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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운허스님(왼쪽)과 월하 |
그에게 있어 역경은 삶의 전부였다. “나름대로 정성과 심혈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지만 부처님의 본 뜻을 얼마나 정확히 전했는지 두려움이 앞선다”며 언제나 조심스럽게 경전을 한역했다. 그의 일상은 늘 같았다. 새벽5시에 일어나 참선한 뒤 2~3시간 동안 작업을 한다. 아침공양 후 오전 내내 책상에 앉아있다.
20여 년간 매일 20~30매를 번역했는데, 그가 번역한 경전분량은 200자 원고지 15만 여장으로 추산된다. 이 모두가 〈한글대장경〉 속에 들어있다. 이와 함께 〈장자〉(현암사. 1965) 〈법구경〉(현암사. 1965)를 번역해 출간하고 〈백운화상어록〉 〈태고집〉 〈대각국사집〉 〈보조국사법어〉 등을 한역해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있어 많은 고문(古文)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입적하기 전까지 월하는 〈보조국사전서〉(고려원. 1988) 〈붓다차리타〉(고려원. 1988) 등을 출간했다. 역경작업을 하면서 한동안 쓰지 않았던 시도 썼다. 등단 50년 만인 1983년 시전집 〈올빼미의 노래〉를 발표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월하가 82세로 삶을 마감한 후, 그를 추모하는 움직임은 계속 됐다. 그를 도와 선시를 번역했던 막내 사위 최동호 교수(고려대 국문과)와 마산 진해 창원의 시인들이 주축이 돼 1990년 김달진문학상을 제정, 매년 9월 시인과 평론가 각각 1명을 시상하고 있다. 올해로 16회를 맞는 문학상은 처음에는 시 부문만 시상하다가 1998년부터 평론부문이 추가됐다.
이와 함께 매년 6월 문학상 기념 시낭송회를 연다. 경남 진해시는 1999년부터 매년 가을 김달진 문학제를 개최해 월하의 문학과 삶을 기린다. 올해는 10월8~9일 이틀간 진행되며, 월하 백일장, 청소년 시낭송회 및 ‘김달진의 삶과 문학’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진해시는 또 2004년 학계와 문학계 대표 14명으로 구성된 ‘김달진 선생 생가복원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진해시 소사동 48번지 일대에 생가를 복원했다. 현재 유물전시관이 건립 중이며 올 연말 완공된다.
월하는 “보시는 보시를 잊어서 무루(無漏)의 보시가 되고, 자비는 자비를 잊어서 큰 자비가 된다. 종교는 종교를 잊어서 진정한 종교가 되고 시는 시를 잊어서 영감의 시가 되고, 나는 나를 잊어서 비로소 온전한 나가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20년을 하루같이 경전을 한역했던 월하의 삶 자체가 무루의 보시가 아닐 수 없다. 그는 고인이 됐지만 그가 열정을 쏟아 부었던 〈한글대장경〉은 318권으로 완간돼 사람들 곁에 남았다.
● 월하의 불교사상과 시
선불교적 즉관의 세계 詩로 표현
우주가 ‘나’와 하나…연기론 짙
월하는 1929년 〈문예공론〉에 시 ‘잡영수곡(雜泳數曲)’으로 등단했다. 불교전문학교 시절 서정주.오장환.김동리 등과 함께 ‘시인부락’ 동인활동을 했고, 1940년 첫 시집인 〈청사〉를 세상에 선보였다. 1947년에는 대구에서 창간된 ‘죽순(竹筍)’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이후 문단에서 잠적했다. 등단 50여년 만인 1983년 시 전집 〈올빼미의 노래〉를 간행돼 그의 시가 재조명됐다. 그러나 월하는 오랫동안 우리 문학사에서 소외돼왔다. 이는 그가 시업보다는 번역에 더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시작품은 “직관적인 언어로 예리하게 사물을 표현해내고,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은밀하게 구축하고 있다(신소영 ‘해방기 전통서정시 연구’)”고 평가받는다.
