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ES를 타면 눈과 귀, 손과 엉덩이, 주머니가 즐겁다. 다섯 가지 즐거움이 가득한 일곱 번째 ES
1989년. 우리나라에선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됐다. 중국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학생과 시민 100만여 명을 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한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다. 독일에서는 동서를 가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렉서스 ES는 바로 그 1989년에 태어났다. 1월에 열린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다. 그리고 29년이 흘렀다. 우리나라는 해외여행객 3000만 명 시대를 앞두고 있고,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를 고수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를 넘었다. 독일은 통일을 이룬 후 EU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ES 역시 7세대로 거듭났다.
‘도발적인 우아함’. 렉서스가 세운 새로운 ES의 디자인 콘셉트다. 럭셔리 세단다운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스포티한 이미지를 전한다는 게 이들의 목표였다. 렉서스 디자이너들은 그 일을 제대로 해낸 듯하다. LC와 LS에서 이어진 대담하고 과감한 디자인이 새로운 ES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말 그대로 도발적인 디자인인데 동시에 우아함이 느껴지는 건 안정적인 비율과 세심한 마무리 때문이다. ES를 이루는 선 하나하나, 면 하나하나가 공들여 매만진 느낌이다. 면과 면이 만나는 부분을 뾰족하게 각을 세우지 않고 매끈하게 둥글리거나 자연스럽게 다른 면과 이어지도록 한 덕에 각각의 선이 개성적인 실루엣을 만들지만 너무 도드라지진 않는다. 세로로 새롭게 패턴이 바뀐 스핀들 그릴 역시 ES의 얼굴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화살촉 모양 주간주행등은 위쪽 헤드램프와 위아래로 연결되는 느낌이고, 부메랑처럼 꺾인 범퍼 아래 크롬 장식은 보닛을 장식하는 주름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뒷모습에선 스핀들 그릴의 모습을 형상화한 실루엣이 눈길을 끈다. 스포일러 아래에서 오목하게 들어간 라인이 테일램프를 지나면서 다시 양 옆으로 퍼진다. 좀 더 직선에 가까운 ‘L’자 모양 테일램프가 매력적인 뒷모습에 방점을 찍었다.
실내는 이전 모델에 비해 정돈된 느낌이다. 과감한 선과 장식을 덜어낸 대시보드는 운전대 아랫부분에서 양 끝으로 비스듬하게 선을 처리해 아쉬움을 달랬다. 대시보드 가운데 우뚝 솟은 12.3인치 디스플레이 아래로 송풍구와 각종 버튼이 깔끔하게 자리를 잡았다. 계기반은 LC와 LS에서 이미 익숙한, 둥근 원 하나로 구성된 LCD 미터다. 그 위로 둥근 막대를 찔러 넣은 것 같은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가 달렸다. 시트는 렉서스가 자랑한 만큼 푸근하다. 낮게 깔려 있는데 몸을 푸근하게 감싼다. 그렇다고 라텍스 침대처럼 푹 파묻히는 게 아니라 적당히 탄력 있게 푸근하다. 운전대는 안쪽에 반들반들한 우드그레인을 덧대 기분 좋게 매끈하다.
“신형 ES는 운전대를 비롯한 실내장식에 38일 동안 60가지가 넘는 공정을 거쳐 만든 시마모쿠 우드 트림을 적용했습니다. 도어 안쪽과 센터콘솔 등을 감싼 가죽에는 선이 살아 있도록 가공하는 비스코텍스 기술을 적용했고요. 모두 ES를 한층 고급스럽게 만들어주는 기술입니다.” 렉서스 관계자의 말이다. 시마모쿠는 몇십 겹의 얇은 나무 합판을 덧대 만드는 렉서스 고유의 나무 장식이다. 신형 ES는 가장 아랫급인 슈프림을 뺀 나머지 모델에 모두 시마모쿠 우드 트림이 들어간다. 비스코텍스 가죽은 모든 모델에 기본이다. 어쩐지 이전 모델보다 한층 고급스러워졌다고 생각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운전대 오른쪽 아래에 있는 시동버튼을 눌러 엔진을 깨웠다. 음, 조용하다.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얹은 ES 300h는 시동버튼을 눌러도 엔진이 바로 깨지 않는다. 가속페달을 천천히 밟자 앞으로 스르륵 움직인다. 여전히 엔진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주차장에서 매끈하고 조용하게 움직이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바퀴 구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주행 조건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지만 평탄한 길에서 시속 40킬로미터 이하로 달린다고 가정할 때 ES 300h는 EV 모드로 2킬로미터 정도 달릴 수 있다. 가속페달을 조금 강하게 밟아 엔진을 깨웠다. 그래도 엔진 소리가 실내로 크게 들이치진 않는다. 렉서스 엔지니어들은 소리를 단속하는 데 힘을 쏟았다. 섀시 바닥과 보닛 아래, 도어 안쪽 등 곳곳에 흡음재와 방음재를 덧댄 것은 물론 소음을 줄여주는 휠까지 신겼다. 소음을 감지하면 그 소음을 줄여주는 음파를 내보내는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기술도 적용했다.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도 렉서스 엔지니어들이라면 완벽히 해결할 수 있을 거다.
