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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서원을 통해 부산지역에서 인문학적 지성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김기현 목사를 찾아가보았다. 이 서원활동은 하나님께서 기독교적 지성과 은총가운데 주신 문학, 역사, 철학, 과학, 예술, 신학, 전기 영역의 책을 통한 인문학적 지성운동인 동시에 사람을 세워감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고 있었다.
목사님은 매우 활발한 집필활동을 하시는데, 얼마 전에는 로고스서원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로고스서원이 만들어진 과정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처음 부산에 왔을 때는 부목사로 목회를 했습니다. 그 때는 너무 지치고 영적으로 약간 고갈도 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담임 목사님과 교인들이 잘 대해주셔서 2년 동안 재미있게 열심히 했습니다. 그 교회가 저를 후임으로 삼는 것을 거의 공식화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물려받는 것이 젊은 저에게는 안일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찰나에 기존의 담임목사님과 원만한 관계를 갖지 못하고 있던 몇 분이 흩어지지 말고 함께 교회를 개척하자고 하기로 하고 저에게 연락을 해왔어요. 처음에는 그 분들이 교회에 대한 비판을 할 때는 생각들이 바르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이전 교회에서 목회자로부터 상처를 받은 분들이다 보니 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동시에 리더십에 대한 불신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를 저에게 푸는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갈등이 생기게 되었고, 해결해보려고 1, 2년 정도 노력을 했지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라는 책이 나온 것입니다. 고통에 대한 문제가 현실이 된 거니까요. 이런 얘기하는 것은 참 힘들지만, 교인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80%나 되는 교인이 4년 동안 나를 나가라고 했습니다. 자연히 자아정체성의 혼돈도 생겼습니다. 책도 쓰고, 대학 강의도 하고, 강연도 하러 다니고, 잘나지는 않아도 최소한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부족하지만 문제 있을 정도로 모자란다거나 인격이 탁월하지는 못해도 평균은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 왕따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심지어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목사님은 우리가 내는 헌금으로 사니까 우리 말을 들어야지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의식이, 필름이 끊어지더라고요. 4년 정도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목회가 싫어졌는데, 그래도 해야 하니까 설교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학교, 연구소, 출판사 등 다른 곳들을 알아보았는데, 어떤 곳에서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막으신 거고요.
교회도 작은데,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할 일이 없어서 책만 읽었습니다. 1년에 대략 100권에서 170권씩 읽은 것 같습니다. 약 10년 정도 그렇게 책을 읽다보니 책이 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서평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복음과 상황’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엮은 『공격적 책읽기』라는 첫 번째 책입니다. 교수들의 논문은 교수들도 안보고 일반인들도 안보지 않습니까? 그리고 교수들은, 소위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 『긍정의 힘』과 같은 책은 읽지도 않고 코멘트해 주지도 않잖아요? 제가 강의도 하고 논문도 쓰고 목회도 하면서 이런 책들을 읽다 보니 ‘중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책 한 권 붙잡고, 원고지 짧게 30에서 길면 50매 정도, 논문의 반 좀 안 되는 분량을 기준으로 하여 비판적인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평신도들이 읽거나 읽으면 좋은 책들을 꼼꼼히 읽고 정리를 해줘야겠다고 한 거죠. 그 이후로 제가 서평쟁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서평에 저의 생각을 A4 한 장씩 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 얘기, 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부터 『내 안의 야곱 DNA』까지 1년에 두 권씩 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목회가 주였던 사람이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으로 갑자기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 힘들게 관계를 지속하고 있던 교인들이 이상하게도 하루아침에 다 나갔어요. 그리고 또 희한하게,그 분들이 나가자마자 젊은 친구들이 자리를 금방 채웠습니다. 그래서 한 3년 너무 행복하게 목회를 했는데, 이 친구들이 취직을 하기 위해 6개월 만에 절반 이상이 다 서울로 갔어요. 이 상황도 정말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부산에서 더 이상은 살지 못하겠다고 생각해서 세 학교에 지원을 했는데 다 안됐습니다. 세 번이 안되니 이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거나 때가 아니니 일단 스톱을 하든지 보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와중에 바른교회아카데미 회보에 목회자들의 책읽기나 글쓰기에 대해서 글을 써달라고 했습니다. 책읽기야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것 같고, 글쓰기는 별로 할 사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집에 왔는데 영감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두 장 좀 더 쓴 것 같아요. 소식지가 나가고 난 뒤에, 너무 잘 읽었고 글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어요. 