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진우석의 우리산 기행 <21>제주 용눈이오름
1996년쯤 처음 용눈이오름(247.8m)을 올랐는데 너무 좋아 눈물이 났다.
부드러운 초원의 곡선과 시원한 전망, 말과 소가 풀을 뜯는 한가로운 시간, 무덤과 오름이 자연스럽게
어울린 풍경….
그야말로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정취가 살아 있었다. 그 후 제주를 찾을 때마다 이곳을 찾는데,
용눈이오름은 매번 다른 풍경과 감동으로 ‘삽시간의 황홀’을 느끼게 해준다.
제주가 우리나라 땅인 것은 축복이다.
제주의 풍부한 녹지, 아름다운 자연과 독특한 문화가 한반도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주를 가장 제주답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오름이다.
오름은 대대로 제주 백성들에게 집 뒷산, 마소를 키우는 일터, 그리고 무덤이었다.
그래서 제주 사람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생겼다.
오름이란 제주도에 산재해 있는 기생 화산을 말하며 그 어원은 ‘오르다’의 명사형에서 나왔다.
제주에는 대략 368개의 오름이 있다.
그 많은 오름은 각각 독특한 개성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중 용눈이오름은 가장 유명한 오름이다.
제주시 구좌읍은 용눈이오름을 비롯하여 다랑쉬오름, 동거믄오름, 높은오름, 앞오름(아부오름), 당오름 등
수많은 명봉을 품고 있어 오름 1번지로 통한다.
용눈이오름은 송당~수산간 16번 도로가 구좌읍과 성산읍을 교차하는 경계에 남북으로 누워있다.
그 이름은 세 개의 굼부리(분화구)가 용의 눈을 닮았다고 해서, 혹은 ‘용이 누워있다(龍臥岳)’ 또는
‘용이 논다(龍遊岳)’에서 나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용눈이오름은 산처럼 솟은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누워있는 오름이다.
오름 탐방은 주차장 앞에서 시작한다.
예전에는 주차장이 없어 차대기 힘들었지만, 용눈이오름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새롭게 큰 주차장을 조성했다.
철조망 앞의 문을 통과하면 길은 오른쪽으로 나 있다.
대개 오름은 길이 확실치 않아 대충 정상 방향으로 올라가면 되지만, 용눈이오름은 길 따라 오름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게 좋다.
넉넉하게 1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 길을 따르면 곧 나지막한 구릉에 올라서는데, 가을철이라 소가 떼를 지어
풀을 뜯고 있다.
그 한가로운 모습 뒤로 두 봉우리가 마치 여인의 가슴처럼 봉긋 솟았고, 그 품 안에 무덤 하나가 자리 잡았다.
사방으로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지고 돌아보면 시원하게 전망이 뚫린다.
막힐 것 없는 풍경에서 유독 눈길을 붙잡는 것은 잘생긴 다랑쉬오름의 자태다.
능선에 올라붙으면 신기하게도 봉우리 뒤편에 숨어 있던 두 개의 봉우리가 나타난다.
따라서 용눈이오름은 높낮이가 제각각인 네 봉우리가 서로 부드럽게 이어져 있는 형상이다.
그 가운데 제법 큰 굼부리(화구)가 형성되어 있는데, 물이 고여 있지는 않다.
능선에 오르면 굼부리를 따라 시계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게 되는데,
첫 번째 봉우리에 오르면 비로소 용눈이의 전체 형태가 눈에 들어온다. 네 봉우리를 중심으로 각 방향으로
부챗살 모양으로 여러 가닥의 등성이가 흘러내린 것이다.
또한 곳곳에 알봉을 거느리고 있어 용눈이를 걷다보면 정상이 어딘지, 지금 걷고 있는 위치가 어딘지 꼭
미궁에 빠진 기분이 들게 된다. 너울너울 걸어 두 번째 봉우리에 닿으면 동쪽으로 성산일출봉 일대가 펼쳐진다.
세 번째 봉우리는 좀 떨어져 있어 내려갔다가 올라야 한다.
이곳이 용눈이오름의 가장 높은 봉우리지만, 그것을 느낄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용눈이오름은 보는 장소에 따라 네 봉우리 중 어느 곳이든 정상 역할을 하기에 중심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드러운 수많은 곡선을 발견할 수 있다.
곡선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지만, 주변 오름들과 어우러질 때 더욱 빛을 발한다.
특히 용눈이의 곡선(능선) 너머로 다랑쉬오름, 한라산 등이 올라와 있는 풍경은 감동적이다.
이런 식으로 용눈이오름의 곡선은 다른 오름을 풍경의 중심으로 만든다.
이것이 용눈이오름의 미덕이자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용눈이오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김영갑이다.
그는 스무 살 청년 시절 ‘도 닦는 마음으로 10년만 보내자!’는 마음으로 제주에 들어왔다. 그러나 제주의 오름과 바람,
구름에 매혹되어 2005년 루게릭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제주를 떠나지 못했다. 몹쓸 병과 사투를 벌이며 사진에 열정을
불태운 그의 일생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김영갑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제주 오름을 흐르는 바람과 구름 등을 즐겨
담았고, “제주도의 꼭꼭 숨어 있는 속살을 엿보려면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담았던 곳이 바로 용눈이오름이다. 그는 이곳에서 “사진은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승부를
거는 처절한 싸움이다. 한번 실수하면 그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특히 삽시간의 황홀은 그렇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정상에서 부드럽게 이어진 네 번째 봉우리에 닿으면 하산을 앞두고 용눈이오름은 기막힌 풍광을 선사
한다.
저물어가는 역광 속에 은빛으로 번쩍이는 억새 물결 너머로 한라산, 좌보미오름, 손지오름, 높은오름, 백약이오름 등이
일필휘지로 펼쳐진다.
아! 감탄과 감동이 밀려오면서 김영갑이 이야기한 ‘삽시간의 황홀’의 떠올라 한동안 걸음이 멈춰진다.
▨주변 명소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근처에 다랑쉬오름(382.4m)이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용눈이에서 다랑쉬까지는 차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오름 탐방은 매혹적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굼부리 바닥까지 내려 가보고, 굼부리를 한 바퀴 돌면서 거칠 것 없이
펼쳐진 조망을 감상하는 것이 정석이다. △성산일출봉 제주 동부 지역에서 성산일출봉은 독보적인 존재다. 구좌,
수산, 성읍, 표선 그 어느 방향에서 오든지 바닷가에 왕관처럼 솟아난 일출봉의 웅장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성산일출봉의 해돋이는 영주10경 중 으뜸으로 꼽힌다.
성산 일대는 따뜻하고 볕이 잘 들어 그런지 유독 밝고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일출봉 입구에서 정상까지 오르는데, 30분쯤 걸린다. <이 기사는 대구시체육회가 후원합니다.>
▨교통
자가용은 1136번 도로 손지봉 삼거리에서 하도리 방향으로 1㎞쯤 가면 용눈이오름 주차장이 나온다.
대중교통은 고성에서 택시를 타는 방법이 있다.
▨숙식
제주올레 덕분에 싸고 시설 좋은 게스트하우스가 많이 생겼다.
예하 게스트하우스(제주시 삼도동, 064-713-5505),
성산 게스트하우스(서귀포시 성산읍, 064-784-6434),
마레 게스트하우스(제주시 협재, 064-796-6116) 등.
제주 노형동의 제주늘봄(064-744-9001)은 남원읍 한라산 자락에서 자란 육질 좋은 재래 흑돼지를 내놓는다.
사진 설명 : 억새밭 너머로 펼쳐진 성산일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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