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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0.09.23.PM2시)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2
화엄회상 대중들의 득법(得法)과 게송
화엄경 강설 제2권 가애락법광명당천왕과 그 대중들의 득법과 게송을 공부할 차례다.
2. 가애락법광명당 천왕과 그 대중들의 득법과 게송
1) 득법
득법은 법을 얻은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 내용이다.
부차가애락법광명당천왕(復次可愛樂法光明幢天王)은 득보관일체중생근(得普觀一切衆生根)하야 위설법단의해탈문(爲說法斷疑解脫門)하니라
다시 또 가애락법광명당(可愛樂法光明幢)천왕은 일체 중생들의 근기를 널리 관찰해서 법을 설하여 의심을 끊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가애락법광명당천왕은 일체 중생들의 근기를 널리 관찰해서 법을 설한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어린아이들에게 알맞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노인들에게는 노인들에게 알맞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것이 참 어렵다.
저도 늘 불자님들을 대하고, 스님들을 백여 명 이상 모시고 같이 공부하고 있는데, 물론 저에게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이 이야기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얼마나 이해할까?’ 그런 것이 늘 의문이다.
지혜가 명철해서 상대에게 딱 맞고 유익하게, 소득이 있는 법을 이야기 하고 싶기는 하지만 그것이 쉽지가 않다.
늘 그것이 저의 고민이고 숙제다.
정장엄해천왕(淨莊嚴海天王)은 득수억념(得隨憶念)하야 영견불해탈문(令見佛解脫門)하니라
정장엄해(淨莊嚴海) 천왕은 기억하여 생각함을 따라서 부처님을 보게 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기억하여 생각함을 따라서 부처님을 보게 되는 해탈문을 얻었다.
우리가 경전에서 부처님을 이해하게 된 것이라든지 아니면 설법을 통해서, 또는 다른 책들을 통해서 부처님을 이해하고 ‘아 이것은 부처님을 잘 표현한 내용이다’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 참 좋다.
이분은 바로 그런 것을 얻었다. ‘기억하여 생각함을 따라서 부처님을 보게 된다’고 하였다.
아는 만치 보인다.
우리가 부처님 부처님 하지만 사람들에 따라서 전부 부처님을 이해하는 방향이 다르고 그 높이와 넓이와 깊이가 다르다.
우리가 얼마만치 수행이 되어 있고, 불법에 대한 공부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이해가 다르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나처럼 부처님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한다면 틀린 것이다.
여기서는 부처님에 대한 말씀이지만 부처님만이 아니다.
다른 모든 세상사를 이해하는 것도 역시 똑같다.
그래서 늘 우리가 ‘각자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최승혜광명천왕(最勝慧光明天王)은 득법성평등무소의장엄신해탈문(得法性平等無所依莊嚴身解脫門)하니라
최승혜광명(最勝慧光明) 천왕은 법의 성품이 평등해서 거리낌이 없는[無依] 장엄한 몸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법의 성품이 평등해서 거리낌이 없는[無依] 장엄한 몸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자재지혜당천왕(自在智慧幢天王)은 득요지일체세간법(得了知一切世間法)하야 일념중(一念中)에 안립부사의장엄해해탈문(安立不思議莊嚴海解脫門)하니라
자재지혜당(自在智慧幢) 천왕은 일체 세간 법을 알아서 한 생각에 불가사의한 장엄바다에 편안히 머무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일체 세간법을 환하게 알아서 한 생각에 불가사의한 장엄바다에 편안히 머무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낙적정천왕(樂寂靜天王)은 득어일모공(得於一毛孔)에 현부사의불찰무장애해탈문(現不思議佛刹無障礙解脫門)하니라
낙적정(樂寂靜) 천왕은 한 모공에서 불가사의한 세계를 나타내도 장애가 없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먼지 속에 시방세계가 다 들어있다는 도리를 익히 안다. 불자들은 그것을 제대로 알지는 못해도, 익숙한 도리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먼지 속에 시방세계가 가득히 들어있다.
제가 그것을 요즘 과학 발달의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잘한다. 돌멩이 하나에서 45억년 지구의 역사를 알아내고 읽어내는 것, 짧은 머리카락 하나에서 머리카락 주인의 생활수준, 음식, 피 이런 모든 그 사람의 정보를 다 알 수 가 있는 것들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요즘 컴퓨터가 어떤가? 아주 작은 칩 하나 속에 팔만대장경 몇 벌이 다 들어가도 넘지않고 하나도 장애되지 않는다.
