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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의 섬 사이판 (2006년)
* 여행 팁
지위 : 북마리아나제도 연방, 태평양 미국령 수도 : 사이판
구성 : 16개의 화산섬, 유인도는 티니안, 사이판, 로타
면적 : 약457.1㎢ 인구 : 약 7만 3천명(2003년 조사)
주민 : 차모로족, 캐롤라인족, 미국계 백인과 흑인
종교 : 로마 가톨릭 언어 : 공용어로 영어, 차모로어, 캐롤라인어
1521년 포르투갈인 항해사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이 섬 근처의 괌에 도착했다. 1565년에는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장군이 괌과 북마리아나 제도를 스페인의 식민지라고 주장했다. 1668년에 스페인의 본격적인 식민 지배가 시작되었고 마리아나 제도는 멕시코와 필리핀을 잇는 스페인의 중요한 무역로 역할을 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패배한 스페인이 이곳을 독일에 매매하여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독일의 식민지로 남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싸운 일본이 이 섬을 점령하였다. 그 뒤 국제연맹은 이 섬을 일본의 위임통치령으로 승인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1944년에 미국에게 이 섬을 빼았겼고, 종전 후에는 미국이 점령하게 되어, 1979년부터는 자치령이 되었다.
사이판(Saipan)으로
1월의 중순, 한겨울의 날씨 속에서 남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공항으로 모여들었다. 늦은 오후의 추운 날씨이지만 모두들 훈훈한 모습으로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었다. 오후 8시 10분 OZ256편으로 태평양에 떠있는 아름다운 섬, 사이판으로 향했다. 시간을 한 시간 앞으로 돌려놓고 4시간의 비행 후, 현지 시간 새벽 1시 40분에 사이판 공항에 내려앉았다.
숙소로 예약된 ‘아쿠아 리조트’ 크럽으로 향했다. 열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해변의 아기자기한 숙소는 우리들의 마음을 동화 속의 주인공이나 된 것처럼 설레게 했다. 조명등이 아련하게 비치는 바닷가에는 넓게 펼쳐있는 태평양의 밤바다가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아침이 되었다. 밤에 도착한 피로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들 일찍 일어나서, 남국의 해변을 거닐면서 산책을 즐겼다. 태평양에서 처음 맞는 아침, 모두들 반가운 마음으로 아침인사를 했다. 우리는 태평양의 아침 바다가 펼쳐 보이는 정감 넘치는 숙소의 레스토랑으로 가서 뷔페식 아침식사를 했다.
▲ 숙소 Aqua Resort Club ▲ Aqua Resort 일몰
사이판 섬 일주
사이판 관광의 첫 순서로 섬의 북쪽에 위치한 한국인 위령탑으로 갔다. 이탑은 제2차 대전 때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된 한국인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서 건립한 탑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의 정을 표했다.
이어서 만세절벽으로 갔다. 이곳은 서글픈 역사의 현장이다. 제2차 대전의 전세가 일본에 불리하게 전개되어 완전히 기울어지자 수천 명의 일본인들이 만세를 부르면서 바다로 뛰어내린 곳이다. 절벽 아래에는 초록빛 바닷물이 서글픈 사연을 아는지 세찬 파도를 일으키면서 하얀 거품을 뿜으며 솟아올랐다.
▲ 만세절벽 ▲ 새섬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새섬(Bird Island)이다. 절벽아래 푸른 바다에 조그만 섬이 있었다. 섬의 주변은 온통 크고 작은 구멍으로 채워져 있었고, 오후가 되면 새들이 이곳으로 찾아들면서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오전의 마지막 코스는 일본군의 최후사령부였다. 숲과 바위로 위장된 진지 부근에는 포탄의 흔적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띠었다. 당시의 처절한 상황이 연상되었다. 절벽으로 위장된 진지 속으로 들어가니 전쟁이 진행되는 환상이 스쳐갔다. 주변에는 일본인들이 남긴 추모의 흔적들이 많이 눈에 뜨였다.
오후에는 지프차를 타고 사이판의 전경을 조망해 볼 수 있는 타포차우(Tapotchau)산으로 갔다. 정상에 오르니 세찬 바람 속에 태평양에 떠 있는 사이판 섬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정상에는 태평양을 바라보는 예수상이 평화를 기원하며 서 있었다.
▲ 타포차우산의 예수상 ▲ 야외성당
산을 내려 와서 절벽 속에 마리아상이 안치되어 있는 야외 성당으로 갔다. 아늑한 장소가 경건한 마음을 불 러 일으켰다. 이곳에는 사이판에서 유일하게 그대로 마실 수 있는 지하수가 있어서 성수(聖水)로 사용된다고 했다. 펌프로 끌어올리는 지하수를 두 손을 모아 받아 마셨다.
원주민 마을로 갔다. 문명의 혜택 속에서 어렵게 보존되어 있는 원주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본 후 현지에서 제공하는 코코넛 물로 목을 적셨다.
