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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페라 음악
1) 오페라의 구성
2) 오페라의 배역
3) 바로크 오페라
4) 18세기 오페라
5) 낭만주의 오페라
3. 오페라 음악
오페라는 음악으로 만들어진 연극으로, 연극은 대사를 말로 하지만 오페라는 노래로 하고, 오케스트라가 이 노래를 반주한다. 또한 노래에는 독창 뿐 아니라 중창과 합창도 있고, 또 노래 없이 오케스트라만 연주되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춤과 환상적인 무대장치, 화려한 의상이 곁들여진다.
‘오케스트라’라는 그리스에서 연극을 공연했던 무대 앞의 반원형 공간을 가리키는 말로, 당시엔 연극 공연 중에 합창단이 노래하고 춤을 추었던 장소를 말하지만, 오페라가 탄생하면서 악기 연주자들이 앉는 장소(오페라 공연의 오케스트라 피트)를 일컬었으나, 오늘날은 다양한 조합의 기악 앙상블을 의미한다.
음악, 연극, 미술, 무용이 결합된 총체적 예술인 오페라는 어원을 통해서도 증명 되는데, 오페라(opera)는 작품이란 뜻의 라틴어 오푸스(opus)의 복수형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러 작품의 합성물이란 의미다.
그러나 오페라를 주도하는 것은 역시 음악으로, 전체 풀릇을 제시하는 것도 음악이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부각시키고 상황의 긴장감을 이끄는 것도 음악의 몫이며, 오페라 대본은 연극 대본과 근본적으로 달라서, 대사가 말이 아닌 노래를 위한 가사로 음악적 요구에 부합되도록 쓴다. 그래서 오페라의 특징인 비현실성이 대두된다.
예를 들어 극단적 상황에서 고함을 지르는 대신 고도의 테크닉으로 노래하거나, 데스데모나(셰익스피어 희곡 ‘오셀로’의 여주인공으로 베니스의 원로원 의원인 브라반시오의 아름다운 딸인 그녀는 중년의 흑인장군 오셀로의 스릴 넘친 모험담을 듣고 그를 사랑하여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비밀리에 그와 결혼한다. 그녀는 결혼하자마자 변방 수비를 위하여 떠나는 남편을 따라 나섰지만 부하에게 속아 남편에게 침실에서 교살된다. 당시 귀족인 백인 여성과 흑인의 결혼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그녀의 용기와 순정은 비할 데가 없다.)처럼 오텔로에게 목이 졸려 죽어가면서도 처량한 노래를 몇 분씩 부르고, 여자와 술을 얘기하며 호탕하게 웃는 순간에도 웃음 대신 웃음을 흉내 낸 노래를 한다. 이런 대사나 그것의 표현 수단인 노래뿐 아니라 전체적 풀룻의 구성에도 오페라는 연극의 관점으로는 어설픈 면이 많다.
오페라는 지나치게 비극적이거나 환상적인 상황 설정이 많고, 스토리도 이치에 맞지 않게 전개되거나 세부적 설명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건의 실마리를 음악이 풀어가기 위한 의도적 배려다.
모든 것이 연극적이면 음악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짐으로 여기에 오페라의 음악과 영화의 배경음악에 차이가 난다. 오페라는 갈등과 화해, 사랑과 구원, 그리고 삶과 죽음 같은 문학적 내용을 음악을 통해 풀어감으로 연극으로 도달할 수 없는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1) 오페라의 구성
오페라도 연극처럼 5개 이내의 막으로 이뤄지며, 각각의 막은 몇 개의 장면들로 구성된다.
하나의 막은 노래하는 부분과 오케스트라만 나오는 부분이 조화를 이루며, 노래는 혼자 부를 수도 있지만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하듯 중창으로 부르거나 오페라에 등장하는 군중들이 다함께 합창으로 부를 수도 있다.
많은 음악적 요소와 연극적, 미술적, 무용적 요소들을 고려하며 어떤 식으로 음악을 연결시키느냐가 오페라 작곡의 핵심이다.
연극에서 주연이 있다면 오페라의 주인공은 독창자인데, 독창자는 오페라에서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존재로, 특히 오페라의 주역 여가수를 으뜸가는 여성이라는 뜻의 프리마돈다라 부르거나, 디바(Diva) 즉, 여신이라 부르는 것만 봐도 독창자에 대해 청중들이 얼마나 큰 찬사를 보내는 지 알 수 있다.
독창자들이 부르는 노래는 그 부르는 방식에 따라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구분되는데, 가곡처럼 하나의 온전한 노래를 ‘아리아’라 하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읊조리며 노래하는 부분을 ‘레치타티보’라 한다.
아리아는 오페라의 꽃으로 오페라를 관람한 적이 없는 사람도 ‘여자의 마음’이나 ‘별은 빛나건만’, ‘공주는 잠 못 이루고’ 같은 아리아 선율을 알고 있다.
주로 강렬한 감정상태를 노래하는 아리아는 그런 감정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예를 들어 연극에서 “사랑해” 또는 “잘 있어”라고 속삭일 것을 아리아에는 몇 분에 걸쳐 길게 노래한다. 그런데 이렇게 긴 아리아를 통해 메시지를 듣는 상대역은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그 노래에 대한 반응으로 놀라거나 실망하는 등의 감정을 드러내는 어색한 제스처를 계속해야 한다. 여기서 오페라가 갖는 비현실성이 나타난다. 게다가 아리아는 시작과 끝이 명확하고, 절정에 달한 감정이 폭발하면서 청중들이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며, 대부분 성악가들의 열창으로 끝남으로 아리아가 끝나면 청중은 박수갈채로 답한다.
결국 아리아 때문에 극이 비현실적으로 되고 또 극의 흐름도 단절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가 포기할 수 없는 아리아는 오페라에서 가장 큰 매력을 지닌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아리아는 성악가가 자신의 노래 실력을 맘껏 발휘하는 부분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최고의 오페라가수인 마리아 칼라스(1923~1977)는 풍부한 성량과 다양한 레퍼토리로 디바로 불렸다.
이에 반해 레치타티보는 자연스런 억양을 모방하여 음악적 선율이기보다 빠른 재잘거림 같은 음을 반복하며 극의 상황이나 분위기를 설명해준다. 당연히 레치타티보는 음악적으로 화려하거나 아름답진 않지만 그렇다고 오페라에서 레치타티보의 역할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레치타티보는 극의 줄거리를 끌고 나가며 극적 긴장감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레치타티보가 얼마나 말의 억양과 발음에 충실하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의사 전달 가능성이 결정된다.
레치타티보는 17세기 이탈리아 작곡가들에 의해 탄생된 ‘모노디’ 기법을 오페라에 적용시킨 것으로, 음악사에서 레치타티보는 언어와 음악의 합일이라는 모든 시대가 소망하던 목표가 달성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오페라 사(史)에 있어 독보적 위치를 선점한 것은 음악가들이 원하던 이 문제를 레치타티보를 통해 해결한 것이다. 그래서 딱딱한 독일어를 이탈리아어처럼 음악적 레치타티보를 탄생시킨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가 있었고, 따라서 레치타티보 없이 대화로 처리하던 때는 오페라라기보다 대화체의 연극 대본에 노래가 삽입된 형태의 징슈필에 만족해야 했다.
오페라는 독창만 있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한 성부씩 맡아 부르는 2중창(duet, Duo), 3중창(trio), 4중창(quarter), 5중창(quintet), 6중창(sextet), 7중창(septet), 8중창(octet) 등의 중창도 있고, 한 성부를 여러 사람이 노래하는 합창도 있다.
대사를 노래하는 오페라는 두 사람 이상이 대화하면 중창이 된다.
오페라도 당연히 연극처럼 등장인물들이 저 마다의 느낌과 의견이 있으며, 연극과 다른 것은 노래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면에 따라 인물들은 서로 같은 감정을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각각 절망과 희망, 분노와 사랑, 또는 행복과 슬픔 등 전혀 상반된 감정 상태일 수 도 있다. 만약 서로 다른 감정을 갖는다면 그들은 분개하거나 증오하는 가사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분노에 찬 노래라도 그 가사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그들이 노래한 각각의 선율들은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복잡한 느낌이 엉켜 아름답게 결합되는 것은 연극에서는 모방할 수 없는 오페라의 특징이다.
오페라에서 ‘합창’은 신하, 선원, 농부, 무도회 손님 등 다양한 역할의 군중이 맡는다.
흔히 합창은 음악적으로 독창자를 위한 배경음악인 경우가 많지만, 극적으로는 특정 상황에 대한 군중들의 반응을 표현하고 그 상황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중창과 합창은 독창만으로 불가능한 풍성한 음향과 극적 효과를 연출할 뿐 아니라, 다양한 대위법적 기교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 오페라가 음악적 풍요로움과 품위, 그리고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오페라는 노래 없이 오케스트라만 연주하는 부분이 있는데, 오페라가 시작되기 전에 연주되는 서곡(overture) 또는 전주곡(prelude), 그리고 막과 막 사이에 연주되는 곡(intermezzo)이나 리토르넬로(ritornello)가 그것이다. 이들은 작품 곳곳에 삽입된 선율을 미리 맛보게 하여 전체 작품의 분위기를 암시하거나, 이미 전개된 사건들을 상기시키고 앞으로 이어질 장면과 일관성 있게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 관현악 부분은 과거 오페라 하우스를 상류사회의 사교 장소로 이용하던 시절, 별 관심 없이 오페라 공연장에 운집한 청중의 관심을 무대로 집중하게 하고, 때로는 늦게 도착한 청중을 위해 오페라의 시작을 조금 늦추는 역할도 했다.
* 중창과 합창의 차이
보통 2명이상 8명까지 파트를 나누어 부르는 것을 중창이라 하며, 그 이상을 합창이라 본다.
합창 중에 여러 사람이 하나의 성부로 부르는 것은 제창, 각 성부를 두 사람 이상이 맡아서 부르는 것을 합창이라 하며, 중창은 인원수가 적은 합창이라 할 수도 있다.
합창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여성 2부 합창 : 소프라노, 알토
여성 3부 합창 :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
남성 2부 합창 : 테너, 베이스
남성 3부 합창 : 테너, 바리톤, 베이스
혼성 4부 합창 :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중창이란 두 사람 이상이 각각 다른 성부를 노래하는 것으로 보통 2중창, 3중창, 4중창, 5중창 등이 있으며, 보통 오페라에서 3중창 이상의 중창을 앙상블이라 한다.
