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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성경을 불태우고
"기독교인을 학살하자"고
선동해라!
“하나님은 시련과 고난을 통해 참회-지혜-믿음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일제시대는 신의 섭리에 의한 시련과 고난의 시기였습니다.
그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는 영글었고 강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일본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취지로 문창극이,
자신이 장로로 있는 교회(온누리교회) 안에서
교우들을 상대로 했던 설교 연설에 대해,
KBS는,
“일제시대를 신의 섭리라고 했다. 친일이다”
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드디어 노영민(새민련 의원, 충북 청주)이 본색을 드러냈다.
“문창극은 광신도이다!”
시련과 고난을 포함한 역사 전체를 [신의 섭리]로 보는 것이야말로
성경 구약의 본질이다.
유대 민족이 인류에게 제공한 텍스트 중 가장 의미깊은 텍스트인 구약의 멘탈이 바로
“시련과 고난을 포함하는 역사 전체를 신의 섭리로 보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교우들을 상대로,
이같은 성경 구약의 본질에 따라 설교 연설을 한 것을 두고,
“친일파닷!!!” 혹은 “광신도닷!!!”이라고 말하는,
KBS와 노영민!
너희에게 권한다.
차라리 이렇게 외쳐라.
“성경을 불태우자!
기독교를 잡아 죽이자!”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을 상대로,
기독교의 언어로,
기독교의 신에게 바친 장소에서 이야기한 것을 두고,
도덕적 심판을 하려는 너희!
너희는,
감히 기독교의 근본 정신을,
너희의 알량한 도덕의 잣대에 올려 놓고 있는 것이다.
1. 노래도 금지곡으로 할래?
SBI 저축은행 광고에는
노래 Rivers in Babylon이 나온다.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 we wept,
when we remembered Zion...
They carried us away in captivity requiring of us a song...
Now how shall we sing the Lord's song in a strange land?
1970 년대말 그룹 Boney M이 부른 이 노래는,
플래티넘 상을 받았다.
Boney M은 자메이카 출신들이다.
가사는 성경 '시편 137'에서 따왔다.
노래의 맛을 살려서,
잠시 성경을 잊고 노래 뜻을 의역하면 이렇다.
필자 주 :
나는 교회에 안 다니니까, 이런 의역을 해도 야단 맞지 않는다.
아, 이곳 바빌론의 강변
여기 우리 앉아 있네. 울며 앉아 있네. 고향 시온을 생각하며 울며 앉아 있네.
우리를 짐승처럼 묶어 이곳으로 끌고 온 그들..
우리더러 노래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윽박지르며 낄낄대네...
아, 그러나 우리의 노래는 모두 하나님을 위한 노래들...
이 낯선 곳에서 짐승으로 묶인 우리..
이미 하나님의 노래를 부를 자격 없다네..없다네..
이게 참된 기독인이 시련과 고난을 보는 관점이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짐승으로 살게 되었을 때...
"하나님,
당신은 사기꾼이야!
우린 당신을 믿었어!
그런데 이게 보상이야?
이게 정의야?
당신을 증오해!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렇게 패악을 부리는 대신에,
"저는 이제 한 마리 짐승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제게는 당신을 위한 노래를 부를 자격이 없습니다.
저희가 죄를 많이 지어서
이 시련과 고난을 겪는 것이겠지요?
이 시련과 고난에는
당신의 깊은 뜻과 섭리가 있는 것이겠지요?
저에게 참회를 가르쳐 주시고,
시련과 고난을 이겨낼 지혜를 주십시오."
라고 말한다.
문창극은 이 같은 관점에서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또한 그는,
“우리는 그 시련과 고난을 통해 영글었고 강해졌다"라고 말했다.
KBS의 눈알에는,
이게 '친일'인가?
노영민의 눈알에는,
이게 ‘광신도’인가?
이는 마치,
“너희 중 죄 없는 자는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했던 예수의 말을 비틀어,
“예수란 자가,
여자를 돌로 쳐죽이자고 선동했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으며,
“내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고 했던 충무공의 말을 비틀어,
“죽는 순간까지 부하에게 거짓말을 지시했다.
도덕성이란 조금도 없는 자이다”
라고 모략하는 것과 같다.
KBS와 노영민은,
이제 노래 Rivers in Babylon을 금지곡으로 만들고,
성경 '시편'을 금서로 만들 기세다.
그리고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경을 불태우고 ‘예수쟁이’를 학살하자!~~"
라고 악을 쓰며 낫을 들 기세다.
▲ 2012년 내한 공연을 한 보니엠은 탈북자 인권보호에도 열심이다. 2012년 4월 서울 옥인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북송 반대를 외치며 단식하던 박선영 전의원 농성장을 방문해 지지를 약속하며 탈북자들을 위한 노래를 불렀다.ⓒ뉴데일리
2. [동방 예루살렘]이 한국 기독교의 코드이다
1912년 12월,
워싱턴 D.C.의 포와탄 호텔.
