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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맑은 물 흐르는 곳 (나들목공동체) 원문보기 글쓴이: 들풀처럼
2. 현대 세계선교의 과제 |
글 / 서동찬 교수 (한반도국제대학원대학교) 서울대 정치학과, 러시아 Kazan State University (국제정치학 Ph.D.)
역사의 키워드 사람들이 시집가고 장가가고 먹고 마시는 삶을 전부로 알며 살 때,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순종했다.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셨고 믿음을 통해 기적을 행하시고 역사를 전진시켜 오셨다.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이며 하나님의 주권은 온 땅 위에 바로 세워질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연합한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온누리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의 백성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될 역사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그 키워드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십자가, 그리고 모든 민족과 세계선교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약을 새로운 시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을 만난 사람은 필연적으로 천국 운동의 진앙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질서와 구조가 있으며 이 질서와 구조의 근간에 교회가 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 일하시는 매개체가 되며, 성경은 또한 역사 속에 실체로 존재하는 ‘교회’ 안에 서 계시는 인자와 같은 이, 곧 예수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교회는 역사 속에 있기 때문에 전투와 대결encounter이 불가피하고 부상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는 교회와 함께하신다. 성경은 교회들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꼭 이기는 자가 되라고 가르치신다. 우리는 모든 족속 가운데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세상을 이기는 살아 있는 교회가 폭발적으로 확산하고 뻗어 가는 꿈을 꾼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전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역사 속에서 이기는 교회가 되며 또 어떻게 세계 속에 빛을 증거하는 강력한 천국 운동의 교두보가 모든 민족 가운데 굳건하게 세워지고 빠른 속도로 확산 될 수 있을까? 여기서 필자는 랄프 윈터 박사가 말한 교회의 이중구조에 근거하여 현대 선교의 전략적 과제에 대해서 접근해보고자 한다. 모달리티와 소달리티 현대 선교학의 아버지 랄프 윈터Ralph Winter 박사는 사회학 분야의 간단한 용어로 교회의 이중구조를 구분했는데, 사용된 두 용어는 모달리티와 소달리티이다. 모달리티란 양육중심의 회중 교회 구조를 말하고, 소달리티란 과업 중심적인 선교 구조를 말한다. 즉 지역교회와 특수 목적 선교단체이다. 랄프 윈터는 “하나님의 선교가 온 열방과 족속과 나라들에 편만이 펼쳐지도록 이 두 구조는 서로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작용할 때 독수리처럼 창공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다.”라고 했다. 한편『Invitation to World Missions: A Trinitarian Missiology for the Twenty-first Century』의 저자 티머시 터넌트Timothy C. Tennent는 개신교 역사에서 1517에서 1793년 시기를 거대한 공백The Great Gap이라 부른다. 여기서 공백이란 개신교 역사에서 세계 선교의 엄청난 부재를 뜻한다.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가톨릭 교회 속에 있었던 소달리티의 파괴라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종교 개혁 이후 25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윌리엄 캐리로부터 타문화권 선교가 개신교 안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지역교회인 모달리티와 선교 베이스인 소달리티라는 이중구조는 안디옥 교회와 사도 바울의 선교팀 안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고, 중세로 와서는 가톨릭 교회와 수도원 운동이라는 형태로 유지가 되면서 선교운동이 작동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가톨릭 교회가 극복되고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만인 제사장론이 확립되면서 수도원과 같은 특수한 헌신이 더는 필요 없게 된 것이다. 1793년에 와서야 윌리엄 캐리에 의해서 초교파적인 선교회가 복원되면서 폭발적인 개신교 선교운동이 재개된 것이다. 