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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2. 2. 19.(토) - 음력(1. 19.), 일출 07:09~일몰 18:10
●산행지: 영축지맥 2구간(배태고개-합수점)
●산행코스: 배태고개-임도1,2,3,4-폐헬기장-694m갈림봉-매봉(754.8m,삼각점)-안부-746m봉-우회등로(시경계)/760m(폐헬기장)-등로 갈림길-770m봉-암봉 우회길-전망대-임도-약수암감림길/능선갈림길-금오산(766.1m)-이정표(약수암갈림길)-임도(당고개)-등로진입-솔숲등로-임도-등로갈림길(주의구간)~당고개(감물리버스종점, 해인사)-반야암갈림길-구천산갈림길-구천산(왕복)-감물고개-선우사삼거리-삼거리(608m봉 왕복)-점골고개-임도-갈림길분기봉(541m)-구조목(만어-10)-만어산-폐통신기지국(산불초소)-헬기장(넓은공터)-임도-만어사-양회임도-만어사입구삼거리-임도갈림길-만어현삼거리-분기봉삼거리(구조목,만어-8)-만어봉(547m)-묘지지역-등로-묘지지역-등로-오두막쉼터-솔태고개-258m봉(삼각점)-임도-폐활공장-갈림길분기봉-청룡산-갈림길분기봉(삼각점, 323m)-새나루고개-헬기장-327m봉-미전고개-196.1m봉(삼각점)-무월산(205.8m)-분기봉(196m, 갈림길)-거족고개/거족정류장-매봉산분기봉(229m)-감나무농장-묘지2기-묘지봉-철탑-서낭당터-대나무숲-낙동강교-합수점
●먹거리: 감물리고개 아침 지원, 만어사, 솔태고개, 새나루고개, 거족고개 지원
●준비물: 바람막이, 우의, 스틱, 헤드랜턴, 장갑, 충전지,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스패츠, 말방울, 세라컵, 마스크, 양말, 띠지35
●거리: 약 30.8Km (구천산, 만어사 경유)
●소요시간: 15.12h
●누구랑: 홀대모 운영진, 산행가이드 부산 건건산악회 김창호대장님
●경비: 운영진방에 회계결산보고
●날씨: -2~9, 흐리고 눈발 약간, 점차 맑아짐
●산행경과:
- 02:35 : 배태고개
- 03:05 : 694m봉/ 시계(양산시 - 밀양시)
- 03:48 : 매봉(鷹峰)/ 매봉산(754.8m)/ 삼각점봉
- 05:50 : 약수암삼거리
- 06:23 : 금오산(金烏山, 766.1m)/ 삼읍면봉(밀양시 단장면, 양산시 원동면 → 밀양시 삼랑진읍)
- 06:42 : 약수암mtb임도
- 07:32 : 당고개/ 삼리 경계면(삼랑진읍 행곡리, 단장면 국전리 → 감물리)/ 버스종점
- 08:01~43 : 구천산(九天山)분기점/ 삼리봉(단장면 감물리, 삼랑진읍 행곡리 → 우곡리)
- 08:24 : 구천산(九天山, 640m)/ 왕복 40분
- 09:05~09:37 : 감물리고개/ 13번도로
- 10: 04 : 608m봉
- 10:20 : 점골고개/ 임도
- 10:56 : 만어산(萬魚山, 669.5m)
- 11:16~11:31 : 만어사(萬魚寺)
- 11:38 : 만어사삼거리
- 11:40 : 만어현
- 12:08 : 만어봉(547m)/ 삼리봉(삼랑진읍 용전리, 단장면 법흥리 → 숭진리)
- 12:45 : 솔태고개/ 양회임도
- 13:37 : 청용산(靑龍山, 362.8m)
- 14:12 : 새나루고개/ 58번지방도로
- 15:20 : 미전고개/ 58번지방도로
- 15:52 : 무월산(205.8m)
- 16:31 : 거족고개(35m)/ 1022번지방도로
- 17:05 : 매봉산(妹峰山, 283.5m)분기봉(229m)
- 17:47 : 밀양강/ 낙동강합수점(조창나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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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오전 6시부터 진태가 내리다가 비로 바뀌어 13시까지 이어진다는 예봅니다.
양은 1mm 미만이라지만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가슴에서 탄내가 나더라는...
급기야 준희선생님이 기상청장에게 전화를 하셨다는데 그게 먹혔을까... 암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정상 서울역에서 05:40분 KTX로 출발하는 상배형님은 삼랑진에서 감물리로 지원조가 택배하기로 하고,,
새벽 2시에 일어나 비실이대선배님 누룽지곰탕으로 든든하게... 못 멋어도 곱니다. 산에선 무조건 먹는 만큼 가는거니깐요.
겨우내 동안거에 드셨던 방장님의 두발에 오늘의 성패가 달렸기에 모두들 방장님만 바라보며 성공을 기원하였습니다. 자 그럼 출발!!!
거족고개에서 탈진 직전까지 이른 에이원방장님!
명색이 홀대모 방장이 여기까지 와서 포기해서야 되겠나~
준희선생님과 비실이대선님의 격려와 다그침에 죽든살든 붙어서 마침내 성공하셨습니다..^^
노란세이버총대장님께 방장님 졸린 증상을 물어보니 탈진증세라는군요.
사탕과 초코렛도 좋지만 그보다는 따뜻한 물을 먹어야 한답니다. 아메리카노는 안되고 믹스커피는 된답니다.
겨울에 따뜻한 물을 어떻게 구하죠, 그래서 필히 보온병이나 텀블러 하나씩 챙겨서 다니는가 봅니다.
