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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이유도 없이 디프레스(depress) 된 경험이 있습니까? 식당이 문 닫아(정기휴일) 셀프 상차림으로 혼밥을 했을 뿐, 루틴대로 보낸 평범한 수요일입니다. 치료 차원에서 3시간 이상 잠도 잤고 스퀘트도 다시 시작했으니 좋아져라! 좋아져라! 좋아져라! 미레에셋에서 DM을 보내와 행여나 하고 문의해 보았는데, 역시나 퇴직 연금은 회사가 동의해서 처리해주는 기존 방식입니다. 염병, 괜히 전화해서 기분만 상했습니다. 내가 5년 전 퇴직금을 못 받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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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대퇴부 저림 현상이 다시 나타나 원인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한동안 잠잠하던 노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화들짝 놀란 가운데, 우리 딸내미들도 아비 전화에 똑같은 반응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머니를 싫어해서 안 받는 것이 아니듯, 에예공도 아비가 싫어서 문자를 씹거나 부재 중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지금 내 기분처럼 어머니께서는 속상하고 디프레스 되어 있을 것입니다.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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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바디우와 슬로보예 지젝이 절친이었더라고요. 어머니까지 셋 다 1937(89세)년 생 소띠입니다. 두 달 동안 바디우를 붙잡고 있는데 독학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면서 독일어 불어까지는 못하더라도, 영어의 문턱 만이라도 반드시 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디우도 영미 철학자가 아닌 대륙의 철학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 합니다. 모로코 출신- 프랑스로 이주한 바디우는 6.8운동 이후 알튀세르와 갈라선 좌파 지식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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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마르크스-하이데거-니케르-샤르트르의 철학과 비슷하다고 보지만, 필자는 무엇이 어떻게 닮았는 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서 다소 답답함을 가지고 바디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이데거와 흡사한 '존재와 사건'은 플라톤의 '주체' 개념과 '합리주의'를 되살리려는 '진리 담론'입니다. 물론 그냥 되살리는 건 아니고 비판적으로 각색 수정했기 때문에 알랭 바다우가 포스트모던 성향이 있다고 보고 "존재와 사건은 텍스트를 외워야 한다"고 까지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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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것처럼 진리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인식 자와 해석 자'(나)로부터 형성되기 때문에 진리는 '사건'으로써 나타납니다. 또한 '사건'은 시간성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니 여기에도 자본주의적 랑그에 저항하는 니체적 '생성'의 사유가 나타난다고 하더이다. 틈-공백-균열-공 집합이 만든 '주체' 탄생! 지젝 vs 바디우의 존재 대결이 흥미진진합니다. 저들은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주체'에 어떻게 저항하며 나타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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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22화> 입니다. "전봉준은 추포했습니까?(민비)" "저들을 다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고종)" 산넘고 물건너 동비 토벌에 한창입니다. "동비가 민보군도 몰라" 민보군-조선군-왜놈까지 동비 토벌에 혈안이 났습니다. "이놈이 이 마을 집강이라는데요...동비 오야봉!(홍가)" 고부 집강소입니다. "그간 고생 많으셨어라...시방 여긴 위험한 게 다들 피하셔라(유월이 명심에게)" "동비에게 부역한 자들을 포박해!" "피할 때도 없고라...나는 집강소 지키겠구만이라(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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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아 미안하다(백가 사위)" "어른이 말하면 들어 쳐벅어야제...종년이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께 집안 꼴이 이리된 것 아니여!...이년이 유월이라고 고부 집강소 동비년인디 아주 악질동비구만이라(백가)" "백가야! 이놈아! 니가 사람 새끼냐! 나가 아침마다 정한수 떠 놓고 빌 것이여! 벼락을 맞아 디져부러라고!(백가 처)" "유월이 어딨어" "좀 전에 민보군이 끌고 갔구만이라(백가)" 최행수의 관이 상여 없이 송객주 부녀의 배웅을 받으며 산에 묻혔습니다. 빨강 지방이 왜 이리 슬픈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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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 생전에 친할머니 장례식 때 지방 쓰는 걸 본적이 있습니다. 빨강 천에 계란 흰 자위로 글씨를 쓰고 밀가루를 뿌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 훈련도감 종사관 최 덕기" "이 누추한 곳엔 웬일이십니까?(자인이 다케다에게)" "군량미를 제공하세요(오니)" "이번 일이 잘되면 객주님께도 좋은 일이 많을 것입니다...자세한 건 오니상과 상의 하세요!(다케다)" "이강의 소식을 아십니까?(자인이 오니에게)" "죽었거나 곧 죽겠죠...