제가 쓴 짧은 글에 그렇게 반응이 좋았던 적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글 쓰는 그리스도인』이란 책이 성서유니온(SU)에서 나왔습니다. 성서유니온이 책을 내고 워크북을 만들고 글쓰기 반을 만들어 운동을 해보자고 제안해서였습니다. 부산 성서유니온과 함께 글쓰기 학교를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주부들과 했던12주 과정에서는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성서유니온 총무는 Q. T. 나눔 1, 2년 하는 것보다 글쓰기 12주 과정이 훨씬 깊이가 있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글쓰기 학교가 아니라 예배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발전되면 운동과 사역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들이 청소년들도 해달라고 요청해서 청소년반을 모집했는데 애들도 너무 좋아했습니다. 청소년들과는 인문학 서적을 주로 읽습니다. 지난해에는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었고 지금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고 있습니다. 판소리, 역사, 소설, 문학, 환경, 과학서적 뿐 아니라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도 조금씩 읽히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한 권씩 읽고 글을 써와서 토론하고 나누는데요, 그것이 재미있으니까 계속하게 되었고, 모임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연결이 되어서 이번에는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요청해서 서울에서도 하기로 했습니다. 혜화동에 있는 북카페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이기로 했습니다.글쓰기 학교를 하면서 로고스서원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로고스서원 얘기를 좀 자세히 해주십시오. 현재 어떻게 운영하고 계신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글쓰기 반은 두 반이 있는데, 월요일 오전에는 목회자, 저녁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어야 하고, 에세이나 칼럼을 하나 써야 합니다. 책 서평, 영화감상문, 생활에세이 등 주제는 자유입니다. 화요일 오전은 자서전 반입니다. 주로 6, 70대 분들이 오시는데, 그 반이 가장 재미있습니다. 토요일에는 청소년 반을 오후 3시와 5시, 두 시간씩 두 반을 운영합니다. 현황은 이렇습니다. 앞으로는 청소년에 초점을 더 많이 두려고 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글쓰기를 했습니다. 주중에 온라인으로 글을 보내면 제가 첨삭해서 피드백하고, 한 달에 한 번은 오프라인 모임을 하고요. 1년 과정으로 해서 1주일에 책 한 권을 읽으니까 1년 동안50권 읽어야 하고 50개의 서평, 50개의 칼럼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하버드 박사보다 더 어렵다고 말합니다. 가벼운 책들도 읽지만 꽤 무거운 인문학 책들을 읽습니다. 정말 힘든데도 재미있어 합니다. 5월부터 1년 과정을 시작해서 하고 있습니다. 선한목자교회에서도 요청이 와서 강의하고, 반응이 좋으면 글쓰기 모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중1부터 고3까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하는데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저자를 초청합니다. 작년에 손봉호 교수님과 권오승 교수님이 다녀가셨습니다. 권 교수님은 본인이 더 은혜 받고 간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교회에서 성경학교하면 닌텐도나 피자로 애들을 끌어들이는데, 기독 청소년들이 인문학 책을 읽고, 질문도 잘하고, 생각도 바르고 깊이있다고 좋아하셨습니다. 2월에는 2박3일동안 인문학 캠프를 했습니다. 신동엽을 읽고, 김은교 교수님이 오셨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낸 책을 가지고 학원문제에 대해 토론도 했습니다. 그런데 2박3일을 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하여 1박2일로 줄이는 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5월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저자나 전문가를 초청하여 책 읽고 토론을 하려고 합니다. 6월에는 철학교수를 초청하여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두 달 동안 원전으로 읽고 토론하는 행사를 가질 예정입니다.
내년 정도에는 청소년들이 정식으로 출판하는 책도 쓰게 하고 싶습니다. 작년과 올해 2년 정도 하면 책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그룹으로 묶어서 북 멘토링하여 책 읽고 토론하고 글 쓰는 것을 지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돕는 하나의 길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고 싶은 일들은 아주 많지만, 올해는 저자 초청과 캠프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인문학 캠프와 작가, 전문가와의 만남, 플라톤은 저자를 만날 수 없으니까 전문가의 만남으로 하고 해서 계속해 나가려고 합니다. 또 ‘리빙 라이브러리’ 즉 사람 책이라는 것이 있는데요.영국에서 2000년도에 시작한 것으로 그 사회의 소수자들을 인터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이책만 아는데, 사람을 책이라 생각하고 대출신청을 합니다. 동성애자, 청소부, 할머니, 미혼모, 새터민들을 대출신청하여 인터뷰 신청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행사를 우리가 하려고 합니다. 원래 취지는 소수자인데, 한국적 상황에서는 모델이 되는 사람들도 가능하면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는 여행가, 채식주의자, 탈북자 등 6명을 모아서 아이들과 인터뷰했는데 너무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런 일들을 쭉 해가면서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비용을 들여서 하는 다음세대를 위한 세미나는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이들에게 신앙할 수 있는 힘, 생각할 수 있는 힘,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손에는 성서를, 한손에는 독서를’이라고 생각해요.
로고스서원의 목적과 신앙과의 관계와 연관해서 로고스서원의 사역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목적의식이나 철학이라고 할까요?
