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는 인류가 발명한 수많은 발명품 가운데 단연 으뜸이 아닐까. 무동력 이동수단으로 친환경적이고 탄소 배출도 없으며, 하체를 단련하는 운동기구로도 각광받고 있다.
벌써 칠팔 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사내아이들은 서너 살만 되어도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한다. 세 발자전거는 시시해지고 두발자전거로 옮겨가려 한다. 어쩌면 남자아이들에게는 몸을 움직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본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는 열두 살 손주에게 두 발자전거를 사주었다. 물론 처음부터 두 바퀴짜리는 아니었다. 보조 바퀴를 달았으니 네 발 자전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한 일 년쯤 타다 보면 보조 바퀴를 떼어내고 두 바퀴 자전거도 능숙하게 탈 수 있다.
두 발자전거를 배우던 때에는 몇 번이나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며 따라다녔다. 헉헉거리며 쫓아가는 나는 힘들었지만, 아이는 뒤에서 받쳐주는 할아버지의 손길을 느끼며 조금씩 균형을 익혀갔다.
얼마 후 아들 집에 갔더니 아파트 앞마당에서 혼자 힘으로 두 발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나를 보자 손을 흔들며 씩씩거리면서도 신이 나서 더 빨리 페달을 밟았다.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의 가슴속에 가족의 사랑도 함께 자라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할아버지가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던 순간을 기억할까.
문득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은 대부분 단편적인 파편으로 머릿속 깊숙이 잠겨 있다. 그런데 칠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어찌 그 장면은 아직도 선명한지, 참 신기하고도 얄궂은 일이다.
그때는 세 발자전거가 무척 귀했을 것이다. 어린 눈에 자전거가 얼마나 타고 싶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간다.
나는 현인동 언덕길 중간쯤에 살았다. 언덕 위 동네에 올라가 친구들과 놀곤 했다. 어느 날 친구가 타던 자전거를 골목에 그냥 놓고 간 모양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 자전거를 타며 놀다 질질 끌어 우리 집 대문 앞까지 가져다 놓았다. 잠시 후 꼬마 친구가 와서 자전거를 끌고 가려하자 나하고 승강이가 벌어졌다. 서로 자전거를 사이에 놓고 자기가 자전거 임자라고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어머니가 오시더니 낯선 자전거를 보시고, 더군다나 서로 싸움을 하니 화를 벌컥 내셨다.
“이 자전거 네 것이냐?”
당연한 질문이었다.
네 살짜리 아이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거짓말로 둘러댔다.
“길에 있어서 가져왔어.”
어머니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대답이었을 것이다. 빗자루로 종아리를 사정없이 때리며 크게 꾸짖으셨다. 나는 그날 울음을 한 바가지 쏟았을 것이다.
엉뚱한 자전거 사건은 어머니의 사과와 자식을 혼내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저녁에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이미 어머니에게 실컷 혼난 나를 더 이상 꾸짖지 않으셨다. 그렇게 자전거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이삼일 후였다.
저녁에 들어오신 아버지 손에 빨간색 세발자전거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사 오신 장면은 사실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나중에 나보다
일곱 살 위 형님이 기억해 내게 말해주어서 알게 된 사실이다.
형님은 팔순을 넘긴 지금도 둘째로 태어난 것이 서운한가 보다. 여전히 나만 보면 이런 말씀을 하신다.
“큰형은 장남이라고 대접받고, 너는 막내라고 사랑받고, 나는 중간에 끼여 위아래에 치여 서럽게 컸다.”
웃으며 하시는 말씀 속에는 자전거에 대한 어린 시절의 서운함이 아직도 조금은 남아 있는 듯하다.
어쨌든 나는 그때 세발자전거를 타며 골목을 누볐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잘못된 행동을 다부지게 꾸짖었던 어머니의 사랑의 매와, 말없이 자전거를 사주셨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함께 받으며 그렇게 자랐다.
아버지가 사주신 빨간 세발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누비던 네댓 살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시간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다만 그 시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있다.
돌이켜보면 세발자전거의 앞바퀴는 어린 시절의 나였고, 두 뒷바퀴는 어머니와 아버지였던 것 같다.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두 분이 양옆에서 든든하게 받쳐주셨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골목길에서 서너 살배기 꼬마들이 세발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눈을 뗄 수가 없다. 아이의 작은 몸과 덜컹거리는 바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래전 그 골목길을 달리던 어린 내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아이의 뒤에는 여전히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 계신다.
아마 부모님은 오래전에 떠나셨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세발자전거의 두 뒷바퀴가 되어 나를 받쳐주고 계신 모양이다.
첫댓글 세발 자전거의 추억에서 이어지는 부모님과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부모님의 사랑과 가족들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게하는 글입니다.
이젠 손주들도 세발 자전거를 이미 졸업했으니, 참 옛날 이야기를 소환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