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동 길상사 설법전 앞뜰에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 전 서울대교수가 만든 관음보살상은
기묘한 시절인연(時節人緣)을 말해주고 있다.
조각가 최종태교수는 법정스님의 추모글에서 그 인연을 회고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관세음보살상 조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원이 이루어진 것은 순전히 법정스님 덕이었다.
만약에 내가 스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절 마당에
나의 관음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연이란 것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 줄을 미처 알지 못했다.
스님이 세상을 뜨시고 나서야 내가 그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작년 이맘때는 김수환 추기경을 보내고서 우리는 허전했었다.
법정과 김 추기경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형제와 같았다.
특히 우리 사회에 청순한 바람을 일으킨 점에서 그랬다.
어쩌면 1년을 사이하고 두 분을 한꺼번에 잃는 일이 생겼는가.
전에 내가 김 추기경께 물었다.
'언젠가는 내가 관음상을 만들게 될 텐데요.
천주교회가 나를 파문하는 건 아닐까요?'
그랬더니 그 분은 일본의 박해시대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 주셨다.
천주교도들이 관음상을 놓고 기도를 했다고 하셨다.
관음조각 뒤편 잘 안 보이는 곳에다 십자 표시를 했다고 하셨다.
길상사 창립법회 때 김수환 추기경, 장익 주교가 함께 참석해서 눈길을 끌었었다.
관음상 봉안식이 끝났는데 맨 먼저 전화를 주신이가 장익 주교셨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그날 나는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땅에는 국경이 있지만 하늘에 어디 경계가 있습니까.'"
<최종태교수의 법정스님 추모글에서>
그 법정스님은 생전에 자주 조각가 최종태의 예술세계를 자랑하였다
"우리의 삶은 업의 파장인 것같습니다.
절에서 나왔을 때 전시회를 하나 보았습니다.
우리 마당에 관음상을 조각하신 최종태 화백 칠순 기념전시회였습니다.
최 화백과 대화중에 최 화백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20세기 미술사에서 아주 뚜렸한 주목할만한 사실이 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인간의 형상이 그려지지 않고
자연의 형상도 사라졌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소수의 예술가들이 인간을 그렸습니다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인간과 자연을 소외시켰다고 합니다. "
시절인연(時節人緣)이란 말이 있다.
법정 스님이 자주 즐겨 쓰던 말이다.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꼭 피하려 해도
만날 인연은 만난다는 선가(禪家)의 말이다.
어느날 갑자기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전에 만날 요인을 품고 있다가
시간적 공간적 연이 닿으면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곳에서 만난 시절의 인연은 장익 주교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주일 미사로 바쁘실 텐데 축하말씀 해주시기 위해 오신 추기경님,
오늘 축일 맞은 장익주교님도 감사합니다.
시절인연을 만나 오늘 이곳이 길상사로 바뀌게 됐습니다.
이곳이 절이 되기까지는 김영한 길상화(吉祥華)보살님의 소원과
몇몇 불자들의 지극한 발원이 어우러져 열매를 맺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 일에는 불사에 자신의 소유물을 아무 조건 없이,
기꺼이 내놓은 시주자와 그걸 무심히 받아들인 저의 마음,
그리고 묵묵히 따라준 이곳의 터와 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그 세가지가 한곳 집착하거나 매인 데 없이,
이름 그대로 청정하고 공적(空寂)한 보시와 공양이 된 것입니다."
길상사 개원식에서 법정스님은 인사말씀을 했다.
김수환추기경의 축사 차례다.
그는 조용한 몸짓으로 나아가 대중들을 향해 섰다.
김추기경은 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축사를 했다.
“평소 존경하는 법정스님이 회주로 계신 길상사는 과연 도심에서 멀지 않군요.
이렇게 도심 속에 새 소리 물소리 들리는 수려한 경관이 있고
그 가운데 길상사가 자리하고 있어 기쁩니다."
법정스님에게는 30여년간 교유한 전 천주교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가 있었다.
장 주교는 법정 스님이 길상사를 창건하기에 앞서 함께 유럽의 유서 깊은 수도원을 여행했고
김수환 추기경의 길상사 개원법회 참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장익 주교는 1969년 비서신부로 김추기경을 가까운 거리에서 40년도안 보필하며
역사적인 추기경 임명 소식을 함께 한 최측근 인사였다.
장익 주교는 장면 전 총리의 아들이다.
장면총리는 동성상업학교장을 지낼때 김수환추기경을 제자로 만난다.
김추기경이 ‘큰 스승’ ‘정신적 스승’이라고 불렀을 만큼
그의 삶의 큰 영향을 준 장면총리로 알려졌다.
장익주교가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 일부이다.
-추기경님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1956년 유럽으로 여행을 갔었는데 추기경님도 사제로서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습니다.
이듬해 여름 유럽에 있는 유학생들이 처음으로 모인 '비둘기'라는 모임에서 추기경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러니 50년이 넘는 셈이죠.하지만 본격적인 인연은 서울교구장으로 부임하신 1968년부터입니다.
그렇게만 쳐도 40년이 지났지요."
-추기경님은 부친 장면총리의 제자라고 들었어요-
"예,아버님이 동성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때 무척 아끼고 사랑했던 제자였습니다.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당시 일제가 모든 학교에 '조선반도의학도에게 보내는 천황의
칙유(勅諭·친히 내리는 말씀)를 받은 황국신민으로서 그 소감을 쓰라’는 문제를 냈는데
추기경님께서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쓰셨대요.
아버님께서 남들이 보는 데서 따귀를 한 대 때리셨지만
불문에 부치고 일본 유학을 보내주셨다고 합니다.
그 후로 여러분에게 ‘저 친구를 눈여겨봐라. 큰 인물이 될 사람이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언젠가 추기경님께서 제게 ‘장 교장 선생님이라면 내 속을 털어놓아도 될 것이라고 믿고
그렇게 썼던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