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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22장
우리가 앞서 배운 21장은 전체를 두 단락으로 나누어 말씀을 배웠습니다.
첫째 단락(1-17) 예루살렘과 성소를 향한 칼
둘째 단락(18-32) 바벨론을 들어 예루살렘과 암몬을 심판하심
칼집에서 빼낸 칼이 향하는 곳이 어디냐...
2절에 예루살렘과 성소를 향하여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예루살렘과 성소를 향하여 가는 칼이 어떤 칼이냐?
9절에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 나도다...날카롭고 빛이 번쩍 번쩍 나는 칼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12절에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라는 겁니다.
조국으로 향한 심판의 칼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에게 슬피 울라고 합니다.
이 칼이 무슨 칼이냐...19절에 바벨론 왕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치시는 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벨론 왕이 하나님이 칼집에서 빼낸 칼, 번쩍 번쩍 빛나는 칼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빼 드신 칼이 된 바벨론이 예루살렘부터 성소부터 치신다는 겁니다.
남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 성앞에 와서는 토성을 쌓습니다.
그리고 사방에 공성퇴를 세우고 사다리를 세웁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곳입니다.
심판이 있을 때는 어디로부터 심판이 임하느냐...성소로부터 임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에스겔서에서 말씀하는 한결같은 말씀입니다.
그 대표적 말씀이 에스겔서 9장에 여섯사람의 심판자들이 성전중에서 놋제단 곁에 섰고
심판은 9:6절에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라고 합니다.
구약시대의 성소가 오늘날은 교회를 말합니다.
심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겁니까? 교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시드기야 시대 예루살렘을 포위한 바벨론 군대에
대항할 힘이 없는 시드기야 왕은 자기만이라도 살고자 도망을 가다가 잡혀서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 갑니다.
이것을 보고 기뻐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누구입니까?
암몬족속입니다....그 기뻐하는 암몬 족속을 보시고 바벨론 왕으로 하여금 암몬도 치게 하신 겁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는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렸습니다...결국 망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반면에 암몬족속을 향하여는 칼이 뽑히도다. 칼이 뽑히도다...
죽이며 멸절하며 번개같이 되기 위하여 칼이 뽑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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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22장의 말씀도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중심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 22장의 핵심적 내용은 “우상숭배로 벌 받을 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핵심 요절은 2절입니다. 성경을 보시겠습니다.
너는 말하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자기 가운데에 피를 흘려 벌 받을 때가 이르게 하며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더럽히는 성아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더럽힌 성을 심판하시는데...
먼저 그 내용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요절을 찾아서 줄을 그으시면 됩니다.
1) 4절 네 연한이 찼도다
2) 15절 내가 너를 뭇 나라 가운데에 흩으며
3) 18절 내게 찌끼 같이 되었나니
4) 20절 풀무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 같이, 너희를 모아 거기에 두고 녹이리라
5) 25절 선지자들의 반역함이
6) 26절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7) 27절 고관들은 음식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8) 29절 이 땅 백성은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고
9) 30절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이 우리가 줄을 그은 내용을 정리 해본다면
우상숭배로 인하여 스스로 더렵혀 심판의 연한이 찼다는 겁니다.
그래서 심판으로 인하여 내가 너를 열국중에 흩어버리겠다..
내가 너희를 흩어 버리면 너희들은 내게 찌끼깥이 될 것이다.
어떻게 찌끼같이 되느냐...풀무속에 넣고 불을 붙여 녹이겠다...너희를 모아 그안에 넣고 녹이겠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24절에 선지자들의 배역함이 있고...제사장들이 내 율법을 어겼으며...
고관들은 자기 사욕을 채우기에 바쁘고.....
백성들은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기에 심판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30절에 그 심판 중에서도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찾아보지만
결국 찾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심판 불이 던져지고 불이 타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22장의 말씀을 세단락으로 나누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단락 (1-16) 우상과 피로 더렵혀진 성
2단락 (17-22) 찌끼 같이 된 예루살렘
3단락 (23-31) 선지자 제사장 고관들의 죄
1-2절을 봅시다.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심판하려느냐 이 피흘린 성읍을 심판하려느냐
그리하려거든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그들이 알게 하라
22장은 인자야 네가 심판하려느냐...라고 시작합니다.
심판하다라는 단어가 에스겔서에 많이 등장을 하는데...
7:3, 27, 11:10, 11, 16:38, 17:20, 18:30, 20:4, 35, 36, 21:30 그리고 본문에
이렇게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사형을 집행하기 전 죄수에게 죄목을 알려주는 것과 같이
저들이 어떤 죄를 범했는지 알게 하기 위함인 겁니다...왜 심판을 하신다는 겁니까?
2절 하반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그들이 알게하라
심판을 하시는 명백한 증거가 무엇이라는 겁니까? 유다백성의 가증한 죄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 가증한 죄가 무엇이냐...3-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말하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자기 가운데에 피를 흘려 벌 받을 때가 이르게 하며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더럽히는 성아
네가 흘린 피로 말미암아 죄가 있고 네가 만든 우상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혔으니
네 날이 가까웠고 네 연한이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로 이방의 능욕을 받으며 만국의 조롱 거리가 되게 하였노라
유다백성의 가증한 죄가 무엇이라는 겁니까?
3) 피를 흘렸다 / 우상을 만들었다
4) 네가 흘린 피 / 네가 만든 우상....이라고 합니다.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숭배하고 우상에게 제사한 일은
우리가 앞에서부터 계속 나눈 말씀이기 때문에 더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 피를 흘려 벌 받을 때가 이르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먼저 7:23절을 찾아봅시다.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이는 피 흘리는 죄가 그 땅에 가득하고 포악이 그 성읍에 찼음이라
피흘린 죄가 유다 땅에 가득하다는 겁니다.
겔 11:6절도 봅시다.
너희가 이 성읍에서 많이 죽여 그 거리를 시체로 채웠도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리게 하였든지 거리를 시체로 채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죽은 그들이 누구입니까?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겁니다.
예레미야애가 4:13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열왕기하 9:7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마태복음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스가랴라고 봅니다.
스가랴나 사가랴나...원음은 같다고 보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사가랴가 누구인가? 그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세사람을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스가랴서를 기록한 스가랴 이다.
그는 베레기야의 아들이기 때문에 사가랴의 아버지 바라갸와 음이 유사하기에 그럴 수 있다고 봅0
둘째는 역대하 24장 나오는 인물이며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이다.
셋째는 세례요한의 아버지로서 사가랴인데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성경에는 이 사가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명확히 하지 않았다.
인물들을 한분 한분 나누어 본다면
첫째는 스가랴서를 기록한 스가랴 이다. 그는 베레기야의 아들이기 때문에 바가랴와 음이 좀 유사하다.
그래서주장하는 사람들이 이를 염두에 두기도 한다.
그러나 이 선지자는 순교와 거리가 좀 멀지 않나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스가랴 선지자는 비교적 나이가 젊은 선지자로 성전재건 사명을 갖고
그것으로 이스라엘을 격려하며 다독였다.
마침내 그의 뜻은 BC 516년에 결실을 보았는데 성전이 완공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이 스가랴 선지자가 종교적 이유로 살해될 가능성은 아주 적다.
둘째는 역대하 24장 나오는 인물이며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이다.
역대하 24장에 나오는 여호야다와 그 아들 스가랴는 어떤 인물입니까?
여호야다는 제사장입니다. 누구 시대...요아스 시대의 제사장입니다.
이 내용을 알기 위하여서는 요시야 왕 전에 왕이 누구입니까? 할머니 아달랴입니다.
아달랴는 자기 아들 아하시야가 죽자 모든 아들을 살해합니다.
그때 요아스는 자기를 키워주는 유모에 의하여 숨김을 받아서
성전에서 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을 받아 6년을 지낸후에 나이 7세에 왕위에 오릅니다.
그래서 여호야다가 살았을 동안에 여호야다의 말을 듣고 나라를 다스리지만
여호야다가 죽자...돌변하여 아세라 목상을 섬깁니다.(대하24:18)
이 일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왕에게 왕이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왕을 버리셨다고 선포합니다...이 일로 성전에서 왕의 신복들에게 살해를 당함(대하24:22)
셋째는 세례요한의 아버지로서 사가랴이다.
그러나 이 사가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언급되 않는다.
그러다 돌연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라고 함으로써 가능성이 존재한다.
누가복음 1장에서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는 제사장이었으며 '의인'이었다고 기술된다.
