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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1세기의 교회가 그 당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사도바울 혼자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 뒤에 있었던 수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의 절대적인 헌신과 봉사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당당하게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었던 겁니다. 바울은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수많은 애환을 남겼고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울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바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이라도 기꺼이 바칠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사역의 특성상 많은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그는 한 지역 교회의 목회자가 아니라 전도자였습니다. 한 지역에 머무르면서 전도하여 교회가 세워지면 그는 그 곳을 떠나 또 다른 지역으로 사역지를 옮겼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물질적으로 궁핍하였고 사람들의 도움과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누구에게나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혼도 하지 않고(고전9:5), 손수 장막을 만들어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가 한두 번 후원금을 보냈을 때 잊지 않고 기뻐한 것을 보면(빌4:16-19) 사람들의 도움이 얼마나 필요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바울에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평생 사역의 동반자였습니다. 바울은 선교 사역이 참으로 힘들고 처절했지만, 그래도 눈물겹도록 고맙고 다행스러운 것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희생적이고도 헌신적으로 끝까지 동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의 처음 만남은 사도행전 18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브리스길라 부부는 본래 이스라엘 본토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글라우디오 황제의 추방령에 의해(A.D. 49년) 로마에서 이곳 고린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이들이 처음 만난 동기는 직업(장막=탠트만드는)이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죽을 때까지 바울의 후원자요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의 생애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바울이 항상 잊을 수 없고 생각만 해도 감사하고 늘 모든 사람들과 교회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였습니다. 브리스길라는 정말로 위대한 바울의 동역자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남편과 함께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남편과 함께 하나님의 사역을 잘 했고 특별히 바울의 그 어려웠던 시절에 바울과 동역을 했고 결과적으로 자신도 참으로 위대한 평신도 복음전파사역자가 된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브리스길라의 애칭)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3-4).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고전16:19)라고 하였습니다. 곧 바울은 위의 말씀을 통해서 이들 부부를 로마교회에 소개할 때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1)나의 동역자이다.
2)나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은 사람이다.
3)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는 사람이다.
바울은 이들 부부를 향해 그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곧 자기들의 모든 것을 받쳐 복음과 바울을 위해 헌신한 부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헌신적으로 동역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복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들의 헌신은 다음 몇 가지 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브리스길라 부부는 어떤 부부였는가를 살펴봅시다.
1. 이상적 가정을 이루고 함께 헌신한 부부입니다.
브리스길라 부부의 가정은 의롭고, 원만한 사랑으로 평화로웠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동역하고 전진한 가정으로서 현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 귀감이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여섯 번의 이들 부부의 이름 중 4번이나 아내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유대 사회의 관습에는 항상 남자의 이름이 먼저 오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 브리스길라 이름이 네 번이나 먼저 나온 것은 아내 브리스길라가 주의 일에 더 헌신적이고 활동적이었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이러한 활동 뒤에는 남편 아굴라의 이해와 도움이 함께 동반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겼습니다. 세상에서 부부가 함께 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그림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들 부부의 생활이 남달리 순탄했거나 안정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최소한 네 번 이상을 여기저기로 옮겨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고향인 본도(이스라엘)에 살다가, 로마로 이주하고, 또 글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 추방령을 선포하는 바람에 고린도로 쫓겨나서, 거기서 바울과 만나 에베소로 갑니다.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자 거기서 다시 로마로 이주합니다. 당시가 세계화 시대도 아닌데, 지구촌 시대도 아닙니다. 요즘 이사나 이민은 어려울 게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주하거나 이민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고 큰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건 함께 손발을 맞춰가며 신앙생활에 열심이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귀감이 되어 마땅합니다.
그들은 당시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에서 살다가 로마 황제의 유대인 차별정책의 일환으로 유대인 추방령이 내렸을 때인 A.D 52년경에 로마에서 추방되어서 고린도 지역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고린도라는 지명은 아테네와 마주보고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이 도시에서 같은 유대인으로서 순회 복음 전도자인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되어서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참으로 귀한 만남이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가장 위대한 복음 전파사역자인 바울을 만났기 때문에 바울로부터 배우고 훈련받아 그들 역시 가장 위대한 평신도 복음 전파사역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 말씀을 사모하고 즐거워한 부부입니다.