여러모로 도움과 후원 덕분으로 홀대모 운영진 전체가 영축지맥을 성공리에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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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간별 세부거리
배태고개-(2.6km)-매봉(754.8m)-(4.1km)-금오산-(2.5km)-당고개-(4.4km)-만어산-(6.1km)-만어봉(547m)-(3.6km)-청용산-(3.4km)-미전고개-(2.1km)-거족고개(1.1km)-매봉산-(1.0km)-밀양강(우)
* 구간별 거리
- 배태고개~합수점 30.8km
-. 배태고개~솔태고개 18.9km (구천산, 만어사 경유)
-. 약수암입구~솔태고개 12km(만어사 X)
-. 솔태고개~합수점 11.8km
* 식수 보충 및 참고사항
- 당고개 해인사 식수보충 가능
- 감물리고개 조식 지원
- 선우사 식수보충 가능
- 만어사 지원, 식수보충 가능
- 새나루고개 행동식 지원
- 거족고개 지원
- 삼랑진 택시: 055-353-8255, 9733
* 영축지맥 분기점 영축산 가는 교통편
- 배태고개 버스정류소: 원동면 영포리에서 대리쪽으로 마을버스 2번(하루 2회)
- 당고개/땅고개~밀양터미널 교통편: 감물리~밀양터미널 1일 5회 운행, 막차 19:35
- 삼랑진역~감물리: 택시 17,000원
- 삼랑진역~만어사(도보 3시간): 택시 11,000원
- 솔태고개~용성정류소(2.9km), 부산대~숭진버스정류소~밀양역: 08:56~23:10 (하루 26회운행)
* 합수점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삼랑진~밀양역 버스: 11:55, 13:05, 15:00, 18:20
- 삼랑진역~서울역 무궁화: 13:19, 14:12, 19:00
- 밀양역~서울역 무궁화: 13:29, 14:22, 17:06, 18:3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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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축지맥을 지나는 동네
* 밀양시
경남 동북부에 있는 시로 경부선 철도의 주요 연선 지역 중 하나로 부산과 대구 중간에 있고, 경북 청도군과 마주보고 있다. 그리고 울산과 창원도 인접해 있어서 경상도의 주요 대도시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이다. 대도시들은 모두 밀양시에서 차로 1~2시간 만에 갈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여러 대도시들의 영향을 골고루 받고 있는 도시다. 시청을 기준으로 밀양에서 창원까지는 31km, 부산까지는 47km, 대구까지는 43km, 울산까지는 51km다. 읍, 면 단위로 주변 대도시의 영향력이 있는데, 상동, 청도면 지역은 대구, 산외 지역은 울산, 삼랑진 지역은 부산, 하남읍 지역은 창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대구로의 유동인구는 의외로 적어서 2017년 통계에 따르면 대구로의 유동인구는 부산, 창원, 김해, 울산으로의 유동인구보다 적었다. 삼국시대 초기 변한의 땅으로 미리미동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기원전부터 6세기까지 가야에 속하였으나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 미리벌)이 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전국 지명을 한화할 때 밀성군(密城郡)으로 개칭하였다. 밀성군 휘하의 다섯 영현으로 밀진현(密津縣, 삼랑진읍), 상약현(尙藥縣, 창녕군 영산면), 오구산현(烏丘山縣, 청도군 청도읍), 형산현(荊山縣, 청도군, 화양읍), 소산현(蘇山縣)을 거느린 지역 중심지였다. 고려시대 995년(성종 14)에 밀주군이 되었다. 조선 1401년(태종 1) 밀성군으로 칭하다가 1415년에 밀양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대구부 밀양군, 1896년에 경상남도 밀양군이 되었다. 1914년 양산군, 김해군, 영산군의 일부를 병합하고 청도면을 신설하여 12면을 관할하였다. 1923년 밀양면을 指定面으로 하고 1928년 하동면이 삼랑진면으로 개칭되었다. 1931년에 밀양지정면, 1963년에 삼랑진면, 1973년에 하남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하였다. 1946년 밀양읍 대성정을 상동면 안인리로 하였다. (구 대성역소재지) 1989년에 밀양읍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시·군이 분리되었다. 이미 15세기 경에 취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 전까지는 얼음골 사과를 한양에 있는 임금님께 진상하던 조용했던 동네가 1905년 개통한 경부선 덕분에 널리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같은 밀양 땅의 삼랑진이 더 중요한 역이어서 삼랑진이 필수 정차역이었다. 밀양시내는 상대적으로 삼랑진보다 인구수도 적고 듣보잡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사실 삼랑진이 밀양보다도 먼저 발전했다. 광복 이후부터 발전을 거듭하였고, 1980년대 드디어 새마을호가 밀양역에 정차하게 되면서 밀양의 위상이 달라졌다. 이때 이미 삼랑진은 끝도 없이 몰락해 갔다. 지금은 무궁화마저도 일정 배차량 말고는 안서고 통과하는 역이 삼랑진이다. 1995년 1월에는 밀양시와 밀양군이 통합해 도농복합도시가 되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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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고개에서 임도 1,2,3,4를 만나고 694m봉 직전에서 지맥길은 왼쪽 사면으로 이어집니다. 정상은 약 40m 벗어나 있는데 대부분 우회하는 편입니다.
♤ 694m봉/ 시계(양산시 - 밀양시)
양산시 원동면 대리와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의 경계이다. 삼거리 갈림길분기봉에 도착하여 좌틀로 진행한다. 능선 진행하며 오른쪽 아래로 밀양호가 보이고 그 너머로 새로 생긴 함양-울산간 고속도로도 보인다. 이후 금오산까지 밀양시와 양산시의 시계를 따른다.
- 준희선생님의 그곳에 오르고 싶은 산 694m봉 산패가 있다는데 보이지 않는다.
♤ 밀양댐
경남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에 있는 다목적댐으로 높이가 89m, 길이가 535m, 총저수량 7,360만t, 유역면적 104.4㎢이다. 경남 양산시, 밀양시, 창녕군 등 3개 지역에 수돗물과 전력을 공급하고 홍수를 조절하기 위해 1991년 착공, 2001년 11월에 완공되었다.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양산시 원동면 선리,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에 걸쳐 뻗어 있다. 주위에 영남알프스 가지산, 천황산, 운문산, 영축산 등이 있다.
♤ 매봉(鷹峰)/ 매봉산(754.8m)/ 삼각점봉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도둑골과 밀양시 단장면 국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매봉 정상에는 국립건설연구소 원형 동판 소삼각점이 있고, 동남쪽으로 도둑골로 이어지는 깊은 계곡이 보이며 돌에다 손으로 글씨를 써넣은 정상석이 있다. 현재 도둑골로 사용되고 있는 지명은 옛날에는 매봉에 선비들이 터를 잡고 들어와 글공부를 하면서 어영마을의 아이들에게 글과 예절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도를 얻는다"는 의미로 도득(道得)골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도둑골로 변했다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골매봉 이후 748m봉, 폐헬기장(759.2m), 770.4m봉에 도착하는데 암봉 아래 암벽사이 암릉을 지나는 힘든 구간이다.
- 준희선생님 "영축지맥 매봉 754.9m" 산패가 있다.
770.4m갈림길봉에서 살짝 내려선 조망바위에 서면 원동면 영포리 마을과 그 너머로 매봉산, 천태산, 토곡산이 조망됩니다. 문제는 여기부터 입니다. 야간에 내려서는데 엄청난 절벽지대로 보였구 아주 위험하였습니다.
♤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泳浦里)
영포리는 고기가 놀며 배가 드나드는 포구(浦口)라는 뜻으로 어포(魚浦)라고 불리었다가 하서면이 원동면으로 명칭이 변경된 뒤 어영동(魚泳洞)의 영(泳)자와 어포의 포(浦)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으며, 금오산 자락에 위치하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 앞으로는 어영천과 영포천이 흘러 내포천으로 들어간다. 내포리의 안쪽에 위치하며, 배태고개를 사이에 두고 배내골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통도사의 말사인 신흥사(新興寺)가 위치하고 있어 마을의 형성 시기도 이때부터로 추정된다. 1786년(정조10)의 『양산군 읍지』에는 행정구역 명칭을 신흥사라 하였으며, 본래 양산군 하서면(원동면) 지역으로서 1914년 어영동과 어포동을 병합하여 영포동(리)으로 개칭되었다.
♤ 당고개 임도
오른쪽은 매봉 방향이고 왼쪽으로 배태고개에서 이어지는 임도를 따른다. 임도가 포장임도로 변하고 오르막 크게 곡각되는 지점에서 다시 좌측 숲길로 들어선다. (cf 독도주의 지점이다. 계속임도 따르면 약수암 표지석 만나고 이정표 3거리에서 금오산 왕복해도 된다) 초입에 들어서면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는데 밖에서는 잘 안보인다. 약 0.9km의 급경사를 오르는 길이 쉽지 않다. 급경사를 극복하고 암릉을 갈지자로 우회하여 오르면 엄청난 조망터 암봉 정상이다. 조망 즐기고 완만해진 능선 오름길을 진행하면 금오산 정상에 이른다.
♤ 약수암삼거리
밀양시 단장면 국전리 금오산 아래 위치한 절로 태고종 사찰이다. 약수암 아래 임도에서 약수암을 가지 않고 왼쪽으로 등로를 진행하여 금오산 정상으로 향해도 되고, 약수암을 구경하고 약수암 오른쪽 약수터 상단으로 올라 금오산을 왕복해도 된다.
