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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3일 잠실교회 모리아성전에서 알오티시 동기생 모임시 설교한 내용입니다. 도움이 될 것같아서 참고적으로 게재하였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귀히 쓰임 받는 믿음의 그릇
성경구절 : 딤후 2장 20-21절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방금 읽은 말씀을 보면, "누구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하게 쓰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깨끗함”이 귀히 쓰임 받는데 가장 중요한 첫 번째 필요, 충분조건이라는 것입니다.
금그릇, 은그릇은 재료로 볼 때는 귀한 그릇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금그릇, 은그릇으로 만들어졌더라도 깨끗하지 않고 지저분하고 이상한 냄새가 난다면, 그 그릇은 더 이상 귀히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이라도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어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귀하게 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보다 스펙(학력, 학점, 자격증)이 뛰어나고 화려한 경력과 재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의 마음이 더러운 욕망과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도덕적으로 오염되어 있다면, 결코 귀하게 사용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하는 동기생은 먼저, 그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죄와 이단과 세속과 나태함으로부터 자신을 잘 지켜내야만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깨끗한 동기생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노아가 살았던 시대보다 더 악한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세상풍속을 따라 살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잘 지켜내야 합니다. 또, 이단에도 감염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단은 치명적인 병을 전염시키는 짝퉁입니다. 결코 구원받지 못하는 이단에 속아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영적으로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창조물임에는 틀림없지만, 하나님 그 자체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위대한 이유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위대한 질문을 했기 때문입니다.이 말은 그가 인간의 연약함을 절감하며 겸허했다는 뜻입니다. 위대한 질문은 가장 근본적인 것에 대해 가장 구체적으로 묻는 것입니다.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위대한 질문들의 특징이다.
또,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표현한 파스칼은 팡세에서 ‘중간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다만 그 중간자이다. 천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강한 욕망이 있고, 악마라고 부르기에는 그나마 빛나는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은 자신을 ‘티끌’이라고 했고, 야고보는 ‘안개’라고 표현했으며, 욥은 ‘구데기요, 벌레같은 인생’(욥 52:6)이라고 하였고, 다윗은 ‘죄악 중에 잉태한 죄인’이라고 말하였으며 사도 바울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공통점은 성 어거스틴의 표현대로 ‘우리 인간 모두는 한 시라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잠깐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단 1분, 1초라도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제가 일전에 개척학교에 다니면서, 첫 번째 자신에게 물어본 것이 ‘핵심가치, 비전, 사명’이라는 3가지 단어 였습니다. ‘핵심가치’라고 하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자격증, 쉽게 말씀드리면 ‘달란트’를 말합니다.
두 번째는 ‘비전’, 내 자신만이 가진 꿈, 즉,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어린아이들을 위해서 목회할거냐, 청소년들을 위해서 아니면 노인들을 위해서, 다문화 가정을 위해서, 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는 수형자들을 위해서, 또는 부모형제와 떨어져 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는 군부대 장병들을 위해서인지? 그 대상에 따라서 꿈이 다르고 지역(도회지, 시골 등)에 따라서 상가교회를 할 것인지, 전원교회를 할 것인지,학교 강당을 빌려서 할 것인지, 길거리 목회를 할 것인지 그 종류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사명’은 단순한 'calling'(부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고와 그 과정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표현할 때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좋은 모양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어떤 ‘핵심가치’를 가지고 있고 또, 어떤 ‘비전’과 ‘사명’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분명히 밝히고 비전선언문과 사명선언문을 만들어, 공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하나님의 편’인지, 아니면 ‘세상의 편’인지를 먼저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을철에 강원도 양양 남대천이나 섬진강에 가면, 산란을 하기 위해서 바다에서 강을 거슬러 상류로 헤엄쳐 올라오는 연어떼를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장관을 이룹니다. 캐나다 카필라노강 주변에는 강 위로 유리바닥을 설치해서 관광객을 유치하기도 합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삶의 목표를 가지고 죽기 전에 ‘종족 번식’이라는 꿈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뚱이의 이곳 저곳에서 상채기가 나고 피부가 벗겨져도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3-4년에 걸쳐 알래스카까지 가는 긴 여행 중에 자신보다 큰 물고기들에게 잡혀먹힐 수도 있는 수많은 위험을 극복하고 70-80센치 크기의 성년 연어가 되어 수천 km를 헤엄쳐 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인생도 삶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DNA를 가지고 내 눈 앞에 아무리 어려운 여건이 닥쳐오더라도, ‘나도 이 땅에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동기생들은 하나님께 아주 귀히 쓰임 받은 귀한 존재들입니다. 젊어서는 나라를 위하는 애국충정의 일념으로 장교를 자원하여 전,후방에서 초급장교로 출발해서, 군의 고급간부로 군복무를 마친 동기생도 있고, 국가 기업체와 회사의 CEO로서 지사충성하다가 이제는 남은 후반기 삶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서, 또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 땅 위에 드러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귀히 쓰임을 받아 다 닳고 닳아서 없어지는 것처럼 복되고 감격스러운 일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쓰임 받지 못하고 인생을 마치는 것만큼,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도 없습니다. 잘 생기고 못생기고는 중요한 잣대가 아닙니다. 재능이 있고, 없고 하는 문제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잣대는 오로지 마음입니다. 중심입니다. 삼상 16 : 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중심이 더러운 것으로 가득하고, 탐욕과 정욕, 시기와 질투로 가득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결코 귀하게 쓰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그 중심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깨끗한 중심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도 귀하게 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동기생 여러분 ! 오늘 이 시대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인 줄 아십니까?