한 사람이 변화되는 계기가 되는 것은 세 가지라고 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 어떤 책을 읽었느냐. 어떤 경험을 했느냐.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죠. 문학도 그렇고요. 하나님 나라가 다른 게 아니고 예수님 자신이었잖아요. 달리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 나라고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고 사람이 하나님의 초점이니까, 소위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저는 성서와 독서를 중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독서를 하는 것, 즉 한 손에 성서를 한손에 독서를 잡아서 성서와 독서의 균형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날 것입니다. 책,사람, 여행 경험이 결국은 인문학 캠프입니다. 좋은 저자를 만나고,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과 만나서 하는 새로운 경험이 우리를 바꾸잖아요. 캠프를 통해서 책, 사람, 경험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철학은 성서와 독서로 사람을 준비시키고, 바꾸고 훈련시키는 겁니다. 인문학적 지성운동이 결국은 내면을 살찌우는 것이기 때문에 참 귀한 것 같습니다. 신앙이 내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잘되지 않기 때문에 밖에서 오는 것에 휘둘리고 복종하게 되는데 인문학적 운동들이 내면을 살찌우고 토양을 만들어준다는 측면에서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한국교회 신앙을 건강하게 세우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경적 묵상이 동양적 명상과 다른 점은, 마음에 주인이 있다고 보고 주인 자리를 놓고 투쟁하는 영적 전투로 마음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을 채우느냐가 중요합니다. 결국은 우리 마음의 주인인 하나님께서 말씀과 기독교적 지성과 은총가운데 주신 것은 문학, 역사, 철학, 과학, 예술, 신학, 전기 7가지 영역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이 하는 일은 수학 문제 푸는 것과 영어 빼고 전 영역을 커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관심과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 잘 안되고, 한국교회가 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책을 통해서 아이들이 내면세계를 살찌우고, 세상적인 것이 들어가기 전에 그런 것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거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이 신앙에서 이탈하지를 않습니다.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시작하지는 않지만, 이 자체가 기독인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이상에 가서 듣고 배우는 모든 비기독교적인 것에 대해 예방 백신을 맞으며 걸러낼 수 있는 힘을 기르기 때문이죠.감기 살짝 앓고 지나가면서 면역능력이 생기는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비기독교적인 것들에 대해서 면역능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책을 권할 때 어른들과 비교해서 책 선정기준의 다른 점이 있나요?
우리 기독교인들이 읽어야 할 책, 읽지 말아야 할 책을 구분하는데 저는 굳이 그러지 않습니다. 다음 학기에는 고백록을, 또 더 나중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할 것 같습니다. 군주론은 비기독교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읽고 넘어가야 할 고전들이니까요. 흥부전도 읽었고, 앞으로 심청전도 읽을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편협한 잣대를 자주 들이대면 읽을 수 있는 책이 너무 적다고 봅니다. 고백록과 군주론 같은 책들을 읽을 경우에는 청소년용 도서와 성인용 원전을 다 읽힙니다. 처음에는 입문서 한 권을 읽히고 다음으로 원서를 읽히는 것이지요. 고전 같은 경우는 전문가가 오고요.
이 사역도 목회라고 생각하시나요? 로고스서원교회와 연관성, 교회의 본질됨에 대한 생각 등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저도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요, 두 가지 다라고 봅니다. 교회가 아니라 제가 하는 것이 분명하니까 로고스서원과 로고스서원교회는 이원화되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공간을 필요로 할 만큼 충분한 프로그램이 나오고, 그래서 공간이 생기면 교회사역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것 같습니다. 아직 시작이니까 교회와 로고스서원과의 괴리감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목회냐 고 묻는다면 목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풀어야 할 과제는 아직 통합적으로 가지 않고 있는 교회와 서원이 통합적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에서는 가정에서 성경공부하고 예배드리는 통상적 활동은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새로운 교회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교회됨의 본질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비량으로 사역하는데, 그것을 교회됨의 자랑으로 삼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건물 됨이 없는 교회’라는 것을 교회의 표지로 삼는 것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자비량 사역이나 선교비와 구제비의 대규모 사용은 복음과 하나님나라의 방법적인 것이지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전통적으로는 말씀이 올바로 설교되고 성만찬이 제대로 집행되면 좋은 교회라고 하는데,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파라처치(parachurch)나 직장 신우회도 교회라고 보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아나뱁티스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찬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요, 교회의 표지로 삼기에는 부족하다는 거죠. 아나뱁티스트에서 말하는 것처럼 용서가 시행되고 있는지, 정말 다른 사람들의 발을 씻기고 있는지를 교회됨의 표지로서 돌아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억 원이 드는 전교인체육대회를 하지 않고 선교와 구제에 사용했다는 것을 자랑하는데, 그것을 들으면서 교회가 저런 것으로 자랑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 교회에 사랑과 용서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정말 우리가 자랑하고 간증하고 나누어야 할 것은 우리 교회 안의 아픈 자와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났는가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