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와 함께한 군대 (열왕기하 6:14-19)
세상에서는 수(數)가 중요합니다.
다수결, 세력, 힘, 지배력, 지분, 몫, 서열이 모두 수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수는 크기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오는 6월 13일에 지방선거가 있는데,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입니다.
어떤 후보라도 51%의 지지를 얻으면 확실히 당선됩니다.
그에 비하면 교회의 직원들은 공동의회에서 2/3 이상 득표해야 되기 때문에 요건이 훨씬 강합니다.
내 재산이 얼마인가, 월급이 얼마인가, 사고 싶은 물건의 값이 얼마인가, 시험 점수가 얼마인가, 기계의 성능이 어떤가,
키나 체중이 얼마인가, 혈압이나 당뇨 등의 건강 수치 등 많은 것이 숫자로 표시됩니다.
사람이 혼자서는 힘이 약하기에 자기 편, 지지자를 많이 두고자 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12)
군대의 숫자, 병력은 국방력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옛날 전쟁 무기가 칼, 창, 활 정도일 때는 군대의 숫자가 승패에 절대적이었습니다.
대량 살상이 가능한 무기가 없던 시절에는 인해 전술(人海 戰術)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6·25 전쟁 때 개입했던 중공군이 인해 전술로 국군과 유엔군을 밀어붙였습니다.
주의 백성들을 지키고 돕는 하나님의 군대는 양이나 질의 면에서 세상의 군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엘리사 선지를 잡기 위해 아람 군대가 많이 동원되어 성읍을 에워쌌으나 하나님의 군대가 훨씬 많고 강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사 선지가 사환에게 말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그들과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16절)
아람은 이스라엘의 북동쪽 시리아 지방에 있었던 나라인데,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침략하며 적대 관계에 있었습니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군대를 동원하면 엘리사 선지가 미리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 선지가 알려준 정보대로 방어를 하여 아람의 공격을 방어하였습니다.
아람 왕은 자기들의 작전이 계속 누설되자 마음이 불안하여 신복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하였습니다.
한 신복이 자기들 중에 내통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사 선지가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준다고 고하였습니다.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열왕기하 6:12)
아람 왕은 먼저 엘리사 선지를 잡기 위해 그가 있는 도단성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밤에 보내어 도단성을 에워쌌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 나가 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에워싼 것을 보았습니다.
사환이 놀라서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열왕기하 6:17)
하나님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자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른 것이 보였습니다.
엘리사가 또 기도하여 아람 군사들의 눈을 어둡게 하였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성으로 데려가 모두 사로잡히게
하였습니다.
엘리사를 잡으러 왔던 군사들이 오히려 이스라엘왕에게 잡히는 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람의 공격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힘으로는 아람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엘리사 선지를 통해 아람의 작전 계획을 미리
알려 주셔서 방비케 하였습니다.
아람이 아무리 비밀리에 공격 계획을 세우고 군대를 보내도 하나님께서 막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람왕은 자기의 신복들 중에 이스라엘왕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람왕이 군사들을 보내 엘리사가 있는 도단성을 포위하였을 때도 엘리사의 힘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 말과 불 병거를 보내 엘리사를 보호하셨습니다.
아람왕의 계획과 노력은 하나님의 손에 무산되었습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경영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도와 주셔야 성취됩니다.
우리 삶의 결정적인 순간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편 127:1)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우리가 계획하고 노력하고 힘쓰지만 하나님께서 집을 세워 주셔야 하고, 성을 지켜 주셔야 합니다.
오늘까지 우리 자신과 가정, 교회, 국가가 이렇게 존속하고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도우심이며 복입니다.
아람 군사들이 엘리사 선지를 잡으려고 은밀히 밤중에 와서 도단성을 포위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엘리사 선지의 사환은 아람 군사들을 보고 떨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평온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16절)
열왕기하 18-19장에서 앗수르의 군대 18만 5천 명이 유다를 공격하여 히스기야왕과 백성들을 위협하였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이미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앗수르왕의 요구대로 주었습니다.
히스기야왕은 앗수르왕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성전과 왕궁 곳간의 은을 다 내 주었고, 성전 문과 모든 기둥의 금까지
벗겨서 주었습니다.
앗수르왕의 군사령관 랍사게는 항복을 요구하며 히스기야왕과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열왕기하 18:35)
이에 히스기야왕이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영의 군사 18만 5천 명을
쳤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모두 송장이 되었습니다.
앗수르의 대군도 여호와의 사자가 단번에 처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잡히실 때도 군대와 무리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제자 베드로가 칼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었는데, 예수님께서 낫게 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태복음 26:53)
로마의 한 군단은 6천 명의 병력이므로, 열두 군단은 7만2천 명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그 수와 힘이 세상의 어떤 나라나 군대보다 많고 강합니다.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시편 68:17)
하나님의 군대는 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강력합니다.
