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의 계절 10월
없던 스케쥴이 자꾸 만들어져서 맘이 점점 조급해지네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
어차피 내 몸에 한계가 있으니
하나씩 차근차근 나를 달래는 중이야
친구들도 나처럼 마음이 조급하다면 조금만 달래봐 ^^*
남편이 죽고 아들이 왕이 된 조희, 이제는 조태후라고 불렸어.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겠지?
남자가 그리웠던 조태후는 예전의 남편 여불위를 자꾸 꼬셔댔어.
여불위는 태후의 이런 행동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이 사실이 새어나가면
가장 큰 피해를 볼 사람은 자신이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생각 끝에 노애라는 자를 태후에게 소개시켜 주었어.
이쯤에서 노애가 누군지를 알고 가야겠지?
아이참~~글을 쓰기도 쑥스러운 부분이지만 어쩔 수 없이.
자자 잠깐 19금 이야기가 나오니
자신이 낭랑 18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읽지 말도록! ^^*
원래 이름은 노애지만 대부분 노대라고 불렀어.
왜냐구....남자의 거시기가 커서 큰 大자를 썼기 때문이지.~~ㅎ
일정한 직업이 없었지만 세끼니 걱정 없었고
날이면 날마다 술잔치를 벌일 수도 있었어.
누가 대주었는지는 말 안 해줘도 알겠지?
동네 아낙네들이겠지 뭐~~~
얼마나 크고 강했는지 오동나무로 만든 수레바퀴를
거시기에 걸고 돌렸는데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마음 내키는 대로 돌릴 수 있었대.
노대의 거시기는 그냥 얻어진 게 아니라
7년 반 동안이나 입산수도해서
사부님께 얻어맞아 가면서 만든 작품이래나 뭐래나~~
부러운 남정네들은 그 사부님 찾아서 입산수도 하게나 ~~ㅎ
이 소문은 여불위의 귀에도 들어갔어.
조태후랑 딱! 맞겠다 싶어서 노대를 데려다 귀히 대접했어.
여불위는 먹고 할 일 없는 노대에게
사흘에 한 번 궁궐에 들려 수레바퀴 돌리기 장기자랑을 하도록 했어.
왜 그랬는지는 짐작할 수 있지?
드디어 이 소문은 조태후의 귀에도 들어갔어.
여불위는 태후에게 노대를 소개시켜주고 자신은 기쁨의 해방감을 느꼈어.
막강한 정력을 가진 두 남녀
불이 붙은 것은 당연하겠지?
태후는 노애를 좋아하게 돼서 둘 사이에서 아들을 둘씩이나 낳았어.
막강한 태후를 등에 업은 노애는 나라를 좌지우지 할 정도로 권력이 커졌어.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이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어린 자식을 왕위에 앉히려는 야욕까지 품었어.
그러나 이런 일은 소문이 나기 마련이지?
이 소문을 알게 된 진시황은 노애 일당을 잡아 처형하고 태후를 감금했어.
이듬해에는 이 책임을 물어 여불위마저 쫓아냈어.
이에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여불위는 독주를 마시고 자살했어.
이제 왕권에 위협을 가하던 사람들이 죽었으니 진시황의 세상이 시작되었겠지?
이런 사람의 결말을 생각하면 평생을 바친 성공이란 게 참 허무하지?
하지만 무조건 여불위를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아버지인 장양왕
생부인 여불위
남자라면 사족을 못쓰던 어머니 조희
어머니의 정부였던 노애를 지켜보았던 진시황
과연 그는 여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진시황은 어머니 때문인지 여성을 혐오하게 되었고
결국 정식으로 황후를 맞이하지 못했어.
그럼 진시황은 평생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진시황의 여성관은 무엇일까?
여성 협오자였던 진시황이 유독 한 여성을 존중했다는 사실이
사기에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어.
흥미롭지?
당시 파 지역에 청이라는 과부가 살았어.
그녀의 조상은 몇 대에 걸쳐 부를 쌓았기 때문에
이로써 헤아릴 수 없는 정도로 많은 가산을 소유하게 되었어.
비록 과부의 몸이었지만 가업을 잘 지키고
조신하게 행동하며 자기 관리를 잘했기 때문에
타인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았어.
진시황은 그녀를 정조가 굳센 부인이라 하여 손님으로 대우했고
또 그녀를 위해 여회청대 까지 지어주었어.
여회청대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여성들로 하여금 과부 청을 본받으라는 뜻의 기념관이야.
진시황의 기록에서 어머니를 제외하고
여성에 관한 것은 과부 청이 거의 전부라고 해.
그만큼 과부 청에 대한 진시황의 관심이 남달랐다 것을 뜻하지?
어머니와는 달리 혼자의 몸으로 정조를 굳게 지키며
당당하게 가업을 지켜내는 청의 모습이
진시황에게는 무척 아름답고 신비롭게 비춰졌나봐.
이 부분을 읽으면서 진시황에게 애틋한 감정이 느껴지는 건 왜 일까?
하지만 조태후를 무조건 나쁘게 몰아붙여야 할까?
어린 진시황에게 콤플렉스를 남긴
어머니로서의 조태후는 부도덕한 여인이라는 비난을 받았을거야.
사랑하는 남자의 야심으로 인해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했고
그 남편마저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새장과 같은 궁중 속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남자들은 부인과 첩을 마음껏 두면서
여자에게만은 남편을 위해, 자식과 가정을 위해
개인적인 욕망을 꼭꼭 숨겨두고 사는 것을 강조했던 세상.
왜 이것이 여인의 의무여야 했을까?
과연 조태후에게 부도덕하다는 비난만 쏟아내는 것이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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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그렇군요...
오늘도 지식의 폭을, 사고의 폭을 한폭 넓히고 갑니다요~!^^
오늘도 중국사 덕분에 선생님과 대화를 나눠보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