대체적으로 합창이란 여러 사람이 여러 성부로 나뉘어 서로 화성을 이루며 다른 선율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고, 중창이란 몇 사람이 각각 자기 성부를 맡아 노래 부르는 것이다.
인원수의 차이로 보면 합창은 각 파트의 인원이 3명을 초과하는 경우며 중창은 3명 이하를 말하는데, 예를 들면 소프라노, 테너, 알토, 베이스로 보통 4개 파트의 성부로 나뉘어져, 각 파트가 3명을 초과하여 4명 이상인 경우를 합창, 3명 이하를 중창으로 본다. 따라서 중창은 각 파트별로 1~2명으로 이뤄진다.
중창의 파트는 2성부나, 3성부, 또는 4성부로 할 수도 있는데, 보통 중창은 3성부 혹은 4성부로 나눠진다.
중창은 화음을 맞추는 것을 가장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인원수가 적으면 기본성량이 잘 되지 않아 소리가 작아서, 객석 뒷자리에 앉으면 소리가 작아서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보통 각 파트별로 1명씩 구성하지는 않는다. 만약 중창단을 각 파트별로 1명씩 하면 맴버의 실력이 뛰어나야하고(본인이 맡은 성부의 음정과 박자를 정확히 부를 수 있는 사람) 기본성량도 풍성한 사람이어야 한다. 따라서 반드시 마이크도 사용해야 한다. 이런 문제로 프로급이 아니면 파트별 1명으로 구성된 중창단은 보기 어렵다. 그래서 보통 파트별 2명씩 구성 되는 게 일반적이며, 가장 많이 구성되는 중창인 4성부는 각 부에 2명씩, 총 8명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남녀혼성중창도 있지만 동성끼리 뭉친 중창팀이 관객이 듣기에 더 좋은 소리를 내는 편으로, 남녀혼성중창은 인원수를 더해서 합창으로 하는 게 좋다.
참고로 합창, 중창, 독창 중에 부르기에 가장 어려운 것이 중창이다. 독창은 노래를 잘하는 한 사람이 잘하면 되지만 합창은 나누어 진 파트를 불러서 하모니에서 어려운 게 있지만, 인원수가 많아 묻혀 갈 수 있다. 하지만 중창은 인원수가 적은 상태에서 성부를 나뉘어 노래하여 맴버들 각자의 소리가 다 들리기 때문에 못하는 부분이 묻혀 갈 수 없고, 거기에 화음도 맞아야 됨으로 튀는 소리를 낼 수도 없다. 그렇다고 너무 조심하면 기본성량이 나오질 않아 멀리 있는 사람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알 수 없음으로 소리도 나와야 한다. 이걸 모두 소화해야 함으로 중창이 가장 어렵다.
2) 오페라의 배역
오페라의 배역은 성악가의 음높이와 목소리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음높이 즉, 음역은 성악의 기본 성부인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로 구분되는데, 좀 더 세분해서 소프라노와 알토 사이에 메조 소프라노, 그리고 테너와 베이스 사이에 바리톤을 첨가하기도 한다.
이런 성악가의 음역에 목소리의 특성을 고려하여 배역을 결정하지만, 목소리의 특성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또 어떤 한 가지로 고정되기보다 성악가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상황과 역할에 따라 얼마든지 그 영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도식적으로 분류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목소리의 분류는 오히려 오페라의 역할에 대한 분류로 이해해야 할 때가 많다. 물론 오페라에서 순전히 목소리의 성격만 갖고 역할을 결정하는 건 아니다. 문화적 취향도 역할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데,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높은 소리를 선호했기 때문에 지체 높은 남자 주인공은 거의 언제나 테너가, 그리고 주인공은 소프라노가, 알토나 베이스는 하녀나 신하같이 낮은 신분의 역을 맡았다.
* 소프라노(Soprano) : 음역은 C4 ~ C6(때로는 F6 이상)
소프라노의 목소리는 크게 나누어 빠른 스케일이나 트릴과 같이 고난도의 기교를 매우 높은 음역에도 구사할 수 있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콜로라투라는 말은 색을 칠한다는 이탈리아어다), 가벼운 목소리로 재치가 뛰어난 조역에 어울리는 레지에로 소프라노, 밝지만 온화한 공명과 부드러운 레가토를 구사할 수 있어 우아한 역할에 어울리는 서정적인 리릭 소프라노, 그리고 목소리에 힘이 있으며 음량도 크고 호흡이 뒷받침되어 뛰어난 표현력으로 강렬한 극적 배역을 소화하는 드라마틱 소프라노로 나눈다.
이렇게 다양한 소프라노는 오페라에서 서로 다른 성격의 배역을 맡는데,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는 보통의 소프라노보다 높은 음역을 내며 기교적인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낭만주의 오페라의 화려한 여주인공 역에 어울린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파리 사교계의 꽃인 비올레타가 부르는 아리아 ‘항상 자유롭게’, 피 묻은 하얀 잠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친 루치아가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밤의 여왕이 부르는 아리아 등은, 모두 소리의 부피가 적으며 섬세한 기교를 요구하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배역이다.
반면 소프라노 레지에로는 가볍고 재치 있는 조역들을 맡는데, ‘박쥐’의 아델레와 ‘여자란 다 그런 것’의 데스피나가 대표적 배역이다.
리릭 소프라노는 떠난 사랑에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비 부인’의 초초상이나 옛 사랑을 그리워하여 돌아오지만 병들어 죽어가는 ‘라 보엠’의 미미, 그리고 남편의 이기심의 제물이 되는 ‘오텔로’의 데스데모나 같이 가련한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적당하다.
드라마틱 소프라노는 남성에 끌려 다니거나 운명의 희생양이 되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극적인 상황을 능동적으로 헤쳐 나가며 사건의 중추에 서있는 역할을 주로 맡는다. 따라서 적을 살해할 만큼 용감한 토스카, 남편을 사주하여 왕까지 제거하는 맥베드 부인, 여사제로서 민중을 인도하는 노르마처럼 강한 성격을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뚫고 나오는 힘 있는 목소리로 표현해내는 것으로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몫이다.
* 메조 소프라노(Mezzo Soprano) : 음역은 A3 ~ A5
메조 소프라노는 소프라노 보다 낮고 알토 보다 높은 음역의 성악가다.
대부분 여성의 목소리는 메조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신기한 느낌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소프라노의 화려함과 알토의 풍부함이 부족하기 때문에 메조 소프라노로 성공하려면 소리의 질과 음악성이 매우 뛰어나야 한다. 때문에 메조 소프라노가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는 경우도 드물다. 비제의 ‘카르멘’에서 카르멘은 메조 소프라노를 여주인공으로 한 드문 예다.
* 콘트랄토(Contralto) : 음역은 F3 (때로는 E3 이하) ~ F5
콘트랄토는 여성 목소리 중 가장 낮은 음을 내는 소리를 말하며, 음역은 대략 F3 에서 G5까지로 개인에 따라 E3 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B♭5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즉 테너와 거의 겹치는 음역대다.
여자 중 가장 낮은 음역대는 알토라는 오해가 있는데, 알토(Alto)는 4부(혹은 5부)합창에서 소프라노와 비교되는 여자의 낮은 음역이다. 즉, 알토=음역, 콘트랄토=사람으로 여기는데, 이를 굳이 구분하는 것은 콘트랄토가 극히 드물어서 소프라노 등 다른 음역의 성악가가 머릿수를 맞추기 위해 알토로 차출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콘트랄토라는 용어는 음역으로서 음성을 세세하게 구분하는 오페라에만 쓰이고, 다른 분야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사실 메조 소프라노와 어느 정도 호환이 되기 때문에 오페라에서 조차 메조 소프라노로 대충 분류하기도 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콘트랄토가 극히 드물기 때문인데, 콘트랄토는 베이스나 카운터테너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수가 드물다.
단순히 주위에서 찾더라도 음역이 높은 남자는 그리 드물지 않지만, 남자와 겹칠 만큼 음역대가 낮고 톤이 거친 여자는 드물다. 또 음역이 낮은 여자가 소프라노도 아니고 주연이 될 일이 절대 없는 콘트랄토라면 성악에 재능이 있고 뜻이 있어서 성악을 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콘트랄토 가수도 드물고 콘트랄토 전용의 배역도 드물다. 주역을 맡는 일도 없어서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로지나 등의 몇몇 배역에 가끔 기용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여자 악인이나 마녀, 하녀, 같은 악역을 맡거나 여자가 연기하는 남자 역인 바지역(trouser role)을 연기한다. 그러나 워낙 흔치 않은 만큼, 오페라의 주연이 아니긴 해도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 드라마의 감초 역할을 하는 조연처럼 악기로는 비올라나 베이스 기타와 비슷하다.
콘트랄토를 세부적으로 나누면 음색에 따라 콘트랄토 콜로라투라, 콘트랄토 리리코, 콘트랄토 드라마 티코로 구분한다. 다만 이 분류가 절대적인 것이 아닌데, 이는 영역이 겹치기도 하고 한 가지 이상을 겹쳐 소화해 내는 가수도 있기 때문이다.
콘트랄토 콜로라투라(contralto coloratura)는 가볍고 민첩한 목소리에 화려한 기교로 꾸밈이 많은 노래를 부르는 매우 드문 콘트랄토다.
콘트랄토 리리코 (contralto lirico)는 드라마티코 보다 음색이 가볍지만 콜로라투라처럼 장식적이거나 음을 도약시키지는 못한다. 다른 콘트랄토들에 비해 더 밝은 음색을 가지며 가장 흔한 타입이다. 음역은 G3에서 G5까지다.
콘트랄토 드라마티코 (contralto drammatico)는 가장 깊고 어둡고 무거운 음색으로 다른 콘토랄토 보다 무겁고 강력한 느낌이 난다. 음역은 G3에서 A4까지다.
* 알토(alto) : 음역은 G3에서 F5
라틴어 altus(높은)에서 비롯한 음악 용어다.
악기를 가리킬 때 알토는 높은 쪽에서부터 세 번째와 네 번째의 음역을 담당하는 악기로 트레블과 소프라노 사이의 음역인 두 번째로 높은 음역을 담당하는 악기를 말한다. 이를테면 알토 색소폰이 있다. 트롬본과 같이 소프라노가 없는 악기의 경우 가장 높은 음역을 가진 악기를 가리킨다(현대의 표준교향악단에선 제외됨).
