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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10 백두대간 남진 14구간 나의 대간 15번째 코스:갈령삼거리-(3.7)-비재-(3.6)-봉황산-(4.5)-화령재 -(2.74)-윤지미산-(4.3)-무지개산갈림길-(4.11)-신의터재 //22.95km 늘상 대로 서초 구민회관에서 23시 20분 승차 후 휴게소에서 정차해서 휴식한 후 산행 목적지인 갈령에 하루 지난 02시 10분경에 도착, 달밤에 체조 후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은 회령재에서 아침 매식을 하기로 계획된 산행이라 식수와 간단한 행동식만 가지고 갈령삼거리로 향했다. 저번 구간에 비재로 향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며 가파른 오름을 탄다. 굵은 마사로 덮인 길은 등산화만 원망받게한다. 30분을 오르자 희미하게 형재봉이 보인다. 반짝이는 별빛 아래 형제봉은 예전에 형제봉이 아닌 아련한 추억 속에 꿈속에서라도 보고픈 친구같이 정감 있어 보인다. 02/24
03/08 28분 만에 그리 힘 안 들이고 갈령삼거리에 도착한 후 후미를 기다리고 후미가 도착한 후 곧바로 비재로 향했다. 이 구간은 왕마사로 덮인데다 오르 내림이 빈번하게 반복되어 엄청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왕마사에 풀풀 나는 먼지, 코끝이 막히고 목젖이 간지러워 힘 모아 가래침을 뱉어 본다. 22분을 지나며 수고했다고 잠시 안부에 평지 길이 나온다.
03/34 잠시 숨 고르기 후 삼거리 표지가 나오고 이내 다시 롤러코스터를 타고 간다. 숨이 턱에 차오르려 하자 정상이 나오고 곧바로 내림으로 이어진다. 계속된 왕마사 길에 이제 신바닥에서 고문 탄내가 날 지경이다.
03/52 어둠 속에 못재에 도착했다. 황충장군이 여기에 정말 소금가마를 쏟았을까? 그 소금물에 견훤이 목욕하고 늘어진 지렁이가 되어 결국 패망하고 말았을까? 진실은 그들만이 알 것이고 우린 전설 따라 삼천리나 가보자. 못지에서 좌편으로 돌아 오름을 탄다. 다시 징하게 미끌리는 마사와 잡석을 지나고 455봉에 오른다. 여기에서의 내림은 가파름과 마사의 미끄럼에 여기저기서 엉덩방아 소리가 방아타령처럼 들려온다. 운도 땅 짚은 손에 상처를 입었다.
04/48 3.6킬로를 6킬로 같이 행군하고 비재에 도착했다. 저번에 여기까지 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다. 거리에 비해 난위도가 엄첨높은 구간이다. 다시 한참을 기다린 후, 비가 온 뒤 땡볕에 나온 기진맥진한 지렁이 행색으로 후미가 도착했고, 그들을 다시 추스린 뒤에 우린 화령재를 향했다.
05/10 화령재를 가는 관문인 봉황산으로 오르는 첫 번째 고지를 오르는 것도 만만치 않다. 왕마사에 잡석이 깔린 가파른 오름은 스러지는 달빛과 같이 우리의 인내심도 뿌연 안갯속에 가로등처럼 흐릿하게 한다.
05/37 두 번째 고지를 지나고 세 번째에 급경사 표지가 보이고 이어 약하게 네 번째 고지에 이르러 좌편에 봉황산이 동트는 여력에 희미하게 보인고 길은 좌편으로 꺽인다.
06/18 에고 기력없다. 싶어 오매 봉황산에 오른다. 일출 직전이라 서둘러 사진찍고 일출을 기다린다. 새색시를 기다리는 노총각에 심정으로...
06/30 무엇하나 변변한 소망 없고, 그러매 절실한 맴또한 없고, 이래 맨숭하게 인생사를 꾸리는 사람이 또 있을꼬? 그저 맬 뜨는 해 바라보고, 그해 안 뜨면 날 굿나 싶고, 비 오면 비와 그러재 하고, 낙천인고 허망인고... 여튼 잠 안자고 밥 굶고 산 올라 일출 보면 기분은 상쾌하다.
07/15 봉황산에서 10여 분 쉬고 단체사진 찍고 화령재로 향했다. 일출을 바라볼 때 저 먼 태양아래 보였던 산불 감시초소가 어느새 눈앞에 버텨 섰네,
07/19 산불 감시초소를 지나 300미터 정도 내려오면 길이 우로 직각으로 꺽여 내려간다.
