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재년도 |
92 이전 |
992 |
1993 |
1994 |
1995 |
1996 |
92-96 식재사업 소계 |
계 |
면적(ha) |
32 |
10 |
75 |
40 |
40 |
31 |
196 |
228 |
수량(천본(本)) |
62 |
30 |
225 |
120 |
120 |
93 |
588 |
650 |
자료 : 원주시, 원주옻의 지역특화산업화방안연구 1999
<표 : 원주지역 옻나무 재배현황>
구분 |
1991 이전 |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1997 |
면적(ha) |
80 |
9 |
43 |
34 |
33 |
29 |
32 |
수량(本) |
237,450 |
21,940 |
104,370 |
85,690 |
86,230 |
73,910 |
62,000 |
자료 : 원주시, 원주옻의 지역특화산업화방안연구 1999
2) 옻칠 원료
가) 생칠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 수액 원액을 ‘생칠’ 혹은 ‘생옻’이라고 한다.
① 생칠 채취 방법
옻나무를 심은 지 6-8년이 경과하면 옻나무 흉고 직경이 8-10cm 정도 자라게 되고 이 때 채칠이 가능하게 된다. 흉고직경이 15cm 이상되면 수피가 두꺼워지고 단단해져 홈칼로 수피에 채취홈을 내기가 힘들어지고 특히 외피가 발달하기 때문에 채칠시 칠액이 수피에 묻어 회수하지 못하는 양이 늘어나 수확에 불리하게 된다. 채칠방법에는 살소법(殺搔法), 화칠법(火漆法), 양생법(養生法)의 세 가지가 주로 사용된다.
ⅰ) 살소법
일본에서 사용하는 방법으로 살목채취법이라고도 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졌으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용된는 채칠 방법이다. 이는 나무 줄기에 수평으로 채취홈을 내어 칠액을 채취하고 채칠이 끝나면 나무를 벌채하는 방법이다. 살소법 채칠의 시기는 6월 중순부터 9월말까지이며, 나무의 트기는 흉고(가슴높이) 직경이 8-10cm 정도가 적절하다. 채취 대상 나무의 크기와 식재 여건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전문채칠자가 1년에 채취할 수 있는 본수는 약 600본 정도이며, 채취할 대상 나무를 4등분하여 하루에 150본씩 돌아가면서 칠액을 채취하며 5일째 되는 날 처음 채취한 나무에서 다시 채취하게 된다. 살소법에서 옻나무 줄기에 채취홈을 내는 양식은 나무의 크기에 따라 한배긁기, 두배긁기, 삼배긁기로 구분되는데 일반적으로 두배긁기를 주로 한다. 한배긁기는 나무직경이 아주 가는 경우에 하는 방법으로 채취홈을 윗쪽으로 일렬로 붙여서 낸다. 두배긁기는 보다 직경이 굵은 나무에 적용되며 2-3cm 폭으로 수액이 이동할 통로를 남겨두고 줄기 안팎에 채취홈을 두줄로 내며, 삼배글기는 세 줄로 채취홈을 내는 방법을 말한다.
ⅱ) 화칠법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칠액 채취방법으로 현재는 지리산 인근의 남원, 마천지역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방법은 먼저 직경이 3-4cm 크기의 옻나무 가지를 1m 내외의 길이로 자른다. 이 가지를 30보 정도로 해서 한다발로 묶고 물에 1주일 정도 세워두어 수분을 충분히 흡수하도록 한다. 그 다음 수분을 충흡수한 가지를 5-6cm 간격으로 홈을 낸 후 열을 가하여 홈에 배어나온 칠액을 채취한다. 이렇게 채취된 옻액을 ‘화칠’이라 하며, 화칠법으로 채취된 칠액은 수분이 많고 가열에 의해 효소가 파괴되어 도료로 사용하기에는 품질이 떨어지는 결점이 있기 때문에 주로 약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3-4년 주기로 가지를 수확하여 채칠하고 이듬해 맹아로 갱신한다. 또한 살소법으로 채취가 끝난 나무의 가질를 잘라 화칠법으로 칠액을 채취하기도 한다.
ⅲ) 양생법
옻나무를 휴양시키면서 여러 해 동안 지속적으로 칠액을 채취하는 방법으로 흉고직경이 20cm 이상의 큰 나무를 대상으로 한다. 중국과 대만, 미얀마, 베트남과 같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사용한다. 중국은 옻나무 재배지역이 넓고 기후가 다양하며 지역마다 재배품종이 달라 각 지역마다 독특한 채칠양식과 채칠도구가 발달되었다. 칠액채취기간은 6월에서 10월까지이고 5일 내지 10일 간격으로 채취한다. 채취홈의 형태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줄기의 아,뒷면에 40-60cm 간격으러 번갈아 가면서 채취홈을 만들고 조개꺼질이나 나뭇잎을 부착하여 흘러내리는 칠액을 채취한다. 1본당 채취홈의 수는 10개 정도이며 채취홈당 약 6회에 걸쳐 상처낼 내고 채칠한다.대교목형 옻나무는 심을 후 10년이 경과하면 칠액채취가 가능하며 소교목형 옻나무는 8년이 경과해야 한다. 칠액이 가장 많이 분비되고 질도 우수한 7-8월 1회채취시 하나의 조개에 고이는 칠액량은 약 3-5g 정도이다. 숙련채칠자의 경우 하루 채칠량은 최대 1.5-2kg에 이르고, 년간 채취량은 25-50kg에 달한다. 채칠주기는 나무의 품종 및 크기, 나무의 나이, 채취홈의 형태에 따라 다르나 3년에 1번을 채취하는 것이 보통이며 채칠기간은 10-25년 정도이다.
