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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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령이씨(開寧李氏)에 대한 자료가 없습니다. |
▣ 과거급제자(조선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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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정(李碩貞, 1576 丙子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이철(李哲, 1596 丙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이기현(李夔賢, 1673 癸丑生) : 사마시(司馬試) 숙종41년(1715) 식년시 삼등(三等) 이동백(李東白, 1720 庚子生) : 사마시(司馬試) 영조30년(1754) 증광시 이등(二等) * 모두 4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무과 2명, 사마시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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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 연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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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 개령(開寧)은 현재 경상북도 김천(金泉)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삼한시대에는 감문국(甘文國)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231년(신라 조분왕 2)에 신라가 감문국을 공격하여 병합하여 감문군을 설치하였다. 557년(진흥왕 18)에 감문주(甘文州)를 설치하였다가 백제를 정벌한 후 661년(문무왕 1) 감문군을 정비하였다. 687년(신문왕 7)에는 개령군으로 고쳐 사벌주(沙伐州: 757년 상주로 개칭)의 속현이 되었고 감물현(甘勿縣: 禦侮縣)·지품천현(知品川縣: 知禮縣)·무산현(茂山縣: 茂豊縣)·김산현(金山縣) 등을 관할로 두었다. 1172년(고려 명종 2)까지 상주(尙州)에 속해 있다가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416년(태종 16)에는 개령현으로 격하되었고, 1598년(선조 31)에는 반란을 꾀하던 자의 고향이라 하여 폐현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에 유림의 상소로 복현되었다. 1896년 지방관제 개혁으로 개령군이 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개령·김산·지례와 성주의 일부를 김천군으로 통합하면서 개령군에 속했던 부곡면과 서면이 개령면으로 통합되었다. 김천은 1949년 김천시로 승격되고, 김천군은 금릉군(金陵郡)으로 개편되었다가, 1995년 금릉군을 병합하여 김천시가 되었다. |
▣ 인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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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개령이씨는 1985년에는 총 53가구 218명, 2000년에는 총 588가구 1,92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