한국교회 성장의 기저에도 지역교회local-church와 선교단체para-church라는 이중구조가 있었고, 비록 긴장 관계 속에 있기도 하지만 서로의 역할을 상호 인정하며 협력하며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다. 얼마 전에 소천하신 하용조 목사님의 온누리교회는 일차적으로 모달리티이지만 동시에 소달리티처럼 한국 교회를 섬겼다. 두란노서원은 출판을 통해서 지역 교회의 벽을 초월하여 한국 교회에 영적 영향력을 흘려보냈고, 두란노 『경배와 찬양』은 한국교회의 예배 문화에 작은 변화를 가져와 80년대 이후 사라져 가던 청년 그리스도인들을 붙잡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필자는 87년에 시골에서 올라와 온누리교회에 출석하면서 그 안에 활발하게 흐르고 있는 소달리티 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하나의 지역교회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 천국운동의 진앙이 되는 활동과 사역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교회는 소달리티와 모달리티라는 이중구조가 촘촘하게 엮여 있다. 캠퍼스에서 활동하는 선교단체들을 통해 대학 청년들에 대한 전도와 양육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개별 기관으로서 지역교회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캠퍼스라는 차세대 인재 교육 영역을 놓치지 않았다. 학생 선교단체들만 아니라 직장 선교회, 군 선교회와 같은 소달리티 단체들도 초교파적으로 한국 사회의 복음화를 위해 지역 교회의 영역을 초월하여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왔다. 교회에서 소달리티와 모달리티 구조가 유기적으로 함께 움직인다면 성도들도 자연스럽게 이중적 멤버십으로 세상 속에서 천국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주일에는 지역 교회에 속하여 모달리티의 틀 안에서 섬기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직장 선교회나 캠퍼스 선교회 틀 안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제자를 양육한다. 어떤 사람은 모달리티에서 신앙을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소달리티에서 신앙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모두 이중구조에 소속이 된다. 소달리티 구조에서 자란 사람은 모달리티 구조에서 성장한 사람보다 더 개척 성향이 강하고 세상 속에서 천국 운동을 움직여가는 외부지향적 역동성이 개발되는 반면, 모달리티 구조에서 신앙을 가지고 커 온 사람은 공동체 내부 지향적인 은사들이 더욱 계발될 수 있다. 소달리티는 좀 더 사역중심적이고 특수 목적을 부여받은 운동체이다. 프론티어 사역에서의 이중구조 해외선교운동에 있어서도 모달리티와 소달리티가 상호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해야 한다. 일반 군대에서도 사단하에 각 연대병력이 있지만, 특전사나 보안사 혹은 보급 부대와 같은 소달리티가 있어 특수 업무를 감당함으로 연대의 전투 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 이것은 프론티어 선교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교사들을 보면 어떤 이는 모달리티에서 성장해 온 사람이었다가 소달리티 선교운동체를 통해 파송된 분들이 있고, 또 어떤 이는 소달리티에서 신앙을 갖고 그 안에서 주로 활동을 하다가 지역교회의 파송을 받고 나오신 분들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선교 현장에서 소달리티 파송 선교사나 지역교회 파송 선교사도 대체로 모달리티 현지 교회 개척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프론티어에는 기본적으로 토착 교회가 없거나 미약하므로 소달리티 역할을 할 자원이나 여력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프론티어에서는 선교사 공동체가 바로 소달리티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현실은 프론티어의 선교사들은 각자가 마치 지역교회 개척자처럼 파편화된 모달리티로 사역하고 있다. 한국에서 지역 교회 모달리티가 소달리티와의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동반관계를 갖지 못하듯이 프론티어 현장에서도 이중적 역동성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소달리티 배경에서 성장한 선교사들의 경우 개별적인 교회개척 사역과 함께 소달리티적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 선교사들의 개별적인 로컬 교회 개척에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소달리티 구조가 약하다. 프론티어에서 폭발적인 교회개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소달리티/모달리티 이중구조의 역동성을 회복해야 한다. 