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제국에 대해 국내에 소개된 자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에 노리치 교수의 비잔티움 연대기 3권이 가장 유명한데
노리치 교수는 전문 역사학자가 아니고 또 영어권 자료만을 가지고
썼기 때문에 내용에 한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물론 워낙 술술 넘어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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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체로 쓰셨기 때문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만이죠.
동로마제국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과거에는 그라시아 제국이라고도
불렸지만 이제는 거의 명칭이 통일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명칭이
엇갈리는 것은 아무래도 비잔티움 제국을 계승한 현국가가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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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현대 국가 중에서는 그리스가
그래도 정신적으로 가장 상속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지만 워낙 기원전에
출중한 조상들을 둔 분들이라 비잔티움에 대해서는 그리 살가운
느낌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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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의 기초를 닦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4세기에
콘스탄티노플로 로마의 중심이 옮겨지면서 시작된 비잔티움 제국은
1000년 이상 번영하다가 1453년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메메드 2세에게
멸망당하고 맙니다. '페티 1453'은 바로 메메드 2세에 의한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을 담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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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주인공은 술탄 메메드 2세이고
모든 등장인물들은 터키어를 사용합니다. 워낙 당대의 커다란 사건
이었기 때문에 영화의 배경이 다양합니다. 오스만 투르크와 비잔티움
외에도 제노바와 헝가리, 로마(바티칸)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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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터키 배우들임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잘 어울립니다. 미국이나
영국의 시대극을 보면 나라에 상관없이 모두 영어를 쓰는 것을 감안
하면 터키 영화에서 모든 사람이 다 터키어를 쓰는 건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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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메트는 찾아온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 샷으로만 처리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번역 사정상 미국이나 유럽측의 시각이 반영된 책이
주로 번역되어 이슬람의 관점이 궁금했었는데 영화에서 표현된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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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러웠습니다. 영화는 메디나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마호메트가
예언하는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다들 알다시피 메디나에서 헤지라가
시작되면서 이슬람이 흥기했죠. 자신과 같은 이름의 황제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할 거라는 예언이었습니다. (패티는 정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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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두 주인공은 메메드 2세와 비잔티움의 콘스탄티누스 11세입니다.
주연배우들의 이력을 제가 잘 모르지만 캐스팅은 만족스러웠습니다.
메메드 2세가 술탄의 자리에 오른 것이 19세고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 때가
21세였는데 배우의 나이가 좀 있어 보이지만 당시의 21세는 지금의 21세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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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도가 달랐으니까 납득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콘스탄티누스 11세에
대한 묘사는 좀 불만스럽습니다. 아무리 터키에서 제작된 점을 감안한다해도
당시 정세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오스만 투르크를 경시 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물론 경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전반부의 묘사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황제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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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엄을 보이기도 하는데 빈약한 시나리오의 대사를 가지고 황제의 위엄을
어느 정도 나타내는데 성공한 것은 전적으로 배우의 공입니다.
사실 콘스탄티누스 11세는 능력 있는 황제였습니다. 다만 혼자의
힘으로 전세를 역전시키기에는 비잔티움이 너무 쇠락했을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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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와는 달리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증언에 따르면 그는 황제를 나타내는 휘장 등을 모두 떼어내고 칼을
휘두르면서 투르크 병사들에게 뛰어들었다고 하죠. 1000년 이상 번영했던
제국의 황제로써 부끄럽지 않은 장렬한 최후였습니다. 메메드 2세의 맞수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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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충실한 캐릭터를 연출했다면 영화의 균형을 위해서도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싶네요.또한 충신이었던 노타러스 역시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위엄 있는 인물이었고 영화에는 묘사되지 않지만 메메드 2세에게 굴복하지
않고 결국 참수형에 처해지죠. 자식들과 같이 처형되었는데 자기를 마지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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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먼저 처형되면 자식들의 마음이
약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콘스탄티노플 성벽에서 마주친 메메드 2세와
콘스탄티누스 11세 당시 정세에 대해서는 스케치하는 수준인데 어느 정도
당대에 대한 지식이 있는 관객들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입니다. 비잔티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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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에게 교회 통합을 미끼로 구원병을 요청하는 것은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의 오랜 대립의 역사에서 늘 상 있는 일이었죠. 다만 당시 교황에게는
현실 세계의 왕들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부족했을 따름입니다. 메메드 2세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점은 술탄의 자리에 올라 바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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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발칸 반도의 정세를 면밀히 검토한 이후 움직였다는 점입니다.
