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노래마을에는 종교가 없다
노래마을 단장 오정훈씨와 조아해 이장이 기타 반주로 참석자들의 노래를 이끌고 있다.
기타와 노래방, 합창이 있는 열린 공간
문화회관서 3주째…매주 참여 크게 늘어
오정훈, 조아해씨 주축 화요일 저녁 모임
맘 편하게 세시봉 노래부터 합창 연습까지
3월1일 저녁, 윌링의 문화회관 주차장이 제법 찼다. 이날 삼일절 기념식이 있었고 다른 건물에서는 시카고 7080 노래마을 모임이 있었다. 한 행사는 1년에 한번 있는 우리 민족에게 의미깊은 행사였고 다른 행사는 매주 화요일 모임이다. 주차장이 매우 캄캄했지만 모두들 용케 차를 대고 자리를 잡았다. 아직은 손 갈 곳이 많은 문화회관 건물 안쪽에서 만세 삼창도 있었고 기타 반주에 맞춘 노래도 흘렀다. 살아 있음. 우리의 역동적인 삶이 창문 밖으로 더 환하게 흘러 넘쳐나는 모습이었다.
이날이 다섯번째 모임이었다. 문화회관의 한 공간을 차지한 건 3주째다. 시카고 7080 노래마을은 10명 안팎으로 시작되어 매주 10명 가까이씩 회원이 불었다. 기타 반주자도 늘었고 합창 소리도 그만큼 커졌다. 50여명으로 ‘주민’이 늘어난 노래마을, 그 현장 스케치와 노래마을을 지도하는 오정훈 단장 인터뷰다.
세시봉 친구들 노래
문화회관의 한 건물(9715 S. Capitol Dr., Suite 707, Wheeling). 실내에는 노래방 시설이 있고 마이크가 있고 피아노가 있다. 드럼도 보인다. 기타를 맨 사람이 여럿이다. 쿠션이 있는 철제 의자에 30~40명이 앉아 있다. 한 사람이 나와 자신의 기타 반주에 맞춰 몇 곡을 뽑는다. 이어지는 박수. 앵콜도 있다.
조아해씨가 분위기를 잡는다. 그는 자칭 노래마을 이장이다. 조크도 몇마디 날리며 흥을 돋군다. 그도 물론 기타를 어깨에 둘렀다. 이어 단장 오정훈씨가 노래마을을 리드한다. 세시봉 콘서트를 본 한 회원이 악보를 묶어 가져왔다면서 그 중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와 송창식의 <한번쯤> <왜 불러>를 선창했다. 모임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함께 부르며 ‘참 좋다’는 표정이다. 얼핏 봐도 40대에서 60대 연령대의 얼굴들. 비슷한 세월을 살아 온 사람들의 공감이다.
아침이슬 2부 합창 지도
‘집중연구’라는 이름을 붙인 순서에서 오단장은 자신이 편곡한 악보를 돌렸다. 이날의 연구노래는 양희은의 <아침이슬>이었다. 2부로 편곡한 고음부분을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맡았다. 합창 발성 연습을 하면서 오단장은 “여러분은 음악대학에서 4년간 배우는 것 여기서 다 배우셨습니다” 하고 너스레를 떤다.
10여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기적처럼 화음이 만들어 진다. 노래가 좋아 그냥 모인 사람들이 처음 맞춰보는 화음이었는데 아름답다. 멜로디에 맞춰 ‘우~’ ‘워~’로 화음을 조정하고 다시 가사를 붙인다. 화음이 더 좋아졌다. 다음 시간에는 <사랑으로>를 부르기로 했다. 오단장이 빠지고 노래방이 이어졌다.
그 자리 한켠에서 열심히 기타 반주를 하고 끝날 때쯤 사진 촬영 용으로 오단장과 듀엣을 연주한 안양준(54)씨는 지난주 부터 나왔다고 했다. 오래전 대학 동아리에서 기타를 연습했고 지금은 ‘자유’란 이름의 찬양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난주 아는 사람의 연락을 받고 이 모임을 알게 됐다면서 시간이 되는 한 매주 나올 계획이라며 모임을 반겼다.
문화의 탈기독교 공감
노래방 시간에 오정훈 단장을 입구쪽 조그만 방에서 따로 만났다. 밖에서는 이미 누군가 번호를 입력해 한 곡조 뽑고 있었다. 오단장은 기자가 예상했던 것 과는 다른 얘기를 했다. 고형석씨 구명 운동이 계기가 된 것은 알았는데 이 모임의 발전 과정은 그 연장선상에 있지 않았다. 그는 문화의 탈 기독교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고형석씨 구명 운동 모임이 시발이었죠. 구명운동을 도운 분들 중 비 기독교인이 더 많았어요. 시카고의 대부분 문화행사가 기독교 중심이잖습니까. 비 기독교인들 신세 진 일이 많은데 종교를 탈피한 문화활동 모임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이후 이장 조아해씨의 부동산 광고에 조그맣게 7080 모임을 알렸다. 10명 안팎이면 꽉 차는 알링턴 하이츠 골프길의 조그만 사무실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지인의 소개로 장기남 한인회장과 전화 통화를 했고 장회장의 주선으로 문화회관의 한 공간을 빌릴 수 있었다.
공간이 확보되자 매주 화요일 오후7시30분 부터 9시30분까지의 모임에 짜임새가 갖춰진다. 오프닝 연주가 10분 가량 있고 공지사항 발표, 시 낭송, 수필 이나 좋은 글 낭독도 있다. 간단한 레크리에이션 시간도 넣었다. 이어서 합창 지도가 있고 나머지 시간은 노래방이다.
