼썩 처얼썩 마룻바닥 때리며
내려놓으라 한다.
생생한 바람과 함께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으라 한다.
홍연새 와서 귓전에 와 속삭인다.
벗으란다.
앞뒤 가리지 말고
홀랑 벗고 가란다.
내려놓고 벗으니
가볍고 시원하다
그 맘으로 모두 보듬고 살으란다.
부화
독일 마을을 둘러보고
통영 한바퀴 돌아 시골 시누이댁에 들렀다.
닭장 문 삐죽 열리고
한발 들여놓는 순간
파다닥 파다닥 분주한 날개짓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알을 낳았다.
바람이 스치고
삐걱 문 여닫는 소리
번개처럼 알에 금이 갔다
가만히 둥지 들여다보니
금 간 사이로 무언가 꿈틀꿈틀
하얗고 노란 깃털 떨고 있다.
노오란 깃털 보니
삐약삐약 외치며 걷는 병아리 부대 나타난다
규방 전시장
포천 선생님 작업실
새하얀 명주 햇살 좋은 대자연 품에 안았다.
자연 염색한 천
온 들판에 펄럭이며
들판 바람 머금고
고운 빛깔로 물들여진 명주옥사
오색실 감치기 휘감치기로
족두리 조각보 고이댕기
토시 화관 배갯닢 모시발
옥사발 다보 만든다
조각보 만들어 진 명주옥사조각
규방규수 규방마님
옛 그 솜씨
인사동 인사아트 전시장에
주인처럼 앉아있다
야외수업
<시와 에세이>반
야외수업 잘 왔구나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우리 모두 함께 없어
몇 사람이 빠졌느냐
시 없으면 에세이로
노래하며 놀자꾸나
올림픽 공원
장미농원 야외학습
시니어면 어떠하냐
소풍 나온 어린이 맘
이 나이에 야외수업
선후배 눈맞춤에 신나고 기쁘구나
지혜의 눈 함께 뜨고
시와 에세이
읽고 쓰며 실벗뜨락 가꿔보자
수 놓는 밤
잠 오지 않는 밤
나이 칠십 줄에
돋보기 끼고 바늘쌈지 앞에 놓고
금실 은실 오색실 꿰어
새하얀 무명천에 그림 그린다.
한 뜸 한 뜸 수놓아
누구에게 선물할까
나 한 뜸
너 한 뜸
보이지 않는 그림 속 헤매다 보니
들꽃이 핀다
금실 한 올
은실 한 올
누구를 즐겁게 하려는지
수틀에 기쁨의 꽃 가득하다
수놓는 시간은 기도의 시간
부처님 밝은 빛 비춰주시고
관세음 지혜의 손 잡아주신다
텃밭 놀이터 1
봄비가 내린다.
두 손 내밀어 비님 맞았다.
계속해서 내리시어
텃밭에 새싹 보게 해주세요.
땅속에 무얼 감춰 놓고 이렇게 나를 반기느냐고
봄비가 묻는다
가뭄에 목마른 나의 텃밭
흙속에 묻어둔 씨앗들이 걱정이네요
대지 흠뻑 적셔 줄 테니 걱정 말란다.
씨앗들아,
땅이 가슴 열면 얼른 나오거라
싹트고 올라와 햇빛 봐야지
텃밭 놀이터 2
따르릉, 전화소리 미자씨 전화다.
“언니, 밭에 가요”
주말이면 미자씨가 몰고 온 봉고차를 타고 광주 텃밭으로 달린다.
봉고차는 숲 사이로 신나게 달린다.
들녘 햇살은 어찌 저리 눈부신지,
연두빛 벌판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만물이 소생한 씨앗이 트고 튼실한 줄기로 자라고 있으니
마음은 풍성하다.
여름이면 꽃으로, 가을이면 열매로 채워지는 나의 텃밭
텃밭에서 계절을 만끽한다.
자식들은 먼거리를 이동하는 주말 나들이를 말리지만,
나의 텃밭사랑은 5 년 째 이어지고 있다.
마음의 쉼터인 그곳.
텃밭에 나가면 숨이 트인다. 늘푸른 천지를 보며 사계절 속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호미를 들면 구수한 흙냄새 맡고 상쾌한 바람 머리가 맑아진다.
예쁜 미자씨랑 함께 해 더욱 좋다.
송파에서 경기도 광주 텃밭까지 주말이면 함께 차를 타며 이어온 인연도 어느새 5 년. 환한 미소 뒤에 감추었을 슬픔도 있었을터. 은행에 근무하다 명예퇴직 후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대학에 간 두 아이의 뒷바라지에 바빴던 중년의 여인. 텃밭에서 좋은 마음 함께 키웠다.
열심히 사는 미자씨의 호미질을 스케치북에 담고, 밭고랑에는 다음을 기약하는 씨를 뿌려두고 돌아온다. 빠르게 자라는 작물들, 쓰러진 꽃대위로 날아올 나비를 위해서라도 바로 세우고, 돌 의자에 앉아 시 한 수 적어 보기도 하고, 그림도 그려본다.
그려진 풍경들이 잠시 흔들린다. 내 안에 풍경과 스케치에 담은 텃밭 풍경 속에서 미자씨의 부지런한 모습이 겹쳐진다.
