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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죽은 뒤 저 세상은 과연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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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2. 바보하인 이야기
3.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4. 장조류 이야기
5. 죽은 뒤 저 세상은 있는가?
6. 숙종 때 재상 허묵과 그 아내 이야기
7. 윤회의 괴학적 증명/ 13
8.. 생사에 자유자재한 스님들
9. 신노인 9계명
10.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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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반갑습니다. 어르신들 모두 건강한 모습을 뵈오니 무엇보다 반갑습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인생 70고개를 넘어서면 스스로가 늙었다고 생각하고, 경로당에나 가서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기가 일수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올해로103세가 되신 연세 대 김형석 교수가 TV에 출연하여 “60세 이후는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동시에 열매를 맺는 시기다. 60살쯤 되면 철이 들고, 내가 나를 믿게 된다. 75살 까지는 점점 성장하는 것도 가능하고, 이후로도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본인의 성취를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씀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여기 오신 분들은 자기 개발을 위해서 무언가 하나라도 더 배워보겠다고 오신 분들이므로 저절로 고개가 숙여 집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제가 평소 잘 아는 분도 계시고, 저보다 나이 드신 분들도 많이 계시므로 강의하기가 무척 어렵겠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왜냐하면 어르신들은 나이를 그냥 잡수신 게 아니라 그동안 살아오시면서 본 것, 들은 것, 직접 경험한 것이 많기 때문에 내 생각과 다른 얘기는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 옳은 것일까요? 서울 가본 놈하고, 안 가본 놈이 싸우면, 안 가본 놈이 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컵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새 물을 담을 수 없듯이, 나의 생각이 절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새로운 진리를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오늘 저의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는 절데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으시고 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오늘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도 강의를 많이 들어 봤습니다만, 들을 때는 그런대로 이해가 되었으나 제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제가 하고자하는 깊은 뜻이 들어 있음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바보하인 이야기
옛날 어떤 마을에 천석이나 하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부자의 집에는 많은 하인이 있었는데, 그 하인들 가운데 바보하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식전에 바보하인에게 “아침밥을 먹고 시장에 다녀와야 하니 그렇게 알아라.”하고 일렀습니다. 그 바보 하인은 힘이 장사인 까닭에 시장에 데리고 가서 무거운 짐을 가지고 올 심산이었습니다. 주인이 아침밥을 먹고 그 하인을 찾았으나 하인이 도통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집 안팎을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인이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야 빈 지게를 지고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그 하인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어디를 갔기에 이제 나타나느냐?”
“마님께서 아침밥을 먹고 시장을 다녀와야 된다기에 시장을 다녀왔습니다.”
“이 사람아 시장을 가면 무슨 일인가 물어보고 나와 같이 가야지 자네 혼자 갔다 오면 어떻게 한단 말이야.”
“어쩐지 시장을 다 돌아 다녀도 제가 시장에 무엇 때문에 왔는지 몰라서 그냥 왔습니다.”
하인의 대답을 들은 주인은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마침 주위를 살펴보니 조그만 막대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것을 집어서 하인에게 주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네가 바보라는 상으로 주는 것이니, 너보다 더 어리석은 바보를 만나거든 전해주고 만나지 못하거든 네가 죽을 때까지 보관하여라.”
바보 하인은 비록 바보였지만 그것이 자랑스러운 막대기가 아닌 줄 알고, 자기보다 더 못난 바보를 찾아보았지만, 그런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자기 방에 그 막대기를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주인 방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 바보 하인이 들어가 보니, 주인 영감이 방 한가운데 누워서 신음하고 있고, 가족들이 주위에 앉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왜 집안 식구들이 울고 있고, 주인마님은 앓고 계십니까?”
“내가 멀리 갈 것 같아 이러는 모양이다.”
“마님께서 멀리 가시다니요? 어디로 가십니까, 동쪽으로 가십니까, 서쪽으로 가십니까, 아니면 북쪽으로 가십니까, 남쪽으로 가십니까?”
“어느 곳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어느 쪽으로 가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로 가십니까?”
“무슨 일로 가는지도 모른다.”
“가시는 길이 멉니까? 가깝습니까?”
“먼지 가까운지 그것도 모른다.”
“노자는 얼마나 듭니까?”
“그것도 모른다.”
이 말을 들은 바보는 재빨리 자기 방으로 가서 단장을 꺼내 주인마님에게 전하면서“이것은 나으리가 가지십시오.”
“이것이 무슨 막대기냐?”
“주인님이 바보상으로 저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까? 주인 마님께서 나보다 더 못난 바보에게 전하라고 하셨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주인 나으리가 저만 못한 바보이기에 드리는 것입니다. 주인마님은 먼 길을 가신다고 하면서 가는 곳도 모르고, 가는 쪽(방향)도 모르고, 노자가 얼마나 드는 지도 모르고, 무슨 일로 가는지도 모른다 하시니, 저보다 주인마님이 더 바보가 아니십니까?”