알토는 4부 합창에서 두 번째로 높은 소리 부분을 가리키는 여자의 최저음이거나 초등학생이나 변성기 이전의 남자는 알토가 가장 낮은 음이다.
알토는 특정한 종류의 음자리표를 기술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오페라에서 알토는 소프라노처럼 섬세하고 화려한 맛은 없지만 정감 있고 서정적이기 때문에 비애감을 표현하거나, 종교적이고 정적인 느낌의 음악에 적합하다. 그래서 오페라에는 젊은 여주인공보다 나이가 많은 부인이나 하녀 등 조역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테너(Tenor) : 음역은 C3 ~ C5 (때로는 F5)
테너는 소프라노와 마찬가지로 목소리에 따라 로부스토 테너(tenor robusto), 리릭 테너(tenor lyrico), 드라마틱 테너(tenor dramatico), 레지에로 테너(tenor leggiero), 헬덴 테너(tenor helden) 등으로 분류 된다.
로부스토 테너는 고음역에도 힘 있게 노래하는 테너로 대부분의 젊은 테너들이 이 역할을 동경한다.
로부스토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배역을 말하며, 헬덴 테너는 드라마틱 테너와 비슷한 성격의 테너이지만 바그너와 같은 독일 오페라의 배역에 해당한다. 이렇게 남성 가수들이 힘 있는 고음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성량이 풍부한 바리톤들이 훈련을 거듭하여 테너 음역으로 올라온 경우다. 특히 헬덴 테너는 종종 ‘아일랜드 테너’라고도 하는데,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상한 성격을 잘 표현하며, 리릭 소프라노의 상대역을 맡는 경우가 많다.
레지에로 테너도 레지에로 소프라노와 같은 성격을 갖는다.
* 바리톤(Baritone) : 음역은 F2 ~ F4
바리톤은 테너와 베이스 사이의 성부로 여성에게 있어 메조 소프라노와 마찬가지로 남성에게 가장 편안한 음역이다. 따라서 그들은 테너처럼 화려하게 높은 음을 내면서 묘기에 가까운 테크닉으로 청중을 사로잡을 순 없다. 대신 충실한 작품 해석과 숙련된 음 처리를 통해 청중들과 교감한다. 따라서 오페라에서 바리톤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역할은 아니지만 주로 음악적 수준이 높은 무게 있는 역할을 맡는다.
* 베이스(Bass) : 음역은 E2 (때로는 C2 이하) ~ E4
베이스는 남성의 가장 낮은 음역의 성부다.
베이스 성부도 세분될 수 있는데, 그것은 목소리의 성격이 아니라 역할에 따른 구분이다. 즉, 서정적 스타일로 노래하는 베이스는 바소 콘탄테(basso contante)라 하며 희극적 역할은 바소 부포(basso buffo)라 한다. 이 외에 자신들이 특별히 낮고 깊은 음들을 낼 수 있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베이스 성악가들은 스스로를 바소 프로푼도(basso profundo)라 지칭하기도 한다. 또한 베이스와 바리톤의 음역을 넘나드는 성악가는 베이스 바리톤이라 한다.
* 옥타비스트 (Octavist 또는 러시안 베이스) : 음역은 E1 ~ E3
악기로 치면 콘트라베이스에 해당되며, 보통의 베이스보다 더 아래의 음으로 노래 부르는 사람을 바소 프로폰도라고 하는데 그 보다 더 낮은 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옥타비스트다.
너무 낮은 음이어서 자연의 소리로 착각할 정도며 숫 사자의 포효하는 소리가 이에 해당된다.
세속 음악에선 옥타비스트를 거의 들을 수 없으며 주로 러시아 정교회의 성가대들이 이 음을 구사하여 러시안 베이스라고도 하며, 미국의 가스펠 그룹이나 교회의 아카펠라 합창단에서 서브 베이스(Sub-bass)라 부르는 단원도 옥타비스트다. 옥타비스트는 젊은 사람에겐 찾아보기 어렵고 40~50대의 성악가들이라야 낼 수 있는 음이다.
* 카운터 테너(Counter tenor) : 음역은 G3 ~ F5 (때로는 F6)
카운트 테너는 여성의 알토를 남성이 하는 것으로 팔세토(falsetto) 즉,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가성(假聲)을 사용하여 남성으로는 매우 높은 여성의 음역의 음을 내는 것으로, 16~17세기 교회에서 여성이 노래하는 것을 금지하여 여성의 고음을 남성이 내기 위해 교회 음악에서 주로 사용 되었다.
* 카스트라토(castrato)
카스트라토는 어린 남자 아이 때의 소프라노나 알토 음역의 목소리를 보존키 위해 사춘기 이전에 거세한 남자 성악가다.
소년의 가늘고 높은 소리를 간직하면서 폐는 남자 성인이기 때문에 소리가 매우 힘이 있고 남성과 여성의 음역을 모두 소화할 뿐 아니라, 특이한 음색이 미묘한 음악적 효과를 창출하여 화려한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바로크 말기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당시 카스트라토로 성공하면 막대한 부와 영광이 보장되어 고아나 가난한 집안 소년들이 훗날의 영화를 위해 거세당하고 카스트라토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과장된 장식으로 일관하는 그들의 노래에 싫증을 느끼면서 카스트라토의 전통이 사라지고, 19세기엔 법적으로 금지하면서 당시 작곡된 오페라에서 카스트라토가 담당했던 화려한 영웅의 역할은 여성 가수가 맡거나 가성을 사용하는 카운터 테너가 대신하게 되었다.
* 여성의 음역으로 노래를 부르는 남자들
세계적인 카운터 테너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 여성이 노래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감정과 표현이 여성적이지만 카스트라토와 카운터 테너는 많이 다르다.
시대적으로도 차이가 있으며 창법도 다른데, 둘 다 여성의 음역을 내는 건 비슷하지만 신체적으로는 여자처럼 된 남성과 여성을 흉내 낸 남성이라 볼 수 있다.
중세에 여자가 공연하는 것이 금지되어 남자가 여성의 역할을 하면서 카스트라토가 생기게 되었는데 중국의 경극도 이런 역할이 있다.
여성의 사회활동을 금지함으로 소년시절부터 여성의 음역을 부를 수 있는 성악가를 만들기 위해 카스트라토들은 남성을 포기했으나, 카운터 테너는 남성을 유지한 성인 남자가 여성의 음역인 높은 소리의 가성을 내는 팔세토 창법으로 내는 소리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카스트라토 카를로 브로스키를 소재로 한 영화 ‘파리넬리’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직접 여성화를 시켰으나 외모나 행동까지 여성처럼 된 것은 아니다. 여성의 음역으로 노래를 부르는 인상적인 바로크 오페라 장면에서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는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그리고 이 영화 덕분에 카스트라토와 카운터 테너에 대해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카스트라토의 역사는 비잔틴제국 때부터 있었다는 설이 있으나, 실제 기록에 남은 것은 14세기 스페인이며 특히,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유행하였다.
여성의 고음영역을 계속 연습하며 자란 카스트라토들은 여성의 고음영역 뿐 아니라, 여성에게는 볼 수 없는 파워풀한 발성까지 함으로 대중의 인기를 받았으며, 아름다운 목소리와 화려한 오페라 의상, 연기 등은 영화 파리넬리에도 나온다.
카스트라토로 높은 음역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소프라니스트라 부르기도 한다.
남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대신 대중의 인기와 부유한 생활도 할 수 있어 한해에 수천 명씩 지원하던 시대가 있었지만, 성공한 사람은 굉장히 드물어서 인기를 얻지 못한 카스트라토들은 평생 놀림을 받으며 불행하게 살았다.
카스트라토로 유명한 가수는 파리넬리, 세네지노, 카파넬리 등이 있으며, 파리넬리는 명성과 부를 쌓아 말년엔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18세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카스트라토는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점령하면서 금지되기도 했으나 20세기 초까지 명맥이 유지되어, 마지막 카스트라토인 모레스키의 노래는 녹음되어 들을 수 있다.
카스트라토는 20세기 들어서 단절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 후 ‘작곡 당시의 연주 방식을 되살린다.’는 원전(原典) 연주가 유행하며 유럽을 중심으로 헨델, 비발디 등의 오페라를 원곡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카스트라토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이에 나타난 것이 카운터 테너다.
카운터 테너는 강제적으로 변성기를 막는 카스트라토와 달리 발성법으로 고음을 내며, 음역은 카스트라토에 비해 낮고 성량도 여리다.
카스트라토가 소프라노 - 메조소프라노 음역까지 발전한데 비해, 카운터 테너는 메조소프라노 - 알토 음역에 걸치며 부드러운 소리 위주의 창법을 구사하지만 카운터 테너의 발성법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
카운터 테너 가수가 여성의 고음을 내기 위한 방법으로 가성을 내는 창법을 팔세토(falsetto) 창법이라 하며, 두성의 울림을 이용하여 고음을 내는 방법으로 목소리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흉복식 호흡에서 밀어 올린 힘을 비강과 머리에서 울리도록 하여 가늘고 높은 소리를 낸다. 카스트라토에 비해 강한 고음은 구사하기 어려우나 부드럽고 높은 음역을 낼 수 있어 남성이 여성의 음역대를 부를 수가 있다.
현재 최고의 카운터 테너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 앞에서 말한 분류가 맞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발전했으며, 팔세토 창법도 성대가 어느 정도 타고나서 보통의 남성에 비해 가늘고 팽팽한 성대 근육을 가져야 유리하다. 그리고 카운터 테너는 성대 중에 하부 1/3부분을 집중적으로 사용하지만, 성대 보다는 두성의 공명을 이용하여 목소리의 힘을 빼고 코를 더 많이 사용한다.
특이한 것은 남성의 높은 음역을 테너가 부르기 때문에 카운터 테너도 테너가 많을 것 같지만, 실제 카운터 테너 중엔 오히려 베이스나 바리톤의 낮은 음역의 성악가들이 많다.
유명한 세계 3대 카운터 테너 가수는 다니엘스, 숄, 아사와 등이 있고, 한국의 카운터 테너 가수로는 이동규가 있으며, 팝계의 제랄드 졸링과 가요의 조관우도 파퓰러 팔세토 창법을 구사한다.
* 음역(音域)
음역은 사람이나 악기가 낼 수 있는 최저음부터 최고음까지의 음넓이를 말한다.
