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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_평화의 길을 여는 카이로스의 시간
마가복음 1:13-17
13. 예수께서는 사십 일 동안 그 곳에 계시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15."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셨다.
16.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어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시고
17.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기해(己亥)년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2019년은 황금돼지띠의 해입니다. 황금돼지띠라고 부르는 것은 양력과 음력이 아닌 갑자력(甲子曆)에 의한 것입니다. 갑자력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결정하는 다섯 가지 기운, 즉 오행의 상관관계를 결합하여 만든 것입니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우주를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하늘의 원리를 알면 땅의 원리도 알게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천문을 통해서 인문을 알고자 했던 것이죠. 우주는 쉼 없이 돌고 있는데, 이 순환 원리를 표현한 것이 옛사람들의 지혜인 간지(干支)라 할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연월일시를 네 개의 기둥, 사주(四柱)를 간지로 기록하고 있는데, 10간(干) 12지(支)가 그것입니다. ‘간’의 글자는 ‘줄기 간(幹)’자이고, ‘지’는 ‘가지 지(枝)’자입니다. 나무의 생장하는 이치를 빗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도(天道)는 오행의 기운을 음양으로 나누어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의 10간으로 지도(地道)는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의 12마디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천간(天干)·지지(地支)라 부르는데 이 둘을 조합하면 60갑자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갑자력(甲子曆)이라 하는데 결국 오행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므로 ‘오행의 꽃을 활짝 피웠다’는 의미에서 ‘육십화갑자(六十華甲子)’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2019년 기해(己亥)년을 황금돼지띠라 할 때 앞의 천간의 오행 분류에 의해서 색이 결정되고 뒤의 지지에 의해 띠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색은 오방색이라고 부르는 청(靑)홍(紅)황(黃)백(白)흑(黑) 다섯 가지 색인데 이 색은 각각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오행 순서를 따릅니다.
이런 분류를 따르면 올해가 황금돼지 띠이고 이는 60년에 한번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2007년 정해(丁亥)년을 황금돼지 띠라 칭한 것은 정(丁)은 음화(陰火)에 해당하는 기운으로 발그레한 돼지였으나 붉은색을 좋아하는 중국에서 그해를 황금돼지해로 부른데 기인한 것입니다. 황금돼지해는 풍요를 상징하는 황금과 복을 상징하는 돼지가 함께 어우러져 길운이 찾아오는 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올해를 오행론으로 조금 더 분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기해(己亥)년인 올해의 기운은 기토(己土)와 해수(亥水)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토(己土)는 하늘의 기운(天氣)으로 음토(陰土)에 해당합니다. 너무 과하지 않는 음의 기운을 지닌 땅을 말합니다. 이는 만물을 배양하고 성장시키는 작용과 성숙시키는 힘, 수렴하고 모든 것을 수용하는 배타성과 거부감이 없는 기운입니다.
해수(亥水)는 땅의 기운 중 해일이나 홍수 등 움직이는 물인 양수(陽水)가 아닌 음수(陰水) 의 기운입니다. 흐르지 못하고 갇혀 있는 물이지만 잔잔한 호수와 바다 같이 만물을 그 안에 담아 키우는 물을 의미합니다.
올해 기해년을 풍경화로 그린다면 마치 드넓은 평야 옥토의 흙과 풍부한 물기운으로 조화된 환경에서 삼라만상이 조화롭게 성장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올해의 기운을 잘 받아 더욱 풍요롭고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작년 무술(戊戌)년은 민족화해와 평화 번영을 위한 첫걸음이 놓아진 위대한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토(土)의 기운과 수(水)의 기운이 너무 강해 나무가 잘 성장하기에는 쉽지 않은 한 해였습니다. 희망의 싹을 크게 틔웠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로 완결되기는 어려운 기운이었던 겁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세 차례 정상회담은 전 세계의 이목을 한반도로 집중시켰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으로부터 시작된 화해의 무드는 4. 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으로 발전하였고,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5. 26일에는 북측 통일각에서 2차 정상회담이 이뤄졌습니다. 세 번째 정상회담은 9월 18∼20일 사흘 동안 평양에서 있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서해직항로를 통해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우리 대통령으로서는 세 번째 방북이었던 것입니다.
4.27 판문점 선언으로 우리 민족은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데 합의했음'을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습니다. 이로써 오랜 분단과 정전상태의 위험으로부터 한반도가 평화의 발걸음을 성큼 내딛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동창리 엔진시험장 영구적 폐기 등 비핵화 세부내용을 담은 평양공동선언과 함께 군사 분야 합의서를 채택하였습니다. 또 김 위원장이 이른 시일 내 서울 답방을 명시해 분단 이후 첫 서울 정상회담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이 세 번의 정상회담은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철거와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 사업 등으로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비록 제2차 북미회담이 미뤄지고 그 결과도 불투명하지만 남북이 이룬 평화와 번영에의 길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이라 믿습니다.
올해 기해(己亥)년은 3.1운동, 아니 3.1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그 만세운동의 맥을 잇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해입니다. 역사적인 근대국가의 출범 100년을 맞이하는 우리 한반도의 역사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촛불로 달궈진 광장은 매판, 사대주의 세력의 청산과 민족민주 정부의 탄생이라는 절반의 성과를 올렸습니다.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는 우리의 왜곡된 역사가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일 뿐입니다.