원주민 마을을 나와서 정글투어를 시작했다. 지프차로 정글 속으로 들어갔다. 크지 않은 정글이었지만 정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프차 바퀴가 물에 잠기는 정글 길을 한동안 가니 절경의 바다경치가 눈앞에 전개되었다. 기암의 절벽에 초록빛 바닷물이 파도를 몰고 와서 부서지며 치솟고 있었다. 영화촬영의 장소로 이용되는 곳이라고 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이판의 노래방에 들려서 우정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또 그날 저녁 숙소인 아쿠아 리조트 크럽에서 북마리아나 주지사 취임 축하연이 베풀어져서 그들의 축하연에도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 코코넛으로 목을 추기고 ▲ 마나가하섬
남태평양의 보석 마나가하섬
오늘은 조금 일찍 서둘러서 숙소를 출발했다. 유람선을 타고 초록빛 물결을 가르면서 남태평양의 보석이라 불리는 마나가하섬으로 향했다. 쪽빛 바닷물 위를 하얀 물거품을 토해내면서 유람선은 약 15분을 달려서 섬에 도착했다. 이 섬은 일본인이 전세를 내어 유원지로 운영하는 섬이라고 했다.
우리는 스노쿨링 장비를 갖추고 눈부시게 하얀 산호모래를 밟으며 바다에 뛰어들었다. 세차게 밀려오는 파도를 안으면서 스노클링을 시작했다. 준비해간 빵부스러기를 뿌리니 오색의 열대어들이 몰려들었다. 물아래 바닥에는 형형색색의 산호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 사이를 열대어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밀려오는 파도의 유혹에 빠져 바다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다가 놀라서 급하게 해안 쪽으로 나오기도 했다.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돌아올 때에는 하늘을 날아보고 싶은 사람들은 유람선 대신에 파라세일링을 하면서 날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오후에는 숙소의 Pool에서 수영도 하고, 해변을 거닐면서 남국의 정취를 안아보기도 했다. 휴식을 취한 후 사이판의 중심지 ‘가라판’으로 나가서 시내 구경을 하면서 쇼핑도 했다.
▲ 마나가하섬 스노클링 ▲ 어둠이 깔린 숙소 수영장
저녁에는 어둠이 깔린 숙소의 해변에서 맥주잔을 앞에 놓고 사이판 여행의 소감을 이야기 하면서 우정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은 계속 피어올랐는데, 하늘이 시샘을 했는지 자정 무렵이 되니까 실비(細雨)를 뿌리기에 모두들 숙소로 들어갔다.
카약(Kayak)을 저으면서
사이판에서 3일째가 되는 날이다. 아침식사 후 10시쯤에 해변에 모였다. 카약(Kayak)을 타고 태평양을 항해해 보기로 했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2인 일조가 되어 카약을 타고 노를 직접 저으면서 바다로 향했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조금 지나니 모두들 익숙해지면서 바다로 향해서 멀어져 갔다. 쌍쌍이 카약을 저으며 망망대해로 향하는 모습들이 마치 어느 영화에 나오는 장면 같았다. 잊지 못할 추억의 시간이었다. 카약항해를 끝낸 후 모두들 해변에 위치한 숙소의 수영장으로 와서 제각기 숨겨둔 수영실력을 겨루어 보기도 했다. 수영을 끝내고 수영장 바(Bar)옆에 있는 수중 의자에 걸터앉아서 코코넛 물을 마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 숙소 수영장에서 ▲ 바다 낙시
바다낙시와 스쿠버다이빙
오후에는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일부는 숙소의 수영장과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남국의 정취를 만끽했다. 그리고 일부는 바다낙시와 스쿠버다이빙 그리고 스노쿨링을 하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검푸른 바다에 낙싯대를 드리웠지만 그날따라 물고기들이 휴가를 갔는지 생각만큼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도 몇 마리 잡은 것으로 즉석에서 회를 만들어 안주로 했다. 한잔 술 맛이 일품이었다.
장소를 옮겨 산호초 보호구역으로 갔다. 스노클링 장비를 갖추고 로프를 타고 깊은 바다로 뛰어내렸다. 청정 해역의 깊은 바닥의 산호초들과 열대어들이 우리를 반기는 듯 다가왔다.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갖추고 바다 속으로 내려갔다. 바다 속을 걸으면서 열대어들과 손을 맞대면서 인사를 했다. 물속을 유영하는 모습들이 바다 속에 사는 사람들을 보는 듯 했다.
저녁에는 원주민 쇼를 감상하면서 사이판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했다. 아쉬움의 시간이었다. 모두의 머리에는 화사한 남국의 꽃이 장식되어 있었고, 무대 위에는 원주민 쇼가 열기를 더해갔다. 무대로 올라가서 어울리며 남국의 춤을 추었다.
남국의 푸른 파도 위에서
새해의 설계와 우정을 수놓은
추억의 Saipan 여행!!
아름다운 추억은 영원으로 향하고,
가슴을 가득 채운 뿌듯한 우정들은
삶의 향기 되어 평생을 함께 하리라!
태평양의 요지 괌(Guam) (2003년)
* 여행 팁
지위 : 미국의 준주(準州) 수도 ; 아가냐
위치 : 태평양(하와이 서쪽 약 5,000km)
면적 : 561㎢ 인구 : 160,000(2002)
공식 언어 : 영어, 종교 : 주민 약 4/5 가톨릭
괌(Guam)은 마리아나 제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남쪽에 있는 섬으로 미국의 준주(準州)로 되어 있다. 하와이 제도로부터 서쪽으로 약 5,000㎞ 떨어져 있으며 열대성 기후로 연중기온이 21~32℃이다. 연평균 강우량은 약 2,400㎜인데, 대부분은 7~9월에 내린다.
