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본 라쇼몽 효과>
영화 "라쇼몽 "은 일본 근대문학 작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竜之介)’의 단편소설 "덤불숲(薮の中 .1921)"과 "라쇼몽(羅生門.1915)"을 하나로 각색해 만들어진 영화이다.
당시 '아쿠타가와'의 ‘라쇼몽’이란 작품은 워낙 유명세를 타고 있었기에 이후 ‘라쇼몽’을 제목으로 한 이 작품은 영화계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큰 파급력을 미쳤다.
영화의 핵심은, 객관적 사실에 대해 사람들이 각자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인한 왜곡된 인지를 이유로, 이 영화로 인한 ‘라쇼몽 효과’나 ‘라쇼몽 기법’이란 말들은 지금도 심리학이나 영화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이 되고있다.
‘라쇼몽(羅生門)'은 옛 도성의 성문으로 헤이안시대(794~1185) 폐허가 된 곳으로 지금의 남대문과 같은 곳으로, 영화 ‘라쇼몽'에서는 내용부터가 시각에 따라서 시시각각 바뀌는 인간의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영화에 앞서 우선 '소설'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비가내리는 저녁 마을의 기근이 들어 얼마 전 주인집에서 쫓겨난 어느 하인이, 비도 피할 겸, 하룻밤을 지세우고 자신의 거처를 생각하려고 '라쇼몽 누각' 윗층으로 올라간다. 그곳엔 많은 시체가 쌓여 있었고, 한 노파가 전염병으로 죽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뽑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노파는 죽은 여자는 생계를 위해 뱀을 말려 건어물로 팔다가 전염병으로 죽은 양심없는 사람이었으니 자신도 살기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하인은, 시체를 두고 이런 짓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노파의 말을 듣고나서 급히 노파의 옷을 벗겨 들고 도망쳐 버린다.
이런 내용에서 우리는 이 역시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질문을 받게된다.
영화는 이러한 '라쇼몽'이 갖는 강력한 메시지에 전혀 다른 내용의 ‘덤불숲’을 붙여 새로운 영화의 한 장르로 거듭 탄생된 것으로, 영화의 줄거리는 조금 다르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라쇼몽 누각의 배경은 같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폭우를 피해 라쇼몽에 모인 세 사람이 무사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이어지는 내용은 현장을 목격한 '승려'와 '나뭇꾼'과 '행인'의 목격 진술과 산길을 가다가 사건에 부딪힌 '도적'과 '무사'와 '무사아내'의 상반되는 진술이 이어진다.
또한, 영화는 과거 사건을 이야기하는 '플래시백' 기법으로 진행되어 가는데, 여기서 영화가 흑백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어찌됐든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당시 칼라 기술이 없었던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플래시백 효과를 더욱 높여주는 또 다른 장치가 아닐었을까란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의 내용은, 사무라이 부부가 말을 타고 숲속을 지나가다 산적을 만나고, 산적이 무사의 아내를 범하고, 무사가 죽는 살인사건의 발생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사건의 전말을 증언하지만, '각자의 이기적인 진술'로 끝내 진상은 밝혀지지 않은 채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사건의 진실이 과연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각 인물마다 왜 진술이 모두 다른지에 대한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면, 진실은 하나일지라도 얼마든지 사람마다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해석하는 데에 차이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원리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특히, 사람의 '이기심'이 진실을 왜곡하게 만든다는 것에 무게를 두었을 것이라 볼 수 있다.
영화의 줄거리를 통해 인물의 진술을 잠시 살펴보겠다.
'도적은', 무사를 죽일 마음이 없었지만 무사의 아내가 두 남자를 따를 수 없다는 말에 멋지게 결투를 하다 무사를 죽였다고 증언하며 자신의 강인한 남성성을 강조하고 있다.
'무사의 아내'는 도적이 자신을 겁탈한 후 그냥 가버렸다며 남편에게 돌아가려 했지만 겁탈당한 자신을 경멸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남편에게 차라리 죽여 달라며 단검을 내민 후 기절했다고 진술한다.
그리고 '죽은 남편인 무사'는 무당의 몸을 빌려 빙의되어 진술을 하는데,
아내가 도적에게 남편인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청했다고 진술한다.
자신의 죽음은 아내의 말을 듣고 땅에 떨어진 아내의 단검으로 스스로 자결했다고 진술한다.
그리고 사건을 목격한 '나무꾼'과 스님과 행인'은 또 각기 다른 진술을 한다.
이 영화의 특징은, 입체적인 '플래시백'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여러 가지의 시각으로 재현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이 기법은 거짓된 플래시백으로 관객들에게 진실의 실체를 가리고, 또 변형시켜 전달하는 효과를 지닌다는 점에서 후대 영화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영화가 낳은 이와 같은 기법은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 또는 '라쇼몽 기법'인데, 이것이 현실에서 적용될 때는 '라쇼몽 현상'이라고도 부른다. 때문에 이 용어들은 '기억의 주관성'에 관한 이론으로 정의되고 있다.
두 작품을 혼합해 ‘구로사와 아키라(黒沢日)’와 ‘하시모토 시노부(橋本忍)’가 공동으로 쓴 시나리오에 감탄하며, 짧지만 강력한 울림, 그리고 ‘라쇼몽 효과’란 말까지 탄생시킨 이 작품이 영화사에 놀라운 업적을 남기게 된 것에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두 작품으로 탄생된 ‘라쇼몽’이란 영화내용을 주관하고 있는 주관적 사고라는 ‘라쇼몽 효과’에 대해 알아보았다. 각기 다른 소설 '라쇼몽'과 '덤불속'도 영화와 함께 감상할 것을 추천드리며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