의로운 죽음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하나의 근거와 가능성이 열려있다.
또한 이 사가랴가 전통적인 제사장이었지만 사람들에게 반발을 샀을 것입니다.
그는 천사의 방문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과
세례 요한의 운명을 미리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 연고로 사가랴는 세례 요한을 전혀 유대교의 인습과 전통에 물들지 않토록
빈들에서 자라게 한다(어린 요한이 독자적 결정으로 빈들에서 살기는 매우 어렵다).
이것은 전적으로 사가랴의 판단에서 신중하게 이루어졌다고 봐야한다.
이런점에서 사가랴가 비참한 최후를 당할 가능성이 아주 많다고 봅니다.
그리고 사가랴의 무덤으로 확실시되는 기드론 골짜의 무덤에서 학자들이 해독한 원문에 따르면
" 순교자이며, 제사장이며,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의 무덤"이라고 적혀 있다 ,
6세기의 기록 문헌에 따르면"사가랴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와 함께 묻혔다"라고 되어있다.
이로서 사가랴가 순교자일 가능성은 매우 짙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을 추가하자면 정경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흔히 외경도 정경의 내용을 보완하거나 사실을
참고하기 위하여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서 사가랴의 최후가 기술되어 있다.
Zacharias was murdered in the entrance of the temple and altar, and about partition
(The PROTEVANGLION 16:16 ) -- 사가들은 2세기경에 쓰여졌다고 보고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성전과 제단의 사이 입구에서 살인을 당하였다.
순전히 개연성으로 놓고 보면 마태복음 23장에서 언급된 사가랴는 이 인물일 가능성이 제일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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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에 피흘린 죄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그중에 신약성경 마23:35 의인 아벨의 피-너희가 죽인 바가랴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말씀에서
사가랴가 누구냐는 문제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사가랴로 추정되는 인물은...3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스가랴서를 쓴 스가랴...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그리고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있는데 성경 연구가들에 따라 각각 다르긴 하지만
저는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맞다고 봅니다.
사가랴의 무덤으로 확실시되는 기드론 골짜의 무덤에서 학자들이 해독한 원문에 따르면
" 순교자이며, 제사장이며,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의 무덤"이라고 적혀 있다 ,
6세기의 기록 문헌에 따르면"사가랴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와 함께 묻혔다"라고 되어있다.
6절 이하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상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먼저 6절을 봅시다...꼭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고관은 각기 권세대로 피를 흘리려고 네 가운데에 있었도다
네 가운데...앞에 1)이라는 숫자가 있지요?
그것을 아래 관주에서 찾아보면...뭐라고 합니까?
6-15까지 나오는 단어인 “네 가운데”는 다 무엇을 가르킨다...예루살렘을 가르킨다는 겁니다.
찾아보면 네 가운데가.. 전체 13번 정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범한 죄가 무엇이냐...
그것을 7절 이하에 주욱 설명하고 있는데 이 죄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지는 않겠습니다.
그냥 어떤 죄가 있는가를 설명하고 넘어갑니다.
7상 - 부모를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죄
7하 - 나그네를 학대하고 고아와 과부를 해하는 죄
8절 - 안식일을 범하는 죄
9상 - 살인죄
9중 - 제단을 더럽힌 죄
9하-11절 - 음란죄
12절 - 블로소득 죄
여기 죄의 목록을 보면 7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는데
이 7가지의 죄를 세분화 시켜보면...전체를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1) 인간 상호관의 윤리적 규범이 파괴된 죄
2) 가난한 자에 대한 경제적 수탈의 죄
3) 1이하 전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하나님 과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인간 상호관에 윤리가 파괴되고...가난한자를 더 가난하게 만들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성도답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 회복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아무리 타락한 인간일지라도 사람다운 사람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12절 하반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를 잊어버렸도다...모든 문제와 죄가 어디서 시작된다는 겁니까?
여호와를 잊어버림에서 시작된다는 겁니다.
7가지 죄는 결국 무엇을 어겼다는 것이냐하면....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어겼다는 겁니다.
율법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기준이고, 삶의 질을 평가하는 바로미터입니다.
삶의 기준이고 삶의 질을 평가하는 바로미터이다는 것은
성도의 성도됨을 나타내는 기준과 성도됨의 수준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라는 겁니다.
성도의 성도됨은 다른 것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율법이 평가의 기준점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그런데 이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율법 교육받는다고 아닙니다...도덕교육 받고 윤리교육 받아서 100점 먹었다고
이 율법을 잘 지키는게 아니라....하나님과 관계가 바로된 사람이 될 때에 율법을 잘 지키고
율법의 기준으로 볼 때에...수준 높은 성도가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는 죄가 극점에 다달았음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3절 벌 받을 때가 이르게 하며
4절 네 날이 가까웠고
4절 네 연한이 찼도다
4절 그러므로 내가 너로 이방의 능욕을 받으며 만국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노라..
심판의 때가 극점에 도달했음을 나타내는 말들입니다.
종말의 때에도 세상은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남을 잊어서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13절을 봅시다.
네가 불의를 행하여 이익을 얻은 일과 네 가운데에 피 흘린 일로 말미암아 내가 손뼉을 쳤나니
우리가 손뼉을 친다는 것은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을까요?
응원할 때에 손뼉을 칩니다...힘내라고 이기라고 잘하라고...손뼉을 치지요?
앞에서 21:14절에 에스겔에게 예언을 할 때에...손뼉을 쳐서 예언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집중하게 하여...듣지 않는 백성들을 집중하여 들으라고 손뼉을 치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13절에 하나님이 치신 손뼉은 어떤 손뼉입니까?
이 하나님의 손뼉은 결단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뜻대로 잘 풀리지 않다가...
순간적으로 아....이것이다...이거야...그렇게 하면 된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뭔가 결단을 했을 때...우리는 손으로 탁자를 탁 치거나
아니면.. 손뼉을 탁 치기도 하는데...이 결단의 손뼉입니다...
즉 오늘 본문의 대부분의 말씀은 다 심판의 때가 차고 찼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때가 차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심판 전이므로 은혜의 때입니다. 기회의 때입니다.
이때에 참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 신길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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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에 7절 이하에 7가지 죄가 있다고 했습니다.
7상 - 부모를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죄
7하 - 나그네를 학대하고 고아와 과부를 해하는 죄
8절 - 안식일을 범하는 죄
9상 - 살인죄
9중 - 제단을 더럽힌 죄
9하-11절 - 음란죄
12절 - 블로소득 죄
여기 죄의 목록을 보면 7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는데
이 7가지의 죄를 크게 묶어 본다면 2가지의 죄가 된다고 했습니다.
1) 인간 상호관의 윤리적 규범이 파괴된 죄
2) 가난한 자에 대한 경제적 수탈의 죄
여기다 1이하 또 하나의 죄가 추가 되어 있는데
이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하나님 과의 관계가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인간 상호관에 윤리가 파괴되고...가난한자를 더 가난하게 만들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성도답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 회복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아무리 타락한 인간일지라도 사람다운 사람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읽은 17-22절 말씀은 둘째 단락으로...핵심은 찌꺼기 같이 된 예루살렘입니다.
먼저 17-18을 봅시다.
17.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8.인자야 이스라엘 족 속이 내게 찌꺼기가 되었나니 곧 풀무 불 가운데에 있는
놋이나 주석이나 쇠나 납이며 은의 찌꺼기로다
찌꺼기란 용광로에 광석을 넣어서 제련 과정을 통과할 때에
찌꺼기들은 침전물이 되어서 가라 앉는다는 겁니다...사실 이런 것들은 다 불순물이지요
그래서 잠25:4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좋은 그릇은 찌꺼기를 제한 후에 , 불순물을 제한 후에 만든 그릇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본문 19-2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9.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다 찌꺼기가 되었은즉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으고
20.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쇠나 납이나 주석이나 모아서 풀무 불 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노여움과 분으로 너희를 모아 거기에 두고 녹이리라
19절의 말씀은 참 절묘한 말씀입니다.
너희가 다 찌꺼기가 되었으므로...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았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예루살렘 성에 모였습니까? 그날이 언제입니까?
바벨론이 유다나라를 쳐들어와 온 국토를 밀고 예루살렘으로 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예루살렘 성에 모여 들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 모았다고 합니다.
왜 모았느냐...20절에 광물을 제련하여 불순물을 제거하듯이
너희를 심판의 불로 제련하여 너희로 참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제련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의 믿음이 참 믿음으로 나타난 때를 돌아보면 다 환란의 풀무불을 통과할 때였습니다.
