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기 년호”(檀紀年號 )를 부활시키자
[월간 한배달 단기4335(2002)년 2월호-한배달 바루기운동본부]
뭇 생물에 나이와 역사가 있듯이 나라에도 역사와 나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나이는 몇 살이냐’고 물으면 선뜻 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마침내 자기 나라의 나이도 제대로 모르는 민족이 되었다.
한 나라의 나이는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헤아려야 되는 것일까? 군주제도 아래서는 나라의 임금이 자리에 오르면 년호를 정하고 새 임금이 즉위한 해를 원년으로 삼아 역사를 헤아려 왔다.
종교 국가에서는 종교의 기원에 바탕을 두고 년호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유럽 등 서구 기독교 국가에서는 예수 탄생을 기원으로 하는 이른바 서력기원을 채택하고 있으며, 태국 등의 불교 국가들은 싯달타의 탄생을 기원으로 삼은 불기(佛紀)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고구려 시대에 이미 년호를 사용했으며 백제와 신라도 쓰임이 일부 확인되었다. 세월이 흘러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년호를 ‘광무’(光武)와 ‘융희’(隆熙) 로 건원(建元)하고 황제라 일컬었지만 일제에 병탄 당한 뒤에는 일왕의 년호인 ‘대정’(大正)과 ‘소화’(昭和)를 쓰도록 강요당했다.
유구한 역사 흐름 속에서 주체적인 년호를 사용했던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가 주체적인 년호를 사용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소중화의 사대주의와 제국주의로 인해 주변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굴종과 변방소국으로 전락했던 서글픈 역사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정 하에서 서기 년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대한민국이 수립되자 정부는 ‘년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4호)을 제정하여 단기를 공식 년호로 채택했다. 그리고 단기 년호를 13년간 별 무리 없이 사용 해 왔다.
그러나 5, 16 군사 혁명 뒤 군사정부는 단기 4295년 1월 1일을 기해 단기 년호를 폐지하고, 우리 나이보다 무려 2333년이나 늦은 서기를 채택하여 이르니 자신의 역사적 나이까지 속이는 못난 민족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제 경제적 위상이나 국제적 한국의 위상을 떠나 당당하고 엄연한 독립국으로써 우리의 년호를 되찾을 때가 되었다. 년호를 복원하는 것은 곧 역사를 복원하는 바탕이 됨을 뜻한다.
개천절 행사에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참석하지 않는 나라, 스스로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나라가 아니고 무엇인가? 특히 주변국 일본의 전통적 역사왜곡을 탓하기 이전에 또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을 위한 동북공정에 대한 분노와 규탄 이전에 우리 내부의 주체적인 든든한 내세움부터 바로 세울 일이다.
단기 이전에 환국(桓國)을 기준한 환국기원의 ‘환기’(桓紀)가 있고, 배달국 기준의 ‘신시 기원’이 있다. 고조선을 기준한 단기는 우리 역사에서 더 이상 물러 설 수 없는 최소한의 선인 것이다.
그 단기만이라도 반드시 부활시켜야 한다. 오직 단기가 아닌 단기와 서기의 병행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단기4336(2003)년 개천절 등,
우리 역사 나이인 단기(檀紀) 년호(年號)를 살리자!!!
첫댓글 우리나라의 나이가 들쭉날쭉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청나라에서 귀화했다거나, 원나라에서 귀화했다거나 하는 귀화했다는 말을 쓸 때를 생각 해 보면 귀화 하면 우리민족이 된다는 사실도 한번 생각 해 보자.
아...우리나라...단기로 바뀌는 그날이 하루라도 빨리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조금 더 신중하기를 바랍니다! 원래 연호라는 것은 단기, 서기 이런 것이 아니고 임금별로 다르게 썼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연호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둘째, 우리 역사에서 단기를 언제 우리 기년으로 사용했었나요? 대한제국은 광무,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을 썼지요? 오직 광복 후 1948년~1961년까지만 사용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에서 단군왕검이 국조라고 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그것이 맞는 얘기인지부터 톰 생각해보세요. 고조선의 건국 이야기인 단군사화는 삼국유사, 제왕운게, 세종실록 등에 실려 있는데,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져 있을 뿐, 단군이 개천한 사람도 아니고, 국조도 아니고 환웅의 신시지요!
일봉선생인줄 알고 들어 왔더니, 일월선사 님이군요.
하긴 일봉선생은 한배달 총무를 지내셨으니 회장이신 치우천왕께서 댓글을 다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10년전 작고하신 일봉선생의 글을 보나하고 설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