“여기서 술을 드시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술 한잔 하시고 오셔도 좋고 노래 함께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구경만 하셔도 되고, 한번 왔다가 안 오셔도 되고…. 편하게 쉬었다 가면 좋겠습니다.”
노래마을의 수채화
이날 화음을 맞춰본 이들이 다음에 안 나오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에 오단장의 답은 쉽다. “아무 부담없이 오시면 됩니다.”
그래도 합창 연습을 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발표회 같은 행사도 가질 만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멤버 중에는 의욕을 보이는 분도 있어요. 그러나 아직 발표회 까지는 멉니다. 인원이 차게 되면 가능할수도 있겠지만….” 그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 하긴 욕심 낼 이유가 없다. 그가 이미 얻고 있다는 보람이면 족하다. “물 흐르듯이요?” “예, 비로 물 흐르듯 이란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오단장은 노래마을이 노래를 즐기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면 된다고 했다. 그는 수채화란 표현을 썼는데 노래마을이라는 도화지에 수채화를 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노래마을에 3가지 원칙이 있다고 했다. 종교적 신념, 정치적 신념, 그리고 비즈니스의 배제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풀었으면 좋겠고 약자에 대한 불의에 함께 한숨 쉬고 함께 분노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노래가 그런 기능까지 감당할 수 있을른지는 모르겠으나 위로와 격려까지는 충분하다.
“세속음악 구분은 비성경적”
종교적 신념의 배제와 탈 기독교 문화활동 얘기가 나왔으니 노래 마을과 오단장, 종교 문제는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오정훈 단장은 연세대 성악과 출신이다. 소위 클래식을 전공한 사람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이다. 교회에서 지난해 까지 성가대 지휘를 했고 미국교회에서는 성가 가수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노래마을에서 종교색을 배제하고 대중음악 전파에 앞장 서고 있으니 2가지 질문은 기본이다.
“성악을 전공한 사람이 대중음악을 한다고 하는데 저는 이를 ‘생활음악’으로 표현합니다. 시대와 민족을 떠나 각 나라마다 생활음악은 존재합니다. 저 자신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클래식이 유행하면 유행가이고 유행가가 클래식이 되기도 합니다. 오히려 종교음악하는 사람이 왜 일반 음악을 하느냐는 질문을 더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저는 종교음악을 세속음악과 구분하는 것은 비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합창 지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더 들었다. 기자도 느꼈지만 참가자들이 부담없도록 편하게 가르친다. “(합창의) 테크닉을 가르쳐 이 분들이 어디서든 쓸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오늘까지 3번째인데 비전문가, 연세 드신 분들 모시고 합창곡을 지도하니 보람이 많습니다.”
나이, 종교, 정치가 없는 곳
이 모임에 나이 제한은 물론 없다. 어울릴 수 있는 마음이 있고 노래를 부르고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누구든 오케이 란다. “아버님이 연세가 90이 넘으셨는데 친구 중에 60대도 있어요. 젊은 사람과 어울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의 말은 60대, 70대도 기꺼이 초청한다는 의미다.
오단장은 개인 비즈니스를 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다 1993년 미국에 정착했다. 올해로 49세다. 노래 지도와 편곡에는 별도의 시간이 필요할텐데 그는 운전하는 시간이 바로 악상을 떠올리는 때라고 했다. “제가 UPS 스토어를 하는데 거기서 악보 복사 등을 하니까 편합니다.”
다음은 7080 노래마을이 회원들에 이메일로 띄운 지난주 모임 초청안내서다. 내용의 분위기 그대로가 이 마을의 풍경이다. 그대로 싣는다.<주간시카고>
“이번 집중합창연습 1번곡 [아침이슬] 을 첨부합니다.
항상...,
쉽고, 재밌고, 즐겁고, 짧게 (30분 정도),
그러면서도 뿌듯한 감동의 여운이 남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굳이 Print 는 안 해 갖고 오셔도 됩니다.
저희가 다 알아서 Print 해 갖고 가겠습니다.
그냥...,
[아~ 이런 곡을 하는구나] 라고만 생각하고 오시면 됩니다.
다만...,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과 그 노래를 즐기고 싶은 마음만 챙기시면 됩니다.
그리고 주변에 좋으신 님들과 벗들을 마니마니 모시고 나와 주시고요.
앞으로의 집중합창곡들은 [김현식-비오는 날의 수채화, 민요-아리랑, 동요-섬집아기, 조용필-돌아와요 부산항에, 김범수-보고싶다, 이문세-사랑이 지나가면, 김범수-하루, 등등...] 여러분들이 합창으로 함께 부르길 원하시는 신청곡 중심으로 진행이 될 겁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훌륭한 뮤지션들이 Join 하고 계십니다.
이번주에 7시 30분 정각에, [10분 Live 세시봉 (C' est Si Bon) 무대] 가 있게 됩니다.
좀 일찍 오셔서 좋은 자리 잡으시고요,
[10분 Live 세시봉 (C' est Si Bon) 무대] ..., 놓치지 마세요.
* 세시봉 [C' est Si Bon] 은 Franch 로 [매우 좋다] 라는 뜻 입니다.
* 마이크와 마이크스텐드 도네잍 하실 분 계십니까?
자작시, 자작수필, 또는 감동받으신 글 등을 발표하시니까, 모임이 더 풍성해지죠?
이번주에도 우리 모두 [그 누군가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드릴테니...,
부! 탁! 해! 요!”
오정훈단장(우)과 안양준씨가 듀엣으로 노래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