특히나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환란이 없고 고난이 없고 시험과 연단이 없었다면
지금의 겨자씨보다도 더 작은 믿음이지만 이 믿음 조차도 없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돌아보면 환란의 불을 하나 하나 넘을 때마다 믿음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나아가 영적이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보면 복중에 복이요 은혜중에 은혜입니다.
주께서 분노를 쏟은 줄을 깨닫게 될 것이다(21-22)
본 절에서 ‘너희가 알리라’ 혹은 ‘깨닫게 될 것이다’의 말씀은
분노의 용광 안에서 남은 자가 있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왔음을 깨달게 된다는 뜻입니다.
심판중에 깨닫아 참 믿음의 사람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고난 주에 깨달음이 있고, 문제 중에 깨달음이 있고, 불행중에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이 축복입니다.
제가 사람인지라 순간적으로 화를 내고 억울해 할 수는 있지만
내가 이틀동안 사흘동안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한 사람을 비난해본 적이 없습니다.
왜 내가 처음 단독목회로 가서...거기서 장로님이 앞선 목회자, 교회 성도를
한 사람 한 사람 비판하고 평가하며 다 나쁘다는 말을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한바탕 그 장로님과 말싸움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하나님앞에 새벽에 기도하기를 내가 뭐 잘못했기에
저런 장로님이 있는 이런 시골교회 나를 이끌어 오게 했습니까?
불평에 불평 불평에 불평으로 기도하고...그 장로님이 그렇게 미울수가 없었습니다. 눈에 가시였습0
그러기를 3개월후에...교통사고를 내가 내어서 큰 아들의 뇌를 다쳤습니다.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전화가 와서 애를 실어가라는 겁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병원의 힘을 빌리는 것뿐인데..
이땅에 살게해줘도 주의 뜻이고 데려가셔도 주의 뜻이니...
병원에서 할 수 있는대로 해보자고 하여 퇴원은 시키지 아니하고 기다렸습니다.
그후 저도 병원에서 1주일만인가 2주일만인가 퇴원을해와서
새벽마다 성도님들이 다 가시고 난 후에 펑펑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불평한거 잘못했습니다.
사람 비난한 것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
하나님 용서해주소서...제발 한번만 제발 한번만 이번 한번만 용서해주소서..아이를 살려주소서..
그런 기도를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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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쇠나 납이나 주석이나 모아서 풀무 불 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노여움과 분으로 너희를 모아 거기에 두고 녹이리라
19절의 말씀은 참 절묘한 말씀입니다.
너희가 다 찌꺼기가 되었으므로...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았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예루살렘 성에 모였습니까? 그날이 언제입니까?
바벨론이 유다나라를 쳐들어와 온 국토를 밀고 예루살렘으로 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예루살렘 성에 모여 들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 모았다고 합니다.
왜 모았느냐...20절에 광물을 제련하여 불순물을 제거하듯이
너희를 심판의 불로 제련하여 너희로 참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제련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의 믿음이 참 믿음으로 나타난 때를 돌아보면 다 환란의 풀무불을 통과할 때였습니다.
특히나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환란이 없고 고난이 없고 시험과 연단이 없었다면
지금의 겨자씨보다도 더 작은 믿음이지만 이 믿음 조차도 없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돌아보면 환란의 불을 하나 하나 넘을 때마다 믿음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나아가 영적이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보면 복중에 복이요 은혜중에 은혜입니다.
주께서 분노를 쏟은 줄을 깨닫게 될 것이다(21-22)
본 절에서 ‘너희가 알리라’ 혹은 ‘깨닫게 될 것이다’의 말씀은
분노의 용광 안에서 남은 자가 있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왔음을 깨달게 된다는 뜻입니다.
심판중에 깨닫아 참 믿음의 사람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고난 주에 깨달음이 있고, 문제 중에 깨달음이 있고, 불행중에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이 축복입니다.
제가 사람인지라 순간적으로 화를 내고 억울해 할 수는 있지만
내가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끊임없이 원망하고 미워하고 한 사람을 비난해본 적이 없습니다.
왜 원망과 불평과 미움이 얼마나 나쁜지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너희가 알리라..
깨닫도록 풀무불를 통한 제련을 시키심을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오늘 23-31절의 말씀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고관의 죄를 다루고 있다고 했습니다.
24절을 봅시다.
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24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정확히는 유다를 심판하실 수 밖에 없는 원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인이 뭐라는 겁니까?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다..
땅이 정결함을 얻지 못하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땅 자체가 불순해지고 불결해진다는 걸까요? 그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이 뜻이 무엇입니까?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정결하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땅이 더렵혀 졌다는 겁니다.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냅니까?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받은 땅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과가...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되었다는 겁니다
이 말씀속에 우리가 해석상 필요한 단어가
먼저는 진노의 날/ 다음은 비를 얻지 못한 땅입니다.
진노의 날이 언제를 말합니까?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해 온 그 날을 말합니다.
그날에...비를 얻지 못하는 땅이되었다? 이건 또 무슨 뜻입니까?
땅이 땅으로서 역할을 하려면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늣은 비가 내려야 합니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려 주신다면 땅의 식물은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니까 땅이 땅으로서 최고의 축복은 때를 따라 내리는 비가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진노의 날에...무엇을 얻지 못하는 땅이 되었다는 겁니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얻지 못하는 땅이 되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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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에 23절 이하로 3번째 단락으로 핵심이 선지자, 제사장, 고관들의 죄로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실 수 밖에 없음을 말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죄로 인하여 어떤 현상이 일어났느냐....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 되었다..
땅이 정결함을 얻지 못하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땅 자체가 불순해지고 불결해진다는 걸까요? 그게 아닙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정결하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땅이 더렵혀 졌다는 겁니다.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냅니까?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받은 땅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과가...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되었다는 겁니다
진노의 날이 언제를 말합니까?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해 온 그 날을 말합니다.
그날에...비를 얻지 못하는 땅이되었다? 이건 또 무슨 뜻이냐...
땅이 땅으로서 역할을 하려면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늣은 비가 내려야 합니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려 주신다면 땅의 식물은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결실 할 수 있0
그러니까 땅이 땅으로서 최고의 축복은 때를 따라 내리는 비가 최고의 축복이요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진노의 날에...무엇을 얻지 못하는 땅이 되었다는 겁니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얻지 못하는 유다 땅, 유다 백성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된 핵심 인물들이 누구냐...
그들이 선지자들이요, 그들이 제사장들이요, 고관들이요, 백성들이다...
이는 한마디로 전적타락을 말씀한다고 했습니다.
어느 한쪽이라도 깨어 있어야 할 하나님의 사람들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겁니다.
그중에 오늘은 선지자의 죄를 봅시다. 25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선지자들의 반역함이 우는 사자가 음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그 가운데에 많게 하였으며
선지자들의 반역함이...라고 시작합니다....
선지자들이 반역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반역했다는 것인데.
어떻게 함이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반역한 것인가? 그 내용을 성경에서 좀 찾아보겠습니다.
렘5:30-31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시작이 특이하게 시작합니다...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하나님의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 무섭고 놀라운 일이 무엇이냐...
두 직분자들로 인하여 무섭고 놀라운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두 직분자가....1) 선지자... 2) 제사장을 말합니다.
지금 제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선지자니...선지자만 봅시다...
선지자들은 무엇을 하며? 거짓을 예언하며....거짓을 예언 한다는 겁니다.
즉 거짓 예언을 일삼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무섭고도 놀라운 일이라는 겁니다.
렘6: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선지지와 제사장이 무엇을 행한다...다 거짓을 행한다는 겁니다.
이 거짓된 예언을 하고 거짓된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원인이 무엇이냐...탐욕 때문이라는 겁니다.
탐욕은 자기 욕심입니다.
자기 인기, 자기 자리, 자기 명예, 자기 부, 자기 욕심...등등
이런 것들을 바라보고 거기에 치우쳐 사니...선지자가 거짓 예언을 행하는 겁니다.
에스겔 시대에 거짓 선지자가 있었다면 오늘날엔 거짓 목회자들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들이 거짓 목회자가 된 가장 큰 원인이 탐욕...즉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왜 목회자가 잘못된 길을 가느냐...탐욕,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만 내려 놓으면 얼마든지 좋은 목회자가 될 수 있는데...욕심이 죄를 낳게 하는 겁니다.