이 이야기는 불교 『백유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님께서 바보하인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이야기 속의 바보 하인이나 주인마님만이 바보이고, 나는 바보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떻게든 바보하인이나 주인 마님 같은 바보는 면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바보를 면하기 위해서는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죽은 뒤 저 세상은 과연 있는 것인지 여러분들과 함께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난 해 늦가을 친구 몇 명과 함께 남산 등산을 갔다가 팔각정에서 한 동기생을 만났습니다. 그 동기생은 학창시절, 저하고 절친이었는데, 졸업 후에도 늘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1년에 두 세 번은 만나서 소주잔을 기우리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50대 중반 부터 그만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빚보증을 잘 못선 바람에 재산을 날리고, 대인기피증이 생겨서 사람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친구를 15년 만에 만났는데, 그 친구가 대뜸 한다는 소리가 “야, 니 와 이리 늙었노?”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나는 어디가면 내 나이로 안 보는데, 내가 보니 니가 더 늙었구만?’하는 생각이 번쩍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늙어가는 것은 잘 모릅니다. 남은 늙어도 자기는 안 늙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아야 하는데, 친구는 늙어도 자기는 안 늙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자 말자 달려가고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어 어디인지 아십니까? 기실(其實)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곧 늙어가고 죽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저를 비롯해서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이미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종착역이 저만큼 보이는 곳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인생의 종착역이 어디인가요? 그것은 제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는 말이기에 하지 않겠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시간은 돈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만 시간은 곧 생명입니다. 하루가 지났다는 것은 내 생명이 하루 단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것은 내 생명이 일 년 단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해방 직 후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수명은 50살을 겨우 넘었다고 합니다. 내가 20대였던 50년 전만해도, 130여 호가 사는 우리 마을에 회갑을 넘긴 남자는 다섯 손가락을 곱을 정도였고, 부모가 회갑 때가지 살아 계시면 큰 경사로 알고, 온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함께 축하해 마지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인생은 육십부터', ‘육십은 청춘'이란 말이 있듯이, 회갑나이는 노인 축에 끼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회갑연을 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고, 그 대신 칠순ㆍ팔순 잔치를 많이 하고 있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 100세 시대, 100세 시대 하니까 모두들 100세까지 사는 줄 알고 있는데, 80세까지 사는 것도 대단한 행운이요 축복인 것 같습니다. 2020년 5월,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총인구는 5180만 1449명이고, 그 중 남자가 2586만 1116명이고, 여자가 2594만 333명으로 남자보다 7만 9317명이 더 많으며, 한국인이 7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86%, 75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54%, 8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30%, 85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15%, 9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생존할 확률은 5%라고 합니다. 즉, 80세가 되면 100명 중 30명, 85세가 되면 100명 중 15명, 90세가 되면 100명 중 5명만 살아남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99세까지 생존한 사람은 648명뿐이라고 하는데, 너나없이 100세까지 산다는 착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 수명은 79세, 여자의 평균 수명은 85세라고 합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6년이나 오래 사는 것은 전문가들은 남자가 여자보다 사회생활이 길고 경쟁이 심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또한 여자가 남자보다 스트레스 대처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자의 경우, 괴로우면 울기도 하고 남편에게 바가지도 긁고 맘껏 감정을 표출해 스트레스를 풀지만, 남자의 경우는 괴로워도 참는 경우가 많아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흡연이나 과음을 하기 때문에 여자가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의학자들은 향 후 10년 이내에 현대의학으로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암이나 에이즈를 완전 정복하고, 20년 이내에는 인간의 수명을 120세까지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학이나 유전공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흐르는 시간은 잠시도 멈추지 않습니다. 잠시 잠깐이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됩니다. 그러는 사이 해가 거듭되면 병들어 결국은 길기만 한 것 같은 인생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이 세상에 확실한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현재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현재 살아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도 부인할 수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나와 내 가족의 죽음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은 나면 반드시 죽기 마련입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입니다.
한국인의 사망률 1위는 각종 암으로 인한 사망(26.3%)이고, 2위는 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13.9%)이며, 3위는 급성심근색으로 인한 사망(7.3%)이라고 합니다. 늘그막에 암이나 뇌출혈로 쓰러진다면 본인의 고통은 말 할 것도 없고, 간병하는 가족들이 겪는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몇 년 전 ‘구구팔팔 이삼사'란 건배사가 크게 유행을 하였는데, 이 말 속에는 구십 구세까지 병치레 안하고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아픈 뒤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 건배사대로 되었으면 오직 좋겠습니까만 인생사가 어디 뜻대로 되는 것입니까?
장조류 이야기
옛날에 장조류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장조류의 소꼽친구 중에 도인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 스님이 선정 삼매에 들어보니 장조류의 명(命)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장조류를 찾아가서 권했습니다.
"여보게 친구, 자네도 이제 염불도 좀 하고 참선공부도 좀 하게."
"나도 그럴 생각이라네, 그런데 다음의 세 가지를 다 이루고 난 뒤 그렇게 하겠네."
"그 세 가지가 뭔가?"
"첫째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좀 더하여 돈을 벌이는 것이고, 둘째는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내는 일이고, 셋째는 아들딸들이 잘 사는 것을 보는 일이라네."
오늘 여기 계시는 분들에게 누가 이런 권유를 해 온다면(인생 공부 좀 하라고 한다면), 아마 장조류와 별반 다름없는 대답을 할 것입니다.
장조류의 첫 번째 대답은 아직은 돈을 좀 더 벌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위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장조류가 농사꾼인지, 장사꾼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그 아직-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죽을 때까지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장조류나 우리들이나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대게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고,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이러한 부모님들의 마음을 알기나 할까요? 그리고 그렇게 알뜰살뜰 모아서 자식에게 물려준다고 한들 그 재산이 얼마나 오래 갈지도 의문입니다. “머니(돈), 머니해도 머니가 제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돈이라고 하는데, 왜 돈을 돈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돌고 도는 것이 돈이라고 해서 돈이라고 한답니다.
저승에서 현대 정주영회장이 삼성의 이병철 회장을 만났는데, 정주영 회장이 이병철 회장에게 “형님 버스비가 없어서 그러니 500원만 빌려 주세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니까 이병철 회장이 무엇이라고 대답했는지 아십니까? “자네도 이승에 올 때(죽은 뒤에는 저승이 이승이 되고, 이승이 저승이 됩니다), 돈 한 푼 못 가지고 왔나?. 나도 한 푼도 못 가지고 와서 무일푼이라네.”라고 대답 하더랍니다.
