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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피돌리오 광장을 둘러본 후 포로 로마노로 이동을 하였다..

【포로 로마노 Foro Romano】고대 로마의 민주정치, 상업, 법률의 중심지
콜로세오에서 성스러운 길이라는 의미의 ‘Via Sacra’ 거리를 따라가면 포로 로마노를 만날 수 있다. 팔라티노 언덕과 연결되어 있는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 시대의 민주 정치와 상업, 법률의 중심지였다. 포로 로마노는 여러 황제를 거쳐 오면서 발전했지만, 5세기경 로마가 분열되면서 이곳 대부분의 건물들이 훼손되었다. 하지만 여러 시대를 거쳐 온 다양한 시대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얼핏 보면 폐허와 같은 모습이지만 지금까지도 발굴 작업과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고, 예전의 번성했던 로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소로서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
세베루스 황제의 개선문(Arco di Settimio Severo)
【세베루스 황제의 개선문(Arco di Settimio Severo)】
로물루스의 묘 앞에 세워져 있는 높이 23m, 폭 25m의 이 개선문은 세베루스 황제가 동방 원정에서 전승을 거둔 것을 기념해서 세워진 것이다. 이 개선문은 포로 로마노를 발굴할 당시 가장 먼저 발견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포로 로마노를 바라보면 가장 눈에 띄고,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잘 보존된 유적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원래 이 개선문 꼭대기에는 셉티미우스와 그의 두 아들 카라칼라와 제타를 기념하는 조각이 있었지만, 셉티미우스가 죽은 후 동생 제타를 죽인 카라칼라가 동생 이름을 조각에서 지웠다고 한다.
사투르누스의 신전(Tempio di Saturno)..
【사투르누스의 신전(Tempio di Saturno)】
농업의 신인 사투르누스를 모시는 신전으로 기원전 5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당시에는 가장 중요시되던 신전이었다. 매년 12월 17일~23일 사투르누스를 기리는 축제 때 많은 노예들이 자유를 얻을 수 있었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축제를 즐겼다고 하는데,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기원이라는 설도 있다. 신전 위에는 ‘Senatus Popolvs Qve Romanvs’라는 라틴어가 쓰여 있다. ‘로마의 원로원과 서민들’, 즉 로마 시민이라는 뜻으로 로마 자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문장 첫 글자를 딴 S.P.Q.R은 지금도 로마 시청을 상징하는 단어로, 하수도 뚜껑 등에서 볼 수 있다.
바실리카 율리아(Basilica Julia)
【바실리카 율리아(Basilica Julia)】
카이사르가 기원전 54년 건축한 2층짜리 대형 법정 건물이다. 이 바실리카는 한때 민사 소송을 담당하던 180여 명의 치안, 행정 판사들의 사무실이었다.
베스타 신전(Tempio di Vesta)(?)..
【베스타 신전(Tempio di Vesta)】
기원전 6세기에 지어진 이 신전은 불의 여신 베스타를 위한 신전이다.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며 스무 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어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전이었다고 한다. 이 신전에서 6명의 처녀 사제인 베스탈들이 성화가 꺼지지 않도록 지켰다. 로마의 안위를 위해 성화를 지키는 일인 만큼 베스탈은 엄격한 자격을 통해 선발하여 30년 동안 불을 지키는 일만 담당했다고 한다.
문양이 상당히 세련된 것 같습니다..
에밀리아의 바실리카(Basilica Aemilia) & 세베루스 황제의 개선문(Arco di Settimio Severo)..
【에밀리아의 바실리카(Basilica Aemilia)】
기원전 179년에 건축한 이 건물은 사법, 금융, 상업 등이 이루어지던 공공건물로,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였다. 바닥에는 서고트족이 로마를 점령할 때, 불에 타서 주화가 녹아 있는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막센티우스 바실리카(Basilica di Massenzio)
【막센티우스 바실리카(Basilica di Massenzio)】
콘스탄티누스 바실리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306년에 지어진 것으로, 3개의 거대한 아치형 천장만이 남아 있지만, 당시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으며, 가로 100m, 세로 65m, 높이 35m에 달하는 크기다. 원래 이 바실리카의 천장은 도금된 타일로 꾸며져 있었는데, 7세기경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지붕을 만들기 위해 떼어 냈다고 한다.
