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한성고등학교 1학년 11반 성명규
요 이틀 간 내린 비는 황사로 인해 뿌옇던 마을을 정화시켜준, 아주 고마우면서도 귀한 손님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전에는 ‘비’라는 단어만 나오면 질퍽거리는 것이 기분 나쁘다고 인상을 찌푸렸거늘, 이제는 ‘어이구, 천지신명님, 감사하오!’ 하면서 하늘에다가 외치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가장 신난 것은 다름 아닌 박 노인이라고 불리는 올해 칠순을 맞이한 박 광만 노인이었다.
“허이고! 날씨 좋-다!”
박 노인은 한국 전쟁 때 월남해온 피난민이었다. 때문에 전쟁 후 이 마을에 정착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수모를 겪었었다. 여러 번의 조사를 당하는 것은 기본이오, 빨갱이라 매도당하며 돌팔매질을 당하는 것은 가장 큰 아픔이었다. 그래도 그는 꾹 참았었다. 돌아갔어야 할 곳도, 이제는 막혀 있음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그 참고 참음이, 지금의 그의 성격을 조성했음에는 두말 할 것도 없었다.
박 노인은 기지개를 크게 피고는 거리로 나섰다. 이제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박 노인이 ‘빨갱이’라는 것을 마음에 두고 슬금슬금 피하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보는 박 노인의 눈은 서글픔과 비슷한 뭔가가 담겨있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서 멍 하니 있던 박 노인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표정을 웃는 얼굴로 바꾸고는 뒷산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아침의 산은 신비롭다. 그것은 어떻게 말로 형용하기가 힘들다. 풀잎 끝에 위험천만하게 매달린 물방울. 지난밤에 배를 곯았는지 연신 짹짹대며 돌아다니는 새들. 곧고, 또 곧아서 분명 끝이 존재할 것임에도 그 끝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고고한 나무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입으로 하여금 ‘경탄’을 내뱉게 만들었다. 박 노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흐흠, 역시 산은 아침에 와야 제 맛이지. 껄껄.”
박 노인은 산 아래의 마을을 바라보았다. 마을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얼마 전의 황사로 덮인 뿌옇던 마을은 사라진 것이었다.
“이 정도라면, ‘그 곳’이 보이겠구먼.”
박 노인은 갑자기 얼굴을 붉히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은 차마 밖으로 내지르기엔 부끄럽고도, 아까운 쾌재였다.
“얼씨구, 자네, 드디어 미친 겐가? 웬 오두방정인가, 오두방정은.”
별안간 들이닥치는 소리에 박 노인은 고개를 돌려보았다. 소리의 주인은 여기서부터 기껏해야 2리 정도 떨어져있는 곳에 위치한 건너 마을의 김 득순 노인이었다. 박 노인보다 5년 연상인 김 노인은 서로 호형호제하는 ‘의형제’ 사이였다. 김 노인은 그 익살스러운 말투와 유쾌한 성격 탓에, 건너 마을에서는 물론, 이쪽 마을에서도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주로 칭찬) 인물이었다. 게다가, 박 노인에게 있어 김 노인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존재로써 자리 잡고 있었다. 김 노인이 있었기에 지금의 박 노인이 존재한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박 노인이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박 노인이 ‘노인’이 아니라 ‘젊은이’였을 때이다. 산 넘고, 물 건너서 혼자서 힘들게 피난 온 박 노인에게 의지할 사람이라곤 단 한명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무뿌리 하나쯤 캐서 나눠먹자는 사람은 있겠지, 하고 가졌던 기대 역시 돌팔매질을 맞음과 함께 무너져버린 뒤였다.
‘에에, 빨갱이! 빨갱이다!!’
‘죽여라!’
‘죽여! 없애!’
박 노인은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하였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힘도 나지 못했거니와, 희망도, 기대도 무너져 내려서 맥이 풀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날아오는 돌을 그대로 얻어맞으며, 죽음을 기다리던 박 노인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김 노인이었다.(김 노인 역시 이때는 딱 벌어진 어깨를 자랑하는 젊은이였다.)