♤ 금오산 약수암
밀양 금오산 약수암은 대한불교 태고종 산하 암자이다. 금오산 뒷편에 위치한 약사암은 조사전과 대웅전을 시작으로 층별로 약사여래대불과 약수탕, 우측으로는 산령각, 칠성각, 산신각으로 길이 나 있다. 약수암 산령각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영남알프스의 운문지맥과 영축지맥의 장쾌한 흐름을 볼 수 있으며 약수암에서 새로 개설된 임도를 따라가면 배태고개 아래로 원동자연휴양림이 있으며 그 곳엔 수암사라는 암자 앞에 불음폭포가 장관이다. 특히 대웅전 앞으로 지나온 마루금 조망이 휼륭하다. 약수암을 구경했다면 약수터 뒤로 된비알을 올라 등로 갈림길을 만나 암릉 지대를 거쳐 금오산으로 오른다. 교통편은 밀양에서 금오산 약수암까지 택시나 자가용으로 이동하거나 갓골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약 1시간 걸어야 한다.
♤ 밀양시 단장면 국전리(菊田里)
국전리는 단장면 지역 중심부에서 남쪽 끝까지 기다란 배 모양의 형태를 가진 마을이다. 면적의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에는 해발 600m의 벼락더미(雷岩峰)가, 남쪽에는 표고 766.1m의 금오산이 있고 자연마을로는 국화전, 진주동 마을이 있다. 국화전 마을은 일찍부터 복잡한 세상을 멀리한 선비들이 국화꽃을 심고 풍절을 숭상하며 살았다고 하여 이름붙여졌고 진주동 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배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진주(進舟)는 배가 나아간다는 뜻이다.
우측 멀리 안태호 뒤쪽으로 낙동강과 밀양강이 합쳐지는 영축지맥 합수점에 있는 삼랑진철교가 희미하게 조망 됩니다.
♤ 금오산(金烏山, 766.1m)/ 삼읍면봉(밀양시 단장면, 양산시 원동면 → 밀양시 삼랑진읍)
금오산은 밀양시와 양산시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서 천태산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부근의 만어산과 구천산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고 천태산보다는 높지만 지명도는 낮게 평가되어 왔다. 금오산은 지형적으로 이 산들을 잇는 큰형 격이고 가장 높은 산이지만 그저 거쳐가는 산에 머물렀다. 전체적인 산세는 평범한 육산처럼 보이나 산 정상부는 칼날같은 암릉이 이어져있어서 짜릿한 손맛을 즐길 수 있으며 사방으로 조망 또한 시원하다. 3~4개의 바위봉우리로 뭉쳐진 채 힘차게 단일봉 형상을 한 금오산은 멀리서 보아도 그 자태가 당당하며 주변에 삼랑진양수발전소가 안태호, 천태호 등 인공호수와 더불어 명소로 등장했고 가락국 때부터 있어온 부은암은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오늘과 어제를 가르쳐 주는 역사의 현장이다. 정상석이 서있다.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이 일품이다. 특히 북쪽 방향으로 영남알프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지나온 에덴밸리리조트 뒷삐알산과 풍력발전기가 조망되고 남동 방향 부산의 금정산도 토곡산 너머로 어렴풋이 보인다. 약수암의 뒷산이 금오산이다. 지명 유래는 산의 형세가 까마귀가 날아가는 모습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지맥의 오른쪽은 밀양시 단장면이며 왼쪽이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에서 밀양시 삼랑진읍 행곡리로 바뀌며 이후 완전하게 밀양시로 진입한다. 전국적으로 금오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 중에서 300대 명산에 속하는 산이 다섯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밀양의 금오산이다. 금오산은 구미 금오산(976.6m). 여수 돌산도 금오산(323m) 등이 유명하고 그외 충남 예산 금오산(233.9m), 경북 경주시 탑동 금오산(494.6m), 경남 하동군 금남면 금오산(849.1m)이 있다.
- 로프에 의지하여 암릉구간을 내려선다.
♤ 밀양시 삼랑진읍(三浪津邑)
삼랑진읍은 경남 밀양시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 금오산(760.5m), 천태산(630.9m) 자락이 신불암고개 아래 작원관지로 떨어지면서 양산시 원동면과 시 경계를 이루었고, 남쪽으로 낙동강 건너 김해시 생림면과 마주하고 있다. 서쪽으로 상남면과 밀양강 하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북쪽으로 임천터널을 경계로 남포동과, 만어산(670.4m), 구천산(620m) 줄기를 경계로 단장면과 접하고 있다. 밀양, 양산, 김해 등 세 지역이 접경을 이루며, 경부선과 경전선이 분기하는 철도교통의 요지이다. 밀양강(응천강)이 낙동강 본류에 흘러들어 ‘세 갈래 물결이 일렁이는 나루’라 하여 삼랑진이라 하였다. 예로부터 영남대로와 접속하는 수운의 요충지로 조선후기 동안 낙동강의 가장 큰 포구 중의 하나로 1765년(영조 41년)에는 삼랑창(三浪倉), 후조창(後漕倉)이 설치되어 밀양, 현풍, 창녕, 영산, 김해, 양산 등 여섯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수납, 운송하며 물자의 최대 집산지로 성장하였으나, 육로교통의 발달로 조창이 없어지면서 읍의 중심이 삼랑리(낙동)에서 송지리로 이동하게 되었다. 1928년 이전까지는 자연, 인문지명으로서의 삼랑진으로만 존재하였으나 1905년 송지에 삼랑진역이 들어서고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번창하면서 공식 행정지명을 ‘하동’에서 ‘삼랑진’으로 개칭하였다. 종소리 나는 만어사의 경석과 임진왜란 전적지 작원관이 알려져 있으며, 특산물인 딸기는 시배지로 유명하다.
천태산은 구천산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천태호와 안태호가 서로 양수발전소로 묶여져 있다는 사실도 창호대장님이 자세히 설명 주셔서 알게 되었구요.
♤ 천태산(天台山, 630.9m)
천태산은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과 양산시 원동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서 크고작은 바위가 태산처럼 포개진것 같다고 해서 '천태암산'이라고도 불렸던 산이며 천성산, 영축산과 함께 "양산의 3대 명산"이다. 천태산은 『여지도서』 밀양도호부에 ‘천대암산天臺巖山은 관아의 동쪽 40리 작원(鵲院) 가에 있다. 고야산(故射山)에서 뻗어 나와 곧장 김해의 무저산(無著山: 현재 무척산)과 물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데, 바위산 봉우리가 우뚝한 모습으로 가파르게 서 있으며 강물이 그 가운데를 돌아 나간다’고 기록돼 있다. 향토지에는 한 고승이 중국 절강성 천태산의 국청사를 본받아 이 산에 절을 짓고 산 이름을 천태산이라 했다고 한다. 천태산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수려한 계곡과 암릉, 기암괴석, 낙동강과 안태호, 천태호까지 바라보이는 천혜의 조망을 품고 있다. 양산시는 ‘천성산, 영축산과 함께 양산의 3대 명산으로 예부터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특히,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낙조는 탄성을 자아내도 모자랄 만큼 아름답고 신비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전체적인 산세는 능선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북쪽으로는 밀양의 금오산과 능선상으로 길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데 정상부 능선에 올라보면 그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특히 정상에서 낙동강과 어우러지는 낙조는 한폭의 그림과 같아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동쪽으로는 영남알프스의 깊은 골짜기인 배내골이 자리하고 있는데, 건너편 영남알프스와 연결된 여러 봉우리들과 함께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인다. 더불어 천태산 남쪽기슭에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천태사와 함께 20여m 높이의 용연폭포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의 계곡은 맑고 깨끗한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천태산이라는 이름은 "하늘 천(天) 별이름 태(台)" 자인데 '중국의 천태산과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올라온 등로를 내려서서 약수암 약수터에서 올라온 등로로 돌아온다. 갈림길을 지나치고 잣나무숲에 내려서 제차 약수암으로 향하는 MTB도로 이정표를 만나 직진한다. 이내 임도를 만난다. 임도 건너 등로 진입하여 숲과 바위지대와 연봉을 지나치는 힐링 능선을 따르다가 다시 임도를 만난다. 바위지대를 지나다 바위에 설치한 지적도근점도 만난다.