② 생칠의 가격경쟁력
생칠의 가격은 지역적으로 차이를 가진다. 1996년도 조사에 따르면 원주산 생칠 가격은은 kg당 20만원, 남원산은 14만원, 그리고 중국산 수입품은 7만원선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1997년 원주지역의 생칠 생산의 격감으로 공급이 부족하자 원주산 생칠 가격이 kg당 30만원 이상으로 급등하였고, 현재까지 이 가격선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등급에 따라 관(3.75kg)당 저급품의 경우 100만원에서부터 고급품은 120만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옻칠의 실 수요자인 칠기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kg당 25만원이 적정 수준으로 추정되고 이 가격은 채칠자의 소득에도 년간 1200만원 정도를 유지시켜 주는 것으로 산출된다(원주시, 1999:35).
나) 정제칠
①정제과정
채취된 생칠은 옻산성분인 우루시올(urushiol) 이외에도 수분, 질소 성분같은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고급도료로 이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고급도료로 사용하기 위한 정제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을 거친 옻칠을 ‘정제칠’이라고 한다. 그리고 칠의 사용목적에 따라 우루시올 성분과 다른 성분의 적절한 비율 및 다른 물질을 첨가하여 조합하는 도료제조 공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생칠의 정제 및 도료제조의 공정은 2차산업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 정제작업의 2차산업화는 아직 초보수준이고, 극히 제한된 전문가들만이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정제칠’로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이 2001년에 된 사실이 증명한다. 보유자로 지정된 정수화씨의 정제칠 기법은 전통적인 정제방법이고, 이에 따르면 1인당 하루 정제할 수 있는 양은 약 20kg 정도이다.
그래서 정제기술만 존재할 뿐 그 활용이나 보급이 제한된 상태이고 산업적 기술로의 전환이 거의 전무하다 보니, 국내에서 생산된 생칠은 - 국내 생칠 수급 일부를 제외하고는 -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수입된 생칠이 일본에서 정제된 후 정제칠이 비싼 값으로 역수입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또다른 문제는 일본이 그들의 발달된 정제기술을 이용하여 보다 저렴한 중국산 저급 생칠을 30% 정도 함유한 합성수지과 혼합된 유사 (정제된) 옻칠을 우리나라에 (천연) 정제칠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점이다. 이 유사(정제)옻칠은 외형상으로는 옻도막과 비슷하지만, 도막의 강도, 광택, 색상, 질감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천연 정제칠과 비교될 수 없다. 하지만 낮은 가격으로 보급되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유사옻칠을 사용하는 옻칠공예는 궁극적으로 옻칠산업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생칠 정제기술의 개발을 통하여 양질의 국내산 정제칠 보급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첫째, 양질의 국내산 생칠을 싼 가격으로 일본에 수출하고, 그것을 정제한 정재칠을 비싼 가격으로 되수입하는 옻칠유통의 모순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둘째, 옻칠의 수출구조를 생칠 위주의 수출에서 정제칠을 수출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셋째, 유사정재칠로 인한 옻칠공예산업의 위상 추락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정제칠 생산공정의 국내화는 국내 옻칠산업의 기반을 확보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정제기술의 공업화가 이뤄진다 하여도, 정제 및 가공 도료생산의 그 원료인 생칠의 국내 공급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상태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이 점에 있어서 정제칠의 대량생산이 가능한 체계가 구축된 다음에는, 국내 옻나무 식재의 단계적 확대로 원료조달이 가능한 시점까지는 중국산 생칠의 수입은 필수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② 정제칠의 수급현황
여기서는 90년대의 국내 옻칠 수급현황을 보고 정제칠의 수급내용을 파악하고자 한다. 국내 옻칠 수요량 92 -96년사이 연평균 약 5800kg으로 연간 약 6톤의 수요가 추산된다. 하지만 이러한 평균치는 다음 연도별 변화상을 보면 전혀 다른 양상을 살펴 볼 수 있다. 92년의 경우는 국내 생산량 2051kg에 수입량 2187kg, 94년은 국내 생산량 2530kg에 수입량 6635kg이다. 그리고 95년은 국내생산량 1280kg에 수입은 516kg을 수입하였고, 96년에는 6632kg 생산에 1028kg을 수입하였다(원주시 1999:24 표8).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90년대 중반까지 국내 옻칠생산이 감소하다가 90년대 후반 이후 다시 생산이 증가하는데 이는 옻나무 식재와 관련이 되고, 그 부족량이 수입으로 대체된다는 점이다.
한편 수입옻칠은 크게 양대분되는데, 중국으로부터의 생칠 수입과 일본으로부터의 정제칠 수입으로 구분된다. 1997년의 수입 상황을 보면, 총수입된 옻칠 1,103톤 중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양은 443톤이다(한국무역통계, 원주시 1999:24 재인용). 중요한 것은 국내에서 필요한 정제칠이 대부분 수입된다는 점이고, 이것이 앞으로 국내 옻칠정제의 과제로 남는다는 것이다. 현재 수입 정제칠의 수입가격은 kg당 80만원에서 100만원선이고, 국내 원주산 정제칠은 kg당 약 42만원(원주시, 1999:36)로 산정된다. 따라서 정제 기술의 보급이 이루어진다면 국제적으로 가격경쟁력을 가지는 정제칠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이 중국산 수입생칠을 정제 가공하여 사용한다는 점을 본다면 정제분야의 성장력은 무엇보다 잠재력이 높다고 하겠다. 특히 중국이 생옻만을 생산한다는 점, 그리고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연간 생옻 170톤을 수입하여 약 120톤의 정제옻을 만든다는 점, 그중에서 0.5톤을 국내로 수입한다는 점(원주시 1999:16)을 고려한다면 정제옻의 국제적 시장 가능성은 무엇보다 높다 하겠다.
