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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렬이 천상계를 다녀오다
대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형렬아. 평소 너의 지극한 소원이 하늘에 올라 천조(天朝)를 보는 것이니,
오늘 너에게 허락하니 내 뒤를 따라오라 하시더라.
문득 하늘문이 널리 열려, 신선이 하늘로 올라가듯 두둥실 떠서 모시고 따르니라.
하늘에 이르니 문무만관(文武萬官)이 명령이 내리기를 기다리는데, 깨끗하고 빛나는 옷으로 잘 차려입고 나아가고 물러가며 돌아다니는 것이 법도에 꼭 맞으며, 깨끗하고 빛나게 차려입은 옷은 오색이 섞여 세상의 만듦새와 같지 아니하고, 말과 행동이 넉넉하고 아름다우며 기쁜 마음으로 어울리며 성실하고 공경스러우니 어린아이와 같고, 구불구불한 난간에는 상서로운 봉황이 간간이 울고, 푸르고 누런 집에는 상서로운 용이 때때로 돌아다니고, 마당 앞에는 꽃나무의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찌르고, 이상하고 아름다운 풀과 꽃이 세상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들이요, 진기하고 이상스런 새와 짐승이 혹은 날고 혹은 뛰어다니며 울고 노래하며, 신선세계의 음악이 가지런히 울려서 맑고 깨끗하기 짝이 없고, 선녀들이 아름답게 춤추는데 신들린 듯 아름답게 노래하며, 층층으로 지어진 누대는 그림 같은 집에 나는 듯한 지붕이 구름을 뚫고 우뚝 솟았는데 단청이 놀랄만하고, 티끌 하나가 날지 않아 깨끗하고 투명하니 영롱한 광채가 틀림없는 유리세계더라.
어떤 큰 궁전이 있는데 황금으로 된 큰 글자로 요운전이란 이름을 써서 걸었더라.
궁전 안에 임금의 자리가 있으니 황금과 백옥으로 용과 봉황과 기린과 거북을 비롯하여 온갖 진기하고 아름다운 짐승과 새들을 조각하였는데, 휘황찬란하여 감히 바로 볼 수가 없더라.
대선생께서 용상에 앉으시니, 만조백관이 모두 절을 올리니라.
조금 있다가 한 선관(仙官)이 와서 의자에 앉으니, 수많은 백금 조각으로 된 비늘로 만든 모자를 쓰고, 수많은 백금 조각으로 된 비늘로 만든 옷을 입었으니, 햇빛이 반사된 빛이 번쩍여 온갖 모양으로 황홀하고, 가늘고 흰 손은 깨끗하기가 분을 바른 듯 하고, 얌전하고 조용하며 단정한 얼굴은 눈보다 맑고, 붓의 움직임은 마치 놀라 달리는 듯하더라.
조정 아래에 한 큰 죄를 지은 죄수가 있어, 괴로이 하느님을 부르면서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니, 신장이 죄를 헤아리는 것이 지극히 엄하더라.
조회가 끝나고 형렬을 돌아보며 말씀하시기를, 네가 여기 왔으니 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만나보겠느냐?
말씀드리기를, 자손된 도리에 지극한 소원이 실로 여기에 있나이다.
조금 있다가 몇 층 아래의 조금 떨어진 곳에 문 하나가 저절로 열리는데, 형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청수를 모시고 향을 피우고 주문을 읽으며 정성껏 공부하는데, 얼굴에 반갑고 기쁜 빛을 보일 뿐이요 한마디 말도 않으니라.
형렬이 세상에 내려와 기쁨을 말로 다하지 못하며 상제께 여쭈기를,
옥좌 아래 자리에 흰 옷에 붓을 쥔 분은 어떤 분이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석가불이니라 하시니라.
석가불이 천조(天朝)에 무슨 직분을 맡았나이까 하고 여쭈니,
대제군의 존귀한 자리로서 서방칠성이니, 언제나 내 옆에 모시면서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말씀하시니라.