겉모습입니다. 외모도 실력이라며 성형외과에 가서 화려하게 꾸미고 뜯어고치고, 몸짱 되려고 헬스크럽에 다니고 그렇게 할 형편이 못되면, 산이나 고수부지에서, 심지어 아파트 단지 내 지하주차장에서도 난리입니다. 땀을 흘리고, 스펙(학력, 학점, 자격증)을 화려하게 만들고, 이력서를 잘 꾸미려고만 덤비는 시대입니다. 또 그런 사람들만 알아주는 시대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그렇게 해서 인정받으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은 중심이 바로 선 사람, 중심이 깨끗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중심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윤리적으로 순결하고 정결하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사울 왕처럼 하나님이 쓰시다가도 그 중심이 교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그래서 불순종하려는 마음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을 위해 지사충성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이런 깨끗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결코 쓰시지 않습니다. 결국 버림받고 맙니다.
또, ‘깨끗한 그릇’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이, 우리의 생활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대의 물질주의나 세속주의, 쾌락주의에 물들지 않고 성도의 윤리적 순결과 정결함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깨끗한 그릇입니다. 사탄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지 못하도록 세속에 물들게 하고, 죄에 물들게 하여 우리를 더럽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거룩하게 지켜낼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과 결코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던 요셉이나 다니엘처럼, 성도가 되는 우리 동기생들은 거룩하고 깨끗하게 사는 것이 바로 축복의 비결입니다. 또, 정직과 진실만이 이 시대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귀히 쓰임 받는 믿음의 그릇’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지금부터라도 깨끗한 그릇이 되려고 노력하십시오. 겸손히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거룩한 삶을 살 때에만, 우리의 기도는 담대해지고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 있는 일꾼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보다 정직해야 하고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도 많고, 학벌 좋은 사람도 많고, 실력 좋은 사람도 많고, 가진 자도 많은데, 가만히 따져보면 흠집투성이어서 정말로 ‘제대로 된 사람, 쓸 만한 사람’은 찾아보기가 여간 힘들다고들 합니다.
요즈음 국회에서는 주요 공직자가 되려는 분들의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는데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 전입, 증여세 탈루를 위한 편법 증여, 편법 절세, 고의적인 병역면제, 재산 신고 누락, 국고를 가지고 부부 동반 해외출장, 전관 예우 문제 등이 불거져서 나올 때면, 아주 답답하기만 합니다.
거짓은 결국 자신을 죽이는 행위입니다. 지난 번 총선에서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자가 "논문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사퇴 압력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학문 세계에서 '논문 표절'이라는 행위는 진실과 사실만을 다루어야 하는 학문 그 자체에 대한 배반의 행위로 진실에 대한 도둑질이고, 거짓으로 진리를 사는 비양심적인 행위로 보는 이유입니다.