3) 칠기공예업체 및 옻칠공예예술
가) 개관
우리나라에서 현재 옻칠을 활용한 분야는 일반적으로 칠기공예로 불리며 크게 두 가지 범주로 구분이 가능하다. 하나는 칠기공예품 제조업 분야이고 다른 하나는 칠기공예를 예술의 경지, 즉 전통예술의 전승을 잇는 작업에 종사하는 경우이다. 말하자면 전자는 상품제작업체이고 후자는 작품을 만드는 예술인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실제 사실 이 둘의 명확한 구분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첫째 이들이 칠기공예 분야에 입문하는 과정이 유사하였다. 즉 이들은 과거의 칠기공예의 전통을 변화되는 사회환경에도 불구하고 도제식 교육방법으로 전수한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둘째, 위와 같은 이유로 이 두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스스로 모두 전통적인 칠기공예 전승의 자부심을 가진 장인의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품을 제작하든 작품을 만들든 여러 가지 형태의 경연대회에는 구분없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분류가 편의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예술품으로서 옻칠공예를 하는 분들의 경우 우리나라의 현 실정은 그들이 예술가로서 자리매김되는 데는 또다른 문제가 존재한다. 예술의 장르 분류체계가 서양식 준거에 따라 정착되다 보니 전통공예는 아직 예술로서 독자적 위상을 갖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실제로 나전공에나 칠화공예로 ‘작품’을 생산하는 일에 종사하는 장인의 경우, 그들이 ‘예술적’ 수준의 제품을 만든다 하여도 그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예술의 분류체계에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이 지난 20세기 후반기에 ‘국악’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하나의 예술장르로 인정받게 되었음을 감안한다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향후 지속적인 정부의 대책과 장인의 노력이 결합하여 전통공예가 예술로 정착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요구된다.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작게 보면 전통옻칠공예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고, 크게 보면 현재 공연문화 위주로 육성되는 국가 전통문화 정책에서 벗어나 전통문화의 각 분야의 균형적인 발전에 필수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나) 칠기산업
칠기산업은 현재까지 칠기공예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칠기공예산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가내수공업 수준의 영세가공업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생산제품은 목기를 중심으로 한 생활도구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품목은 식기류, 제기류, 서류함이나 필통과 같은 문방구류, 보석함, 구절판, 반상기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망라한다. 다음 표는 칠기공예업체의 현황이다.
<표 1> 칠기공예업체의 현황 및 칠 소비량 단위: kg
지역 |
업체수 |
원주산생옻 |
중국산생옻 |
정제칠 |
캬슈칠 |
계 |
258 |
250 |
1790 |
460 |
42,500 |
서울 |
50 |
80 |
1000 |
200 |
12,500 |
부산 |
20 |
20 |
100 |
50 |
4500 |
대구 |
10 |
|
|
|
2000 |
대전 |
10 |
|
|
|
1000 |
광주 |
10 |
|
|
|
1000 |
인천 |
5 |
|
|
|
500 |
경기 |
50 |
40 |
500 |
100 |
6500 |
충북 |
10 |
|
|
|
1000 |
충남 |
10 |
|
|
|
1000 |
경남 |
30 |
|
50 |
20 |
2500 |
경북 |
10 |
|
|
|
1000 |
강원 |
5 |
60 |
|
20 |
500 |
전북 |
25 |
50 |
140 |
70 |
7000 |
전남 |
10 |
|
|
|
1000 |
제주 |
3 |
|
|
|
500 |
<자료 : 원주시 1999:14>
칠기공예업체는 순수한 목기류를 제작하는 업체, 나전을 넣은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업체, 그리고 일반적으로 ‘소목장’(小木匠)으로 불리는 전통적 가구제작업체 등이다. 이들 업체의 공통점은 제품의 종류에 관계없이 그 제품의 마감이 칠로서 완성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 도표에서 보듯이 옻칠 수요량이 2.5톤인 반면 캬슈칠 소요량은 43톤으로 거의 2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 통계가 바로 현재 한국 옻칠문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저해요소를 보여준다. 카슈로 칠해진 칠기 상품이 옻칠칠기로 둔갑하여 판매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실제로 80년대 초 캬슈칠의 등장은 옻칠산업의 전 분야가 쇄락의 길로 접어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옻칠산업 종사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가격면에서 옻칠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하고 옻칠과 유사한 광택을 내는 카슈칠은 현재까지 한국 옻칠산업 발전의 저해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전문가가 아니면 거의 구분이 불가능한 캬슈칠 상품을 옻칠상품으로부터 구분하는 방법으로 옻칠제품의 「상품인정제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60-70년대 ‘호마이카’가구가 유행할 당시, 그것은 ‘호마이카칠’이라는 것을 분명하여 옻칠제품에 영향을 주지 않았던 예로 본다면, 현재의 카슈칠 제품과 옻칠제품을 구분할 수 있는 방안은 옻칠칠기 상품 보호 뿐 아니라 옻칠산업 전분야의 발전을 위해서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그리고 이들 업체는 대부분 자본의 영세성, 대량생산을 위한 기계화 설비의 미비, 제품 생산과정에서 분업화의 결여, 현대적 디자인의 결여, 주문생산에 의한 시장개발의 한계 등 현실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말미암아 가내수공업적 영세업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현대적 기호를 제공할 수 있는 감각의 제품, 즉 소비자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디자인과 기능에 맞는 제품생산 능력 부족의 부족과 대부분 주문생산에 의존하고, 현대적 분업 생산 및 유통관련 전문성이 결여된 경영은 문화상품의 생산에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90년대 중반 이후 문화관광과 더불어 정책차원에서 문화상품 개발이 정부 차원에서 주도되었으나, 이들 업체들이 호응하지 못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90년대 후반부터 조달청에서 실시하는 문화상품 계약 생산도 마찬가지의 한계를 가진다. 문화상품과 관련하여 본다면, 작품 수준으로 제작된 문화상품은 장기간의 전문적 생산에 따른 결실이다 보니 고가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대량유통을 위한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는 한계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칠공예업체 종사자가 대부분 가내수공업적 영세업체로 존속되는 실정은 동시에 이 업종이 3D업종으로 인식되어 후계양성의 지속되지 않는 양상이 나타난다. 현재 이 업체 종사자는 이른바 장인세대로 고령화되어 가고 현재의 장인 세대 이후의 지속여부가 현재 관건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후속인력 양성이 무엇보다 시급한 실정이다.