저도 목회자이지만 욕심을 부릴려고 하면 정말 많은 욕심이 생길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중에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이 모르면서 아는 척 해서 안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해석해야 하는데...말씀을 제대로 모르면서 아는척 하니까
말씀을 잘못된 해석을 하고 이 잘못된 해석이 거짓 해석을 낳고...거짓 예언을 낳는 겁니다.
또 다른 목회자들 중에는
없는 능력도 있는 것 같이 보이려고하니...자기가 무엇을 보는 것 같이 말해야하고
자기 말을 안들으면 하나님이 벌을 내리신다...하나님이 생명을 거두어가신다.
하나님이 사업 망하게 하신다...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 가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 목회자의 말을 듣는 종이라는 말인데...누가 진짜 종입니까?
만약에 하나님이 어떤 징계를 하시더라도...그 목사의 말 때문에 징계하시는게 아니라
이미 그 사람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만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렘23: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사악하다는 사전 뜻이 간사하고 악함이라는 뜻입니다.
거짓 선지자니까 간사하고 악할 수 밖에 없습니다.
렘5:30-31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시작이 특이하게 시작합니다...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하나님의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 무섭고 놀라운 일이 무엇이냐...
두 직분자들로 인하여 무섭고 놀라운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두 직분자가....1) 선지자... 2) 제사장을 말합니다.
지금 제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선지자니...선지자만 봅시다...
선지자들은 무엇을 하며? 거짓을 예언하며....거짓을 예언 한다는 겁니다.
즉 거짓 예언을 일삼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무섭고도 놀라운 일이라는 겁니다.
렘6:13
선지지와 제사장이 무엇을 행한다...다 거짓을 행한다는 겁니다.
이 거짓된 예언을 하고 거짓된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원인이 무엇이냐...탐욕 때문이라는 겁니다.
탐욕은 자기 욕심입니다.
렘23:11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사악하다고 합니다.
사악하다는 사전 뜻이 간사하고 악함이라는 뜻입니다.
거짓 선지자니까 간사하고 악할 수 밖에 없습니다.
렘23:16-32
16.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의 말을 들으라...이게 정상적이쟎아요
그런데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합니다.
왜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하느냐...그들은 헛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헛된 것이 무엇일까요?
전도서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것은 누가 한 말입니까? 솔로몬입니다.....즉 솔로몬은
세상 즐거움 세상 행복, 세상 인기, 세상 명예, 세상 권세, 세상 만족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인생 말년이 되어서...다 헛되구나...깨달았습니다.
헛된 것이 무엇이냐...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이 마태복음에서는 세상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이요, 넓은 문입니다.
세상의 성공 세상의 행복 세상의 만족함을 위하여 전하는 자들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말이라는 겁니다.
성경이 성공론을 가르칩니까? 긍정론을 가르칩니까?
성경은 믿음론을 가르칩니다.
어떻게 믿는 것이 믿음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믿음인가를 가르치는 믿음론입니다.
17.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나를 멸시하다...경홀히 여기다...하찮게 여기다...무시하다...
누구를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에게도 선지자들이 너희가 평안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평안하기를 원합니다...이런다는 겁니다.
자기 마음에 완악한 대로 사는 자에게도...재앙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이지 심판하시고 재앙을 내리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렇게 성도들에게 선지자들이 선포했다는 겁니다.
이게 그 시대만의 이야기입니까?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원하고 목사들이 선포하는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아니냐는 겁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닏.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도 하지만 딴 길로 갈 때에는
풀무불에 모아 연단하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8.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19.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20.여호와의 진노가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그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 날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그렇게 멸시하는 자들에게 폭풍처럼 회오리 바람처럼 풀무불처럼 악인에게 임하실 것인데
그 놀라운 진노를 통하여...하나님의 뜻이 이루실 때까지 그 진노를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그 하나님의 뜻이 뭡니까? 너희가 너희의 잘못을 완전히 깨달음이라는 겁니다.
20절 끝절에 그것을 완전히 깨닫는 그날에 내가 내 진노를 끝내겠다는 겁니다.
21.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22.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18절에 여호와의 회의, 22절에 나의 회의...라고 합니다.
이 뜻은 하나님과 선지자가 1:1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됨을 말합니다.
더 깊게 들어가면 욥기에 천상회의가 있습니다.
욥이 어떤 사람인가를 하나님께서 자랑하기 위하여 연 회의가 천상회의입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아는 욥을 자랑하지요...
그리고 사단에게 욥을 시험하는 가드라인을 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을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나라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도 아니하였으면서
꼭 받은 것처럼 자기 말을 자기 뜻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만약에 그들이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다면...
내 뜻과 내 말은...그들이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는 것이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길로 가는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게 오게할 것인데
그들은 더 세상의 길로 가게하고 악한 길과 악한 행위로 들어가게 하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거짓 선지자들이라는 겁니다.
23-24절을 봅시다.
2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24.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이 말씀은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장소에만 거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오
하나님은 특정한 곳에 가두실 수 있는 하나님도 아니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것을 어디서 볼 수 있느냐 하면 삼상5장에 보시면...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대 전쟁치룹니다. 그 전쟁에서 블레셋이 대승을 거둡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셔간 법궤도 빼앗게 됩니다.
그 법궤를 빼앗아 어디로 가져 갑니까? 다곤 신전에 갔다 둡니다.
왜 법궤를 다곤 신전에 가져다 두었을까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1) 자기들이 섬기는 다곤 신으로 말미암아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니..
그 승리의 영광을 다곤신에게 바칩니다는 뜻에서 다곤앞에 법궤를 바친 겁니다....
2) 다곤신이 법궤안에 있는 하나님을 다스려 달라는 뜻에서 갔다 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 보니...
다곤신상이...법궤 앞에 엎드려져 있는 겁니다.
이상하게 여기긴 했지만 다곤 신상을 다시 세워 자리에 앉히고 나옵니다.
그 다음날 다시 들어가보니...이번에는 넘어진 정도가 아니라...
법궤 앞에 다곤 신상의 두 손과 머리가 부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행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초자연적이신 분이심을 스스로 증명하신 겁니다.
누구에게 굴복하시는 분도 아니요...누구의 아래에 있는 분도 아니시오...
어떤 특정 장소에만 머무시거나...갇혀 있는 분이 아니시다는 겁니다.
가끔 성경을 보다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장소에 머무시거나...
한 장소에 다른 장소로 이동하심을 나타내는 것처럼 기록하고 있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이전에 우리가 에스겔서에서 살펴본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나서...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가셔서...
거기에서 내가 너희의 성소가 되리라...하신 말씀이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임재하셨는데...
그 여호와의 영광이 가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고
여호와의 영광이 머무시면...이스라엘 백성도 머무는 것을 봅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장소에 머무심 같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그곳에만 계셨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장소에 거하심처럼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곳에만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그곳을 하나님께서 집중하여 보시고
감찰하시고 도우시고 은혜베푸심을 말씀하는 것이지...그곳에만 계신 하나님은 아니시다는 겁니다.
오늘 성경 23절 끝절에 먼데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이 말이
하나님은 먼데 있는 하나님이 아니다는 뜻입니까?
먼데도 있는 하나님인줄 알라는 뜻입니까?....
먼데 있는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하여 질문형을 쓴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내 가까이서 나를 보시는 분이시자...
나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을 동시에 보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겁니다.
그래서 24절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숨을 수 있느냐...없다는 겁니다.
자신은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천지를 감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겁니다.
우리가 영적예배자가 되어야 함은
이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삶을 감찰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그냥 내 생각대로 살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
하나님이 내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가를 깊이 생각하며...이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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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장소에만 계시거나 역사하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바로 아는 것도 아니고 바로 믿는 믿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먼데 있는 하나님이시오...먼데만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가까이도 계신 하나님이시오
가까이만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내안에 임재하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때때로 어느 특정한 곳이나 장소에만 하나님이 임재해 계심처럼 말씀하시는 것은
그 때에 그곳에 하나님이 특별히 역사하심을 말씀하시는 것이지..
거기에 갇히신 하나님이 아니심을 잊어서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항상 언제 어디서나 역사하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믿고 하나님앞에 사는 것을 우리는 영적예배라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역사하시고 감찰하시고 도우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을 때
우리는 내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때때로 하나님앞에 내 마음을 봅니다.
내린 결론이...옛날 목사님들이 말씀하신 꾸중물통...내 마음이 꾸중물통 같음을 알게 됩니다.