미국-스페인 전쟁(1898)의 전리품으로 미국에 할양되었다. 괌 주민들은 미국 시민이지만 국민투표권은 없다. 괌은 미국 서해안지역과 하와이, 필리핀, 미크로네시아 제도, 오스트레일리아, 극동지역으로 가는 항공기들의 기착지점이다. 원주민인 차모로족은 원래는 말레이인도네시아족으로 스페인·필리핀·멕시코·기타 여러 종족의 피가 섞여 있다. 공식 언어는 영어이고 차모로어도 사용된다.
괌(Guam)으로
괌은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중요한 군사 요충지다. 그래서 미국은 괌을 독립시키지 않고 미국의 영토로 편입했다. 또한 괌은 항공로의 요지이다. 태평양에 점점이 뿌려져 있는 섬들로 가는 항공기는 대부분 괌을 거쳐서 간다.
저녁 7시 5분 비행기로 괌을 향해 출발해서 4시간여의 비행 후 자정 무렵에 괌 공항에 내렸다. 괌은 군사요충지여서 미국이 이곳을 본국의 영토에 편입시켰기 때문에 공항에서부터 입국절차가 미국식으로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입국절차를 마치고 공항을 나와서 예약해둔 숙소 오키드호텔로 갔다. 숙소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괌의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숙소에서 내려다본 괌의 바다는 천연의 요새를 겸한 아름다운 해변을 가지고 있었다. 내일의 괌섬 관광을 기대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괌섬 탐방
아침이 밝아왔다. 역시 해변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상쾌했다. 우리는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괌섬 일주 탐방에 들어갔다. 괌은 관광명소답게 어디를 가나 경관이 아름다웠다. 가는 곳마다 특징 있는 자연경관이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괌의 행정관청 청사를 방문했다. 태풍에 휩쓸린 청사를 보면서 이 섬의 매서운 자연조건을 실감했다. 청사의 지붕이 태풍에 부서지고 찢겨서 나풀거리고 있었다. 행정관청을 나와서 우리는 다시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해변도로를 타고 괌섬의 풍광을 음미했다. 도로를 따라가면서 이어지는 아름다운 경치들을 감상하면서 바닷바람을 마음껏 심호흡했다.
▲ 괌 해변에서
‘요꼬’의 계곡
버스가 해변을 따라 달리는데 안내인이 내륙의 산골짜기를 가리키면서 2차대전 때의 일본인 요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세계 2차 대전 때 참전한 일본 군인 ‘요꼬’가 일본이 항복한 후에도 일본 왕에 대해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 연합군에 투항하지 않고 혼자서 깊은 숲속에 숨어서 살다가 세월이 흐른 후에 짐승 차림새의 사람으로 발견되어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요꼬의 충성심을 국민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요꼬를 영웅으로 칭했다고 한다.
요꼬계곡을 지나 태평양의 바다가 시원스럽게 바라보이는 해변에 자리 잡고 있는 경치 좋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식사 후 해변을 거닐면서 아름다운 괌의 바다를 감상하면서 시간을 보낸 후에 괌섬의 남쪽해변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시내로 들어왔다.
사랑의 절벽
괌섬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사랑의 절벽이다. 이곳에는 젊은 남녀의 사랑의 애환이 전설이 되어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사랑의 절벽으로 향했다. 사랑의 절벽에 도착해서 절벽 아래로 펼쳐지는 푸른 바다를 바라볼 때는 마치 나 자신이 애절한 사랑의 주인공이나 된 것처럼 가슴이 뭉클해 왔다. 스페인 통치시절 지배자의 가문 남성과 아름다운 원주민 차모로족의 여인 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깊어져서, 사랑의 결실을 죽음으로 거두기 위해 절벽 아래 바다로 두 사람이 몸을 날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지금도 많은 연인들이 찾아와서 애처로운 사랑의 이야기로 자신들의 사랑을 굳힌다고 했다.
사랑의 절벽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서 다음 여정을 준비했다. 우리는 괌섬의 아름다운 풍광을 가슴에 담으면서 오후에 출발하는 야프(Yap)섬 행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공항으로 향했다.
▲ 괌의 해변 ▲ 사랑의 절벽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바다의 경관, 마이크로네시아의 전통문화와 서구의 문화가 혼재해 있는 도시의 분위기, 안내인의 친절함 등이 모두 이 태평양의 섬나라 괌에 대한 인상을 깊게 해주었다.
추억의 대마도 여행 (2012년)
* 여행 팁
위치 : 대한해협의 중간쯤에 위치한 일본의 섬
일본 본토(약 132km거리), 한반도(약 49.5km거리)
인구 : 34,000명 내외
지위 : 행정구역은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시
거리상으로는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에 더 가깝다. 1418년(태종 18) 대마도에 흉년이 들자 왜구들은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명나라 해안으로 향하던 중 조선의 비인(庇仁)·해주(海州) 해안에 침입했다. 이에 1419년 6월 세종은 이종무에게 군사를 내어 왜구를 토벌할 것을 명했다. 이종무는 삼남(三南)의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으로 마산포를 출발하여 대마도로 진격했다. 이 정벌을 통해 왜구의 배 127척을 빼앗아 불사르고 왜구를 소탕하는 전과를 올리고 한 달여 만에 철수했다. 대미도 정벌은 고려 창왕 때와 조선 태조 때에도 행해졌다.