포로로마노 박물관을 들러 구경합니다/ 도기, 생활모습, 사람 뼈 등이 전시되어 있고..
생활 도구와 사람의 뼈..
온전한 형태의 유골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티투스의 개선문(Arco di Tito)
【티투스의 개선문(Arco di Tito)】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개선문으로, 티투스 황제가 예루살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81년에 세운 것이다. 아치 안쪽에는 예루살렘 신전에서 로마군이 약탈품을 운반하는 장면을 묘사해 놓은 부조를 볼 수 있다.
티투스의 개선문을 지나 콜로세움으로 이동하였으며, 콜로세움 예약시간이 오후(사실은 내일 오후)이기에 외관만 둘러보고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을 보았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을 본 후 날씨가 섭씨 37도~38도를 오르내릴 정도로 너무 뜨거워 일단 숙소로 이동하여 동치미 냉국수로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에 다시 콜로세움으로 오기로 하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을 본 후 피라미드가 있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였다.
콜로세움이 보입니다..
로마를 상징하는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
【콜로세오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 콜로세움】로마를 상징하는 원형 경기장
콜로세오는 72년 베스파시아누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원형 경기장으로, 80년 베르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되었다. 총 5만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기장이 그 시대에 지어졌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80여 개의 아치문을 통해 관중들이 입장하는 데 30분, 퇴장하는 데 불과 15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개폐형 지붕과 같은 놀라운 시설을 갖춘 콜로세오는 2007년 새롭게 선정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로마에서 가장 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Arch of Constantine , Arco di Constantino】로마에서 가장 큰 개선문
밀비오 다리에서의 승리를 기념해 315년 세워진 이 개선문은 높이 28m, 너비 25m의 로마에서 가장 큰 개선문이다. 밀바오 다리에서의 전투를 통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를 재건할 수 있었고, 이에 로마 원로원과 시민들에 의해 이 개선문이 세워졌다. 개선문의 장식들은 트리야누스 등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을 붙여 놓았는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빈민에게 빵을 나눠 주고 있는 조각 등이 있다. 이 개선문을 인상 깊게 본 나폴레옹이 파리로 가져가려고 했었지만 불가능했고, 결국 이 개선문을 본떠 파리에 개선문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과 콜로세움..
지하철 B선 피라미드 역에 내리면 바로 앞에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를 모방한 ‘진짜’ 피라미드가 있다..
【피라미드Piramide이집트식 피라미드 형태의 무덤】
‘로마에 피라미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지하철 B선 피라미드 역에 내리면 바로 앞에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를 모방한 ‘진짜’ 피라미드가 있다. 이 피라미드는 기원전 11년에 세운 것이다. 당시 호민관이었던 에푸로네(Caio Cestio Epulone)가 자신의 무덤을 이집트식의 피라미드 형태로 만들었고, 이후 이 피라미드는 아우렐리안 성벽(로마를 둘러싸는 성벽)에 딱 끼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왔다. 로마를 여행하다 보면 실제로 이집트 문명이 많이 분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제 이집트는 로마의 문화 발전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피라미드 옆에는 공동묘지가 있는데 이곳에 시인 키츠의 무덤이 있다. 피라미드의 높이는 37m이고 너비는 30m이며 여러 라틴 문자가 적혀 있다.(출처 : Enjoy 이탈리아)
식사와 휴식 후 다시 콜로세움을 방문하여 예약 내용을 확인해 보니 내일 오후 4시에 콜로세움이 예약된 것을 알고 일정을 변경하여 내일보려고 했었던 트레비분수, 스페인광장 등을 보기로 하였다.. 오후가 되니 날씨는 더욱 무더워 관광객들이 오전보다 적은 것 같았으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에도 사람이 없어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콜로세움 외관을 본 후 트레비 분수로 이동하였다..
오후에 본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
오후에 본 콜로세움..
트레비분수 가는 길에서 본 모습으로 현재 유적 발굴 중인 것 같습니다..
