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의 36세 생일날 태어난 영연이
대개의 내 또래들은 음력으로 생일을 기념한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은 물론이고 우리 또래들만 해도 대개는 음력으로 생일을 쇤다. 생일을 기념해 덕담을 주고 선물을 주고 음식을 차려내는 이유를 몰랐다. 그 의미를 모르니 별 가치를 두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저 애들이나 차려먹는 게 생일이고, 어른들이나 챙겨드리는 게 생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 역시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저 우리 어머니가 날 낳기 위해 고생하신 날이라고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에 이르러는 생일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요란스럽게 축하를 하고 선물을 주고받고 하는 따위는 아직도 어색하고 쑥스럽지만 의미는 이해가 된다.
과거 의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1년을 연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는가를 생각해본다. 수시로 병마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갔고, 때로는 추운 날씨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먹을 것이 부족해 굶어 죽는 사람도 허다했고, 수시로 전쟁이나 민란 등이 발생하니 난리 통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이 뿐이겠나, 사회안전 시스템이 허술하니 홍수가 나도, 폭설이 내려도 사람 목숨은 위협을 받았다. 맹수나 독사의 습격을 받아 생을 마감하는 일도 많았으리라. 그러니 무사히 1년을 보낸 것을 자축하는 의미로 차리는 생일상에 나름대로 큰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매년 태어난 날을 맞을 때마다 무사히 1년을 보낸 것에 대해 감사하는 의식을 치렀던 것 같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부모님은 우리 모든 형제들의 생일상을 어려서부터 양력으로 차려주셨다. 그래서 음력생일의 날짜조차 모르고 지내왔다. 대부분의 생일을 음력으로 지내는 주변인들과 비교해보면 양력생일을 기억하는 것이 훨씬 더 기억하기 쉽고 윤달 등으로 들쭉날쭉 하는 일이 없어 편하다. 내 생일은 양력으로 3월 30일이다. 초목들이 꽃을 피우기 위해 대지에서 수분과 영양분을 잔뜩 빨아올리며 생기가 충만한 시기이다. 추위가 완연히 가시고 봄기운이 무르익기 시작하는 무척 좋은 계절이다. 이 좋은 시절에 나의 둘재 아들 영연이가 태어났다. 아빠와 생일이 같은 것이다. 생일만 같으면 굳이 밝히지도 않겠다. 녀석은 36년 차이나는 아빠의 띠 동갑이다.
즉, 아빠가 태어난 지 정확하게 36년 되는 날에 녀석이 태어난 것이다. 1970년 3월 30일 아빠가 태어났고, 2006년 3월 30일 아들이 태어났다. 아빠가 세 번째 맞은 개띠 해 생일날 아들은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더 없는 인연인데 같은 띠에 생일까지 같게 태어났으니 생각할수록 값진 인연이다. 아빠의 주민번호 앞자리는 700330, 작은아들의 주민번호 앞자리는 060330이다. 아이의 할머니인 어머니께서는 아이의 양력생일도 좋지만 음력으로 좋은 날 태어났으니 10살이 될 때까지는 음력으로 생일상을 차려주라고 주문하셨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어머니가 시키는 일이니 그리하고 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상 같은 날 생일상을 차려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3년 후부터는 같은 날 생일상을 함께 차리려고 한다.
내가 알고지내는 그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나와 생일이 같은 날인 이를 만나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내 아들 영연이다. 그러니 아들 녀석과 나의 인연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기하기 짝이 없다. 참으로 희귀한 인연이다. 누구에게라도 이 같은 사실을 말하면 확률상 대단한 일이라고 놀란다. 영연이는 체형이 아빠와 닮았다. 식성도 비슷하고 잠버릇도 비슷하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장 큰 사랑을 느낄 때는 자신과 닮은 행동을 하거나 외모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할 때라고 한다. 띠가 같고 생일이 같은 녀석이 닮은 외모에 닮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어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도 사랑스러울 뿐이다.
동양인들은 사주팔자로 인생의 길흉화복을 살피고 기본 성격을 파악하지만 서양인들은 별자리 점괘를 살펴 인생을 내다보고 성격을 살핀다. 양력 3월 30일 전후 날짜의 별자리는 양 자리이다. 실제로 양 자리 운세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의 성격은 비슷한 점이 많다. 이것은 내가 주변인들을 통해 파악한 것으로 꽤나 잘 들어맞았다. 별자리를 통해 성격과 운세를 예측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를 갖고 있다. 그만큼 주변인들을 샘플로 살펴보면 기본성격 등이 상당히 잘 들어맞았다. 그래서 영연이도 나와 비슷한 성격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어려서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격도 많이 비슷한 면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띠 동갑 같은 생일 아들이 외모와 습관에 이어 성격까지 비슷하면 얼마나 신비로울까. 벌써부터 아이가 어떤 성격으로 자라줄 것인지가 궁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