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수감사절
2024년 10월 6일 일요일 (독일)
핵심 구절 20: “그러나 이들은 좋은 땅에 뿌려진 자들이라 말씀을 듣고 받아 열매를 맺으니 어떤 것은 삼십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백 배나 되느니라.”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 감사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농사의 열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농부가 소수입니다.
우리는 또한 더 넓은 의미에서 우리의 열매를 놓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진료실, 직장, 또는 학업에서 우리가 일한 결과 등이 우리 일의 열매의 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 가족과 친척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늘어난 가족과 친척도 우리 삶의 또 다른 열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우리의 영적 열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적 농부이고 영적인 열매를 거두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열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 본문으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많은 열매를 드리기 위한 비결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1. 씨 뿌리는 자의 비유 (1-9)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다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군중이 그 주위에 모였다...” (1).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기 때문에 예수님은 호숫가에 있는 배를 타고 말씀을 가르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사경회 같았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왔을까요? 대부분의 청중은 가난했기 때문에 배가 고팠습니다. 또는 일부는 몸이 아파서 치유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을까요? 2절은 “(예수님이) 그들에게 비유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다른 도움이 필요했을 텐데도 예수님은 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에겐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식량, 치유 또는 사회 정의와 같은 것을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가장 긴급한 필요를 가장 잘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역 초기에 사십 일 밤낮을 먹지 못하고 마귀의 유혹을 받았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마 4:4).
예수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에게 용서와 영생, 천국을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에게 올바른 삶의 진정한 의미와 방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군중에게 씨앗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농부가 씨앗을 뿌렸습니다. 씨앗 몇 알이 길에 떨어집니다. 하지만 그 길은 사람들의 발길로 인해 콘크리트처럼 딱딱합니다. 따라서 씨앗은 흙을 뚫고 땅에 들어가 뿌리를 내릴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새들이 와서 씨앗을 쪼아 먹습니다. 그래서 씨앗은 흔적도 남지 않았습니다.
어떤 씨앗은 얇은 흙층이 있는 바위 위에 떨어졌습니다. 씨앗은 싹을 틔우지만, 햇볕에 타면서 씨앗은 금방 말라버립니다.
씨앗 중 일부는 가시덤불 아래에 떨어집니다. 씨앗은 싹이 트고 조금 자랍니다. 하지만 가시덤불이 씨앗의 싹을 질식시킵니다.
그런데 어떤 씨앗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청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비유의 뜻 (10-20)
무리들은 사경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며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나는 바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설교를 잘 이해했다. 설교는 매우 흥미로웠다. 이제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식량을 사기 위해 내 일에 집중해야겠다.”
우리도 이 예배가 끝난 후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스테판의 설교를 잘 이해했다. 그리고 나는 이 분문 설교는 수없이 들었다, 그러니 더 이상 이 말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제 내 일에 집중해야겠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설교가 끝난 후 예수님 곁에 남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하신 설교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매우 느립니다. 말씀하신 비유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고 싶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남아 예수님의 설명을 듣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몇 사람을 보고 기뻐하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너희에게는 주어졌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비유로 말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귀로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회개하고 용서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10:11).
이 구절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말해줍니다:
첫 번째 조건은 겸손하고 기꺼이 배우려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의 설교가 끝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나갔지만,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비유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설명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비유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가르침을 자신들에게 적용하고 실천에 옮기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모르는 것을 묻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고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들은 예수님께 예수님 말씀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여 더 알려고 하지 않고 또 예수님 말씀을 실천에 옮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체험하기 위한 두 번째 전제 조건은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11절에서 예수님은 밖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만이 비유의 의미를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삶에서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믿고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을 뜻입니다. 그럴때 우리는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적으로 잘 성장하여 이 시대에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밖에 머물러 있지 말고 예수님과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비유 설명을 들어봅시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린다"(14)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씨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우리도 또한 씨를 뿌리는 사람입니다.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토양은 우리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최고의 품질을 가진 씨앗입니다.
농부가 큰 수확을 확신하며 씨를 뿌리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큰 수확을 기대하며 우리 마음에 하나님 말씀을 심으십니다.
그러나 모든 농부는 씨앗이 떨어진 토양의 상태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의 수확량도 우리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람 중에는 마음이 딱딱한 길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뿌려지고 그들이 들으면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느니라”(15절)라고 말씀하십니다.
길의 땅은 사람들이 밟아서 단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씨앗이 땅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그 위에 남아 있어 새들이 쉽게 찾아서 주워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딱딱해지나요?
영적인 소망이 없을 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딱딱해집니다. 또는: 우리가 무언가로 마음이 분주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딱딱해집니다.