또 여쭈기를 동방칠성은 어찌하여 자리에 없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동방칠성이 신명계의 주벽인데, 내 명을 받들어 이미 세상에 내려왔노라 하시니라.
여쭈기를 동방칠성이 인간세상에 있으면 만나볼 수 없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지금 초립동년(草笠童年)이니 인연이 있으므로 만날 것이요, 앞으로 한 집 사람이 되리라 하시니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마디 말이 없으니 어째서 입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나와 지척에 있으니 삼감이 이와 같고, 혹 망령되이 말하여 천기를 누설하면 죄가 되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이중성 천지개벽경3편7장)
<참고> 상제님을 바라볼때 서방은 왼편이고 동방은 오른편을 말한다. 이는 대순진리회 당시 영대의 모습이다.
* 조정산 옥황상제님께서는 1895년(을미생) 탄강하셨으므로 당시 1903년에는 9세 초립동년으로 동방칠성을 가리키고 있다.
주벽(主壁): 여러 사람을 양쪽에 앉혔을 때 가운데 주장되는 자리.
사당에서 여러 위패 가운데 주장이 되는 위패
[원문] 亨烈(형렬)이 下世(하세)에 喜不可言(희불가언)하야
問曰(문왈), 床下別榻(상하별탑)에 白衣執筆之位(백의집필지위)난 何人乎(하인호)잇가. 曰(왈), 釋迦佛也(석가불야)니라.
問曰(문왈), 釋迦佛(석가불)이 在天朝(재천조)에 何職乎(하직호)잇가.
曰(왈), 大帝君之尊位(대제군지존위)오, 西方七星也(서방칠성야)니 常侍我側(상시아측)하야 攝理萬相(섭리만상)하노라.
問曰(문왈), 東方七星(동방칠성)은 何不在職乎(하불재직호)잇가.
曰(왈), 東方七星(동방칠성)이 神界之主擘(신계지주벽)이니 奉我命(봉아명)하야 已降世也(이강세야)니라.
問曰(문왈), 東方七星(동방칠성)이 若在人間(약재인간)하면 不可得逢乎(불가득봉호)잇가.
曰(왈), 今(금)에 草笠童年(초립동년)이니 有緣則逢(유연즉봉)이라, 將爲一室之人也(장위일실지인야)니라.
누가 초립동년인가?
하루는 대흥리에 계시더니, 제자가 명을 받고 삿갓을 사와서 비치하니라.
말씀하시기를, 내 덕을 펼 사람은 지금 초립동년(草笠童年)이니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비록 나이가 적은 사람이라도 지위가 너보다 높고, 덕이 너보다 높거든 만날 적에 반드시 공경하라.
어떤 날은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때가 와서 한 사람이 허락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내가 있는 곳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노라.(이중성 천지개벽경7편8장)
* 초립동(草笠童)은 초립(草笠)을 쓴 사내아이로 1907년 당시 도주님은 13세 이셨다.
1907년 주요 인물들의 행적을 살려보자.
선도교 고수부 : 본명은 고판례로 1907년 당시 28세
천지개벽경 저자 이중성은 1907년 당시 11세
대순전경 저자 이상호 선생은 1888년 생으로 1907년 당시 20세
증산도 안운산(본명-안세찬)은 1922년생으로 1907년엔 태어나지도 못했다.
위의 인물들 중에서 강증산으로 부터 종통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고수부와 조정산이다.
그러나 고수부는 여자로써 초립동이 아니였고,
조정산께서 증산상제 님으로 부터 종통을 받아 덕을 펼칠 그 초립동이 맞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천지개벽경 구절에서 다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 서가여래께서는 구천상제님 곁에서 상제님을 도와 큰 임무를 맡아 수행하고 계시다는 점이다.