다) 칠기공예예술
칠기공예예술은 칠기공예를 예술의 수준에서 제작하는 장인(장인)들의 사례로 우리가 조사한 장인은 (사)옻칠문화연구원 김인섭원장, 정제장 정수화씨, 칠화칠기장 양유전씨이다. 또한 나전칠기 인간문화재 이형만씨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부록-전통미의 극치, 나전칠기 참조) 이들은 칠기공예업체와는 달리 전통적인 방법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들이 처해 있는 작품활동 상황은 칠기제작업체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우리가 의도적으로 구분한 상품과 작품의 사회적 인정이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특이한 현상은 이들 장인의 신분 뿐 작품의 인정 면에서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더 호응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순적 현실은 다음 사례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이 점은 앞으로 전통공예에 대한 정책적, 사회적 관심의 방향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먼저 일본에서 활동중인 전용복씨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옻칠공예를 전수한 후 일본 이와데컨(岩手)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용복씨의 사례는 한국과 일본의 전통공예의 현주소를 비교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1988년 이후 일본에서 활동중인 전용복씨는 일본의 대표적인 옻칠문화전시관인 ‘메구로 가조엔’을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구로 가조엔이 일본 옻칠문화의 대표적인 장소로 존재하지만 실제 내부의 옻칠공예품은 한국 장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당시 전용복씨가 중심이 되어 한국의 옻칠장인 대부분이 이 작업에 참여하였다. 이 작업에 참여한 한 장인은 다음과 같이 당시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돈벌러 일본에 왔지만 처음 3일동안은 화가나서 일을 못했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작품을 만들고, 장인을 대접하는데 우리나라는 왜 이런 것을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은 둘째치고라도 장인을 제대로 대접도 안해 주는 한국에서는 먹고 살기에도 바쁘다. 그러니 그런 큰 작품을 어떻게 생각이나 하겠는가”(옻칠장인, 61세)하고 자조적인 심정을 숨기지 않는다.
말하자면 나전칠기 종주국의 기술을 돈을 받고 일본옻칠문화 제작을 위해 몽땅 넘겨준 셈이 되었다는 것이 당시 참여한 우리 장인들의 회고이다. 이같은 현실은 비단 옻칠장인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전통문화 전반에 대한 국가 정책이나 민간의 관심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문화정책이 전시성 행사에 치중하는 우리의 수준이 그 기저에 대한 투자에 우선하고 있는 일본에 비해 좋은 대조를 보여 주는 사례라 하겠다.
옻칠문화연구원의 김인섭원장이 최근 국내에서 제작한 작품의 사례는, 이러한 열악한 국내 상황에서도 옻칠공예예술에 그나마 희망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담양 구인사 대조사전(大祖師殿)에 전통 나전옻칠 작품을 제작하였고, 2001년 3월 개관된 인천국제공항 귀빈실에 ‘구낙십장생도’를 제작한 것이 그것이다. 특히 옻칠문화연구원은 2001년 3월과 7월에 독일의 코블렌쯔와 마인쯔에서 옻칠공예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현지에서 한국전통문화에 대한 반응은 위에서 살펴본 국내에서의 무관심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김인섭원장은 전한다. 개장 시간 9시 이전부터 구름처럼 몰려드는 관람객에 김원장은 이러한 광경이 왜 국내에서는 불가능한가를 먼저 생각하였다고 한다. 이 점에서 본다면 현재의 전통문화 육성이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고, 이 기본적인 문제가 전제된 다음 다양한 전통문화 육성정책이 입안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통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되지 않고, 이미 소실된 토대의 재건을 위한 기초적인 처방에 대한 고려 없이 시행된 전통문화 육성 및 발전방안은 전시성 행사로 거친다는 것이 지금까지 행해진 전통문화 육성책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
4) 옻칠응용 첨단산업
옻칠을 응용하여 일본의 경우처럼 첨단도료로 개발한 사례는 국내에서 아직 찾을 수 없다. 단지 실험적 단계에서 벤쳐기업으로 발돋음하고 있는 두 개의 업체를 조사하였다.
가) (주) 아천의 사례
경기도 구리시에서 공예업체를 운영하는 김차봉의 장남은 현재 옻칠의 첨단도료 개발을 위한 (주) 아천이라는 벤쳐업체를 운영중이다. 현재 진행중인 작업은 고려대와 영남대에 산학연구과제로서 옻칠의 과학성에 관한 과제를 진행중이고, 일부는 완성되어 특허 출원을 준비중이다. 특히 옻칠의 살균성, 항곰팡이성, 항투습성, 항전자파성과 같은 특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료를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 이 업체가 추구하는 목표이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현재 사용중인 도료업계에 옻칠을 원료로 한 새로운 제품을 내어, 기존의 화학도료에 경쟁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자 하는 것이 현재 가지고 있는 최종 목표이다.
