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동 매립’의 후유증이 십여 년이 지난 요새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매립의 대가로 업자가 장학금을 내놓기로 약속해놓고 이제까지도 지켜지지 않아 사회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 속에 오늘도 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옛날의 탑아래, 탑동 방조제 위를 걸어가고 있다. 여러 날 내린 장맛비로 바다 물은 흐릿해져 있고, 자칫하면 파도가 넘어들 형편이다. 멀리 방조제 끝머리에 새로 지은 호텔의 모습이 낯설게 다가든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지금 여기는 바다였다. 밀물에 조수가 들어오면 바다가 되지만 썰물이 나가고 나면 고운 차돌들과 추억이 깔리는 바다. 여기서 유년의 우리는 고둥도, 소라도, 오분자기도 잡으며 놀았다. 그러나 여기에 지금 바다는 없다.
나의 단편소설 「아득하여라, 우리들의 탑아래」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나는 과거 이 동네에서, 공부 시간에도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보이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공부가 끝나면 바다로 달려가 왕돌 위에 책보와 옷가지를 벗어놓고 바다로 달려나가 군부와 고동, 해물들을 잡고 재수가 좋으면 왜문어인‘물꾸럭’도 잡았다. 그걸 잡으면 혼자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간 친구들이‘분짓’으로 발가락 하나씩을 나눠 가졌다. 그 시절 탑아래는 그야말로 우리들의‘천국’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어떤 일을 결정지을 수 있는 권력자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업자가 만나면 반드시 사건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좀더 높은 권력을 부리고 싶은 시장과 업자는 어느 날 음습한 식당에서 단 둘이 만나 바다를 메울 구상을 한다. 그 당시로야 거 임자 없는 바당, 아무가 메워 가진들 무슨 상관이랴, 바다가 육지가 된들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81년에 1차 매립이 되고, 한번 맛들이니까 다시 한번 좀 크게 해먹고 싶었다. 그 무렵 나는 모 대학 사회학과 학생이었고, 더구나 사귀고 있던 아가씨는 그 어머니가 잠수로, 탑동을 터전으로 먹고사는 처지였다. 그녀가 안달을 하니까 나도 매립 반대 데모에 앞장을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순수한 열정은 언제나 권력과 술수를 당해내지 못한다. 그래 2차 매립까지도 무사히 완공을 한다. 그 결과 전체 도민과 시민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무엇인가. 그 너른 매립지 안에 달랑 해변공연장 하나 빼고는 마트, 번지점프장, 바로 지어 오픈한 대형 호텔, 그리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 너른 바다가 지금도 바다로 있다면 이 시는 세계적 미항(美港)이 되어 있을 터인데... 방조제 위를 끝까지 걸어간 주인공 나 는 거기 모퉁이에 웅크리고 누워서 꿈을 꾼다.
아아, 거기에는 거대한 건물이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없었다. 가슴에 기쁨은 밀물처럼 밀려오고, 바다는 연청색으로 푸르렀다. 아아! 이제 그 바다는 꿈에서나 볼 수밖에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오성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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