세상의 대장경이란 대장경은 다 갖다 넣어놔서 저는 그것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데 펼쳐보면 한순간에 다 펼쳐진다.
한 모공에서 불가사의한 세계를 나타내도 장애가 없는 해탈문을 얻었다.
화엄경에는 이러한 이치를 꿰뚫어보고 자주 이야기한다.
보지안천왕(普智眼天王)은 득입보문(得入普門)하야 관찰법계해탈문(觀察法界解脫門)하니라
보지안(普智眼) 천왕은 넓은 문에 들어가서 법계를 관찰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넓은 문에 들어가서 법계를 관찰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법계를 환히 관찰할 수 있는 넓은 안목이다.
낙선혜천왕(樂旋慧天王)은 득위일체중생(得爲一切衆生)하야 종종출현(種種出現)호대 무변겁(無邊劫)에 상현전해탈문(常現前解脫門)하니라
낙선혜(樂旋慧) 천왕은 일체중생을 위해서 가지가지로 출현하되 끝없는 겁 동안 항상 나타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일체 중생을 위해서 가지가지로 출현하되 여러 가지 모습으로 출현하되 끝없는 겁동안에 항상 나타나는 해탈문을 얻었다.
공간적으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출현하기도 하고 시간적으로도 전혀 제한 없이 끝없는 겁 동안 나타나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이 전혀 제한이 없이 나타난다.
사실은 모든 존재가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
화엄경은 그것을 밝혀서 이야기 한다.
시간과 공간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
지금 우리가 이 유튜브 방송을 하는 것을 미국에서도 와서 듣고 서울에서도 듣고 그 장소가 전혀 걸리지 않는다. 또 언제든지 들을 수가 있다.
실시간에 이 방송을 참석하지 못했어도 언제든지 또 들어와서 들으려면 들을 수가 있다.
유튜브가 시간과 공간의 장애 없는 이치를 이렇게 실증해서 보여준다.
참 훌륭한 이치인데 이러한 이치를 2600년 전에 이미 깨달아 아시고 화엄경에서 다 설해놓은 것이다.
선종혜광명천왕(善種慧光明天王)은 득관일체세간경계(得觀一切世間境界)하야 부사의법해탈문(入不思議法解脫門)하니라
선종혜광명(善種慧光明) 천왕은 일체 세간경계를 관찰하고 불가사의한 법에 들어가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일체 세간경계를 잘 관찰하고 불가사의한 법에 들어가는 해탈문을 얻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불가사의하지 않은 것이 없다.
불가사의라고 하는 말 밖에 달리 정확한 표현이 없다.
무구적정광천왕(無垢寂靜光天王)은 득시일체중생출요법해탈문(得示一切衆生出要法解脫門)하니라
무구적정광(無垢寂靜光) 천왕은 일체중생에게 생사에서 벗어나는 요긴한 법을 보여주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경전에 자주 나오는 말이다. 생사에서 벗어나는, 출요(出要), 생사에서 벗어나는 요긴한 법.
일체 중생에게 생사에서 벗어나는 요긴한 법을 보여주는 해탈문을 얻었다.
불교는 생사해탈, 일체 고뇌로부터의 해탈, 이러한 부분에 대한 설명이 많다.
물론 어떤 이치를 설하더라도 근본은 인간이고 인간문제다. 부처님이 처음부터 발심출가한 것도 인간의 모든 고통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출가하신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전에는 깊은 철학적인 이치를 깨달은 내용들도 상당히 많이 설해져 있지만, 자주자주 이렇게 ‘생사에서 벗어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번뇌에서 벗어나는’ 내용도 등장한다.
광대청정광천왕(廣大淸淨光天王)은 득관찰일체응화중생(得觀察一切應化衆生)하야 영입불법해탈문(令入佛法解脫門)하니라
광대청정광(廣大淸淨光) 천왕은 모든 교화 받을 중생을 관찰해서 부처님 법에 들어가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모든 교화받을 중생을 관찰해서 부처님 법에 들어가는 해탈문.
교화받을 중생을 잘 살펴서 그 사람 그 사람의 적성에 맞는 부처님 법에 들어가도록 한다.