최동호 고려대 교수는 “월하선생의 시적 전개는 샘물(1938)과 청시(1941), 벌레(1947), 씬냉이꽃(1990) 등 네 편의 시로 집약될 수 있다”고 말한다. “숲속의 샘물을 들여다보다/ 물속에 구름이 있고 흰 구름이/ 떠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조그만 샘물은 바다같이 넓어진다/ 나는 조그만 샘물을 들여다보며/ 동그란 지구의 섬 우에 앉았다(샘물 전문)” 최 교수는 “화자의 자의식이 샘물을 들여다보며 우주적으로 확대된다”고 봤다.
천지만물이 ‘나’와 하나이며 우주와 ‘나’도 하나라는 연기론을 보여준 것. 최 교수는 또 어떤 인공의 힘도 가하지 않고 무위자연의 세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노장의 자연사상인 동시에 선불교의 자연직관으로 통하는 첩경”이라고 덧붙였다. 시인 오탁번은 “너무 단순해 소품의 동시 같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자아와 우주의 관계가 조밀하게 다루어져 있다”며 “한국 시사(詩史)에서 이처럼 인간이 어떤 것에 집중할 때 느끼는 절대순수, 절대고독의 상태를 순박한 말로 표현한 시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30년 뒤 월하는 한 마리 벌레로 변신한다. “고인 물 밑/ 해금 속에/ 꼬물거리는 빨간/ 실낱같은 벌레를 들여다보며/ 머리 위/ 등뒤의/ 나를 바라보는 어떤 큰 눈을 생각하다가/ 나는 그만/ 그 실낱같은 빨간 벌레가 된다.(벌레 전문)” 김동리는 이 시를 두고 “불교사상이 꽤 짙게 깔려있지만, 그와 동시에 즉관(卽觀)하는 모든 자연, 모든 사물 속에 직감하는 우주의식의 일단도 되는 것”으로 보았다. 신상철 경남대 명예교수는 ‘김달진의 작품세계’를 통해 “‘어떤 큰 눈’ 앞에서 벌레나 화자는 동류가 된다”며 “이런 정서는 제행무상과 맥이 닿는데 월하선생은 그런 빛과 내음을 최대한 억제해 순수시의 영역을 지켜냈다”고 평가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시와 종교의 길목 - 월하 김달진의 경우’에서 “김달진의 평생에 걸친 시작행위란 ‘마음’의 끝을 따라가기에 다름 아닌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이얗게 쌓은 눈 우에/ 빨간 피 한 방울 떨어뜨려보고 싶다/ -속속드리 스미어드는 마음이 보고 싶다(눈 전문)” 김윤식은 또 “정치 이데올로기와 문학 사이에서, 교육과 문학사이, 종교와 문학 사이를 오고가며 시를 쓴 것도 오직 이 ‘마음’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월하는 자신의 평생 화두였던 ‘마음’의 끝자락을 잡았다. 산책길에서 문득 발견한 씬냉이꽃 한 송이 속에서 우주를 깨닫는 경지를 보여준 것. “사람들 모두/ 산으로 바다로/ 신록철 놀이 간다 야단들인데/ 나는 혼자 뜰 앞을 거닐다가/ 그늘 밑의 조그만 씬냉이꽃 보았다./ 이 우주/ 여기에/ 지금/ 씬냉이꽃 되고/ 나비 날은다. (씬냉이꽃 전문)” 김재홍 경희대 교수는 “소아(小我)적인 관점에서 우주적인 관점을 획득함으로써 자연과 완전한 조화 또는 우주와의 교감을 성취했다”며 “이런 경지가 지락(至樂)이며, 도의 발견이고 허심(虛心)의 완성”이라고 표현했다. 결국 월하에게 있어 시는 삶이었고 깨달음의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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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니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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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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