나) 네이코마이어텍(주)
네이코바이어텍은 화공과 박사학위출신의 김우식씨가 설립한 벤쳐기업으로 현재 그가 대표이사로 있으며, 5명의 상근직원을 포함하여 10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다. 이 업체는 전통적 정제방법과는 다른 옻칠의 정제법을 개발하여 정제칠을 생산하고 있다. 여기서 개발된 정제기법으로는 1인당 1일 약 50kg의 정제칠 생산이 가능하며, 이는 전통적 방법을 가진 정제장 정수화씨의 1일 약 20kg 정제칠 생산에 비하면 약 2.5배의 경쟁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 업체가 체감하는 한계는 한국의 칠기업계가 일본산 정제칠에 익숙하여 이 업체에서 새로 개발된 제품에 경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벤쳐기업은 이러한 현실의 극복방안과 아울러 새로운 경영전략으로 수출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다. 옻칠산업의 문제점 분석 및 발전방안
1) 사회환경의 문제
가) 전통문화의 변화된 사회경제적 환경에의 적응 문제
옻칠공예품을 포함한 전통공예품의 경우 그것이 과거의 생활용품이었다는 점에 전승의 일차적인 문제가 나타난다. 이 문제는 이러한 과거의 물질문화가 오늘날 현대적 생활맥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능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소멸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과거 부채의 경우 오늘날 더위를 식히는 기능이 유지되는 경우는 극히 한정되고, 선풍기나 에어컨이 그 기능을 대신한다. 따라서 태극선은 우리 올림픽대표선수단이 올림픽 입장식 때 출전시 흔드는 한국 상징물이 되어 부채로서의 기능은 상실되었고, 마찬가지로 합죽선은 판소리를 하는 국악인의 소도구로서 기능 이외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그외에 이 전통부채들의 기능은 지역의 특정한 행사시 지역전통문화 상징물으로 타지역 참가자들에게 나누어지거나, 지역의 전통 문화상품으로 관광상품화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변화의 과정은 여타의 전통문화요소와 마찬가지로 옻칠공예품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게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전통적 옻칠공예품이 현대적 생활맥락에서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거나 다른 기능으로 변화하지 못할 경우 소멸의 과정은 필연적이란 점이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전통적 나전장식은 호마이카라는 도료로 채색된 장롱으로 제작되어 가구시장에서 한때 선풍을 일으키며 큰 호황을 누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유행이 가버린 이후 거의 소멸되다시피 되었다. 옻칠 또한 ‘카슈’라는 화학성 재료가 첨가된 도료가 저렴한 가격으로 등장하자 캬슈칠기가 전통의 옻칠공예 칠기를 대체하는 양상을 가졌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옻칠공예를 포함한 전통문화의 요소들의 전승은 그 기능적 측면이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 즉 전통문화요소가 현대적 생활문화의 맥락에서 의미를 가지게 위해서는 변화된 문화환경에의 적응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대두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문화의 기능적인 측면과 함께 새로운 미학적 관점 및 현대의 기술적 체계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통예술적 가치를 담보한 과거의 재현으로서의 전통문화 전승은 대중화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전통의 전승과 현대적 재창조의 의미를 구분되어야 한다고 본다. 전자는 과거의 전통문화를 재현하는 예술적 차원에서 보존하는 것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과 기술로서 새로운 우리 시대의 문화를 만들어 내고 문화상품의 생산에 모델로서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나) 20세기 한국현대사에서 전통문화의 단절 문제
우리의 전통문화는 지난 20세기를 거치면서 전반기에는 강제적 단절과 후반기에는 무관심에 의한 소멸과정을 겪어 왔다. 일제 식민지 강점기 동안 조선총독부에 의한 전통문화정책은 조선전통문화 말소정책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즉 ‘미개한’ 조선문화는 사라져야 되고 ‘선진적’ 일본문화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그 배경이고, 그 과정은 ‘개화’ 내지 ‘개명’이라는 이름으로 대신되어 우리 문화에 대한 가치 판단이 일제의 의도에 따라 ‘저급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민족주의적 인식은 그 자체가 반일제적인 것으로 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유사한 일본 전통문화가 우리 것을 대신하는 경우가 식민지 강점기 40여년동안 뿌리내리게 되었다. 실제로 옻칠공예의 경우, 한 예를 든다면 채질작업이 전통적인 화칠법이 사라지고 일본식 살소법이 현재 보편화된 것이 그러하다.
광복 후 이데올로기 혼란기와 6ㆍ25전쟁을 거치면서 민족시련기에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50년대 후반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가 실시되고, 60년대 초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표명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경제적 상황에서 그것은 최소한 관심 이상의 무엇을 제공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다.
조국근대화의 이름으로 시도된 60년대 이후 개발지상주의 하에서 전통문화는 또다시 관심의 대상 밖에 머물고 말게 되었다. 심지어 과거의 신앙대상과 같은 특정한 전통문화요소는 서구문화적 가치 기준으로 판단되어 극복대상이 되기까지 하였다. 산업화와 국토개발이라는 명분은 선진국가들의 현대적 문화만이 문화적 모방의 대상 내지 선망대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서구문화 선호사상은 결과 촌락사회에 존재하던 전통문화의 잔재물들은 극복대상으로 간주되어 하나 둘 소멸되는 운명을 겪게 되었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 정책차원의 전통문화의 재창조라는 이데올로기에서 전통문화는 정치적 목적이 우선하다 보니 행사성 전통문화에 근거한 공연 부활에 초점이 두어졌고, 특히 각 지역의 전통문화 전승으로 시도된 향토축제 정책은 결과적으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축제의 인플레이션 양상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 이래 전통문화에 대하여 사회적 인식이 새롭게 부각되었으나 그 역시 대부분 공연 위주의 전통문화에 한정되었다. 따라서 체계적인 전통문화의 보존과 발전에는 기여하지 못하였고 사회적 인식 확산에도 기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다) 전통적 신분의식 잔존의 문제
우리 사회의 신분의식은 조선시대 신분제도가 철폐된 지 1세기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지향적이다. 조선시대 반상(班常)의식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신분귀속에 전혀 의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기능을 가진다. 즉 생득적 출신성분이 특정한 상황과 특정한 사회적 분야에서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예컨대 혼사때 출신가문의 문제가 아직도 거론된다거나, 특정한 직업분야는 과거의 기준으로 신분이 판단되는 현상이 그러하다. 현대적 가치기준과는 무관하게 과거의 신분 가치가 의식적으로 상존함을 보여준다. 실제로 조선시대 천민에 소속된 후손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와 현재의 한국인 중에서 양반 가문의 후예가 아닌 사람을 찾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근거한다고 하겠다. 결국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상은 인본주의적 서구제도의 외형은 모방하고 있지만 신분적 의식구조는 조선시대의 지속이라는 모순을 나타낸다.