로마에 오면 반드시 보고 가야될 정도로 유명한 트레비 분수입니다..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바로크 양식의 최대 걸작품
트레비 분수는 고대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명한 ‘처녀의 샘(Aqua Virgina)’으로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에게 물을 준 한 처녀의 전설을 분수로 만든 것이다. 분수의 정면 오른쪽 위에 이런 일화를 담은 조각품이 있다. 고대 로마 시대는 풍부한 수원과 총 14개의 거대한 수도망이 있었고 로마 전역에 물을 공급했지만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많은 이민족들이 침입하면서 이 수로망을 파괴했다. 그로 인해 물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물 부족은 15세기 이후에 들어서면서 새로이 로마를 재정비하려던 교황들이 여러 수도교와 분수를 만들면서 해소되었다. 그중에 제일 유명한 것이 바로 이 트레비 분수이다. 평범했던 이 분수는 1732년 교황 클레멘스13세가 니콜라 살비(Nicola Salvi)에게 명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트레비 분수의 아름다움은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최고 걸작품이라고도 한다. 이 트레비 분수가 유명하게 된 이유는 영화〈로마의 휴일〉에서 ‘스페인 계단’이 유명해졌듯이, 영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에서 주인공인 마스트로이안니와 여주인공이 분수에 뛰어드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레비 분수의 중앙에 있는 근엄한 모양의 부조물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며, 양쪽에 말을 잡고 있는 두 명의 신은 포세이돈의 아들인 트리톤이다. 종종 테베레 강이 범람해서 이곳까지 물에 잠길 때가 많자 바다의 신을 만들어 이를 막고자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분수 왼쪽에 날뛰는 말은 풍랑을 상징하고, 오른쪽의 말은 고요한 물을 상징한다. 건물 제일 위를 보면 라틴어로 ‘CLEMENS VII’라고 클레멘스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 AQVAM VIRGINEM이라고 적혀 있는데 ‘처녀의 샘분수’라는 것을 명명하고 있다. 양쪽에 있는 4개의 여인 조각상은 4계절을 상징한다.(출처 : Enjoy 이탈리아)
사람들이 정말 많고 분수 앞쪽으로 가려면 줄을 서서 약 10분 정도 기다려야 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로마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꼭 들러야 하는 명소가 있으니 다름 아닌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이다. 모든 여행 일정을 마친 관광객들은 마지막으로 이 분수로 달려가 동전을 손에 쥐고 분수를 등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 영원의 도시를 방문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동전을 분수에 던진다. 트레비 분수는 로마의 가호이자 작별 인사가 되었으며, 세계 곳곳에 복제되어 로마를 느끼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광장에 엇비슷한 것이 하나 있다.
‘CLEMENS VII’라고 클레멘스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 AQVAM VIRGINEM이라고 적혀 있는데 ‘처녀의 샘분수’라는 것을 명명하고 있다..
중앙에 있는 근엄한 모양의 부조물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며,
양쪽에 말을 잡고 있는 두 명의 신은 포세이돈의 아들인 트리톤이다.
트레비 분수에서 등 뒤로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돌아오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을 찾게 되며,
세 번 던지면 이혼이 성립된다고 한다.
분수 왼쪽에 날뛰는 말은 풍랑을 상징하고, 오른쪽의 말은 고요한 물을 상징한다.
날뛰는 말이 실제와 같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트레비 분수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드는 것을 보니 정말 로마에서 최고로 인기가 있는 곳이란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트레비 분수를 보고 스페인광장으로 이동하였다..
스페인광장입니다(위에서 본 모습)..
【스페인 광장 Piazza di Spagna】활기 가득한 광장과 명품숍이 가득한 콘도티 거리를 거닐다
17세기에 이 광장 주변에 스페인 대사관이 자리를 잡음으로써 현재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전반적인 양식은 화려한 로코코(Rococo) 양식이다. 이 스페인 광장과 계단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 헵번’이 걸어 내려왔던 곳으로 이 영화 이후부터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원래부터 이 광장은 수많은 세계적 예술가들이 쉬어 가던 곳이었는데 괴테, 발자크, 키츠, 셸리, 바그너 등이 즐겨 찾던 곳이기도 했다. 스페인 계단 정면으로 나 있는 콘도티 거리에는 세계의 명품 브랜드 숍들이 가득 차 있어 보는 이들을 한껏 매료시킨다. 특별히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눈이 즐거운 곳이다. (출처 : Enjoy 이탈리아)
스페인 계단..