이는 진법주(眞法呪)가 밝혀주고 또한 영대(靈臺)에 모셔진 15신위(神位) 가운데
서가여래께서는 원위(元位)중 한 분으로서 구천상제님의 좌측편에 자리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둘째, 구천상제님께서 神界之主擘(신계지주벽) 신명계의 주벽 즉 으뜸(진법주의 옥황상제)이라고 표현하신 동방칠성께서 이미 구천상제님 재세(在世)시에 인간으로 화신(化身)하여 계시며, 지금 초립동(나이가 어린 남자아이) 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때(계묘년 즉 1903년)에 조정산 옥황상제께서 9세이셨으니 나이로도 일치하고 있으며, 장차 구천상제님과 한 집 사람이 되리라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상제님의 말씀을 볼 때
서가여래를 단지 불교적 차원으로만 보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인식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서가여래를 그동안 불교라는 틀에 한정 시켜 낮게 두셨던 것을 종장을 진묵으로 바꾸시어
불교의 틀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이제 더 높은 차원의 위치에 계시도록 하신 것임을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상제님의 명에 따라 과거 불교의 종장 위치보다 더 높은 곳으로 세우셨다는 것으로
현대말로 하자면 좌천되신 것이 아니라 영전되신 것이다.
그리고 잠시 임시직이 아니라 언제나 상제님을 옆에 모시고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불은 대제군의 존귀한 서방칠성이시다.
기유년 여름에 대선생께서 구릿골에 계시며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천지대공사를 보시니, 설법하사 마당에 자리를 하나 까시고 누우시고, 제자가 명에 따라 다른 자리 하나를 그 앞에 까니라.
말씀하시기를, 공자야. 너는 소정묘를 죽였으니 어찌 성인이라 불릴 수 있으며, 너는 삼대에 걸쳐 아내를 쫓아내었으니 어찌 제가했다는 말을 들으랴.
나의 세상에는 쓸모없으니 다른 세상으로 가라.
말씀하시기를, 석가모니야. 너는 나무 그늘에 깊이 숨어 지내며 남의 자제를 꾀어 부자의 천륜을 끊게 하며, 남녀의 음양을 끊게 하여 인간의 씨를 없애려하니, 네가 어찌 국가를 알며, 어찌 선영을 알며, 어찌 창생을 안다 하리오. 부처라 부를 수 없느니라.
나의 세상에 쓸모가 없으니 다른 세상으로 가라.
말씀하시기를, 노자야. 아기 낳는 어려움이 죽는 것과 같아서 세상에 신을 벗으면서 이 신을 다시 신을지 모른다는 말이 있거늘, 너는 어미의 뱃속에 팔십 년 동안 있었다하니 더 큰 불효가 없노라.
네가 이단 팔십 권을 지었다 하나 세상에 읽은 사람이 드물고, 나 또한 보지 못했노라.
나의 세상에는 쓸모가 없으니 다른 세상으로 가라.(이중성 천지개벽경9편8장) 라고 공사를 보시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동곡비서의 표현은 매우 흥미롭다.
선생이 종도들을 다 모아놓고 「천지공사를 다 처결하고 내가 떠나리라」 하시기로 다 모이니 풍우가 대작하니라.
「속발한다」 하시고 허공을 보고 「꼼짝마라. 오늘은 참 성인을 판단하리라」 하시고,
무슨 기를 만들어 문 앞에 세웠다가 소화하시니 뜻밖에 벽력이 일어나니 종도들을 큰소리로 부르사
「공자 부르라」.
종도들이 주저하니
선생이 크게 소리하사 「공자를 못 부를까?」
종도들이 놀래어 엉겁결에 「공자 잡아왔읍니다」하니,
선생님이 가라사대 「불러오라 하였지 잡아오라 안했는데 너무했다」 하시고
마루에 좌를 정하시고 공사를 보시고 꾸짖으시되,
「그대가 무슨 성인인가? 말로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밝히고 예의범절을 밝히는 도덕군자라 해놓고, 삼대에 그대가 먼저 출처(出妻)를 하였으니 그러면 그 중생의 원억을 어찌할까?
