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호에서 이사금은 연장자 , 마립간은 대수장의 의미라고 보는데
다음의 삼국사기 기록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자.
<이사금>
유리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남해의 태자이다. 어머니는 운제부인이며, 왕비는 일지 갈문왕의 딸이다.[혹은 왕비의 성은 박씨이며, 허루왕의 딸이라고도 한다.] 애초에 남해가 사망했을 때, 유리가 당연히 왕위에 올라야 하는데, 유리는 대보 탈해가 본래 덕망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왕위를 그에게 사양하였다. 탈해는 "임금이라는 자리는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가 많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시험삼아 떡을 깨물어 보았다. 그 결과 유리의 이 자국이 많았으므로 즉시 측근들과 함께 그를 받들어 왕위에 오르게 하고, 왕호를 이사금이라 하였으니, 옛부터 전해오는 말이 이와 같았다. 김 대문은 "이사금은 방언이다"라고 말했다. '이사금'은 곧 '이의 자국'이란 말이다. 이전에 남해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에게 "내가 죽은 뒤에는 너희들 '박'과 '석' 두 성을 가진 사람 중에 나이 많은 자가 왕위를 이으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후에 김씨 성이 또한 흥기하였으므로, 세 성씨들 중에 나이많은 자를 선택하여 왕위를 잇도록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왕을 이사금이라고 불렀다.
삼국사기 유리이사금
<마립간의 유래>
눌지 마립간[김 대문은 "'마립'은 방언으로는 '말뚝'인데, 말뚝은 곧 함조를 뜻한다. 이는 직위에 따라 놓는 것이니 즉, 왕 말뚝이 중심이 되고 신하 말뚝은 그 아래에 나열한다. 이를 빌어와 왕의 명칭으로 삼았다"라고 말했다.]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내물왕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보반부인[내례길포라고도 한다.]이며, 미추왕의 딸이다. 왕비는 실성왕의 딸이다. 내물왕 37년에 실성을 고구려에 인질로 보냈는데, 실성이 돌아와 왕이 되고 나서 내물이 자기를 외국에 인질로 보낸 것을 원망하였다. 그는 내물의 아들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원한을 풀고자 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 고구려에 있을 때 서로 알고 지내던 사람을 불러와 은밀히 그에게 "눌지를 보거든 죽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눌지를 가게 하여 도중에서 그와 마주치도록 하였다. 고구려 사람이 눌지를 보니 외모가 쾌활하고 정신이 고상하여 군자의 기풍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그대의 국왕이 나로 하여금 그대를 죽이도록 하였으나 이제 그대를 보니 차마 죽일 수 없다"라고 말하며 돌아갔다. 눌지가 이를 원망하여 도리어 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눌지왕
*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삼국사기에는 눌지왕부터 마립간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국사시간에는 내물왕때부터 마립간 칭호를 사용하였다고 하니 말입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제19대 눌지(訥祗), 20대 자비(慈悲), 21대 소지(炤知), 22대 지증(智證) 등 4대의 임금을 마립간이라 하고 있는데, 삼국유사에서는 제17대 내물왕(奈勿王)부터 22대 지증왕까지 6대의 임금을 마립간이라 하였습니다.
교과서에서 삼국유사쪽 기록을 받아들인 것은 아마 내물왕 때의 왕권강화, 신라 발전상을 참작한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