사도행전 18장의 중요한 사건(행18:1-5)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도 바울과 이 아굴라 부부의 만남입니다. 그들은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사도 바울로부터 강도높은 말씀 훈련, 제자 훈련을 받은 겁니다. 초대교회의 그 놀라운 능력과 권위는 바로 이런 말씀에 대한 성도들의 헌신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사도로부터 1년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철저히 말씀의 기초를 쌓았습니다. 초대 교회의 위대한 힘은 바로 이 말씀에 대한 철저한 헌신 때문에 나왔던 겁니다. 이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말씀을 사모하고 즐거워하는 부부들이 많았기 때문에 복음은 들불 번지듯이 세계로 퍼져 나갔던 것입니다.
브리스길라는 참으로 말씀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녀의 모든 생활은 말씀 중심의 생활이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1년 6개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교육받았습니다(11절). 그러므로 복음의 핵심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날마다 말씀을 상고하며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즐거워하며 말씀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나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3. 아볼로에게 복음의 진수를 겸손하게 전해주었습니다(행18:24-28).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한 유대인이며 뛰어난 학문과 성경에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아볼로"라는 웅변가가 에베소에 들려 회당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씀선포에는 요한의 세례(물세례)까지만 알고 있을 뿐,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도리나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한 권능과 성화의 역사하심 등은 배제가 된 설교였습니다. 지식으로 인한 신앙은 능력의 나타남과 열매를 맺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이 특색이기에 영성이 있는 사람이 들으면 생명력이 없는 지식의 나열밖에는 들려지지 않는 말이므로 결국 은혜를 느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들은 아볼로를 집으로 초청하여 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하여 들려주되 브리스길라의 가르치는 은사와,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하여 아볼로에게 성령충만함의 체험을 이루게 하여 주었습니다. 이 체험을 통하여 아볼로는 성령중심사역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아가야로 건너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함에 유대인들의 말을 이길뿐만 아니라 믿는 자 들에게 많은 은혜를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헌신이 단편적으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던 아볼로의 신앙을 깨우쳐 주었고, 그를 위대한 설교자로 만들었습니다(고전 3:5-9).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행18:26) 고 한 대로 브리스길라가 하나님의 도를 아볼로에게 이처럼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구원사역, 부활승천, 성령강림, 초대교회 부흥 및 성령의 역사하심 등을 듣고 체험함으로 브리스길라가 이미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는 복음전파자가 된 것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4. 가정을 개방하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이 1년 6개월간의 고린도 전도를 마치고 에베소를 떠나자 이들 부부도 함께 이사했습니다.(18,19절). 이곳에서 그들은 바울의 사역에 발맞춰 자신들의 집을 교회로 사용했으며(고전 16:9), 후에 로마에 돌아가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롬16:5). 당시 교회는 지금처럼 좋은 건물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성도들의 집에서 모였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최소한 A.D. 3세기경까지는 교회의 건물이 따로 없이 성도들의 집을 교회 집회 장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브리스길라 부부는 가는 곳마다 자신들의 생활 터전인 집을 교회로 사용하도록 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부로서 가정을 남에게 개방한다는 것은 가족만 있을때보다 몇배나 일이 더욱 가중되며 아울러 번거로움이 따르는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남편과 함께 장막짓는 일까지 함께 하면서 사역을 한다는 것은 힘든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3가지 일(가정,사업,사역)을 성공적으로 능히 꾸려나갈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마음속에 주님에 대한 남다른 뜨거운 사랑과 사명감이 유달리 특별했기 때문에서였습니다. 이따금씩 오는 손님들도 치루기가 쉽지 않은데 밤낮으로 교인들이 내 집을 드나든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보통의 헌신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배소로 향하게 되자 브리스길라 부부는 더이상 사업에 연연하지 않고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함께 에베소로 떠났으며 그곳에 도착하자 자신의 집을 개방하여 가르침과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미 이때는 그들이 충분히 사역을 할만큼 성숙되었으며 이같은 가정중심 사역을 통하여 마침내 에베소 교회의 탄생이 이루워지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안정이 되어가는 가운데 로마에서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었다는소식이 들리자 그들 부부는 세계의 도시인 로마의 복음화를 포기할수 없어서 다시 로마로 돌아가 가정을 개방함으로 로마교회가 또 다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롬16:5).