그러고도 성인이라 할까? 저리 물리쳐라」하시고,
또 「노자(老子)를 부르라.」
「대령했습니다.」 하니
또 꾸짖어 가라사대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산실에 들어가실 적에 내가 이 신을 또 신을지 그렇게 산모의 고가 무섭거든, 너는 어미 뱃속에서 머리가 희도록 들어앉았으니 그 어미가 어찌될까? 그래도 네가 신선(神仙)인가? 천하에 그런 죄인이 다시 없다.
네가 신선의 법을 안다고 자랑을 하느냐? 당장 물리쳐라.」 하시고
또 석가를 부르사,
「그대가 성인인가? 종자 없이 하는 성인이냐? 부모를 배반하고 일찌기 입산수도 한다고 부모를 영영 잊은 죄가 말할 수 없거든, 나중에는 사람의 음양을 영영 없앨 생각을 하니, 너의 도가 천하에 펴인다면 사람의 종자가 남겠느냐?
네가 중생을 위하여 공부했다 하나 무슨 중생을 제도했느냐? 저자도 물리쳐라.」 하신 후에,
공자 노자 석가를 다시 부르라 하시더니
「들어라. 너희들이 인간으로서의 대우는 상대우를 받을만하나, 자네들 도덕을 가지고는 포덕천하와 광제창생 할 수 있는 가치는 못 된다는 말일세.
앞으로 나의 도덕이 세상에 나오거든 모두 자네들이 그 도덕 안에서 잘 살도록 하소.
자네들의 도덕이 전혀 못 쓴다는 말은 아니로세.
나의 말이 옳은가? 옳으면 옳다고 대답하소.」
크게 소리하시니 천지가 진동하야 문지방이 떨떨하는지라.
그제야 일어서시며 「수천 년 미래에 오는 공사를 금일에 판결하니, 일체 원억이 오늘로부터 고가 풀리리라.」 하시니라.(동곡비서146절)
이처럼 동곡비서에 있는 이 내용은 다른 경전보다도 훨씬 더 사실적이다.
말씀 중 끝 부분에는 「자네들의 도덕이 전혀 못 쓴다는 말은 아니로세.」라고 하시며 내 말이 옳은지 아닌지도 다시 확인하시는 대목도 나온다.
동곡비서의 원문은, 증산께 직접 수종을 들었던 김형렬의 자제 김찬문(金贊文)씨와 김자현의 자제 김태진(金泰振)씨의 수기(手記)를 청죽(靑竹) 선생이 전수하여 [성화진경]이란 이름으로 출판한 것이다.
천지개벽경에서 기록은 상제께서 다른 세상으로 가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 성현들에게 다른 세상으로 가라는 것이 아니라 선천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그동안 성현들이 가르쳤던 이치가 후천 세상에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씀이시다.
어른으로 가는 미륵불 세상이 되기 위해 어린이 단계인 석가의 불교는 비록 잘못된 것은 있으나 그것은 꼭 필요했던 과정인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해원 상생하러 오신 분이시며, 공덕에 따라 복을 주러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석가에 대한 상제님의 다양한 말씀들을 살펴본다면 상제님께서 석가를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또한 백성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위 내용 중 특이한 것은 상제께서 공자, 노자, 석가를 물리쳐라 라고 말씀하신 후 다시 이들을 부르며 달래시는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대우는 상대우를 받을만하다고 하신다.
다만 그 도덕(가르침)을 가지고는 포덕천하와 광제창생 할 수 없다는 말씀이시다.
다시 말하자면 공자 노자 석가를 향해 다른 세상으로 떠나라는 말씀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세상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모든 것이 상제님의 세상인 것을.