옛말에 3대가는 부자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재물이란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을 뿐 영원히 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승 갈 때 한 푼도 가져 갈수 없는 것이 또한 재물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지 않습니까?
재물뿐만 아니라 명예나 지위 또한 영원히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내가 그 직을 맡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영원히 국회위원 줄 알고, 시장인줄 알고, 경찰서장인줄 알고 목에 힘주고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을 많이 보는데, 이런 사람은 아직까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은 돈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올바른 생각, 올바른 인생관과 가치관을 심어주는 일일 것입니다. 즉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고, 웃어른을 받들 줄 알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심어주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 줄 참된 유산이 아닐까요?
장조류의 두 번째 대답은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내는 것이고, 세 번째 대답은 아들 딸들이 결혼하여 잘 사는 것 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모든 부모님들의 공통된 바램 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우리 때에는 결혼이란 무조건 해야 되는 것인 줄 알았지만, 요즈음 젊은이들은 결혼이란 필수조건이 아니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며, 좋은 사람(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혼자 살지 억지로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할 것입니까? 자식도 품안의 자식이라 했습니다. 다 큰 자식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고, 또 해서도 안 됩니다. 또 어렵사리 결혼시켜 놓아도 첫손자 볼 때까지는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이혼율이 세계 1위라고 하니, 서로 다투기만 해도 혹시 갈라서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이래저래 부모님들은 자식 문제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한 옛 말이 하나도 허튼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좀 옆길로 갔습니다만, 도인 스님은 친구인 장조류에게 아무리 권해도 소용이 없음을 알고 그냥 절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장조류가 사망했다는 부고장이 날아왔습니다. 스님은 문상을 가서 조문하기를,
“나의 친구 장조류여! 내가 참선, 염불을 하라고 했지
그러니까 친구는 세 가지를 다 이룬 뒤에 한다고 했지
염라대왕 그 양반 분수가 어지간히 없네.
세 가지 일을 마치기도 전에 갈고리로 끌고 가다니.“
스님의 조문은 염라대왕을 나무라는 듯이 지었지만, 세상일에 매달리다 보면 인생 공부를 할 시간이 없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불시에 저승사자가 밀어 닥칩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후다닥 정신을 차려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입니까?
죽은 뒤 저 세상은 있는가?
육신의 죽음은 생(生)의 끝인가. 또 다른 생의 연속인가? 저 세상(천당과 지옥)은 정말 있는 것인가? 윤회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이 문제는 정말 난제요 수수께끼요 아포리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형이상학적인 문제로써, 과거에는 철학과 종교에서 다루었으나, 18세기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사후의 문제는 논증할 수 없는 것’이라 하여 철학에서 제외시켜 버림으로서, 오늘날에는 종교의 영역에서만 다루고 있습니다.
“내세가 있기는 뭐가 있어? 나쁜 일 하지 말고 착한 일 하라고 공연히 지어낸 이야기이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하루살이가 어떻게 내일이 있음을 알겠으며, 가을 한철 사는 메뚜기가 어떻게 이듬해 봄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까? 인간은 그 알량한 지식으로 죽으면 그만 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4대 성인이라면 석가ㆍ공자ㆍ소크라테스ㆍ예수를 들고 있는데, 소크라테스는 신을 모독하고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명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그의 친구 크리톤이 찾아와서 관리들을 매수하여 두었으니 탈옥할 것을 권유하자 “내가 아테네 법을 위반하고 탈옥하게 되면 죽어서 심판받는 저승법[하데스법]을 위반하게 되는 것.”이라며 기꺼이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이란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겨가는 것이고, 이승을 떠나 저승에 모두 모여 있을 헤시도오스(고대 그리스의 시인)와 호메로스(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쓴 고대 그리스의 작가)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야 소크라테스는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고 한 것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저승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신의 피조물로 보았습니다.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신이 만들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에도 남자는 남자의 육체, 여자는 여자의 육체, 그리고 유아로서 죽은 사람은 성인의 육체를 가지고 승천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천당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지만, 이때에 그렇게 가는 것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따라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당에 갈 수 있는가? 그 선결조건은 철저한 믿음, 무조건적인 믿음입니다. 그럼 기독교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이 구세주(救世主) 임을 믿어야 하고, 성령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여 태어난 것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이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과 하늘로 승천하신 것, 그리고 이 세상에 다시 심판하러 오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으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고, 이걸 믿지 못하면 기독교인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입장이 다르고, 개신교 내에서도 사뭇 다릅니다. 가톨릭에서는 전통적으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함께 선행을 실천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루터는 “인간은 선행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신앙〕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였고, 칼뱅은“인간의 구제 여부는 전지전능한 신의 자의에 의하여 미리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설(豫定說)을 내세웠습니다. 16세기 초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반발을 계기로 벌어진 이 논쟁은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서며 종교 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칼뱅이 예정설을 내세운 이유는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무조건 천당에 간다면,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하는 기독교의 교리와 모순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컨대 수능350점을 받으면 서울대학교에서는 그 학생을 불합격시키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도 어쩔 도리가 없이 그 사람을 천당에 보내 주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에, 칼뱅은 천당에 가고 못 가고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으며, 그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설을 내세웠던 것입니다.