엘리사 선지를 보호하기 위해 불 말과 불 병거가 동원되었습니다.
접두사 불은 아주 심하다는 뜻입니다.
불시험, 불주사(예전에 예방주사의 바늘을 알코올 불에 소독하여 접종했던 것인데, 아이들에게 상당히 아플 것이라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불볕 더위 등이 있습니다.
불 말과 불 병거는 보기에나 능력에 있어 가공할 만한 무기입니다.
실제 군사 무기 중에 불을 뿜는 것들(거북선, 헬파이어 미사일, 원자폭탄 등)은 굉장한 무기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군대가 엘리사 선지를 호위하였습니다.
6·25 전쟁 때 기습 남침한 북한 공산군은 소련제 탱크 242대를 앞세워 공격하였습니다.
국군은 탱크를 막을 길이 없어 폭탄을 안고 육탄으로 맞섰습니다.
무기의 차이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합니다.
북한이 끈질기게 핵폭탄을 개발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첨단 무기, 대량 살상 무기, 핵무기 등은 군대의 힘과 국방력의 핵심입니다.
중국의 삼국지 이야기에 제갈량의 공성계(空城計)가 나옵니다.
제갈량은 부하 마속의 잘못으로 가정(街亭)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각 대군을 철수시킬 계획을 마련하고, 직접
5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성현(西城縣)으로 가서 식량과 말먹이 건초를 운반합니다.
이때 갑자기 사마의가 15만 대군을 거느리고 서성으로 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옵니다.
그러나 서성에는 문관들만 있을 뿐이었고, 군사 5천 명도 절반은 양초 운반에 동원된 터라 성안에는 겨우 2천5백 명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에 제갈량은 깃발을 감추고 북도 울리지 못하게 합니다.
각 성문마다 20명의 군사를 배치하여 백성 차림으로 분장한 채 물을 뿌리며 길거리를 깨끗이 청소하게 합니다.
그리고 제갈량 자신은 성 위 망루에 올라 거문고를 타는데, 주위에는 보검을 든 아이와 주미(먼지떨이)를 든 아이만
있게 하였습니다.
성 아래까지 도착한 사마의의 군사들은 감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평생토록 신중하여 위험한 계략을 쓴 적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복이 있지나 않을까 의심이 들어 철수명령을 내리고 돌아갑니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안 사마의는 후회하며 “나는 제갈량을 따라갈 수가 없구나!” 하고 탄식하였습니다.
조조의 지략가이며 훗날 손자가 삼국을 통일하여 진나라를 건국하는 토대를 쌓은 사마의도 제갈량이라는 이름 앞에
그런 후퇴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그 이름만으로도 대적이 없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야고보서 2:19)
다윗도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간다고
하였습니다(사무엘상 17:45).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 앞에 맞설 자가 없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었네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었네
예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우리 앞에 누가 서리요
예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승리를 얻었네” (복음성가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고, 지켜 주십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의 군대는 세상의 군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기도할 때 그 눈이 열립니다.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7절)
우리의 육의 눈은 한계가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이라 하지만 보이는 것이 실체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육의 눈은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육의 눈도 밝아야 하겠지만 영의 눈도 밝아야 합니다.
기도하며 보는 영적인 눈이 밝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보는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군대,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능력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영안이 어두우면 엘리사의 사환같이 세상의 군대만 보이고, 두려워 떱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자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예레미야 5:21, 요한계시록 2:7 등)
아람 군사들은 엘리사 선지를 잡으러 왔으나 엘리사를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엘리사는 대머리였던 것으로 보여 쉽게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인데, 엘리사가 기도하였습니다.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18절)
하나님은 사람의 눈을 만드셨고, 어둡게 하사 보지 못하게도 하십니다.
순교자 박관준 장로(1875-1945, 1939년 일본 제국의회에 들어가서 신사참배 반대 성명서를 뿌림)가 평양에서 부산을
거쳐 일본 동경까지 가는 동안 아무런 검색이나 제지를 받지 않았습니다.
고신의 초기 지도자인 한상동 목사(1901-1976)가 1946년 평양에서 삼팔선을 넘어올 때도 부부가 공산군 경비들이
보지 못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내려왔습니다.
우리와 함께한 군대는 세상의 군대보다 많고 강합니다.
그 수나 능력, 힘에 있어 세상의 군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군대를 동원하사 우리를 둘러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우리와 함께한 군대가 우리를 둘러 있기에 평안함과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기도하면서 영안이 열려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담대하게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그들과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