‘자네들 참으로 한심하이. 빨갱이면 어떻고, 또 파랭이면 어떤가? 왜놈이나 코쟁이들만 아니면 되는 거지 무얼. 하여간, 요즘은 너도 나도 코쟁이 물을 잔뜩 마셔서 극단적이야. 극단적. 에이, 썩은 세상.’
분명 비꼬는 투의 말투였지만, 돌을 던지던 마을 사람들은 행동을 멈춘 채, 고개를 숙이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어찌하여 저 사람의 한 마디에 모두가 저렇게 벌벌 떨 수 있는가! 어찌하여 저 사람은 모두를 굴복시킬 수 있는가! 박 노인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을 되뇌고 되뇌었다. 그 뒤에 이어질 김 노인의 말은, 박 노인의 마음에 그대로 박히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고 있었다.
‘허, 이 사람, 온 몸이 피투성이구만. 에라이! 못된 사람들 같으니! 멀쩡한 사람을 진짜 빨갱이로 만들고 빨갱이, 빨갱이 하면서 괄시를 해?’
멀쩡한 사람. 박 노인에게 이 말은 월남 후에 들어본 말 중, 가장 따듯한, 가장 인간다운, 가장 갈구했던 말이었다.
“형님 오셨소? 마침 잘되었소. 저길 보시오, 저길. 마을이 훤히 보입디다. 하하하!”
박 노인은 어린 아이의 그것처럼 이를 훤히 드러내놓고 깔깔대며 웃었다. 김 노인은 그런 박 노인의 모습을 보며 그저 소리 없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 요 며칠 간 그 재수 없는 황사 때문에 마을이 가리지 않았소? 감히 모랫바람 주제에 우리 마을을 감싸다니, 참으로 역정이 났었거늘, 이것 보시구려. 우리 마을은 물론, 형님네 마을도 한 번에 보이니, 이 어찌 안 웃을 수 있겠소?”
김 노인은 박 노인의 눈길을 따라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광경은 정말 박 노인의 말마따나, 훤히 보일 정도로 맑디맑았다.
“어, 나도 갑자기 오두방정을 떨고 싶어지려나,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원.”
“어떻소, 이젠 이 아우님이 제정신이란 것을 알아주겠소?”
“흐음, 내, 사과함세. 그나저나, 이렇게 맑으면 예의 ‘그 곳’이 보이겠군.”
박 노인은 김 노인이 그 말을 하는 것을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몸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수십, 수백 말로만 떠들어도 보기 전까지는 소용은 없소. 자, 갑시다. 형님.”
김 노인은 오래간만에 보는 박 노인의 기운 넘치는 모습에 마주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다 늙은 두 의형제는 숨을 할딱거리며 기어가듯 ‘그 곳’을 향해 산을 올랐다. 아무렴 허리가 꼿꼿하고 건강하다고 해도 노인은 노인이었다. 두 노인은 온 몸이 쑤시는 고통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인상만 찌푸렸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노인이 도착한 곳은 나무나 이웃 산에 의해 시야가 방해되는 곳이 아니었다. 확 트인 장소였다. 마치 천지개벽이 일어난 장소와도 같은 이 곳은 흔히 도회지에서 ‘전망대’라고 부를 만한 곳이었다. 두 노인은 그제서야 억눌린 고통을 입으로 내뱉었다.
“하이고, 죽겠소.. 허허, 형님, 괜찮소?”
“에이, 자네가 그런데 내가 과연 괜찮을까?”
박 노인은 김 노인의 말에 깔깔대고 웃으며 크게 기지개를 피고는 시선을 어느 한 곳에 못박아두었다. 그러한 박 노인의 행동에 김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뭔가 보이나?”
박 노인은 또 다시 깔깔대었다. 김 노인은 이해 못하겠다는 듯, 자신도 기지개를 피고는 시선을 박 노인이 바라보는 그 곳으로 향했다.
“어- 보인다. 보여!”
“언제 천지신명께 빌어야겠소! 비 내려주셔서 감사하외다! 하하하..”