공자님은 살아 계실 때, 십대제자의 한 사람인 자로가 하루는 공자에게 “우리가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하고 물으니, 공자께서 대답하기를 “금생의 일도 다 모르는 데, 내생의 일을 어찌 알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유교는 매우 현실적입니다.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유교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교에는 내세관이 없기 때문에 유교를 종교라고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지금까지 늘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공자는 내세(來世)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도(道)’를 통한 죽음의 극복은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현세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올바르게 살지 못하는 것보다 의롭게 죽는 것이 가치 있는 삶으로써 도(道)가 생명보다 더 중요함을 강조하였고, 모름지기 군자(君子;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는 인(仁)과 의(義)를 위해서는 살신성인(殺身成仁: 자기 몸을 희생하여 인을 이룸)하거나 사생취의(捨生取義; 목숨을 버릴지언정 의를 따름)를 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유교에서는 생명과 죽음은 모두 영원한 기(氣)의 취산(聚散)일 뿐으로, 태어나거나 생겨난다는 것은 곧 기(氣)가 한데 엉기는 것이고, 죽는다거나 없어지는 것은 기가 흩어지는 현상으로 생각하였으며, 이를 생사와 같은 이치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삶과 죽음을 기(氣)의 모임과 흩어짐으로 보는 유교에서는 영혼의 불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이 태어난 다는 것은 음양의 정기가 모여 물질을 만들고, 죽는다는 것은 혼(魂)이 올라가고 백(魄)이 내려가 흩어져 변하는 것입니다. 결국 영혼이 불멸하여 천당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왜 제사를 지내는지 묻자 않을 수 없습니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죽음과 동시에 혼백이 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혼백이 사라질 때까지 제사를 지내주는 것이 자식으로서의 도리라고 보았습니다.
그럼 제사는 몇 대까지 지내야 하는가가 문제인데, 조선 초기 양반가문에서는 4대 봉사를 하였고, 일반 평민은 2대 혹은 3대 봉사, 천민은 부모 봉사만 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살림살이가 궁핍해진 일부 양반들이 족보를 사고팔아 양반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 조선 초기 양반의 숫자가 2%에 불과했던 것이 조선 후기에는 70%를 상회하였고, 이에 따라 3대, 또는 4대 봉제를 지내는 가문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조부모ㆍ부모까지 2대만 제사를 지내는 가정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도교는 노자ㆍ장자의 도가사상과 민간 종교로서의 도교와 구별이 됩니다. 도가사상은 자연과 인간의 긍정적 조화인 무위자연(無爲自然), 즉 스스로 함이 없이(無爲)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추구하는 삶, 즉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대자유인이 되는 것이 목표였지만, 도교는 도가사상에다 중국 전래의 신선술ㆍ불교사상ㆍ음양오행설ㆍ참위설[미래예언설] 등을 가미하여 불로장생의 신선이 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도가의 장자는 그의 처가 죽자 장자가 토기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문상을 간 혜자가 이를 보고 "한 평생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처가 죽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하자, 장자는 "그렇지 않다. 내 처가 죽은 것이 이것이 처음이라면 어찌 처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본디 근본을 생각하면 본래 죽음이란 없는 것이다. 그러하니 내 어찌 소동을 피우며 통곡하고 슬퍼하겠는가? 그런 짓은 사리를 분별치 못한 행위이니, 이 때문에 곡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장자의 생사관은 불교의 윤회사상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불교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을 불일불이(不一不異; 같은 것도 아니며, 또한 다른 것도 아니다)라고 봅니다. 즉 삶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과 죽음을 하나(生死一如)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마음과 육신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또한 다른 것도 아니며, 마음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 육신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육신에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있기 때문에, 그 육신으로써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경우에 마음은 그 육신을 떠나는데, 이것이 죽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집을 짓고 살다가 그 집이 허물어져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새 집을 지어 이사를 가는 것처럼 마음이 육신이라는 집에 살다가 그 육신이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을 때 그 육신을 떠나는 것이 죽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떠나가는 마음은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를 되찾아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육신이 생전에 지은 업(業)의 전부를 고스란히 지닌 채 자신의 업에 맞는 새로운 몸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불교의 윤회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法華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 금생에 받은 것이 그것이다.
욕지래생사(欲知來生事)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 금생에 짓는 그대로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지, 콩 심은데 팥 나고 팥 심은데 콩 날리 없는 것처럼, 인과(因果)란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것입니다. 전생에 지은대로 금생에 그 과보를 받고, 금생에 지은대로 그 과보를 다음 생에 받고…이와 같이 전생을 거슬러 보아도 전생이 끝이 없고, 내생 또한 끝이 없는 것입니다. 이른 바 무시무종(無始無終)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탓할 것인가? 모두가 내 업보요 내 책임입니다.
숙종 때 재상 허묵과 그 아내 이야기
그럼 여기서 윤회전생에 관한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조선 숙종 때 허목이란 재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남인의 거두로서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 등 노론세력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유명한 사람인데, 포양 양포에 가면 허묵에게 쫓겨 귀양살이한 송시열의 유적이 남아있고, 포항시에서는 최근 그곳을 복원하여 관광 자원화하고 있습니다. 2018년 6월 달 신문에 허목이 쓴 글이 국보로 지정되었다는 신문 기사가 났던데, 그는 한석봉 못지않게 대단한 명필가였던 모양입니다.
허목은 벼슬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정승(좌의정)의 자리에 있었고, 살림은 풍족했으며, 더욱이 빼어난 미모를 지닌 아내를 두었습니다. 허묵은 어여쁜 아내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니 하인들이 저들끼리 수근 거리는 것이었습니다. 허묵은 하인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냐?”
하인 중에서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마님이 아니 계십니다.”
“마님이 아니 계시다니, 정녕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구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안 계셨습니다요. 소인들은 그 이상도 이하도 모르고 있사옵니다.”
허목은 아내가 쓰는 내당으로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과연 하인들의 말대로 그곳에는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중을 드는 몸종 아이는 분명 간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잠자리에 든 아내가 밤사이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감히 어느 댁이라고, 누가 야밤에 월장을 하여 보쌈을 해 갈수 있었겠는가? 그렇다고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진 것도 아닐 터였습니다. 그런데도 온데 간데 자취가 없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사랑하는 아내가 행방불명이 된 변고를 당한 재상은 사방으로 사람을 놓아 수소문했지만 종적이 묘연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갔습니다. 허목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아내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사가 된 그의 친구(박문수)가 찾아왔습니다. 어사 친구는 수인사가 끝나자 말했습니다.
