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사관 코너 (구세군의 대한 소명에 관하여)
만날 수 가 있을까? 놀라워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집 사람을 보려고 영동군 주곡리 주곡영문 사관님 사택에서 사관님들의 소개로 만남이 이루어졌는데 저 보다도 함께 가신 신흥영문 정교님과 저희 아버님이 집 사람을 보고 더 호감을 가지셨었습니다. 저는 집사람 보다도 집 사람을 소개하기위하여 동석하신 당시의 영동초등학교 선생님이신 처숙모님이 그렇게 좋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은 12월24일 결혼 날 짜를 정하게 되었고 결혼식을 12월24일 오전 11시에 주곡영문에서 많은 친지 하객 성도님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식을 마치고 신혼 여행을 경기도 수원 칠보산기도원으로 갔습니다. 밤에 신혼영행차를 타고 깊은 산중에 있는 기도원에 도착하여성탄절 이브행사에 참석하고 저녁도 굶은 채로 하루를 보냈습니다.저는 나름대로 은혜를 받아서 소명의식과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지만 집사람은 그러한 체험이 없으므로 아침 새벽기도를 마치고 큰 바위밑 기도굴속으로 유인하여 은혜 받게 하려고 찬송도 부르고 통성으로 기도도하고 방언도하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만 생각보다 은혜는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혼 여행에서 돌아와 저희 고향 본가를 갔더니 대단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또다시 이중으로 잔치를 하였다고 봅니다. 잔치를 마치고 3일후에 처가를 다녀오라고 하기에 다니러 갓더니 처가에서 새 신랑을 달도록 단단히 준비를 하고 100여호가 넘는 마을에 청년들이 그의다 집결하여 제가 거동이 불편 할 정도로 저를 거칠게 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집에 도착하여 잠시 볼일이 있어서 마을 어귀에 나갔다가 온 사이에 영동영문 강성환 사관님이 저희 집을 다녀가셨다 면서 내일당장 충북 옥천군 옥천읍내에 있는 옥천영문에 사관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면직을 당하셨다고 하시면서 내일 당장 담임특무로 부임을 하라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결혼 하자마자 옥천영문 특무로 부임하여 신혼의 꿈과 신혼생활은 한번도 하지 못한채 이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까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당장 교인들 가정 심방도 해야 하고 새벽기도 설교도 해야하고 주일예배도 준비해야하고 설교도 해야하고 정말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막막했었습니다. 그런데 설교 준비하다가 도저히 못하겠다 그리고 깜빡 잠이 들었었는데 꿈속에서 스가랴 4장6절 말씀을 펴서 읽어보라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펴서 읽어보니 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못하고 오직 여호의 신으로 되느니라는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용기를 얻어서 교인들 앞에서 설교를 처음 하는데도 저도 모르게 주님이 도우시는 것을 체감하면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충청지방장관님이 저를 옥천사관님의 변고로 본영과 연락하여 임시로 저를 부임케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15일후 저는 논산군 벌곡면 대덕리에 위치한 대덕영문 담임특무로 정식으로 발령받아서 대덕사관님과 서로 교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