다음 주에도 미자씨는 전화 할 것이다.
“언니, 밭에 가요”
박언경
그날
우울증
손자
멸치액젓
한강
민들레홀씨
그리움
언니
고추와 시아버지
눈 온 날 아침
멸치액젓
박언경
이른 봄 생멸치 한 상자
소금에 곰삭혀 놓았다.
돌아오는 겨울 맛깔스런 김장김치
꿈꾸면서 창호지를 깔고 액을 받아 내린다.
똑. 똑. 한 두 방울씩 빨간 진액 고이고
액이 다 빠진 멸치젓갈
개흙 한 부삽으로 남았다.
바다를 먹고 산 멸치는 개흙으로 돌아갔고
나는 바다를 김치통에 넣었다.
나도 너도 결국 흙 한 부삽으로 돌아갈 것을... ...
그날 햇볕 맑고 바람 솔솔 부는 날 가지 호박 도라지 썰어 들고 옥상으로 오른다 겨울반찬이다 한참 고르게 펴고있는데 등 뒤에서 붕욍 붕욍욍 소란스럽다 휙 몸을 돌이키니허락도 없이 추녀 끝에 대궐 같은 집 지어놓은 말벌들이 침입자로 알고 노려본다 아차 싶어 몸을 피하는 순간 이놈들 떼 지어 달려든다 혼비백산하여목을 감싸 쥐고 손사래 치며 계단으로 곤두박질 다행히 물리지는 않았지만 목걸이가 없어졌다 다음날 목걸이도 찾아볼 겸 살금살금 올라가니 그네들 불안했는지 짐 챙겨 이사 갔다 목걸이는 잃어버렸지만 목숨은 건졌다 액땜 했다우울증
가을이 짙물러
비 먹구름 드리워진 날
그녀가 찾아왔다
그녀는 나를 꽁꽁 묶더니
어둠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황망히 서서 마음의 빗장 걸어 잠그고
세상 모든 것들과 벽을친다
저들은 왜 웃을까?
나와는 상관없다
웃음, 행복, 사랑, 희망, 나부랭이들...
하찮고 시시하고 싫다
무기력과 눈물만이 나를 지킨다
엄마 죄송해요, 바빴어요 엄마..
그녀가 짐을 싸더니 황급히 나간다
걸핏하면 찾아오는 미운 그녀
이름은 우울녀
손자
여섯 살 손자 녀석
생애 첫 사춘기란다
뻣대고 말 안듣고 뿔 넷 달린 황소다
어느 한 날 내손을 잡더니
제 방으로 끌고 간다
로봇 레고 등등 만들어 늘어놓고
저는 천재란다
야, 이놈아 네가 천재면 대한민국
모든 아이들 다 천재다
할머니, 이런 것 할 수 있어?
할 말이 없다. 그래 못 한다
그럼 할머니는 뭘 잘해?
옳거니, 응 할머니는 된장, 고추장
맛있는 반찬 잘하거든. 너 먹어봤지?
너 할 수 있어?
이녀석 눈만 꿈뻑꿈뻑 하더니
응, 난 못해
난 쾌재를 불렀다
손자 녀석 코를 납작 눌러줬다
하하하하
한 강
새벽 훤히 밝아오면
집을 나선다
길섶 코스모스
둔덕위에 앙징스런 애기나팔꽃
개미 부지런한 벌
나를 반긴다
집으로 오는 길목에서
강물이 말을 건넨다
앙금 가라앉히고
맑고 맑게 흐르라고
민들레 홀씨
혼잡한 지하철 역사 안
민들레 홀씨 한 놈
기웃 기웃 한가로이 돌아다닌다
아니 네가 있을 곳이 아닌데
손을 뻗어 잡으려 하니
참견마세요
휙 달아난다.
그래 지금은 겨울이기도 하니
공짜로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아침 저녁 피 터지는 출퇴근 전쟁 구경해라
삶에 고단한 아저씨 아주머니 졸고 있는 모습
할머니 할아버지 자리다툼도 보면서
삶을 엿보렴
간혹 늘씬하고 예쁜 언니들도 있으니
친해보렴
재미있을 거야
봄은 분명 올 것이니
햇빛 좋은 날
지상으로 가뿐히 탈출하여 뿌리 내리고
미래를 꿈꾸렴 홀씨야
그리움
그리움은 아름답다
먼 곳에 사는 언니가 그립고
소식 없는 친구가 그립다
타국으로 이민살이 떠난 친지가 그립고
세상을 떠난 피붙이가 그립다
여름에는 겨울이 그립고
겨울에는 봄이 그립다
그리움은 사랑의 고품이다
언니
어릴 적 언니는 나의 언덕이었다.
고희가 훌쩍 지난 지금도 언니 앞에선
철이 있다 없다 한다
너도 이젠 늙었구나
그럼 내 나이가 얼마인데
볼멘 소리 나온다
아, 개똥밭에 굴러다녀도
이승이 저승보다 좋텐다
너 오래 살어
신념인지 위안인지
세월 끝자락 두 사람만 남았다
가슴 저린 언니인데
잘해야지
생각만 앞선다
고추와 시아버지
김장철이 오면 새 애기 힘들다고
고추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시던 시아버님
세상 떠나신지 사십 여 년
철없던 며느리는 그 나이 훌쩍 넘겼다
해맑은 가을날 고추 꼭지 손질하는데
인자하셨던 시아버님 곁에 와 계신다.