선교사 개인이 전도와 제자양육을 통해서 지역교회를 개척하는 것에 집중하지만 선교사 개인이나 단체를 초월하여 특수사역을 감당하는 소달리티가 함께 움직여줘야 그 민족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동적인 천국운동이 가능하다. 한 사회 안에 각각의 부분들과 영역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듯이 한 개인의 인격도 다양한 영역들로 구성되어 있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모든 역할을 부모가 감당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를 인격적으로 양육하고 자녀가 성장하는 것에 대한 전인적인 책임을 지지만 학교에 보내고 학원에 보내고 특수 기관에 위탁하여 전인적인 교육을 받게 하고 은사 계발의 기회를 자녀들에게 준다. 만약 모든 것을 부모가 감당하겠다고 집안에 붙잡아 두다가는 아이도 망치고 부모도 탈진해서 결국 공멸한다. 선교지에서 개별적으로 선교사는 전도와 양육을 기본으로 현지 영혼에 대한 일차적인 전인적 책임을 진다. 그렇지만 그 영혼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성장하고 은사의 계발을 통해서 현지 교회의 한 지체로서 천국운동의 진앙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달리티 은사들에 노출되어야 한다. 필자는 대학생 시절 교회 수련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했는데 그 때 강사로 오신 분은 소달리티 사역자이셨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수많은 소달리티 사역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분들을 통해서 한 사회를 움직이고 변화시켜 나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운동에 눈을 뜨고 전문성을 가질 수 있었다. 한편, 선교 현장은 수련회, 제자학교, 예배학교, 선교학교, 성경학교 등 다양한 소달리티 구조가 없으므로 선교사 한 사람이 이런 역할을 모두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것은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장 선교사들은 일차적으로 모달리티 교회개척 사역에 집중하지만, 동시에 초교파적으로 그리고 초단체적으로 소달리티 사역을 해야 한다. 일례는 T국에서는 I 도시 교회의 수련회를 위해서 A 도시에서 사역하시는 사역자를 초청하기도 한다. R국의 K 도시 사역자는 전도를 통해서 교회는 나오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청년들을 데리고 B도시의 한 지역 교회의 특별 집회에 참석한다. B도시의 이 교회는 모달리티이면서 동시에R국의 모달리티를 섬기는 소달리티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 U국의 경우 모달리티를 개척하던 선교사들이 활발한 소달리티 네트워크 사역을 감당했기 때문에 추방이 되었어도 현지 영혼들이 사라지지 않고 소달리티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 서로를 격려하면서 힘을 합해 각자가 모달리티 개척에 헌신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U국 전체의 지역교회를 섬기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역동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만약 U국 선교사들이 개인주의적이고 개별적인 사역을 했다면 현지 영혼 2-3명이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그리스도인에 머물다가 핍박을 당하면 뿔뿔이 해체되었겠지만, 현지 선교사들이 동시에 소달리티 네트워크 사역을 했기 때문에 그들도 사라지지 않고 다시 모여 함께 천국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역동적 선교운동을 위한 이중구조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경우만 보더라도 교회 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소달리티와 모달리티가 긴밀하게 공존하며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유기적으로 협력해 왔다. 세계교회의 역사에서 종교개혁 이후 소달리티의 부재가 타문화권 선교의 약화로 연결되었고, 윌리엄 캐리와 같은 사역자를 통해서 소달리티의 축이 복원되면서 개신교 선교 역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따라서 선교운동을 역동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교회의 이중구조를 인정하고 협력해야 한다. 프론티어 선교 현장에서도 개별 선교사가 모달리티 교회개척에 집중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소달리티 구조가 함께 움직여야 전인적인 제자화와 폭발적인 교회개척이 가능하다. 따라서 개별 선교사들이 소달리티 구조로 팀 사역을 강화하고 은사별 소달리티 사역을 동시에 감당할 때에 비로소 모달리티 교회개척의 역동성이 배가 될 것이다. 이슬람의 정치권력 장악 가능성 중동-아프리카 지역을 휩쓴‘꽃’혁명의 파도와 관련하여 국내외에서 가장 이슈가 된 것은 친서구적인 권위주의 정권 붕괴 이후 이슬람원리주의 세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할 가능성이었다. 