어릴 때 소 먹임---꾸중물통에 모든 꾸중물을 모음--죽을 끓일 때
휘익 휘익 젖어서 죽을 끓일 때...몇 바가지 퍼 넣는데요...
젖어 놓으면 난리가 나지요? 가라 앉았던 모든 찌꺼기가 다 올라옴
평상시에는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마음을 젖어 놓으면 그때 제 안에 본색을 더러내는 겁니다.
온갖 더러운 것들이 내 마음에서 올라오는 겁니다.
우리가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내 자신을 보자는 겁니다.
마음을 봅시다...생각하는 것을 봅시다...말하는 것도 봅시다...행함도 봅시다.
25절 봅시다.
25.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26.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27.그들이 서로 꿈 꾼 것을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조상들이 바알로 말미암아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당시에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이 계시 하시는 방법이 몇가지가 있습니다.
꿈이 있고, 환상이 있고, 이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주시는 여러 방법 중 그 중에 하나가 꿈이지요? 꿈....
그러니까 이 거짓 선지자들이 자기들이 뭘 했다는 겁니까? 꿈을 꾸었다고 한다는 겁니다.
진짜 꿈을 꾸었느냐 아니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꿈을 꾸었다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의 말이지 하나님이 계시해주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26절에...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언제까지 그런 꾸지도 아니한 꿈을 꾼 것처럼 마음으로 선지자 노릇 하려 하느냐는 겁니다.
하나님의 회의에 참여한 적도 없고...하나님꼐서 만나셔서 꿈을 주시지도 아니하고
환상을 보여주시지도 아니하고 이상을 주신 일도 없는데...
그들이 꿈꾼 것처럼 할려고 하니...거짓을 예언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거짓을 예언하는 그들을 어떤 예언이라고 하느냐 하면
26절 끝절에..... 그 마음에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간교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니 하나님보시기에 가장 간교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하나님의 중심이 아니라 인간중심의 말을 전한다는 겁니다.
세상에서 첫 간교한 자가 누구일까요?
창세기 3:1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간교한 자라고 합니다...왜 뱀이 간교한 자가 되었습니까?
그것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에 대해서 말할 때에...
하나님 중심으로 살도록 말을 전한 게 아니라...인간중심으로 돌아서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간교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간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삶에서 인간중심의 삶으로 돌아서게 만드는 것이 간교한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중심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결과가 무엇일까요?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 같이 되리라...이러니까...거기에 넘어간 것입니다.
하나님 같이 되리라...이 말에 왜 넘어간 것입니까?
인간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보니...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같이 되고자 한다면...그것이 죄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같이 되는 될 존재도, 신분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경배하는 경배자의 자리에 있을 때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간교함이란
하나님 중심에서 떠나 인간중심으로 넘어가게 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간교한 자라는 겁니다.
27절을 봅시다.
그들이 서로 꿈 꾼 것을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조상들이 바알로 말미암아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이 말씀은 거짓 선지자들이 끼치는 해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해악이 무엇과 같다는 겁니까?
이스라엘 조상들이 / 바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거짓 선지자들이 전하는 말은 결국...내 이름....하나님의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하나님의 이름을 잊게하려 함이로다...이게 무슨 뜻일까요?
거짓 선지자들의 메시지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이르게 함이 아니라...
바알신...즉 이는 세상신...세상의 풍요의 신을 믿게 하는 것이다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 한국교회도 1970년대부터.. 2000년도 까지...
한국교회 안에도 세상의 신, 물질의 신, 이것을 구약시대에 대입시켜 본다면
바알신을 믿게하는 설교가 주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믿음에 이르고 믿음에 승리자가 되도록 전해야할 교회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면 성공하느냐... 잘 사느냐... 행복하게 사느냐...이런 설교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교회가 있더라구요...
제가 해마다 연초에 한주간 기도원에 기도하러 가는데...작년과 올해는 가지를 못했습니다...
작년에는 개인적으로 일이 있었고...올해는 코로나로 인하여 가지를 않았습니다.
기도원에 기도하러 가서...수요일 저녁에는 인근교회에 탐방겸 예배를 드리러 갑니다.
명성기도원에 갔을 때 원주의 어느 큰 교회는 수요일 예배를 두시간 넘게 하더라구요
순서도 많아요...그중에 하나가 땅을 사 놓았는데...그 땅값이 엄청 올라서 팔았던가봐요
팔고...그 땅값의 차익을 십일조 헌금으로 냈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께서 수요일 저녁에 십일조헌금을 낸 그분에게 간증을 시키시는 겁니다.
저는 그 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성경속에 십일조 헌금내고 간증하는 분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더라구요
이런 말씀을 하면 박목사는 좋게 보면 되지...삐딱하게 보는 시선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돈이 없어서 땅 값이 쌀 때에 땅을 못 산 사람은 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그렇습니까?
부자된 것으로 물질의 복을 받은 것으로 좋은 믿음과 나쁜 믿음으로 논하지 말자는 겁니다.
물론 부자로 사는 분들 중에도 믿음 좋은 분들 있고요...
가난하게 사는 분들 중에도 믿음이 탁월한 분들도 있습니다.
차라리 간증을 시킬 거면...저는 이런 분들을 간증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시험을 쳤는데 떨어졌는데...지금 믿음으로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
땅을 샀는데...땅값이 떨어져서 어려움속에서도 믿음으로 일어서고 있는 사람들...
몸에 중한 병이 들었는데...그 병중에서도 말씀을 붙들고 하루하루를 이겨내는 분들...
가정에 식구들이 교회 가는 것 반대하는데도 믿음을 지키는 분들...
간증을 해도 이런 분들이 간증을 해야 하지 않을까...생각해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세상을 향하게 하고, 세상 성공, 세상부자.
결국은 세상 신, 풍요의 신인 바알을 따르게 한다는 것을 잊어서 안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바알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 것인가?...바알이 주는 세상즐거움으로 살것인가?
우리는 찬양은 이렇게 합니다.
세상즐거움 다버리고 세상자랑다 버렸네...주예수보더 귀한 것은 없네...예수밖에는 없네
찬양은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삶을 보면...세상 즐거움 안버립니다...세상 자랑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것을 거두 가시면 인생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더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즐거움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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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진짜 선지자는 어떠한가를 말씀합니다.
진짜 선지자는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겁니다.
성실하게 전해야 함을 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까요?
당시에 예레미야나 이사야 에스겔이 말씀을 전할 때 시대상황은 아주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거기다 백성들은 선지자들이 외치고 또 외쳐보지만 듣지 아니합니다.
백성은 듣지 아니하지요...전하므로 말미암아 핍박은 심하니까..
선지자들이 말씀을 전하다가 실망하고 낙심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도.. 렘20:9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다시는 말씀을 선포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여호와께서 이렇게 전하라고 하셨다고 말하지 않겠다고
뭐했다...결심하고 결단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결단하고 결심하여 있는데
나의 마음이 뭐 붙는 것 같았다...불 붙는 것 같더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전하지 아니하고 견딜 수 없는 마음에 불을 주신 겁니다.
그것이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다는 겁니다.
즉 백성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씀을 전하는데...환란이나 핍박이나 위험이나 칼이 있어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가서 최선을 다해서 전하는 이것이 성실이라는 겁니다.
끝절에...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겨가 무엇입니까? 가라지 하고는 틀립니다.
열린 노트성경에 보시면 겨와 알곡에 대한 해석을 해 놓았습니다.
제가 읽어 드립니다.....읽고...
결국 겨는 무엇이다...쭉정이다는 겁니다.
겉모양은 알곡 같은데...속이 없는 것....그것을 겨라고 표현했습니다.
무엇이 알곡이고 무엇이 겨입니까?
알곡은 하나님앞으로 나아오게 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하는 것입니다.
겨는 세상중심, 자기 중심, 자기 즐거움 쾌락 행복을 위해서 살게하는 겁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알곡신앙인지...쭉정이 신앙인지...
분별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9.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여호와의 말씀이 무엇이다? 불 같다고 합니다.
불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나타난 불은 소멸하는 불이시라고 합니다.
소멸한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것을 태우고 소각하는 역할을 한다는 거지요?
무엇을 태우고 무엇을 소각한다는 것입니까? 우리속에 있는 죄와 죄성을 태우고 소각한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내 안에 있는 죄를 청소하게 됨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무엇이냐...이것을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요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세례는 말씀이 믿어지고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할 때 성령세례가 임하게 되는 겁니다.
이 은혜, 죄사함과 거듭남의 은혜를 받고 체험할 때에...내가 새 사람이 됨을 알게됩니다.