브리스길라의 가정교회를 주님께서 사용하신 데는 '브리스길라의 3가지 헌신'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여인으로서 진리의 말씀(사도바울의 가르침)과 성령의 권능(기도함으로)이 그녀에게 있었으며,
둘째는, 음식과 다과를 통한 친절한 섬김의 교제를 베푼것이었으며
셋째는, 자비량으로 그녀부부가 가정교회 전담운영을 책임졌기 때문입니다.
5. 사도바울의 사역에 최선을 다해 도와준 동역자였습니다.
사도행전 18장 이후 이들 부부의 행적은 바울의 서신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3-5, 고린도전서 16:19, 디모데후서 4:19 등 세 서신에서 이들의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에서는 모두 26명의 신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뵈뵈 다음으로 이들 부부의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에게 마르다와 마리아가 있듯이 바울에게는 브리스길라 아굴라가 복음 사역의 후원자였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바울의 동역자들일 뿐 아니라 바울 사도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까지도 내 놓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롬16:3-5). 이 말은 그렇게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말합니다.
바울의 생애 속에서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기 때문에 언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들 부부는 죽음을 무릅쓰고 바울의 생명을 구해 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이미 이방 모든 교회들이 다 알고 있는 일이었고 이로 인해 모든 교회들은 감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생명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이유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도와 주는 사람이었다면 이들 부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까지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는 이처럼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집을 교회로 제공하고 사도 바울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도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6. 브리스길라 부부의 삶은 증인으로서의 삶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증인으로서의 삶이란 성령님이 인도하는 데로 순종하며 복음전파사역을 감당하는 삶을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안주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증인으로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사람은 땅끝까지라도 복음증거를 위하여 가게 됩니다. 브리스길라 부부는 로마를 떠나왔습니다. 고린도와 에베소에서 사역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글라우디아 황제가 죽자 고향인 로마로 다시 갑니다. 또 다시 네로의 핍박으로 에베소로 돌아오지만 로마의 성도들을 위하여 위험을 무릎쓰고 다시 올라갑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하여 순교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의 고향 로마의 에벤틴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티투루스 세인트 브리스가"교회가 세워졌으며 또한 가장 오래된 로마의 지하묘소 가운데 하나도 그녀의 이름을 따라 "코미터리염 브리스길라"라고 지었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된 삶이란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 가는 삶입니다. 그 길만이 천국가는 지름길이며 확실한 영광의 길입니다(단12:2-3,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브리스길라가 이처럼 사도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그의 달려갈길을 다 달리고 그의 믿음을 지키고 우리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선한 바울의 동역자인 브리스길라를 얼마나 반갑게 맞아주시고 귀중히 여기시고 기뻐하시고 칭찬하시고 하늘의 영원한 상급으로 넘치게 갚아주시지 않겠습니까?(빌3:13-14).
초대교인들은 세상의 삶보다 증인의 삶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브리스길라 부부의 흘린 순교의 피는 로마가 기독교국가로 변화되는 과정에 박차를 가하는 귀한 역할을 하였으며 참으로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기 위하여 고난을 기쁘게 여기고 받아들인 참 그리스도인의 삶이었음을 보여준 실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지혜로운 빛" 으로의 삶을 살았던 브리스길라를 오늘을 사는 우리 신앙인들이 본받아 복음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있도록 그녀의 신앙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