얘, 새아가야 힘들지?
눈 온 날 아침
불타는 단풍 본지 얼마나 되었다고
밤사이 조용히 눈이 내렸다
쾌속으로 달리는 세월 속에
나는 뼈가 비어가는 노인
빙판길 생각하니 마음부터 얼어붙는다
눈이 오면 낭만 즐기던 때 어제였는데
손재원
애기똥풀
이른봄의 숲속
떨어진 벚꽃
햇살 안은 진달래꽃
벚꽃
마지막 단풍
그 씨앗
선운사 계곡의 석산
애기 똥풀
손재원
흔한 꽃이라고
눈 맞춤한 지
오래된 애기똥풀꽃.
귀하고
천한 꽃이 어디 있으랴
노오란 꽃을 피우느라
온 에너지를 다 쏟았을
삶의 열정이 오롯이 모여 있다.
익숙한 것에
눈길을 주지 못하는 것이
어디 너 뿐일까?
이른 봄의 숲속
이른 봄
숲속은 싱그럽다
어린 새싹들
숨소리 들려오고
지는 햇살은
어린 새싹들
어루만지며 간지럽힌다
어린 새싹들
작고 귀여운 웃음이
푸른 희망 낳는 이른 봄
떨어진 벚꽃
어여쁜 꽃도
떨어진 꽃잎도
순간의 일
어찌 보면
모든 것은
순간의 연속
순간이 사라지면
또 다른 순간이
그 자리를 메우고
그러면서 세월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무심히 흘러 간다.
햇살 안은 진달래꽃
추억의 꽃,
진달래꽃이
환한 미소로 반기는
숲속으로 접어든다.
나 어릴 적
친구들과 따 먹던
진달래꽃 거기 서 있다
눈물 없고
슬픔 없었던 그 시절,
푸른 하늘 흰구름 친구가 되던
그 시절 뒷동산이 그립다.
해마다
진달래꽃은 피고 지건만
친구들은 간 곳 없고
햇살 안은 진달래꽃
친구 얼굴 되어
환한 미소 보낸다
그 미소로 숲속은
연분홍물결이 일렁인다.
벚꽃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싹튼 희망편지
하이얀 등불 밝힌
어린 꽃들의 봄노래
환한 미소
홀홀히 떨어져
추억을 남기고
봄비 따라 가버린
설익은 사랑
마지막 단풍
마지막 단풍 하나
모두 가버린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위태로이 흔들리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은
세상 사는 이치를
보여 주는 깃대.
찾아오는 생명들을
마다하지 않고
몸을 내어 준 사랑.
햇살 받으니
만신창이 된 몸이
오히려 더 숭고하고 아름답다.
그 씨앗
작은 풀꽃이
이루어 낸
놀라운 결실.
척박한 삶의 터전
남한산성 성벽 위에서
이루어 낸 희망.
목숨과 바꾼
수많은 생명체들의
아직 불려지지 않은 생명노래.
선운사 계곡의 석산
그대 향한 그리움
대지에 붉은 점을 찍다.
오래된 나무 등걸 옆
붉게 타오르는 열정이
켜켜이 쌓여 물들어 있다.
희망 안고
해마다 붉게 피어나건만
올해도 만나지 못하는 애달픔이여!
만나지 못해도
꽃을 피워야 하는 숙명의 붉은 점
선운사 계곡에 비친 제 얼굴 응시하고 있다.
이재권
기약
찬바람 무서워
길 가다가
강원도 가는 길
경포대
탄금대
오늘이 또올까
사월의 보름달
몽당연필
탄천의 잉어야
기약
이재권
꽃 피고 새 울면 만나자던 친구꽃은 피었건만 친구는 오지 않네.새야. 새야지지배배 하여라.네가 울면그리운 내 친구 찾아온다 했단다.
글 쓰는 세상
문틈으로 들여다 본 글 쓰는 세상 별다른 세상이다.볼수록 신기하다.문을 열고 뛰어드니밀림 속에 들어온 발가벗은 나 부끄러워 온 몸이 오싹하다.피부로 스며드는 향 혀에 닫는 맛 보이고
잡히는 것마다 새롭다.자유로워 보이나 지켜야 할 것도 있어실벗뜨락 글 쓰려는 사람들이 모였다.글 쓰는 세상에 발을 담구고삶 나누며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찬바람 무서워
비가 온다어제도 왔는데또 온다나무 끝에 남은 낙엽을 쓸어내리네메주 쑤어 뉘어놓고콩 삶은 물에 고추장 담그는데내일은눈 소식이 있다네나무 끝엔 눈이 살포시 앉을 거고기온 내리고찬바람이 강 하게 불거라는데....
매서운 겨울이 오나보다옷 두껍게 입고 외투 챙겨 겨울 마중 가야겠네찬바람 불지 않으면올 겨울 쉽게 지나갈 텐데찬바람 무서워, 빙판은 더 무서워
길 가다가
길 가다 뒤 돌아 보니높은 산 하나
희미하게 보인다.