해운대에서 일박을
이번 여행은 큰 딸 윤정이가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서 기획했다. 3박 4일의 일정, 서울에서 꼭두새벽에 출발하는 것 보다는 하루 전날 출발하여 부산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부산에 내려가서 해운대에서 1박하면서 해운대의 밤바다 정취를 만끽해보았다. 해운대의 밤바다를 걸으니 지난날의 추억들이 아름답게 되살아났다. 추억은 아름답다.
▲ 부산 해운대의 야경
대마도를 향해서
날이 밝았다. 해운대의 아침 공기를 마시며 백사장을 걸었다. 호텔을 나와서 해운대와 작별하고 추억어린 광안대교를 지나서 ‘페리’부두로 향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9시에 출발하는 ‘부산 - 대마도’ 페리 ‘Beetle' 호에 몸을 실었다. 1시간 10분 동안 하얀 물결의 꼬리를 이으면서 현해탄을 달린 후에 대마도 북쪽에 위치한 ‘히타카츠’항에 도착했다.
조그마한 어촌의 항구였다. 배에서 내려서 거리로 나오니 한국의 정취가 곳곳에서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대마도 방문을 환영합니다.‘ 라고 한글로 적은 깃발이 길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정감어린 거리를 좀 더 걸었다. 동네 한 곳을 지날 때 일본의 특징을 나타내는 신사(神社)가 보였다. 우리는 그곳에 들려서 일본의 정취를 잠시 느껴보았다. 다시 거리로 나와서 좀 더 걸어가니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가을 운동회가 한창이었다. 어릴 때 시골에서 가을운동회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산위의 전망대에 올라가서 히타카츠 항을 내려다보니 조용한 어촌 마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시골의 정취가 깃들어 있는 조용한 시내거리를 더 걸었다. 점심때가 되었다. 식당들이 거리의 정취에 어울리게 조용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렌트카’ 회사 직원과 약속한 곳으로 갔다. 렌트카 회사 직원이 차를 몰고 나와서 우리를 태우고 회사로 갔다. 가족이 경영하는 조그마한 회사였는데 직원이 한국말을 잘해서 한결 편했다.
대마도 탐방
렌트한 차를 타고 우리는 본격적인 대마도 탐방을 시작했다. 스케쥴에 따라 대마도의 남단으로 차를 몰았다. 산림이 울창한 산간 도로를 달려서 어느 해변 길에 접어드니 바다에 서있는 신사의 문이 나왔다. ‘신사의 문이 바다에 2개, 육지에 3개가 있어 총 5개가 있는 와타즈미’신사에 들렸다. 해궁으로 바다 신을 모시는 신사라고 했다.
▲ 히타카쓰 신사에서 ▲ 와타즈미 신사
다시 차를 몰아 ‘에보시다께’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다본 ‘아소’만은 겹겹이 쌓인 산들과 바다의 어우러짐이 대마도의 ‘하롱베이’라고 일컬을 만 했다. 대마도에서 유일하게 360도를 돌면서 동서남북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 에보시다께 전망대 ▲ 전망대에서 본 바다 정경
전망대에서 내려와서 ‘이즈하라’를 향해서 차를 몰았다. 가는 길에 ‘수퍼’에 들렀다. 여행 중이라 그런지 허리에 약간의 통증이 있어서 ‘파스’를 사려고 약방을 찾았다. 의사소통은 윤정이가 하기 때문에 불편은 없었는데 이 ‘수퍼’에서 감동적인 일이 하나 있었다. 물건을 살 때 일본 돈을 지갑에 넣어서 들고 다니면서 값을 치렀다. 쇼핑을 마치고 주차장에 와서 차를 타려고 하는데 그 때 아주머니 한분이 손에 우리가 가지고 다니던 지갑을 들고 우리를 향해서 허겁지겁 뛰어왔다. 물건을 사면서 지갑을 두고 온 것이었다. 우리를 찾아서 반가웠던지 우리를 보고 웃으면서 지갑을 건네주고 돌아갔다. 친절함과 책임감에 감명을 받았다.
해가 질 무렵 대마도에서의 첫날의 여행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방향을 잡았다. 이즈하라에 있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대아호텔’로 차를 몰았다. 이즈하라는 크지 않은 도시여서 길도 골목길이 많았다. 호텔을 찾는데 골목길로 접어들어서 운전하는 윤정이가 수고를 좀 했다. 대아호텔은 산기슭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숙소에서 내려다 본 바다의 전망이 매우 좋았다. 여장을 풀고 차를 호텔에 두고 걸어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다. 올 때의 그 골목길을 걸어서 시내의 식당가로 내려가서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식당에 들어가서 일본식 식사로 일본여행의 분위기를 살렸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 올 때에도 대마도의 정취를 느끼면서 그 골목길을 걸어서 올라 왔다. 대마도에서의 단란한 가족의 밤, 오래 동안 가슴에 새겨질 추억의 밤이 되었다.
상쾌한 아침이다. 호텔주변의 잔디밭 언덕길을 걸었다. 잔디밭 언덕과 호텔 그리고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가 마음에 들었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이즈하라부근의 유적지 탐방에 들어갔다.
