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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이미 신자였다면,
"저 유명한 박해자 사울이 우리 친척이다"라는 사실은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갈등이 있었을까?
가능성은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예루살렘 교회 초기 멤버였다면,
그렇다면 사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론입니다.
오히려 로마서 16:7이 보여 주는 것은
바울이 이 둘을 소개할 때 적대감의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라고 극찬합니다.
이 표현들 속에는 갈등보다 화해와 존경이 보입니다.
신앙적으로 더 흥미로운 장면
만약 과거에 정말 긴장이 있었다면,
복음은 그 긴장을 완전히 뒤집은 셈입니다.
과거:
이후:
심지어 바울은 자신을 그들보다 늦게 믿은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즉, 로마서 16:7은 과거 갈등의 증거라기보다, 복음이 원수와 같은 관계까지도 동역 관계로 바꾸었다는 증거로 읽는 것이 본문에 더 가까운 해석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가장 가능성 있는 그림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사울의 박해 시대를 겪었을 수는 있지만, 훗날 회심한 바울을 받아들이고 함께 사역하는 관계가 되었으며, 바울 역시 그들을 자신의 신앙 선배로 존중했다
는 정도입니다.
이 점은 초대교회가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박해자와 피해자가 한 공동체 안에서 화해하는 복음의 공동체였음을 보여 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