대중가수와 오페라 가수에 대해 누가 더 넓은 음역대를 가졌냐며 음역대의 폭이 가수의 실력인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대중가수는 그냥 노래를 잘 부르는 것 보다 자신만의 노래인 개성을 중시하는 데 비해, 오페라 가수는 완성된 작품을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가 중요함으로 음역을 중시한다. 그런데 음역이 타고난 것이다거나 훈련으로 극복가능하다는 논쟁도 있는데, 음역대가 선천적이라는 쪽은 성대가 크고 길면 낮은 음을, 작고 짧으면 높은 음을 내는 것으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대의 형태가 지배적이며 노력은 약간의 개선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트랜스젠더가 성전환으로 호르몬 요법을 하더라도 타고난 성대는 그대로여서 목소리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트랜스젠더들은 가성을 많이 쓰며 또한 그들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 큰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성대를 묶어 길이를 짧게 하여 음색을 바꾸는 수술도 한다. 하지만 훈련을 통해 몇 음역을 넓힌 사람들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음역이 타고났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노력으로 음역이 바뀐 게 아니라 훈련으로 원래 타고난 음역을 쓸 수 있게 했을 뿐이지 타고난 음역대가 바뀐 건 아니란 것이다. 따라서 선천적이든 훈련으로 극복하든 전문의가 판정한 불가능한 성대를 갖지 않았다면 노래방 수준의 노래를 부를 음역대는 훈련을 통해 넓힐 수 있는 게 정설이다.
발성 관련 트레이너들은 발성 훈련이 고음을 내기 위한 성대근육을 키우는 헬스와 같은 훈련으로서, 헬스를 꾸준히 하면 프로보디빌더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몸을 만들 수 있듯이 음역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헬스가 눈에 보이는 근육을 키우는 데 반해, 노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적 요령도 있으므로 쉽지 않은 면이 있다.
음이 높이 올라가는 사람이 노래를 잘하는 사람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음역대가 넓은 것과 고음을 잘 내는 것은 다르다. 음역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기준으로 최저음과 최고음 사이의 구간이다. 예를 들어 A는 도(C2)에서 솔(G4)까지 소리를 내고, B는 도(C1)에서 도(C4)까지 소리를 낸다면, 고음으로는 A가 B보다 다섯 음이나 높지만, 음역은 A는 도~솔의 12개 음, B는 도~도의 15개음을 냄으로 B가 음역이 더 넓다. 따라서 고음을 잘 내는 것과 노래를 잘 하는 것은 다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래를 잘 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술적, 주관적인 관점으로, 부모에게는 아이가 제멋대로 부르는 동요가 조용필이가 부르는 노래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 그래서 어느 가수가 어느 가수보다 더 잘한다거나 못 한다고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물론 음역이 넓은 게 가수의 최소한의 기준이 될 수도 있겠지만(음을 여러 개 내면 당연히 표현의 폭이 넓어지므로), 그러나 고음을 잘 내는 사람만이 노래를 잘 한다는 것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어야 할 감상적 부분을 무시한 편견일 뿐이다.
실제로 고음을 잘 내는 헤비메탈 보컬들이 발라드, 소울, 알 앤비 등의 창법에 밀리는 걸 보면, 고음이 노래를 잘 부르는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창법도 일정 수준의 고음은 필요하다. 그리고 가수별 옥타브(octave) 정리란 말은 틀린 것으로 음역대 정리라 해야 맞다. 이는 옥타브가 기수 단위로 쓰였는지 서수 단위로 쓰였는지 구별하지 못해서 생긴 오해다.
많은 단위가 기수 또는 서수 단위로도 쓰이는데, 예를 들면 우리나라가 해방된 해는 서기 1945년, 단기 4288년이다. 그러나 해방된 해와 정부수립이 있었던 해의 간격은 어느 기년법을 따라도 3년이다. 이처럼 단위는 똑같이 년이지만 뜻은 기수 단위일 때와 서수 단위일 때가 다르다.
기수 단위로서 년은 어느 시점부터 어느 시점까지인지는 관계없이 365일이지만, 서수 단위의 년은 기준점이 있어서 1월 1일부터 12월 31일 까지를 가리킨다.
여기서 1945년, 4288년은 서수로, 3은 기수로서 쓰였다.
이처럼 옥타브도 기수 단위 일 때는 두 개의 음의 주파수가 2배(혹은 1/2배) 차이가 나는 경우, 혹은 같은 계이름을 가진 바로 위아래의 음을 말하지만, 서수 단위 일 때는 기준점이 있으며, 대개 다음(C음)부터 나음(B음)까지를 가리킨다.
음역을 논할 때는 당연히 기수 단위의 옥타브를 쓰는 것이 타당한데, ‘어떤 가수의 음역이 3옥타브다."라 하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12×3 = 36개의 음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음역을 서수 단위로 쓰면 오해가 생긴다.
예를 들어 ‘머라이어 캐리의 음역대는 7옥타브다.’라는 말은 틀렸다. 기수 단위로 7옥타브면 이것은 어떤 음을 낸 뒤 그 음정에서 7옥타브 위의 음을 낼 수 있다는 것으로 12×7 = 84개의 음을 낸다는 뜻으로, 피아노 건반이 88개이므로 음역대가 7옥타브면 피아노가 내는 모든 음을 사람이 다 낼 수 있다는 엉터리가 된다. 이것은 '머라이어 캐리는 G♯7(솔♯7)을 낸다.'라는 말이 와전된 것이다.
한편 음역이 똑같이 3옥타브라도 C3부터 C6까지일 수도 있고, G1부터 G4까지일 수도 있다. 이는 사람마다 최고음과 최저음이 다르므로 서수 단위의 옥타브를 쓴다. 그리고 기준점을 어디로 할지의 관습이 있는데. 관습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해도 있다.
많이 쓰이는 관습의 하나는 scientific pitch notation로서, 이는 440Hz의 A음을 넷째 옥타브로 두는 것으로, 이는 음높이(pitch)를 나타낼 때 간략히 하기 위해 예를 들어 넷째 옥타브의 A음은 A4라는 식으로 표기한다. 또 다른 관습은 남성이 편안하게 낼 수 있는 목소리가 g2정도면 도레미파 순으로 올릴 때 파정도 C음(가온 다 바로 아래의 다 ‘c3’음으로 가온 다가 절대 아님)을 첫째 옥타브로 두는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남자가 낼 수 있는 진성 최고음은 2옥타브 파’라거나, ‘박완규의 천년의 사랑의 최고음은 3옥타브 레’라고 할 때는 이 관습에 의한 것이다.
‘머라이어 캐리가 5옥타브를 낸다’, ‘아니다 7옥타브를 낸다’, ‘7옥타브는 인간이 들을 수 없다’ 등의 논란이 바로 이것으로, 서로 관습이 다른 것을 무시해서 그렇다.
클래식의 음역 구분은 클래식에 적용되는 대략적인 각 성악 파트의 음역이다. 하지만 음역대만으로 파트를 나누는 건 아니며, 실제는 음역대와 음색 등 여러 가지를 함께 따져 구분한다. 또한 파트 내에도 리릭(lyric), 드라마틱(dramatic) 등등 나누자면 끝이 없으며, 이런 구분법 자체에 대한 논쟁도 있다.
소프라노와 콘트랄토는 분명 다르지만, 그 사이의 메조 소프라노를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어떤 베이스들은 테너의 음역까지 내기도 한다.
그리고 소프라노(C4~C6 때로는 F6 이상), 메조 소프라노(A3~A5), 콘트랄토(F3 때로는 E3 이하)~F5), 카운터 테너(G3~F5 때로는 F6), 테너(C3~C5 때로는 F5), 바리톤(F2~F4), 베이스(E2 때로는 C2 이하)~E4), 러시안 베이스(또는 옥타비스트 E1~E3)등 각 음역 파트의 기준도 다르다.
팝의 경우엔 클래식처럼 정형화된 방식으로 음역을 구분할 수도 없다. 클래식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목표로 개인이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음역에 맞춰 가수들이 특화된 반면, 대중음악은 감정 전달에 촛점을 맞춰 음역에 크게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는 희미하게나마 테너, 바리톤, 베이스로 나누는 게 가능하지만, 여자 보컬은 창법의 메커니즘 자체가 오페라와 다르기 때문에 소프라노, 메조 소프라노, 콘트랄토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며, 다만 클래식에서와 마찬가지로 드문 콘트랄토 정도만 구분될 수 있다.
3) 바로크 오페라
새로운 음악 양식은 한 사람에 의해 갑자기 탄생된 것이 아니지만, 예외적으로 오페라 만큼은 만든 자와 만들어진 시기와 장소까지 명확하다. 그것은 오페라가 자연 발생적이거나 과거의 양식이 진화되어 나타난 장르가 아니라,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만든 양식이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출발은 1597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바르디 백작의 궁정으로서, 당시 바르디의 집에는 시인과 학자, 작곡가, 성악가 등 지식인들이 모여 시와 음악의 완전한 합일을 이루었다고 알려진 그리스 비극을 음악으로 재현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열띤 토론을 벌였으며, 가사의 의미와 억양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모노디(monody)라는 화음 반주가 있는 독창 노래 방식을 개발하였다.
모노디의 개발은 극과 음악이 만날 수 있는 필수조건을 만족시켰고 결국 시인인 리누치니가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대본을 쓰고 작곡가 페리와 카치니가 함께 음악을 만들어 최초의 오페라 ‘다프네'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이 작품의 악보가 사라져 현존하는 최초의 오페라는 1600년에 역시 피렌체에서 공연된 ‘에우리디체’가 되었다.
몬테베르디는 ‘에우리디체’가 상연된 지 7년 만에 ‘오르페오’를 작곡하였는데, 이 오페라는 오페라 사상 최초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또한 1600년 ‘에우리디체’와 1607년 ‘오르페오’ 모두 그리스의 오르페오 신화를 기초로 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 신화는 바로크 초기 오페라에서 가장 즐겨 사용되는 소재였다. 이유는 오페라가 주로 귀족의 행사를 위해 제작되어 당시 귀족은 그리스 로마 문화에 매료되었을 뿐 아니라,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이나 신을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또한 귀족들은 자신의 부나 권력을 과시하려 오페라에 거창한 장면을 요구하였는데, 스케일이 큰 신화의 내용들은 복잡한 기계를 사용한 무대장치나 특수 장면을 끌어들여 화려한 무대를 만들기에 적당했던 것이다. 특별히 그리스 신화 중에 오르페우스가 사랑하는 애인 에우리디체를 지옥에서 구출해내는 이야기인 오르페우스 신화는 오페라 사상 가장 자주 사용되었다.