또,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의 진실성'입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화려하게 말해도 진실하지 않은 언어를 쓰는 것을 느끼게 되면, 갑자기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도들인 우리 동기생들은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정직하게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정직이 무너지면 인생의 모든 것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함으로써 우리 동기생들의 인생이 얼마나 행복해지고, 또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 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시 101:7)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왜 거짓말을 계속 할까요? 그것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악한 거짓의 영, 사탄마귀에게 매번 설득당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제, 딱 한번이다. 이번 한 번만 거짓말을 하고 잘 넘어가면 일생을 잘 살 수 있어..."라고 온갖 감언이설로 포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도 사탄의 요구를 한번 받아들여 그가 움직이는 대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거짓을 말하는 자는 눈 앞에 보이는 당장은 적당히 눈가림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분의 미래는 결코 보장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려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잠언 12:19). 그러므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때 그 거짓으로 인하여 피해를 보는 자는 속임을 당한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우화에서 보는 것처럼, 소년이 여러 번 거짓말을 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자는 속임을 당했던 마을 사람들이 아니고, 결국에는 거짓말을 하였던 소년 자신이었음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홍수 속에서 마실 물을 찾기가 쉽지 않듯이, 사람은 많은데 ‘쓸만한 사람’ 찾기가 여간 어려운가 봅니다. 요즈음, 새 정부에서 함께 일할 ‘깨끗한 사람, 제대로 준비된 사람’을 두루 찾듯이, 우리 하나님께서도 구인난을 겪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기를 원하는 동기생들은 먼저 중심이 깨끗한 사람이 꼭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세상 청문회보다 더 어려운 것이 우리 동기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인생청문회입니다.
이곳은 말장난하는 곳이 아닙니다. 다수당이라고 횡포도 부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명체로 태어난 이상, 100세가 되든, 150세가 되든, 언젠가는 이 세상과 이별을 하게 되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인생청문회장에서 발가벗은 상태로 서야 합니다.
어느 장로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 천국문 앞에 가서 ‘계십니까?’ 하고, ‘똑 똑 ’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나오시기에 ‘여기가 천국이 맞지요? 제가 천국에 들어갈려고 왔습니다’라고 말하니까, 그 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를 나의 천국에 들여보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시더랍니다.
이러한 경우, 우리 동기생들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군에서 높은 계급에 있었기 때문에, 아님 훈장을 많이 받아서, 아님 돈 많이 벌어 자선사업을 많이 해서, 사회의 배려대상자들에게 숨은 봉사활동을 많이 해서, 기업체의 사장이나 고위공직자가 되어 평생 국민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기 때문에, 아니면 교회에 헌금을 많이 내고, 교육혜택을 못받는 소외계층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까?
아니지요. 정답은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기생들은 주님을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이제 걱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친히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우리 믿음의 동기생들을 위하여 대변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14:6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행4:12절을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주인의 쓰임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20-21절)
딤후 2장 20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 뿐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즉, 본문의 내용은 <값비싼 그릇이 반드시 귀한 그릇이 아니다>는 사실입니다. 그릇의 종류에는 금, 은, 나무, 질그릇의 4종류가 있는데, 값비싼 금 그릇이라고 해서 꼭 귀한 그릇이 아니고, 단지 흙으로 만든 질그릇이라고 해서 반드시 천한 그릇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그릇에는 주인이 ‘귀하게 쓰는 것’과 ‘천하게 쓰는 것’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그릇이 귀히 쓰는 그릇일까요? 주인 어르신의 식사용으로 매일 소중하게 쓰는 그릇이 귀한 그릇입니다. 쓰지 않고 진열장에 보관하거나 방치된 채로 놓아두었다가 손님 접대용으로 어쩌다가 한번 사용하는 그릇은 좋은 그릇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동기생들을 우리 하나님께서 죽기 직전까지 날마다 필요한 곳에 유용하게 사용하신다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그릇이 녹슬거나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서 깨지지 않고 맡은 바 사명을 다하고 닳아 없어질 수만 있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또,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릇이 제 아무리 금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제자리에 잘 정리정돈이 되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비우고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잘 준비된 그릇’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용도로 쓰임을 받았는가? 하는 문제는 평상시 그릇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었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고 봅니다.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도 쓰기 불편하고, 깨지기 쉬운 고집불통의 그릇이라면 사용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그릇, 순종하는 그릇은 주인을 항상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릇 모양에 따라서 물과 같이 잘 순응할 수 있도록 훈련된 성도나 동기생들은 교회 안에서도 다른 성도나 동기생들에게 기쁨을 주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인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 20개에 팔려 비록, 애굽 친위대장 보디발의 가정총무로 있었던 요셉이 주인 보디발의 아내 유혹을 거절하면서 “이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하며 옥에 갇혔으나, 창 39: 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하여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조금 억울하고 손해보는 것 같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우리 동기생들도 요셉과 같이 신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그 외에도 나이 85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헤브론 산지를 치러 올라간 갈렙, 바울을 도와 복음 전파하는 일에 힘썼던 믿음의 동역자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 부부, 지혜가 총명하고 뜻을 정하여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한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 친구들, 교회를 화평케 했던 바나바, 어렸을 때부터 신앙으로 무장된 디모데와 같이 겸손하고 순종한 사람들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자식들도 아버지 세대보다 더 귀하게 쓰임 받아야 하고 우리 동기생들 가정도, 우리 동기생들도 이전보다 더욱 더 귀하게 쓰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장중의 손에 붙들려 한평생 귀하게 쓰임 받으며 살다가 천국 가서 잘했다 칭찬 받는 것보다 더 신나고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주님께서 쓰시고자 할 때 깨끗한 상태로 제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습니다.
