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절 3배,
10분간의 참선을 마치고
발원문을 소리 내 읽었다
결코 짧지 않은 발원문에서
마음을 사로잡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리하여
이 땅의 한국불교가
21세기 모든 인류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게
할 것입니다’
불자로서
나와 이웃과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있었을까…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그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생명평화 1000일 정진이 삶의 변화를 이끌고 많은 것을 이루기에 2시간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계기’를 만들었다는데서 의미를 찾았다. 사진은 밖에서 본 정진 모습. |
한국불교가 진정한 대승불교로 태어나겠다고 서원하고 자성과 쇄신 결사의 원만 회향을 기원하기 위한 ‘생명평화 1000일 정진’이 지난 9일로 500일, 반결제를 맞았다. 지난 2012년 3월28일 진제 종정예하의 정진등(燈) 점등으로 입재한 1000일 정진은 연인원 1만여 명의 각계각층 대중이 동참하면서 종단 결사의 핵심축이 되고 있다. 정진이 반결제를 맞는 동안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참 대중이 적어지고 일부에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정진등(燈)은 계속 불을 밝혀왔다. 최근 들어 대중의 적극적인 참여로 다시금 환한 불을 태우고 있는 1000일 정진. 반결제를 3일 앞둔 지난 6일 정진에 동참했다.
‘1000일 정진 497일째’를 맞은 서울 조계사 일주문 옆 생명평화 1000일 정진단(壇). 장마가 끝났다는 기상청의 발표가 무색할 만큼 칠흑 같이 어두운 하늘에서는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를 뚫고 도착한 정진단 내부는 겉보기와는 달랐다.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허름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안은 아늑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작은 법당’은 음료 등 간단한 편의시설과 함께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냉방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정진을 마친 대중을 위해 간소한 기념품도 준비돼 있었다.
문을 닫고 들어서다
정진단 문을 닫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정진등(燈)이었다. 3층으로 쌓은 단 위의 작은 램프 속에서 497일째 동참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진등은 지난 500일간 밤이나 궂은 날씨에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수많은 동참대중을 맞이했으리라.
바닥에 깔린 좌복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3층단 옆에 두꺼운 노트가 한 권 눈에 띄었다. 첫 표지에 정진 순서가 적혀 있었다. ‘감사의 절 3배, 침묵명상(좌선) 10분, 생명평화 1000일 정진 발원문 낭독, 생명평화 100대 서원 절 명상 혹은 나를 깨우는 108배, 생명평화 1000일 정진 발원문 낭독, 침묵명상 10분, 감사의 절 3배.’ 반드시 이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개인적인 방법을 해도 된다는 설명도 곁들여 있었다.
‘붓다로 사는 것은 무엇인가’
이대로 따르기로 했다. 무엇을 정진할 것인지 정했다. ‘붓다로 사는 것은 무엇인가.’ 거창하지만 항상 고민스러웠던 화두다. 그리고 순서를 따랐다. 먼저 향로에 향을 하나 살랐다. 불자에게 익숙한 3배를 올리고, 좌복에 앉아 참선에 들었다. 정진단이 대로변에 위치한 까닭에 차량 지나는 소리가 곁에서 들려왔다. 그에 따른 진동도 고스란히 바닥으로부터 전해졌다. 거기에 빗소리, 비를 피해 정진단 앞에서 잠시 머문 사람들의 음성까지….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5분여가 흘렀을까 기분 좋은 향내가 퍼진 ‘작은 법당’ 바깥의 소음이 점차 사그라졌다. 들뜨고 곤두섰던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10분간의 참선을 마치고 정진 발원문을 소리 내어 읽었다. 결코 짧지 않은 발원문에서 마음을 사로잡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리하여 이 땅의 한국불교가 21세기 모든 인류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게 할 것입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불교는 21세기를 이끌어갈 사상적 대안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시점에서 한국불교를 돌이켜 보면 의문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바로 여기서 결사를 하는 까닭이다. 세상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1분에 1배…명상에 들다
이윽고 100대 서원 절 명상을 위해 CD플레이어를 돌렸다. 익숙한 음성이 정진단에 울려 퍼졌다. 결사추진본부장 도법스님이다. 다소곳이 손을 모은 채 CD에서 나오는 음성에 따라 1배를 했다. 그렇게 하나 둘, 100배를 채워갔다. 1분당 1배꼴로 진행돼 초심자도 부담이 없을 듯했다. 각 1배에 의미를 부여하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다만 100대 서원의 문구들은 쉽지 않았다. 가슴에 절절히 파고들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마음을 끄는 구절이 있었다. ‘사회 문제의 책임이 양심을 따르지 않는 자신, 종교인, 지식인에게 있음을 직시하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때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진리를 생각하며’ ‘상대의 개성과 가치의 존귀함을 이해, 존중, 감사하는 진리의 삶을 다짐하며’ ‘현실적으로 자기에게 엄격하고 상대에게 관대한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절을 올립니다.’