저 산을 내가 넘었구나!산 이름“일흔, 돌아보다”
내 곁에 여인은이제 그만 쉬란다
가던 길이라 걷고 싶은데몰래는 갈수 없고
잠시 쉬었다 느림보 걸음으로 살며시 가볼래
강원도 가는 길
산 만나면 굴 뚫고 강 만나면 다리 놓고 높은 곳은 쳐 내리고 낮은 곳을 메우고 넓히고 고루고 포장하여
강원도 가는 길 태어났네.
머 언 산꼭대기에 뭉게구름 걸리고 쭉쭉 뻗은 도로가 산허리를 휘어 감고졸졸 개울물 속마음 속삭이고 캄캄한 밤하늘엔 은하수 물결치네.낮이나 밤이나 아름다운 강원도 길고속 기찻길 뚫리면 멀었던 강원도 내 곁에 둘 거야
경포대
밀려오고 쓸려가는 바닷물 따라
파도에 젖은 모래알 밟고
살금살금 걷는다.파도 따라 뛰놀며
날 잡아라 날 잡아라
모랫바닥에 엎어지고 모래알 움켜잡고.가는 나이 아쉬운지 옷 입은 채 바닷물에 첨벙첨벙. 바다 냄새 솔향기 뒤섞인 경포대달 네 개 뜬다던데하늘 바다 호수 술잔에도 없는 달.구름 속에 빠졌나둥근달 만날 때까지눌러앉아 볼까
탄금대
신라의 악성 우륵이 가야금 탔다는 탄금대신립 장군 배수의 진치고
왜적과 싸웠다는 탄금대
흘러가는 강물 맑고도 조용하다.남한강물 달천강물 부둥켜안고 열두 대 밑에서 춤추다 굽이쳐 흐르는데맑고도 은은한 가야금소리 어디 갔나.가슴 펴고 마음으로 바라보니 가야금 읊는 소리 병사들의 싸움소리 저 멀리서 들려온다.가야금 열두 줄에 사랑을 실었을까.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만 실었을까 가야금 읊어도 배수의 진을 쳐도강물 흘러가듯 세월이 날아간다.
오늘이 또 올까
약속은 하였는데비가 오네.갈까 말까 한다. 고!그럼우산 써야지 보고픈 사람 만나 산책하고 차 한 잔하면즐거울 하루약속을 하였는데비가 오네.우산 써야지.
오늘이 또 올까
사월의 보름달
해맞이 달맞이 붐비던 해운대해운대 백사장도 달맞이 고개에도 외로이 떠있네 사월의 보름달 서산에 해 걸려찾는 이 없어도 외로운 보름달 중천에 떴구나. 어둠이 내리니더 높이 떠올라 외로움을 달래네 사월의 보름달
모란꽃은 피고 세월호는
시골집 마당모란꽃은 활짝 피어 향기를 뿜어대고함박꽃은 피려고 꽃망울에 눈물이 쪼르르모란꽃 향기에 매실이 내려 보며 꽃은 간지 오래고 콩알만큼 컸다고 으스댄다.조금만 주의 하고 살폈더라면 끔직한 사고는 없었을 텐데어쩌다 이런 일이…….모란꽃은 피었고 함박꽃은 피려는데 매실은 내려보고학생들은 세월호 속에서…….
몽당연필
창고를 정리하다 어릴 때 쓰든 몽당연필 찾았다. 연필심은 부러져 몽탕한 그대로카터 칼로 깎으니 뾰족한 연필심 나오고종이에 긁어보니 새까맣게 써진다. 연필심
독 있고 부러지기도 하는데생각나면 아무데나 들이댄다.감당 못할 낙서까지 몽당연필 꺼내 만지작만지작
어디에다 써볼까
탄천의 잉어야
징검다리 건너다내려 본 물 밑희미한 물속에 잉어 떼 흐느적댄다.뒤우뚱 몸 뒤집어황금빛 뱃살을 뻔쩍인다.물살 따라 오르다 힘 빠졌나맥없이 어슬렁댄다.맑은 물이 그리운지주둥이만 뻐끔 뻐끔 힘 좋고 날쌘 물고기의 대왕살 곳이 못 되나보다.