이즈하라 부근에는 유적지, 관광지가 많았다. 대마도 남단부에 있는 대마도 중심 도시 ‘이즈하라’에는 에도시대의 관청의 소재지였다. 먼저 에도시대의 관청이 있었다는 ‘반쇼인’으로 가서 에도시대의 문화를 살펴보았다. 산기슭에 있는 많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쓰시마 번주’ 가족묘소가 있었는데 이 묘소는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있고, 일본의 3대 묘지 중의 한 곳이라고 했다.
이즈하라박물관에 들려서 대마도의 역사를 일별해 보고, 또 현립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에도 들렸다. 우리는 잠시 백화점에 들러서 간단한 쇼핑과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차를 타고 주차증을 찾으니 보이지 않아 물건을 산 곳에 가도 없어서 사무실에 이야기하니 바로 주차관리인에게 연락이 되었다.
▲ 반쇼인 ▲‘야유모도시’자연공원
야유모도시 국립공원
자연이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야유모도시’자연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해서 은어가 물을 거슬러 올라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울창한 산길을 달려서 ‘야유모도시’ 공원에 도달했다. 10월이어서 인적이 거의 끊겨 있었다. 입구의 구름다리는 이곳의 정취를 한층 더 북돋아 주었다. 다리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면 계곡 전체가 천연 화강암 골짜기가 되어 있고, 그 골짜기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아름다웠다. 정겨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우리는 계곡의 물에 발을 담구고 준비해 간 점심을 먹으면서 가족의 정을 풋풋하게 느껴졌다. 작은 딸 윤희 가족도 함께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맑은 계곡물을 보니 손주 지호 생각이 많이 났다.
다음 코스는 대마도 남단에 위치한 ‘쓰쓰자키’ 전망대다. 이곳은 대형차는 갈 수 없을 정도로 전망대에 오르는 산길이 좁았다. 그러나 운치가 있는 길이었다. 전망대에 오르니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 암초들, 그리고 뱃길을 인도해주는 하얀 등대가 조화를 이루면서 절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쓰쓰자키 전망대를 내려와서 ‘이시야네’ 유적지에 들렸다. 돌지붕 유적지다. 89%가 산간지역인 대마도에서는 식량 자급자족이 어려워서 식량보존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래서 식량창고를 화재나 강풍으로부터 보존하기 위해서 창고의 지붕을 돌로 덮었다. 부근에 있는 옛날의 무가(武家)저택들도 둘러보았다.
우리는 대마도 서쪽 해안 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대마도의 북섬과 남섬을 연결하는 ‘만제키바시(萬關橋)’옆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다리 위를 걸으면서 좁은 해협으로 통하는 바닷물의 흐름을 내려다보았다. 다리 아래의 해협은 해군함대의 통로로 쓰기 위해서 인공으로 만든 해협이다. 이 다리의 역사적 의미는 이 인공해협이 러일전쟁 때 쓰시마해전을 대승케해서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것을 기념해서 만든 다리라고 했다.
▲ 쓰쓰자키 전망대 ▲ 만제키바시
북으로 올라갈 때에는 대마도 서쪽 해안 길을 따라 올라 가다가, 산림이 울창한 산길에 접어들면서 대마도 섬 중간을 가로 질러 동쪽 해안 길로 넘어 왔다. 계속 북쪽으로 달렸다. 울창한 숲길의 연속이었다. 예약해둔 숙소가 있는 ‘미우다’ 해수욕장에 도달했을 때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계절이 지난 해수욕장은 인적이 끊어지고 한산했다. 해수욕장 안쪽 산 아래에는 아담한 펜션 몇 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약해둔 숙소 ‘미우다 펜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크인(check in)을 하고 여장을 풀었다. 숙소가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어둠이 내린 해수욕장은 고요한 적막 속으로 빠져들었다. 펜션에서 저녁식사를 손수 준비해서 해결하고, 해수욕장 옆에 있는 해수탕사우나에 가서 여독을 풀었다.
대마도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운동시간에 눈을 떴다. 여행 중이라도 아침운동 시간은 철저하게 지켰다. 숙소 밖으로 나가니 아직도 어둠이 다 가시지 않았다. 숙소주변을 돌아서 바다가로 나갔다. 해변의 공기가 상쾌했다. 인적이 끊긴 해수욕장이지만 각종 시설에서 인파가 스쳐간 흔적들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해수욕장은 모래가 곱고 풍광이 아름답기로 이름 있는 해수욕장이라고 했다.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가면서 모래 위를 걸으니, 지난날 해수욕장에서 있었던 추억들이 되살아났다.
▲ 대아호텔 ▲ 미우다 펜션
펜션에서 손수 준비한 정겨운 아침식사를 마쳤다. 잠시 머물렀지만 정이 든 펜션을 뒤로 하고, 차를 몰아 대마도 최북단에 있는 한국전망대로 향했다. 날씨가 좋으면 우리나라가 보인다고 했다. 전망대에서 우리나라 쪽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나라 쪽을 향해서 한참동안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 이국(異國)에서 느껴보는 고국의 정을 가슴에 새겨 보았다.
