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실어내다
엄마를 정리하러 갔다 삼칠일 제를 마치고
누이 넷과 형수 처 여섯 여인네들이
온 집안 휘젓고 다니며 엄마를 들추어낸다
엄마가 하나씩 끌려나올 때마다
주르르 흘러내리는 추억의 물줄기
엄마가 펄펄 살아나 떠들썩하다
엄마를 어깨에 걸쳐보기도 하고
엄마를 신고 팔랑거리며 걸어보기도 한다
생전에 바깥 구경 못한 비로드치마, 벨벳 목도리
누이들이 날개 달아준다
엄마의 웃음이 붉게 웃는다
백개의 엄마 천개의 엄마가 사방에서 뚝뚝 떨어진다
자꾸만 입 열고 소리치려는 엄마
허공 속에 얼굴 들이미는 엄마를
고이접어 봉지속에 담는다
두 손으로 꽁꽁 묶어 버린다
간다 간다 엄마가 간다
단단히 싸맨 봉지 네 개로 덜컹덜컹 굴러간다
투덜대며 머뭇거리고 자꾸 꾀 부리는 엄마
가세요 엄마 돌아보지 말고 얼른 가세요
혼자 된 누이 내 불면의 두통
당신 몸 다 닳도록 평생 봉양하신 논 밭
그대로 두고 떠나세요
푸른 당신의 새 집으로 훨훨 날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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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부
---필리핀에서
매연과 소음 무성한 거리
차선도 없이 질주하는 온갖 탈것들
인적 드문 버스 정류소에 마흔 후반의
남자와 여자가 주인인 가게 하나 있었네
작은 상자 뚜껑에 쏟아놓은
여남은 개의 껌,사탕,낱담배들
참, 단출한 사업이어서
망하든 흥하든 거기서 거기일 법한데
사장도 둘 종업원도 둘이었네
서로으 어깨에 살포시 기대기도 하고
여자가 남자의 투박한 손톱깎아줄 땐
톡,톡 꽃망울 터지는 소리났네
헐벗은 몸둥이 도심에 내던져 놓고
맞은 편 우스대는 건물들과
한 판 일전 치루고 있었네
궁핍이 나를 조롱했네
내가 아는 궁핍은
동전 하나라도 던져놓고 싶은
녹슨 그릇 하나쯤 들고 있어야 했지만
너덜너덜한 옷 앞니 빠진 몰골들이
연신 히히덕거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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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은 푸른 잎 쉽게 떨구지 않는다
오늘도 공친 날
기쁨의 집으로 부양하러간다.
적막한 얼굴들의 긴 행렬
속으로 추운 몸 밀어 넣는다
막다른 삶의 위안소
거센 급류 속으로 생을 날려버리기 직전
간신히 마지막 한숨 붙들어 두는 곳
바람에 흘러 다니는 시린 영혼들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넓은 챙 모자 쓴 아주머니는
한 그릇 사랑을 가슴에 안겨주지만 아직
마흔의 흰손이 자꾸 부끄러워져
송두리째 온몸 엎지르고만 싶다
나무 그늘마다
주린 영혼들이 허겁지겁 허기를 퍼 먹는다
바닥을 금방 드러내는 저
텅빈 그릇들은 또, 어디에서 채워질 것인가
어둠은 히죽거리며 곧 조롱을 퍼부을 것이다
한 생이 저렇게 진다한들 어느
젖은 눈빛 하나 그의 머리맡을 지켜줄까
마천루의 불빛들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동백꽃 붉은 울음 시뻘겋게 짓물린
동백나무 그늘 아래 앉아 어떻게든,
한 그릇의 쓸쓸한 생을 먹어치워야 한다.
바람 차가울수록
동백의 눈초리는 더 매섭게 날 세우고
푸른 잎 쉽게 떨구지 않는다.
