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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의 작품 세계
-『여인전기』를 중심으로 -
1. 머리말
『여인전기』는 채만식이 해방 직전에 발표한 친일소설로 1944년 10월 5일부터 1945년5월 17일까지 101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되었으며, 97회까지는 '女人戰紀'로 되 98회부터는 '女人戰記'로 되어있다. 이 작품은 1943년『조광』에 연재되다가 중단된『어머니』의 내용에 그 이후의 인생 역정을 연결해서 전개하고 있다.
어린 신랑과 조혼한 여주인공이 홀시어머니의 학대로 수난을 겪게 되지만 강인한 의지로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낸다는 일종의 여성 일대기적인 작품이다. 비교적 단순한 구조의 이작품이 문제시 되었던 이유는 일로전쟁 때의 일본군의 승전기와 일본인 간의 이복형제의 상봉 이야기가 나타나는 친일의 내용 때문인데, 특히 주인공과 아버지가 같은 일본인 혼혈의 배다른 동생이 만나 서로 핏줄의 인연을 확인하는 마지막 대목에서는 내선일체론, 총후봉공론, 대동아공영론 등의 일제 시책에 입각해서 쓰여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친일문학이란 본래적 의미에서는 일본과 친화적 관계를 가지는 문학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의 친일문학은 나라를 잃은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서 산출된 문학으로 주체적 조건을 상실한 맹목적 사대주의적인 일본 예찬과 추종을 내용으로 하는 문학이라 정의할 수 있다. 1940년을 전후하여 등장한 전쟁문학, 애국문학, 국민문학, 결전문학 등이 이에 속한다.
본고에서는『여인전기』를 중심으로 채만식의 친일적 사상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작품 중 특히 친일적 요소가 짙게 나타난 부분을 살펴 재론의 여지가 없는 친일작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아울러『여인전기』에 나타난 제국주의적 모성론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하여서도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여인전기』의 시간 구성을 통한 작가의 태도
채만식이 자신의 친일을 고백하는 태도는 '兩棲動物'이라는 말로 압축된다.『민족의 죄인』에서 자신을 표현한 이 말은 그의 말처럼 표면적인 복종이었든 혹은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였든 균열되고 혼란스러운 자신을 표현하는 말이라 볼 수 있다. "나 결국 본심도 아니면서 겉으로 복종이나 하는 용렬하고 나약한 지아비의 부류에 들고 만 것이었다."(채만식 전집8권, 434쪽)라는 그의 고백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작가는 표면적인 복종이었을 뿐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여인전기』의 시간 구성을 꼼꼼히 살펴보면, 주목할 만한 특징이 발견되는데, 이는 민족사의 주요한 시간을 담론상에서 침묵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여인전기』는 1945년을 현재 시점으로 하여 과거를 회상하는 일종의 액자 형식으로, 일차 회상 시점인 1915년을 다시 현재 시점으로 하여 1905년 러일전쟁 이야기를 회상하는 겹액자 형식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시간과 시간이 축약 또는 생략되는 시간을 비교해보면, 주로 45년 현재와 15년에서 16년 일 년간이 서술의 중심이 되고 있으며,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간단한 요약 서술로 넘어가고 있는 시기 중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은 1916~21년 봄, 1926~36년까지의 두 시기와 1936년 5월부터~45년까지의 시기이다. 첫 번째 시기에는 3·1운동이 일어났던 민족적 사건이 자리하고 있으며, 두 번째 시기는 카프를 중심으로 했던 민족해방운동의 본격적인 활동기였다. 그리고 세 번째 시기는 제7대 南次郞 총독이 부임한 이후 본격적인 식민지 수탈과 황민화 정책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이렇게 보면 정치적으로 주요한 민족적 사건에 대한 언급을 피해가며, 드문드문 서술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 된다.
『어머니』를 개작하여 47년에 발표한『여자의 일생』과 연결지어 본다면,『어머니』는『여인전기』이 2단위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즉 여주인공이 홀시어머에게 학대받다 쫓겨나는 내용에 추석 즈음의 풍물 묘사를 더해 놓은 작품이다. 이러한 내용에『여인전기』가 3단위에서 주인공 아버지의 이야기 즉 1905년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전승담을 회상시점으로 담아내고 있다.『여인전기』의 3단위를 한일합방 이전에 일어났던 민중의 개혁운동으로 대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회상시점이나 회상내용의 교체를 통해서 채만식은 자신의 표면적 복종을 입증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별난 시간적 구성이 상황적인 어려움 때문이거나 아니면 우연한 일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3. 작품에 드러난 친일적 요소
그렇다면『여인전기』에서 친일적 요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는 작업을 통해 이 작품이 어찌하여 친일작품으로 치부될 수 밖게 없는지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하겠다.