동곡비서의 말씀처럼 상제님께서는 성현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계시며 그 공로에 대해 훌륭하였음을 인정하고 해원해주셨으며 석가에 대해서는 큰 공을 세우신 분으로 인정하여 서방칠성으로 세워주셨다.
이외에도 상제님과 도주님께서는 석가불에 대해 그 공로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대목이 각 경전에 많이 나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석가를 영대에서 내린 각 집단들은 이 부분을 잘 인식해야 할것이다.
상제께서 석가를 칭찬하시다.
매양 옛사람을 평론(評論)하실 때 강태공(姜太公) 석가모니(釋迦牟尼) 관운장(關雲長) 이마두(利瑪竇)를 칭찬하시니라(대순전경3장49)
제자가 여쭈기를, 석가불이 제자에게 널리 공덕을 쌓아 오는 세상에 용화세계에 태어나라고 가르쳤으니, 그때 사람들이 앞으로 오는 선경에 참가할 수 있나이까?
말씀하시기를, 삼생의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야 나를 따르느니라.(이중성 천지개벽경2편7장)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석가불이 나의 세상을 용화세계라 부르고, 천하 사람들이 병이 없다 하였으니, 나는 백성을 사랑하노라.(이중성 천지개벽경9편8장)
도주님께서도 태극도 취지서에서 석가를 스승으로 밝히시다
이제왕이내자(以帝王而來者)는 복희 단군 문왕(伏羲 檀君 文王也)요
이사도이내자(以師道而來者)는 공자 서가 노자(孔子 釋迦 老子也)며
(스승으로 오신 분은 공자, 석가, 노자이시며)라고 하시며 석가를 스승이라 하셨다.
용봉 독존석가불 - 천상계는 서방칠성인 석가불이 홀로 지키고 계셨다
계묘년(1903) 사월에 증산상제님이 청련암에서 박금곡에게 써 주신 「龍鳳(용봉)독존석가불」을 갑술년(1934) 구월에 이중성에게 전하여 지금까지 보전하여 왔다고 한다.(대순전경속지)
상제님께서 '龍鳳(용봉)'을 쓰신 계묘년(1903)년 당시에는 「상제님과 동방칠성인 도주님께서 모두 인간 세상에 내려오셔서 천상계는 서방칠성인 석가불이 홀로 지키고 계셨다.」라고 한다.
용봉 독존석가불
용은 구천상제님을
봉은 옥황상제님을
독존석가불은 홀로 천상계를 지키고 계신 석가를 의미한다.
석가를 서방칠성의 자리로 옮겨 앉히시다
석가는 그 불교의 종장으로 가르침을 주신 분이시다.
그러나 불교의 3000년 운이 다하여 끝날 무렵 상제께서는 불교의 종장을 석가에서 진묵으로 바꾸셨다.
그리고 상제께서는 석가를 서방칠성의 자리로 옮겨 앉히시어 후천 50000년 미륵시대에 참여토록 하셨다.
그러므로 영대에서 석가를 내린 집단의 행태는 매우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쪽이라는 것과 세운다는 것에 중점을 둬야한다.
상제께서는 약방에 갖추어 둔 모든 물목을 기록하여 공우와 광찬에게 주고 가라사대 “이 물목기를 금산사에 가지고 가서 그곳에 봉안한 석가불상을 향하여 그 불상을 업어다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리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불사르라”하시니 두 사람이 금산사에 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이로부터 몇 해 지난 후에 금산사를 중수할 때 석가불전을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니 미륵전 앞이 넓어지느니라. 이 불전이 오늘날의 대장전이로다.(공사2장11절)
상제께서 하신 이 말씀으로 볼 때 석가를 후천세상에서도 함께 하시겠다는 공사임을 알 수 있다.
그럼 이 대목에 대해 조목조목 알아보자.
상제께서는 공우와 광찬에게 지시하시기를 불상을 업어다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리라 하셨다.