이러한 상황은 전통공예에 종사하는 장인에게도 적용된다. 장인(匠人)이라는 직업적 용어 자체가 조선시대의 직업적 명칭이며, 세속적으로 ‘쟁이’로 불리우는 이 직업은 조선시대의 신분구조인 사농공상(士農工商)에서는 하층민적인 의식을 반영한다. 우리 사회에서 현재까지 사(士)의 중요성은 여전히 지속되는 반면 산업사회에서 공상(工商)은 현실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지만, 전통적 공상은 여전히 비천한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전통공예 종사자를 자칭, 타칭 장인으로 표현하는 것은 ‘기예자’ 혹은 ‘기술자’라는 것을 잠재하고 있으며, 실재 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에서도 ‘예능’과 ‘기능’으로 구분하여 전통공예의 경우 일종의 ’기능인‘으로 분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양공예를 전공한 사람은 예술가로서 지식인 반열에 서지 것이 비하면, 전통공예 종사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점이 전통공예 인력양성의 체계화의 절대적 필요성이 있다. 서양공예 전공자가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았다는 점이 인정되어 예술가의 반열에 서는 반면, 전통공예의 경우 ‘전통적’ 도제식 교육으로 몇십년을 종사해도 기능인인 장인으로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증하는 사례가 전통공예에 종사하는 장인들이 최근 일부 대학교에 전통공예 분야 겸임교수로 발령되는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겸임교수제도의 자체 문제점과 - 전통공예를 서양공예를 위한 일부 기능으로 이입하여 교육하는 - 무관하게 장인들에게 일정한 신분상승의 의식을 반영하는 사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교수’라는 직함이 장인의 명함에 더해짐으로서 오는 신분상승의 의의를 무시한다면, 오히려 이러한 제도는 전통장인 정신의 상실을 초래하여 전통계승에 역행하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전통공예의 독자적 위상 설립에도 방해가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분의식은 다른 측면에서 극복가능한 사례를 보여준다. 예컨대 성공한 ‘세습무당’ 후손이나 성공한 ‘광대’의 후예에게는 크게 적용되지 않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들의 능력이 문화재 가치가 부와 명예를 동시에 가질 때 문제시되지 않는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전통공예 분야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과거 신분의식의 지속은 과도기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라) 전통공예 예술쟝르 미정립의 문제
우리나라의 전통공예는 아직 예술로서의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예술이라는 사회적 제도가 서구적 기준에 정착한 것이 일차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근대적 사회제도의 정착이 서구사회의 준거에 따라 재편되는 과정에서, 전래의 예술 갈래는 서구의 그것과 상호 연계하지 못하는 경우 제도적 분류에서 도외시된 결과이다. 다시 말해 서구 예술쟝르에 내용적, 기능적으로 일치하는 못하는 분야는 제외된 것이다. 이를테면 전래의 회화가 동양화라는 장르로 재편된 반면, 전통공예의 경우 현재까지 제도권에 이입하지 못한 채 독자적으로 지속되어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통공예 분야의 해외전시시, 「한국예술」(Korean Art) 혹은 「한국전통예술」(Korean Traditional Art)이라는 이름을 걸고 소개되는 것과는 모순적이다. 대외적으로는 한국의 전래 예술로 알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내에서는 비주류 예술에 머물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몇몇 대학의 공예학과에서도 전통공예의 특정한 분야만 교과로 개설하여 인정하는 것은 전통공예의 독자적 예술성이 아직 완성된 단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세기 후반기를 거치면서 우리 고유의 음악이 ‘국악‘이라는 예술쟝르로 자리매김한 사례로 볼 때 전통공예의 그것도, 다양한 대안이 제시된다면 시간적인 문제라고 전망할 수 있다.
2) 정책의 문제
가) 문화재보호법의 문제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와 지자체 지정 무형문화재 지정제도는 우리 전통문화의 보존 전승에 지대한 기여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무형문화재 지정제도에 따라 지정된 종목의 전승을 담당하는 보유자 인정제도는 일반적으로 ‘인간문화재’라는 명칭으로 불리운다. 그들은 우리나라 과거 무형적 문화요소 중에서 예술적 가치가 높은 대상의 전승과 특정 문화재의 기술의 전승을 담당하여 왔다.
그러나 전통적인 방식의 전승만을 목적으로 하는 무형문화재 지정제도로 인하여 특정종목의 현대화에는 한계를 가진다. 특정종목 무형문화재 분야에 1명을 보유자로 지정하는 이 제도는 무형문화재 지정자와 비지정자간의 알력과 반목을 야기하여 전통문화의 전승에 많은 문제점을 야기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특정종목의 다양성에 따른 분업화를 고려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옻칠분야에 한정하여 본다면, 문화재보호법 시행 초창기에 4종목으로 분화되었던 것을 1995년에 1종목으로 통합하여 옻칠공예의 전승을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비록 2001년 정제칠 분야에 정수화씨를 인정하여 2개 분야로 늘어났으나 이것으로도 완전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현재의 나전장, 정제장에 더하여 최소한 옻칠을 채취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채칠장, 옻칠을 전문으로 하는 도장장, 옻칠만으로 채색하여 작품을 제작하는 칠화장 등에 보유자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장인들의 견해이다.