1637년 베네치아에 최초로 공공 오페라 극장이 세워지면서, 피렌체, 로마, 만투바 등을 중심으로 발달한 초기 오페라 들이 주로 귀족들의 기호에 따라 제작되던 전통을 바꾸어서, 귀족의 전유물로 여기던 오페라를 평민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몬테베르디의 위대한 오페라 ‘율리시즈의 귀향’과 ‘포페아의 대관’은 이 극장을 위해 작곡되었으며, 최초의 오페라 극장인 베네치아의 산 카시이노 극장에서 1643년 초연된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은, 로마 황제 네로의 두 번째 결혼에 관한 역사를 소재로 삼고 있어 전작 ‘오르페오’를 넘어선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폐단도 있어서 오페라 극장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했던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작품의 질과 상관없이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대중적이고 오락적 성격의 오페라를 주문하면서, 점차 오페라에서 극적 긴장감이나 구조는 무시되고 대본은 기교적인 노래들을 배열하고, 카스트라토 같은 가수들의 기예에 가까운 테크닉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쓰여 졌다. 또한 평민이나 귀족의 구분 없이 표만 사면 입장할 수 있으므로 극장 안에는 취향이 다른 계층이 존재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서로 자신의 기호에 맞는 오페라를 관람하기 원했다. 결국 이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그 성격이 명확히 구분되는 2개의 오페라 유형이 탄생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와 ’오페라 부파(opera buffa)'다.
4) 18세기 오페라
오페라 세리아란 진지한 오페라란 뜻으로 대부분 3막으로, 소재는 고대의 역사나 전설에서 가져왔으나 극의 구성은 매우 상투적이다. 대신 음악은 매우 장중한데 합창이나 중창은 드물고 아리아가 가장 중요한 음악적 요소다. 각각의 아리아 앞에는 항상 레치타티보가 나오므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연속적인 반복을 통해 오페라가 구성된다. 이렇게 오페라 세리아의 틀은 규격화 되었는데, 아리아의 형식도 다 카포 아리아(da capo aria)로 거의 고정되었다. 즉 이 아리아는 A부분이 나오고 B로 진행된 다음에 처음, 즉 A로 되돌아가라는 다 카포 지시에 따라 처음 부분을 반복하는 다 카포 형식으로 되었다. 그러나 오페라 세리아는 뻔한 구성으로 예술성은 나날이 퇴보하여 결국 훗날 글루코(1714~1782)에 의해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개혁의 목표는 극적 사실감이 있는 오페라로, 이를 위해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기계적 순환을 언제든지 중단하고 중창과 합창 그리고, 관현악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물론 이전의 모든 오페라 세리아가 개혁의 대상이 될 만큼 예술적 가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메타스타시오(1698~1782) 같은 천재적 대본작가의 등장으로 오페라 세리아의 예술적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그가 모차르트와 함께 만든 ‘황제 티투스의 자비’는 오페라 세리아 중 수준 높은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그리고 ‘이도메네오’도 당시 다른 작곡가들에 비하면 출중한 작품이었다.
오페라 부파는 ‘어릿광대 오페라’란 뜻으로 오페라 세리아와 대조되는 희극 오페라다.
17세기 중엽부터 진지하고, 그래서 지루했던 오페라 세리아의 막간을 이용해서 짧은 희극 오페라가 상연되는 관습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오페라 부파로 발전하였다.
페르골레지(1710~1736)의 유명한 오페라 부파 ‘마님이 된 하녀’도 원래는 오페라 세리아에 삽입된 막간극이었다.
오페라 부파의 특징은 황당한 상황 설정과 한바탕의 소동, 우스꽝스러운 대화, 어릿광대의 익살스러운 몸짓, 쉽게 기억 될 수 있는 대중적인 선율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오페라 세리아는 아리아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오페라 부파는 막이 끝날 때 마다 모든 등장인물이 나와서 함께 부르는 신나고 재미있는 중창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등장인물의 성격도 차이가 있는데, 오페라 세리아는 신화 속의 신이나 영웅이 등장한다면 오페라 부파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과 롯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는 꾀 많고 뻔뻔한 이발사 피가로가 등장하여 바람둥이 주인 알마비바 백작을 한바탕 골려주는 이야기며, 교육 철학가로 유명한 루소가 대본을 쓰고 작곡한 ‘마을의 점장이'는 양치기 처녀와 총각, 그리고 마술사가 등장하여 밀고 당기는 사랑싸움 이야기이고, 치마로사(1749~1801)의 ‘비밀 결혼’은 돈 많고 인색한 아버지를 속이고 결혼하는 딸의 이야기다. 또한 오페라 부파는 오페라 세리아와 달리 등장인물의 수가 적고 무대장치도 간단해서 작은 극장에서 쉽게 공연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순회극단의 형식으로 공연되었다.
오페라 부파의 순회공연은 이탈리아로 제한되지 않고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다른 유럽국가까지 이어졌다. 여기서 오페라 부파는 큰 인기를 거두고 이들 나라에서도 오페라 부파처럼 대중적이고 희극적인 오페라가 탄생하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 독일의 징슈필, 프랑스의 오페라 코미크가 그 예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세리아에서도 뛰어난 걸작을 남겼을 뿐 아니라, 오페라 부파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기도 했다. 또한 당시에 천대 받던 징슈필도 ‘마술피리’와 같은 최고 수준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하지만 그가 몬테베르디 이후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평가된 것은 그가 남긴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이다.
‘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는 그가 작곡한 대표적 명작 오페라 부파다.
유쾌한 음악이지만 결코 가볍게 흐르지 않는 이 작품에는 모차르트의 천재적 재능들이 유감없이 발휘 되었는데, 만약 그가 다 폰테라는 재능 있는 대본 작가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 위대한 오페라도 탄생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제3막 ‘편지의 이중창’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자유주의 사상가인 프랑스 극작가 보마르셰(1732~1799)가 쓴 희곡 ‘피가로의 결혼’ 3부작 중에 두 번째 작품에 기초하며, 모차르트 보다 30년 뒤에 로시니가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는 이 희곡의 1부에 해당한다.
대본을 쓴 다 폰테는 당시 빈의 황제 요제프 2세의 궁정극장 시인으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의 대본을 쓴 재능 있는 작가로, 프랑스 혁명의 기운이 싹트고 있는 와중에 왕실과 귀족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원작의 풍자적인 면을 살리는 대본을 썼으며, 모차르트는 이 대본에 기초하여 복잡한 플롯의 교묘하고 희극적인 전개를 번뜩이는 기지와 생동감 넘치는 선율로 표현했다.
이 오페라는 백작의 하인인 이발사 피가로와 백작 부인의 시녀 수잔나의 결혼을 둘러싸고 바람둥이 백작과 다른 인물들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미 전편인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피가로의 활약으로 로지나와 결혼한 백작은 ‘초야권’을 폐지한다고 밝힌 바 있으나 피가로의 약혼녀 수잔나를 보고 마음이 달라지는데, 여기서부터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얽혀서, 피가로의 결혼을 반대하려는 세력(백작, 바르톨로, 마르첼리나)과 백작 부인을 사모하는 젊은 시종 케루비노 때문에 일어나는 갖가지 해프닝은 결국 백작의 마음을 바꾸고 피가로와 수잔나는 결혼한다.
‘피가로의 결혼’에는 서곡을 비롯해서 수많은 주옥같은 선율이 있지만,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확성기를 통해 감옥에 갇힌 죄수들의 귀를 정화시켰던 것으로 유명한 ‘편지의 이중창’이다. 더할 나위 없이 순진무구하고 아름다운 이 천상의 선율은 굳이 그 가사를 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음악적으로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이 노래는 오페라 3막의 바람기 많은 백작을 골려주려고 백작 부인과 수잔나가 거짓 편지를 쓰는 대목에서 불려 지는데, 백작 부인이 불러주면 수잔나가 받아 적는 형식으로 노래되는 이중창을 통해 모차르트는 모든 인간은 신분을 초월하여 고귀하며 평등하다는 것을 어떤 사회사상가 보다 실감 있게 구현하였다. 여기서 수잔나는 음악적으로 유사한 성악 선율(악보)에 의해 백작 부인의 하녀가 아니라 사이좋은 자매가 된다.
1786년 초연 시 청중들은 이 위대한 천재가 빚어낸 소리의 연금술에 열광적 환호를 보냈다.
모차르트는 겉으로 보기에 떠들썩하고 재미있는 코메디를 통해 당시 아버지와 함께 참여하고 있었던 프리메이슨(자유, 평등, 박애 사상을 실천하려는 비밀집회)의 이념을 투영하였으며, 상류계급의 타락과 그 시대의 소송절차를 조롱하고 하층계급의 노예 상태를 강조함으로 사회계급의 모순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특히 날카롭게 대조되는 인물의 성격에 따라 음악적으로 독특한 개성을 부여한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이 작품을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날을 걸작으로 만들었다.
5) 낭만주의 오페라
① 이탈리아 오페라
오페라의 종주국인 이탈리아는 18세기로부터 물려받은 오페라 세리아와 오페라 부파의 전통을 19세기에도 이어갔는데, 이 시대의 모든 이탈리아 오페라들은 벨 칸토(bel canto)라는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노래 양식’으로 쓰였으며, 따라서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부분은 아리아였다. 오페라 청중 역시 대형 가수가 멋지게 열창하는 몇 개의 아리아를 기다리며 그 긴 오페라를 감상하였는지 모른다.
이탈리아 아리아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작곡가들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높은 음역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음들을 통해 화려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프랑스나 독일 작곡가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복잡한 화성 기법이나 새로운 형식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로시니(1792~1868)는 이러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징을 반영하는 정형적 이탈리아 작곡가다. 항상 유쾌하게 흐르는 그의 음악은 주로 선율에 의존하며 화성과 그 구성은 단순하다.
로시니는 음악에 활기찬 리듬을 도입하여 명랑한 분위기를 끌어가거나 장면들을 매우 희극적으로 묘사하고 또 음악을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 콜로라투라와 카텐차 같이 성악의 기교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을 삽입하는데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로시니가 24세의 나이에 작곡한 오페라 부파 ‘세비야의 이발사’와 파리에서 초연한 프랑스식 오페라 ‘빌헬름 텔’은 최고의 걸작이다.