신라 화랑도 훈련장이었다고 하는 산행기도 있었습니다. 바위가 칼로 자른 듯이 잘려져 있기도 하더군요.
♤ 지적도근점
지적도근점은 지적측량 시 필지에 대한 수평위치 측량 기준으로 사용하기 위한 지적측량의 기초점으로, 이미 설치된 지적삼각점이나 지적삼각보조점으로 측량작업을 수행하기에 불충분한 경우 지적도근점을 설치한다. 지적도근점은 영구표지를 설치한 경우에는 시・군・구별로 아라비아 숫자의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영구표지를 설치하지 않은 경우에는 시행지역별로 아라비아 숫자의 일련번호를 부여한다.
♤ 당고개/ 삼리 경계면(삼랑진읍 행곡리, 단장면 국전리 → 감물리)/ 느티나무 버스종점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 당개마을에서 삼랑진읍 우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임도 진입하여 오른쪽 등로로 진행하여 당고개로 내려선다. 예전에 서낭당이 있어 당고개였지만 지금은 서낭당 흔적은 보이지 않고 고개 오른쪽 아래 감물에 당개마을이 있다. 당고개 도착 직전 아래로 해인사와 용소소류지가 보이고 왼쪽으로 감물저수지가 보인다. 느티나무가 있는 감물리행 버스 종점이다. 버스가 밀양시내 버스터미널로 오간다. 정류소 안내판에 운행시간이 적혀있다.
- 당고개 느티나무 앞 도로 건너 축대 위가 들머리이다. 행정구역상으론 여기부터 감물리로 바뀌는 곳이다.
용소는 당고개로 내려서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깜빡했네요.
♤ 용소(龍沼)
고개 아래 앙증맞은 용소소류지에는 옛날 마을 앞에 깊은 늪이 있었는데, 그곳에 살고 있던 용이 물가로 나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또 용이 날아갔다는 마을 동쪽 산봉우리에 해마다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며 지금도 이 마을 앞에는 작은 못이 남아 있는데 아무리 큰물이 지거나 가물어도 수량이 일정하여 용소(龍沼)큰샘이라는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곧 만나는 임도는 반야암으로 내려가고 오른쪽 등로로 진입합니다.
♤ 구천산분기점/ 삼리봉(단장면 감물리, 삼랑진읍 행곡리 → 우곡리)
희미한 갈림갈에서 왼쪽으로 오르막 등로를 조금 오르면 선답자 안내판이 소나무에 매달려 있다. 구천산까지는 왕복 40분 소요된다.
♤ 구천산(九天山, 640m)/ 왕복 40분
정상은 암릉 구간이다. 정상에 소나무가 있다. 옛날 정상석이 있던 곳에 돌탑이 서있다. 구천산은 아홉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고도 하고, 예전에 아홉마리의 호랑이가 살고 있어서 붙였다는 설이 있다. 그만큼 산이 깊다는 얘기다. 구천산에 서면 영남알프스 산군과 밀양 김해 양산 쪽 봉우리는 모두 확인될 정도로 조망이 일품이다. 구천산 정상석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돌탑 뒤로 금오산과 매봉산이 조망된다. 구천산에서 바라보는 금오산이 멋지다. 안태호 너머로 낙동강과 무척산 방향, 원동 쪽으로 천태산과 토곡산이 조망된다.
- 준희선생님 "영축지맥 구천산 640m" 산패가 소나무에 매달려 있다.
♤ 감물리고개(甘勿峴)/ 13번도로
밀양시 삼랑진읍 우곡마을에서 단장면 감물리 용소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각종 팻말들이 어지럽게 서있다. 만어추모공원과 선우사로 향하는 갈림길 도로이다.
- 안내판 뒤 집목지대로 진행해도 되지만, 선우사 방향으로 약간 진행하다 좌측 옹벽으로 올라선다.
♤ 밀양시 단장면(丹場面) 감물리(甘勿里)
밀양의 3대 오지마을이라고도 하는 표충사와 밀양댐 등이 있는 단장면의 오지 마을이다. 옛날부터 샘물이 차고 달았다 하여 단물리 또는 감수(甘水)를 감물(甘物)로 표기한데서 비롯된 지명이라고 하고 일제감정기에 감물(甘勿)로 변경하여 지금껏 부르고 있다고 한다.
♤ 선우사
등로 왼쪽에 선우사가 내려다 보인다. 민화를 그리는 석지연스님이 꾸리는 절이라기 보다는 별장 느낌이 드는 작은 암자 비구니절이다. 선우사 오른쪽으로 경전철 다리가 보이는 영축지맥 합수점이 조망된다.
- 선우사삼거리에서 정면 등로로 진입한다.
608m봉은 삼거리에서 약 50m 벗어나 있어 다녀오는데 3분 소요됩니다.
♤ 점골고개(店谷峴)/ 임도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 점골마을 위에 있는 고개이다. 608m봉 갈림삼거리에 내려서면 만나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넓다란 임도이다. 점골마을은 점골(店谷) 또는 정골(鼎谷)이라고도 하며 감물리 들머리 첫번째 땀(마을) 이름으로 골짜기가 있어 땀과 함께 절골이라 부르는데 옛날 이곳에 옹기점이 있었다고 한다. 왼쪽으로 우곡마을로 내려서는 농로가 있다.
- 임도를 건너 진행이다.