2) 게송
다음은 게송이다.
이시(爾時)에 가애락법광명당천왕(可愛樂法光明幢天王)이 승불위력(承佛威力)하사 보관일체소광천무량광천광과천중(普觀一切少廣天無量廣天廣果天衆)하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그때에 가애락법광명당(可愛樂法光明幢)천왕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모든 소광천(少廣天)과 무량광천(無量廣天)과 광과천(廣果天)의 대중들을 널리 살피고 게송(偈頌)으로 말하였습니다.
제불경계부사의(諸佛境界不思議)여
일체중생막능측(一切衆生莫能測)이어늘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불가사의하여
일체중생이 능히 측량할 수 없거늘
마음 부처라는 말을 한다. 우리가 마음 마음하고 불성(佛性) 불성하고 진여(眞如) 자성(自性) 무위진인(無位眞人) 여러 가지 말로써 표현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불가사의한 경계라서 보통 범부들은 여기저기 경전에서 설명을 좀 듣는다고 해도 그것을 측량할 길이 없다.
그래서 깨달아야 된다는 것이다.
확철대오를 하고 나면 그것을 설명하기가 쉬울 것이고 그 불성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측량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보통 범부들에게는 참 측량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불가사의하여
일체중생이 능히 측량할 수 없다
보령기심생신해(普令其心生信解)케하시니
널리 그 마음에 믿고 이해함을 내게 하시니
측량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에 믿고 이해함을 내게 한다.
‘아 부처님의 경계 측량할 수는 없지만, 부처님은 이런 분이다’ 또 마음부처, 진여불성, 자성부처 그것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니까 어느 정도 수긍은 간다. 그래서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고 하면서 어느 정도 믿고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불교의 생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불자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불성생명에 대해서 언젠가 환하게 알고, 그 힘으로써 삶을 영위해 가야 한다. 믿고 이해함을 내게 하시니
광대의락무궁진(廣大意樂無窮盡)이로다
광대한 즐거움이 다함없어라.
이 문제 하나를 우리가 잘 이해하면, 각자의 인생문제를 스스로 좌지우지하고 마음대로 한다.
요즘 자기계발서는 전부 이 이야기다.
전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야기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렸다. 내가 생각하기에 달렸다. 내가 생각한 대로 내 인생은 프로그램화 되어있다. 그러한 내용이다.
유튜브를 열면 그저 나오는 광고가 그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 인생이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
내 마음이 내 인생을 프로그램 시켜 놓았다. 그러니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내 마음이 전부 알아서 이리 만들고 저리 만든다. 내가 만들어 놓은 그 인생길을 내가 걸어가고 있다.
성공에 대한 책들이라든지, 자기계발에 대한 책들이라든지, 부자가 되는 원리라든지 한결같이 그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도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저렇게 설명하고 이런 말로 표현하고 저런 말로 표현하고 불교 용어를 하나도 안쓰면서 일체유심조의 원리에 따라서 잘 설명한다.
내 인생은 내 생각이 프로그램화 해서 만들어가고 있다.
일체유심조다.
그런 것이 아주 반갑기도 하고 ‘야 표현을 잘했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는가?’ 저는 그런 책을 많이 듣고 불교 용어하고 매칭을 시켜서 생각해 보곤 한다.
이 게송을 다시 한 번 읽겠다.
제불경계부사의(諸佛境界不思議)여
일체중생막능측(一切衆生莫能測)이어늘
보령기심생신해(普令其心生信解)케하시니
광대의락무궁진(廣大意樂無窮盡)이로다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불가사의하여
일체중생이 능히 측량할 수 없거늘
널리 그 마음에 믿고 이해함을 내게 하시니
광대한 즐거움이 다함없어라.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불가사의하여, 우리 마음의 위대한 힘은 참으로 불가사의 하여 일체중생이 능히 측량할 수 없다. 각자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거 끝까지 알기 참 어렵다.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을 우리가 이해할까? 사용할까?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을 우리가 쓰면서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컴퓨터 역시 백분의 일도 그 기능을 다 쓰지 못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도 마찬가지다. 핸드폰의 기능이 무궁무진하다지만 백분의 일도 쓰는 사람이 드물다.
그런데 하물며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뛰어난 능력, 만능의 보물창고 우리 불성자리, 진여자성자리, 우리의 마음 부처자리 그것은 정말 불가사의 하다. 우리는 늘 쓰고 있으면서도 만분의 일도 못 쓰고 그것을 측량할 길도 없다.