그때에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살고자 하는게 아니라...
그 은혜를 받으면 새 사람으로 사는 즐거움과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삶이 있는 겁니다.
이 은혜를 체험하면...죄가 나를 지배할 때마다...이렇게 찬양합니다.
불가지고 태우든지 물가지고 날 씻든지 내안과 밖 다 닦으사 내모든 죄 멸하소서...아멘?
또 하나가 말씀은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다고 합니다.
사람이 좀처럼 깨어지지 않습니다. 내 성격도, 내 자존심도, 내 사고도,
내 주장, 내 자존심, 내 지식, 경험 등 이런 것이 안 깨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고 내 안에 임재하게 되면
돌 같이 굳은 내 마음 내 생각 내 주장 사상 자존심 등 이런 것이 깨진다는 겁니다.
우리 믿음이 돌 같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제나 오늘이 변함없는 믿음...항상 굳건한 믿음...언제나 동일한 믿음이어야 하는데
우리 마음이 내 자신의 성경이나 사상이나 자존심이 돌같이 굳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 믿음이 성장하게 하는데 암같은 존재입니다.
여자분들은 얼굴을 가꾸는데 정말 신경을 많이 쓰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좀더 질 좋은 화장품, 바르기만 해도
얼굴이 빛나는 화장품이 있다면 그것을 쓰시려 할 것입니다.
거기다 얼굴에 점이 있으면 어떻게 하든지 시간을 내어서 그 점을 빼려 할 것입니다.
실제로 어느 교회에서는 또래 권사님 집사님 단체로 점빼러 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저는 점 빼서 더 얼굴이 깔끔하고 이뻐 보인다면 그것 나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게 얼굴에 난 점은 그렇게 신경을 쓰고 불편해하고 빼려고 하는데
마음에는 수 많은 점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빼려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심지 작은 돌맹이 같은 점이 있는가하면 바위같은 마음에 점이 있는데도 모릅니다.
그 점들이 자기를 죽게 만드는 암더어리 같은 점인데도 그것을 모릅니다.
도리어 어떤 사람은 그것이 자기의 장점인줄 아는 분들도 있습니다.
수많은 돌같은 점들이 내 마음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거 그냥 두어서 안되쟎아요...깨트려야 하고 빼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마음에 수많은 돌같은 점들을 깨트리고 빼낼 수 있느냐..
세상의 어떤 것으로 안됩니다...교육받아서 안됩니다...명 강의를 들어서도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내안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시면....
우리의 그 깨어지지 않는 돌 같은 마음이 깨어져 부더러운 마음이 됩니다.....
이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의 증거요....말씀을 받은 자의 증거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굉장히 세상적 사고가 깊고,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 돌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성령체험과 말씀체험을 하지 못한 성도임을 잊어서 안됩니다.
정말 성령체험을 하고 말씀 체험을 하게 되면...자기를 철저히 버리게 됩니다.
마13장에는 4가지 밭의 비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길가 밭이 있고요. 둘째는 돌짝 밭이 있고요. 셋째는 가시덤불 밭이 있고요
마지막 네 번째가 좋은 밭, 옥토와 같은 밭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4가지의 밭은 그 당시에 그런 밭들이 실제적으로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릴 때 돌아보면 이런 4가지 밭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경지정리를 하고 밭을 가꾸고 가꾸어서 다 좋은 밭들만 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기계가 너무 좋은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 서희 아파트를 짓고 있는데...짓기 전에 집을 포크레인으로 다 부수더라구요
그리고 또 포크레인으로...부순 집의 벽돌이나 콘크리트를 다시 더 잘게 부수었습니다.잘게 부순 벽돌과 콘크리트를...포크레인 바가지 채....
우리가 타작을 한 후에 곡식을 치는 채가 있듯이 포크레인 채가 있는데
그 채로 한바가지 퍼서는 흔들 흔들 하니까...돌맹이 같은 것은 걸러지고...
거의 흙과 같이 된 것만 빠지니까....흙과 같이 아주 잘게 부서진 것은 그것대로
돌맹이 같이 남은 것은 그대로 싣고 어디로 가더라구요...
그것을 보고 요즘은 돌짝밭이 없겠다...포크레인 채를 가지고 퍼서 흔들면..
다 옥토가 되겠네...그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옛날에야...길가밭도 있고 돌짝밭도 있고 가시덤불 밭도 있었지만
지금은 농사를 짓는 농부가 조금만 신경쓰면 다 옥토가 됨을 깨달았습니다.
한가지 핵심은 좋은 밭, 옥토가 되기 위해서는 주인이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외모는 가꾸쟎아요...얼굴에 점이 있으면 좀더 예뻐 보일려고 점을 빼쟎아요
그렇게 얼굴에 있는 하나의 점도 보기 싫어서 빼는데...
우리 마음에는 수많은 나쁜 점들이 있는데...그 점은 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냥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고쳐야 합니다. 빼내야 합니다.
어떻게 마음을 고치고 어떻게 마음의 나쁜 수많은 점들을 빼내는 겁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임재하면 됩니다.
그 말씀이 방망이 같아서...내 굳은 마음,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점들을 파괴 시키는 겁니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을 옥토와 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어 주시는 겁니다.
이것을. 히4:12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우리의 심령을 찔로 쪼개고 수술하는 것이 무엇이냐...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처럼 우리의 죄와 죄성을 소각하고 소멸하시기도
때로는 우리의 굳은 마음을 쳐서 부서 뜨리는 방망이기도 하고
오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는 겁니다.
세상의 검은 사람의 육신에 해를 끼치지만...
말씀의 검은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어 수술한다는 겁니다. 바꾸고 변화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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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여호와의 말씀이 무엇이다? 불 같다고 합니다.
불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나타난 불은 소멸하는 불이시라고 합니다.
소멸한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것을 태우고 소각하는 역할을 한다는 거지요?
무엇을 태우고 무엇을 소각한다는 것입니까? 우리속에 있는 죄와 죄성을 태우고 소각한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내 안에 있는 죄를 청소하게 됨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무엇이냐...이것을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요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세례는 말씀이 믿어지고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할 때 성령세례가 임하게 되는 겁니다.
이 은혜, 죄사함과 거듭남의 은혜를 받고 체험할 때에...내가 새 사람이 됨을 알게됩니다.
그때에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살고자 하는게 아니라...
그 은혜를 받으면 새 사람으로 사는 즐거움과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삶이 있는 겁니다.
또 하나가 말씀은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다고 합니다.
사람이 좀처럼 깨어지지 않습니다. 내 성격도, 내 자존심도, 내 사고도,
내 주장, 내 자존심, 내 지식, 경험 등 이런 것이 안 깨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고 내 안에 임재하게 되면
돌 같이 굳은 내 마음 내 생각 내 주장 사상 자존심 등 이런 것이 깨진다는 겁니다.
우리 믿음이 돌 같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제나 오늘이 변함없는 믿음...항상 굳건한 믿음...언제나 동일한 믿음이어야 하는데
우리 마음이 내 자신의 성격이나 사상이나 자존심이 돌같이 굳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 믿음이 성장하게 하는데 암같은 존재입니다.
여자분들은 얼굴을 가꾸는데 정말 신경을 많이 쓰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좀 더 질 좋은 화장품, 바르기만 해도
얼굴이 빛나는 화장품이 있다면 그것을 쓰시려 할 것입니다.
거기다 얼굴에 점이 있으면 어떻게 하든지 시간을 내어서 그 점을 빼려 할 것입니다.
그렇게 얼굴에 난 점은 그렇게 신경을 쓰고 불편해하고 빼려고 하는데
마음에는 수 많은 점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빼려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심지 작은 돌맹이 같은 점이 있는가하면 바위같은 마음에 점이 있는데도 모릅니다.
그 점들이 자기를 죽게 만드는 암더어리 같은 점인데도 그것을 모릅니다.
도리어 어떤 사람은 그것이 자기의 장점인줄 아는 분들도 있습니다.
수많은 돌 같은 점들이 내 마음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거 그냥 두어서 안되쟎아요...깨트려야 하고 빼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마음에 수많은 돌같은 점들을 깨트리고 빼낼 수 있느냐..
세상의 어떤 것으로 안됩니다...교육받아서 안됩니다...명 강의를 들어서도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내안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시면....
우리의 그 깨어지지 않는 돌 같은 마음이 깨어져 부더러운 마음이 됩니다.....