흉흉한 사건 사고가 매일처럼 넘치게 발생하고 있는 현 세태를 타개할 근본적인 해결책이자 스스로의 삶을 반성할 수 있는 부처님 가르침의 현재적 구현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왜 정진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 의견에 일면 동의했었다. 1000일 정진이 종단과 한국불교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정진에 동참하면서 의심과 의문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불자로서 나와 이웃과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있었을까.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그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여전히 방황하며 내 안이 아닌 바깥에서 원인을 찾고 원망할 것이다. 한 중진 스님은 “중생에서 잊히고 비난 받고 관심 밖에 있으면 불교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이 1000일 정진을, 결사를 해야 하는 이유다.
‘남도 붓다로 볼 수 있는가’
다시 10분간의 명상. 애초에 세웠던 화두를 가만히 들어본다. 단박에 풀리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붓다인가’라는 의심과 ‘남도 붓다로 볼 수 있는가’ 하는 화두는 숙제로 남겨두고 마지막 3배를 올렸다. 삶의 변화를 이끌고 많은 것을 이루기에 2시간의 정진은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계기’를 만들었다는데서 의미를 찾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짧게나마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이나 가정, 직장 등의 문제로 생기는 마음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를 위해, 가정, 사회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점에 그렇다. 정진단 한 편에는 정진 대중의 소박한 기록이 적힌 작은 노트가 있었다. ‘내가 남기는 생명평화의 글’, 거기에 한 줄을 보탰다.
정진을 마치고 나선 하늘은 어느새 어두움을 거두고 청정한 햇살을 내리쬐고 있었다. 생명평화 1000일 정진은 오는 2014년 12월22일 회향한다.
■ 1000일 정진 동참하려면…
365일 24시간 열려 있어
‘누구나 가능’…원한다면
야단법석.걷기명상도
생명평화 1000일 정진은 누구나 동참할 수 있다. 불자만 된다는 제한 조건도 전혀 없다. 정진의 첫 테이프를 끊은 기도자가 김봉규 제주 강정마을 홍보부장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타종교 성직자나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각계각층의 대중이 동참하고 있다. 정진단(壇)은 정진이 회향하는 날까지 365일 24시간 열려있다.
정진에 동참하려면 조계종 홈페이지(www.buddhism.or.kr)를 방문하면 된다. 초기 화면의 ‘생명평화 1000일 정진에 참여하세요’ 배너를 클릭하면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신청할 수 있다. 1시간을 기본으로 하며 연장도 가능하다. 정진단 공간이 협소하지 않아 성인 기준 3명까지는 함께 정진할 수 있다.
1000일 정진이 아니더라도 자성과 쇄신 결사의 뜻에 동조한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다. 야단법석이 그것이다. 야단법석은 시즌3를 맞아 연극과 결합한 대중공사를 매월 1차례 무대에 올리고 있다. 지난 7월 우바이를 주제로 시작한 이래 우바새, 비구, 비구니, 미래세대 등을 다룰 계획이다. 매주 화요일에는 민족화해.평화통일.한반도 생명평화 공동체 실현을 기원하는 걷기명상이 진행된다. 오후6시 1000일 정진단(壇) 앞에서 출발해 조계사 일원을 순례한다. 걷기명상은 자발적인 사부대중 결사모임 ‘붓다로 살자’가 주관하고 있다.
행사 동참이 어렵다면 자신의 삶 속에서 결사를 실천하는 방법도 있다. ‘붓다로 살자’가 제안한 실천행은 △매일 붓다로 살자 서원문 읽기 △매일 100원 이상 보시하기 △가족 이웃에 붓다로 살도록 권유하기 △열린 자세로 남의 말 경청하기 △누구에게나 진실 되고 따뜻하게 말하기 △소박한 밥상과 음식 남기지 않기 △매주 하루 자가용 없이 다니고 전기 아껴 쓰기 △매주 동네 한 바퀴 걸으며 삶의 터전 살피기 △이웃과 인사하며 따뜻한 공동체 가꾸기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