널리 그 마음에 믿고 이해함을 내게 하시니, 그것을 확실하게 믿기만 해도 아주 그 사람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자기 인생을 목적한 바대로 성공으로 이끌고 갈 수도 있다.
광대한 즐거움이 다함이 없어라. 뭐든지 다 성공하고 성취하고 목적달성을 한다 그런 의미로 해석하겠다.
다른 게송도 그렇지만 이 게송은 참 뛰어난 말씀이다.
약유중생감수법(若有衆生堪受法)이면 불위신력개도피(佛威神力開導彼)하사
영기항도불현전(令其恒覩佛現前)케하시니 엄해천왕여시견(嚴海天王如是見)이로다
만약 어떤 중생이 법을 받아들일 만하면
부처님은 위신력으로 그를 인도하사
항상 부처님이 앞에 나타나 있음을 보게 하시니
정장엄해 천왕이 이와 같이 보았도다.
만약 어떤 중생이 법을 받아들일 만하면, 법을 받아들일만한 중생, 근기와 수준이 그쯤 됐다면 부처님은 위신력으로 그를 인도한다.
화엄경 같은 넓고 넓은 그물은 다 중생들을 건진다. 우리가 거기에 제도를 받을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그렇지 화엄경이라고 하는 그 그물에 다 건져지는 것이다.
항상 부처님이 앞에 나타나 있음을 보게 하시니 이것은 정장엄해천왕이 이와 같이 보았도다.
일체법성무소의(一切法性無所依)라 불현세간역여시(佛現世間亦如是)하사
보어제유무의처(普於諸有無依處)하시니 차의승지능관찰(此義勝智能觀察)이로다
모든 법의 성품은 의존함이 없으며
부처님이 세간에 나타나심도 이와 같아서
모든 존재에 의존함이 없으시니
이 뜻은 최승혜광명[勝智] 천왕이 능히 관찰하였네.
모든 법의 성품은 의존함이 없으니 일체 법성은 의지함이 없다.
부처님이 세간에 나타나심도 그와 같다. 부처님이 세간에 나타나심도 무슨 의존함이 있겠는가? 부처님은 대자유인인데 어디에 의존한다는 말인가? 의존하면 자유가 없다.
모든 존재에 의존함이 없다.
수제중생심소욕(隨諸衆生心所欲)하사 불신통력개능현(佛神通力皆能現)하사대
각각차별부사의(各各差別不思議)니 차지당왕해탈해(此智幢王解脫海)로다
모든 중생들의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
부처님이 신통력을 다 나타내시되
가지각색 차별하여 불가사의하시니
이것은 자재지혜당 천왕의 해탈이로다.
모든 중생들의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서 부처님이 신통력을 다 나타내시되, 부처님은 중생을 위해 계신다.
그러니까 중생의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서 신통력으로 다 나타낸다. 이것을 마음부처라고 해석하면 착착 들어맞는다. 전부 우리 마음먹은 대로 다 되게 되어 있다 는 것이다.
가지각색 차별하여 불가사의하시니, 궁극에는 가지각색 차별하여 불가사의하시니 이것은 자재지혜당 천왕의 해탈이로다.
화엄경은 내가 한 두 번 읽은 것이 아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롭다. 처음 보는 것 같다. 아주 불가사의하고 신기하고 환희심이 난다.
과거소유제국토(過去所有諸國土)를 일모공중개시현(一毛孔中皆示現)이여
차시제불대신통(此是諸佛大神通)이시니 애락적정능선설(愛樂寂靜能宣說)이로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국토를
한 모공 속에서 다 나타내신 것은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큰 신통이라
애락적정 천왕이 능히 연설하도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 부처님이 굳이 신통을 부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모공 속에서, 과거에 있었던 모든 국토를 한 모공 속에서 다 나타낸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 했지만, 내가 감동을 받은 일이라서 자주 비유를 든다.
망치를 하나 들고 산에 올라가서 돌멩이를 깬다. 그 돌멩이 작은 조각을 하나 들고 그것을 잘 면밀히 관찰하면 거기서 지구의 45억년 역사를 읽고, 거기서 미생물을 발견하고 거기서 아직도 살아있는 미생물을 어떤 조건에 의해서 다시 키워내는 도리가 있다. 그것이 현재 과학이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국토를 한 모공속에서 다 타나내신 것은 모든 부처님의 크신 신통이라고 했지만,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 부처님이 언제 우리에게 신통을 보여준 적이 있는가?
