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돌같은 강인함으로 살아 온, 언니같은 동생
주혜(主恵) 김정숙 / 수필가
<배움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다>는 말이 있다.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특별히,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강인한 정신력을 배울 때에는 더욱 감동이 된다. 숱한 고난들을 꿋꿋하게 돌파해 온 그 세월의 여정을 듣는 것 자체로, 무척 숙연해질 때가 있는 것이다.
최근에,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또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는 그녀를 ‘DH맘’이라 부른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건 5년 전쯤이다. 나의 두 아들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앞에서 고급차를 몰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가용이 없어 친척의 차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소박한 동네 초등학교 앞에서 몹시 젊어 보이는 여인이 고급차를 몰고 가는 모습이 많이 낯설게 느껴져, 저 사람도 여기 초등학교 학부모인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학부모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젊어 보이는 이미지였기에 더 눈에 들어왔나 보다. 그리고 뭔가 얼굴도 고상해 보여서 근심이나 걱정거리, 또는 고생이라고는 전혀 해보지 않은 인상으로만 느껴졌던 게 그 사람의 첫인상이었다.
그런데 그 후 나는 같은 동네 안에서 여러 학부모들과 직‧간접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DH맘이 나의 두 아들과 같은 학년의 아들들이 있다는 말에 무척 놀랐다. 내 아들 또래의 아들이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이 젊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당시 DH맘과 자주 같이 다녔던 HS맘 역시 나의 작은 아들과 같은 학년의 아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 눈에는 두 사람 모두, 정말 아가씨들처럼 보였기에 더 충격이었다.
어쩜 다들 저렇게 젊어 보일까? 나만 세월의 직격탄을 맞은 것일까? 나만 험한 인생을 살아왔나보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내 얼굴에만 세월이 집중포격한 것 같아, 속상한 마음도 들었다. 내 짐작으로 그녀들은 적어도 나보다 15년 정도는 더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나는,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며 장거리 주말부부 생활도 3년을 해야 했다. 그래서 직장과 집만을 오가는 생활을 했었다. 그러다가 자녀의 질병으로 인해,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퇴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같은 또래의 학부모는 물론이고, 동네 분위기도 거의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도시 동네 엄마들과는 다른, 정겨운 성격의 여러 학부모들 덕분에 나도 조금씩 우리 동네의 살가운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려 가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DH맘과도 좀 더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인사 정도 나누는 사이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마을 활동들을 같이 하게 되면서, 몇 년의 세월이 흐르는 중에 점점 더 친분이 두터워졌다.
계속 볼 때마다 내가 자주 놀랐던 것은, 얼굴에서 풍기는 좋은 이미지만큼이나 세련미와 사려깊음, 그리고 잔잔한 배려심으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감동을 주는 매력 넘치는 세심한 여인이었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서 점점 더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인물 중 하나였다. 특히 내가 가장 그 여인에 대해 궁금했던 점은 ‘무엇이 이 여인을 이렇게 성숙하고 배려심 있는, 겸손한 내면을 가진 존재로 만들었을까? 보아하니 고생도 별로 안 해 본 여인 같은데······.’ 라는 생각이었다.
흔히 시중에서 떠도는 말 중에, 그런 말 있지 않은가? <얼굴이 예쁘면 얼굴값을 하느라고 성격이 나쁘거나 버릇이 좀 없다>는 옛 어른들의 경륜에서 나오는 그런 흔한 말들 말이다. 그 여인에 대해서 나도 모르는 무의식중에 어느 정도 나도 그런 일반화된 이론을 적용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사람이 참 ‘진국’이라는 느낌에 마주 대하는 내 기분마저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한결같은 배려심과 세심함으로, 함께하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성품에, 혼자서 여러 번 감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그 DH맘과의 대화 중에 정말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여인은 중학교 2학년 사춘기 때부터 정말 말로 하기 힘든 환경적, 정서적 고통을 많이 겪고 살아온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사생활 문제라서 그 고통들을 내가 일일이 다 언급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중 가장 안타까운 얘기는, 엄마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무능력함과 힘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아빠에게 일방적으로 학대받는 엄마의 안타까운 인생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이라는 그 어린 나이에 그녀 스스로 엄마가 도망칠 수 있도록 직접 도왔다는 사연이었다.
같은 상황을 가정해 볼 때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엄마가 아무리 불쌍해 보여도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것 같다. 엄마 없는 내 인생이 너무 무서워, 그런 말은 전혀 못했을 듯한데 정말 대단한 정신력인 듯 하다. 게다가 그 당시 자신도 아직 어린 중학생이었기에 경제적으로도 무척 궁핍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자신의 고등학교 학력까지 포기할 각오까지 하면서 초등학교 저학년생인 남동생을 엄마처럼 키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존경심을 넘은 뜨거운 뭉클함이, 내 가슴속에서 가득 올라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DH맘은 성인이 되어서도 본인의 허약한 체질로 인해 자주 아파야 했고, 경제력도 없는 상황에서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고 한다. 수술비가 너무나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절친이었던 동성 친구가 큰 돈을 마련해줘서 수술비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다행히 인복(人福)이 많아 주변에서 자신을 도와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며, 주변 사람을 칭찬하기에 급급했다.