♤ 밀양시 단장면 법흥리(法興里)
법흥리는 동으로 안법천을 두고 안법리와 이웃하고, 서쪽으로는 자씨산(慈氏山, 376m)을 배경으로 하여 밀양시 구서원동(舊書院洞)과 시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비교적 험준한 만어산을 사이에 두고 삼랑진읍 우곡리와 면계를 지었고, 북쪽으론 산을 넘어 미촌리와 이웃해 있는 산중리 동리로 전반적으로 산이 에워싸고 있는 만큼 그 지대도 비교적 높은 편이며 골짜기 사이에 전개된 경지를 중심으로 띄엄띄엄 자연 부락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다. 이 동리는 법산(法山)을 정점으로 하여 상봉(上峰) 두 자연 부락이 북, 동, 서로 솥발처럼 배치되어 있는데, 옛날부터 은자의 동학(洞壑)이라는 아름다운 칭호가 붙은 곳이다. 법흥리에 탄생한 '법흥상원놀이'에서 상원은 정월 대보름을 일컫는 그래서 '정월대보름에 행해졌던 놀이'를 상원놀이라고 하는데 옛날에 당산나무에서 곡소리가 들려오고, 마을에 나쁜 일이 자주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이 당집을 세우고 대보름날 제를 지내게 됐고 그 이후 평안해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만어산(萬魚山, 669.5m)/ 자성산
경남 밀양시 단장면 법흥리와 삼랑진읍 우곡리, 용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삼랑진읍에서부터 북으로 약 4㎞ 거리에 있고 우곡리 북쪽에 있다. 『여지도서』에 만어산과 관련된 전설을 소개하고 있는데 가락국을 세운 수로왕 때 이 나라의 옥지라는 연못에 살던 독룡과 만어산에 살던 나찰녀(불교에서 말하는 사람 잡아먹는 귀신)가 서로 사귀면서 번개와 우박을 내려 4년 동안 농사를 망쳤다. 수로왕이 주술로써 이들의 악행을 막고자 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자, 부처에게 설법을 청하여 이들에게 오계를 받게 하였다. 이때 동해의 수많은 고기와 용들이 불법에 감동을 받아 만어산으로 모여들어 돌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지금의 만어사 앞의 어산불영(漁山佛影)인데 이 바위는 두드리면 맑은 쇳소리를 내었다고 하며, 특히 서북쪽의 큰 바위는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된 것이라고 전하는데, 멀리서 보면 부처의 모습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그 모습이 사라진다고 한다. 서쪽 기슭에 삼층석탑(보물 제 466호)이 있는 만어사가 있다. 밀양시에서 세운 정상석이 아담하다. 멀리 낙동강이 보인다. 정상에 올라보니 물길은 낙동강에서 이어진다. 용왕 아들을 따라 동해 물고기들이 예까지 온 물길이 오롯하다. 한반도 빙하기가 끝난 후 많은 비가 내려 이곳의 암석들이 양파가 벗겨지듯 침식·풍화되며 생성된 암괴류(천연기념물 제528호)로, 700m이상 길게 펼쳐지며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등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크다. 밀양의 3대 신비인 얼음골, 표충비각과 함께 널리 알려져 있다. 북쪽은 밀양 단장면이다. 멀리 재약산과 가지산, 운문산이 아스라히 조망된다. 만어산은 경남 밀양시 삼랑진에 있는 산으로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육산이지만 7부 능선쯤에 위치한 만어사 덕분에 적지 않은 관광객과 산꾼들이 즐겨 찾는다. 고풍스러운 만어사 그리고 산마을을 지나가는 여행길 같은 산행, 영남알프스 그리고 낙동강 주변의 전망과 안태호 그리고 금어산 천태산 등 시원한 조망이 가능한 산이다. 밀양시의 산이지만, 밀양 만어산이 아닌 삼랑진 만어산이 익숙하다.
- 아담한 정상석과 소나무 그리고 2등삼각점(밀양 21/ 1992년 재설)이 있다. 암봉을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폐허가 된 "SK만어" 기지국 옥상에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그 앞에서 바라보는 영남알프스 마루금이 멋집니다. 멀리서 보면 만어산의 상징과 같은 이동통신탑을 지나 내려섭니다. 이동식간이화장실이 설치된 공터(주차장)에 임도 갈림길이 있습니다. 여기서 임도길로 가지않고 왼쪽 만어사 급경사 등로로 내려서면 약 15분 소요됩니다.
만어사운해는 밀양8경 중의 하나이고, 암석지대(돌강,경석,만어석,어산불영)는 밀양3대신비 중의 하나입니다.
♤ 만어사(萬魚寺)
만어사 앞 계곡에 펼쳐진 길이 500m, 너비 100m의 암석지대인 수만 개의 너덜겅이 유명하다. 1996년 3월 11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 1520호로 지정될 때는 '만어산 어산불영'이라는 이름으로, 2011년 1월 13일 천연기념물 제 528호로 지정될 때는 '만어산 암괴류'로 등록되었으며 현재는 암괴류가 더 이상 형성되지 않는 화석화 단계이며, 주변의 식생이 서서히 암괴류를 잠식해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너덜겅의 내력은 '삼국유사'와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온다. 삼국유사에는 가락국 김수로왕이 만어사를 창건했다고 적혀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동해 용왕의 아들을 따라 나선 물고기 떼가 크고작은 돌로 변했다고 언급돼 있다. 조선 세종 때는 만어산 경석(磬石)을 채굴해 악기로 삼으려 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그 정확한 성인(成因)에 대해선 아무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일 뿐이다. 흔히 두들기면 맑은 종소리가 나서 종석(鐘石)이라 불리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여느 돌과 같은 평범한 돌이 더 많다. 이 돌들은 2억 년 전쯤인 고생대 말~중생대 초에 형성된 퇴적암으로 추정되지만 철분이 많아 쇳소리가 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얘기다. 미륵전의 미륵바위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높이 5m의 미륵바위 앞에서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재밌는 점은 미륵바위를 그대로 두고 전각을 지어 바위 뒷부분이 전각 밖으로 나와있다. 미륵바위는 KBS '스펀지'에 소개된 적이 있다. '밀양시 만어사란 절에는 □가(이) 있다'라는 문제였다. 정답은 '동전이 붙는 바위'였다. 방송을 본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실제로 동전을 붙여보는 바람에 지금은 이를 금하는 조그만 문구가 있다. 미륵바위에는 또 부처님의 형상이 보인다 하여 미륵불로도 불린다. 만어사에 대한 전설은 옛날 동해바다의 용왕의 아들이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근처의 무척산(김해)의 신통한 스님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니 스님은 가다가 멈춤이 있는 곳이 인연이 있는 곳이라 했다. 이에 용왕 아들이 바다를 떠나자 수많은 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왕자가 머문 곳이 이곳 만어사라 한다. 그 뒤에 왕자는 큰 미륵돌로 바뀌었고 고기떼들은 크고작은 돌로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현재 이 절의 미륵전안에 있는 5m 정도의 큰 자연석 바위가 왕자가 된 미륵돌이라 하여 여기서 빌면 아들을 얻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절 아래로 수많은 크고 작은 돌들이 물고기가 변해서 되었다고 하는데 그 수가 정말 엄청나다. 작은 돌을 주워 두드려 보면 일부의 돌에서는 청명한 종소리가 들린다.
♤ 만어현(萬漁峴, 520m)/ 만어치/ 임도삼거리
남쪽으로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만어사와 북쪽 밀양시 단장면 법흥리 사지마을을 이어주는 고개이다. 왼쪽은 만어사로 향하는 만어사삼거리 방향, 지맥은 우틀하여 만어현으로 향하는 자전거도로가 지나는 넓은 임도사거리이다. 여기서 만어사를 다녀와 우측 등로로 진입해야 한다.
♤ 523.6m봉/ 삼거리/ 만어-8 구조목
지맥은 여기서 좌틀한다. 왼쪽의 지맥길은 희미하고 띠지도 별로 없다. 정상 오른쪽 산성산으로 향하는 영알환종주 코스에는 띠지가 잔뜩 붙어 있다. <밀양 만어8>지점 / 칠탄산, 자씨산, 산성산 갈림 지점이다.
♤ 산성산(山城山, 387m)
밀양시 가곡동과 활성동의 경계에 있는 산성산의 지명 유래는 자씨산성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산성산을 일자봉(一字峰), 반팅이산(함지를 엎어높은 형상의 산)으로 잘못 부르고 있으며 원래는 자씨산(慈氏山, 376m: 부처님의 산)으로 풍수가들이 명당을 논하며 '좌청룡 우백호'를 꼽을 때, 밀양에 있는 산성산이 꼭 그러한 경우라고 한다. 범과 용이 꼬리가 서로 엉킨 곳이라는 금씨당에서 산성산을 바라보면 오른쪽 봉우리는 밀양시 가곡동 소재 용두산(龍頭山, 73.6m)이고 왼쪽의 봉우리가 호두산(虎頭山, 109m)이다. 범머리봉이라고 불리는 호두산은 동천과 다원을 바라보며 범이 머리를 들고 있다면, 용두산은 용이 엎드려 잠을 자는 형국인데 용을 깨우려고 자씨산에 영원사를 세웠다고 한다.
