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문제의 뿌리를 정확히 본 군주
정조가 뛰어난 군주였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문제를 많이 알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문제의 근원을 정확히 파악할 줄 아는 안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단순히 눈앞에 드러난 현상을 정리하거나 보고받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현상이 왜 발생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했습니다. 그의 분석은 항상 ‘현상의 문제를 넘어 그 배후에 자리한 구조적 결함, 더 깊게는 그 구조를 지지하는, 사고방식의 문제에까지 도달’했습니다.
따라서 정조에게 문제란 오랫동안 쌓여온 모순이 단번에 드러남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뿌리를 찾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뿌리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따져보고, 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동일한 문제가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런 인식은 정조로 하여금 근본적 개혁을 지향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그의 통치가 깊이와 지속성을 동시에 갖게 된 중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1) 문제의 핵심은 구조
앞에서도 기술했지만 정조는 ‘조선을 하나의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보았습니다. 이 시스템은 정치와 경제, 문화, 군사, 행정, 사상 등 여러 요소가 서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일종의 구조체(構造體)였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보면, “이는 어떤 구조에서 발생했는가?” “이 구조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가령 군사력이 떨어진 것은, 병사들의 태만보다 훈련 체계와 지휘 구조가 무너져 있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행정의 효율이 낮은 것을 보면, 그저 관리들의 무능 때문으로 치부하지 않고, 시스템이 지니고 있는 폐단, 즉 ‘인사 구조가 공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는 식입니다. 따라서 정조는 이런 구조적 접근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람을 바꾸는 것을 넘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이는 조선의 군주들 중 정조만이 갖고 있는, 독보적 통치 철학이었습니다.
2) 역사에서 찾은 문제의 원인
정조가 문제의 원인, 즉 뿌리를 찾아가는 방식은 단순한 분석을 넘어 문제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록은 물론 역사서를 광범위하게 읽었습니다. 가령 문제가 불거지면, 과거의 유사 사례를 찾아 활용하는 것입니다. 즉 문제의 원인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대응하여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검토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조가 과거 사례를 ‘단순히 참고만 한 것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즉 원인 탐색의 도구로 활용한 것입니다. 가령 조선이 반복적으로 재정 위기를 겪는 이유에 대해선 그저 흉년만의 문제가 아닌, ‘토지 제도의 불균형’과 ‘농업 중심 경제의 한계’, ‘상공업 억제 정책의 누적 효과 때문’이란 점을 역사적 흐름 속에서 파악한 것입니다. 정조는 이런 문제를 단절적 사건이 아닌 ‘시간적 누적의 결과’로 보았고, 그래서 그의 해결책은 항상 단기 조치보다 ‘장기 구조 개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3) 하나의 구조로 연결한 문제
정조의 탁월한 능력 가운데 하나는 ‘서로 다른 문제들을 연결해 하나의 구조로 분석하는 능력’입니다. 예컨대 군사 문제가 드러나면, 이를 군사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행정 문제와 인사 문제, 더 나아가 당쟁 문제와도 연결해 이해했습니다. 말하자면 정조의 분석은 이런 식입니다. 군사력이 약한 이유는 → 지휘 체계가 약한 탓이고, 지휘 체계가 약한 이유는 → 당쟁으로 유능한 인재가 제자리에 배치되지 못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인재가 배치되지 못한 이유는 → 공정한 인사 기준이 무너진 구조이기 때문이고, 인사 기준이 무너진 이유는 → 조정 전체에 흐르는 ‘사적 이해관계 중심의 정치 문화’ 때문인 것입니다. 이처럼 정조는 연결 구조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기준이 사라진 정치 문화’에 있음을 파악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개혁은 정치와 군사, 행정, 사상 전반을 하나의 구조로 묶어 종합적으로 개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4) 사고방식 고착이 문제의 뿌리
정조는 여러 층위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원인을 구조 결함이나 정책 실패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즉 ‘사고방식의 고착’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고방식이 조선을 정체 상태로 만들었다고 보았습니다. “해오던 방식이니까 그대로 해야 한다.”, “당파의 이익이 곧 나라의 이익이다.”, “실제 현실보다 명분이 더 중요하다.”, “제도는 바꿀 수 없고, 사람만 바꾸면 된다.”, “학문은 현실과 분리된 정신적 영역이다.”
정조는 이런 사고방식을 발전의 장애로 보았습니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제도 개혁보다 사고 개혁이 먼저라고 믿은 이유입니다. 이 사고의 개혁을 위해 정조는 규장각을 학문 기관을 넘어 ‘지식 기반의 국가 전략 본부’로 탈바꿈시키고, 초계문신을 통해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인재들을 육성했습니다. 정조의 진단은 단순하지만 정확합니다. 이것이 개혁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 개혁은 ‘정확한 진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