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Mr Smith Goes To Washington Full movie 1939A naive man is appointed to fill a vacancy in the United States Senate. His plans promptly collide with political corruption, but he doesn't back down. Direc...www.youtube.com
1939년 10월 개봉 당시,《뉴욕 타임솨의 프랭크 누전트(Frank S. Nugent)는°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정치적 자유와 보편적 자유, 청렴과
정직, 평범한인간의 타고난 존엄에 대한감동적
인 증거가 되었다. ° 고 평가한다.
이와 유사하게 누전트보다 열흘 앞서 나온《버라이어티》의 리뷰에도"카프라 감독은 워싱턴을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소로의 월든 호수에서 들을 법한 삶의 아포리즘을 상속받은 주인공이 펼치는 이 드라마는 오로지 정치 영화인가?
흥미롭게도 개봉 당시 주요 비평가들은 이 영화의 각본이 그리 완벽하지 않았다는 점에 다같이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이 영화가 민주주의와 자유, 정의와 품위 , 인간과 역사라는 추상적 키워드를 “ 유머와 감동이 살아 있는 균형 잡힌 ” 이야기로 풀어냈다고 호평한다 .( 프랭크 누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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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이익과 착취에 속한” 위력(force)과 그 반대편의 진정한 힘(power)을 구별했던 데이비드 호킨스는 『의식혁명』에서 이런 해답을 제시한다.
“우리는 사회가 전 역사에서 입법 행위, 전쟁, 시장 조작, 법률, 금지령 등 위력의 모든 현시를 통해 사회 문제를 ‘처리’하려고 했다는 것과, 그런 요법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지속되거나 재발되었을 뿐이라는 걸 관찰할 수도 있다. 비록 위력의 위치에서 일어난 정부(또는 개인)은 근시안일 수도 있지만, 예민한 관찰자의 눈에 사회적 갈등상태는 저변의 기원이 노출되고 ‘치유’되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이 결국 명백해지게 된다.”
데이비드 호킨스가 밝힌 위력과 힘의 대비는 영화 「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 에서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다 . 호킨스에 따르면 ,
“위력은 흔히 지지를 획득하고 저변의 동기부여를 감추기 위해 수사, 선전, 그럴듯한 주장에 의존한다. …… 위력은 개인이나 조직의 이득을 위해 생명을 착취하는 것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 위력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주장을 통해, 편의를 위해 자유를 팔아넘긴다.”
[특별 연재] 나의 호킨스식 영화 읽기 : 네이버 포스트판미동 I 민음인님의 시리즈m.po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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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역사에서 입법 행위, 전쟁, 시장 조작, 법률, 금지령 등 힘을 통해 사회 문제를 ‘처리’하려고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지속되거나 재발되었을 뿐이라는 걸 관찰할 수 있다
예민한 관찰자의 눈에 사회적 갈등상태는 저변의 기원이 노출되고 ‘치유’되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이 결국 명백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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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주장을 통해,
우리는 편의를 위해 자유와 권리를 팔아넘긴다.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불도저에 깔려 토대를 이룬 사회
그러한 사회를 동경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내가 신이고 내가 우주인데, 우주를 신을 짖밟고 건설해야 할 천국이 어디있단 말인가?
두두만물이 신인데, 짖밟혀도 괜찮은 대상이 어디있다는 것인가?
군국주의, 제국주의, 사대주의,
민주주의 조차
권력을 가진자들의 편리를 위한 가면, 위선일 뿐.
과거 합일할 수 없었던 끝장을보는 화백회의 제도가 가장 근접한 인륜적 system이겠으나,
그것도 그저 다른 대안을 갖지 못한 인류의 과도기적 system 일 뿐.
가장현명한자가 현명하게 판단해서 할 일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보통의 사람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정의가 흐르는 시대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내가 알기에 한때의 중국이 그러했고, 한때의 미국이 그러했고, 그 훨씬 이전에 우리가 그러 했었다.
그러했을 때 세상을 누렸었었다!
다시 그러하기 전까지는 모두가 선도의식에 합일할 수 없는 거짓된 허구라고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