늙은 두 의형제가 바라본 것은, 휴전선 너머, 이북의 땅이라고 알려진 곳이었다. 작디작은 건물이 드문드문 있는, 흔히들 ‘위장마을’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주체사상’ 이라고 적인 간판도 보였다. 박 노인은 순간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형님, 나, 여기 오기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소.”
김 노인은 박 노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난 말이오, 다시 태어난다면 새가 될 것이오. 새. 그것도 천하를 호령하는 매가 되기보다는, 참새가 되고 싶소.”
김 노인은 별안간 무슨 소리냐,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박 노인의 얼굴이 매우 서글퍼 보인다는 것이었다.
“천하를 호령하는 매가 더 좋지, 왜 하필 조잘대는 참새라더냐?”
“참새는 제 친구와 같이 조잘대며 같이 날아다니오. 매는 제 몸밖에 모르는 독불장군이오. 나는 참새로써, 저 이북에 가서 또 다른 참새와 친구가 될 것이외다. 그리고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풀지 못한 한을 풀 것이외다.”
박 노인의 뺨이 눈물로 젖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노인은 웃고 있었다. 원래 남한 출신인 김 노인이었지만,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박 노인의 마음의 간절함 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보게나, 아우.”
“으음?”
“굳이, 죽어서 새가 되려고 하지 말게. 우리는 이미 새일세. 천공을 가르며 나는 새 말일세.”
박 노인은 눈물을 훔치며 무슨 소리냐는 듯 김 노인을 바라보았다.
“나는 말일세, 저 북한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도 해 왔다네. 하지만, 그것은 자네처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 ‘미지의 땅이 가지는 신비에 대한 호기심’이었지.”
김 노인은 바닥에서 작은 자갈을 줍더니, 허공에다가 휘익, 하고 던지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도, 나도, 날개가 있다네. 우리뿐만이 아니라, 분단된 역사를 아는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지. 하지만 그 날개의 질은 천차만별이네. 자네처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날개를 가진 사람들은 최고급의 날개이지. 몸뚱이는 참새보다 왜소하더라도, 그 날개만큼은 수리보다도 크다네.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높이, 오래 날 수 있다네. 결코 떨어지지 않지. 마치 자네가 계속하여 저 곳을 동경하듯이 말이야. 나같이 ‘호기심’이라는 날개를 가진 사람은 중급의 날개이지. 새의 몸뚱이와 날개의 크기가 같다네. 오래는 날지 못하지만, 그래도 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그러한 날개를 가진 사람들은 가고는 싶어 하지만, 동경하지 않지. 대부분의 사람이 여기에 속할 걸세. ‘무관심’이라는 날개를 가진 사람들은 닭의 날개라네. 몸뚱이가 날개보다 크지. 이네들은 날지 못한다네. 말이 좋아 날개지, 개꼬랑지만도 못한 것에 불과하지. 그들은 결국 흑백논리에 사로잡혀서, 북한과 남한이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는 서로를 헐뜯고, 미워한다네. 저주받아 마땅하면서도 불쌍한 이들이지. 으음, 말이 길었구먼.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의 마음이 곧 날개라네. 그 마음이 지속됨에 따라서 날개는 더욱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퇴화되지.”
“...”
“우리는 새라는 것을 명심하게. 그 중에서도, 자네와 나는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진 새’일세. 결코 ‘죽어서’라는 말을 하지 말게. 언젠가 이 보이지 않는 날개를 펴고, 당당히 날아오를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는 걸세.”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새가 날아올랐다. 아까 김 노인이 던진 자갈 때문일까, 이윽고 몇 마리가 더 날아올랐다. 그들은 김 노인을 찾으려는 속셈이었는지 위에서 빙글빙글 돌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들은 다시 자신들이 날아올랐던 그 곳으로 내려갔다.
그 광경에, 김 노인은 껄껄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새들은, ‘네 새’와 ‘내 새’가 아닐세. ‘우리의 새’이지. 저 새들도, 그 점을 방금 내가 던진 돌에 맞고 깨달은 모양이구만.”
갑자기 수많은 새들이 날아올랐다. 퍼드덕, 퍼드덕거리는 것이 마치 천둥소리와 흡사했다. 그리고 그 많은 새들은 두 의형제가 바라보던 이북 땅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