“내가 재 너머 숯막을 지나오다가…”
“어서 계속하게…”
“숯 굽는 영감의 아낙으로 보이는 여자를 보았는데, 아무래도 자네 부인을 닮아 있더란 말일세.”
“뭐라구?”
“내가 잘못 보았는지도 모르지. 자네 부인이 숯장이의 아내가 되어 있을리는 만무하고…아마 얼굴생김이 비슷한 여자가 있었던 게야.”
어사 친구의 말을 들은 허목은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가 숯 굽는 영감의 아내가 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닮았다는 말만으로도 가서 확인을 해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허목은 기어이 재 너머 심산유곡에 있는 숯막을 찾았습니다. 그가 숯막에 당도해 보니, 숯 굽는 영감의 아낙은 허름한 옷을 입고 얼굴이 온통 숯검정으로 칠해져 있지만 자기 아내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마침 숯막에는 영감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그를 보자 깜짝 놀랐습니다.
“어째서 당신이 이곳에 와서 갖은 고생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요. 보쌈이라도 당한 것이요.”
“지금의 영감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그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일이요?”
“제 발로 영감을 따라 온 것입니다. 죄를 묻는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허목은 더욱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숯 굽는 영감의 마누라가 지체 높은 선비의 꾐에 빠져 영감을 버리고 야반도주를 했다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지만,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호의호식하며 잘 살던 반가(班家)의 아녀자가 자기를 사랑하는 남편을 버리고 도주하여 신분이 낮은 숯 굽는 영감과 살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부인도 자기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납득을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집을 나오던 날 밤, 저는 분명히 잠을 자기 위해 이부자리 속에 들었습니다. 그때 창문을 통해 ‘숯 사시오'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숯 사라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내가 언젠가 많이 들었던 목소리 같았고, 나를 밖으로 불러내는 목소리 같았습니다. 나는 지남철에 이끌리듯 밖으로 나와 숯장사를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이끌려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이곳에 당도하자 마치 전에 살았던 곳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곳에서 비록 굳은 일을 하며 구차하게 살고 있지만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평온하며 행복했습니다.”
허목은 당시의 법도에 따라 자기를 배반한 아내에게 벌을 내려야 마땅하겠지만 차마 아내를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이곳에 살지 말고 백리 밖으로 거처를 옮기시오. 이곳에 계속 있다면 남의 눈 때문에라도 나는 당신에게 벌을 줄 수밖에 없게 되니까요.”
말을 마친 허목은 돌아섰습니다. 그의 발걸음은 천근 무쇠를 매단 것처럼 무거웠습니다. 사랑하던 아내가 자신을 배반했는데, 여전히 아내도 자신도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산마루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자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정녕 무엇 때문에 아내는 자신을 배신했던 것일까?’ 그는 점점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을 잊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이르렀고 일순간 전생이 보였습니다.
전생에 자신(허목)은 선객(禪客)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탁발승이 되어 떠돌다가 바로 자기가 지금 앉아 있는 산마루의 바위에 앉아 쉬어 간 적이 있었습니다. 바위에 앉아 있으니, 이 한 마리가 스물거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는 바지를 뒤집어 이를 손으로 집어내었습니다. 스님이어서 차마 이를 죽일 수가 없어서 바위 위에 버리고 다시 길을 떠나갔습니다. 내버려진 이는 마침 이곳에서 머물다 간 산돼지의 몸에 붙어 생명을 연장했습니다.
이는 참선을 한 스님의 살을 뜯어먹은 인연으로 사람으로 환생하여 그 살을 뜯어먹은 세월만큼을 전생의 스님이었던 현생의 허목과 결혼하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선객(허목)이 이를 버렸으므로 지금의 아내도 허목을 버리고, 산돼지가 환생한 숯 굽는 영감에게로 이끌려와 살게 된 것이었습니다.
윤회의 과학적 증명
그런데 근대에 와서 과학문명만이 아니라 정신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영혼이 있다는 것이, 윤회가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인과가 분명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윤회한다는 것이 오늘날에 와서 과학적으로 증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첫째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는 대개 두서너 살 되는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나는데, 아이들이 말을 배우면서 전생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곧 “나는 어느 곳에 살던 누구인데, 이러이러한 생활을 했다”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을 따라서 조사를 해보면 모두 사실과 맞다는 것입니다.
흔히 천재니 신동이니 생이지지(生而知之, 태어날 때부터 아는 것)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태어난 뒤로 한 번도 글을 배운 일이 없는데 글자를 다 아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이지지라고 합니다.
1993년(벌써 한 30여년이 지났네요), 4월16일 아침 8시 MBC TV에 부산에 사는 13살 된 정연득이란 아이가 출연하여, 일어로 물으면 일어로 대답하고, 영어로 물으면 영어로 대답하고, 중국어 러시아어 불란서어로 물으면 중국어 러시아어 불란서어로 대답하는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 아나운서가 “누구한테 배웠느냐?”고 물으니“아무한테도 배운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한국에 태어나기 전에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1968년 일본에서 개최한 동경올림픽경기를 직접 참관하였다고 하며, 그때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사실과 똑 같았습니다. 그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내 눈으로 직접 보았는데, 그때 그걸 보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때 TV에서 본 정연득군의 얼굴색은 마치 병자처럼 노랗게 보였고, 몸이 허약하여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가 중퇴하였다고 했는데(5개 국어를 하는데, 학교에 다닐 필요도 없겠지만), 금년 봄에 정연득이 TV에 또 한 번 출연 하였습니다. 정연군은 이제 어엿한 30대 중반의 모습이었고, 몸이 뚱뚱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지금 대구에서 살고 있는데, 텔레비전에 나온 이후 기자들이 하도 찾아 와서 숨어 지냈다고 하며, 이제는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몇 년 전 KBS 방송에 경북 안동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생인 여자아이가 출연하여 피아노를 치는데, 아나운서가“피아노 누구한테 배웠어요?”하고 물으니 “그냥쳐요."라고 답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연득 군이나, 안동에 사는 여자 아이는 배우지 않고 알고 있으니, 다 전생의 기억(전생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있으면 말해 보세요?.