또, 부엌에 그릇이 많아도 그 때 그 때 합당한 그릇이 따로 있습니다. 그 상황에 합당한 사람, 그 시대에 합당한 사람, 그 사명에 합당한 사람, 그 일에 합당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동기생 여러분!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 응답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주님이 부르 시는데 아직 준비가 덜 되어서 응답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아주 부끄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탁드립니다. 올해에는 날마다 경건의 훈련을 쌓고,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십시오.
성경이 총 66권이고 총 1,189장, 30,983절이므로 하루에 3-5장씩 읽으십시오(평일 3장, 주일 5장) 그러면 1년에 일독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우리 동기생들을 적재적소에 쓰시려고 반드시 찾으시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인생의 승패는 <토기장이 되시는 우리 하나님>의 장중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릇의 재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릇을 사용하는 용도’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 인생들은 어떤 조건하에서라도 우리 하나님께서 쓰시면 성공할 수 있고, 쓰지 않으면 실패하는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 귀한 사명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장중의 손에 붙들림 받을 때에만, 우리 인생의 가치는 달라지고 삶의 질이 확연하게 변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모든 선한 일에 쓰임 받도록 준비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1절 하반부를 보면,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 에서 '선한 일'이란 용어는 24번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서신서에서 17번에 걸쳐 '선한 일'이란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선한 일' 이란, 말 그대로 행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행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이제, 우리 동기생 모두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다시 한 번 올 수 있도록 군 선교 연합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선한 사마리아 운동’(‘선사인’ 운동)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야 합니다. ex)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이 친구와 함께 눈이 내리는 산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한참을 가다보니 한 사람이 길에 쓰러져 얼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썬다 싱>이 업고가자고 제안하니 친구는 ‘우리도 얼어죽을 판인데 누가 누구를 도와주느냐’고 하며 혼자 산을 내려갔습니다. <썬다 싱>은 양심상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그 사람을 등에 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업혀있던 그 사람이 뜨거운 체온에 의해서 정신을 차렸고, 둘은 같이 걸으면서 산을 내려갈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혼자 살겠다고 먼저 하산한 그 친구는 마을 어귀 길바닥에서 이미 얼어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이웃을 살리겠다고 나서면, 결국에는 나도 살고 이웃도 함께 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선교 130년만에 25,0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요(OECD회원 국가), G20 서울 정상회의 의장국가(2011년)였으며, 핵 안보 정상회의 의장국가(2012년)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최근 개인 이기주의와 황금 만능주의가 우리 사회의 도처에 팽배하고 있어, ‘이혼, 낙태, 성형수술, 자살율과 더불어 음란지수(인터넷 음란물 접속 2위인 일본보다 3.5배 많음)가 세계1위’라는 심각한 위험수준에 이르고 있고, 최근 동성애 숫자도 급속도로 증가일로에 있습니다.
또, 우리 나라 기독교인 수는 군에서 ‘비전 2020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중복산정 등의 이유로 1,000여만명에서 800여만명으로 점점 줄어드는 추세에 있고, 주일학교 학생 수도 20년전보다 1/2 수준으로 감소추세에 있으며, 사회분위기도 안티기독교 성향이 증가 추세에 있고 교회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사회윤리와 도덕성의 상실 등으로 인한 향락산업은 연간 매출액이 약 26조원에 육박하고 있어 ‘잘 사는 나라’에서 ‘위기의 나라’로 전략될 상황에 봉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신문의 사회면은 소위 ‘묻지마 범죄’라고 불리는 사건사고들로 도배되어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 없는 문화’를 찾고 있습니다.