이집트의 경우 비록 군부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1928년부터 성장해온 무슬림형제단의 위력이 대단한 나라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원유와 물자 수송로인 수에즈 운하가 있는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은 글로벌 이슬람원리주의의 운동의 온상이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침략 이후 이집트는 아랍 세계에서 최초로 유럽식 근대화를 추구하는 노선을 걸었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은 후 1952년 군부 쿠데타를 거치면서 사회주의 민족주의의 실험을 거쳤다. 무슬림형제단은 서구물질주의 문명의 침투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세속화되고 있던 이집트에서 ‘이슬람이 해법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성장했다. 전통적인 이슬람성직자들이 종교권력으로 전락하여 이집트 사회에 밀려드는 세속화의 물결에 대해 침묵할 때 무슬림형제단은 카페, 학교, 모스크 등에서 실생활에서의 필요한 무슬림의 삶을 가르쳤고, 국가가 감당하지 못하는 무슬림복지 영역을 담당하는 사회네트워크로 급성장했다. 이들은 1952년 낫세르를 도와 친영국 이집트 국왕을 몰아내는 쿠데타에 성공한 후 이슬람국가의 수립을 시도했지만 사회주의자 낫세르의 배신으로 무슬림형제단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내부적으로도 노선의 분화라는 내홍을 겪는다. 즉 사회운동 단체로서 국가 밖에서 이슬람 사회 운동을 통해 점진적인 이슬람국가 건설을 추구하는 온건파와, 테러와 같은 폭력적 수단을 통해 국가권력을 전복하고 레닌주의처럼 위에서부터 이슬람혁명을 주장하는 과격파로 무슬림형제단은 첨예하게 양분된다. 결국 과격파 행동대원이 낫세르 대통령을 암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쳤고, 이로써 무슬림형제단은 불법화 되고, 많은 행동대원들이 이집트를 떠나 시리아, 팔레스타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지로 흩어져 다양하게 활동한다.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간 무슬림형제단은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무장투쟁과 이슬람 NGO로 활동하다가 1987년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민중봉기)를 거쳐 하마스당으로 변신하였고, 현재 가자지역에서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1973년 오일쇼크 이후 금융과 교육 영역에 침투하여 글로벌 이슬람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알카에다를 창설한 빈라덴도 중등학교 때 무슬림형제단 출신 체육교사를 만나면서 이슬람 전사로 성장했고, 결국 아프가니스탄 반소련 지하드에 뛰어들게 된다. 한편 국내에 남아 있던 과격파들은 기존의 무슬림형제단을 탈퇴하여 보다 구체적인 국가전복시도, 요인 암살 테러 등을 감행했고, 빈라덴과 함께 반소 지하드에 참전한 후 현재는 국가의 탄압을 피해 예멘 등지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에 물러난 무바라크는 암살당한 전임자 사다트와 같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사회주의적 경제운영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경제를 민영화하고 서구 자본을 유치하는 등 현실주의 노선을 걸어왔다. 무바라크 축출 후 무슬림형제단은 여전히 사회운동단체로 있으면서 정당의 형태로 의회정치에 참여를 하겠지만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에 대한 서방세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당분간 적극적인 정치투쟁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다. 이집트 국민들 또한 시민혁명이 이슬람혁명으로 전환할 경우 이란과 같이 국제사회의 봉쇄를 자초하고 말 것을 알기에 무슬림형제단의 정치 장악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튀니지와 알제리의 경우 이슬람 정파들은 일찍이 독재권력에 의해서 강제퇴출을 당했기에 정권교체 이후에도 이슬람세력이 사회를 장악해가기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될 것이다. 알제리의 경우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얻은 후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했지만 정상적인 국가발전을 이룩하지 못해 이슬람주의 세력이 결국 1991년 선거에서 승리했었다. 그러나 군부의 쿠데타로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GIS(알제리이슬람기구)를 결성하고 반정부 폭력 투쟁에 나서면서 2005년까지 내란에 휩싸였다. 따라서 언제든지 이슬람세력이 정권을 잡을 수 있지만 지나친 폭력투쟁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더 이상 지지를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견된다. 