♤ 영알환종주
영남알프스를 배경으로 남기리~비학산~낙화산~오치령~육화산~흰덤봉~구들삐산~구만산~인재~복점산~억산~운문산~가지산~능동산~배내고개~배내봉~간월산~신불산~영축산~함박등~채이,죽바우,시살등~오룡산~염수봉~뒤삐알산~에덴벨리~매봉~금오산~만어산~산성산의 영알환종주(108km) 외에 영알태극(110.8km), 나비종주(275km) 등의 장거리 종주가 있다.
♤ 만어봉(547m)/ 삼리봉(삼랑진읍 용전리, 단장면 법흥리 → 숭진리)
특징없는 묘지가 있는 봉우리이다. 만어봉 표찰과 준희선생님 "영축지맥 547m" 산패가 있다.
- 오른쪽의 내리막 등로로 진행한다.
밀양박씨 금융원 등 무덤群 묘지지대를 지납니다. 낙동강 너머로 무척산이 보이고 잡목지대를 지나 오두막쉼터 직전 오른쪽 전망바위에서 밀양들녁을 바라본다. 아래쪽은 삼랑진읍 용성리, 밀양강 건너는 상남면 일대 평야지, 건너편 덕대산과 비슬지맥 능선 왼쪽부터 팔봉산-종남산-우령산 마루금을 놓치면 서운하다. 오두막쉼터에서 임도로 내려선다.
♤ 솔태고개/ 양회임도
삼랑진읍 용전리 마을과 청학리 청룡마을을 이어주는 밀양시에서 개설한 소형차량도 운행 가능한 MTB 양회임도이다. 왼쪽에 용전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임도 왼쪽 절개지 위 작은 돌탑에 산사랑님의 영축지맥 "여기가 솔태고개입니다" 산패가 있다. 오른쪽으로 용성리, 청룡리 마을로 탈출하여 부산대 밀양캠퍼스 내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밀양시내로 나갈 수 있다.
- 용전리로 내려가는 양회임도를 버리고 솔태고개 표지판 방향 왼쪽 절개지 위가 들입로다.
♤ 258m봉/ 삼각점봉
솔티고개 직후 4등삼각점봉이다. 10분 정도 임도를 진행하면 만나는 271.7m봉에도 오른쪽에 4등삼각점(밀양 424/ 재설 건설부)이 있다.
- 4등삼각점(밀양 409/ 1998 재설)이 있다.
♤ 폐 활공장(320.5m)
활공장으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따라 맥길이 이어진다. 조망이 탁 트이는 폐활공장을 만나 소나무 방향으로 진행, 활공장 아래 삼랑진읍 용성리를 바라보고, 밀양강 건너편 상남면으로 팔봉산-덕대산-종남산-우령산의 비슬지맥 마루금과 그 오른쪽으로 밀양시내가 보인다.
♤ 밀양시 삼랑진읍 용성리(龍星里)
용성리는 삼랑진읍의 서쪽 응천강(凝川江) 하류 연안에 위치한 동리이다. 동쪽으로 청룡 뒷산 줄기를 따라 용전리와 이웃하였고, 서쪽으로는 응천강 흐름을 끼고 상남면과 경계를 이루었다. 북쪽으로 광활한 들판을 사이에 두고 청학리, 임천리와 인접해 있고, 남쪽에는 현랑산(玄浪山)을 넘어 미전리와 경계를 지었다. 용성이라는 지명은 옛날 마을 앞 늪속에 한마리 용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옥황상제에게 죄를 지어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고 매양 밤마다 별무리를 쳐다보며 울다가 죽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914년 가장 큰 부락인 청룡과 칠성에서 한 자씩을 취하여 법정리 이름을 용성리라 하였고, 새터, 솔배기, 인구리 등 다른 자연 부락도 이에 편입시켰다. 이 동리도 중세 시대에 금음물부곡(今音勿部曲)의 판도 안에 들어 있었는데, 마을 앞 응천강 하류의 하구에는 상선이 많이 드나들었고 광탱이나루, 인구리나루, 미전나루 등 옛 나루터 유적이 이웃하여 당시 강좌(江左)로 내왕하는 수운 교통의 요지임을 말해주고 있다.
♤ 청용산(靑龍山, 362.8m)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와 용성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봉우리라기 보다는 그저 밋밋한 능선 갈림길이다. 지도상으로는 이곳이 청룡산으로 되어있으나 약 10분 진행하면 준희선생님의 청룡산 산패가 다시 나온다. 정상석은 없고 조그마한 산패와 띠지만 나무에 매달려 있다.
- 청룡산에서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왼쪽으로 꺽어져 표지판 아래로 진행한다.
♤ 323.2m봉/ 삼각점봉
갈림길이다. 지맥은 좌틀로 내려서는데 직진으로 4~50m 가면 등로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3등삼각점(밀양 303/ 1998 재설)과 준희선생님 "영축지맥 324.2m" 산패가 있어 갔다가 되돌아 온다. 직진으로 음달산(187.7m)으로 향하는 뚜렷한 등로가 보인다.
- 봉분이 훼손된 묘 1기가 자리한다.
♤ 새나루고개/ 58번지방도로
북쪽 밀양시 삼랑진읍 용성리와 남쪽 삼랑진읍 미전리를 연결하는 58번 국도이다. 예전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교통이 요충지였는데 바로 옆으로 대구-부산간 중앙고속도로 삼랑진터널이 지나는 바람에 옛 영화를 잊어버린듯 하다. 새나루고개로 내려서서 도로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국민보도연맹 희생지 안내판이 서있다.
- 안내판 방향으로 도로를 건너 왼쪽에 있는 나무 옆이 들머리다.
♤ 국민보도연맹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이란, 국민보도연맹(국민보호선도연맹, 약칭은 보련)은 남한 내 공산주의 세력 약화를 위해서 과거 좌익에 몸 담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가입시켜 만든 단체다. 여기서 보도는 보호하여 지도한다는 의미인 保導를 쓴다. 신문이나 방송으로 나라 안팎의 새로운 소식을 일반에게 널리 알림, 또는 그 소식 등 뉴스를 보도할 때의 報道가 아니다. 국민보도연맹 학살(國民保導聯盟虐殺)은 1950년 6월 25일부터 9월 중순경까지 국민보도연맹원들이 군 정보국과 경찰, 헌병, 우익 청년단원에 의해 소집·연행·구금된 후 집단 학살된 사건이다.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대한민국 국군·헌병·반공단체 등이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 등을 포함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4,934명과, 10만 명에서 최대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추정되는 대학살 사건이다. 대한민국 산하 전역에 걸쳐 자행되었고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0년 7월부터 8월까지 밀양지역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은 밀양경찰서 및 관할지서 경찰과 경남지구 CIC에 의해 연행되거나 소집 통보를 받고 자진 출두한 이후 밀양경찰서 유치장과 밀양읍 나카노공장, 삼랑진지서, 삼랑진역 강생회 지하창고 등에 구금되었다가 1950년 8월 중하순경 청도군 매전면 곰티재, 밀양군 삼랑진면 안태리 뒷산, 검세리 깐촌 낙동강변, 미전리 미전고개 일대에서 집단 사살되었는데 당시 희생자는 55명 이라고 한다. 밀양 여러군데 희생지 중 한 곳이 여기다.
♤ 326.9m봉
평편한 공터이다. 나무사이 오른쪽 편으로 밀양강 건너편에 비슬지맥 마지막 상남면 외산리이다. 붕어등, 처녀묘등 마루금이 조망된다. 그쪽에도 감나무 과수원이었다.
- 내림길은 11시 방향으로 좌틀이다. 감나무밭 임도로 내려선다.
오른쪽 외산리 비슬지맥 합수점 오우진나루 부근입니다.