어떻게 하면 딱딱한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영적인 소망을 일깨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되, 말씀이 우리 마음 깊이 뿌리박도록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에 대한 좋은 마음밭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우리에게 얇은 흙으로 덮인 바위와 같은 마음밭에 대해 설명해 주십니다: “바위 위에 뿌려진 자도 이와 같으니, 말씀을 들으면 즉시 기쁨으로 받되 뿌리가 없어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말라 죽느니라"(16-17).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굳게 믿음으로 어떤 어려움이 와도 믿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큰 나무를 겨울에 따뜻한 방에 이식할 수는 없습니다. 밖에서 있으면서 추위를 견뎌야 합니다. 하지만 봄이 오면 이 나무는 물과 영양분을 공급받아 성장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린 사람은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넘치는 기쁨과 힘을 얻고, 성장하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 안에 머물러 있으면 많은 은혜와 영양공급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성장과 결실을 위한 최고의 양분입니다. 주님 말씀은 우리에게 영생을 위한 지혜와 힘을 줍니다. 또 많은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
예수님은 가시떨기 땅에 떨어진 씨앗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또 어떤 이들은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그들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속이는 재물과 기타 모든 욕심이 말씀을 침투하여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느니라” 과일”(18-19).
예수님은 영적 가시의 첫 번째 예로 염려를 언급하셨습니다.
우리는 왜 염려합니까? 물론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어떤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염려하는 진짜 원인은 문제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불신에 있습니다. 염려할 때 우리는 평소보다 3~4배의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하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힘과 마음이 없습니다. 물론 문제가 있으면 지혜롭게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쓸데없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악의 상황이라면 우리는 천국에 조금 더 빨리 갈 뿐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완벽한 인도를 굳게 신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적 가시의 두 번째 예로 재물을 언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재물을 우리를 “아주 잘 속이는 재물”이라고 부릅니다. 재물이나 돈은 우리를 속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모든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돈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많은 소원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돈이 있다고 좋은 아내나 남편을 돈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재물은 우리가 잘못된 기대를 갖게 하고 하나님 대신 돈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영적 가시의 세 번째 예로 정욕을 언급하셨습니다. 우리는 성적 정욕이나 물질적인 욕망에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제 좋은 땅에 뿌려진 씨가 어떻게 되었는지 봅시다.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열매 맺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열매를 맺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을 믿음의 삼위일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많은 열매를 주실 것입니다. 이 삼위일체는 열매 맺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면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사실이다. 밀알은 30번, 60번, 100번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적어도 3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내적인 열매와 외적인 열매를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반드시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놀라울 정도로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잘 알려진 성서 연구생들을 우리가 한 일의 결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공부를 통해 뿌린 하나님의 말씀은 놀라운 일을 합니다.
나는 현재 에스더의 수첩에서 이전 성경 공부한 학생들의 이름을 베껴쓰고 있습니다. 나는 에스더의 1988년 수첩에서 아래와 같은 명단을 옮겨썼습니다. 당시에 모든 학생들이 이 성경공부를 통해 즉시 신자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후에 신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 배우자, 친구들을 신앙으로 인도했을 것입니다.
나는 에스더의 달력 책을 바탕으로 내가 만든 성경 학생 목록에 각 선교 동역자들에게 보내주고 이름이 빠진 사람을 보충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예를 들어 1988년의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레나테 부흐홀츠: Eva, Anja, Detlef, Petra, Eva-Maria
김 요셉: 마이클 산더, 만프레드, 에크차드, 프랑크, 야리스
김 파울라: 레나테, 마이클, 모니카, 스테판, 토마스 R, 안야
최 에스더: 마이클스 후버, 알렉산더, 클라우디아, 발터스
최 스데반: 하르트무트, 스테판, 볼프
하르트무트 로제: 디억, 프랭크
황 토마스: 카린, 하랄드, 토마스 브리
오 사라: 클라우디아
그런데 선교 동역자들은 그당시 성경공부하던 학생들 이름을 다 잊어서 보충할 수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1988년에 우리와 성경 공부하던 학생들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계속 일하십니다.
한 예로, Grace Sickelmann선교사님은 1990년대에 Irene 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 후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이레네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약 2년 전 그녀는 믿는 자녀들과 함께 우리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을 통하여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영적인 열매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유형은 영적인 자녀입니다. 이는 우리 지신의 자녀들과 다른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유형은 우리의 성품이 바뀌는 것, 즉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은 성령의 열매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순결”이라고 부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이 열매를 요약합니다.
우리는 우리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우리의 성품이 어떻게 변화되고 좋은 열매를 맺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나은 성품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우리의 성품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년에 하나님께 더 변화된 우리의 성품을 드리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변화된 성품이라는 내적 열매와 다른 사람을 예수님 믿게하는 외적인 열매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할 때 이 두 가지 열매를 모두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믿고, 실천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자신과 다른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