1. 서쪽이란 서방칠성을 말하며 서방정토극락 또는 용화세상 후천세상을 말한다.
2. 세우리라 하셨는데 세운다는 것은 자리에 앉힌다. 또는 책임을 맡긴다 등 신뢰의 의미이다.
3. 석가불전을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니 미륵전 앞이 넓어지느니라. 고 하는 것은 서방정토극락에 동참함으로 후천 미륵세상이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의미는 상생의 의미이다.
미륵전이 넓어졌으니 서로 좋아진 것이다.
상제께서는 서가여래를 서방칠성에 세우시고 언제나 상제님을 옆에 모시고 다스린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이러한 공사로 인하여 도주님께서는 산속 절간 대웅전에 계신 석가를 영대에 옮겨 모시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인해 상제님이 계신 오른편(상제님위치)에 서가여래를 모시게 된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교의 종장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동안 불교에 갇혀 있었던 석가를 비로써 영대로 모실 수 있게 된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모셔진 영대의 신위는 도전님 당신께서도 나도 건드릴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한데도 석가가 옮겨졌으니 영대에서 내리고 도전님을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불상을 옮기라 하셨으니 석가를 영대에서 내쳐서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제께서 석가를 옮겨세우라 하셨지 필요 없어서 내친다는 말씀은 하지않으셨다.
그리고 옮긴것으로 인해 비로써 석가를 영대에 모실 수 있게 되었는데 이들은 그걸 모른다.
참으로 배은망덕이 하늘을 찌르듯한 배도자들이 아닐 수 없다.
불교의 종장이 진묵으로 바뀌었으니 서가여래를 내려야한다는 주장은 단순 무식한 주장이다.
상제님으로부터 불교의 종장이 진묵으로 바뀌었으니 서가여래를 내려야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천안계열, 대진성주회, 박성구 등 군소 단체가 그렇게 주장한다.
아니 우리가 불교인가? 불교의 종장이 바뀐것과 대순이 뭔 상관인가?
특히 종장을 바꾼 시기가 영대 원위에 서가여래를 모시기 훨씬 전의 일이다.
이미 도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영대에 서가여래를 모신 것이다.
그런데 뒤늦게 뭔 종장이 바꼈느니 어쩌느니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냐 말이다.
그러니 박성구가 도전님한테 귀싸대기를 얻어 맞은것 아닌가.
또한 도전님을 원위에 모신자들의 이유를 들어보면 서가여래가 도전님의 전생이기 때문이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단 한군데도 찾을 수 없다.
도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나를 신위로 모시려고 하는 이유는
너희들도 나중에 너희 밑에 사람들로부터 자기를 모셔주기를 바라는 속내가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도전님께서 이렇게 경고하셨음에도 이자들은 자기들 임의대로 새로운 단체를 만들고 종통을 받았다고 아랫사람들을 속이고 또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서가여래를 내리고 도전님 신위를 만들어 원위에 올려 영대를 뜯어고쳤다.
참으로 못된 자들이다. 죽으려면 뭔 짓은 못할까. 허령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이자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대순진리회 도헌[道憲]과 도전님, 종무원장님 두 분의 혼인공사와 대두목 공사로 종통을 이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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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상제님께서는 도주님께서 영대에 서가여래를 모시기 훨씬 전에 불교의 종장을 바꾸셨습니다.
그러니, 도주님이나 도전님께서는 이미 그 내용을 아셨음에도 서가여래를 영대에 모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박성구씨가 불교의 종장이 바꼈다고 자꾸 주장하며 도전님을 가르치려고 하니
도전님께서는 답답해하셨던게지요.
마치 도주님이나 도전님께서는 왜 그런 사실을 모르느냐 라고 두분을 깨우치게 하려는 꼴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답답하신 도전님께서 그렇다면 너는 차라리 진묵이하고 도 닦아라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 생각의 차이로 엄청난 죄를 짓게되며 또한 생사판단이 결정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