♤ 딸기 시배지(始培地)
오른쪽으로 비슬지맥의 합수점 넓은 들녁에 비닐하우스가 많이 보이는데 이곳이 딸기가 많이 나오는 곳이다. 밀양시 삼랑진읍 긍융조합 이사로 있던 故송준생(1976년 작고)씨가 일본에서 딸기 모종 10여 포기를 가져와서 처음 심었고, 그 이후 같은 마을에서 사는 주민이 송씨로부터 딸기 모종 5포기를 받아 노지재배에 성공하면서 딸기농사가 퍼졌다. 밀양 딸기는 삼랑진읍을 중심으로 하남읍, 상남면에서 집중적으로 재배되고 있으며 딸기 재배 수확량은 경남지역이 전국의 38%를 차지하며, 밀양지역은 경남지역의 딸기 생산 26%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 미전고개(美田峴)/ 58번지방도로
밀양시 삼랑진읍 미전리에 있는 고개로 왼쪽에 미전논공공단이 있고 오른쪽에는 화성마을이 보인다. 옛날엔 이곳이 무흘역이 있었던 자리다. 물류센터 입구로 내려서고 오른쪽으로 도로따라 미전고개로 향한다. 미전고개에서 공장 오른쪽 뒤로 농장 울타리는 넘어가는 지맥 마루금은 가시덤불이다. 트윈터널 방향(천탑사 방향)으로 진행하다 반바지님의 코팅지 뒤로 옹벽을 따라 그물망 울타리로 진행한다. 넘어진 울타리로 올라서면 이후 울타리를 세번 넘어서야 한다. 미전논공단지 공장 왼쪽으로 우회하여 오르거나 오른쪽 과수원을 우회하여 올라서는 방법도 있다.
- 미전고개는 버스정류장이 없어 왼쪽 58번 도로까지 내려가야 한다.
♤ 무월이역(無月伊驛)/ 무흘역(無屹驛)
미전리는 응천강(凝川江) 하류 강변을 타고 내려온 경부선철도가 동남쪽으로 꺽어들면서 무흘산터널을 빠져나와 삼랑진역에 이르는 큰 마을로 이곳은 중세 이래 부산에서 서울에 이르는 교통의 요지로서 황산도(黃山道)에 소속된 무월이역의 소재지였다. 고려시대 이래 10여 필의 역마와 수백 명의 역리, 역졸(驛吏, 驛卒)을 거느린 역관과 파발참을 겸한 큰 역마을이었다. 동북쪽으로 사기점 골짜기를 따라 용전리와 이웃했으며, 북쪽에는 음달산을 사이에 두고 용성리와 경게를 지었으며, 서쪽으로 응천강 하류를 따라 상남면과 면계를 이루었고, 동남쪽에는 매봉산 너머로 송지리, 삼량리와 이웃하였다.
♤ 밀양시 삼랑진읍 미전리 화성(火城)마을
대천에서 미전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화성동이 나오는데 무흘역관에 묵어가는 관인, 역졸과 길손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살던 마을로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기 전까지 이 곳에는 여인숙과 주막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점포가 있었다. 철도가 생긴 이후 철로연변 정비사업에 따라 이웃 입성과 화성 두땀에 살던 사람들을 매봉산 북쪽에다 새터를 정하여 주거를 옮기게 했으며, 화성이란 지명은 무월터널이 설치된 이후에 생긴 것으로 화통차가 소리를 지르며 달리는 잿마루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또 이 마을 뒷산을 봉오재만댕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파발참 연락 수단으로 봉화불을 올렸으므로 불재(火城)라는 뜻으로 생긴 지명이라고도 하며 정상에는 석축의 원장(垣墻) 지금도 남아있다.
정상 올라서기 직전 능선 아래가 경부선철도가 지나가는 무월산터널과 대구-부산간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삼랑진터널 위입니다. 서북쪽엔 두개의 터널이 지나간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트윈터널이 있습니다.
♤ 196.1m봉/ 삼각점봉
정상부에 용도 불명의 지붕이 낮은 움막집이 있다. 미전고개에서 울타리를 넘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힘겹게 올라선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이다. 조망은 없다.
- 4등삼각점(밀양 443/ 1998 재설)이 있다.
♤ 무월산분기봉/ 무월산(205.8m)
등로는 우틀하여 내려선다. 띠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갈림길이다.
거족고개로 내려서며 전방으로 올라서야 하는 봉우리와 왼쪽에 매봉산 마루금 조망된다. 오른쪽으로 밀양강 건너 비슬지맥 마지막 오우진나루로 가는 딸기밭 재배지가 보이고....
♤ 거족고개(居族峴)/ 1022번지방도로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거족마을 위에 있는 고개로 서쪽 삼랑리 거족마을과 동쪽 삼랑진읍 방면으로 연결되는 1022번 지방도로이다. 거족마을은 삼랑리의 북쪽 응천강가에 있는 저습지대 마을로 지금과 같이 강변제방이 견고하지 못했을 때는 해마다 강물이 범람하여 마을 전체가 침수되는 일이 잦았다. 거족, 또는 거연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옛날 어느 해에 마을 사람들이 수해가 없도록 동신(洞神)에게 제를 올리고 있는데 큰 제비 수십마리가 제상(祭上) 위를 날아다닌 이후로 마을에는 별다른 수해를 당하지 않고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으며 큰 제비(巨燕), 거제비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거젭 → 거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도로로 내려서서 건너편 철대문이 있는 과수원으로 지맥이 이어지나 마루금이 칡넝쿨지대라 우회하기 위해 왼쪽 정류소 방향으로 진행한다. 사유지라 출입금지 경고판이 즐비한 임도로 진입하여 급하게 위로 향하는데 공사 이후 임도 출입을 금한다면 후답자는 좌우측으로 우회하여 봉우리 올라서야 할것 같다.
- 정류소 맞은편 방향으로 진행한다. 통행금지 경고판이 즐비한 사유지이다.
사유지 상단 울타리를 넘어서서 된비알을 올라선다.
♤ 매봉산분기봉(229m)/ 됫개뫼(後浦山)
매봉산분기봉 정상은 매봉산 방향으로 약 30m 벗어나 있다. 매봉산을 왕복하는 갈림길봉에 표지판이 있다. 매봉산에서 합수점 조망이 아름답다.
- 매봉산은 왼쪽으로 이어지고 맥길은 오른쪽 아래로 내려선다.
♤ 매봉산(鷹峰山, 283.5m)/ 왕복 45분
매봉산은 밀양시 삼랑진읍 송지리 신천마을과 삼랑리(낙동)에 걸쳐있는 산으로 만어산, 구천산, 금오산, 천태산 등 삼랑진을 에워싸고 있는 다른 산에 비하면 나지막하지만 삼랑진 관내 학교 교가에 빠지지 않고 들어갈 만큼 삼랑진을 상징하는 산이라 할 수 있다. 매가 날개를 펴고 앉아있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매봉산이라 하였는데 한자 표기시 '매'에 해당하는 마땅한 한자가 없어 차음하여 '妹'로 나타내기도 하고, 뜻을 따라 '鷹'자로 표기하기도 한다. 옛날에 푸른 소나무가 울창하여 삼랑진 팔경 가운데 하나로 매봉창송을 들었다 하며, 달리 '뫼봉산'으로도 부른다.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으로 묘지 뒤에 돌무더기 무덤봉(226m봉)에 오르고, 돌무더기가 있는 봉우리에서 급내리막으로 내려서다 첫번째 갈림길에서 좌사면으로 감나무농장에 내려서기 보다는 직진으로 진행한다. 5분쯤 진행하다 뚜렷한 직진의 급경사 등로를 버리고 선답자 띠지를 찾아 왼쪽으로 들어서야 한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 갈림길 무덤 상단으로 향한다. 내리막으로 내려서면 과수원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가 보인다.