뭐든 새로 만들려면 부셔야 하니까(오니)"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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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현이는 뭐랴 하디...이문이 솔찮을 것인디...연병(송봉길)" "조선 사람들 피묻은 돈 관에 가득 채워둘 텐게...아직은 죽들 말어(자인이 아비에게)" "동비다!" 왜놈들이 동비 잔당을 추격하는 가운데 홍가가 유월을 보았고 구해줍니다. "없다고 할라고 했는디 염병!(홍가)" 홍가가 칼맞고 죽는데 슬퍼할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벌써 죽으면 어떡하라고(오니)" 고부입니다. "천우협의 대표 오니라고 합니다...아부지 여전하시네요...인생이 지루하지 않으시겠어요...이 자들이 동비입니까...그렇게나 죽였는데 아직도 고부에 양반 나부랭이들이 남아있다니..탕! 양반아닌 사람은 떠나세요(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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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는 어디 계십니까?" "백 집강!...오냐! 더는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느니라...황진사가 의병으로...궁여지책으로 집강소에 맡겨졌네(사또 박원명))" "정녕 왜놈들의 앞잡이가 되신 것입니까?(명심)" "일본군 만세!(백가)" "내가 언젠가 일본놈 세상 될 줄 알았당게...나가 왜 너를 일본으로 유학을 보냈까니(백가)" "우금티에서 20.000명이 죽고 일본인은 한명도 안 죽은 게 사실인가?(사위)" "모두 사실입니다(이현)" "그라믄 이강이도 죽은 기여(이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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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일이냐!...이 자는 동비가 아니다 가자!(이규태)" 이강이 관군에게 발견돼 죽다 살아났습니다. "나는 희망이 생기더란 말이더라...도채비가 되어 돌아올 거라고 말이여! 시방부터 왜놈들 세상인게..나라는 진즉에 망해부렀구만... 너같은 똘똘한 놈들이 다른 나라 편에 서면, 그 순간에 망한 것이여! ...나라 이전에 사람이고 사람은 실속이 제일이여!(백가)" "아버지 선견지명을 누가 당합니까?(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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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 대장 이규태의 초점 없는 눈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모양입니다. "참말로 대장 맞냐!(그려...) 이 잡것...(버들) "장군이 패잔병들 하고 전투를 벌였당게(버들이 해승에게)" "수상한 놈들이 보이면 무조건 잡아라! 동비의 패잔병일 것이다" "순창이 자네 고향이라고! 그라믄 숨을 만 한데도 많이 알고 있겠구만(최경선이 김접장에게)" "개남이는 무사한가?(전봉준)" "예, 남원에서 거병을 할 거라고 했습니다(김접장)" 남원입니다. "녹두가 곧 남원으로 올 것이여! 다시 의기투합 할 것이여(김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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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게 먹었응게 북망산 구경이나 가볼까(김개남)" 탕! 김개남이 최후를 맞습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누구든 전봉준의 소재를 알려주면 후한 상을 줄 것이오!" "엄살은...역시 자넨 재미가 없어...골려 먹는 재미는 이강이 놈이 최고인데...우린 비록 실패했어도 틀리진 않았어(전봉준이 최경선에게)" "이강이 이강이 같은 사람이 있는 한 꼭 그리 될 것이네(전봉준)" "장군!" 최경선과 전봉준이 있는 곳을 어찌 알고 민보군이 들이 닥친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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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 장군 말이여! 순천에서 붙잡히셨디아(버들)" "그럴 리가 없어...헛소리여!(이강)" "밀고한 놈이 누구여! 별동대 김접장 김경천이여(버들)" 누가 포로로 잡혔다고요(오니)" "황석주는 고개를 들라!" "어서 죽여라! (황석주)" "참 묘한 데서 뵙는 군요...많이 놀라신 모양이군요...진사나리께서 의병이 될 줄은...(이현)" "죽기 전에 너를 만나면 미안하다 사죄를 하려고 했다...허나 지금 보니...영관 놈이 널 오니라 부르더구나...그래 오니! 바로 그게 너다...(황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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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그렇게 만든 게 바로 너 잖아...그러니까 사죄를 해! 그럼 살려 줄수도 있다니까...내가 조선을 어떻게 일으키는 지 똑쪽히 지켜봐(이현)" "매국노의 목소리조차 듣는 게 싫으니...너에 대한 사죄는 저승에서 하마 어서 죽여라!(황진사)" "너희같은 양반 놈들이 망쳐버린 나라 그래서 몸부림치는 나라 그게 조선이야(이현)" "천만에 나라가 망할 땐... 조선은 이미 망한 것이고 바로 너와 네가 망국의 원흉인 것이다...(닥쳐!) 백이현! 내 너에 대한 사죄는 저승에서 하마. 죽여라!(황진사)"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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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현이 몇 번이나 땅이 꺼져라 쉬는 한 숨은 패배감일까요? 어쩔 수 없다는 건 걸까요? "기절만 시켰으니 걱정말어...가까이 오덜 많어...이녁 맘은 아는디...그런게 가까이 오덜 말어...아부지 목숨 값 대신 돈이나 좀 가져갈라고(어디다 쓰려고!) 군자금...집강소가 아작이 났는디 울 엄니라고 무사할라고(이강)" "행랑채로 나가봐! 유월 아제 모셔왔어(자인)" "이강아! " 전봉준이 갇힌 옥으로 오니가 면회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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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입을 의복을 가져왔습니다...한양으로 가 재판을 받을 것입니다(이현)" "어머니...뒷산서 시방 병동대원 들이 기다리고 있구만이라...엄니...나가 할일이 조까 남았어(뭣을 할라고)내 선물은 이현이 눈감겨 줄라네(이강)"
2.