이러한 전생기억에 대해 누구보다도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미국 버지니아 대학의 이안 스티븐슨 교수입니다. 이안 스티븐슨 교수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서 사실을 조사하고 확인하거나 다른 학자들을 보내어 조사토록 했는데, 1973년까지 2,000여건의 전생기억을 가진 사례를 조사하여 학계에 보고하고, 그중 대표적인 사례를 뽑아서 「윤회를 나타내는 20가지 사례」라는 책으로 출판하였는데, 어떤 사람이든 반대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두 번째, 차시환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내 몸뚱이는 아주 죽어 버리고, 남의 송장을 의지해서 다시 살아나는 경우입니다. 1916년 2월26일자 중국 신주일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중국 산동성에 최천선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무식한 석공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서른 두 살 되든 해에 그만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죽은 뒤 3일 후에 장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관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부랴부랴 곽을 열고 보니 죽은 사람이 살아나 멀뚱멀뚱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우리 아빠가 살았다.”
“아이구 여보.” 하며, 그 부모, 자식, 부인들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식구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라고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죽었다가 깨어나더니 정신착란이 되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수일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에 기운을 차리고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식구들을 못 알아보고, 또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주위에 붓과 벼루가 있는 것을 보더니 종위 위에 글을 쓰는데, 본시 최천선이라는 사람은 일자 무식꾼인데 글을 아주 잘 쓰는 것입니다. 그 글의 내용인 즉‘자기는 월남에 사는 유건중이라는 사람인데, 병이 들어서 치료하기 위해 어머니가 땀을 낸다고 두꺼운 이불을 씌워 땀을 내다가 그만 꼬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여기 이렇게 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월남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한자문화권으로, 말은 다르지만 한자를 쓰면 통합니다.
월남 사는 유건중의 육신은 죽어버리고 혼만 중국 산동성에 사는 최천선의 몸을 빌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가 기력을 완전히 회복한 후 중국말을 조금씩 가르쳐서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자꾸 전생에 살던 곳으로 갈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꾸 소문이 나서 중국 북경대학에서 데리고 가서 정신감정을 해 보았는데, 정신은 조금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한 월남에 유건중이라는 사람이 살다가 죽었는지 조회를 해보니 모두 다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참으로 희귀한 일이라 하여 중국 정부에서 이 사람에게 죽을 때까지 연금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최면을 걸어 전생을 알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분야에 유명한 사람은 영국의 케논 박사입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에서도 몇 년 전에 연예인을 대상으로 최면을 걸어 전생을 알아보는 프로를 방영한 일이 있었는데, 가령 스무 살이 되는 사람을 최면을 걸어서 열 살 때로 돌아가면 그때의 말이나 행동을 하며, 세 살 때로 돌아가면 세 살 먹은 어린 아이의 말과 행동을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50년 전에 어디 있었느냐고 최면을 걸면 성명이나 주소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고 맙니다. 그것을 조사하여 사실과 맞춰보면 모두 일치하는 것입니다.
케논은 1,382명에 대한 전생사례를 수집하여 학계에 보고하고, 1952년에「인간의 잠재력」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는데,「케논 보고서」 에 의하면 환자를 아무리 치료해도 병이 낫지 않아 최면을 걸어 전생회귀(前生回歸)를 해 보니, 그 병이 전생에서 넘어 온 것을 알고, 그 전생의 발병원인에 의거해서 치료하여, 병을 고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전생요법인데, 이 전생요법은 요즘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전생투시(前生透視, 불교에서 말하는 숙명통과 유사함)를 통하여 전생을 알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분야에 유명한 사람은 미국의 에드가 케이시인데, 에드가 케이시는 사람을 딱보면-사진만 보아도-전생을 알아내는 사람이어서, 사람들은 그를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라하여 기적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에드가 케이시는 2,500명의 전생을 조사하여 「초능력의 비밀」. 「윤회의 비밀」 이란 책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번역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책입니다.
그러면 죽은 뒤에 다음 생이 있고, 윤회를 한다고 할 때 어떤 법칙에 의해서 윤회를 하는가? 내가 내 마음대로 천당을 가고 지옥을 가고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는가? 에드가 케이시의 보고서에 의거해서 살펴보아도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내가 지은대로 받는다는 인과법칙(因果法則)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내가 아주 오래 전에 학생회 법회에 가서 윤회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한 학생이 일어나서 “방금 법사님께서는 윤회를 말씀을 하셨는데, 윤회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왜 윤회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라고 물으니까, 그 학생이 “죽고 나면 끝이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내 마음대로 하겠는데, 내생이 있고 인과가 있다고 하니 겁이 납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사에 자유자재한 스님들
이와 같이 우리 중생들은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 끝없이 나고 죽고, 나고 죽는 생사윤회를 되풀이 하고 있지만, 견성성불(見性成佛)한 이에게 죽음은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이요, 번뇌의 적멸이며, 법신(法身)의 탄생입니다.
근대 한국불교를 새롭게 일으킨 스님으로 방한암 스님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그 스님이 나이 겨우 일곱 살에 시골 서당에서 사략(史略)을 알고 있었습니다.