감나무농장 상단 울타리로 올라선 무덤에서 왼쪽으로 영축지맥 마지막 봉우리가 중장비 소음에 처참하게 사라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성황당이 있는 영축지맥 마지막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던 합수점과 경전선 철로(콰이강의 다리) 아래로 내려서던, 대나무밭을 통과하던 가파른 길이 사라지는 것이다. 택지를 조성하여 분양할 예정이란다. 지맥은 감나무과수원 농로를 따라 내려가 안부삼거리에서 오른쪽 송전철탑봉으로 오르기도 하고, 공사중인 마지막 지맥 마루금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양회임도로 우회 진행하여 삼랑진배수지를 지나 삼강서원에 도착하기도 한다. 송전철탑 능선에 올라 좌틀하여, 영축지맥의 마지막 봉우리 서낭당터에 남겨진 당산나무에서 삼랑진 합수점을 감상하고 오른쪽 1시 방향 가파른 길로 내려서서 왼쪽으로 돌아 내려가 대나무밭을 통과하고 마지막 인가의 울타리(개집 옆)를 통해 도로로 내려서는게 정통 지맥길이다.
마지막에 합수점으로 내리게 되면 우회지점에 있는 삼강서원과 삼강사비 등은 볼 수 없습니까 하고 선생님께 여쭤본 적이 있는데 선생님께서 마음을 헤아리시고 사진을 찍어두셨다가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삼강서원/ 삼강사비/ 삼강사
양회임도 오른쪽으로 삼강사가 보인다. 삼강사 직전에 후조창 비석군이 있다. 삼랑진 후조창 유지 비석군과 삼강사, 삼강사비가 있는 삼강서원을 구경하고 합수점으로 내려선다. 삼랑리에는 1765년(영조 41년) 후조창이 세워졌는데 후조창은 밀양, 양산, 현풍, 창녕, 영산, 울산, 동래의 일곱개 군현의 세곡(稅穀)을 징수하여 보관하던 국가물류창고다. 수납된 세곡은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으로 보내졌고 삼랑리에는 후조창의 관원들이 공무를 보았던 차소(差所)와 선주들이 근무하던 선청(船廳), 관비들이 숙소, 창고, 주막, 여인숙, 점포, 저자거리로 번잡하였던 곳이다.
고목과 낙동강, 밀양강의 전경을 담고 고목나무 뒤로 보이는 방향으로 진행하여 합수점에 내려선다.
♤ 밀양강/낙동강합수점/ 낙동강교/ 조창나루터
삼강선원에서 골목길을 빠져 나와 도로에 합류하면 국토교통부 낙동강 표지판을 만난다. 밀양강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합수점이자 영축지맥의 맥이 끝나는 지점에 반바지님의 코팅지가 있다. 경전철 낙동강 철교 아래 조창나루가 있었던 나루터로 내려선다. 삼랑진 소공원의 수준점은 8m를 가리킨다. 나루터 뒤로 삼랑진교와 그 뒤로 보이는 김해의 진산이라는 무척산~작약산 무척지맥 마루금을 바라보며 영축지맥 마지막 인증을 한다. 경전선 철교 아래 해가지는 서쪽 밀양강 건너편이 비슬지맥 합수점인 오우진나루이다.
첫댓글 어쩜 사진도 요소마다 잘 찍으셨네요.
야심한 밤에 금오산을 지난 아쉬움은 있지만, 대신 만어산의 명품인 돌, 탑, 미륵불 등 눈요기로 충분했지요.
3개월 넘게 푹 쉬었더니 혼쭐난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거족고개에서 229봉 오르는데 1시간 걸렸더군요. 참나~
모처럼 탈진상태 직전까지 제대로 체험했던 순간으로 기억될 듯 싶습니다.
끝까지 힘이 되어 주시느라 수고많으셨구요..
함께 했던 멋진 추억을 새길 수 있었습니다.^^
방장님!
이번 영축지맥 산행에서 방장님이 제일 힘들게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연세도 있으시고 현실을 인정해야할 단계인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어서 더 기억에 남고 추억이 되는 단합산행이 되지않았나 싶네요.^^
그리고,,,
만어사에 들르지 않고 영축을 졸업하는건 다 무효처리 해야 됩니다.^^
만어사 암괴류와 진기한 명물들은 꼭 구경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신기했습니다.
조만간 찾아뵙고 못다한 여정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만어현 표식은 반바지님이 제 재활 후 지맥 복귀산행 때 달아놓은 겁니다. 둘이 대중교통으로 함께 했습니다.
아, 글쿤요.
누가 새마포산악회와 함산했다고 그러던데 낭설이었군요.^^
반바지님 표식은 만어현 외에도 여러 곳에 있었습니다.
우선 내석고개와 미전고개 무월산이 생각나네요. 올만이라 반갑구요.^^
멋진 산줄기, 영축마루금을 다녀오셨군요.
동행하신 분들의 면면으로 인해
그 멋진 산줄기가 더욱 빛남으로 부각됩니다.
퐁라라님 마음 깊은 곳에 간직되어있는,
맞추다 만 퍼즐 조각을 하나씩 완성해 가는 과정.
구경꾼 눈에는 그게 또
자연을 닮아가는 과정이라 해석되기도 합니다.
언제나 산을 길라잡이로 세우고 걸어가는,
퐁라라님의 앞길이 밝음으로 눈부셨으면 좋겠습니다. 즐감했습니다.
범산선배님!
영축지맥 여운이 남는 멋진 지맥이었습니다.
영남알프스와 낙동정맥 그리고 비슬지맥과 운문지맥이 함께 하였구요.
남암지맥과 용천북지맥도 영축의 한 부분으로 들어왔습니다.
오룡산, 염수봉, 금오산, 토곡산, 천태산, 만어산, 천성산, 향로봉과 향로산...
영축지맥을 하며 새롭게 인연을 맺은 산들입니다.
함박등, 채이등, 죽바우등은 이름도 정겹고요.
무엇보다 대선배님들의 무한한 산정 베품에 배가 불렀습니다.
그리고 운영진 선배님들과 처음으로 발을 맞추고 추억을 쌓게 된 것도 하나의 성과입니다.
비슬지맥을 하며 건너편에 영축지맥 능선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다음 번에 비슬지맥 종남산에 설 기회가 있다면 건너편 만어산의 철탑을 찾아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날에 이어 영축의 나머지 구간도 잘 마무리를 하셨네요
저도 금오산 오름길이 너무 힘들게 올랐다는 기억이며 만어산 너덜길의 청량한 소리의 바위들로 인해 신기해 했던 추억도 생각나네요
대선배님들의 지원으로 의미있는 산행을 잘 마무리함을 축하 드리며 잘 읽고 갑니다
네, 칠갑산선배님!
만어산에서 내려서며
넓은 공터(주차장)에서 임도를 따르지 않고 비탈길로 만어사로 내려갔습니다.
만어사를 구경하고 다시 임도를 따라 올라가서 지맥길로 복귀하는데,,
지맥길 또한 임도가 아니고, 만어사삼거리와 만어현 사이에 날머리가 있었습니다.
지맥길을 잠깐 놓치게 되지만 그보다는 만어사를 내려갔다 올라오는게 훨씬 의미있는 지맥길이 되더군요.
영죽지맥에서 만어사를 빠뜨린다면 앙꼬없는 찐빵입니다.^^
만어사에서 물도 보충할 수 있고 구경 거리가 너무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