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5천억의 진실
김은영
복권 당첨을 꿈꾸지만 내 사주에는 횡재운이 없다는 사주쟁이의 말에 복권을 잘 사지는 않았다. 올해는 운기가 좋다는 말에 몇 번 복권을 샀지만 역시 ‘낙첨되었습니다.’라는 글을 확인하게 된다. 수십억의 당첨금이 요즘 들어 복권치고는 좀 부족한 액수라는 말도 있지만 나를 포함한 서민에게는 감히 욕심낼 수 없는 그야말로 횡재인 것이다. 그런 행운이 내게 온다고 생각하면 온몸이 저릿한 흥분에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언감생심 이루어질리야.
오랜만에 장날의 정취를 느끼고 친정엄마 드릴 먹거리와 반찬거리도 좀 살 겸해서 귀찮아 잘 움직이지 않으려는 남편에게 콩국수 먹으러 가자고 꼬드겨 왜관장에 갔다.장에 가도 특별하게 살 것도 많지 않고, 식구가 줄어들다 보니 시장을 잘 이용하지 않게 된 지 꽤 오래되었다. 수박 한 덩이 사자는 말에 남편은 바퀴 달린 장바구니까지 끌고 나선다.
점심시간을 살짝 지난 시각이라 6월의 햇살이 따끈하다. 지붕이 씐 장에는 예상보다 사람들이 꽤 있다. 먼저 손칼국수집에서 콩국수 한 그릇씩 시원하게 해치웠다. 올 여름 들어 처음으로 먹는 콩국수라 구수하고 시원하다. 장 중간 길을 가로질러 버스정류장 근처 수박 트럭에서 친정엄마께 드릴 엄청 큰 수박 한 덩이를 고르고 친정엄마와 친분이 있는 노점에서 감자 한 바구니 구입했다. 단골이었던 묵파는 아주머니에게서 두부와 콩나물을 사서 장바구니에 담아 남편에게 먼저 주차장으로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시장에 들어서면서 남편이 납작만두 이야기를 한 터라 납작만두 한 봉을 사고 길을 건너는데 아까는 보이지 않던 계란 트럭이 가로로 떡 버티고 있다. 계란 사이즈가 조금 작기는 했지만 ‘난각번호 2’ 라는 계란 장수의 말에 발길을 멈추고 섰다. 아침 식사를 대신해서 삶은 계란을 한 개씩 먹는데 나이가 들면서 좀 더 질 좋은 계란을 찾는데 ‘난각 번호 4’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난각번호 2’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던 것이다. 그것도 8000원이라면 일반 계란 가격보다도 그리 비싸지는 않았다. 들고 가기 좋게 좀 끈으로 묶어달라고 하고 하니 목사님 드시라고 두 판 드린 것 말고는 내가 첫 개시라며 끈을 부산하게 찾는다.
그러는 동안 옆에 있는 노점에서 참외 한 봉지를 사고 다시 가니 초란이라며 두 판을 들고 만 원에 하란다. 그러마 하고 끈을 묶는 걸 보며
“ 날이 더워 어떡해요?”
날이 너무 따끈한데 햇빛 가릴 데도 없는 노상에 트럭을 대고 장사하는 게 안타까워 한 말인데 계란의 신선도를 염려해하는 말로 알아들었는지
“오늘 아침에 내온 거에요.”
한다. 그게 아니고 날이 더워서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라 하니
“괜찮아요. 이 트럭에 있는 계란만 팔면 양계장 그만 둘 거라요.”
“ 아니 왜요? 아, 닭들이 커서 그러는구나!”
나의 바보 같은 말에
“이제 돈이 넘치는데 장사는 뭐하러 해요.”
한다. 다소 이해가 안되는 말이라
“ 아니 뭘 하셔서 돈이 그렇게 많이 나셨어요?”
하니
“우리 언니가 2조 5천억이 생겨서 이제 일 안 하려고요.”
2조 5천억! 아무리 돈의 가치가 떨어졌대도 억 단위도 아니고 조 단위를. 황당한 말에 기가 차서
“어머, 좋으시겠어요!”
하고 돌아서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계란에 찍힌 파란색 마지막 “2”라는 숫자의 신뢰도가 확 떨어지는 것이다. 초란이라던 말도.
자그마한 게 맛있겠다던 친정엄마께 한 판을 내려드리고 한 판은 나의 아침을 위해 냉장고에 챙겨두었다. 2조 5천억의 진실과 난각번호 2의 진실은 묻어둔 채.
그리고 한 편으로 바라 본다. 2조 5천억이 그래도 진실이길. 그래서 계란 장수 아낙의 삶이 역전이 되길. 그 여인을 통해 나 또한 대리만족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