임동복
만남
실벗뜨락
사랑하고 싶은데
추억의 그림자
행운
뜨락의 함성
이별
산새
박꽃
나목
낙서
웃음
꿈의 정원
눈물이 납니다
공짜인생
만남
임동복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행복한 일
만날 이 없다는 건
죽음보다
더 슬픈 일
만남은
인생의 활력소
기쁘고 설레고
기다리는 즐거움도
수다 떠는 상쾌함도
헤어질 때 아쉬움도
살아있음 확인하는 것
만남은 삶의 등불
실벗뜨락
이 나이에
웃으며 반겨주는 둥지가 있어
행복한 人生
설레는 마음으로
바스락 바스락 가을 밟고 가네
함께 나누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 즐거운 인생
슴겨 둔 이야기 허물없이 내보이는
이곳은 별천지
어린아이 세상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 없어서
미워하기 싫은데 미워할 수 밖에 없어서
슬퍼지는 날
주고 싶은데 줄 것 없어서
베풀고 싶은데 베풀 것 없어서
허무한 날
바윗덩이 작은 가슴 짓누르는 아픔
견딜 수 밖에 없어 고통스러운 날
이런 저런 날 엮고 엮어
황혼 접어들었다
떠나기 전 아낌없이 사랑주고 싶은데
줄 수 없어 애 태우는 날
追憶의 그림자
흘러간 세월
어디 숨어 있다가
말없이 달려와
가슴에 파고드나
고요히 잠든 영혼 찾아와
흔들어 깨우는
심술쟁이
해는 서산에 기울고
세상은 어둠속으로 가고 있는데
야속한 추억의 그림자
이제 오다니
幸運
살아있다는 건 祝福
이 좋은 날
아름다운 江山
보고 즐길 수 있음은 幸運
밀려오는 그리움
너무 보고 싶은데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갈 곳 많고
할 이야기도 많은데
남아있는 시간 얼마나 되는지
유난히 파란하늘
곱게 물든 단풍
소솔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내가 여기 있는 게 꿈이 아니라니
뜨락의 함성
메아리치는 함성에
묻어 두었던 소망
타오르는 열정
꼭꼭 쌓아 두었던 소리
하나씩 하나씩 끌어올린다
비옥한 잠실벌에
소망 사랑 우정 심어놓고
결실 위해 영혼 불태우는
실벗뜨락의 성좌
어느새 예쁜 꽃밭 하나씩
가꾸고 있다
이별
이별이
얼마나 아픈 고통인지
세월이 지난 후 알게 되었다
육체가 소멸되는 순간
단절 되는 마음의 벽
엄숙한 신의 명령 앞에 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인생
산새
초록향기 따라가니
고운깃털 날리며 푸드득 날아드는
귀여운 산새
하늘대는 나뭇가지
사뿐사뿐 오가며 잔치 벌인다
흙내음 코 끝에 솔솔
산새소리 들으며 소르르 잠드는
숲속 쉼터 오후
박꽃
초가지붕에 하얀 박꽃
수줍은 듯 꽃잎 열면
댕기머리 큰애기
보리쌀 함지박 머리에 이고
옹달샘 찾아간다
한 넝쿨에 주렁주렁
화목한 형제 둥근 박처럼 되거라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 이었다
나목
아침저녁으로 스치는 낯선 바람 따라
너울대던 초록은
다소곳이 붉은 빛 발하고
침묵 속에 이별 예고하는 정다운 나무 친구
사계절 색다른 모습으로
가슴 설레게 하더니
거룩한 생존의 등불
한 잎도 남김없이 털어버리는 초연함 이라니
낙서
무심결에 쓴
한 줄 낙서가
세상을 바꾼다
길이 없어도
대로를 개척하는
선한 방랑자
무수히 버려진 문자행렬
흐트러진 알갱이 골라
진주처럼 엮는다
웃음
웃으면
활짝 피어난
함박꽃처럼 아름다운데
왜 찡그리는지 몰라
벙실벙실 웃는
우리아기 얼굴
곁에 없는 날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해
둥글둥글 웃는 얼굴
온 세상
빛 밝혀주는
황홀한 해님
인색하지 않으면
세상은
더 빛나고 평화로울거야
꿈의 정원
작은 가슴에
무한한 날개 펼쳐준
정원이 있다
수십년 동행한 꿈나무들
비옥한 땅 부드러운 흙속에 파고드는 뿌리는
어머니 가슴에 안기는
아기천사다
바람 스치고 비 머금고 햇빛 받아
너울대는 정원수
꽃피고 새 우는 낙원
황혼에 혼심 다해
풍요와 기쁨 안겨준
사랑나무 키우고 있다
눈물이 납니다
기쁘면 기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눈물이 줄줄
어릴 때 본 어른들 눈물자국
이젠 알 것 같습니다
고통도 그리움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어머니의 아픔 이제야 알 것 같아
또 눈물이 납니다.
공짜인생
노령연금에 지하철 무임승차
예방접종 무료
복지천국에 산다
눈물겨운 보릿고개
지켜온 대가인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위한 배려인지
국가부채 늘어나고
비정규직 넘치는 사회
경쟁시대 낙오될까 잠 못 이루는 젊은이들
미안 미안해
100세 시대라고 철없는 아이처럼 흥겨워하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어
가는 곳마다 넘치는 공짜인생
조정자
난 오늘도 혼자 밥 먹는다
환희
쓸쓸한 남남
가을
송편
봄날
봄에 받은 선물
-Asian game-
쓰레기 한웅큼
송편
조정자
하얀 쌀가루
양손바닥에 동글동글 굴려가며
말랑말랑한 몸통에 동그란 구멍 내고
참깨소와 풋콩소로 통통하게 채워가며
열 개의 손가락이 합동작전 펼치면
반달보다 분도끼보다
예쁜 떡 공예작품
할머니 떡은 골무모양
아빠 떡은 만두모양
엄마 떡은 모시조개
손녀 데리고
송편 빚는 추석은
할머니가 행복한 날
둥근달이 더 크게 더 밝게
비춰 주는 가장 좋은 날
환희
이제야
생각 주머니가 열리다니
아름다운 무언가도
느끼게 되다니
그건 초등학생의
밀려둔 방학숙제 같은 것 이었는데...
