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벨상 수상자 5명이 방한, "앞으로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려면 '베끼기 연구'가 아니라 '창의적인 연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시라카와 히데키 박사는 "반드시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연구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발상의 전환에 앞장서는 연구라면 당장 연구결과물을 낼수 없더라도 싹을 키워줄 수 있는 연구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과학기술부가 지난 97년부터 진행중인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을 중심으로 미래의 노벨상을 꿈꾸는 국내 창의적 연구를 시리즈로 살펴본다.(조선일보 편집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분자크기 물질에 지능을 부여한다면?
국내 지능성 물질 연구를 이끌고 있는 포항공대 화학과 김기문(47) 교수는 요즘 작은 분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원하는 성질과 기능을 나타내는 ‘지능물질(smart material)’로 변환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김 교수는 크기가 1nm(10억분의 1m)밖에 되지 않아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작은 ‘구슬’과 ‘실’을 이용, ‘실’이 ‘구슬’을 찾아가면서 자동으로 꿸 수 있는 분자제어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기존 반도체소자의 핵심인 스위치 기능을 갖는 분자스위치를 만드는 것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기계를 움직일 분자모터(motor) 조립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분자간의 작은 인력을 이용한 ‘지능물질’ 개발 연구가 활발하다. 국내에서도 김 교수가 주도하는 ‘지능초분자 연구단’이 지난 97년 과학기술부 창의적 연구 진흥사업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지능성 물질을 개발 중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능이란 인간의 지능 개념이 아니라 특정 기능을 물질에 부여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다림질이 필요없는 옷이나 아무리 변형해도 처음 상태로 돌아가려는 형상기억합금 등이 초보적 단계의 지능물질을 이용한 상품이다.
김 교수의 원천기술은 분자의 화학적 성질과 구조를 제어하는 초분자화학(supramolecular chemistry) 기술. 김 교수는 초분자화학의 핵심 개념인 분자인식(molecular recognition)과 자기조립(self assembly)기술을 이용해서 분자크기의 구슬과 실을 섞어 놓기만 하면 실과 구슬이 상대방을 인지해서 자동적으로 ‘목걸이’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분자인식은 분자들이 상대방을 알아본다는 것이며, 자기조립은 분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특정 초분자체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성질을 이용하면 새로운 나노테크놀러지를 개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분자 크기 스위치와 기억장치를 만들 수 있어 지금보다 크기는 수백 배 작으면서 속도는 수천 배 빠른 컴퓨터 제작이 가능하다.
한편, 김 교수는 속이 빈 화합물에 뚜껑을 달아서 그 안에 작은 분자를 가두었다 내보냈다 할 수 있는 ‘분자용기(molecular container)’를 개발하기도 했고, 벌집모양으로 분자크기 구멍이 일정하게 나 있어 분자를 거를 수 있는 ‘분자체(molecular sieve)’를 만들기도 했다. 특히, 오른손과 왼손의 관계와 같이 모양이나 성질은 같으나 서로 거울상 관계에 있는 키랄(chiral) 화합물을 인지해서 서로 분리해낼 수 있는 ‘분자체’를 개발하여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 물질은 궁극적으로 정밀화학, 의약산업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김 교수는 “또한 이 원리를 이용하면 특정물질만을 감지하는 첨단센서, 전기 대신 빛을 이용한 광학컴퓨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지능재료를 개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