존재원리가 다 이미 그렇게 짜여져 있기 때문에 그저 그렇다는 사실을 부처님의 이름을 빌려서 이렇게 표현한다.
‘부처님이라고 하는 분이 어떤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그렇게 했다’ 라고 표현하면 우리들에게 아주 듣기 좋고, 얼른 이해하기가 쉽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과학적인 논리가 그 속에 아주 면밀히 깔려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불교는 과학이라고 이야기 한다.
과학이다, 철학이다 라고 한다.
과학도 철학도 아니고 불교다.
다른 이름을 붙일 것 없다.
불교가 원래 그렇게 위대하다.
그렇게 명확한 진리를 깨달아서 표현하고 있다.
화엄경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살면서 이런 것을 공부하지 않고 흘려보낸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이다.
일체법문무진해(一切法門無盡海)가 동회일법도량중(同會一法道場中)이여
여시법성불소설(如是法性佛所說)이시니 지안능명차방편(智眼能明此方便)이로다
일체 법문의 끝없는 바다가
한 법의 도량 안에 모두 모임이라
이와 같은 법의 성품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니
보지안 천왕이 이 방편을 밝혔도다.
일체 법문의 끝없는 바다가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 당시 때 그런 이야기가 있다.
팔만대장경 양이 많고 부처님이 설법을 많이 하시니까 어떤 제자가 ‘부처님 설법이 너무 많습니다’아마 그런 생각을 했던가 보다.
부처님이 주로 숲에 계시고 숲에서 설법을 많이 하셨으니 거기 숲에 있던 나뭇가지 하나를 훑어서 나뭇잎을 손에 들고는 그 제자더러 ‘여기 내 손에 있는 나뭇잎이 많은가, 저 숲에 있는 나뭇잎이 많은가?’하고 물으셨다.
‘그거야 천번 만번 숲에 있는 나뭇잎이 부처님의 손에 있는 나뭇잎과 비교도 안될만치 많고 많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내가 그동안 설법한’ 저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많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 손에 있는 나뭇잎과 같고 내가 미처 설하지 못한 진리의 말씀은 저 숲에 있는 나뭇잎과도 같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일체 법문의 끝없는 바다가
한 법의 도량 안에 모두 모임이라
이와 같은 법의 성품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니
보지안 천왕이 이 방편을 밝혔도다.
그러한 이치를 우리가 살피면서 이런 화엄경 게송을 읽으면 환희심이 난다.
제가 예습을 하면서 또 별표를 해 놓은 대목이 나온다.
시방소유제국토(十方所有諸國土)에 실재기중이설법(悉在其中而說法)하사대
불신무거역무래(佛身無去亦無來)하시니 애락혜선지경계(愛樂慧旋之境界)로다
시방에 있는 모든 국토에서
다 그 가운데서 설법하시되
부처님의 몸은 감도 없고 또한 옴도 없으시니
애락혜선 천왕의 경계로다.
시방에 있는 모든 국토에서
다 그 가운데서 설법하시되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것이다. 시방에 있는 모든 국토 저 우주 저 은하계, 많고 많은 다중은하에까지도 그 가운데서 설법하시되
부처님의 몸은 감도 없고 또한 옴도 없으시니
거기 가서 설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 와서 설하는 것이 아니고, 서울 가서 설하는 것도 아니고, 부산 돌아와서 설하는 것도 아니다. 감도 없고 옴도 없는 이치를 이야기 해 놓았다.
화엄경은 상설(常說) 변설(徧說)이라고 내가 자주 말씀드린다. 우리가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삼라만상 천지만물 그대로가 다 잘 설법하고 있다. 정말 정확하게 설법하고 있다.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舌)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
야래팔만사천게(夜來八萬四千偈)
타일여하거사인(他日如何擧似人)가
시냇물 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광장설법이다.
산색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아니겠는가
밤이 되니까 팔만사천 게송이나 되는 것을
다른 날 그 도리를 누구에게 이해시킬 것인가.