*기쁨의 집: 부산에 있는 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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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은 어디인가
넓은 그의 이마에선 바람의 냄새가 났다
그도안 건너온 파란만장한 삶이
부리부리한 두 눈을 통해 금방이라도
줄줄 쏟아질 것 같았다
술잔은 자부심으로 출렁거렸고
목소리를 자꾸 키워갔다
빈 술병이 늘어갈수록 그의 삶은 더욱 빛나 보였다
경주 칸트리 골프 클럽에서 만난 도지사
김모 국회의원은 든든한 백이었다
불황의 세상에서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그는
수 십층 건물을 몇 마디 말로 쭉쭉 뽑아 올리고
하룻저녁 기백만 원짜리 식사도 심심한 가십거리 정도였다
한 잔 술값에 연연하는 나와 달리 그는
통 큰 대장부여서
세상의 멱살 쯤 쉽게 쥐고 흔들 수 있을 것 같았다
BMW로 폼나게 인생을 달리는 그에게
결혼은 몸에 걸치기 불편한 이웃나라 풍습같은 것
머무르는 곳이면 어디든 그의 집이었다.
자정 무렵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을 헤치며 사라질 때
그의 생은 또 한 차례 활활 타오를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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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말들의 시간
딸아이가 친구 넷을 데리고 왔다.
두두두 두두두, 고함치며 우르르
몰려왔다 몰려가는 소리
말 다섯마리 집안에 방목 중이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에 금세
초록 풀이넓은 들판 달려 수평선에 닿고
새소리,바람소리 솜사탕 구름 단 파란 하늘
시냇물에서 술래잡기하는 피라미 떼도 보인다
모처럼 풀려난 저 어린 말들
책을 입에 물고 다니던 속박의 날들은 가라
몸 활짝 열어놓고 쏟아내는 저 무성한 울음
어여쁜 꽃숭어리의,
느티나무 푸른 잎사쉬 팔랑팔랑
햇살에 은빛 이파리 뒤집는 봄날, 나는
날뛰는 저 말들을 더 넓고 푸른 광야로 내몰고 싶어
슬쩍 문을 나서 버린다
나없는 동안 목을 앞으로 쭉쭉 내뻗으며
히힝히힝 광란의 축제라도 벌여라
지금은 어린 말들의 시간
높은 아파트에서 날아가는 새를
더는 흉내내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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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꼬박 4년이 흘렀다. 앞으로 남은 절반의 인생.. '어떻게 살아야하나' 질문을 던졌을 때 시가 나를 조용히 불러주었다.
오랜 불면이 찾아왔고 그만큼 외로웠다. 작은 보상이라도 주어지면 신들린 듯 다시 매달렸다. 시를 놓아버리면 나는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나무토막, 돌덩어리. 내가 여기있다고 내 존재를 인식시키기 위한 안간힘, 시는 인생의 전반부를 넘어서면서 나는 그만큼 절박했다.
'시는 나의 종교다'라고 말한 어느 시인의 말은 옳다. 시 속에서 구세주를 만나고 구원을 받는다면 종교와 다를 게 뭔가. 아니다 시는 불면과 외로움, 고통의 원천이다. 그러면서 시는 가까스로, 가타르시스다. 내가 쓴 한편의 시가 누군가의 시린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준다면 시인으로서의 내 삶은 더 할 나위없이 행복하겠다.
오랜 내 시의 텃밭이 되어준 <문장>과 <시마을> 벗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하고 수백 번을 되뇌었는데 마침내 당선의 소식을 전해주신 <우리시>와 심사위원님들께는 평생을 두고 좋은 시로서 감사하는 마음을 대신하겠다.
이환 시인
-본명 이문희. 경남 김해 출생. 동아대학교 영문학과 및 교육대학원 졸업
-현재 부산 사동초등학교 교사
-mhlsos0507@hanmail.net
첫댓글 우리시 문학상이 별도로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시 신인상이 아닌가요? 두분의 제목이 달라서 헷갈립니다
단어 하나가 완전히 다른뜻이 되니까요 이환 시인님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