영혼을 깨우고
아직 사용가능한
손놀림도 하고
이모작 수확을 위해
밭일도 논일도 꽃밭도 가꾸며 산다
새로운 이들과 만나
시와 산문 공부한다고 소문까지 내면서
녹슨 언어는 자유롭지 않아도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내 영혼을
다독이고 위로하고
유익하게 잘 놀고 많이 웃으며
매일매일 꽃봉오리 올리고 있다
쓸쓸한 남남
한 여인의 아파함을 보고 왔다
평생을 피우다 태우고 남긴
손 때 절은 달랑 손가방 하나
얼마나 담고 쏟아내고
만지기를 반복했는지
매일매일 그 속에서
찾으려던 온전했던
시절의 화려한 추억
엉켜버린 세월의 실타래는
깊이를 모르는
외로운 상실의 골짜기로
숨겨버렸나
자식들 보고픈 그리움은
참을 수 있었을까?
내 둥지를 던지고
이곳에 짐짝처럼 실려 온
치욕과 분노와 낭패를
어찌 견딜 수 있었을까?가슴 밑에서 저린 바람이 일다
여인의 무표정에서
침묵 할 수 밖에
가을
가을 구름처럼
둥둥
바람 드는 마음
어쩌라고 바람은
자꾸 와서 흔드나
하늘은 높은대로
바람은 날마다
새롭게 예서 제서 흔들리며
물들어가는 나무사이를
헤치고 다니는데
구름 가는 하늘 올려다보며
아주 먼데까지 바라본다
바람 따라 햇살 따라
자꾸 가노라면
누구든 만날 것 같고
좋은 일 기다려지는
마음 더해지는데
햇살이 눈부실수록
더욱 쓸쓸해지는 가을
난 오늘도 혼자 밥 먹는다
가을답게 잘 자란
향기와 풍요를 거실과 식탁에 들여놓다.
화려해진 나의 전시장
꽃 다듬는 마음은 한꺼번에 깊어지고
휑하니 빈 집에서
빈 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마음엔 찬바람 이는 저녁
혼자 밥 먹고 혼자 차 마시고
혼자 산책하고 혼자 서점에 가고
혼자 세상 얘기 하면서
간절히 외치고 싶어진다
혼자라는 건
무서워서 더욱 싫은거라고
뭘 먹을까
격식 갖춘 식탁차림은 못해도
예쁜 그릇에라도 담아볼까
심심한 버섯전골에
국화향기로 간을 맞출까
외롭고 서글픈 분노는 저녁 입맛을 떨궈도
액자 속의 내 사랑뗑이들과
눈맞춤으로 위로 받으며
난 오늘도 혼자 밥 먹는다
봄날
무성한 나무숲
힘차게 흔드는 큰 날개짓
봄 살기를 준비하는
백로의 요동을 보았다
괴성 질러가며 소란 피우는 건
새끼를 지키려는 날개짓일까
용케도 다치지 않고 부딪혀대는
거대한 몸짓
요란한 백로 흙로들 날개짓에
평화로운 생각 모으듯 걸음 멈춘 산책객들
작은 호수와
숲을 둘러싼 물 마른 해저엔
먼 곳서 온 저들에게 먹고 먹일 양식이 넉넉한지
나무숲이
다시 소란스럽다
봄날이 부산하다
봄에 받은 선물
격조 높은 잔치에 초청받은 것처럼
행복한 차림으로 국립미술관으로 갔다
명화 전시장에서 길게 늘어선
문화예술 애호가들의 인파에 놀라고
전시된 100선의 유명작품이 반가워
잔잔한 황홀함에 숨 막혔다
오랜 옛날
미술선생님 따라 함께했던 미술학도 내 친구
유명 여류화가인 <노점>이라는 거대한 작품 앞에서
마흔 셋 살고 간 친구가 생각났다
배고파도 그렸고
사랑해도 그렸고
그 사랑을 완성하려고
더 치열하게 그리다 가버린 친구
사랑과 관심이
열정으로 성숙된
영혼들과의 만남은
이 봄에 받은 큰 선물이다
-Asian game-
(북한과 대한민국과의 축구
이란과 대한민국과의 농구경기) 결승전을 시청하면서
언어가 아닌 것을
주고받으면서
저토록 치열할 수 있을까?
침묵과
비명 절규만이
극치의 힘이 되는
운동장 가득한
뜨거운 함성
눈부신 젊음
접혀 먹히지 않으려는
으르렁거림
어떤 맹수들이
저토록 치열할 수 있을까?
승리의 환성이
아파트를 흔든다
쓰레기 한웅큼
화사함을 뽐내며
어느 여인의 안방을
옴팡 차지했을 장식물들
사랑받고 행복주고
남다른 영화도
맘껏 누렸을 텐데
장도리도 못다 부수어
날도끼로 조각내니
불쏘시개로나 쓰여질런지
이승에서 인연 다하니
참혹하게 버려지는 용품들
욕망이라는 사슬에 묶여
끌어안고 사는 것들
몸이 요구하고
눈이 요구하고
마음이 요구했지만
다 없어지는 것들
집안에도
지천으로 널려있는데...