그런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소동파가 아주 근사한 오도송이라고 내놓기는 했는데 사실 화엄경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상설변설(常說徧說)’ 이 한마디만 가지고도 그 게송보다는 몇 천배 더 훌륭하다.
왜냐? 항상 설하고 있다. 어디서든지 설하고 있다.
저기 우주 은하계 저 끝에서도 설하고 있다.
언제나 미래에도 과거에도 항상 설하고 있다.
그런 뜻이 상설변설이다.
우리가 그런 도리를 이해를 해야 제대로 불교를 이해하게 된다.
*
지금 80명이 들어와서 동참하고 계시지만 사실은 이러한 이치에서 보면 숫자가 문제가 아니다.
모든 존재가 존재하는 그곳에서 이미 법을 설하고 있다.
그런 이치다.
불관세법여광영(佛觀世法如光影)하시고 입피심심유오처(入彼甚深幽奧處)하사
설제법성상적연(說諸法性常寂然)하시니 선종사유능견차(善種思惟能見此)로다
부처님은 세상 법을 그림자같이 보시고
매우 깊고 그윽한 곳까지 들어가셔서
모든 법의 성품이 항상 고요함을 말씀하시니
선종사유 천왕이 능히 이것을 보았도다.
부처님은 세상법을 그림자 같이 보았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모든 세상법이라고 하는 것은 꿈과 같고 환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
매우 깊고 그윽한 곳까지 들어가셔서, 세상법이 전부 그렇게 되어 있는데 그 깊은 도리까지 환히 꿰뚫어 아시고 모든 법의 성품이 항상 고요함을 말씀하셨다.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
모든 법은 본래로부터 항상 적멸한 자리다.
고요한 것이 모든 것의 본령이다. 본성이고 본모습이다.
그 외 이런저런 모습으로 근기 따라서 또 현상 따라서 나타내 보이는 것은 물에서 드러난 하나의 물결과 같다.
바닷물이 언제나 같은 모습, 고요한 이치라면, 파도와 같은 물결은 움직이는 현상과 같다. 이런 도리다.
불선요지제경계(佛善了知諸境界)하사 수중생근우법우(隨衆生根雨法雨)하사
위계난사출요문(爲啓難思出要門)하시니 차적정천능오입(此寂靜天能悟入)이로다
부처님께서 모든 경계를 잘 아시고
중생들의 근기를 따라 법의 비를 내리시어
생각하기 어려운 벗어나는 요긴한 문을 여시니
이것은 무구적정광 천왕이 깨달아 들어갔도다.
부처님께서 모든 경계를 잘 아시고
중생들의 근기를 따라 법의 비를 내리시어
부처님은 그저 법을 많이 설하지만, 그 법을 설할 때마다 항상 중생들의 근기를 따라 법의 비를 내린다.
우리가 지금 이시간 84분이 동참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일일이 오늘 처음 오신 분, 익숙한 분, 불교를 잘 아시는 분,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 하고 분별하겠는가?
일대일로 이야기를 한다면 모르거니와, 전부 일일이 분별해서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부처님은 설사 그렇더라도 근기를 따라서 법의 비를 내린다. 그래야 옳다. 사실은 당연히 근기를 따라서 근기에 맞게 법의 비를 내려야 한다.
세존항이대자비(世尊恒以大慈悲)로 이익중생이출현(利益衆生而出現)하사
등우법우충기기(等雨法雨充其器)하시니 청정광천능연설(淸淨光天能演說)이로다
세존께서 항상 큰 자비로써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려고 출현하사
골고루 법의 비를 내려서 그릇을 채우시니
광대청정광 천왕이 능히 연설하도다.
세존께서 항상 큰 자비로써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려고 출현하사
부처님은 항상 중생이 화두고 중생이 숙제다.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려고 출현하사
골고루 법의 비를 내려서 그릇을 채우시니
광대청정광 천왕이 능히 연설하도다.
참 대단한 설법이다.
그다음 청정혜명칭 천왕과 그 대중들의 득법과 게송이라. 득법내용을 좀더 읽겠다.
3. 청정혜명칭 천왕과 그 대중들의 득법과 게송
1)득법
부차청정혜명칭천왕(復次淸淨慧名稱天王)은 득요달일체중생(得了達一切衆生)의 해탈토방편해탈문(解脫道方便解脫門)하니라
다시 또 청정혜명칭(淸淨慧名稱) 천왕은 일체 중생이 해탈하는 길을 깨닫는 방편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일체 중생이 무엇으로써 해탈을 할까? 이 분은 그 길을 아신 분이다.