이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의 증거요....말씀을 받은 자의 증거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굉장히 세상적 사고가 깊고,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 돌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성령체험과 말씀체험을 하지 못한 성도임을 잊어서 안됩니다.
정말 성령체험을 하고 말씀 체험을 하게 되면...자기를 철저히 버리게 됩니다.
히4:12절에는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좌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합니다.
그 예리한 검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합니다.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앞에 혼과 영은 영적인 문제이고...관절과 골수는 육적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간단히 말하면 영육을 찔러 쪼개는 수술을 하게 됨이 말씀이라는 겁니다.
말씀을 받으면 육신이 바뀝니다. 정말 바뀝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병든 육신이 고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런 간증은 수도 없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타락한 육신의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살게 되고
과거에 사로잡혀 살던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역사가 말씀에 있습니다.
말씀을 바로 받으면 영이 거듭난 사람이 됩니다.
영이 어떻게 거듭납니까? 성령으로 거듭납니다.
말씀을 받을 때 성령의 임재를 체함하여 영의 사람으로 살게 되는 겁니다.
말씀을 받으면 말씀이 내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함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말씀을 받아본 사람만이 알게 되는 비밀입니다.
이제 오늘은 30-32절의 마지막 말씀을 나누고
렘23장의 거짓 선지자에 관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30.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2.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0-32절까지는 세 번 내가 치리라...내가 치리라....내가 치리라...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을 치시겠다고 하십니까? 그들의 죄를 세 가지로 요약하여 말씀합니다.
1) 30절,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한 죄...
이들이 참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을 인용한다는 겁니다.
인용하기는 하는데...전체를 그대로 인용하여 전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들을 치시겠다고 하실까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인용을 하는데 자기의 필요에 따라 인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되게 하였다는 겁니다.
이단자들의 수법이 이런 거쟎아요...성경을 100% 다 무시하느냐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와 동일한 성경을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성경공부해보자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필요에 따라 인용을 하는데...
왜곡시켜 인용을 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이 되기도 하고...아버지 하나님이 있으니 어머니 하나님이 있다.
2) 31절, 혀를 함부로 놀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죄
그들은 거짓 예언에 권위를 더하기 위하여
이 예언의 말씀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이라고 하고 선포하는데
거짓 선지자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겁니다.
오늘날 설교자들이 범하기 쉬운 죄가 이런 죄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내가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집사님에게 이런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굉장히 신령해보이쟎아요...
이렇게 행하는 것이 혀를 함부로 놀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죄라는 겁니다.
3) 32절, 백성들을 미혹하게 하여 파멸에 이르게 한 죄 이다..
이들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서도록 말씀을 전하는게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획하신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도록 말씀을 전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이 전하는 말씀은 세상중심 인간중심 물질중심입니다.
믿음의 결국은 세상에서 인간이 잘되고 행복하고 잘사는 것이다는 것을 전하는 겁니다.
믿음의 결국은 영혼 구원인데...영혼 구원은 사라지고 인간성공, 행복, 기쁨만 난무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고민해봅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성공이 먼저가 아니라..행복과 기쁨이 먼저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앞으로 돌아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됨이 먼저입니다.
사람은 안되어 있는데...교회에 일은 맡았으니 교회가 어디로 갑니까? 산으로 가는 거지요
먼저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구원받은 성도가 되고...천국백성이 되어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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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많은 시간동안 선지자의 죄, 선지자의 반역함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의 죄를 종합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1) 30절,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한 죄...
이들이 참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을 인용한다는 겁니다.
인용하기는 하는데...전체를 그대로 인용하여 전한다면 무슨 문제를 삼겠습니까?
인용을 하는데 자기의 필요에 따라 인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되게 하였다는 겁니다.
이단자들의 수법이 이런 거쟎아요...성경을 100% 다 무시하느냐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와 동일한 성경을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성경공부하자고 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필요에 따라
인용을 하고 적용한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이 되기도 하고...
아버지 하나님이 있으니 어머니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2) 혀를 함부로 놀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죄
그들은 거짓 예언에 권위를 더하기 위하여
이 예언의 말씀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이라고 하고 선포하는데
거짓 선지자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겁니다.
오늘날 설교자들이 범하기 쉬운 죄가 이런 죄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내가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집사님에게 이런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굉장히 신령해보이쟎아요...
이렇게 행하는 것이 혀를 함부로 놀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죄라는 겁니다.
3) 32절, 백성들을 미혹하게 하여 파멸에 이르게 한 죄 이다..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확실한 차이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참 선지자는 자기 죄를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앞으로 나오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즐거움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는 평안과 행복과 기쁨을 외칩니다.
십자가를 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세상성공에 초점을 맞추도록 인도합니다.백성들을 미혹하게 하여 파멸에 이르게 한다...그 말씀인 겁니다
25절에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다고 합니다
이것이 백성들을 미혹하여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겁니다.
영혼이 잘되어야하고 영생에 이르게 해야 참 선지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오늘은 제사장들의 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제사장들이 무엇을 범하였다는 겁니까? 내 율법을 범하였다는 겁니다.
제사장의 사역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십니까?
3가지입니다. 1) 제사를 집례함이고, 2) 성전을 관리-제물관리 3) 율법을 가르침입니다.
제사도 율법을 따라서 제사를 드려야 하고
성전을 관리하고 제물을 관리함에도 율법에 따라서 관리를 해야 하고
율법을 가르침에도 율법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행하는 것이 제사장이고...히브리어로 코헨이고...
코헨이라는 뜻이 다리를 놓는 자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백성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과 백성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과 백성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이것이 제사장의 역할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은 율법에 우리말로 도통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1) 제사입니다.
제사는 다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레위기서에 기록된 제사가 몇 대제사입니까? 5대제사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번제-제물을 잡아 태워드리는 제사, 헌신제...예수그리스의 헌신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받은 자
소제-곡식을 빯아서 고운 가루로 드리는 제사, 예수그리스도는 순결하시고 정결하신 분
화목제-그 예수그리스도는 화목제물로 이땅에 오신분이시다.
속죄제-그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오신분이시다.
속건제-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내 마음대로 사용한 것에 대한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2) 성전관리입니다.
고린도전서 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2) 기록된 율법을 가르침입니다.
신31:9-13
9.또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10.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매 칠 년 끝 해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
11.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12.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13.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1) 말씀을 읽어준다.
2) 말씀을 가르친다
3)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한다
4) 이를 통하여 하나님 경외함을 배우게 한다.
그래서 율법을 가르친 사람들은 대부분이 제사장이었다는 겁니다.
70년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율법을 알고자 누구를 찾아갑니까? 에스라를 찾아갑니다.
에스라는 어떤 사람입니까? 학사 에스라로 알고 있는데...에스라는 제사장입니다.
이 에스라가 수문앞 광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는 겁니다.
느헤미야 12:1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제사장들은 스라야와 예레미야와 에스라와
에스라7:1,5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
율법을 범하게 되니까...그 다음에 성물을 더럽히고, 거룩함과 속된 것 구별이 안되고
부정함과 정함도 구별이 안되고, 결국 안식일까지 범하는 우를 범한 겁니다.
- 고관들의 죄 -
2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7.그 가운데에 그 고관들은 음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고관들이란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 정치인들, 높은 자리에서 나라를 이끄는 자들을 말합니다.
고관들의 죄가 무엇이다? 음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다...
이리를 동물원에서나 봤지 실제로 밖에서 본적 없습니다.
요즘은 버려진 들개들이 몰려다니면서 동물들을 헤친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일종에 개와 비슷한 모양을 가진게 이리입니다.
이리는 개보다 훨씬 사납고 먹이를 위하여 사냥을 할 때에는 무섭도록 잔인하기도 하답니다.
고관들이 이리같다는 것은 무섭고 잔인하다는 겁니다.
고관들은 누구를 위하여 세움을 입은 자들입니까?
당연히 백성들을 위하여 세움을 입은 자들입니다.
고관들이 백성 때문에 세움을 입었다면 백성의 이익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자기의 이익과 자기의 먹을 것을 위하여 이리같이 백성들을 헤친다는 겁니다.
다르게 표현을 해보면 물질에 눈이 멀어서
백성을 돕고 백성을 위하여 일해야 할 고관들이 백성들의 살을 먹고 피를 빤다는 겁니다.
자기의 고유의 사명을 잃어버리고 물질의 욕심에 빠져서 권력을 이용한다는 거지요.
이건 오늘날 많은 나라들의 위정자들이 가는 길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겁니다.
