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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ññā, wisdom or understanding, is the opposite of ignorance, the root of all defilement and sorrow. Paññā is important for the development of kusala cittas. It is possible to do good deeds without paññā but if there is understanding of what is unwholesome and what is wholesome, and understanding of what the result is of unwholesome and wholesome deeds, one is able to lead a more wholesome life. Thus, the development of paññā is of great benefit both to ourselves and to others.
빤냐, 즉 지혜 혹은 바른 견해는 모든 번뇌와 슬픔의 뿌리가 되는 무지와 반대다. 지혜는 선심을 계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혜 없이 선행을 하는 것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무엇이 선심인지 혹은 불선심인지를 알고 선행과 불선행의 과보가 무엇인지 안다면 우리는 더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There are many degrees of paññā. When a teacher explains to his pupils that kusala cittas with gratitude or honesty will bring a pleasant result and that unwholesome deeds motivated by greed or anger will bring an unpleasant result, the explanation may be the condition for them to have some degree of paññā. With paññā they may be able to develop kusala cittas and to perform more wholesome deeds.
지혜에도 많은 단계가 있다. 스승이 제자에게 감사와 정직함을 지닌 선심은 좋은 과보를 가져오고 탐욕과 성냄을 동기로 한 불선행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면 그러한 설명은 제자들에게 어느 정도 지혜를 갖게 하는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지혜와 함께하면 선심을 계발할 수 있고 더 많은 선행을 할 수 있다.
There is a higher degree of paññā when people realize the impermanence of all the things they enjoy in life. When people see how short human life is, they will try not to be attached too much to the pleasant things of life. This understanding will stimulate them to a greater generosity and to more readiness to help other people. They will be less selfish.
삶에서 즐기는 모든 것에서 무상을 안다면 매우 높은 수준의 지혜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사람들이 안다면 좋아하는 것을 그렇게 집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사람들을 더 관대하게 하며 기꺼이 더 많은 다른 사람을 돕도록 자극한다. 뿐만 아니라 덜 이기적이 될 것이다.
Some people who have this degree of paññā might change their way of life and live contentedly without any luxury. Others might decide to "go forth from home into homelessness" they might decide to become a monk.
A monk’s life is not an easy life. He lives without family and is one who is "contented with little". In the Discourse on the Sixfold Cleansing (Middle Length Sayings III, no. 112) we read that the Buddha spoke about the monk who told of his renunciation of the world:
이런 정도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삶의 태도가 바뀌어 허례허식 없이 만족하며 살아갈 것이다. 또 집을 나와 집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이는 출가하여 승려가 된다는 말이다. 출가승의 생활은 쉽지 않다. 가족 없이 살며 작은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마찌마 니까야 112번 여섯 가지 청정 경에 출가자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So I, your reverences, after a time, getting rid of my wealth, whether small or great, getting rid of my circle of relations, whether small or great, having cut off my hair and beard, having put on saffron robes, went forth from home into homelessness...."
“그런 나는 나중에 재산이 많건 적건 간에 다 버리고,
일가친척도 많건 적건 간에 다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했습니다.“
The Buddha explained that people are too much attached to the sense-impressions received through eyes, ears, nose, tongue and body. He spoke about the "five strands of sense-pleasures". We read in the Discourse with Subha (Middle Length Sayings II, no. 99) that the Buddha spoke with Subha about the five strands of sense-pleasures: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이 안이비설신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에 너무 집착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에 대해서 얘기하셨다. 마찌마 니까여 99번 수바 경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에 대해 나온다.
... These five, brahman youth, are the strands of pleasures of the senses. What five? Material shapes cognisable by the eye, agreeable, pleasant, liked,enticing, connected with sensual pleasures, alluring. Sounds cognisable by the ear... Smells cognisable by the nose... Tastes cognisable by the tongue... Touches cognisable by the body, agreeable, pleasant, liked, enticing, connected with sensual pleasures, alluring. These, brahman youth, are the five strands of sense-pleasures. Brahman youth, the brahman Pokkharasāti of the Upamaññā (clan) of the Subhaga forest glade, is enslaved and infatuated by these five strands of sense-pleasures, he is addicted to them, and enjoys them without seeing the peril (in them), without knowing the escape (from them)....
“바라문 학도여, 이러한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즐거움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에 짝하고 매혹적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이 있다.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다...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다...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다...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다. 바라문 학도여, 이것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이다.
바라문 학도여, 수바가 숲의 소유자이고 우빠만냐 성을 가진 뽁카라사띠 바라문은 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재난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을 통찰함이 없이 그것을 수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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