최승견천왕(最勝見天王)은 득수일체제천중(得隨一切諸天衆)의 소락(所樂)하야 여광영보시현해탈문(如光影普示現解脫門)하니라
최승견(最勝見) 천왕은 일체 모든 하늘 대중들이 즐기는 바를 따라서 그림자처럼 널리 나타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하늘 대중들이 천신들이 즐기는 바를 따라서 그림자처럼 널리 나타나는 해탈문을 얻었다.
적정덕천왕(寂靜德天王)은 득보엄정일체불경계대방편해탈문(得普嚴淨一切佛境界大方便解脫門)하니라
적정덕(寂靜德) 천왕은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널리 청정하게 장엄하는 큰 방편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널리 청정하게 장엄하는 큰 방편의 해탈문을 얻었다.
수미음천왕(須彌音天王)은 득수제중생(得隨諸衆生)하야 영유전생사해해탈문(永流轉生死海解脫門)하니라
수미음(須彌音) 천왕은 모든 중생들을 따라서 생사의 바다에 영원히 흘러 다니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모든 중생들을 따라서 생사의 바다에 영원히 흘러 다니는 해탈문을 얻었다. 우리하고 같이 다닌다는 것이다.
참 마음이 놓인다. 수미음천왕이 우리하고 생사의 바다를 영원히 같이 흘러다닌다.
정념안천왕(淨念眼天王)은 득억념여래(得憶念如來)의 조복중생행해탈문(調伏衆生行解脫門)하니라
정념안(淨念眼) 천왕은 여래가 중생을 조복하는 행을 기억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여래가 중생을 조복하는 행을 기억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가애락보조천왕(可愛樂普照天王)은 득보문다라니해(得普門陀羅尼海)의 소유출해탈문(所流出解脫門)하니라
가애락보조(可愛樂普照) 천왕은 넓은 문[普門]의 다라니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보문(普門)의 다라니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해탈문을 얻었다.
세간자재주천왕(世間自在主天王)은 득능영중생(得能令衆生)으로 치불생신장해탈문(値佛生信藏解脫門)하니라
세간자재주(世間自在主) 천왕은 능히 중생들에게 부처님을 만나서 믿음을 내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부처님을 만나서 믿음을 내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중생들에게 가장 손쉽고, 우리가 일차적으로 의지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부처님이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것을 통해서 믿음을 내게 하는 것이 가장 손쉽고 일차적인 것이다. 그러다 보면, 보다 더 다른 차원의 길도 얼마든지 열린다.
광염자재천왕(光焰自在天王)은 득능영일체중생(得能令一切衆生)으로 문법신희(聞法信喜)하야 이출리해탈문(而出離解脫門)하니라
광염자재(光焰自在) 천왕은 능히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법문을 듣고는 믿고 기뻐하여 벗어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능히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법문을 듣게 하고 믿고 기뻐하게 해서 벗어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벗어난다는 것은 번뇌에서 벗어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 궁극에 가서는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런 해탈문을 얻었다.
낙사유법변화천왕(樂思惟法變化天王)은 득입일체보살(得入一切菩薩)의 조복행(調伏行)이 여허공(如虛空)하야 무변무진해탈문(無邊無盡解脫門)하니라
낙사유법변화(樂思惟法變化) 천왕은 일체보살들의 조복하는 행이 허공과 같아서 끝도 없고 다함도 없는 데 들어가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일체보살들의 조복하는 행이 허공과 같아서 끝도 없고 다함도 없는 데 들어가는 해탈문을 얻었다.
변화당천왕(變化幢天王)은 득관중생무량번뇌보비지해탈문(得觀衆生無量煩惱普悲智解脫門)하니라
변화당(變化幢) 천왕은 중생들의 한량없는 번뇌를 관찰하는 넓은 자비와 지혜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중생들의 한량없는 번뇌를 관찰하는 넓은 자비와 지혜의 해탈문을 얻었다.
넓은 자비와 지혜가 있어야 중생들의 한량없는 번뇌를 낱낱이 살피고 어루만진다.