내지의 어머니들은 이천육백여 년을 두고 한결같이 나라를 위하여 아들네를 전지에 내보내되, 동치 아니하도록 도저한 도야(陶冶)와 훈련과 그리고 자각(自覺)가운데를 살아 내려왔다. 그런 결과 일본 여성은 사랑하는 아들을 나라에 바쳤으되 조금도 미련겨워하며 슬퍼하는 등 연약한 거동을 함이 없이 가장 늠름하기를 잊지 아니하는 천품이-정신이 잡히기에 이르렀다. 어머니 된 정에 노상 어찌 슬픔이 없을 리가 있을꼬마는, 한때 속으로 슬퍼하였지,……(중략)……여러 백 년을 나라와 나라 위할 줄을 모르고 오직 자아본위(自我本位), 가정본위(家庭本位), 오직 일가족속본위(一家族屬本位)로만 살아온 조선 백성은 따라서 어머니들의 군국에 대한 정신적 준비랄 것이 막상 충분치가 못하였다. 빈약한 편이 많았다.
"나라는 개인보다 중(重)하니라."
"민족의 번영은 언제나 그 민족의 젊은이가 흘린 바 피와 정비례하느니라."
조선 사람의 귀에 이런 외침이 울리기는 바로 최근 몇 해에 비롯된 것이었다. 학식 있고 각성한 사람들은 그 경종(警鐘)을 이성으로써나마 잘 받아들임으로써 자각화(自覺化) · 감정화(感情化)하기에 노력을 게을리 아니하였다. 노력은 헛되지 아니하여 성과에 족히 보암직한 것이, 한목 자랑함직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이요, 이른바
과도시기(過渡時期)이기 때문에 미흡하고, 일변 전반적으로 철저치 못한 구석이 없지 아니한 것이 사실이다. (222-223)
"남은 삼형제 사형제 잃고도 씩씩하다는데! 겉으로 내색을 아니한다는데! 그래야만 시방은 장한 어미 노릇이라는데!" (224)
위의 인용문은 옥동댁이 아들의 사진을 보며 혼자말하는 부분으로써 시대가 요구하는 장한 어머니상을 그리고 있다.
"사내자식으로 세상에 났다가 총칼 메고 난리 치러 나가는 게 호강 아니고 무어람? 그래 대장부가 그 노릇 한번 못해보고 죽드람? 제엔장, 여든에 죽으나 스물에 죽으나 한번 죽기는 일반! 명색없이 지지리 오래 살다 명색없이 죽느니 접전(接戰 : 戰爭) 나가 싸움하다 죽으면 오죽 뼈젓해? ……(중략)……(224-225)
위의 내용은 윤팔네라는 동네 여인이 하는 말로써 전쟁에 나가 싸워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그것이 더 떳떳한 일이라며 전쟁 참여의 당위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병정도 가구 볼 거야 어머니! 전쟁도 나가 볼 거구. 사람 쾌활해지겠다, 몸 튼튼해지겠다, 좋은 경험 얻겠다. 그러구 나라 위해 싸우겠다 조옴 좋아? 그렇잖우? 응? 어머니."
전쟁에 나가있는 오빠의 편지를 읽으며 딸 문주가 어머니께 하는 말로써 이 말에도 역시 전쟁 참여의 당위성에 대하여 나타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임중위의 선친은 조선의 유신운동(維新運動)단체의 일원으로 명치 삼칠년, 저 세상을 들렌 우정국 사건(郵政局事件)의 갑신정변에 실패를 하고 김옥균 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을 온 사람이었다.
내목 장군이 임중위의 전사 소식을 알리며 임중위 노모에게 보낸 편지의 편지 내용 중 임중위가 결사 대장이 됨에 있어서 "나는 사람은 조선 사람이라도 마음의 나라는 일본이요, 그러므로 일본을 위하여 충의를 다하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노라."라는말이 기록.(314)
위의 내용은 주인공 옥동댁의 아버지에 대한 서술부분이다. 조선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의 나라가 일본이며 그렇기 때문에 일본을 위해 충성하고 목숨을 아끼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노골적으로 친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인용문들은 특히 친일적 요소가 짙게 드러난 부분이라 생각하여 예를 들어 살펴보았다. 위의 인용문들만을 보아도『여인전기』는 친일문학 작품이라는 것을 뚜렷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에 대한 내면화된 작가의 열등화 논리가 작품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어머니상과 아이기르기를 중심으로 다음장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4. 『여인전기』에 나타난 제국주의적 모성론
1930년대 후반부터 일본은 건강의 인구의 생산과 위생체계를 강조하게 되는데,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에는 조선인의 저열한 체위와 체력을 우려하는 기사가 수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실제 전체 국민의 건강이나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일과는 무관하게 결국 식민지 노동력과 군사력의 확보라는 목적하에 진행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채만식의『여인전기』가 그려내는 어머니상과 자식기르기는 바로 이러한 건강한 인구의 생산이라는 일제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일제의 정책에 동원된다는 것만이 아니라 조선민족과 습속을 열등화하는 논리를 내포하게 된다는 점이다.
『여인전기』의 기본이야기는 두 어머니, 즉 구식의 어머니(시어머니)와 신식의 어머니(주인공 진주)의 자식기르기와 그 성패의 대비이다. 이 작품의 액자 형식은 실패한 어머니상(시어머니)과 성공한 어머니상(주인공) 두 어머니를 효과적으로 대비시키는 장치라 볼 수 있다. 먼저 이 두 어머니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의 대비가 가능하다.