▲ 한국으로 향한 전망대 ▲ 야생동물 보호지역
다음 행선지는 좀 특별한 곳이다. 일본의 야생동물 보호지역이다. 특히 대마도의 상징적 동물인 ‘야마네꼬(산고양이)’를 보러갔다. 시골길과 산길을 번갈아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국가가 지정한 보호 관리지역이라서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관리인의 안내를 받으면서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니 ‘야마네꼬’ 한 마리가 우리 속 나무위에 외롭게 앉아 있었다. 보호지역을 둘러보고 ‘히타카스’로 돌아왔다.
이제는 귀국길이 남아 있다. ‘히타카츠’로 돌아와서 렌트한 차를 반납하고, 짐은 부두에 있는 사무실에다 맡겼다. 가벼운 차림으로 시내를 거닐면서 조용한 식당거리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또 수퍼에서 간단한 쇼핑도 했다. 작은 시골동네이어서 과자점에서 만난 주인이 차를 몰고 가다가 길을 걷는 우리를 알아보고 차속에서 인사를 했다. 정감이 넘쳐흘렀다.
오후 4시, 페리 출발시간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어서 히타카츠 항구의 거리를 걸으면서 이번 여행을 정리해 보았다. 인간과 자연이 잘 어우러진 대마도가 정겹게 마음속으로 다가 왔다. 또 조용하고 아담한 히타카츠 동네가 추억의 장에 자리를 잡아갔다. 특히 이곳 대마도에는 우리와 관련된 역사적 흔적들이 종종 눈에 띄어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기회가 되면 또 오고 싶었다. 오후 4시 부산으로 향하는 페리에 몸을 실었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추억어린 여행이었다. 이번의 대마도 여행은 조용하고 정감이 넘치는 대마도의 분위기와 자연 경치의 정취에 흠뻑 빠지면서 가족의 정을 아로새긴 추억의 여행이었다.
필리핀 마닐라 여행
(2002년, 2003년, 2004년여름, 2004년가을, 2007년)
* 여행 팁
필리핀 마닐라는 거리, 비행시간, 내용, 비용에 있어서 단기간의 여행에 적합하다. 그래서 친구들과 또는 동료들과 우정을 다지면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찾아갔다. 다만 최근에 와서는 치안문제가 흠으로 대두되고 있다.
우정을 다지면서 마닐라로 (2002년)
우정의 여행길
바쁜 일상에서 휴식과 우정을 다질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았다. 비용, 기간, 경치 등을 고려하면서 찾은 곳이 필리핀의 마닐라였다. 마닐라는 방문한 적이 있지만 친구들과 함께 우정의 여행을 떠났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청사를 빠져나오니 낯익은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 루손섬 북부 이푸가오족 문화탐방 때 만났던 안내자와 기사가 우리를 알아보면서 다가 왔다. 여름비가 가볍게 뿌리는 마닐라의 밤기운은 약간 무덥기는 했지만 기대에 찬 우리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서 서둘러 여장을 풀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화산 호수 ‘따가이 따이’로
오늘은 화산호수 속에 활화산이 활동하고 있는 필리핀에서 유명한 휴양지 따가이따이로 향했다. 가는 도중 고색창연한 중세풍 교회에 들려 대나무 올갠의 연주를 감상했다.
이어서 필리핀 국산 자동차 ‘지프니’ 조립공장으로 갔다. 지프니는 중고 일제 엔진에 철판을 펴서 장식한 것으로 그들에게는 자부심의 작품인 것 같았다. 완성품에는 여러 가지 장식으로 꾸며 놓았다. 그들에게는 자랑스러운 국산 제품이고,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차라고 했다.
차를 몰아 따가이따이로 향했다. 차창에 비치는 정경은 이 나라의 경제 현실과는 다르게 풍요로웠다. 미개간 땅들이 많았고, 열대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나무들이 여기 저기 눈에 뜨였다. 전망대를 겸한 정상의 식당으로 갔다.
죠세핀 레스토랑과 따알호수
산 정상에 있는 죠세핀 레스토랑 야외 뷔페식당에서 아름다운 따알 호수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식사를 했다. 보슬비가 가볍게 뿌리는 정상에서 구름에 싸여있는 호수를 감상하면서 호수 속의 작은 활화산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정상을 내려와서 가랑비가 내리는 호수위로 보트를 타고 남국의 정취에 젖어보았다. 양쪽에 날개를 단 모터보트는 흐려지는 날씨에 기세를 올리려는 듯이 호수 면을 미끄러지듯 질주했다. 호수 위를 달리는 상쾌한 시간이었다.
잠보앙가(Zamboanga) 레스토랑의 전통 무용
저녁에는 잠보앙가 레스토랑에서 필리핀의 전통음악과 무용을 감상하면서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필리핀의 전통문화에 심취하면서 깊어가는 남국의 밤을 맞이했다. 무대 위에서 그들과 같이 어울릴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추억의 시간, 환희의 시간이 끝나고 마닐라 시내를 거닐면서 마닐라항에 정박해 있는 선박들을 바라보니 배에서 흘러나오는 오색 불빛들이 밤의 정경을 수놓고 있었다.