화엄경 같은 이런 대승경전은 여기서 무엇을 듣고 어떤 이치를 아는 것이 첫째 중요하지만, 막연하게 믿고 이해하고 거기에 조그만한 환희심이라도 내면 그것으로 인해서 신심이 증장한다.
제가 기도의 결과에 대해 이 방송에서도 말했다.
기도를 인과관계로써 한 번 정확하게 짚어보자.
기도를 열심히 한다. 불보살의 명호를 열심히 부른다. 경전을 열심히 읽는다. 뜻을 알고 읽든, 모르고 읽든간에 열심히 읽는다. 그러면 어떤 일이 성취되기 이전에 신심이 증장한다.
물론 기도를 하고 일이 성취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기도의 인과관계는 아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그런 불보살의 이름을 부르고 경을 읽고 사경을 하는 등의 인과관계는 신심이 증장하는 것이다. 환희심이 증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일을 성취하는 것보다 훨씬 열 배 백 배 좋은 결과다. 좋은 결과이든 좋지 않은 결과이든 간에 그것이 기도의 인과관계다.
기도의 결과이고 신행생활의 결과다.
신행생활의 결과가 바로 신심증장이다.
신심이 증장하면 뭐라고 했는가? 신심은 법장제일재(法藏第一財)다. 법의 창고에서 제일가는 재산이다.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元功德母)라,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도의 근원이고 공덕의 어머니다.
바로 그것이 자꾸 자라나고 나의 마음 창고에 가득히 쌓인다. 그것이 기도의 인과관계로서 아주 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치가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내가 바라는 바 어떤 일도 성취할 수가 있다. 그러나 성취를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수음묘장엄천왕(星宿音妙莊嚴天王)은 득방광현불(得放光現佛)하야 삼륜섭화해탈문(三輪攝化解脫門)하니라
성수음묘장엄(星宿音妙莊嚴) 천왕은 광명을 놓아서 부처님을 나타내어 삼륜(三輪)으로 섭수하여 교화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삼륜(三輪)은 몸과 말과 생각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뜻한다. 우리가 화엄경을 읽고 어떤 이치를 안다는 것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신심이 증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심은 이 불법안에서 제일가는 재산이다. 신심이 증장하는 것은 제일가는 재산이다.
저도 구절구절 낱낱이 다 그 이치를 알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무조건 한다. 무조건 하다보면 신심이 난다. 신심나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신심이 증장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인과관계이다.
내가 바라는 바가 성취되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신심이 증장하는 것, 그것이 기도의 일차적인 결과다.
부디 이 시간에 동참한 여러 불자님들은 기도, 또는 경전공부, 불보살의 명호를 외우는 것, 이런 것들은 신심이 증장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꼭 정확하게 이해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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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인데도 80분이 넘는 많은 분들이 동참하셨다. 모두들 동참해 주셔서 고맙다.
오늘 화엄경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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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부처님의 태양은 더욱더 더 밝아지고
진리의 수레바퀴는 항상 쉬지 않고 굴러가서
이 땅에 이 지구상에 많고 많은
미혹에 허덕이는 중생들 지혜의 눈을
하루빨리 뜨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_()()()_ 글쓰기 형식이 달라져서 당황했습니다.^^ 글쓰기 누르시고 오른쪽 아래 <개편전 에디터로 전환하기> 누르시면 옛날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그러네요. 한 시간을 헤매다가 무사히 올릴 수 있었어요..
혜명화 님 짱^^
@一眞華 일진화님 덕분에 제가 알았지요^^ 고맙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글쓰기 형식을 '개편전 에디터로 전환하기' 누르는것 ~요^^
늘 감사드립니다.
못알아 듣는 말은 여기 글 보고 이해 받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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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맛있네요. 저 컵들은 염화실 회원들?
"글쓰기 형식"
가르쳐 주셔서 아주 수월하게 했어요.
글쓰기 형식을 달리 하라는 문구를 무시해도 글 쓰기에 지장 없더니,
오늘은 그게 아니더군요.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아주아주 당황했을 텐데...
고맙습니다. ('다음에선 왜 바꾸지? 이제 더 이상 바꾸지 말기를...' )
@釋대원성 고맙습니다^^
@釋대원성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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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근기를 알고, 수행의 정도를 헤아려, 적성에 맞도록 설법하는 실력이 있는 불자. 천왕들의 해탈문.
갖가지로 차별된 중생들을 常說徧說하여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게 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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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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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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