조선혜
가을그림자
겨울바다
날마다 선물
기억저편에
초승달
외갓집
겨울채비
그리움
마지막 잎새
침묵
가을 그림자 조선혜
좁은 골목 끝에는길이 있을까?달빛비추는 길 걷다가좁은 길 끝에서 만난아담한 뜰달빛은 오목한 뜰넘치도록 비춰주고키 작은 떡갈나무훌훌 옷 벗은가을 그림자 쌓아놓았다발밑에 밟히는 바스락 소리는깊어가는 밤을 만들고우리들 이야기낙엽위로 떨어진다
겨울 바다
우중충한 얼굴로할 말 많은 겨울 바다는흰 거품 토해 내고바다에 떨어진 빗방울은어디로 갔을까?굵게 내리는 빗방울바다에 송송 구멍 열리고수많은 이야기 수면에 떠올라할머니 할아버지 적 얘기에가슴이 아려 눈물인지 빗물인지 흐르는 눈물
날마다 선물
어둠이 채 걷히기 전새벽마다건네받는 선물
빛바랜 사진이 들어 있고장미빛 아니지만평범한 미래도 들어있다.
오늘은 어떤 일시간 속에 적혀질까?시간 분 초까지 나누어마음 가다듬는다
긴길......울퉁불퉁한 길따라한참 걸어왔더니힘든 길 용케 왔다며선물 내민다나는 일상을 두 손에 잡고아쉬운 시간속으로
여행 떠난다.
기억 저편에
잘가...
하는 아쉬운 말에멋쩍어하며 내민 손살짝 떨리는 느낌이었어
발등을 덮던 낙엽만큼지나온 얘기가 많아 춤을 추듯 소리 내며 걸었지.
햇살의 따스함에 계절 잃은 벌이 따라오고은빛 저수지는 가슴에 남아
기억 저편에아스라한 그리움을그려 놓았지
초승달
어둠이 주는 안온함서서히 밀려오는 시간
손톱 깎은초승달 보이고
달의 체온초겨울을 감싼다.
작은 전구로 멋을 낸하얀 교회는사람들을 기다리고
누군가의 소원 듣던 달
오늘도살 차오를 준비 한다
외갓집
어릴 적 여름 방학이면외할머니 댁에서 지냈지넓은 과수원에 고추잠자리
손꼽아 기다리던 장날에는흰 한복 곱게 입으신 할아버지 손에알록달록 색칠한 색동 사탕 한 봉지
물 많이 쓰면죽어서 버린 물 마셔야 한다는무서운 말에
집에 가고 싶어비뚤비뚤 쓴 편지엔눈물만 뚝뚝 흘렸지
겨울 채비
길 가 작은 나무
겨울 채비를 한다
한 손 두 손 짚으로 묶어서
병풍처럼 두른다.
얘들아,
정말 이정도면
추운 겨울 견딜 수 있니?
저 멀리 떠나는 가을
꼬리라도 잡고 싶다.
그리움
습관처럼오래된 습관처럼베사메무쵸를 들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번지는 그리움
눈 감으면소담스레 쌓인 눈길 보이고조용하고 따스한봄날 아침도 아른거린다.
따끈한 찻잔 두 손으로 감싸면손끝으로 전해지는 기억훨훨 날아올라오늘도 그리움 하나 더한다.
마지막 잎새
차가운 벽타고붉은 옷 입은 담쟁이 가족들
어젯밤 내린 비로떨지는 않았는지...초겨울 햇살에 아기까지 매달렸다
곧은 다리
여린 몸짓길 찾아 가다
콘크리트 사이에
발 머물러햇살 보며
긴 기지개 켠다
침묵
나란히 앉은 벤치따스한 온기 식기도전에돌아서 버린 너
누군가 놓아 버린찬바람에 뒹구는주인 없는 풍선을 보았지.