▲ 따알호수에서 ▲ 팍상한계곡
아름다운 팍상한(Pagsanjan) 계곡
오늘은 아침 일찍 필리핀 여행에서 하이라이트가 될 팍상한폭포로 길을 재촉했다. 시골 길을 달리면서 주변에 펼쳐지는 필리핀의 시골경치를 감상하면서 달렸다. 팍상한폭포 계곡은 두 번째의 방문이었지만 절경인 이 계곡은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방카(보트)를 타고 절경의 계곡을 거슬러 올라갈 때에는 탄성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급류를 거슬러 보트를 끌어 올리는 낯익은 보트맨들은 예나 다름없이 땀을 흘리면서 우리를 맞이했다.
▲ 폭포 앞에서 ▲ 폭포 속으로
방카가 상류에 이르니 폭포가 나타났다. 뗏목을 타고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 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아예 눈을 감고 몸을 폭포에 맡겨 버렸다. 속세에 찌든 심신이 새로워지는 것 같았다.
마닐라 시내 탐방
짧은 일정의 여행을 아쉬워하면서 마지막 날의 마닐라 시내탐방에 나섰다. 필리핀의 독립영웅 호세 리잘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리잘파크에는 리잘의 동상이 변함없이 필리핀의 오늘을 지켜보고 있었다.
인트라무로스성으로 갔다. 산티아고 요새의 감옥과 바다물로 수장을 했던 끔찍한 사형장, 리잘이 형장으로 향할 때 남긴 발자국 등을 둘러보았다. 동으로 각인해놓은 리잘의 발자국을 보면서 필리핀 사람들의 리잘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느껴보았다. 또 성벽 위의 녹슨 포대를 만져보면서 식민시절의 필리핀사람들의 고뇌를 생각해보았다. 이어서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필리핀 대성당과 필리핀 민속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필리핀의 과거의 흔적들을 두루 살폈다.
3박4일의 짧은 여행이어서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내일을 기약하면서 공항으로 향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마닐라 방문 (2003년)
가을의 정취 속에서
직장동료들과 함께 세 번째로 마닐라를 찾아가는 길이다. 가을의 기운이 찾아들고 있는 10월의 초순, 이른 새벽에 서울에서, 공주에서, 대전에서 모두들 인천공항으로 모여들었다. 이번의 필리핀 여행은 직장의 식구들이 한 팀이 되어 참여하는 우정의 여행이었다. 여행은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2박3일의 스케쥴로 짰다.
이른 아침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정오 무렵에 마닐라공항에 내린 우리는 바로 마닐라 탐방 길에 올랐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공항에 내려서 바로 따가이따이로 향했다. 코스는 이전 방문 때와 같지만 구성원은 달랐다. 같이 근무하는 사무실 식구들이기 때문에 끈끈한 정으로 묶여져 있어 더욱 의미 있는 여행이 되었다. 점심식사는 예전과 같이 산 정상에 있는 죠세핀레스토랑에서 딸알 호수의 수려한 경치를 감상하면서 했다.
호수의 항해
점심식사 후 호수로 내려와서 호수항해를 시작했다. 호수의 바람을 안으면서 모터보트 두 대가 바다 같은 호수를 질주했다. 모두들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경주라도 하듯이 나란히 수면 위를 미끄러져 나갔다. 화산이 터져서 생긴 거대한 호수 속에서 또 화산이 폭발하여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미니화산의 근처를 돌면서 항해를 했다.
▲딸알 호수 항해 ▲ 정을 새기면서
절경의 계곡
팍상한 폭포는 마닐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보트를 타고 급류를 거슬러 올라갈 때에는 예나 다름없이 계곡에 펼쳐지는 절경에 호흡이 멈춰질 것 같았다. 폭포에 다다라서 뗏목을 타고 내리쏟는 폭포 속으로 들어 갈 때에는 속세를 떠나 신비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고, 뗏목에 타고 있는 모두는 공동의 운명체로 묶어지는 것 같았다. 폭포를 내려올 때에는 보트맨들이 급류를 노련하게 다스려가면서 기분 좋게 내려왔다. 물에 젖은 옷이 마르면서 새로운 기분을 자아냈다.
전통문화의 감상
필리핀의 전통문화에 접해 보고 싶다는 단원들의 요청에 따라 잠보앙가 레스토랑으로 갔다. 푸짐한 식사에 필리핀의 전통문화의 분위기에 빨려들어 마닐라의 추억이 엮어졌다. 공연이 끝난 후 마닐라 시내를 거닐다가 마닐라항으로 가서 항구의 밤경치도 감상했다.
깊어 가는 마닐라의 밤, 추억을 새기기 위해 우리만의 자리를 마련했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가운데 우리는 서로의 정을 더욱 다지면서 깊어가는 이국의 밤을 아쉬워했다.
▲ 사범대 행정실 식구들
식민시대의 흔적들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리잘공원을 거쳐서 스페인 통치시대에 스페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보호와 식민통치를 위해 구축한 '인트라무로스성'으로 갔다. 바닷가에 방어진지로 구축한 '산티아고 요쇄', 바닷물로 수장을 하는 감옥, 리잘의 형장 이동 흔적 등을 보면서 식민통치의 잔혹한 실상을 느껴보았다. 그리고 스페인 통치시절에 지은 최초의 성당인 성 오거스틴 대성당도 들려보았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공항으로 향하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시내에 있는 민속촌으로 가서 루손섬 북쪽에 살고 있는 '이푸가오'족의 주거문화, 필리핀의 이스람교도들의 주거문화 등 필리핀 민속도 살펴보았다.