나) 부처간 정책의 중첩 문제
현재 전통공예의 정책 지원에 관련되는 부서는 다양하다. 옻칠산업에 한정하여 보면 다음의 정부 부서가 관련되어 있다. 옻나무의 육종과 재배 분야에서는 산림청, 옻칠관련 전통장인 지원부서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도를 관장하는 문화재청, 문화상품 문제를 담당하는 문화관광부 및 조달청, 장인 지원제도를 관광하는 산업자원부 등이다. 이들 부서의 업무는 개별적으로 나름의 옻칠산업의 발전에 가능하지만, 옻칠산업에 관점을 둔 총괄적인 업무의 조정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국가 기능의 중복화와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에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정책의 통괄관리의 부재로 투여된 예산에 비해 효과는 개별적으로 분산되어 국익에 배치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현실적인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 요구된다. 국가 차원의 통합적 옻칠관련 정책이 중장기 발전 계획으로 수립되어 각 분야별 연계발전방안이 단계적으로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2. 옻칠산업의 인력개발 방안
가. 인력양성의 문제점
1) 옻나무 재배와 채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세기 후반기 옻칠 수요의 감소 및 외국산 옻칠의 수입으로 인한 재배농가 감소로 연결되었다. 이 문제는 비단 옻나무 재배농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농촌인구 감소의 문제와 직결되고 있지만, 특화된 옻나무 식재 농가 육성를 위해서는 그 수요에 대한 명확한 진단에 따라야 한다. 그것을 토대로 옻나무 재배농가에 대한 지원책의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원주시의 지역특화산업으로 옻칠산업 육성도 현재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옻나무 식재에 대한 지원수요도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채칠인력의 감소이다. 전통공예 장인과 마찬가지로 채칠인력도 고령화되어 전문적 채칠인력의 양성을 위해서는 채칠장이 따로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할 것이며, 체계적인 교육을 위한 채칠인력 양성에 현실적 대안이 전무한 상태이다.
2) 생칠 정제와 옻칠공예
가) 정제칠
옻칠의 실제 사용은 정제칠이고, 다시 말하면 생칠의 정제화에 대한 인력 양성은 옻칠산업의 산업화를 위한 필수적인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도에 옻칠정제 분야 보유자인 정수화씨를 인정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현재 정수화씨는 자신의 정제기법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생칠정제의 활성화를 위해서 개인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 전통공예 가내수공업적 후진인력의 한계
옻칠의 실제적 소요처인 전통공예 분야의 인력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전통공예업체 자체가 영세하고, 그 업종이 이른바 3D업종으로 젊은 세대에게 인식되어 과거의 도제식 방법에 의한 후진양성은 현재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할 수 있다. 실례로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전수자도 후진인력이 없어 가족성원이 등록되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다) 전통옻칠공예관련 대학교육기관의 부재
한국의 대학교육기관에서 현재 전통공예와 관련된 학과는 다음 4개 대학에 존재한다. 3개의 사립대학과 1개의 국립대학교육기관에 설치되어 있다. 배재대학교는 예술대학 미술학부에 응용미술계통으로 칠예전공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상명대학교는 조형예술학부에 목칠전공을 두고 있다. 명지대학교는 전통공예학과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립대학의 전통공예 및 옻칠공예관련 전공은 엄격히 말하면 서양예술교육에 토대를 두고, 우리의 전통공예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여에 설립된 전통문화학교는 전통미술공예학과는 “전통미술공예문화를 이 시대에 맞게 계승 발전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한국미술공예의 전통을 확립하는데” 설립목적을 두고 있으며 정원은 40명이며 현재 1학년이 재학중이다. 이 학과의 세부전공은 “일반회화, 불화, 민화, 단청을 포함한 전통회화, 목칠, 금속, 염직, 죽세공, 초고 등을 포함한 전통공예”로 세분화하고 있다. 전통문화학교의 경우 개교된 지 2년째이기 때문에 아직 실험적인 단계와 와 있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전통미술공예의 각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교과과정과 교재개발이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지속적인 연구와 교육이 병행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실제로 전통미술공예학과의 전임교수 2명이 서양예술의 조소와 디자인 전공자이기 때문에 학과 소개에 제시된 ‘전통적’ 미술공예 세부 영역을 어느 정도까지 아직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첨단도료 개발
옻칠을 활용한 첨단도료 개발을 위한 인력양성은, 엄격히 말하면 개발에 대한 정책적 지원의 문제이지 인력양성의 문제와는 무관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조사한 2개의 첨단도료 개발업체의 대표의 경우 경영학과 화공학 전공자로서 독자적인 관심에 따라 회사를 설립한 경우이다. 즉 옻칠의 첨단도료 응용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그것을 통한 상업화의 가능성이 밝혀진다면 시장논리가 적용되는 분야이다.
나. 대안
옻칠산업의 인력양성은 기본적으로 인력양성을 위한 교육의 이원화가 요구된다 하겠다. 첫째는 옻칠산업 각 분야의 전문적 인력 양성이고, 둘째는 옻칠산업의 사회적 인식 확산을 위한 저변인력 양성이 그것이다
1) 전문인력 양성
가) 체계적인 교과과정의 개발
전통적인 도제식 교육방법의 개선을 위해서는 전통적 옻칠(공예)의 수련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과학적 교재개발이 필수전제조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옻칠산업 각 단계에 따른 교재 개발이 필수적이다.
나) 전문인력양성의 방안을 이원화
옻칠산업의 각 단계별 인력양성은 전문가와 교육가 양성을 구분하는 방안이 요구된다. 장인과 교육가의 양성의 이원화를 말한다. 장인이 전통공예의 교육가를 겸하는 것은 양자에 있어 불리하기 때문에 이를 분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테면 서양예술에서 전업작가와 교육가의 구분과 동일한 맥락이다.