올해는 기필코 남북 간의 평화를 끈을 단단하게 잇고, 친일 잔재를 털어내어 민족의 정기와 정의를 튼튼히 세우는 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새 나라 새 겨레로 하나 되는 민족사의 대전환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속 안에 있는 일제의 뿌리, 사대주의 근성, 민족에 대한 불신, 맘몬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변부터 새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지난해부터 경험하고 있는 우리의 역사와 삶의 변화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카이로스의 상황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헬라어에는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크로노스(χρόνος, 시간)요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καιρός, 시각)입니다. 크로노스는 과거부터 미래로 일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흐르는 연속된 시간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며 연대기적으로 흘러가는 객관적 시간입니다. 그에 반해 카이로스는 주관적인 경험이 결합된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각(時刻)으로서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카이로스는 제우스의 막내동생으로 흔히 ‘기회의 신’으로 불려 집니다. 그의 풍모를 보면 앞머리는 길지만 뒤통수엔 머리카락이 없습니다. 이는 ‘기회’라는 것이 앞에 있을 때는 누구나 잡을 수 있지만 일단 지나가 버리면 누구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지난해 11월 27일 생명평화마당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평화신학과 발선(發善)” 심포지움을 개최했습니다. 이날 주제 발표는 한완상 교수(전 통일부총리,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 위원장)가 맡았는데 그분이 진단한 우리의 사회와 교회 현실에 대한 내용을 짧게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곧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서로 도륙할 듯 심각한 갈등을 빚었던, 트럼프와 김정은이 지금은 서로 열애상태에 빠진 듯하다. 참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반전(反轉)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모두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이런 새로운 평화 흐름을 환영하는 듯하다. 특히 한국교회에 깊이 뿌리내린 냉전 근본주의 신앙에 푹 젖어있던 크리스천들은 몹시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9월 19일 평양선언 행사에 참여했던 필자는 상전벽해 같은 변화의 모습을 그곳에서 온몸으로 뚜렷하게 보고 느끼면서 이런 변화를 한국기독교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드려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변화 상황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카이로스의 상황이라고 본다면, 한국 신학자들과 기독교 지식인들은 마땅히 이 같은 우리 상황에 적절한 우리의 평화신학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성서에 관류하고 관통하는 평화담론을 이제 우리 한국 신학자들은 적극 모색하고 올곧게 해석해서 조국 땅에 평화신학과 평화신앙의 흐름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조국 땅에 하나님의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게 해야 할 것이다.“
한완상 교수는 지금 우리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카이로스의 시간은 신약성서에서 자주 ‘때’라고 기록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잔치 자리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알립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어머니를 보시고 "어머니,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때’에 쓴 단어가 카이로스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우물가에서 수가성 여인과 대화하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 끝에 “그러나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요 4:23)‘는 말씀도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유다인들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지자 예수님의 형제들이 ‘유다로 가서 당신이 행하시는 그 훌륭한 일들을 제자들에게 보이라’고 요구합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지려면 숨어서 일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너희에게는 아무 때나 상관없지만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세상이 너희는 미워할 수 없지만 나는 미워하고 있다. 세상이 하는 짓이 악해서 내가 그것을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너희는 어서 올라가서 명절을 지내라. 아직 나의 때가 되지 않았으니 나는 이번 명절에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말씀 하시죠.
이 3가지 이야기에서 말하는 때는 모두 카이로스로의 시간을 의미하는 때입니다. 이들 카이로스는 복음을 실행하고 성취시키는 결정적인 시기 혹은 기회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이로스는 종말론적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5:24-25에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섰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때가 오면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그 음성을 들은 이들은 살아날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리라는 약속의 ‘때’입니다.
오늘 마가복음 1장의 본문은 예수님이 공생애의 첫발을 내딛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난 후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40일간 금식기도를 합니다. 마귀의 시험을 잘 이겨 내시고 성령이 충만한 예수님은 요한이 헤롯왕에게 잡히신 뒤 본격적으로 공생애의 길을 나섭니다.
그분의 제 1성은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는 것입니다. 마가는 이것이 하느님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그 하나님 나라를 함께 일구어 갈 제자들을 부릅니다. 예수님은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시다가 호수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어부를 발견합니다.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 말합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공생애의 시작은 이렇게 은밀하고 초라하였지만 위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시작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었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첫 제자들인 시몬과 안드래아도 카이로스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올 한해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상의 시간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일상의 시간 속에서 문득문득 카이로스를 경험하며 자신의 인생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어 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33년째 단식을 하며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나는 그분과 매일 조우하며 살고 있는가? 그분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저는 올 한해 먼저 나 자신이 변화되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의 삶에 가까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올 한해 이 민족과 사회가 좀 더 바로 세워지고 평화와 평등의 기운이 높아지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도 함께하는 가족, 교우들, 이웃들이 복된 삶을 살도록 기원합니다.
올해에는 저의 가까운 곳에서 복된 소식, 잘 된 이야기들이 많이 들리고 전해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일상 속에서 하느님과, 예수님과 만나는 일이 많아지기를 소망하는 우리 모두에게 올 한해 기쁘고 아름다운 일들이 날마다 샘솟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