한 달 전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우드로 윌슨을 당선시킨 미국 사회의 범털들이 모였다.
그 전 해에 105인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었던 우남(이승만)은,
간신히 미국으로 건너와서
105인 사건에 대해 미국이 일본에 압력을 행사해서,
1심 재판에서 가혹한 고문과 선고를 받았던 사람들을 풀어 주게 만들 것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눈치를 많이 보던 나라였다.
필자 주 :
▲ 1890년대부터 죽을 때까지 영어 일기를 쓴 윤치호.
그의 영어 일기는 우리글로 번역되어 출간되어 있다.
우남은,
포와탄 호텔에 모인 미국 정재계의 범털들 앞에서
한반도의 상황을 알리는 연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우드로 윌슨이 1908~1910년에 그의 은사였기 때문이었다.
우남이 미국 아비이리그 명문대학 프린스턴에서 고학생활을 하던 시절
당시 총장이었던 윌슨은,
우남으로 하여금
주말에 빵빵한 미국 교회에서
"한반도 이야기"란 제목의 연설을 하고 다니며
돈을 벌수 있도록 만들어 준 장본인이다.
필자 주 :
우남은,
이때 슬라이드 필름--요즘으로 치자면 파워 포인트--을 사용해서 연설하곤 했다.
우남은 이런 취지의 비애를 토로했다.
"나는 왜 한국이 독립해야 하는지에 대해 더 이야기 하고 싶은데...
청중은 한국의 민속에 대해 더 듣고 싶어했을 뿐이었다."
포와탄 연설에서
우남은 이렇게 부르짖어
미국 정계 지도자들을 놀라게 만들었고,
미국 감리교 본부와도 심각한 마찰을 빚었다.
"유대민족은 서양에게 기독교를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은 아시아에 기독교의 모델 케이스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는 이미 사도 바울에 비견될 인물이 존재합니다.
손정도 목사가 바로 한국의 바울입니다."
필자 주 :
이는 연설에서 떠들 소리가 아니다.
1910년대 당시 유대인은 3류-4류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시기에는
동유럽쪽에서 너무 많은 유대인들—
이들을 ‘아슈케나지’라 부른다—
이 미국으로 밀려들고 있던 시기여서,
유대인들에 대한 미국인의 반감이 매우 높았었다.
이 역시 서양인들의 관점에서는 기겁할 소리다.
사도 바울은 '여러 사도 중의 한 명'이 아니다.
기독교 교회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이다.
그래서 현재의 기독교를 '바울노선'(Pauline)이라 부른다.
아득한 옛날에는 바울노선 말고도 다른 노선들이 있었다.
대부분 나중에 이단으로 치부되었다.
예를 들어
"가롯 유다는 예수를 배신한 것이 아니다.
예수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원하여,
가롯 유다를 시켜 배신을 연출했다"는 내용을 믿는 일파는
대표적 이단이 되었다.
또한 "기독교는 유대의 생활관습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평화주의자들 나자린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필자 주:
손정도는,
문창극이 온누리교회 연설에서 사례를 인용한 간도의 명동학교를 만든 김약연 목사와 함께,
조선후기-일제초기의 대표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꼽힌다.
김약연은 함경도를 대표하고,
손정도는 평안도를 대표한다.
손
▲ 손정도 목사의 아들 손원일 제독 흉상
▲ 사진 왼쪽부터 손정도, 이동녕, 이시영, 이동휘, 이승만, 안창호. (사진출처=국가보훈처)
"한국의 기독교는 다른 여러 나라의 기독교와 달리 매우 특별하다"라는 생각은
이 땅에서 기독교가 뿌리박던 시절부터 존재했다.
이는 미국 선교사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위대한 인문학자였던 선교사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는,
성경 번역에 있어
야훼를 '하나님'이라 부를 것을 강력 주장해서 관철시켰다.
신의 이름은 고유명사이다.
고유명사는 번역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중국 성경에서 야훼는 '화화'(和華)로,
일본 성경에서는 '예호바'로,
발음으로 표기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하나님'이라 번역되었다.
야훼를 ‘하나님’으로 번역하게 만든
헐버트의 주장은 이런 취지였다.
"한국인은 특별하다.
얼핏 보면 이들은 다신교를 믿어 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깊게 들여다 보면,
이들은 아득한 고대로부터 유일신을 믿었다.
그 유일신의 이름이 [하나님]이다.
성경을 번역함에 있어,
야훼를 [하나님]으로 번역해야 한다."
필자 주 :
그는 우남의 평생 동지였다.
그는 한국을
자신의 ‘영혼의 조국’이라고 생각했기에
1949년 임종을 위해
여든 일곱의 노구를 이끌고 배를 타고...