“태고(太古)에 천황씨(天皇氏)가 있었다.”
첫 대목을 읽던 소년은 선생님을 향하여 물었습니다.
“태고에 천황씨가 있었다고 하였는데, 그러면 천황씨 이전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당돌한 물음에 선생은 당황했습니다.
“그렇지, 천황씨 이전에는 반고씨가 있었지.”
소년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반고씨 이전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스승은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학의 어느 경전에도 그에 대한 해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암스님은 어릴 때부터 우주와 인간의 근원에 대해서 이렇게 회의하였으며, 어떤 것이든 해답을 얻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였습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22세 되든 해, 금강산에 있는 유점사에 찾아 들어가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경북 성주 수도암에서 한국불교의 중흥조라 일컬어지는 경허화상을 만나 가르침을 청하였는데, 화상은 금강경에 있는 한 구절을 인용하였습니다.
“범소유상(凡所有相)-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개시허망(皆是虛妄)-다 허망한 것이니
제상비상(諸相非相)-만약 형상있는 것에서 형상 없는 것을 알면
즉견여래(卽見如來)-곧 부처를 보리라.“
한암은 이 구절을 듣자 안광이 홀연이 열리면서 한 눈에 우주전체가 환히 들여다보였습니다. 그리고 듣는 것이나 보는 것이 모두 자신이 아님이 없었습니다. 아홉 살 때 서당에서 처음 가진 회의-반고 이전에 누가 있었느냐?-는 비로소 아침 안개 걷히듯이 풀렸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24세, 입산하여 3년째 되는 가을이었습니다. 도를 깨달은 한암스님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인연 있는 스님과 중생들을 제도하다가 50세 되든 해, 오대산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27년 동안 그는 동구 밖에 나오지 않은 채 76세의 나이로 일생을 거기서 마쳤습니다. 그는 오대산에 처음 들어올 때 소지했던 단풍나무 지팡이를 중대(中臺) 뜰앞에 꽃았습니다. 일영(日影; 해그림자)를 재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꽃인 자리에 잎사귀가 돋아 나와서 하나의 훌륭한 정자나무가 되었습니다. 지금 오대산 중대 앞에 서 있는 정자나무가 바로 스님의 지팡이였다고 합니다.
영주 부석사에는 의상대사가 꽂았다는 지팡이가 살아 있고, 순천 송광사에는 보조국사가 꽂았다는 지팡이가 살아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신라 고승과 고려 국사의 지팡이와 오대산 중대에 서 있는 지팡이나무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오대산하면 방한암 스님, 방한암하면 오대산이라고 할 만큼 오대산고 방한암 사이에는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오대산에 있는 사찰과 암자와 적멸보궁의 주변에는 한암의 면목을 전하여 주는 이야기가 많이 숨어있습니다.
1.4후퇴 때였습니다. 오대산 내의 모든 승려는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한암 만은 시자 두 세 명과 함께 상원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1.4후퇴 직전 월정사와 상원사를 포함한 오대산 내의 모든 사암과 민가들이 우리 국군의 작전상 소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적군이 머무를 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밤에 대원들을 이끌고 찾아온 장교는 절을 소각한다고 알렸습니다. 한암은 기다리라고 이르고 방에 들어가 가사와 장삼으로 갈아입고 나와, 법당으로 들어가 불상 앞에 정좌하고 난 뒤 합장하며, 장교에게 이제 불을 질러도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장교는 놀라면서 “스님 이러시면 어떡합니까?"라고 말하자, 한암은 “나는 부처님의 제자요, 부처님은 이런 경우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소. 당신은 어서 불을 지르시오."라며 조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그 장교는 한암의 인격과 거룩한 모습에 압도되고 감동 되어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부하에게 명령하여 법당의 문짝만을 떼어내 마당에서 불사르게 하고는 그대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이로 인해 상원사는 소실을 면했고 가장 오래된 동종인 국보 36호인 상원사 동종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1.4후퇴로 모두 피난을 떠난 지 두 달쯤 지나 1951년 3월 초 한암은 가벼운 병에 걸렸습니다. 병이 난 지 7일이 되는 날 아침, 죽 한 그릇과 차 한 잔을 마시고는 손가락을 꼽으며 “오늘이 음력으로 2월 14일이지."라고 말한 후 사시(오전 10시) 에 이르러 가사와 장삼을 찾아서 입고 선상(禪床)에 단정히 앉아서 태연한 자세를 갖추고 입적하였습니다.
옛날부터 득도한 분들이 모두 생사에 자재(自在)함은 그 경지가 이미 생사를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3조 승찬대사는 법회를 마치고 방에서 쉬다가 떠날 때가 됐음을 알고 바깥으로 나서 뜰을 거닐다가 나뭇가지를 잡은 채 임종했습니다. 경통은 스스로 장작더미에 올라앉자 불을 붙이고 소신(燒身)공양을 했습니다. 당나라 등은봉 선사는 어느 날 제자에게 “내가 앉아서 돌아가신 스님은 많이 보았다.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더냐?”하고 물었습니다. 제자가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러면 거꾸로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더냐?”하고 되물었습니다. 제자가 “그런 스님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하고 대답하자 “그르면 나는 거꾸로 서서 입적해야겠다.”라고 하면서 물구나무서기 한 채로 입적했습니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스님은 법상에 올라가 백문백답(百聞百答)을 하시고 난 뒤 “나 그만 갈란다."고 하시며 열반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왜색불교를 막아내고 선풍(禪風)을 크게 드날렸던 만공스님은 입적할 당시 저녁밥을 맛있게 들고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독백하기를 ”이 사람 만공! 자네와 나는 70년 동안 동고동락 해왔지만 오늘이 마지막일세. 그동안 수고했네.“하고는 요를 펴고 누워서 열반에 들었다고 하며,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성철스님은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성철스님은 화장을 하니 오색찬란한 사리가 130여과가 나왔다고 하며, 몇 해 전에는 백양사 방장 서옹스님이 가부좌한 채 열반에 든 모습이 메스콤을 통해 공개되어 세인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하였습니다.