청년실업과 사회네트워크 중동아프리카의 시민혁명을 둘러싼 또 하나의 이슈는 청년실업문제와 사회네트워크(SNS)의 위력이다. 중동-아프리카 지역은 30세 미만 인구가 70퍼센트 이상의 젊은 국가들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급격한 인구성장이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하지 못해 교육과 고용에 있어서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안고 있다. 이집트, 튀니지 등이 사회주의적 경제 모델을 취했을 시기에, 이들 주력 산업은 국가중심의 공기업 형태로 성장했고, 사회적 이윤을 국민 복지로 분배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가난했지만 국민들의 생활은 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물러난 무바라크와 벤 알리 정권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을 최소화 하고 기간 산업을 민영화 시키는 정책 전환을 추진해왔다. 민영화의 과정에서 독재정권의 친인척과 측근 인사들이 국영기업의 노른자위를 독차지 했고, 사회복지정책의 축소에 따른 사회빈곤층의 문제를 정권이 경시한 것이 결국 시민 폭동으로 분출하게 된 것이다. 튀니지의 경우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의 실업이 심각했고 정부관료에 줄을 대거나 뇌물을 바치지 않고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현실에서 벤 알리 대통령 측근들의 부패가 위키리스크와 같은 채널을 통해 공개된 것이 사회적 분노를 촉발시켰다. 예전 같으면 국가안전기구의 정보망과 경찰력을 통해 언론을 통제하고 반정부운동을 치밀하게 분쇄시킬 수 있었지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사회네트워크의 대중화는 반정부운동에 국가 통제를 벗어난 정보로 가공할 만한 운동 파괴력을 가져다 주었다. 정보기구에 의해서 구타와 불법체포가 무차별적으로 가해졌을 때, 이전처럼 겁에 질려 움츠려 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 장면을 보고 있고 이동전화로 찍어서 웹에 올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시민들은 대범해질 수 있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이 이집트의 파피루스 혁명으로 번지며, 예멘 시리아 알제리 등에서 산발적인 시위로 나타났고, 결국 리비아에서 유혈 충돌과 부족들 간의 내전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한국의 언론과 학계는 여전히 체계적인 인식을 할 수 있는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슬람 현상으로 시선을 축소하여 서구와는 다른 특이한 지역 현상으로 보는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민주화 정치운동에 대한 순박한 낙관론으로 지역 상황을 이해하는 시각도 팽배하다. 주로 국내 이슬람을 대표하는 논자들과 국제정치학 학자들, 그리고 일부 선교사들이 중동아프리카 시민혁명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고 있지만 보다 학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세계경제체제 2011년, 일련의 중동아프리카 시민혁명의 원인을 청년 실업과 권위주의 정권의 부패와 무능력이라고 단순하게 진단할 수만은 없는 다른 근본적인 요인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경제체제의 문제이다. 한국도 요즘 일부 투자은행이 문을 닫고 대출금리의 인상으로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저금리로 돈이 시중에 풀렸을 때 은행에서 대출된 돈이 산업시설과 기술 개발에 투자되기 보다는 아파트와 땅 투기로 몰리더니 급기야 인플레이션을 잡는다고 은행은 금리를 높인다. 결국 이자 상환이 어렵게 될 것이고 부동산 거품이 꺼져 가격이 바닥을 치면 금융세력이 헐값으로 부실기업과 자산을 거둬들일 것이다. 이것이 금융세력이 인류 역사에서 돈을 굴려온 전형적인 생리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기축통화는 달러이다. 그런데 미국은 달러를 마음대로 발행할 수 있다. 미국은 1970년 자국 화폐 달러와 금을 연동하는 금태환제를 기초로 한 브레튼 우즈 체제를 포기한 후 금 보유고에 신경 쓰지 않고도 달러를 발행 수 있게 되었다. 1974년 중동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미국은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와 밀약을 통해서 석유의 결재화폐를 달러로 해줄 것을 약속 받고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의 안전을 보장했다. 따라서 미국은 원하는 대로 달러를 찍어내어 중국의 공산품을 소비하고,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석유를 사용해 온 것이다. 미국 달러는 금 대신 석유를 기초로 하며 세계 경제의 기축통화로서 살아 남았지만 달러화의 팽창 때문에 실물 자산, 즉 식량과 에너지 가격의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석유-가스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폭등했다. 