한 나라의 고관이 된다는 것은 이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게 됨이 누가 있기 때문입니까? 백성이 있기 때문이쟎아요?
그렇다면 당연히 백성을 위하여 일하고 쓰임받아야 하는데
백성의 살을 먹고 피를 빨아 자기의 부를 채우고자 한다면...사악한 것이지요...
예수님 시대에 가장 큰 죄인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세리입니다. 세리를 창녀보다 더 더러운 존재로 보고, 창녀보다 더 죄인이라고 본 겁니다.
왜 세리를 추악한 죄인으로 낙인 찍었을까요?
당시에 세리는 로마 정부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정부에서 세금을 거두라는 명령대로 거둘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세리는 그 자리를 이용하여...만약에 로마정부에서 땅 100평 가지고 있는 집에는
재산세를 1년에 1000만원 거두라..고 명이 내려왔다고 하면...
이 세리들은 1500만원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1000만원은 로마정부에 보내주고...자기가 500만원을 먹는 겁니다.
한마디로 세리는 로마정부의 종노릇하면서...백성들의 살을 먹고 피를 빠는 존재였던겁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창녀보다 더 악한 죄인을 세리라고 본 겁니다.
지금 고관들이 예수님 시대에 세리와 같은 죄를 범하고 있는 겁니다.
높은 뜻 숭의 교회 김동호목사님....부목사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
지금도 비슷하기는 하지만 옛날교회는 어떤 일정한 패턴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좀 성도의 숫자가 많아지고 재정이 괜찮아지면
교회 건물을 짓기 위하여 땅을 삽니다...땅을 사서 확보되면...건물을 짓습니다.
교회 건물을 짓고 또 성장하면 주차장을 위하여 또 땅을 삽니다.
주차장도 확보되면 교육관짓고 부활동산 사고...또 더 성장하면 기도원도 짖습니다.
교회..주차장...교육관...부활동산...이게 하나의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많은 교회들이 따라했다는 겁니다.
그때 김00목사님이 교회 장로님 중에 제일 힘이 있다고 하는 장로님을 찾아갔답니다.
교회에서 제일 힘이 있다고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은
그 장로님이 그 교회를 세우는데 일익을 감당하시고
거기다 그 교회에서 헌금을 가장 많이 하시는 장로님이셨답니다.
교회 전체의 예산 가운데 1/3을 하실만큼 헌금을 많이 하셨데요
찾아가서 교회가 추진 중에 있는 부활동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서
장로님 교회 부활동산은 아닙니다...
죽으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데
왜 교회가 땅을 사서 그 육신 한곳에 묻으실려고 하느냐 ...장로님이 한마디만 해주세요...
장로님이 반대하시면 담임 목사님이나 다른 장로님들도 쉽게 계속하겠다고 말하지 못하실겁니다.
왜냐하면 그 장로님이 그 교회에서 가장 헌금을 많이하시는 장로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때 그 장로님이 너무나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는 겁니다.
그 장로님 왈 목사님.... 교회에서 성도는 한가지만 잘해야 합니다.
헌금을 많이 하든지....말을 많이하든지...기도를 많이하든지...전도를 많이하든지...봉사를 많이하든지
이중에 한가지만 많이 해야하지....두가지 세가지 많이하면 교회가 시끄럽습니다.
나는 이중에 헌금만 많이하는 성도가 될랍니다...그러더라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이 너무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답니다.
아....이런 장로님 때문에 교회가 되고...
이 교회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구나...깨달았다는 겁니다.
제가 이 장로님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든지 아니면 헌금을 많이하든지 둘 중 하나만 많이 해야한다는 것이 교훈이 됩니다.
다 많이 하려고 하다보면 그것이 욕심이고 그것 때문에 잘하는 하나마저도 빛을 잃는다는 겁니다.
높은 자리에 오른 위정자들이 그렇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그 섬김과 봉사의 귀중함을 알고 그것만 잘 하든지
아니면 아예 그 자리를 내려놓고 물질의 부를 위하여 살든지...둘 중 하나만 하여야 한다는 겁니다.
백성을 위한 봉사, 섬김, 헌신이 더중요함을 안다면...
그들이 백성의 살을 먹고 피를 빠는 잘못된 길을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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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들의 죄 -
2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땅 백성은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고 /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으므로
백성들의 죄는 29절을 3가지로 나누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이 땅 백성은...일삼고...까지
2) 가난하고 .....압제하고
3) 나그네를.....학대하였으므로...
백성들의 죄중에 첫 번째가...
1)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는다는 겁니다.
포악이란 사납고 악한 자를 말합니다.
강탈이란 남의 물건이나 권리를 강제로 빼앗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강탈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떠났다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을 안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어요...그리고 절기도 지키고 안식일도 지키고 제사도 드립니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난 겁니다..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니...
그들의 마음에 뭐가 없다는 겁니까? 말씀이 없고, 율법이 없다는 겁니다.
구약시대의 말씀이 뭡니까? 말씀이 율법이고 율법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율법이라면, 모세오경입니다.
모세오경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자 율법입니다.
이 율법을 요약하고 또 요약하면 무엇이 된다? 십계명이 된다는 겁니다.
십계명중에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출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이웃의 집,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겁니다.
아내나 종들을 탐내지 말고...이웃의 소유도 탐내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유다나라의 마지막 때에....백성들이 사납고 악합니다...
그래서 이웃의 소유를 강제로 빼앗아 자기 것으로 삼는...강탈을 일삼는 다는 겁니다.
이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니 말씀이 없고 말씀이 없으니...
그들은 그 마음에 세상의 것으로 채우고자 하는 겁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게 있습니다...우리 마음에는 무엇인가 채워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주인이 되어 있으면 세상의 것이 주인되지 못합니다.
말씀이 내 마음에 주인되어 있으면 세상의 것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옛날에 찬양하는 찬양중에....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하여도 예수 떠난 심령은 사는 법이 없어요
예수님 내 주여 내 중심에 오소서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옵니다....
이렇게 되어지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나 말씀이 주인이 아니실 때에...
인간의 마음은 그릇에 비유하쟎아요....그러니까 그 마음이라는 그릇이 비어 있으니
얼마나 허무하고 허전합니까? 그래서 채우고자고 채우는 것이 세상의 것들이라는 겁니다.
세상의 것들로 마음에 채운다고 합시다.. 그것이 만족을 줍니까? 얼마나 채워야 만족이 있습니까?
저는 절대 만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릴 때 소원은 딱 두가지였습니다....먼저는 쌀밥 원없이 먹어보는 것이 하나이고...
두 번째가 떨어져서 기운 옷이 아니라...떨어진 옷이 아닌 깨끗한 옷을 입는게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쌀밥 마음껏 먹고 옷이 떨어지기는 고사하고 멀쩡해도 조금 식상하면 안입어요
떨어져서 안입는게 아니라 식상해서...때로는 유행이 지나서...구식이라서 안입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이 정도에 만족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배만 더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배의 물질을 가지면 만족할까요? 저는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오죽하면 인간이 하늘 꼭대기에 오르고자 바벨탑을 쌓았을까요?
하늘 꼭대기에 올라가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 만족은 어디서 옵니까? 내 마음에 하나님을 주인 삼을 때...
하나님이 내 마음에 임재하셔서 주인되시고...
말씀이 내 마음의 법이 되고 식일 될 때에 만족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한다..
권력이나 힘으로 약자를 강제로 누르는 것을 압제한다고 합니다.
가진 자가, 힘 있는 자들이 약한 자를 도와주고 돌보아 주라는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도와 주고 돌보아 주는게 아니라...
도리어...가진 힘으로...힘이 없는 약자들이 가진 것 까지 강탈하는 거지요
강탈만 하는게 아니라...압제합니다.
즉 재판이나 어떤 문제가 상호간에 발생 했을 때에...
힘 없는 사람들이 힘 있는 사람들에게 패하고 당하는 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쟎아요...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닙니다.
율법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율법의 바탕을 이르고 있고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까?
율법의 전체 핵심...뼈대...바탕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크게 두가지 사랑입니다...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한다.
나그네란...이스라엘 나라에 잠시 머무는 외국인을 말합니다.
레19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이들...나그네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보호를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선민사상 때문에 외국인을 무시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힘이없는 자들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부당하게 학대까지 하는 겁니다.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주인 삼지 않았다는 것이고...말씀이 없다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우리를 만드신 주 되신....하나님을 주인 삼지 않음이 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