(당시엔 태평양을 횡단하는
민간 항공기가 없었다) ▲ 헐버트는 한강변 양화진 외국인묘역에 안장됐다.ⓒ국가보훈처
한국에 와서 청량리 병원--
당시 가장 시설이 좋은 병원 중 하나였다--에 입원한지 1주일 만에 숨졌다.
우남은 이때 그를 무려 세 번이나 방문했다.
헐버트의 장례는 대한민국 최초의 사회장으로 치러졌으며
그의 묘는 서울 마포 한강변의 양화진에 있다.
한국에서 죽기 위해 미국을 떠나기에 앞서
헐버트는 친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한다”
"한국의 기독교는 특별하다.
특별한 사명이 있다.
아니,
한국 자체,
그 겨레 자체에 특별한 사명이 있다."
이 생각이야말로 한국 기독교의 가장 [내밀한 코드]이다.
이를 [동방 예루살렘]이라고도 한다.
이날 우남이 했던 포와탄 연설을
생생한 어감으로 바꾸어 번안하면 이렇다.
"기독교가 뭡니까?
당신들이 그토록 멸시하는 유대인이
서양인에게 선물한 종교 아닙니까?
당신들은 원래 잡신(pagan) 신앙이었지 않습니까?
이제 당신들이 그토록 하찮게 보는
우리 조선인들이 무슨 일을 해 내는지 보십시오.
조선은 동방 예루살렘입니다.
우리에겐,
기독교를 일으켜 세운
사도 바울의 역할을 할 사람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우리 조선인에 의해,
아시아에서 가장 보편적인 종교가 될 것입니다.
독립 한반도는 아시아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 젊은 시절의 우남 이승만.
▲ 1912년 12월 포와탄에서 우남이 한 연설에 대한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한국의 기독교야말로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민족을 위해
신이 특별히 준비하신 것이다"
그렇다.
이같은 [동방 예루살렘] 사상이,
바로 우리 기독교의 가장 [내밀한 코드]이다.
이 [내밀한 코드]의 흔적은 여기 저기 남아 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목사가 설교할 때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신약 보다는 구약을 가지고 설교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상하지 않은가?
기독교 사상의 정수가 예수의 '말씀'이라면,
구약보다는 신약을 가지고 설교하는 경우가 많아야 하지 않은가?
구약설교가 많은 까닭은,
은연중 한국인과 유대인을 같은 문맥에 놓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신에게 특별한 나라이며,
한국인은 신에게 특별한 존재이다.
신은,
한국인에게 무엇인가 특별한 소명을 부여하시려
준비하고 계시다"
[동방 예루살렘]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이 같은 ‘운명적 예감’이야말로 한국 기독교의 본질적 코드이다.
3. 너희는 기독교인을 겨냥한 독신(瀆神)을 저질렀다
그렇기에 KBS의 이번 짜집기 왜곡은,
한국 기독교의 이 가장 [내밀한 코드]를 짓밟은 만행이다.
KBS는,
문창극의 [교회 안에서의 역사해석]을 왜곡하기 위해,
[성서에 바탕한 한국사 해석] 전체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KBS는 예를 들어
[시련과 고난]을 [신의 섭리]로 보는 관점을 비웃었다.
SBS 역시,
똑 같은 짓을 했다.
이런 논리이다.
"[시련과 고난]이 신의 섭리라고?
일제가 한국을 지배할 때,
그것도 지들의 [신의 섭리]라고 했어.
그니깐 똑 같은 거 아니야?"
한마디로 야훼를,
신토 사원에서 아침저녁으로 밥 공양을 받아 먹고 있는,
일본 신(神)과 동급에 둔 것이다.
일본 신(神)은,
시련과 고난을 [신의 섭리]라고 가르친 바 없다.
오히려 [일본인의 세계지배]를 [신의 섭리]라고 가르쳤다.
"일본인의 운명은,
세계를 정복하여 지배하는 것이다"
"천황가와 일본 국민 사이의 관계는,
[신(神)이 일본인에게
세계를 지배하는 운명을 주었다]라는
식의 미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 문장 때문에,
일본인 전체가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받았었고,
내각이 총사퇴했었다.
반면 기독교에 있어 [시련과 고난]은 2중적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새로운 힘을 기른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 영적 깨달음과 참된 신앙에 이른다"이다.
이 중 문창극은,
첫번째 의미로 우리 겨레가 겪어 온 [시련과 고난]을 해석했다.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주필.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bangmo77
첫댓글 문창극 장로의 강연은
정치인으로서의 강연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의 간증입니다.
문창극이 총리가 되든 말든 상관이 없지만
교회 안에서의 신앙인의 간증을, 그것도 기독교 전체가 동의하는 역사 해석의 관점을
불신자의 관점으로 비판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무서운 도전입니다.
앞으로 간증도 설교도 세상 사람에게 물어보고 해야한단 말입니까?
하나님을 모독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누구든지 결코 무사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