어둠은 내 곁에 장벽을 치고휑한 마음에머리 가로 저었던 침묵
정봉순
바람 부는 날
새벽길
바람 부는 날
정봉순
바람이 온다가을의 흔적을 몰아가려나보다
바람이 분다미련 때문에 머뭇거리는한 웅큼 남은 정까지쓸어 가려나보다
바람이 간다아쉬움도미련도 안은 채허허로운겨울 속으로 들어간다
새벽길
볼살 에이는 공기 가르며 새벽 기도 가는 길두 줄로 선 은행나무 가지에가까스로 매달려 있던 잎새 바르르 떨며먼저 지나간 이 발자국 보란다바쁘던 세상에서발 떼는 날위선과 허물 벗긴 채저 은행나무처럼심판 기다릴테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안개 사이로 푸르스름한 바람 불어오더니볼 꼬옥 감싸준다
하월하
장대비 속에서
봄바람
민들레홀씨
겨울
북촌길에서
해넘이
눈이 나리면
아침이슬
봉선화
산수유
장대비 속에서
하월하
눈물이 난다
눈물은 눈 밖으로 흘러 보내야 하는데
또아리처럼 돌돌 말아
빨래처럼 꼭 짜서
햇볕에 말리려한다
슬픔은 저 혼자 배란하여
눈물을 키워왔다
팽창하여 터질 것 같아
물꼬를 터야겠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
장대비가
자연 유산되어 터져버린 눈물샘
비속에서 울고 싶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아무도 모르게
봄바람
봄이 문을 열었다
닫아두었던 염색공장 바쁘게 움직이며
얼어버린 바람에 풋풋하게 물들인 봄은
바람을 타고 온다
웃자란 청보리 위로 흐드러진 연두바람
붉은 바람 속에 각혈하는 진달래
봄바람 불면 품지도 않은 씨앗 하나 날아와
산에도 들에도 염치없이 기웃거린다
거리에는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눈부신 꽃바람 향연
봄이 마지막 붓을 놓기 전 예쁜 액자에 담아
볕 좋은 창가에 걸어두어야겠다
치맛자락 찢겨진 겨울나무 사이로
엉성한 백발이 서성거려도
아양 떠는 봄바람 따라나서야겠다
민들레 홀씨
하늘 움켜잡고 떠도는 자유
이제는 버려야지
핏기 잃은 하얀 속살들
몸을 도사리고 씨앗을 품어야한다
잔설이 봄기운에 녹을 때까지
어두운 은신처에서
비상을 꿈꾸면서
짧은 목 더욱더 움츠리며
나지막이 부는 바람 소리에
홀씨 허물 벗고
긴 기다림의 눈물 꽃이 되는
절정의 그 날을
겨울
겨울은 강철 무지개
코끝에 내려앉는
칼바람 아픔 속에서도
칼자루 속에는
내색하지 않는 봄앓이로
감추고 있다
북촌 길에서
오래되고 퇴색한 기왓장들이
줄지어선 골목길 사이로
부는 바람이 좋다
오늘이면서 어제만 같은
묵은 체증의 바람이 좋다
관습과 위엄이 Ekddthr으로 숨어버린
북촌길에서
폐쇄된 광산에서 광맥을 찾아 나서는
요행의 광부가 되어 주위를 기웃거린다
대갓집 마당에서 막걸리에 취한
사당패의 춤사위
문 밖에서 구걸하던 각설이의 타령이
희미한 리듬을 타고
먼지처럼 일어선다
오늘 이 길에 서서
어제의 살가운 체취 보듬고 싶다
사노라면 내일이 오늘이 되고
오늘이 어제가 되어
잉여물자로 어두운 창고에
널부러지는 날들
굳은살 없는 살가운 체취로
보듬고 싶다
해넘이
지는 해는 마법의 연금술사
그의
뜨거운 입맞춤으로 하여
하늘은 불새가 되어 바다를 껴안는다
한여름 능소화 꽃잎보다
더 붉은 날개짓으로
한밤중 진통제도 없이
충치를 앓는 고통으로
해넘이는 그렇게 어두움을 앓는다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운 연민
또
하루가 저문다
눈이 나리면
눈이 나립니다
이런 날 창문을 열어두면
슬픈 미소 남기고 하늘로 가 버린
기억 하나가
텅 빈 가슴으로 스며듭니다
오랫동안 주위를 맴돌며
떠나지 못하던
낡은 이름 하나가
하얀 여백 위에
수없이 새겨집니다
가난한 이별로 하여
늘 허기진 그리움으로 혼자 뒤척이는
침묵의 소리가
무수히 떨어지는 하얀 나비의 날개 아래
사위어 갑니다
아침 이슬
어둠을 밀어
별빛 속에 영그는가
밤새운 진통
풀잎에 맴도는 잉태의 기쁨이여
빈 가슴 풍요로움은
순수로 뒹구는
풀잎의 세월
産苦의 아픔이 녹아내린다
타인처럼 맴도는 시간
바람의 시선에 타는 목마름
동트는 햇살 속에
찬란히 빛나리
봉선화
작은 씨앗은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사랑을 기다린다
여름 햇살이 길어지면
고은 자태로 피어나는 꽃잎
설익은 정열로
백반과 몸을 섞으며
손톱에 물드는 황홀한 격정
불꽃처럼 타오르는 설레임
사제도 없이 첫 경험의 의식이 거행된다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각인되어
세월에 마모되지 않기를 바라며
첫눈 오시기까지
산수유
나무는 죽은 듯이 서 있어도
뿌리는 쉬지 않고 자맥질 한다
물소리 찾아서
환절기 아픔이 가슴을 후벼파도
아기처럼 옹아리하며
언 땅에서 봄의 소리를 배운다
바람이 스치듯 지나가면
수줍은 알몸 위에 돋아나는 노란 점액
지친 기다림으로
잎 보다 먼저 터지는 꽃 몸살
긴 진통으로 꿈틀대는 나무에게
봄을 첫 순산한 산수유
하늘은 따뜻한 속삭임으로
여린 꽃잎 위에 푸른 나비가 되어도 좋으리
어쩌나
홍성혜
오나보다 했더니벌써 저만치 가네가을이...
곱다 곱다 했더니 후루루르 떨어져바스락 밟히며 울고 있네 낙엽이...
팽팽하고 곱던 얼굴 늘어지고 주름지며잘도 익어가네얼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