또 미국으로서는 시중에 풀린 화폐를 소비하기 위해 2003년 이후부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금리를 낮게 유지했고, 금리인하를 통해서 민간경제에 신용 대출을 확대했는데, 급기야는 2008년 하반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었고, 리먼 브라더스와 같은 메가 은행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금융 위기에 처했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 거품이 꺼지고 소비심리가 위축되자,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생산도 위축이 되고, 이런 사태들이 결국 중동아프리카에서의 석유 가격의 폭락을 가져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걸프 산유국(GCC)으로서는 기존의 고유가를 통해 비축한 자산을 가동시켜 경제의 위축을 막을 수 있었지만, 경제 침체와 실업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특히 2009년부터 유럽 경제가 위축되면서 알제리와 리비아 같이 지중해 국가들에게 석유를 수출하는 나라들의 경제적 손실은 현저했고, 비록 석유 자원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중동산유국에 근로자들이 보내오는 국내 송금과 관광산업에 대한 의존율이 큰 이집트와 튀니지는 보다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작금의 중동아프리카 시민혁명의 심층적인 원인은 2008년 후반기 때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기 후퇴(Global recession)의 여파이다. 세계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보지 않고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이슬람과 개별 국가의 권위주의와 부패만으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부족간의 내전으로 치닫고 있는 리비아 사태가 지속될 경우 유가 한계선(배럴당 200달러)을 넘을 경우 글로벌 경제는 경기후퇴가 아니라 경제불황(Depression)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크다. 우리는 계시록 6장과 7장에서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를 어린 양 예수께서 취하시고 1번, 2번, 3번, 4번 인을 떼실 때 전쟁과 질병과 또 인플레이션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5번 인을 떼실 때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로 인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복음 증거자들이 나타나고, 6번 인과 7번 인 곧 마지막 나팔과 더불어 주의 날이 임할 때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의 허다한 무리들이 어린 양의 피로 옷을 씻고 환란에서 나오는 것을 본다. 비록 인플레이션과 정치변동 등을 통한 위기가 전 세계에 확산되더라도 천국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는 것이며, 결국 큰 성 바벨론은 붕괴할 것이다. 따라서 세계 교회는 주의 날이 가까워 올수록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더욱 천국 복음 전파와 미전도 종족 교회개척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특히 중동-아프리카지역은 이번 시민혁명에서 보였던 것처럼 청년 인구가 인구의 70%을 차지하고 있고, 또 이슬람급진주의가 독재정권의 억압 아래 사회세력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었다. 때문에 한국 교회로서는 이 시점에 청년선교로 중동-아프리카에 대한 선교전략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지역에서 사회 경제 문제에 직접적인 피해자인 청년들이 사회개혁의 강력한 주체세력으로 등장했고 청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권은 이제 더 이상 존립이 힘든 시대를 맞고 있다. 한국 교회와 캠퍼스의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8개월 내지 1년 초교파적인 공동체로 선교팀을 결성하여 현장에 들어가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을 감당한다면 엄청난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복음의 청년들이 믿음으로 물질문명을 이기며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사회적 기업과 같은 다양한 창의적인 접근을 통해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 천국 운동을 펼쳐간다면 자칫 이슬람주의로 물들 가능성이 큰 심령이 가난해진 이 땅의 청년세대를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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