첫째, 성적 이미지의 유무에서 확연한 대비를 드러낸다. 시어머니의 경우는 "중년 과부에 오십 바라보는 히스테리 여인의 썩은 분비물이 들어서 작회를 하는"망측스럽고도 추한 심리를 지닌 여인으로 그려지고 있다. 반면 이제 중년이 된 주인공 진주는 "환갑 바라보는 노인 방불"케 하는 외모로 묘사되고 있다. 고된 노동으로 인해 소진된 그야말로 헌신적이고 무성적인 성모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두 어머니의 자식기르기도 뚜렷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데, 시어머니의 경우는 "자애란 꼬물도 비치는 것이 없고 그저 엄히만 하면서 가혹히 굴기로만 주장"하며 "온갖 간섭과 책망과 매질"을 일삼는다. 게다가 신식 공부는 유행을 따라 조금 알 필요는 있지만 개글이라고 생각하고 구식 한문교육이 진정한 배움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해 주인공 진주는 매질과 간섭은 절대 아니하리라 결심하면서 "매가 두려워 겉으로 복종하는 체하는 것이지 속으로부터 우러나서 하는 복종이 아닌"그런 교육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두 어머니가 길러낸 아이들은 전혀 다른 육체적 정신적 건강상태를 드러내는데, 시어머니가 길러낸 아들 준호는 병약하고 우울한 소년기를 보내고, 결국 젊은 나이에 병사한다. 진주와 결혼할 당시의 소년 준호의 외양 묘사를 보면, "가냘픈 몸집, 실내끼같이 가느다란 목, 그 위에 가 올라앉은 커다란 머리통, 어우한 눈…보기에조차 위태위태한" 조선인의 저열한 체위를 우려하는 당시의 논설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준호의 병약한 기질을 타고 났지만 아들 철은 이를 극복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강한 건강한 군인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는 어머니인 진주의 헌신과 자율적 교육방침에 의한 결과로 그려진다.
이밖에 이 두 어머니는 자식을 개인적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가, 사회적 구성원의 재생산으로 보는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차이를 지니고 있다. 시어머니의 개인적 입신양명과 이를 통한 대리만족으로서의 자식기르기라면, 진주의 목적은 나라에 헌신하는 구성원을 재생산하는데 있다. 이는 결국 두 어머니의 대비가 결론적으로 황군을 키우기 위한 인구 재생산의 목적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일제 시책에 동원되는 측면 외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재구성되는 조선의 어머니와 자식기르기에 대한 부정의 시각이다. 조선의 전통적인 어머니는 강압과 이기적인 자식기르기로 자식을 망치게 되는 무지한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다면, 내지의 어머니와 이를 모방한 새로운 어머니상은 자율적이고 헌신적인 교육으로 훌륭한 사회구성원을 키워낸다는 논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 작품에서 재구성해내는 전통은 부정되어야 할 것, 열등한 무엇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제 일본을 모방하는 일만이 남겨지게 되며, 조선과 일본의 '몸과 마음이 함께 진실로 일체'가 되는 내선일체는 조선의 부정을 통해서 가능해질 터인데, 이러한 논리적 기반이 전통을 재구성해서 열등화하는 과정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 마무리
지금까지 친일 작품인 채만식의『여인전기』를 중심으로 친일적 요소가 두드러지게 그려지고 있는 부분을 살펴보고,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의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친일 작품은 근대의 성격에 투영되는 식민지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이기 때문에 연구되어야 할 필요성을 지닌다.
채만식의 『여인전기』의 유별난 시간적 구성이 상황적인 어려움 때문이거나 아니면 우연한 일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이며, 회상시점이나 회상내용의 교체를 통해서 작가 자신의 표면적 복종을 입증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한다.
특히 작품을 통하여 조선의 부정을 통한 일본과의 진정한 내선일체를 끌어내고 있으며, 내선일체의 사상은 작품의 말미에 주인공 진주와 이복형제인 일본 혼혈 동생의 만남을 보면서 진주의 의붓오라버니가 내밷는 "핏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을 통해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비록 한작품에만 국한하여 미비하게 살펴본 것에 불과하지만, 본 연구를 통해 친일문학에 대한 관심과 어떠한 작품이 친일문학으로 치부되어지는지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유익한 작업이었음을 밝히고 싶다.
참고문헌
김홍기,『채만식연구』, 국학자료원, 2001.
이수라,「근대적 공간과 여성 인물의 운명 - 채만식 작품을 중심으로」, 국어문학회, 2002.
임명진,「채만식의 문학평론」, 국어국문학회, 1997.
임종국,『친일문학론』,평화출판사, 1963.
문학과사상연구회,『채만식 문학의 재인식』, 소명출판사, 1999.
채만식,『여인전기』,성공문화사, 1993.
한지현,「식민지적 근대성의 한 양상 - 채만식의『여인전기』-」, 민족문화학회,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