로시니 이후 이탈리아 벨 칸토 전통은 도니제타(1797~1848)와 벨리니(1801~1835) 등으로 이어졌다. 도니제티는 70편에 달하는 오페라를 작곡했으나 대부분 흥행만을 위해 성급하게 작곡했던 것들이라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람레르무어의 루치아’와 ‘돈 파스콸레’, ‘사랑의 묘약’ 등은 지금도 자주 연주된다.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에서 약장수 돌카마라는 마을 광장에서 자칭 유명한 의사라고 뻐기며 마을 농부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술을 희귀한 사랑의 묘약이라며 선전했다.
벨리니의 오페라는 희극적이지 않고 진지하며 음악도 매우 서정적이다. 그는 34세의 나이에 요절했는데, 그 짧은 생애 동안 ‘노르마'와 같은 명작을 포함한 10편의 오페라를 남긴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처럼 17세기부터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로 이어지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달해 오던 벨 칸토 양식은 베르디(1813~1901)라는 대가를 만나 화려하게 꽃피었다.
베르디는 철저한 민족주의자로 평생을 이탈리아 고유의 민족 오페라 양식에 주력하였으며, 가장 이탈리아 적인 오페라를 28편이나 작곡하였다. 그의 오페라는 선율을 바탕으로 하며, 형식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극의 내용은 인간 세상에 벌어지는 진지한 멜로드라마로 음악은 당시 유럽에서 한창 번지던 새로운 낭만주의 기법과 달리 보수적이고 또 순박하지만 동시에 매우 감각적이다.
41세에 작곡한 ‘리골레토’부터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가면무도회’, ‘운명의 힘’, ‘아이다’, ‘오델로’ 그리고 80세 문턱에서 작곡한 ‘팔스타파’까지, 그가 남긴 수많은 걸작들은 모든 오페라 청중들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로 아직까지 기억된다.
베르디는 젊은 날부터 세익스피어의 연극에 심취하여 ‘멕베드’ 외에 만년의 걸작 ‘오델로’와 ‘팔스타프’ 등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뛰어난 음악 드라마로 승화시켰다. 특히 그의 오페라는 합창이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극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부각시킨다. 한편 19세기 말에 이르러 이탈리아에서는 에밀 졸라와 입센 등이 주동했던 베리스모(verismo) 운동으로 오페라에도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베리스모 오페라가 등장하였다.
베리스모의 기본취지는 예술 작품 속에서 무엇이든 미화시키거나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지양하고 보다 현실적으로 진실 되게 표현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베리스모 오페라는 평범한 주인공들이 등장하여 일상에서 쉽게 일어나는 일들을 다소 거칠고 투박하게 연출하며, 늘 일어날 수 있는 분노나 질투 같은 감정을 여과 없이 직설적으로 표출한다.
베리스모 오페라는 이렇게 주인공들이 감정의 충동 때문에 과격하게 행동함으로 그 결과 음악적으로는 잦은 불협화음이나 거창한 음향, 자극적인 전환이 등장한다.
베리스모 오페라의 대표적 예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세니에’ 등이 있으며, 베르디 이후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인 푸치니의 ‘라 보엠’도 젊은 예술가들의 생활상과 성격을 낭만적으로 미화시키지 않고 매우 현실적으로 그리는 점에서 베리스모 오페라라 할 수 있다. 또한 ‘토스카’, ‘나비부인’, ‘투란토트’ 같은 작품들은 베리스모의 영향으로 소박함을 간직하면서도 아름다운 서정성이 돋보이는 낭만주의 최고의 걸작 오페라다.
푸치니 오페라는 ‘나비부인’에서 일본, ‘투란토트’에서 중국을 소재로 삼는 등 작품에 19세기의 이국적 정취를 반영했으며, 군중의 함성과 함께 얼음장 같은 투란토트 공주가 성곽 위에 나타나 페르시아 왕자의 사형집행을 선고하는 장면이 유명하다.
*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제2막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
도니제티는 로시니, 벨리니와 함께 베르디 이전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를 이끈 인물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오페라 작곡가가 되는 것을 심하게 반대했으나, 그는 군 복무 중 틈틈이 작곡한 오페라로 서서히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도니제티는 라이벌인 벨리니가 고집스럽게 비극만을 작곡하는데 비해 희극에도 많은 걸작을 남겼다. 70편에 이르는 작품 중에 대표작으로 ‘람메르무의 루치아’, ‘사랑의 묘약’, ‘돈 파스콸레’등이 있는데,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벨 칸토 아리아들과 매력적인 관현악을 통해 베르디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속필로 유명해서 한 해에 여러 편의 오페라를 쓰기도 했으며 ‘사랑의 묘약’은 불과 보름 만에 썼다. 이 곡은 밝은 색채 속에서도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배합하는 그의 장기가 십분 발휘된 오페라로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지주의 딸 아디나와 그녀를 사랑하는 어수룩한 시골 청년 네모라리노 등 젊은이들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해결을 그렸다.
재미있으면서도 품격을 갖춘 이 오페라를 유명하게 만든 이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은 주인공 레모리노가 2막에서 아디나를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다.
예기치 않은 유산 상속으로 큰 부자가 된 줄도 모르는 레모리노는 사랑의 묘약을 구하기 위해 군대에 지원하는데 동네 처녀들은 큰 부자가 된 그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에워싼다. 뒤 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디나는 레모리노가 자신과의 사랑을 얻기 위해 군대에 갔다는 사실을 알고 눈물을 글썽이는데, 이 장면을 목격한 레모리노 역시 심장이 멎는 듯한 감정에 잡힌다. 마치 시계 장치가 느리게 돌아가듯 단조로운 시칠리아노 리듬으로 시작되는 이 아리아는 목관 악기의 애틋한 선율에 실려 ‘자신 때문에 눈물을 흘리던 아디나의 한숨을 위로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다.’는 절절한 심정을 담고 있다.
‘보일 듯 말 듯 눈물이 그녀의 두 눈에서 솟아났지,
나를 에워쌌던 처녀들 때문에 마음을 다친거야.
이제 내가 뭘 바래? 그녀가 날 사랑하는 걸, 그게 확실한 걸.
단 한 순간만이라도 그녀 가슴의 고동을 느낄 수만 있다면,
나의 숨결과 그녀의 숨결을 섞을 수만 있다면,
아! 하나님, 나는 죽어도 좋아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제1막 아리아 ‘정결한 여신’
벨리니는 짧은 생애 동안 10편의 오페라를 남겼는데, 모두가 서정적이며 표정이 풍부한 선율, 긴 호흡과 우아한 굴곡을 갖는 세련된 음악이다. 특히 쇼팽은 벨리니의 아름다운 선율을 동경하여 자신의 연습곡에 벨리니의 선율을 단편적으로 인용하기도 하였다.
벨리니의 오페라는 동시대의 작곡가인 도니제티와 달리 대부분 심각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 작품이 많은데 ‘노르마’ 외에 ‘청교도와 기사들’, ‘몽유병의 여인’, ‘케플레가와 몬테규가’, ‘해적’등이 현재에도 자주 공연 된다. 이 중에서 대표작 ‘노르마’는 로마니 대본으로 1831년에 초연되었다. 벨리니 자신은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서 “난파선 위에서 내 오페라 중 단 하나만 구하라면 모든 걸 버려도 노르마 만은 살리고 싶다.”라고 말하였다.
정결한 여신은 드르이고(고대 켈트족 사제들)의 수석 여사제인 노르마가 1막 4장에서 로마인과의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을 그들의 순결한 여신에게 기원하며 부르는 노래다.
12/8박자로 연주되는 이곡은 현악기의 완만한 펼침 화음을 타고 목관 악기가 맑고 아름답고 선율을 연주하는 전주에 이어 노르마가 조용하고 깊은 감정을 담아 노래하는데, 노르마의 기도 도중에 사람들의 기도 소리가 겹쳐 들려온다.
부드러우면서도 장식적인 선율이 많은 화려한 곡으로 높은 콜로라투라를 요구하지만 기교에 치우친 음악이 아니라 복잡한 심정과 경건한 기도의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는 명곡이다.
‘정결한 여신이여 은빛으로 빛나는 이 신성한 태고의 나무여,
베일을 벗고 구름 한 점 없이 우리에게 그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내소서.
불타는 마음들을 진정시키고 남치는 열정을 다스리시며,
하늘의 평화를 이 땅 위에도 내려주소서.'
*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
1861년 3월에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지면서 베르디는 자신이 존경하던 정치인 카불의 요청으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그를 영웅으로 여겼지만 베르디 자신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베르디는 산티가라의 농원을 운영하며 정치적인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는 한편, 새 시대에 어울리는 그랜드 오페라를 모색하고, 그런 그에게 계속해서 외국으로부터 작곡 의뢰가 들어왔다. 같은 해 6월 카불이 세상을 떠나자 암담한 기분에 빠졌다가 러시아 황실 오페라의 청탁을 받고, 다시 창작 의욕에 불타 작곡 계약을 맺으며 탄생한 것이 스페인의 비극을 소재로 한 ‘운명의 힘’으로, 초연은 1862년 11월 10일 페테르부르크의 황실 오페라 극장에서 이뤄졌다.
뒤를 이어 스페인과 뉴욕, 런던 등에서의 연주가 성공을 거두며 수차례 개작을 시도 했다. 최후의 개정판은 1869년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이뤄졌는데, 이 때 대규모의 서곡이 새롭게 추가 되고 이 서곡은 오늘날에도 자주 연주될 정도로 대중적이며 구성도 완벽하다.
종래의 서곡과 다르게 극중에 등장하는 주제들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드라마 전체의 내용을 암시하는 ‘운명의 힘’ 서곡은 2막 첫머리에 나오는 금관악기의 세 음으로 시작하여 곡 전체를 관통하는 운명의 주제를 제시 한다.
이 주제는 가혹한 운명에 휩쓸리는 여주인공의 마음의 동요를 잘 그려내었다. 이어서 4막 돈 알바로와 돈 카를로의 2중창의 선율이 연주되는데, 이 선율은 프랑스 영화 ‘마농의 샘’의 메인 테마로 사용된 바 있다. 이 외에도 4막의 레오노라의 기도와 레오노라와 과르디오노 신부의 이중창 등, 드라마 곳곳에 등장하는 주제가 나타나며 마지막엔 웅장하게 고조되며 마친다.
‘운명의 힘’은 제목처럼 운명의 힘에 농락당하는 인간의 고뇌와 신에 대한 기도를 그린 대서정시라 할 수 있다.