【스페인 계단 Triniti dei Monti】〈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을 추억하다
계단의 정식 명칭은 '언덕의 삼위일체 계단(Scalinata della Trinita dei Monti)'이다. 1726년에 프란체스코 데 상크티스(Francesco De Sanctis)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삼위일체를 의미하듯 비탈을 3개의 테라스로 나누고, 모두 138개의 계단을 '테라스가 있는 정원식 계단'으로 우아하게 만들었다. 계단에 앉아 있으면 광장이 무대가 되는, 극장과 같은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원래 시 당국은 포폴로 광장이 중심지 역할을 하기를 기대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늘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곳이 바로 이곳의 13번째 계단이다.
언덕 위의 삼위일체 성당(Trinita dei Monti)..
계단 위에 있는 '언덕 위의 삼위일체 성당(Trinita dei Monti)'은 성당 뒤쪽에 있는 빌라 메디치와 함께 프랑스 정부의 소유이다. 성당 앞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고대 로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1789년 교황 비오 6세가 순례자들을 위한 표식으로 옮겨왔다.
바르카차분수..
【바르카차 분수 Fontana della Barcaccia】
이 분수는 로마의 모든 주요 광장에 분수를 세우려는 교황 우르바노 8세(재위 1623~44)의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다.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가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와 함께 1627~29년에 설계하였는데, 이 분수는 그가 처음 만든 분수로,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하였다. 특히 물을 끌어오는 수원의 높이가 낮아 수압이 낮은 관계로, 분수를 광장의 높이보다 낮게 설계해야 했다. 베르니니는 반쯤 침수된 조각배(비르차카 Barcaccia) 조각을 만들고, 배의 양편에서 수반으로 물이 흘러넘치도록 하여, 환경의 제약을 멋지게 극복한 작품을 만들었다. 1598년 로마의 대홍수로 스페인 광장이 물에 잠기게 되었는데, 물이 빠진 후, 홍수에 떠내려온 배 한 척이 광장에 남아 있었던 것을 모티브로 디자인하였다고 전해진다.
콘도티 거리..
【콘도티 거리(Via Condotti)】
스페인 계단 앞으로 쭉 뻗어 있는 길이 콘도티 거리다. 현재는 예전과 같은 명성이 있는 곳은 아니나 그래도 명품 숍들이 즐비하다. 여행 책자에 많이 소개되는 로마의 명품 거리가 바로 이곳인데 현지인들은 이곳에서 물건을 사지 않고 대개는 ‘카스텔 로마노’나 로마 인근에 새로 생긴 ‘빠르코 레오나르도’와 같은 명품 아울렛으로 찾아간다. 이 거리에는 1760년에 조성된 ‘카페 그레코’라는 커피숍이 있는데 이곳에서 저명한 예술가들이 문학, 예술, 정치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이 근처 마르구타와 밥부이노 거리에 많은 예술가들이 살았다. 현재도 코르소 거리에는 괴테가 살았던 방이 보존되어 있다.
바르베리니 광장의 트리토네 분수..
【바르베리니 광장 Piazza Barberini】베르니니의 걸작 트리토네 분수가 있는 광장
바르베리니 광장은 16세기경에 만들어졌고, 광장의 명칭은 바르베리니 가문 출신의 교황 우르바노 8세(재위 1623~44)의 재위 시절인 1625년에 광장 옆에 있는 바르베리니 궁전(Palazzo Barberini)의 이름을 따라 붙여졌다. 베네토 거리와 트리토네 거리가 만나는 곳에 있는 이 광장은 분수대가 있어 더욱 아름답다. 베네토 거리와 바르베리니 광장이 만나는 지점 부근에는 아피 분수가 있는데, 이 분수대는 바르베리니가의 문장인 벌이 새겨져 있는 조개 모양의 분수다. 또한 광장 중앙에는 조개 위에 무릎을 꿇은 트리톤과 돌고래 네 마리가 어우러진 ‘트리토네 분수’가 있다. 이 작품은 1640년에 만들어진 베르니니의 걸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