다) 전통공예 교육의 체계화 필요
전통장인에 의한 전승은 ‘전통적’ 도제 교육이 교육의 문제를 체계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의 전통문화 재현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현대적 교과과정으로 재편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이는 옻칠공예의 여러 분야를 과거처럼 한 장인이 모두 총괄하는 시스템을 지양하고, 교육과정의 분업화를 통하여 보다 전문화된 전통공예의 전승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재의 공예 관련 대학에서 전통공예를 예술의 한 장르 받아들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전통문화학교의 전통미술공예학과의 향후 인력 양성이 이러한 인식 변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2) 저변확대를 위한 교육
가) 전통문화 중요성 인식을 위한 교육
초,중등학교의 현장학습과 방과후 교육의 일환으로 지역 전통문화 체험교실 운영하여 전통문화에 대한 접근성을 초기에 교육하여 전통문화의 이질성을 해소하여,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인식을 전환하는 대책이 요구된다.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 부모들의 공동참여를 유도하여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의 확산을 학교교육 및 일반에 이르기까지 유도하는 방안도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전통장인의 문화생 육성이 전문가 양성에 한정하지 않고,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여 전통문화 애호가 혹인 동호인 영역의 저변 확대를 확보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나) 저변확대를 위한 교육인력의 양성
우리나라의 예술교육은 공교육 뿐 아니라 사교육에 이르기까지 서양예술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국민의 정부 들어 국정의 최고책임자까지 전통문화예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실행을 위해서 여러 가지 방안이 강구되었으나(이장섭, 1998), 단기적인 처방으로는 서양예술 중심 교육체제를 바꾸기에는 한계를 가진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과과정에 전통문화예술 교육을 부여하여도 교육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현실성이 부족하지만 장래를 본다면, 전통문화 교육을 담당할 인력의 양성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3. 옻칠 산업의 정책적 시사점 및 인력개발 방안
새로운 세기가 등장하면서 문화의 세기와 강조되고 문화의 경제적 부가가치가 인정되면서 문화의 상품화 문제가 국가정책의 중요한 분야로 대두되고 세계화시대의 국익의 중요한 부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문화관광부는 1998년 이래 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국가에서 문화산업진흥기금이 그 영역이 전통문화에까지 확대되어 다양한 정책을 시행중에 있다. 옻칠산업을 전통문화를 대상으로 한 문화산업의 한 영역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분명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즉 전통문화의 보호라는 명분과 그것을 대상으로 문화상품의 개발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구분하여 접근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 두 분야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가지지만, 문제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공존할 수 있는 체계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옻칠의 주 소비처인 전통공예 분야가 아직 전통문화의 주요 영역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옻칠산업은 여러 단계의 과정, 즉 옻나무의 육종과 재배, 옻칠 채취, 생칠의 정제를 통한 정제칠의 생산, 정제칠를 옻칠공예, 첨단도료의 개발이라는 다양한 경로를 거친다. 하지만 옻칠의 최종소비처인 전통공예의 쇄락이 결국 옻칠산업 전 분야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현재 옻칠의 과학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된 상황에서 원료인 생칠생산에서는 중국에, 그 가공품인 정제칠과 공예 부문에서는 일본에 뒤져 있는 상황이다. 그 원인이 비록 지난 20세기를 통한 전통문화의 소실과정에 찾을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러한 악조건 하에서 장인에 의해 명맥이 유지된 전통옻칠공예이 활성화될 때 옻칠산업의 전반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일본과 같이 옻칠을 첨단도로로 개발하는 문제는 그 다음의 과제라고 판단된다.
옻칠산업의 인력양성 또한 이러한 발전방안의 단계와 결코 유리된 것이 아니다.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세계적 문화상품을 개발하기 위한 산업화는 먼저 전통문화의 예술적, 기술적 전승집단의 사회적 위상 확보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전통문화의 산업화를 인력개발은 먼저 전통적 인력양성 방법인 도제식 교육방법에서 벗어나 현대적 인력양성개발을 위해서는, 그것의 체계적 전승을 위한 교육과정 및 교재 개발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옻칠산업의 인력개발방안에서의 문제점은 옻칠산업이 가내수공업적 후진인력의 한계에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통했던 이러한 후진양성방법도 현재는 위기상황으로 다가오고 있다. 또한 옻칠 관련된 대학교육기관의 부재도 한몫을 하고 있다. 현재 대학에서 옻칠 관련학과는 배재대학교 칠예학과, 상명대학교 목칠공예학과 그리고 관련학과로는 명지대학교 전통공예학과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체계적인 교과과정의 개발이 있다. 전통적인 도제식 교육방법의 개선을 위해서는 전통적 옻칠(공예)의 수련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과학적 교재개발이 필수전제조건이다. 둘째로는 인력양성의 방안의 이원화가 필요하다. 저변확대를 위한 교육과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으로의 이원화가 필요하다. 셋째로 저변확대를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초증등학교의 현장학습의 일환으로 지역전통문화 체험교실 운영.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 부모들의 공동참여를 유도하여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의 확산을 학교교육 및 일반에 이르기까지 유도한다. 또한 전문가 양성제도의 확대는 전통장인의 문화생 육성에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기 때문에 전통공예의 전승 전문인력도 풍부할 뿐 아니라 전통문화 애호가 또는 동호인 영역의 저변 확대를 동시에 확보한다.
옻칠 인력양성 및 교육을 위한 전제조건으로는 첫째로 장인과 교육가의 이원화가 필요하다. 장인이 전통공예의 교육가를 겸하는 것은 양자에 있어 불리하기 때문에 이를 분리하는 것이 시급하다. 둘째로는 전통공예 교육의 체계화가 필요하다. 전통장인에 의한 전승은 ‘전통적’ 도제 교육이 교육의 문제를 체계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의 전통문화 재현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현대적 교과과정으로 재편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옻칠을 포함한 전통공예의 분업화된 인력양성이 요구된다. 옻칠공예의 여러 분야를 과거처럼 한 장인이 모두 총괄하는 시스템을 지양하고, 교육과정의 분업화를 통하여 보다 전문화된 전통공예의 전승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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