18세기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무대로 한 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는 돈 알바로(테너)와 레오노라(소프라노)의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레오노라의 오빠인 돈 카를로(바리톤)는 우연히 일어난 사건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살해한 주범이 알바로라고 단정 짖고, 아버지의 복수를 꾀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신부가 된 알바로(라파엘 신부)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두 사람의 결투에서 칼에 찔린 빈사 상태의 카를로는 놀라서 달려간 레오노라를 착각하여 살해하고 동생이란 것을 안 순간 숨을 거두며, 레오노라 또한 알바로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둔다.
*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제3막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라 보엠’, ‘나비부인’과 함께 푸치니의 3대 오페라 중 하나인 ‘토스카’는 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작으로 어둡고 비극적 주제를 푸치니 특유의 아름답고 유려한 선율로 표현하였다.
19세기 프랑스의 인기 극작가 사르두(1831~1908)가 당대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 (1844~1923)를 위해 쓴 5막짜리 비극을 1890년 밀라노에서 관람한 푸치니는 이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기로 하고 대본을 의뢰하고, 3막으로 축소한 대본으로 1900년 1월 로마에서 초연하였다.
같은 해 3월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대지휘자 토스카니니가, 5월의 제노바 공연에는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출연하였다.
‘토스카’의 무대는 1800년 6월 당시의 로마이며 비밀경찰의 서슬 퍼런 정국에서 탈옥한 죄수와 그를 돕는 화가 카바라도시(테너), 그의 연인이자 가수인 토스카(소프라노), 그리고 그녀를 차지하려는 경시청감 스카르피아(바리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1막에서 2막으로 진행되는 동안 ‘토스카’는 스카르피아에서 체포된 카바라도시를 거짓 처형시키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자신을 능욕하려는 스카르피아를 살해한다. 이러한 상황을 모른 채 처형을 기다리는 카바라도시는 3막에서 토스카에게 편지를 쓰면서 추억에 잠겨 유명한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노래한다.
‘별은 빛나고 대지는 향기로운데,
정원의 문이 삐걱 열리고 발걸음이 모래땅을 사뿐히 스치네.
그녀가 들어와 향기롭게 내 팔에 안기네.
오, 달콤한 입맞춤, 나른했던 애무….
사랑의 꿈은 영원히 사라지고 시간은 지나 절망 속에서 나는 죽네.
목숨을 이토록 사랑한 적이 없건만….’
토스카는 형식적인 사형이 끝나면 바다를 건너 외국으로 떠나자고 하며 희망의 이중창을 노래하지만, 결국 간교한 스카르피아의 지시대로 사형수들의 총에 실탄이 장전되고 사형이 집행되자, 토스카는 성채 아래로 몸을 날린다.
오페라가 바탕으로 삼은 희곡은 오래 전에 무대에서 사라졌는데도, ‘토스카’는 푸치니라는 탁월한 선율 작곡가를 통해 오페라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었다. 이것은 원작의 가치를 뛰어 넘어 불멸의 작품이 된 음악의 많은 예들 중 하나다.
* 레온카불로 오페라 ‘팔리아치’ 제1막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
레온카발로(1857~1919)는 이탈리아의 사실주의(베리스모) 오페라 작가로 1890년 ‘팔리아치의 대본과 작곡을 완성하였다. 그는 이 작품의 성공으로 대 오페라 작곡가의 명성을 한 순간에 얻을 수 있었다.
이 두 작품은 남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서민 계급의 일상을 무대에 올려 그 사람들의 생생한 숨결을 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격렬한 질투에서 잔인한 살인에 이르는 줄거리 까지 공유하고 있다.
‘팔리아치’는 ‘어릿광대들’란 뜻으로 실제로 발생한 살인 사건을 토대로 쓰여 졌다.
이 오페라의 특이한 점은 현실과 극 중 극이 서로 얽혀 있는 구조이다.
유랑극단 단장 카니오는 오갈 데 없는 고아를 거두어 여배우로 성공 시킨 자신의 젊은 아내가 공연을 위해 머물고 있는 마을의 청년 실비오에게 마음을 두는 것을 알고 절망한다. 그러나 실제 상황과 똑 같이 전개되는 연극을 앞두고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서서 연기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갈등하다 극이 전개되면서 급기야 이성을 잃고, 연기의 상대인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고 무대 위에 뛰어 오른 실비오 마저 살해한다.
관객은 대 혼란에 빠지고 카니오는 칼을 떨어뜨리며 침통하게 “희극은 끝났소!”라고 말한다.
‘팔리아치’는 2막의 오페라지만 공연 시간은 한 시간 남짓 걸리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함께 공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곡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의상을 입어라'는 1막 끝 부분에서 아내의 부정을 알고도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희극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해야 하는 카니오가 자신의 통절한 마음을 담아 부르는 노래 라기 보다 토로에 가까운 아리아다.
20세기 초 ‘팔리아치’의 카니오 역으로 최고의 활약을 한 가수는 테너 엔리코 카루소다.
‘막을 올려라. 이렇게 마음이 일그러져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 수조차 없는데,
그래도 할 건 해야지, 너는 사람이 아니니까. 너는 어릿광대니까. 하, 하, 하 .....
의상을 입어라. 얼굴에다 얼룩덜룩 분칠을 해라. 사람들은 돈을 냈고 웃고 싶어 해.
알레키노가 내 콜로비노를 빼앗아가도, 웃어라 파리아초, 그래야 모드 박수 칠 테니까.
너는 눈물과 슬픔을 모두 웃음으로 바꿔버려라.
눈물과 고통도 참고 웃어라 팔리아초, 너의 빼앗긴 사랑을 위해.
웃어라 너의 찢어지는 가슴을 위해, 흑, 흑, 흑.....
② 프랑스 오페라
프랑스는 비록 오페라의 출발에 있어서는 이탈리아에 뒤졌지만, 17세기부터 꾸준히 자신들만의 독특한 오페라 양식을 가꾸어 왔다.
수준 높은 연극 전통을 기반으로 출발한 프랑스 오페라는 프랑스 비극의 성격상 자주 등장하는 군중 장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려고 이탈리아 오페라보다 일찌감치 합창과 관현악에 비중을 두었다.
륄리와 라모는 17세기 가장 대표적인 프랑스 오페라 작곡가다.
프랑스의 오페라는 이탈리아가 상업적인 목적에 따라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 고민했어야 하는 것과 달리, 루이 14세와 같은 절대군주와 귀족 등 특권층의 강력한 후원과 보호 속에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후 새롭게 탄생한 시민계층과 평민들을 청중으로 맞아들여야 했지만, 이들의 음악적 소양은 세련되지 못했으며, 이들은 오로지 쾌락과 여흥을 위해 오페라 장을 찾았다. 때문에 이들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할 새로운 오페라 양식이 태어났는데, 바로 대하 오페라로 불리는 ‘그랑도페라(Grand opera)’이다.
이 ‘그랑도페라’는 일반적으로 5막으로 구성되는데, 대규모 장면을 선호했기 때문에 합창을 중요시하며 프랑스 오페라의 전통이기도 한 발레 장면을 삽입하고, 독창과 합창 그리고 관현악이 어우러진 화려한 편성을 추구하였다.
마이어베어는 ‘악마 로베르’와 ‘위그노 교도’를 통해 그랑도페라의 전통을 확립시킨 작곡가다. 또한 마이어베어 외에도 앞서 언급한 로시니의 ‘빌헬름 텔’이나 알레비(1799~1862)의 ‘유태 여인’ 역시 그랑도페라의 범주에 속하는 대표적 오페라다.
한편 19세기 프랑스에는 그랑도페라와 대조적 성격의 또 다른 오페라 양식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페라 코미크다. 코미크라 해서 희극적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연극적 의미가 더 강조된 오페라 양식이다. 즉 오페라 코미크는 극적 탄력성을 중요시하는 오페라로 레치타티보 대신 대화를 사용했으며, 그랑도페라 보다 겉치레에 신경을 덜 써서 편성도 작고 출연자 수도 적을 뿐 아니라 음악도 단순했고 주제 역시 거창하거나 심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오페라 코미크는 새롭게 다른 오페라 양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생겨난 새로운 오페라 양식이 바로 서정 오페라와 오페라 부프다.
서정 오페라는 오페라 코미크가 갖고 있던 낭만적인 서정성이 확대된 양식으로, 규모로 볼 때 그랑도페라와 오페라 코미크의 중간 정도며, 성격도 그랑도페라의 스펙터클과 오페라 코미크의 단순성이 모두 녹아있다. 비제는 서정오페라의 가장 위대한 주창자며 그의 ‘카르멘’은 프랑스 오페라의 최대 걸작이다.
한편 오페라 부프는 오페라 코미크가 갖는 낭만주의적 유머 감각이 확대되어 탄생한 양식이다. 오페라 부프는 흔히 작은 오페라라는 뜻의 ‘오페레타’라고도 불린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부파와 이름은 비슷하지만 음악적 내용은 완전히 다른 양식으로, 오페라 부프의 창시자는 오펜바흐(1819~1880)며, 그의 ‘지옥의 오르페’는 가장 전형적 오페라 부프의 예다.
오펜바흐의 이 새로운 형식의 오페라는 파리에서 대성공을 거두었고, 유럽의 다른 도시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특히 왈츠가 상류층의 오락으로 이미 자리 잡고 있던 빈에서 오페라 부프는 크게 환영받으며, 곧이어 빈 스타일로 속속 작곡되었다.
대표적 작곡가로 주페(1819~1895)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를 들 수 있는데, 특히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박쥐’와 ‘집시 남작’은 풍부한 음악과 극적인 짜임새뿐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무도회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무대로 관객을 흥겹게 해주는 대표적 오페라 부프다.
베를리오즈는 프랑스의 오페라 전통위에 정열적이면서 장대하고 영웅적인 낭만주의 정서를 접목시켜 독창적인 오페라 장르를 개척하였다.