북한문제도 심각한 암흑기를 치닫고 있습니다. 혹자는 우리의 다음 세대가 ‘미전도 세대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과연, 한국 교회에도 비전이 있는가? 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21세기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새로운 <블로오션 전략>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로 재무장 하는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
장로 대통령이 퇴임후 소속 교회로 복귀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더 이상 발생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대형교회를 향한 수평 이동의 문제점 등을 조속히 보완 하여야 합니다.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완벽한 ‘하나님 앞에서’라는 신전의식(코람데오, Coram Deo)을 가지고 언행이 일치된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이 세상의 ‘빛된 사명’과 ‘소금된 직분’도 잘 감당하고,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향해서 최선을 다해 전진해야만 됩니다.
또, 우리는 ‘피스 메이커(Peace Maker)’ 즉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화평한 그릇을 즐겨 사용하십니다. 가는 곳마다. 이 그릇, 저 그릇과 부딪쳐 깨뜨리기를 좋아하는 그릇은 결코 좋은 그릇이 될 수 없듯이, 가는 곳마다 괜한 트집을 잡아 싸우고 남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안겨주는 사람은 결코 좋은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이들은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평을 이루기 위해 이웃과 다투지 말고 온유하게 잘 참는 성격도 가져야 합니다.예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이라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시고 마지막 기도하실 때,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때까지 인내하시며 기도하셨다는 사실도 우리 동기생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기도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링컨 대통령은 매우 열심히 기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북 전쟁이 시작되어 많은 병사가 죽어갈 때마다 동족을 잃은 쓰라린 아픔을 안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각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하던 중 어느 각료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하, 저희는 하나님께서 우리 북군 편이 되시어 북군이 승리하게 해 달라고 날마다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자, 링컨 대통령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장관, 그렇게 기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항상 무릎을 꿇고 하나님 편에 서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 동기생들께서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위해서, 어떤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내 뜻을 들어주시지 않으면....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하겠습니다”고 하면서 으름장을 놓고 독촉장이라도 보내듯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때에 따라서는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우리가 먼저 겸손히 무릎을 꿇고 ‘그의 나라와 그(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마6:33), 다시 말해서, 제가 2013년도에 우리 주님께 제대로 쓰임 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그 분의 음성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최근 중앙일보 신문기사 내용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끝을 맺겠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에게 지난 해 12월 19일 한 ·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 하면서 ‘한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 평화와 안정의 핵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여기서 ‘핵심’이라는 말은 ‘린치핀(linchpin, 동반자)이라는 용어입니다.
이 말은 ‘자동차나 마차 또는 수레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을 말합니다. 외교적인 용어는 ’공동의 정책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동반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우리 동기생들께서는 금년도에 내가 맡아서 담당하고 있는 일이 ‘선한 일’이라면, 우리 모두 <우리 주님께서 귀히 쓰는 믿음의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내가 없으면 우리 동기생 모임의 한쪽 바퀴가 빠진다”는 마음가짐으로, 각자 맡은 자리에서 묵묵히 ‘린치핀’의 역할을 잘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우리 다 같이 옆에 계신 동기생을 마주보시고 “올해에는 귀히 쓰임 받는 믿음의 동기생이 됩시다”라고 이야기 해보세요. 올해에는 우리 모두 두 바퀴 중 한쪽 바퀴의 축이라도 빠지지 않도록 고정핀 역할을 잘 감당하는 ‘린치핀 (동반자) 같은 동기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비록 일시적인 어려움은 있겠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반드시 선한 결실을 이루게 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2013년도에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되는지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 채, 개인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도처에 팽배하고 있고 사회 윤리규범과 도덕성의 상실 등으로 인하여 ‘위기의 나라’로 전략되고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 없는 문화’를 더 많이 찾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모두 하나님의 눈과 귀가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지금도 열려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올해에는 우리 동기생 모두 주님께서 귀히 쓰시기에 합당하고 깨끗한 그릇들이 되어 각자의 가정과 교회와, 지역사회와 내 조국 대한민국에서 제 때 쓰임받고 닳아서 없어지는 귀한 인생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중물같은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빛된 사명과 소금된 직분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사회의 추하고 더럽고 악취나는 제반 병리현상에 대해서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도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것, 육신의 정욕(탐욕)과 안목의 정욕(인기 숭배)과 이생의 자랑(명예욕)을 먼저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도록 은혜주시옵소서.
또, 우리 모두 인류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겨 잘 선용함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손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시선도 멈추게 하고 또,
하나님의 마음도 감동시킬 수 있는 은총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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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말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너무 감동입니다
정말 귀하고 복된 말씀에 감동 짱이었고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이영우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