당시 유럽의 2대 강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과 프랑스는 100년 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고 독일은 내분 때문에 외부 문제에 신경쓸 상태가 아니었죠. 발칸
반도에서도 유일하게 힘이 있는 헝가리는 이미 메메드 2세의 아버지인 무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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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에게 당했던 후유증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고요. 한마디로 비잔티움은
주변의 땅은 모두 빼앗긴 상태에서 콘스탄티노플 안에서 사면초가에 몰린
상태였습니다. 바티칸의 추기경들,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의 갈등은 교리와
정치의 복합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나마 콘스탄티노플을 지켜주고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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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방어력을 갖춘 성벽이었죠. 영화에서도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메메드 2세에게 성벽의 방어력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스만투르크에는 과거와는 다른 무기들이 있었죠. 일단 비잔티움을 구원해
줄 세력이 없어 오랜기간 공격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고 성벽에 지속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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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을 가할 수 있는 대포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우르반이라는
독일 대포 제작자 덕분에 당대 최대 크기의 대포를 제작, 사용하였습니다.
영화에서는 비잔티움 시민이었다가 살해 위협에 오스만 투르크로 투신하는
것으로 나오죠. 그의 수양딸 에라와 하산의 러브 스토리는 최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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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공감도 가지 않고 어색한 대사들이 난무해서 극 중 긴장감을 확
떨어뜨리더군요. 돈을 많이 들여 스케일은 큰데 연출이 엉망이라 아쉽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문제점을 노출하는 것은 어설픈 CG와 전쟁신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워낙 광범위하다보니 왠 만한 배경들은 전부 CG로 처리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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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영화의 몰입 도를 확 깰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아마도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져 CG의 노하우가 부족한 터키 영화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해도 영화의 규모를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여기에 비해 전쟁 신에
대한 연출은 한숨이 나옵니다. 감독의 역량이 드러나는 부분인데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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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한눈에 봐도 돈을 많이 들인 티가 역력한데
편집도 매끄럽지 못할뿐더러 아예 카메라 구도를 잘못 잡아 손해를 본 장면들이
너무 많습니다. 마지막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을 보면 리들리 스콧 감독의 걸작
킹덤 오브 헤븐을 참고한 기색이 역력한데 아쉽게도 참고만 했지 그 박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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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함은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말을 타고 바다로 뛰어드는 메메드 2세
실제 역사서에서 빌려온 에피소드들이 많습니다.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던 중
마리아상이 떨어졌다든가 비잔티움을 봉쇄한 투르크군이 이를 통과하려는
베네치아 상선을 대포로 침몰시키는 장면, 그리고 금각문을 뚫지 못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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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육로를 통해 배를 금각문 쪽으로 옮기는 신 등은 실제로 기록된 일
들입니다. 메메드 2세가 자신의 함대가 참패하는 모습에 흥분하여 말을
탄 상태로 바다로 들어갔다 나오는 장면도 영화에서 그대로 재현되죠.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저 어이가 없습니다. 하기아 소피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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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해 공포에 떨던 시민들이 메메드 2세의 말 한마디에 함박웃음을
짓다니요.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요? 살라딘이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라고 해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거 같은데요. 실제로는 함락 당일
하기아 소피아로 대피했던 시민들은 모두 학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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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메드 2세가 약탈을 중지시킨 건 그 다음날 이었는데 원래 3일을
약탈하기로 했었는데 너무 심한 참상에 중지시켰다고 하니 비잔티움
시민들의 운명이 어떠했는지는 분명하지요. 뭡니까? 이 미소는? 정복
자를 바라보는 행복한 얼굴이라니 안타까운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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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제국간의 몰락과 흥기에 대한 장엄한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말아먹었다는 게 너무 아쉽네요. 잘만 하면 멋진 서사시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냥 터키에서 만들어진 비잔티움 소재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누군가가 했던 얘기가 떠오르네요. 왜 아이젠하워의 회고록에서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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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 작전보다 청동기 시대의 작은 싸움을 노래한 일리아드가
더 웅장해 보이는지 모르겠다고요. 그건 아이젠하워와 호메로스의 차이
때문이겠죠. 안타깝게도 페티 1453은 호메로스가 아닌 아이젠하워가
만든 영화입니다.
2014.4.1.tue.정리 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