뒷자리 역시 앞자리만큼 푸근하고 편하다. 시승차인 럭셔리 플러스 모델은 버튼을 누르면 스르륵 올라오는 뒷유리 선셰이드도 챙겼다. 센터콘솔 뒤에는 뒷자리 승객을 위한 시가잭과 USB 포트가 두 개 있다. 뒷자리 바닥이 불룩하게 솟아 있어 가운데 자리에 어른이 앉기엔 조금 불편하겠지만 나머지 양쪽 자리는 무척 편하다. 시트가 뒤로 살짝 누워 있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자세가 나온다. 시트 등받이를 조작할 순 없지만 조작이 필요할 것 같진 않다. 무릎 공간도 넉넉한 편이다. 뒷자리 암레스트를 내리면 트렁크와 연결되는 스키스루가 나타난다. ES 트렁크 바닥 덮개를 열면 요즘엔 흔치 않은 템퍼러리 타이어가 나타난다. 트렁크도 무척 넓다. 배터리를 시트 바닥으로 옮긴 덕이다. 렉서스 관계자는 골프백 네 개를 여유 있게 실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신형 ES는 토요타 캠리와 같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챙겼다. 2.5리터 휘발유 엔진과 CVT 변속기를 앞에 얹고, 니켈 메탈 배터리를 뒤에 얹어 시스템 최고출력이 218마력, 최대토크가 22.5kg·m다. ES 300h에서 화끈한 주행 성능을 기대하긴 어렵다. 아니, 기대할 필요가 없다. ES 300h는 태어난 목적이 확실하다. 푸근하고 매끈하며 조용하고 효율적인 드라이빙. ES 300h는 이 목적에 완벽히 들어맞는 세단이다. 스포츠와 노멀, 에코의 세 가지 주행 모드가 있지만 셋의 차이는 뚜렷하지 않다. 스포츠에서 엔진 소리가 조금 거칠어질 뿐 짜릿한 달리기를 즐기긴 어렵다. 그렇다고 힘이 턱없이 모자라단 뜻은 아니다.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더욱이 매끈하게 달리는 맛이 정말 좋다. 탄력 있는 두부를 칼로 자를 때의 느낌처럼 그렇게 매끄럽게 도로 위를 내달린다.
“신형 ES는 세계 최초로 댐퍼에 스윙 밸브를 달았습니다. 출발 직후나 고속도로를 일정 속도로 달릴 때 차체에 작은 움직임이 있으면 스윙 밸브가 감쇠력을 일으켜 좀 더 안정적으로 달리게 해줍니다. 푸근한 승차감도 유지하고요.” 사카키바라 야스히로 ES 개발 총괄 엔지니어의 말이다. 매끈하고 편안한 승차감을 위해 ES는 엔진 마운트도 4점식을 달았다. 네 개의 고리가 엔진룸에 꽉 물려 있어 시동을 걸었을 때 진동이 적은 것은 물론 고회전 때에도 소음이 적다. ES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뿐 아니라 섀시도 토요타와 같은 것을 쓴다. 배터리를 시트 아래로 옮겨 트렁크를 넉넉하게 만든 것도 같다. 하지만 두 섀시가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다. ES는 보디 강성과 승차감 등을 위해 구조용 접착제를 더 많이 사용했다. 흡음재와 방음재 역시 사용 범위가 넓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차는 진화를 거듭한다. ES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ES는 이전 모델에 비해 안전장비와 편의장비도 풍성하다. 가장 아랫급 모델을 뺀 나머지 모델이 앞자리 열선과 통풍 시트를 챙겼고 뒷자리엔 열선 시트를 달았다. 열선 스티어링휠도 갖췄다. 윗급의 두 모델은 운전대 너머 앞유리에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펼쳐지고, 발로 트렁크를 열 수 있다. 가장 윗급의 이그제큐티브 모델은 뒷자리 옆창에 선셰이드를 달고, 17개의 스피커를 갖춘 마크레빈슨 오디오 시스템을 챙겼다. 모든 모델은 렉서스의 안전장비 4종 세트로 구성된 렉서스 세이프티 시스템 플러스(LSS+)를 기본으로 얹는다. 긴급 제동 보조 시스템과 다이내믹 레이더 크루즈 컨트롤, 차선 추적 어시스트, 오토매틱 하이빔이 4종 세트다. 이 가운데 차선 추적 어시스트는 운전대를 꺾어 적극적으로 차선을 지킨다. 차선을 넘으면 부르르 떨거나 경고음을 울리는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신형 ES는 우리나라에 하이브리드 모델만 들어왔다. 미국에서는 휘발유 모델도 팔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ES 300h만 판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팔린 ES는 8043대다. 이 가운데 95퍼센트인 7627대가 하이브리드 모델이었다. 한국 시장에선 하이브리드 모델만 팔겠다는 전략을 세울 만하다. 더욱이 ES 300h는 ES에 눈길을 주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두루 갖췄다. 푸근한 승차감과 매끈한 주행감각,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실내와 효율적인 연비 말이다. 눈과 귀, 손과 엉덩이, 주머니를 즐겁게 하는 요소다.
모든 학생이 공부를 잘할 필요는 없듯(하고 싶은 것을 잘하면 된다) 모든 차가 짜릿한 주행성능을 뽐낼 필요는 없다. ES는 자신이 잘하는 것과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300h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얹어 효율까지 높였다. 덜덜거리는 진동과 가르릉거리는 디젤 엔진 소리를 겪지 않고도 리터당 17킬로미터의 복합 연비를 누릴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다. 디젤 엔진이 눈총을 받고 있는 요즘, 하이브리드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완벽한 시트를 위하여
렉서스 엔지니어들은 시트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새로운 시트를 만드는 데 3년이 걸렸다. “ES 시트에 앉는 순간 여러분의 자세가 옳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맞는 자세를 찾기 위해 더 이상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목부터 엉덩이까지 완벽히 지지하는 시트니까요. 차가 좌우로 움직일 때도 자세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다케시 가와노 시트 개발 담당 엔지니어의 말이다. 이들은 맞춤 양복처럼 몸에 꼭 맞고 편안한 시트를 만들기 위해 시트의 프로토타입을 계속 수정했다.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고, 데이터에 나타나지 않는 세부 내용을 철저히 논의했다. ES의 시트가 유난히 편안했던 데엔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