죽음이 범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공포와 괴로움이 되고 있으나 보조국사나 한안선사같이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서는 아무런 거리낌이 되지 못합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만나더라도 밤이 잠이 들듯 아주 태연하게 죽을 수 있습니다.
신노인 9계명
지금까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죽은 뒤 저 세상은 있는지 알아보았는데, 그 결과, 종교마다 가르침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가르침이 진리인지 그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으로 돌리기로 하고, 오늘 이 자리를 빌려서 신노인이 지켜야 계명에 대해서 다 같이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노인이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늙어 감을 안타까워하고 좌절할 일이 아니라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생을 관조하면, 남은 삶이 여유로울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신노인은 다음의 아홉가지 계명을 잊지 말고 지키고 살면 여생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첫째, 자식에게 올인 하지 말아야 합니라.
내 인생, 자식인생 각각입니다. 내 노년을 책임져 줄 사람은 나와 나의 배우자(남편, 아내)의 몫입니다.
둘째, 며느리 잘 모셔야 집안이 화목합니다.
내 아들과 혼인하여 둘이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지 더 이상의 욕심은 화를 부릅니다. 내 아들이 귀하듯 며느리 역시 누군가의 귀한 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돈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합니다.
노인분들 중에 노령수당 30만원을 받으려고 재산을 자식들에게 사전 상속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늙어 갈수록 병원비 등의 지출이 늘어나므로 내가 죽을 때까지 내가 쓸 돈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내 주머니의 돈이 내 돈이지 자식에게 물려준 돈은 내 돈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넷째, 돈보다 먼저 건강입니다.
건강이 최우선입니다. 건강과 직결된 모든 것에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젊게 살려면 젊은이를 따라야 합니다.
젊게 살려면 스마트 폰도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정치 · 스포츠 · 취미 등, 눈과 귀를 열어두고 항상 열려있는 자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섯째, 미워도 내 사람이 제일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평생을 같이 할 사람은 배우자(남편, 아내)이므로, 배우자에게 잘해야 합니다.
일곱째, 뒤돌아보지 말고 남은 날들을 즐겁게 보내야 합니다.
지나간 일에 연연함은 정말 바보스러운 일입니다.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바꿀 수 있는 지금에 충실해야 합니다.
여덟째, 작은 것을 크게 기뻐합시다.
기뻐할 만한 일들이 그리 많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작은 것에 크게 기뻐함으로 의도적으로 더 많이 기뻐하고, 즐거운 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아홉째, 오늘 하루가 감사하면 일생이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살아 있음에 감사사하고, 친구가 있음에 감사하고, 그리고 갖 가지 모든 것에 긍정적 시각으로 보는 한, 우리의 하루는 감사함으로 넘칠 것입니다.
맺음말
지금까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죽은 뒤 저 세상은 있는지 알아보았는데, 그 결과 종교마다 가르침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가르침이 진리인지 그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으로 돌리기로 하고, 한 말씀만 더 드리고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이 10월 24일, 금년 한해도 이제 두 달 남짓 남았습니다. 새해를 맞이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금년 한해도 이제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세월이 더디게만 가는 것 같더니, 인생 60고개를 넘어서니 세월이 어찌 그리 빨리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어나면 아침이고 돌아서면 저녁이고, 월요일가 하면 어느새 주말이고, 월초인가 하면 어느새 월말이 되어 있고…세월이 빠른 것인지 내 마음이 급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30대 초 서산대사 휴정스님이 지은 『선가귀감』을 읽은 적이 있는데 "꿈만 꿈이 아니고 인생이 한바탕 꿈이다."라는 귀절을 읽고 '꿈은 꿈이고, 인생은 인생이지 왜 인생을 꿈과 같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더니, 이제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해마다 피는 꽃은 같거니와 사람은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모하는 것이 어찌 인간사(人間事) 뿐이겠습니까? 올해 핀 꽃도 엄밀히 따지면 지난해 피었던 꽃은 아닙니다. 만물은 끊임없이 유전(流轉)하고 모든 것은 물처럼 흐릅니다. 똑같은 시냇물에 두 번 다시 발을 씻을 수 없습니다. 흐르는 물이 다르듯이 발을 씻는 나 자신도 늘 변모합니다. 어제도 안녕, 오늘도 안녕, 내일도 안녕, 글세요? 내일은 기약이 없습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발부둥치며 살다 예고도 없이 부르면 모든 것 다 내려놓고 가야만 합니다.
오늘 못한 것은 내일 해야지, 내일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되지, 기회는 무한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바쁘게 살다보니 부모와 자식의 도리, 인간 도리를 제대로 못했는데, 앞으로는 잘 해야겠다고 다짐도 하고, 앞만 보고 열심히 살다보니 삶을 즐기지 못했는데 이제는 친구들과 어울려 즐기고, 가보지 못한 곳 여행도 하면서 즐겁게 살려고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떠나야 할 운명이 오면 갈 수 박에 없습니다. 천년만년 살 것 같지만 때가 되면 가야하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을 천금(千金)같이 귀하게 여기고 알뜰살뜰 살아야 합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보람있게, 뜻있게 보내야 합니다. 가끔은 친구도 만나 세상 이야기도 나누고, 어디 맛집이 있다면 찾아가서 사먹기도 하고, 내 몸이 허락하는 한 구경도 다니시며, 남은 인생 즐겁게, 재미있게, 행복하게 사시길 바라며, 이만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장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10. 경주시노인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