대표작으로 ‘벤베누토 첼리니’와 ‘트로이 사람들’을 들 수 있다. 특히 ‘트로이 사람들’은 프랑스인들에게는 매우 각별한 작품인데, 오페라 대중화를 모토로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해서 세워진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의 개막공연에서 정명훈의 지휘로 상연되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베를리오즈는 ‘파우스트의 저주’처럼 오페라가 아니라 극적 설화라 하여 플룻은 있으나 공연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 새로운 양식을 개발 하였는데, 요즘은 주로 그 일부만을 모은 관현악 발췌곡으로 연주된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오페라에서 발췌한 곡들을 모아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일종의 오페라 모음곡이 널리 유행하였다. 이러한 오페라 모음곡은 우아하고 감미로운 프랑스 오페라의 서정가극 분위기를 잘 나타냄으로 큰 인기를 모았는데, 구노의 ‘파우스트’,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 ‘아를의 여인’, ‘아름다운 페르트의 아가씨’가 대표적 작품이다.
20세기에도 프랑스 작곡가들은 꾸준히 명작 오페라들을 작곡하였다. 현대음악 기법으로 쓰여 진 오페라는 드뷔시의 ‘펠레아스의 멜리장드’로 부터 시작하여, 라벨의 ‘스페인의 한때’와 뒤카의 ‘아리안느와 푸른 수염’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현대 프랑스 오페라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③ 독일 오페라
독일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처럼 오페라의 전통이 없었다.
낭만주의 독일 오페라의 직접적인 조상은 가볍고 희극적이며 노래가 나오지만 말로 대화를 이어가는 정슈필 뿐이었다. 이러한 독일에서 최초로 낭만주의 오페라 전통을 세운 작곡가는 베버다. 그의 유명한 오페라 ‘마탄의 사수’는 이탈리아 오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마탄, 악마, 영혼 거래, 그리고 구원과 같은 영적이고 비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독일 특유의 민속적 작품이다. 그러나 베버가 이룩한 독일 오페라 전통은 바그너에게 계승되어 오페라에 있어 독일의 위상을 이탈리아와 맞먹는 위치로 격상시켰다.
바그너는 단순히 대본에다 음악을 붙이는 수준을 넘어 음악과 연극, 무용과 미술이 완전히 통합된 새로운 형태의 ‘종합예술작품’을 구현하려 했다. 즉 그의 오페라는 가사와 음악, 무대장치, 동작이 모두 긴밀하게 조화를 이룰 뿐 아니라, 이들이 극적 목적을 위해 함께 작용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각 막에 걸쳐 음악이 중단되지 않으며, 장면과 긴밀하게 얽히면서 연속적으로 흐르게 하였다. 이를 위해 바그너는 음악은 물론 대본까지 직접 쓰고 음악이 레치타티보나 아리아에 의해 중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을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중간격인 아리오소(arioso)로 바꾸고, 오페라의 중심을 노래에서 관현악으로 옮겼으며, 복잡한 작품에 통일성을 부여하여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라이트모티브’라는 유도 동기를 도입하였다.
라이트모티브는 극중의 인물이나 사물, 생각 또는 자연현상 등에 부여된 일종의 음악적 표시인데, 전체 작품을 그물망처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 모티브는 상황이 전개되거나 인물이 변화하는 것에 따라 원형 그대로 나타나기도 하고 다양하게 변형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그프리트를 나타내는 모티브라 하더라도 그가 적과 싸울 때, 사랑을 할 때, 혹은 살해될 때, 등의 극의 상황에 따라 모티브가 달라진다.
갈등이 고조되거나 침울한 장면에서는 불협화음이 많이 사용된다. 또한 이 모티브는 지그프리트가 무대 위에 없다 해도 그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이로써 바그너는 오페라의 응집력과 지속성을 획득하였다. 그는 이렇게 종합예술 작품의 이상을 실현시킨 자신의 작품들을 오페라라는 이름 대신 ‘음악극’이라 불렀다. 그래서 ‘탄호이저’, ‘리엔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로엔그린’ 등은 오페라라고 불리지만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 이후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 등은 음악극이라 불린다.
바그너 오페라의 또 다른 특징은 고전적 조성을 극단적으로 해체한데 있다. 특히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같은 작품에는 화음들이 반음계적으로 복잡하게 변하고, 끊임없이 조바꿈이 일어나며, 전통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비화성음들의 사용으로 조성 자체가 완전히 모호해진다. 또한 바그너 오페라는 오케스트라의 음향처리에 있어서도 이전의 작곡가들과 뚜렷이 구분된다. 그는 특히 금관악기의 화려한 힘을 좋아하여 기념비적인 작품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에는 무려 8개의 혼이 등장하며 바그너 튜바라 하여 자신이 새로운 금관악기를 고안하기도 했다.
자신이 직접 대본을 쓰고 25년을 투자하여 완성한 ‘니벨룽겐의 반지’는 영웅이나 신들의 거대한 신화적 구조를 담기 위해 압도적인 음향을 필요로 했다. 이렇게 바그너 오페라는 확대된 오케스트라의 음향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뚫고 자신의 소리를 청중에까지 전달할 만한 풍부한 음량을 갖춘 성악가들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성악가들이 과도한 발성을 한 탓에 성악가로서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경우도 발생할 만큼 바그너 오페라를 노래하기란 쉽지 않아서, 바그너 전문 가수들을 가리켜 바그네리안 소프라노나 헬덴 테너 등의 명칭으로 구별하여 부른다.
비르깃 닐손이나, 릴리 레만, 키르스텐 플락슈타트, 크리스타 루드비히 등은 바그너 오페라에서 발군의 기량을 과시하는 소프라노들이며, 존 비커스, 볼프강 빈트가센, 르네 콜로 등은 최고의 바그너 테너로 명성을 날렸고, 테오 아담 또한 바그너의 육중한 베이스 바리톤을 잘 소화해내는 가수로 유명하다.
바그너 이후 그의 음악극의 정신을 충실히 계승한 독일 작곡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다. 그는 모두 15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는데, 그 가운데 ‘살로메’와 ‘엘렉트라’는 반음계적 화성진행이나 극적 완성도, 관현악 효과 등을 고려할 때 바그너의 영향이 뚜렷한 수작이다. 그러나 이렇게 진보적인 작품 이후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좀 더 보수적인 성격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를 작곡하였다. 이후 20세기의 독일 오페라는 현대적 음악어법으로 꾸준히 작곡되었다.
쇤베르크는 12음 기법을 사용하여 ‘모세와 아론’을 작곡하였으며, 베르크(1885~1935)는 표현주의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보체크’와 ‘룰루’를 작곡하였다.
*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 제3막 아리아 ‘저녁별의 노래’
오페라 ‘탄호이저’는 1845년 바그너가 드레스덴에서 작곡하고 초연한 오페라다. 이 보다 3년 앞서 상연된 ‘리엔치’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성공으로 드레스덴 궁정 가극장의 악장으로 임명된 바그너는 이 ‘탄호이저’가 상연된 후 오페라 작곡가 뿐 아니라 지휘자로 더욱 확고한 위치를 견지할 수 있었다.
‘탄호이저’는 당시 주류를 이루던 이탈리아 오페라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우선 작곡가 자신이 직접 쓴 대본은 13세기 가창대회 이야기와 탄호이저의 전설이라는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는 두 이야기에 기초하고 있다.
이 권선징악의 성격이 강한 전설들을 바그너는 인간 내부의 갈등으로 해석하여, 전반적인 극의 구성이 매우 탁월하며 음악 역시 박진감 있게 전개된다. 전체적으로 노래 위주가 아니라 관현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이 작품은 바그너 오페라의 큰 특징 중 하나인 라이트 모티브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최초의 오페라라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베누스의 동기’나 ‘저주동기’와 같은 극중 인물이나 이념과 관련된 라이트 모티브들은 마치 기악곡의 모티브처럼 각각의 성격을 부각시키면서 극의 전개에 따른 특정한 음악적 분위기를 조성하며 전체적으로 극의 통일성을 부여한다.
이상의 특징들로 볼 때 ‘탄호이저’는 바그너가 가장 이상적인 예술형태라고 믿었던 종합예술작품인 음악극의 탄생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그의 초기 최대 걸작이다.
‘탄호이저’ 이야기는 13세기 초 튀링겐 바르트부르크에서 개최되었던 가창대회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중세 기사이자 음유시인인 탄호이저는 영주의 조카딸 엘리자베트를 순수하게 사랑하면서도 관능의 유혹에 넘어가 요염한 베누스의 노예가 된다. 그는 이러한 과거를 뉘우치지만 신의 용서를 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탄호이저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엘리자베트가 그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고, 탄호이저 역시 그녀의 유해 곁에서 숨을 거둔다. 이 ‘저녁별의 노래’는 3막 2장에 나오는 아리아로, 정숙한 기사인 볼프람이 엘리자베트의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예견하고 부르는 애절한 바리톤 아리아다. 그는 밤의 불안이 찾아왔지만 하늘에는 빛나는 별이 골짜기를 비추고 있다며, 저녁별에게 그녀가 죽어서 별 밑으로 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④ 민족주의 오페라
19세기 말 여러 유럽 국가에서 팽배하던 민족주의 음악정신은 오페라에서도 뚜렷이 나타났다. 러시아에는 1836년 글링카(1904~1957)의 애국적인 오페라 ‘차르를 위한 일생’을 시작으로, 무소르그스키(1839~1881)와 보로딘(1833~1887) 그리고, 림스키 코르사코프(1844~1908) 등 러시아의 ‘막강한 소수’로 알려진 작곡가들이 러시아 민족주의적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예를 들어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어 억양을 최대한 살린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보로딘은 ‘이고르 공’, 립스키 코르사코프는 ‘사도코’와 ‘금계’를 작곡했다.
그러나 같은 러시아 오페라라 해도 차이코프스키의 ‘에프게니 오네긴’ 같은 작품은 뛰어난 걸작이지만 서유럽의 오페라 전통을 답습한 작품이므로 러시아 민족주의 오페라라 할 수는 없다.
체코에서는 스메타나(1824~1884)가 민족적 특징을 담은 주제와 민속음악풍의 선율, 그리고 민중 춤의 리듬이 뚜렷이 드러나는 오페라 ‘팔려간 신부’를 작곡하였다.
스페인의 파야(1876~1946)가 작곡한 ‘짧은 인생’ 역시 스페인의 민속선율과 리듬이 생동하는 대표적 민족주의 오페라다. 한편 20세기 미국에서 작곡된 거쉰(1989~1937)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는 이들 작품과는 문화적, 역사적 맥락이 다르지만 재즈의 특성을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미국식 민족음악이라 할 수 있다.
초창기 오페라 작품들은 귀족의 궁정이나 목조건물에 촛불 조명을 사용했던 극장에서 공연되었지만 오늘날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 등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은 첨단시설을 갖추고 다양한 무대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