지금 함께하는 그 여인의 남편은, 그때 자신이 그렇게 힘든 와중에 만나게 되어 자신의 곁을 한결같이 믿음직스럽게 지켜준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했기에 부부의 연을 맺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안 좋은 상황들 때문에 결혼식다운 결혼식도 제대로 못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내 나이가 어느덧 지천명(50세)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 그런데,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 아직 결혼식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는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내 어린시절 인생은 정말 힘들었어." 라며 주변 지인들에게 가끔씩 불평을 늘어놓곤 했었는데, 그렇게 투정부렸던 나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저절로 숙연해짐을 느꼈다.
물론 나의 인생도 그다지 쉽지는 않았다. 무척이나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늘 소작농의 자식이라는 설움을 달고 살아야 했다. 남들이 쌀밥‧보리밥을 먹을 때 나는 깡깡 얼은 수수밥을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다니며 그 수수밥을 물에 녹여가며 한숟가락이라도 더 먹어보려 노력해야 했던 가난의 세월들이 있었다. 쌀독에 먹을 곡물이 없는 경우도 너무나 허다했다. 겨울에는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동네 샘에서 물을 길러 오기 위해 한겨울 꽁꽁 언 길을 왔다갔다하며 물지게를 지고 날라야 했다. 중학교 2학년때까지 나의 삶도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 이후에도 학교 매점에서 도너츠 하나 제대로 사 먹을 형편이 안될 정도로, 가난은 늘 나와 평생 악연처럼 느껴질 만큼, 그리 녹록치 않은 내 인생이었다. 내 또래 지인이나 친구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는 무슨 80세 할머니들과 함께 살다 왔니?” 라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핀잔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 다 사실이었다.
그런데 내가 DH맘의 사연을 들으면서 부끄럽고 미안해지는 이유는, 물질적인 가난은 그래도 마음의 상처가 덜하기 때문이다. 정서적인 혼돈과 정서적인 불안정은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는 직격탄을 맞은 듯한 충격일 것이고 혼돈의 아수라장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들은 자신의 남은 인생을 움켜잡는 평생의 족쇄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DH맘은 이렇게도 예쁘고 성숙한 어른으로 잘 성장한 것이다. 게다가 참 사려 깊고 배려심 있는, 마음이 따뜻하고 넉넉한 사람으로 참 알뜰히 잘 살아와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DH맘에게 물어 보았다. ”지금 너의 그 세심한 배려심은 어떤 마음, 어떤 가치관에서 나오는 것 같니?“라고 물었다. 그 여인의 답변은 ”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에게 최선의 마음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 세월이 훨씬 더 지난 나중에 나에게 후회가 안 남게 하고 싶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다 보면 나에게도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상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난 그게 참 좋네. 서로서로 그런 존재로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은가 봐.“라며 그저 덤덤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러니 내가 DH맘을 ‘언니같은 동생’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속이 아주 알차게 영근 탐나는 과실 같고, 찰지고 건강한 곡물 같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또 한 명의 인생의 멋진 스승을 만난 것 같기 때문이다.
배움에는 정말 나이도 국경도 없다는 말을 또 한번 가슴 깊이 배우는 요즘이다. 그래서 공자도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는 말을 남겼나 보다. 앞으로 살아가는 날 동안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이렇게 인생의 스승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DH맘에게도 앞으로는 더욱 따뜻한 인생의 시간들이 펼쳐지기를 기도한다. 오늘도 나는 또 한 명의 인생 스승을 만나게 되었으므로 뿌듯한 감사의 마음으로 또 하루를 마무리한다.
첫댓글 참 인간의 성장과 인성 형성에 대해 늘 궁금해하는 것이 "유전" vs "환경"의 힘인데요. 사실 언급하신 이 친구분은 둘 다 안 좋은 요인 속에서도 훌륭히 성장하셨습니다. 도대체 그 힘은 무엇일까요? 그녀를 그토록 긍정적으로 만든 저 내면의 힘은? 자생적인 힘일 텐데 궁금하네요.
글쎄요, 아마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답게 선하게, 사람답게 최대한 사랑하며 살고싶은 열망 아닐까 싶네요.
신은 태초에는 우리 사람을 이렇게 아름답게 선한 존재로 창조했다고(물론, 나중에는 인간의 욕심으로 많이 선하지 못한 존재가 되었지만요) 믿고싶습니다.
누구나 이 선함을 열심히 추구하면 좋을텐데, 우리 인간이 그것을 꾸준히 추구하지 못하는 한계가 문제인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