대학원 연찬을 위해 마닐라 방문 (2003년)
남국의 밤하늘로
교육대학원장협의회 총회 및 연찬회를 필리핀대학교 방문과 함께 마닐라에서 갖기로 했다. 오후 6시, 반가운 얼굴들이 공항에 모여들었다. 모두들 해외연찬과 외국 유명대학 방문의 기대에 차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서 마닐라공항에 도착한 우리일행은 남국의 밤길을 달리면서 숙소로 향했다.
필리핀 국립박물관
필리핀 국립박물관에는 필리핀의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를 나타내는 많은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해양국가의 개척역사, 루손섬 북쪽의 산간지역 부족들의 계단 논 개간의 역사, 수많은 섬들에 흩어져 살면서 필리핀을 형성해온 종족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었다.
▲ 교육대학원장 협의회 방문단
다양성의 나라 필리핀, 외세의 지배를 끊임없이 받아왔던 이 나라는 곳곳에서 애환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스페인의 오랜 통치, 미국의 통치, 그리고 일본의 통치로 이어진 융합된 복합문화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필리핀대학교 디리만(Diliman) 캠퍼스
국립박물관 탐방을 끝내고 필리핀 대학교로 갔다. 필리핀대학교는 역사와 규모면에서 세계적인 대학이며 7개의 캠퍼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방문한 디리만(Diliman)캠퍼스는 필리핀대학교의 7개 캠퍼스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운 캠퍼스로 필리핀대학교의 핵심 캠퍼스였다.
디리만캠퍼스는 마닐라의 행정타운인 케손시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케손시티는 마닐라 중심가에서 약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으며, 필리핀의 독립영웅 케손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도시 중앙에는 케손기념공원이 있고, 공원의 중앙에는 케손기념탑과 기념탑 아래에 케손기념박물관이 있었다.
오후 2시 30분 대학의 본부 건물 앞에 다다르니 미팅 파트너의 한 사람인 사범대학장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메일로만 교신을 했지만 반갑게 맞아주는 그녀가 생소하지가 않았다. 총장과 부총장의 마중이 이어졌고, 우리는 곧 미팅 장으로 가서 부총장으로부터 대학 전반에 관한 브리핑을 들은 후, 사범대학장으로부터 사범대학에 관한 브리핑을 들었다. 특히 총장의 진지한 설명은 우리 일행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국립필리핀대학교 현황설명 ▲ 상호관심사 협의
브리핑이 끝난 후 질문 시간에는 진지한 질의응답이 있었다. 질의응답시간이 끝난 후 대학 측에서 마련한 다과 뷔페를 진행하면서 격의 없는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교류시간이 끝난 후 현관에서 대학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기념촬영 후 사범대학장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서 캠퍼스 투어를 했다.
▲ 필리핀대학 관계자들과 기념촬영
해외에서 갖는 총회
대학 방문을 끝내고, 곧바로 호텔로 돌아왔다. 총회개최를 위해 미리 예약해둔 호텔 컨퍼런스 룸으로 모였다. 총회행사에 이어 교육대학원 발전과 국제화에 관한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총회와 토론회를 마친 후에는 7시부터 9시까지 극장식 레스토랑인 잠보앙가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겸한 필리핀 전통 민속가무 관람이 이어졌다. 필리핀의 고유문화에 접해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다음 날에는 필리핀대학교의 7개 캠퍼스 중에서 2번째로 크고 아름다운 캠퍼스인 ‘로스 반요’ 캠퍼스에 들려서 캠퍼스 투어를 했다. 그리고 부근에 있는 팍상한 계곡을 찾아서 절경을 감상했다.
필리핀 한국대사관저에서의 만찬
오후 6시 30분, 필리핀 한국대사의 만찬초청이 대사관저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정부기관의 공식 만찬이기 때문에 정장 채비를 하고 대사관 직원과 함께 마카티(Makati)에 있는 대사관저로 행했다.
한국 전통 스타일의 담을 끼고 돌아가니 태극 문양이 그려진 대문이 열리면서 차는 대사관저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대사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면서 관저 안의 접견실로 안내되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우리나라와 필리핀 양국 간의 현안 문제에 대해서 유익한 대화가 이어졌다. 만찬장의 우리 음식들은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었다.
▲ 대사님의 환영사 ▲ 회장의 감사 인사
대사의 환영사에 이어 회장의 감사의 답사가 있은 후 식사를 하면서 모두들 격이 없는 대화를 했다. 초대해주신 대사님과 사모님께 거듭 감사를 드렸다. 2시간여 계속된 만찬이 끝나고 외등아래 잔잔히 펼쳐져있는 관저의 정원을 산책한 후 중앙홀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모두들 아쉬운 마음으로 인사를 나눈 후 관저를 나와서 숙소로 돌아왔다. 바빴던 하루를 정리하면서 마닐라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 대사관저 중앙홀
이번 마닐라 방문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방문이어서 가슴이 뿌듯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우리들을 정성껏 안내해 주던 가이드와 운전기사에게 작별의 정을 나누는 동안 버스는 공항에 도착했다.
▲ 현지 안내인 ▲ 안내인의 즉석 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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