아무 일도 없었다. 정기휴일인 식당 대신 셀프 상차림으로 혼밥을 했고, 루틴대로 하루를 보냈으며, 잠도 잤고 스쿼트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도 디프레스는 왔다. 이유가 없어서 더 곤란한 상태. 전화 한 통, 퇴직연금 문의 이 사소한 현실들이 존재의 바닥을 건드릴 때 기분은 논리 없이 가라앉는다. 이 지점에서 이 글은 이미 철학적이다. 디프레스는 감정이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공백의 체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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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전화, 그리고 주체의 위치 바뀜이다. 노모의 전화에 화들짝 놀라는 순간, 화자는 자신이 딸들에게 똑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받지 않는 전화 = 거절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음임을 알면서도 전화 건 쪽의 마음은 상처받는다. “어쩌라고?” 이 냉정한 독백은 무책임이 아니라 주체가 감당 가능한 세계의 한계선이다. 바디우 식으로 말하자면 여기엔 아직 사건이 오지 않았다. 다만 사건이 발생할 틈이 생겼을 뿐이다. 진리는 ‘사건이 일어난 뒤’에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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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생 알랭 바디우와 슬라보예 지젝, 대륙철학의 두 축은 진리를 발견하지 않고 생성시킨다. 진리는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식자와 해석자의 개입, 즉 ‘나’가 개입할 때 비로소 사건으로 출현한다. 공백-균열-공집합-주체의 탄생 이 사유는 니체의 생성, 하이데거의 존재, 마르크스의 구조를 통과해 자본주의적 랑그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진다. 디프레스는 이 관점에서 병리라기보다 아직 사건화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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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의 세계에는 더 이상 영웅적 낭만이 없다. 우금티 이후, 동학은 패배했고 나라는 무너졌으며 살아남은 자들은 흩어졌다. 유월은 집강소를 지키다 끌려가고, 백가는 일본 만세를 외치며 자신의 생존을 합리화한다. “나라 이전에 사람이고, 사람은 실속이 제일이여!” 이 말은 비겁하지만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논리다. 자본주의 주체의 탄생 선언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전봉준은 말한다. “이강이 같은 사람이 있는 한꼭 그리 될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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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은 이념이 아니라 사건에 충실한 주체다. 패배를 알면서도 눈을 감기 위해 움직이고, 끝내 자신의 선물을 준비한다. 죽음 앞에서만 드러나는 진리, 김개남의 죽음, 황진사의 최후, 전봉준의 체포 여기서 진리는 승리에 있지 않다. 바디우의 말처럼 진리는 사건 이후에도 끝까지 남는 충실성이다. 황진사는 말한다. “너에 대한 사죄는 저승에서 하마.” 이 장면은 역사적 옳고 그름을 넘어 존엄의 선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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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가라앉는 날, 몸이 저리고, 전화가 버겁고, 세상이 귀찮아질 때 그 상태는 실패가 아니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사건 이전의 공백이다. <녹두꽃 22화>는 말한다. 패배 이후에도 주체는 탄생할 수 있으며, 존엄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로 남는다고. 그래서 디프레스는 끝이 아니라 질문이다. 그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주체는 이미 태어났다. 이제, 나는 어떤 사건에 충실할 것인가?
2025.12.18.thu.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