07/56 비교적 순탄한 길 30여 분을 지나면 안내판이 나오고 이내 도로가 앞에 나온다. 우리는 여기서 근 800미터를 우측 도로를 타고 걸어 화령휴게소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물론 원, 운, 의정부팀과 한상에서 막걸리 반주를 곁들여서....
08/42 식사를 마치고 버스로 화령재로 향햇다.
08/52 한참을 인내하고 표지석을 카메라에 박았다. 저마다 포즈로 각선미와 개성을 담느라 북새통을 이뤄 도무지 온전한 표지석을 담을 수가 없었다. 그려 남는 것은 사진이여!
09/26 산행을 다시 시작한매 운은 버스로 남기로 했다. 미끄러질 때 허리가 삐끗 했는지 산행이 힘들단다. 후미에서 산행을 시작했더니 중위에서 너무 속도가 느리다. 답답해 보엿는지 한북 대장이 앞으로 나가 앞에 선 고문을 옆에세워 길을 터주고 고맙게 길을 터준다. 넉넉한 오솔길에, 가다 우편으로 넓은 인삼 밭이 보이고 서비스 구간이다.
09/53 15분 정도에 가파른 오름을 오르자 윤지미산이다. 표지 옆으로 자그만 돌탑에 매직으로 윤지미산이라 써서 세워놓은 작은 정상석이 있고, 20여 명 쉴 정도에 분지로 있다. 돌쇠 대장한테 정상 주로 막걸리 한 모금 얻어 목축이고 근 10분 휴식 후 넌지시 자유산행을 건의했다. 그리 흔쾌하진 않아 보이게 허락하매 봉과 의정부팀이랑 신의터재로 향했다.
10/55 일정거리까지 쉬엄쉬엄 오다 일행의 페이스 조절 상 잠시 휴식한 사이 회장팀 3명이 따라왔고 이들이 지나자 돌쇠 대장과 일행 두어 명이 붙어왔다 우릴 견제하나 보다고 봉이 한 말하자 의정부도 거든다. 어찌 되었든 운이 신의터재에서 만찬을 준비키로 했으니 서둘러 가고픈 생각뿐이다. 누굴 이기려 산에 오느 것도 아니고, 산을 이기려고 오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저 좋을 뿐이다.
11/07 200미터면 무지게산이지만 김치찌게에 술이 고파 길을 서두른다.
11/38 윤지미산을 지나서는 카펫 위를 걷듯 푹신한 육산 마루금이라 1킬를 평균 12분 정도에 주파했다.
12/06 근 5개월 만에 다시 보는 신의터재다. 신의터재의 유래는 임란이전에는 신은현이라 불리다 임란 때 의사 김준신이 이 재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상주전투에서 많은 왜군을 도륙하고 장렬히 전사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신의터재라 불렀다. 일째 때 민족정기 말살 정책 때문에 어산재로 바뀌었던 신의터재가 제 이름을 되찾은 건 1996년의 일이다. 신의터재 인근 화동면 판곡리에는 낙화담이라는 연못이 있는데, 이곳엔 김준신의 가족들이 왜병의 손에 죽을 수 없다며 몸을 던졌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여기 신의재터에서 운이 음식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시 컷 먹고 퍼지기로 첨 부터 작정했다. 다른 산우들은 지기재까지 가야하지만 우리는 이후 구간은 먼저 지난 구간이라 쉬어도 되기에 모처럼 여유로운 회식을 혔다.
늘어져라, 시간을 보낸 후 14시에 차로 기지재로 이동해서 산우들과 조우한 후에 목욕탕으로 이동하고, 울진인가 울산에서 위문온 산우가 가져온 상어회에 간단한 안주와 더불어 막걸리로 목축이고 다시 출발한 차는19시 조금 넘어 양재에 도착. 봉의 차로 귀가. 이번 산행은 별밤지기도 되었고, 만선에 고무되어 함빡 웃음 짓는 산악회 임원들의 모습도 보았고, 온 힘을 다해 도전하는 친구들과 의정부팀의 아름다운 모습도 좋았다. 좋은 사람들과의 동행이 어떤 고난과 어려움도 좋은 추억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아니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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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햐~~빠져들게 하느구먼 쐬주한잔 사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