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환(環)
노을이 발길을 재촉하건만 옛 선비 집의 대문을 삐걱거린 것은 해질녘이었다. 서해안 부근을 에돌아 충남 당진 지방을 지나쳐 오던 중이었다. 그날따라 고택의 안내 팻말이 손짓하고 있었다. 몇 번인가 마음에 점만 찍어두던 곳이었는데 내쳐 들어갔다.
추사 고택은 이백 년의 비바람을 견뎌온 사대부 집답게 단아하면서도 짜임새 있었다. 소슬 대문의 위엄을 다소 누그러뜨리는 사랑채의 기역자 모습이나 안채의 모습 또한 질박하지만 정갈해 보였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언제 보아도 적막하다. 특히 인적 없는 사랑채는 썰렁했다. 세상 시류를 논하던 객들은 떠나고, 빈집 뜨락엔 철 지난 모란들이 가을바람과 장난치고 있을 뿐이었다. 대 서예가의 집답게 기둥이나 문 위에 편액(扁額)과 주련(柱聯)들이 걸려 있었지만, 고택 마루에 올라앉는 단풍잎들만 뒤척이며 읽고 있었다.
뒤란으로 통하는 후원으로 올라가니 추사 영전이었다. 잠들지 않는 영혼 마냥, 시누대 바람 소리가 분주했다. 사위는 조용한데 영전 앞의 대나무들 소리가 이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문득, 세한도(歲寒圖)가 생각났다. 이름으로 더 익숙한 그림 한 장, 세한도는 추사가 제주에 유배되어 갔을 때, 제자 이상적(李尙迪)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당시, 추사는 절해고도 같았으리라. 제주도에 그것도 귀양살이에, 집 둘레를 가시덤불로 막아 외인 출입을 금지한 위리안치된 형편이었으니 어느 뉘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중국 연경에서까지 책들을 구하여 제주까지 보내준 이가 있었으니, 제자 이상적이었다. 역관 신분일지라도 중죄인 신분이던 추사와의 교류는 그에게도 지극히 위험한 일이겠다. 그런 제자의 정성에 감탄하여 마음을 담아 그려준 것이 바로 '세한도'이다.
'날이 차가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공자의 말씀을 발문으로 적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세한도는 극도로 절제된 그림이다. 절제와 여백을 충분히 풀어놓은 의도적인 수법은 추사의 정신세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후세 사람들은 평하고 있다. 고졸 담백한 여백의 미 속에서 하늘로 치솟는 네 그루의 송백들, 이는 바로 추사의 자화상 같기도 하고 후학인 이상적의 높은 기개와도 일맥상통한다고나 할까.
세한도, 국보 180 호에 걸맞게 인연 또한 국보급이지 않은가.
그에 얽힌 사연이 또 있다. 청나라 문인들의 찬사와 배관기가 가득 배서된 세한도는 일제 강점기에 어느 안목 높은 일본인에게 소장되었다. 이를 안 우리나라의 서예가가 소장가 집을 찾아가 백일 동안 간청했다. 세한도를 넘겨 달라는 그의 정성에 감복한 일본인 후지즈카는 마침내 내주었다 한다. 그것도 거져, 내주었다. 그 후 석 달 뒤에 일본 공습으로 집이 불탔으니, 그의 용단이 아니었으면 세한도는 한 줌의 재로 변하고 말았으리라.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추사 고택 뒤 켠으로 발걸음을 옮기노라니, 추사가 중국에서 가져와서 심었다는 하얀 소나무가 있고 그 백송을 지나쳐 몇 마장만 내려오면 홍살문이 있다. 영조 대왕의 따님이신 순정 옹주의 정려문이다. 추사 선생의 증조부가 약관 38세에 세상을 떴을 때, 그의 아내인 순정 옹주가 식음을 전폐하였다. 부왕인 영조의 간절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순정 옹주는 끝내 남편 뒤를 따라 세상을 뜬 것이다. 지독한 정절이다. 왕가의 여인으로선 처음이자 마지막인 순절이었다.
세한도나 순정 옹주 열녀문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 사이의 인연은 지극한 정성을 쏟을 때, 때론 목숨을 걸 때, 후세에도 꽃을 피울 수 있나 보다. 역사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인연은 그 만큼의 깊이와 높이를 지닌 진실성 때문일 것이다. 서로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예의와 지조를 다할 때에 그 관계는 시공을 뛰어넘어 역사 속에 살아남게 된다. 단 하나의 목숨마저 내놓는 담대함,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가득한 섬김 속에서 관계의 꽃은 피어나기 때문이다.
당대는커녕,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따라 접싯물처럼 뻔한 속을 드러내는 현대인들을 본다면 그 어른들이 뭐라 하실지 참 궁금하다.
삶이란 인연의 흐름이다. 누구나 인연의 고리를 꿰고 산다. 나 또한 한 방울의 물방울이기도 하면서 한줄기의 강물에 뒤섞이기도 한다. 어떤 고리를 맺고 흘러가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사이는 풀잎의 이슬 같은가 하면 날벼락처럼 튀어오르는 구정물 세례 같기도 하고, 새벽마다 마음으로 뜨는 정한수를 닮아 간다.
숱한 인연 속에서 진실하지 않는 관계만큼 소모적인 것은 없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진심을 다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인연의 강물은 폭포처럼 힘이 있고 강렬하게 쏟아진다. 그러나 출렁이는 물동이의 물처럼 하릴없이 떨어져 내릴 물방울이라면 있으나마나 하다. 속절없이 흔들릴수록 가끔 중심을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관계는 관계를 만든다. 지금 내가 속해 있는 관계망을 생각해 볼 일이다. 어떤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지 되짚어본다면 결과 또한 예상된다. 가끔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든 적도 많았다. 칼로 무 자르듯 단숨에 자르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론은 내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설령 그것이 오류로 남겨질지라도 그 순간은 진실했고 순수했다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겠는가 싶다. 진정으로 참된 관계를 찾는 일, 누군가의 참된 인연으로 살아남는 일,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터이다.
옛 선비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 늦가을 해가 긴 노을 위에 마지막 낙관(落款) 을 찍고 있었다. 내 인생에는 어떤 낙관이 찍히게 될지 하늘을 우러는데 지는 해에도 눈이 부셨다.
수필 예술 /2004년에 올렸던 글입니다^^*
첫댓글 오 선생님, 추사고택에 관련한 글이군요. 깔밋한 고택, 귀퉁이 주렁주렁 달린 감, 인근의 고결한 품성을 간직한 백송, 그 앞의 든든한 호위무사 소나무까지!
어제 본 그곳이 한폭의 그림으로 떠 오릅니다~^^
아주 오래전에 추사고택에 대해 쓴 글이 있더라구요 ㅎㅎㅎ
고택의 고졸한 맛이 반감된 듯하나, 잘 정비하여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싶었어요. 추사를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은 하루였어요^^*
추사고택을 다녀오고 읽으니 글이 참으로 깊습니다.
인연의 환,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더 좋은 글 쓰실 거에요~~
오랫만에 함께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